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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 에미한테 키스할꺼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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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913 회 작성일 24-03-29 00: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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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 에미한테 키스할꺼야 (1)


*장소나 인명은 바꾸었지만 그밖의 내용은 실제 상황입니다.

 
 
일요일의 늦은 아침, 한 중년 남자가 우리집을 찾아오면서 사건은 전개됩니다.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열어보니 그가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박민수씨 댁입니까?"
"네, ...... 그런데요?"
"아, 접니다." 라고 했어야 옳을텐데 나는 되물었습니다. 어쩌면 40살 전후로 보이는 그와 나 사이에 아무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기분 때문일 것입니다.
"박민수씨 계신가요?"
"제가 박민순데요? ...... "
그제서야 나도 자신을 밝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무슨 이야기를 ...... ?"
 
그의 말투는 공손하다거나 상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직하고 조심스럽게까지 느껴 졌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아래 위를 훑어 보았습니다.
허름한 남방셔츠와 헐렁한 바지 차림에다 체구는 작고  짧게 깎은 머리며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노동자, 그것도 하급 노동자처럼 보이는 초라한 첫인상이었습니다.
"좀 차분히 ...... 어디 다방 같은 데서라도 ...... ?"
"무슨 이야긴데요?"
"신미숙씨, ...... 저, 형설서점 주인 말예요. ...... 그 사람과 관련된 일인데 ...... 신미숙씨 아시죠?"
"네, 압니다만 ...... ?"
그의 말투는 역시 나직하고 조심스러웠지만 그 이름이 나오자 나는 좀 찔끔했습니다.
"...... 아시죠?" 라니, ...... 그 정도가 아니지. 그녀와 나는 열번도 넘게 살을 섞으면서 정열을 불태웠던 사이 아닌가. ...... 하지만 그것도 꽤 오래 전에 끝난 일인데 왜 새삼스럽게 그녀가 ...... ?
 
