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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불륜야설) 유학 아리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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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332 회 작성일 24-03-27 00: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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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생겼다.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잡지 기사에서나 보던 그런 애인이 나에게도 생겼다는 사실이 어떨 땐 황당하기조차 하다. 더구나 애인이란 남자는 이제 20대 중반 유학생이다.

조카뻘이나 될까? 키가 큰 남자애치고는 비교적 피부가 하얀, 막내 동생뻘조차도 안되는 젊은 아이다.

미친년이란 소리 들어도 변명할 수조차 없지만, 이상하게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애들 아빠한테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난 분명히 애들 아빠를 사랑하고 그와 별 탈 없이 20년이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남편이 심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그게 가끔은 전화로 부부싸움이 된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으며, 남편에게 있어서 IMF 이후 지금 시기가 최대의 시련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애들 아빠를 사랑하고 이혼에 관한 건 꿈에도 생각조차 없으며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왔음을 말하고 싶다.


외도의 유혹? 물론 있었다, 솔직히 결혼할 때 남편이 첫 남잔 아니었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주위 아는 남자들에게서 은근한 유혹을 느껴본 적도 있으며 그 유혹을 즐기면서 같이 춤을 추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결혼 후에 남편 이외의 남자와 사랑해 본 적은 없었다. 솔직히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고 얘기하면 이유가 될까?

그렇다고 해서 내 친구들이 그들의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냥 그 당시 내 울타리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마도 난 크게 부유한 것도 아니고 크게 부족한 것도 없는 평탄한 결혼생활을 누리는 여자일지도 모른다.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좀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이곳으로 왔다.

비행기를 타고도 오랜 시간 와야 하는 먼 땅이라서 그런가, 처음으로 와보는 곳은 아님에도 모든 것이 다르다.

공기도 틀리고, 물도 틀리고, 심지어는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한 몸에 내려받는 햇살조차도 틀리다.


우체통으로 날아들어 오는 전단엔 이것은 몇 달러, 저것은 몇 달러라는 가격표시부터 눈에 보인다.

예상했던 것보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에 돈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서 애들 아빠에게 전화하기가 미안해진다.

본국으로 날아가는 카드 대금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몇 배 가까운 지출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행복하다.

넓은 하늘과 맑은 공기, 그리고 잠시 머무르는 들러리 관광객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영화에서나 보던 외국에서의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음이 행복하다.


여기 교민 중에도 생각보다 친절한 분들이 많고 학교에서 만나는 한국 아이들도 나에게 무척이나 잘해준다.

어떤 애는 나보고 자기가 중학교 시절 사모했던 여선생님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그 애가 귀여웠다.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는 아이들에게 그냥 누나,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희영이 누나. 희영이 언니.


내 이름과 함께 언니 누나로 불리는 나에 대한 호칭은 오랜만에 맛보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훨씬 젊어진 느낌으로 사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인가 보다.


여기 와서 딸아이들과 함께 인터넷도 하기 시작했다.

이젠 제법 말도 통하는 것 같다.

아직 영어가 서툴러선지 집에 오면 답답했던 것들을 모두 한국말로 털어놓으며 수다 떨기 바쁘다. 점차 나아지겠지.


그리고 1년. 지금은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느낌이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가 있게 되었고 이젠 식료품을 주문하거나 차 운전을 하는 일, 한국에서 새로 온 또래의 주부들과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일도 많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나를 보고 자기가 좋아하던 여선생을 닮았다고 얘기했던 그 아이,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아이, 아니 그와 처음으로 키스하던 날을 난 잊지 못한다.

우리는 그때 많이 취해있었다. 너무 답답해서 아이들을 재워놓고 한밤중에 불러내서 교외로 드라이브하다가 술집에서 술을 평소보다 조금 과하게 먹고 난 후였다.


차 안에서 그는 날 사랑한다고 했다. 누나를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했고, 난 우리가 이러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당시 그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굴던 어린 유학생 계집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매주 교민교회에서 만나게 될 때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요란하고 촌스러운 화장에다 필요 이상으로 그에게 헤헤거리는 그 여자애가 난 왠지 싫었다.


