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베어] 나의 난봉기 50 - 나의 유학난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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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글을 올리면서 골치 아픈 여자들 양도할 의사가 있다고 했더니 몇몇 분들께서 로컬을 주시네요. 네... 물론 양도할 의사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어떤 방식으로 양도할 것인지는 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전화번호만 건네 드린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요...
각설하고...
저랑 본질적으로 같은 필명을 사용하시는 분과 그 친구분 (친구 맞나?) 께서 유학생활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미시간주 랜싱에 있는 명문학교 졸업자분들이신 것 같은데, 거기서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더군요... 흥미 있게 읽다 보니, 이제는 기억도 아득한, 제 유학시절, 뭐 유학시절이라기보다 외국난봉의 한 부분이 기억나더군요...
그리고 이 글은 우리 네이버3회원들 중 지금 유학을 생각하고 계시는 학생분들에게도 충분히 참고가 되실 듯합니다...
아뭏든... 대학원졸업을 2월달에 하고... 물론 그 전에 TOEFL 이니 GRE 니 하는 것들은 다 시험봐야죠...
☞ 여기서 잠깐...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긴 뭐 아마 그렇겠죠..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빨리 모든 것이 변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예전에 제가 GRE 시험을 볼 때는 그 중에서 Analytical 이라는 분야가 있었습니다.. 그걸 쉽게 애널 애널 하고 말했는데 전 뭐 그때부터 그 말 들을 때마다 항문성교 생각이 나더군요... 이렇게 시작한 유학이 어디 제대로 가겠습니까...
☞ 여기서 한번 더 잠깐...
전 개인적으로 말하면서 영어단어 섞어 쓰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미국 갈 때도 그냥 지원한다, 합격했다 라고 하면 될텐데, 꼭 어플라이한다, 어드미션 받았다... 라고들 하더군요... 학점인정이나 수강면제라고 하면 될텐데도 꼭 웨이브 되었다고 하고... 두과목 듣는다고 하면 될것도 꼭 투코스 듣는다고 하구요...
아뭏든... 어차피 뭐 장학금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입학허가증이 안 올 이유가 없죠... 우리 지도교수가 Ph.D. 받은 학교 그 학과로 갔습니다...
우리집이 그렇게 가난한 것도 아닌데 우리 지도교수님께서는 저한테 잘해주신다고 미국까지 비행기표를 끊어주시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놈의 표가... 원래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직항표가 아니라 시애틀 가서 갈아타야 하는 표였습니다... 이왕 사주려면 그냥 직항으로 사주지... 하긴 뭐 우리나라 교수들 중에 이 정도나마 해주는 교수는 천사표입니다만...
기억도 이젠 아련한 어느날... 비행기가 시애틀공항 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하고 아래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던 그때의 기분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 열심히 해야지...
- 난 할 수 있어...
- 좇도 아닌 이** 선배도 내년에 Ph.D. 받는대잖아...
- 난 꼭 교수가 될거야...
- 이제 내 인생은 꽃이 피는거야...
뭐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최종목적지에 도착하니, 유학생회 총무인가 하는 선배가 나와 있었고, 그 분 차 타고 일단은 그 분 집에서 이틀이나 잤습니다...
기숙사 배정 받고 (기숙사라고는 하지만... 2차대전때 해군막사라고 하더라구요...) 지도교수한테 가서 인사하고, 오피스 배정 받고... 그리고 우리 지도교수가 특별히 소개해 준 Administration Office (이게 한국으로 치면 과사무실이나 매한가지인데...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 과사무실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일을 합니다...) 아줌마한테 가서 인사도 하고...
그리고 수업 시작되죠... 처음 수업 들어가면 어차피 영어 거의 안 들린다고 해서 교과서를 거의 외우고 들어가고... 그래도 안 들리기는 매한가지이고... Charles *** 라고 하는 노교수가 수업하면서 하도 이놈 저놈한테 물어보는 바람에 나한테 물어볼까 존나 쫄고... Class Activity 가 점수에 반영된다고 해서 일부러 질문할 것 준비해 들어갔는데 정신 없이 오가는 영어 속에 끊고 들어갈 타이밍 못 잡아서 그냥 시간 끝나기도 하고...
그런데 이 자식들 숙제는 또 엄청나게 내 줍디다... 그냥 한글로 해도 다 못할 분량의 숙제를 영어로 하자니 돌아가실 지경인데다... 컴퓨터는 또 다 맥킨토시입니다... 한국에서는 IBM 호환 조립품만 썼는데요...