"댁이 그 신미숙씨와 깊은 관계라는 말을 들어서 ...... 그게 사실이죠?"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다방을 찾아 마주 앉게되자 그가 물어 왔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신미숙씨는 내 친구 누님이라 몇번 그 친구와 셋이 어울리기도 했지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다니 ...... "
"한밤중에 그 집에 들어가고, 새벽에 나오는 걸 봤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또 그 서점에 딸린 방에서 한밤중 남녀가 엉켜서 내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 "
그의 입에서 "깊은 관계" 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가슴이 덜컥했지만, 구체적 사례까지 들이밀자 가슴은 더욱 두근거리고 얼굴까지 붉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도 그런 말에 당장 항복을 할 멍청이는 아닙니다.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그분은 내 고등학교 동창의 누님이라 알게 되었지만, 내가 그 서점에서 잤다거나 혼자 찾아갔던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나는 화를 내는 표정을 지으며 우선 그의 추궁을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물론 그의 말처럼 나는 주로 늦은 밤 서점에 딸린 방으로 들어가 그녀와 얼싸 안았고, 열기가 고조되면 그녀는 거의 울부짖는다고 할만큼 큰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녀와의 깊은 관계는 사실 모두 그 방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아직 행인이 거의 없는 이른 새벽에 그 집을 살짝 빠져나오곤 했죠.
하지만 그런 행각이 반복되는 중에도 누구와 얼굴이 마주쳤거나 들켰다는 기분이 들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또 그 서점의 양쪽이 하나는 옷가게, 다른 하나는 문방구였는데 밤이면 모두 문 밖으로 자물쇠가 걸려 있어 누군가 우리들이 엉키면서 내는 소리를 엿들을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더구나 그 일들은 이미 꽤 오래전에 끝난 일입니다.
현장을 들켜서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라면 모를까, 누구라도 일단은 부인부터 하면서 발뺌할 궁리를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나는 계속 버텼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요하게 나를 추궁해 왔습니다. 말을 이리 저리 돌리기도 하고, "꼭 거기서 자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남녀간이라 키스나 포옹 같은 것은 ...... ?" 이라는 식으로 한발 물러서 나를 떠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도 차츰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 "절대로 그런 일 없다." 고 그의 모든 질문에 전면 부인으로 맞섰습니다.
일요일 오전의 다방에서 한시간 이상 이런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 선생은 도대체 누구신데 있지도 않은 일로 나를 이렇게 몰아 부치십니까?"
그가 좀 움찔하는 표정을 보고 나는 이것을 반격의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껏 나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었거든요.
"아, 나는 신미숙씨 남편, ...... 최상태 소령의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친구의 알아 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 최소령 아시죠?"
그는 여전히 나직하고 조심스런 말투로 자신을 설명했습니다.
"네, 말은 들었습니다만 ...... "
그녀의 남편까지 대화에 등장하게 되자 더욱 찔끔했지만 그때의 내 응답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에 대해서는, 그녀를 알게된 다리 역할을 했던 친구와 그녀를 통해 들은 단편적인 정보들 뿐이었습니다.
최소령이라는 그녀의 남편은 서울의 육군본부에 근무해서 주말에만 대전에 있는 집으로 내려 온다는데 나는 바로 그 주말을 피해서 그녀를 만났었으니 마주칠 일이 없었고, 사진으로라도 본적이 없기에 어떻게 생긴 남자인지도 모릅니다.
재수생인 내가 어쩌다 15살이나 많은 친구의 사촌누나와 깊은 관계가 되었었지만, 당시 나는 그녀의 남편에 대해 특별한 죄의식이나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분이 왜 그런 의심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하고는 전혀 관계 없는 일입니다."
"내 친구 말은 이웃사람들로부터 확실한 증언을 들었고, 결국은 그 부인도 댁과의 그런 관계를 고백했다고 하더군요. 보아하니 아직 젊은데 남아답게 솔직히 털어 놓으시죠."
정말 바보같이 ...... 나는 그때 불쑥 이런 생각도 했답니다. 혹 내가 아무 말도 없이 발길을 끊자 그녀가 나한테 앙심을 품었거나, 다시 나를 보고 싶어 이 허름한 남자를 보내 나를 협박하는 것은 아닐까? ......
그의 추궁하는 강도가 높아져 갔지만 남편까지 들먹이는 마당이라 나의 부인도 더욱 완강해 졌습니다. 다시 꽤 오랜 공방이 이어졌지만  그는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 새끼 안되겠네! 나이도 어린 새끼가 뭐 이리 뺀질이야?"
그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을 때 나도 표정이 험해지며 그를 노려 보았습니다. 그에 비해 나는 키도 7~8cm는 컸고 체구도 좋아 몸싸움을 하더라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며 내지르는 한마디에 나의 투지는 물거품처럼 꺼져 버리고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 새끼야! 내가 바로 최소령이야!"
 
나는 정말 멍청했습니다.
거의 2시간 쯤을 마주 앉아 공방을 벌이면서도 나는 그가 신미숙의 남편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중 하나는 그의 첫인상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일 수도 있습니다.
허름한 남방셔츠에 헐렁한 바지, 당시 신사들은 머리에 윤이 나도록 기름을 쳐바르는데 짧게 깎은 머리와 그을린 얼굴, 이런 외모 때문에 나는 그를 하급 노동자나 실업자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모습에서는 살기까지 느껴질만큼 위엄과 힘이 넘쳐 보입니다.
언뜻 그 말도 생각났습니다.
"우리 매형은 겉모습은 촌티나고 양순해 보이지만 어찌나 성질이 불 같고 난폭해 일선 소대장이나 훈련소 교관을 할 때는 [타이거 최] 라는 별명이 늘 붙어 다닐만큼 유명했다." 라고 친구가 들려준 말이 있었거든요.
그러고보니 그의 짧게 깎은 머리나 그을린 얼굴도, 이제야 깨달았지만 그 넓어 보이는 어깨도 모두 [타이거 최]에 어울리는 풍모였습니다.
고양이 정도로 생각했던 그의 본색은 별명 그대로 호랑이였던 것입니다. 나는 완전히 주눅이 들었습니다.
 