차 안에 있었는데 난데없이 그 늦은 시각에 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년의 전화를 친절하게 받아주는 그에게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처음으로 심하게 짜증을 냈다.

그날 밤, 우리는 소위 말해서 2차라고 하는 자리로 옮겨서 술을 더 마셨으며 그는 나중에 차 안에서 내 몸을 가졌다.


술이 깨고 나니 창피했다.

자동차 시트는 청소해야 했으며 내 나이에 그의 몸 위에서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조차 정말 꿈이었으면 싶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될 줄 예상했을는지도 모른다.

전화를 걸어서 그 아이를 불러낼 때, 누나가 이 밤중에 웬일이냐고 좋아하면서 전화를 받을 때, 난 오늘 밤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리라 하고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난 그냥 외롭고 심심하고 기분이 디프레스 됐을 뿐이었었다.

그는 친절했고 늘 믿음직스러웠으며 또래 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아이였고 성격이 부드러웠다.

난 그냥 위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내 안으로 굵고 딱딱한 자기 것을 삽입할 때 내 머릿속은 배란일 날짜를 계산하고 있었다.

난 지금도 그때 내 머릿속이 그랬던 건 일부러 계획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방어적인 본능이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지금 그는 내 몸 위에 있다.

이제 그는 스스럼없이 내 이름을 부른다.

그는 어떨 땐 섹스 중에 나를 이년 저년 하며 하대한다.


어떨 땐 자존심이 상해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날 근본적으로 무시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잘 알기에 무어라고 그러진 않는다.

어떨 때는 그의 몸 위에서 친정엄마한테 걸려 온 국제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어떨 땐, 내가 마치 그의 동생 나이 또래의 연인이 된 기분이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몸이 더욱 반응한다. 당황스러운 일이다.

교포사회에서도 영주권을 따려고 한국에서 건너온 주부들이 몸을 판다는 둥, 별별 추문이 다 나도는 마당이라서 그저 여기서는, 이놈의 나라에선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려니 하고, 될 수 있으면 기분 나쁜 것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행히 아이들도 그를 잘 따라주어서, 그리고 그도 아이들을 자상하게 대해주어서 너무 다행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 여자로서 나이 사십이 넘은 허탈감을 그의 사랑이 채워줄 때 나는 다시 그의 품속에 있다.

이건 비밀이야. 아무도 몰라. 그리고 우리만 알고 있다가 돌아가면 되는 거야.

나는 이미 그의 몸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야! 난 몰라. 나 어떡해… ”


*******************


이년이 내 위에서 몸서리칠 때마다 내 쾌감은 요동치듯 솟구쳐 오른다.

신선하긴 하지만 풋내나고 투정 많은 어린 계집애들과는 달리, 이미 아내라는 이름으로 여러 번 남자에게 안겨본 유부녀의 진가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하기야 맨 처음엔 이년이 이렇게 내 위에서 두 눈이 풀려서는 힙을 돌려가며 질질거리는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내가 여복이 많은 건지, 학교 수업이 없는 오전 내내 뒹굴던 침대에서는 벌써 군내가 나기 시작한다.

땀 냄새와 뒤섞여 시큼하게 번지는, 간단한 수사 한 두 마디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이 복잡한 냄새마저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냄새들이 일종의 마취 효과가 있어서 지금 내 위에서 지랄발광하면서 날 사랑한다고 두서없이 주절대는 저 귀여운 년을 더욱 흥분케 하여준다고 믿는다.


저년은 올해 43살, 빠구리를 트기 시작한 건 넉 달이 채 안 됐지만, 얼굴을 알고 지낸 지는 2년이 되어간다.

난 저년을 같은 반 랭귀지스쿨에서 만났고, 저년은 그때 막 여기 도착한 터라, 자기 두 딸아이의 부차적인 학교 수속마저 교민교회의 아는 사람 도움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초보 조기유학 학부모였다.


