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뭘로 지어야 할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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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새 해가 시작되고 오늘이 딱 1주일 되는 날이네요
암닭이 울어야 나라가 잘된다고
을유년은 이렇게도 우리앞에 와버리고 말았습니다.
올 한해 만큼은
집안에 모시고 계신 암닭이 말이 되든 안되든
소리좀 질러도 이쁘게 봐주시고,
아내는 남편하기 나름이라는 말............
귀두에 깊이 새기고 하루에 몇번씩 꺼내봅시다....
작년 12월 중순쯤이었네요
우리회사 송별회가 있었습니다.
매년 송별회를 할 때는 만원, 이만원씩 성금을 걷어서는
불우시설에 적으나마 도움을 드렸습니다.
올해도 걷힌 성금으로 도움을 드리돼 돈만 드리는게 아니라
몸바리도 같이 하는 곳을 찾아서 들여다 보자고 논의가 되어서는
울회사 회장언니께서 한 성당에 문의를 하여
수녀님들께서 운영하고 계신 "아이들의 집" 이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의 외곽인 반송이라는 곳에 자리한 이곳은
1954년 전쟁고아들을 위하여 처음 만들어 졌지만
1979년 현 위치로 이전해와 정상아이가 아닌
버려진 장애아들의 전문 치료를 목적으로 개칭된 집이었습니다.
정상아이가 아닌 버려진 장애아들...
다운 증후군 아이가 제일로 많았고,
대뇌가 없이 태어난 아이........운동신경이 없어서 거의다 비만해 지기때문에
팔다리를 인위적으로 움직여줘서 살이 찌지않게 해줘야 된다더군요.
귀가 형체는 없이 구멍만 뚫려서 태어난 아이.....보청기 해넣었답니다.
뱃가죽이 문제가 생겨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채로 버려진 아이......
몇번의 수술로 배는 덮었는데, 내장과 꼬추마저 이상이 생겨서
오줌통, 변통을 몸밖에 달고 다니고, 여자로 성기 수술을 해줫다는데,
자라면서 남성의 상징이 더욱더 두드러져 독일에서 다시 재수술을 받고
여자로 신고된걸 남자로 다시 바꾸는데 무지 어려웠답니다.
등등...수녀님이 시설을 돌아보며 한명 한명 얘기를 해주시는데,
건강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만해도 정말 큰 축복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처음 대신동에서 허름하게 있다가 이곳으로 집을 반듯하게 지어서
이사오자, 돈 많이 모았나보다...라는 오해를 받아서
갑자기 후원이 많이 끊겨 한동안 어려운 적이 있었노라며
지금은 재정의 70%를 나라에서 지원을 받고,
20%는 한달에 천원에서 부터 몇만원까지 정기적으로 보내주시는
후원금, 그리고 10%는 카톨릭 제단의 도움을 받아서 운영하신다고 하네요.
취학전 7세까지만 돌보고 있다는데,
밥먹이고, 똥 오줌 누이고, 언어교육, 물리치료 등등
아이하나에 어른 한명이 반드시 붙어 있어야 한다니
그 노고가 봉사정신 만으로는 되지않는 뭔가가 그분들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더군요.
저희들은 그곳에서 정말로 보잘것 없는 봉사만 하고 왔습니다.
첫째. 아이들 기저귀 개키기...일회용 기저귀는 감당이 안되서 못쓰신다네요
둘째. 성탄절 장식해놓은 거 철거하고 청소하기
셋째. 장작 나르고 다시 쌓기..
제일 먼저 지어서 이사온 건물은 장작으로 보일러를 떼신다고 하셔서
마당 저~쪽 구석에 패어서 쌓아놓은 장작을
건물 뒤쪽에 갖구와서 쓰기좋게 벽에 붙혀서 쌓아놓는 걸 했는데,
장작을 집어다 손수레에 쌓는 것도 허리가 욜라 뽀사질라구 하구,
손수레로 옮겨서 땅에 부어놓은 장작을 다시 사용하기 좋게
질서정연하게 쌓아올리는 것도 허리가 아작날라 하두만요.
하지만,
춥다고 윗옷 다 입고 시작했던 장작일을 나중에 덥다고
윗옷을 벗을 정도로 조금은 힘들게 일하면서도
우리들 입가에선 왠지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번씩 이런곳에 갈 기회가 생기면 나름대로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쓰고,
역시나 애를 써서 따라가보면, 제가 드리고 오는 것 보다는
얻고 오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현실에 얶매여서 뒷전으로 밀어내놓고, 언젠가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 마음적 여유가 생기면 가겠노라고
게으름 피우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번은 모 방송국에서 아무래도 방송을 타면 후원자가 늘지 않겠냐며
와서 취재를 해가서 방송 된적이 있다는 데,
방송이 나간 다음날 아이들의 집 문앞엔
버려진 장애아가 자그마치 10명이 있었답니다.
해서,
그 다음부터는 일체 매스컴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으시다며
더 많이 와도 수용을 하기가 어렵다며...
그 와중에도 수녀님께서는 아기를 버린 부모를 옹호 해 주십니다.
"애기를 낳자마자 팔이 하나 없으니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러니 놀래서 버린게지..놀래서..."
설명중 몇번이나 애기 엄마들이 놀래서 버렸다, 무서워서 버렸다며
혹여나 우리가 애기 버린 엄마들을 욕할까...그 애기엄마들 편에서
설명을 해주시는데, 참..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런 시설에 봉사를 하러 가기가 어려운 첫째이유는
공간의 제약 같습니다.
거주지에서 다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거...
일명 혐오시설이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해서 정신은 썩어 문들어져 있어도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들이
그런 시설이 자기네들 나와바리로 들어오는 걸 죽자사자 반대하는 거..
저도.....오늘 가기 전에는 어차피 인연이 닿은거..
자주는 못가도 가끔씩이라도 아들 데리고 가서 봉사해야지..싶었는데,
거리가..제법 멉니다.
아이들의 집에 들어가서 부터, 나올때까지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던 한아이..
어디가 불편해서 저리 오래 우는가...........
우리는 일하는 중간 중간...........아직도 애가 울고 있네..라며
지나가는 말로 몇번 웅얼거렸지만,
정작 그 아기는 정말 어디가 그리 불편해서...몇시간씩을 울어야만 했을까...
어리석게도 우리는 우리가 뭔가 도움을 드리겠다고 출발했지만,
정작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오는 길에, 우리가 드린건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영혼에, 우리의 마음에,
수녀님과 봉사자들, 그리고 장애 아기들에게서
알수 없는 뭔가를 가득...받고 나오는듯 했습니다.
오며 가며 부딪힌 봉사자 분들..
하나같이 얼굴이 밝으시더군요.
마지막으로 수녀님이 하신말 하나만 더 적겠습니다.
무슨 때되면 가져다 주는 성금 보다는
매달 매달 천원이든 만원이든 정기적으로 보내주시는 후원금이
훨씬 살림 사는데는 도움이 되신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식구 한명당(내가 잘하는 수법임^^) 천원씩 , 오천원씩이라도
없다셈치고 자동이체 신청해서 더불어 살아봅시다.
아직까지 그런곳에 가서 감동을 받는 내 영혼에 안도하며
이제는 더 이상 뒤로 밀어내놓아서는 아니될것 같습니다.
(아..글로 썻으니.....지키도록 애쓰겠지...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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