본색을 드러낸 그는 이제 아예 "이새끼.",  "개새끼." 라고 욕설을 해대며 맹공을 가해 옵니다.
하지만 나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라는 속담처럼 마음을 추스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본색이 드러난 마당에 내가 진실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녀나 나를 다 호랑이 아가리에 들이미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나이도 어린 새끼가 정말 뺀질이네. 그래, 정말 네놈이 내 마누라한테 아무 짓도 안했단 말이냐?"
"정말 저는 그분에게 책잡힐 나쁜 짓을 한 것이 없습니다."
"에이, 개새끼! ...... 정말 말로는 안 통하네!"
그는 테이블 위의 엽차잔을 들어 내 얼굴에 끼얹더니 벌떡 일어섰습니다. 내 얼굴은 물벼락을 맞았지만 그나마 뜨거운 커피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나는 아무 반발을 못했습니다. 그가 찻값을 내고 다방을 떠났어도, 한동안 나는 얼굴의 물끼를 닦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혼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가 혹 밖에 있지나 않을까 바깥을 살피며 나는 집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우리집 대문 앞에 한 소녀가 어정거리고 있었습니다.
연지, 바로 신미숙의 큰딸인 연지였습니다. 중학교 1년생으로 엄마를 닮아 코도 오똑하고 눈이 큰 그애는 나를 보면 언제나 방긋 웃으며 먼저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내가 이름을 부르자 돌아보는 눈은 퉁퉁 부은 채 얼룩져 있고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습니다.
"저기서 엄마가, ...... 아저씨 빨리 보재요."
연지가 앞장 서 나를 인도한 곳은 아까의 다방과는 반대방향인 한 제과점이었습니다. 
구석에서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고개를 든 그녀의 눈도 잔뜩 충혈되어 있었고, 원래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였습니다. 나의 빗나간 행동이 여러사람에게 충격과 피해를 주었다는 후회와 자괴감으로 가련한 그녀를 보면서도 언뜻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너는 잠깐 나가 있어!"
큰딸이 울먹거리며 자리를 뜨자 우리는 시선을 마주쳤습니다. 그때 나는 [타이거 최] 의 본색을 알았을 때처럼 또 한번 공포와 당혹감에 휩싸였습니다.
 
"아니, 민수씨! 당신도 남자의 껍질을 쓰고 있으면서 어찌 그럴 수가 있죠?  아무리 내가 하찮고 경멸스럽다 해도 자신이 품었던 여자를 다시 죽는 길로 내몰아야 합니까? 민수씨도 남자라면 그래도 여자를 감싸줘야 하지 않나요? 어쩌면 그렇게 털어 놓을 수가 있죠? 좋아요! 그럼 당신 지금 그 나이에 나하고 우리 아이 넷 다 책임지고 살 꺼예요? 어쩜 그걸 아니라고 부인해주지 못하고 다 일러 바친단 말예요? 그럼 어쩔거야. 정말 나하고 우리 아이들 넷 다 책임질 꺼예요? ...... "
마침 다른 손님은 없었지만 주인과 종업원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데도 그녀는 분노와 원망과 질책과, 어쩌면 저주까지 포함된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너무 크고 맑아 항상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같다." 고 찬사를 보냈던 그녀의 눈은 살기마저 띤 듯 나를 섬칫하게 했습니다.
"누님 ...... !"
나는 우선 그녀를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그녀의 두손을 내손으로 덮으며 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거죠? 어떻든 나는 무엇을 시인하거나 털어 놓은 것이 없어요. 매형, ...... 그 최소령이라는 분이 그렇게 다그쳐도 나는 한마디도 인정하지 않았다구요."
 