한국 사람이 세계 어디를 가도 늘 그렇듯이, 시끄럽게 몰려다녀야만 자기네들 정체성이 확인되는지, 저년도 여기로 오자마자 자기 또래의 서너 살 어린 유부녀들이랑 학교에서 어울려 다녔는데, 그래도 그 나이치고는 한국에서 서울 소재 대학까지 나온 자존심에다 미리 영어 공부를 좀 하고 왔는지, 맨 처음 클래스 배치 시험에서 나와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솔직히 평소에 연상녀에 대해 관심도 많았었고 대학 코스를 밟으러 오거나, 6개월 어학 연수받으러 오는 한국의 내 또래 계집애들은 웬만하면 대학 코스까지 마친 후 여기서 직장 잡고 눌러 않기를 원하는, 비록 말은 입으로 안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한국에 정 끊은 년들이나 아니면, 한국의 영어연수 붐에 힘입어서 자기 직장 커리어를 높이려고 오는 년들.


그리고 머리는 텅텅 비었는데 집안에 돈은 많고 자기가 이쁜 줄 착각하는, 쪽팔리게도 만리타국 땅까지 와서 ABC 기초반부터 시작해야 하는 웃기는 년들까지 포함, 거의 80% 이상은 싹수가 밥맛인 년들뿐이라, 결과적으로는 이년과 학교에서 얘기하며 다른 아줌마들이랑 어울려 밥도 같이 먹는 시간이 점차로 많아지게 되었고 종국에는, 경계심이 많던 이년도 나를 스스럼없이 대해주게 되었다.


내 나이 그때 24살에 그래도 학생 어학연수원 코스에서는 자녀들 조기유학 케이스의 몇몇 아줌마들이나 노처녀들 빼고는 어느 정도 중견 학생?으로 대접받는 아주 어중간한 남자 나이였기에, 밑으로는 형, 오빠라고 부르는 후배 새끼들과 위로는 형님, 또는 누님으로 모시는 유부녀 년들이 많아도 별로 이상해 보이진 않았을 환경이었다.


늙은 년들은 늙은 어떤 년들대로 따라다니면서 운전해주고 이것저것 시중들어주는 젊은 남자인 나를 남동생 삼는다며 아주 살갑게 대해주었다.


“희영아. 내가 얼마만큼 좋아? 나 맛있어?”


나는 늘 그랬듯이 이렇게 내 위에서 열심히 방아질을 해대며 땀을 뻘뻘 흘리는 년을 가만히 보면서 누워있기만도 좀 뭣해서, 나도 흥분하여 갑자기 자세를 뒤집어 이년을 밑에 깔고는 내 좆을 박은채로 두 눈을 쳐다보며 물어봐 준다.


“응, 자기야, 너무너무 좋아. 하늘만큼 좋아.”


이년은 이미 눈이 풀려서 갑자기 좆질의 리듬이 끊기는 것만이 아쉬운 표정이다.

내가 하늘만큼 좋다고 씨부렁거려대는 이년의 입에선 뜨거운 단내가 훅하고 올라온다.


“겨우 하늘만큼? 네 서방이 좋아 아니면, 내가 좋아? 어서 말해봐…”


“응 자기야. 나 인제 어떻게 할 거야? 나 몰라. 어떡하면 좋아?”


이쯤 되면 나는 이년의 질 안에 박혀있는 내 좆을 천천히 돌리며 이년의 귀에 입을 대고 천천히 속삭여준다.


“나도 네가 좋아. 넌 정말 끝내주는 년이야. 너 그거 알아? 넌 아직도 맛있어. 이쁘단 말이야. 넌 이쁜 년이야. 네가 윤희보다 훨씬 이뻐. 정말이야. 사랑해 희영아.”


“흥. 뻥까지 마. 늙은이 놀리냐, 지금? 아.”


“윤희가 나 좋아한다고 그랬었다는 거 너 알잖아. 하지만 네가 훨씬 더 이뻐. 풋내나는 얘들하고 너하고 같니? 사랑해 희영아. 넌 내 것이라고 말해줘. 네 보지 누구 거지? 빨리 말해 봐.”


이쯤 되면 강하게 후벼대는 내 좆의 펌프질에 이년은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말한다.


“자기 것이야.”


“다시 말해봐. 누구 거라고?”


“난 자기 것이야. 내 보지는 자기 것. 아. 아.”