EC201 이라는 강의 들어갔더니... 책은 그냥 한국에서 배우던 책인데... 한 100명 앉아서 듣습니다... 대학원에서 100명 이상 앉아 듣는 강의가 있다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그렇게 시간이 가니 어디 뭐 여자 생각이 날 리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발기도 거의 못해보고 한학기 흐르고 방학 되더군요... 그래도 다행히 학점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다행이죠... 처음 맞는 방학 놀 시간 없죠 당연히... 다음 학기 과목 책 거의 다 외워야 하고 (안 외우면 안 들리니까...) 선배들한테 족보 받아서 존나 연습하고... 그렇게 방학도 흘러가 버리고... (게다가 미국대학, 특히 제가 다닌 대학은 겨울방학이라고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짧기도 하구요...)
곧이어 시작한 제 2학기... 이제 한국놈이라고 봐주지도 않고...
아뭏든 이렇게 코스는 다 흘러갔고... 가끔 화장실에서 딸잡는 것 빼고는 여자라고는 구경도 못했습니다... 같은 연구실에 미국 여자 하나 있긴 했죠... 그런데 그 여자가 말이죠... 미해군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돈 모아서 박사 받겠다고 온 여자였거든요... 미해군은 커녕 육군 특수부대에 가도 어울릴만한 여자였는데 어디 뭐가 되겠습니까... 가끔 야리야리한 한국여자가 없지는 않았는데 이 여자들은 모두 유학생 부인들이었고... 중국 북경대학에서 100점 만점에 98점 받은 성적을 자랑하는 중국여자유학생은 정말 그 얼굴이 공부 아니면 달리 할 일이 없을 듯 하게 생겨서 도대체 발기도 안되고...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더라도... 결정적으로 돈이 없어서 어디 떡칠 곳도 없었죠... 차도 존만한 차라서 카섹스는 생각도 못하고...
가끔 토요일 점심때쯤 주변에 있는 바다로 가서 태평양을 하염없이 바라보자면 눈물이 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더군요...
이렇게 코스는 끝나고 논문을 써야 하는데... 기적은 소리 없이 오는 법인가 합니다...
같은 과에 다니면서도 전공이 조금 달라 다른 랩에 있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국적이야 당근 한국이고 아빠가 서울 어디서 유명한 의사라고 합디다... 그렇게 부자집 딸이 뭐 할 짓이 없어서 Ph.D. 까지 하겠다고 악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얼굴 생긴걸 보면 나름대로 그녀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수준인데...
요뇬이랑 싸운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문과 출신인데 나름대로 그 당시 DOS 환경 컴퓨터에서 SAS 랑 SPSS, Minitab, RATS, SHAZAM, BMDP 등의 소프트웨어를 잘 썼는데, 요뇬이 한번 뭘 부탁하는데 다른 미국애들 일 도와준다고 좀 늦게 해 줬더니 저더러 미국놈들한테만 잘해준다고 칭얼거려서 싸운 적이 있었죠...
좀 미안한 마음도 있던 차에... 어느날 저녁 연구실에서 나가서 1층을 내려가는데 2층에서 그녀가 연구실을 나오더군요... 요뇬이 한과목 Imcomplete 가 나와서 고생하고 있을 시점이었는데... 그냥 말 걸었더니 그녀도 말을 받아주고 제가 예전 일은 미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도 아니예요... 라고 말하고...
그리고 사귀기 시작한 것 같군요... 한 한달 사겼나? 요즘 아줌마들 자빠뜨리는 속도와는 비교가 안됩니다만... 어쨋든 어느 날 키스했더니 받아주면서 바로 모든 것이 시작되더군요...
유학생에게 58불이라면 거금입니다만... 58불을 내고 시골모텔에 들어가서 떡을 치는데... 사정하는 순간... 성기에서는 정액이 나오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더군요... 도대체 몇년만인지...
그녀도 숫처녀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많이 해본 것도 아니었고...
그 후 저는 약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원래 부자집 딸이어서 그런지 수시로 한국에 들락거렸는데...
뭐 시간 지나니까 흐지부지 되더라구요... 요즘도 가끔 그뇬이 쓴 논문이 나오는 걸 보는데... 앞이 막막한 연구원입디다... 한국 온지가 도대체 몇년인데 아직도 허구헌날 미국모델만 가지고 얘기하더군요...
갑자기 유학시절이 생각나기에 긁적거려봤습니다...
폴라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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