"정말이예요?"
그녀는 아직도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며 물었습니다.
"물론입니다. 나는 한마디도 시인하거나 털어놓은 것이 없다구요. 그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끝가지 벼텼단 말입니다."
"아아 --- "
그녀는 긴 숨을 내쉬며 불안과 원망의 마음도 좀 진정된 듯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이는 민수씨를 만나고 나서 그놈이 다 고백했으니 너도 사실대로 말하라고 나를 다그쳤어요."
그 와중에서도 나는 최소령의 그 가혹한 협박과 추궁을 이겨낸 것에 자랑스런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태의 윤곽은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님, ......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죠?"
"아아 --- "
그녀는 또 긴 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는데 눈에는 물끼가 서렸습니다.
 
"어제 기차역으로 그이 마중을 갔는데 마침 손님과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늦어서 어긋났어요. 그래서 혼자 집으로 들어온 그이가 시종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더니 내가 잠 든 사이 집안을 뒤지며 내 일기장까지 들춰본 거예요. ...... "
나는 또 가슴이 덜컥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지만 "일기란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이나 생각을 솔직히 기록하는 것." 이라고 누구나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녀도 그 규정을 지켰다면 그 자체가 우리의 자백서가 될테니까요.
"그래서 우리 이야기를 ...... ?"
"아니요! 그런 일은 일기장에도 털어놓지 못하죠."
그녀의 말에 약간은 안도했지만 여전히 사태의 윤곽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기장에 끼워 두었던 편지, ...... 민수씨한테 썼던 편지를 들켜버린 거예요."
"무슨 편진데요?"
"그저 그런 ...... 내가 민수씨한테 하고 싶었던 말들을 ...... 그런데 차마 부치지는 못하고 ...... "
그녀는 편지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얼버무렸지만 그 큰 눈의 물끼가 점점 액체의 형태를 보이다 마침내 주르르 흘러 내립니다. 그녀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말을 이어 갔습니다.
 
"이 박민수라는 놈이 누구냐. 어떤 사이냐. 두 연놈이 무슨 짓을 했냐. ...... 밤을 꼬박 새우며 고문 같은 추궁이 계속됐죠. 나는 우선 내가 잘못했다고 빌고, 그저 책방에 오는 손님인데 내가 잠시 정신이 돌아서 반했다고 생각했었다고 둘러 대기도 하고, 요즘은 안 와서 연락처도 모른다고 버티고, ...... 하지만 그 사람 고집이나 성질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어요."
그녀의 창백하면서도 처연한 표정을 보며 나는 밤새도록 받았을 그녀의 고통을 실감했습니다.
"결국은 우석이 친구로 둘다 재수학원을 다니면서 몇번 우리 서점에도 놀러 와서 같이 이야기를 했다. ......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날 늦은 밤에 술에 취한 채 혼자 찾아 와서 갑자기 달려 드는 바람에 꼭 한번 입술을  허락한 적 있다. ...... 하지만 그것 뿐이다. ...... "
"그럼 우리가 키스는 한 것으로 ...... ?"
"어쩔 수 없었어요. 계속 몰아 부치는데 더 이상은 빠져 나갈 수가 없더군요. 도저히 더 버텨낼 수가 없어  키스 한번 했다는 것을 인정했더니 다시 민수씨 집을 알려 달라는거에요. 모른다고 버텼었지만 그이는, 그 정도로 끝났다니 만나서 한번 타이르고 이 문제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는 말에 그만 민수씨 집을 알려 주고 나는 친정에 가 있었죠. ...... 그런데 민수씨를 만나고 와서는 그 놈이 다 고백했으니 너도 실토해라 라며 다시 다그치기에 완전히 절망적인 기분이었어요."
 