윤희란 년은 맨 처음 랭귀지스쿨에서 이년과 같은 코스에 있던 6살 밑의 후배다.

당시에 조기유학 고등학생들을 전문으로 받는 랭귀지스쿨코스에 가지 않고 우리가 다녔던 일반학생 랭귀지 코스에 실수로 입학해서 우리랑 같이 한 학기를 다녔고, 지금도 알고 지내는, 이제는 20살이 된, 학교에서 아주 인기가 많았던 년이다.


언제부터였던가. 섹스하면서 하기 시작한 이년 저년 하는 욕지거리는 마지막에 하는 이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다 용서가 된다.

“이쁘다.”란 말은 여자들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인가. 연상의 계집을 쑤시는 재미는 이런 것인가. 겨우 이쁘다는 말 한마디에 거짓 조금 보태 엄마뻘 나이가 되는 이년은 자기 나이에 그 말이 무척 고마운 듯, 내 밑에서 다리와 입을 쩍 벌리고는 쌕쌕거리며 시키는 대로 다 하니 말이다.


이렇게 침대에서는 어떤 짓도 허용이 되고 용서가 되니 다른 연놈들의 침실을 엿보고 싶은 욕망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희영이 이년 역시 빠끔한 년이 아니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의 이런 짓들을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유부녀로 보이거니와, 멀리서도 눈에 확 뜨일 정도로 미인은 아니지만, 천박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에겐 무척 감사한 일이다.


1년이 넘도록 관계를 유지하며 꾸준히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도와주고, 살펴주고, 신뢰를 쌓으며 만리타국에서 유학비자 소지자라는 동병상련으로 술자리를 같이 한 덕에,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돌아버린 이년의 다리를 벌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이년도 타지 생활 2년째가 돼가면서 무척 지치고 외로웠었나 보다.


힐을 신으면 늘씬해 보이는 164cm의 키, 목이 길고 약간 마른 체형의 몸매에 도드라진 듯 위로 붙은 듯, 체형에 비해 약간 풍만한 듯한 사이즈의 엉덩이, 눈 근처에 약간 주름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봐줄 만한 얼굴, 그 나이대 또래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 무슨 은행 부지점장이라는 남편의 지위.


하기야 그 정도나 되니까 나이 든 년들이 간덩이가 부어서 제 자식 조기 유학시키겠다고 쫄래쫄래 날아오지.


그리고 마지막은 제 엄마가 신줏단지 모시듯이, 어떨 때는 친구처럼 지내며 곱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18살과 14살짜리 두 딸년.

요즘에들 워낙 발육이 좋은데다 제 어미를 닮아서 짜리몽땅이나 박색이 될 것 같진 않다. 나한텐 아주 괜찮은 옵션이다.


14살짜린 아직 풋내가 나지만 큰 애는 이쁘장하게 생긴 데다가 지 엄마 몸매를 닮아 엉덩이도 제법 튀어나온 것이, 그리고 한창 자라는 나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얼굴 생긴 거 답지 않게 먹는 걸 매우 밝히는 모습이 나름대로 멍청해 보여서 아주 박음직스럽다..


나는 지금 언젠가 세 년을 모두 한 침대에서 품을 날을 꿈꾸며 기회만을 엿보는 중이다.

보통 야설에서 엄마랑 사랑을 나누다 보니 어느 날 딸애가 눈에 보이더라, 딸애가 유혹하더라,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통속적인 글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 난 그런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난 지금 이 아이들에게 엄마의 일을 아빠처럼 도와주는 마음 착하고 멋있는, 그리고 믿음직한 삼촌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젠 이 아이들은 나를 스스럼없이 삼촌이라고 부른다.


희영이 저년이 자기 아이들을 나에게 처음 소개해주던 날, 나는 이 애들이 제 어미를 자빠트리는데 무척이나 거추장스러운 사내새끼들이 아닌 것에 너무나 감사해하며 앞날의 기대에 얼마나 마음이 부풀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어떨 땐 엄하디엄하고 다소곳한 엄마가 게걸스럽게 삼촌 자지를 물고 정액을 받아 가며 신음하는지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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