그제야 나는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결책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 ?"
"나도 모르겠어요. 그저 그 사람 처분을 기다릴 수 밖에 ...... 민수씨, 미안해요. 나이 든 내가 당신과의 문제도 그렇지만 또 이런 실수로 사고를 일으켰으니 ...... 하지만 민수씨, 고마워요. 그래도 그렇게 나를 감싸주었으니 ...... "
그녀는 그 상황에서 나에게 사과와 감사를 표했지만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닥칠 일을 어떻게 피하고 대처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 ?"
나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습니다.
"나도 모르겠어요. 어떻든 내가 키스를 한번 한적은 있다고 했으니 민수씨도 혹 그 사람을 다시 만나면 그것만은 인정해 주었으면 해요."
해결책이 막막한 중에도 우리는 공범자로서 또 다시 입을 마추는 꼴이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찾아요! 빨리 ...... !"
다시 나타난 연지의 말에 그녀는 급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다시 곤욕을 치르러 가는데도 서두르는 그녀가  더욱 가련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연지가 제 엄마와 함께 가지 않고 내 앞에 멈춰 나를 노려 봅니다.
"아저씨가 그렇게 못된 사람인줄 몰럈어! 다시는 우리 집에 얼씬도 말아요! 오기만 해 봐라! ...... "
어린 소녀의 증오에 가득 찬 시선에 나는 고개를 숙여 버렸습니다. 오늘 처음 얼굴을 마주한 최상태 소령이라는 남자와 신연숙, 또 그녀의 딸에게까지 꼼짝 없이 당하며 나는 빗나간 열정이 얼마나 엄청난 파문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정말 착잡하고 곤혹스러운 심정이었습니다.
그날은 더 이상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찝찝한 기분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형설서점을 가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이튿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나는 더욱 불안하고 답답한 기분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그 주변을 맴돌기만 했습니다.
목요일 저녁, 서점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유리를 통해 항상 그녀가 앉아 있는 자리에 그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녀의 큰딸 연지가 서있고 모녀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는 듯 함께 웃고 있었습니다.
차마 그곳에 끼어들 수는 없었지만 모녀의 그런 모습에 안도하며 나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마음의 짐도 좀 벗겨진 듯 했습니다.
 
일요일 아침,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연 나는 경악했습니다. 바로 최상태 소령이 대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군복차림에다 허리 오른쪽에는 권총도 차고 있었습니다. 꼭 일주일 전, 허름한 사복과는 첫인상부터가 백팔십도 달랐습니다. 유니폼이 원래 사람을 근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윤이 반질반질 나는 군화에다 줄이 빳빳하게 선 군복에 달린 소령 계급장, 게다가 권총을 찬 허리에 두손을 버틴 그의 모습은 태산과도 같은 위압감으로 닥아 왔습니다.
"안녕 ...... 하셨습니까?"
"늬 에미 어딨어?"
그 위세에 눌려 쭈삣거리며 한 인사를 묵살하며 내 뱉은 그의 첫마디였습니다.
"네? ...... "
흔히 쓰는 말이 아니기에 나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늬 에미 나오라구 해!"
"어디 ...... 가셨는데요. ...... "
나는 기가 꺾인 채 더듬거렸습니다.
 
"그럼 언제 오는데 ...... ? 얼마나 기댜려야 돼?"
"글쎄요 ...... ? 그런데 ...... 우리 어머니는 왜요?"
"늬 에미한테 키스할려구!"
"뭐요?"
나는 그를 노려보며 처음으로 반발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이유를 묻지 않고 상대방을 주먹으로 쳤을 것입니다. 설사 내 힘이 모자란다 해도 ...... 그런데 그가 먼저 나에게 따귀를 올려 부쳤습니다.
"이새끼야! 너는 애가 넷이나 있는 주부한테 키스했다며? ...... 그러니 나도 늬 에미한테 키스하려구 ...... 왜, 떫어? 빨리 늬 에미 데려와, 이 개새끼야! 나도 늬 에미한테 키스할꺼야!"
신미숙과 키스한 것까지는 인정하기로 그녀와 약속했으므로 그에 따른 책임이나 벌은 받겠다는 각오는 어느 정도 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파문이 우리 가족, 그것도 어머니에게 미칠 수 있다는 것까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나는 절망적인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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