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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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시대 최고의 변태인 친구 빛나리가 또 재미있는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녀석의 기행은 글로 다 표현하기에 모자랄 정도로 다양하지만 그 기행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주변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채팅으로 꼬신 여자 10명을 만나러 혼자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난생 처음 가는 베트남 땅을 밟은 사건은 그를 잘 아는 주변 친구들에게
발상의 가상함과 그 한계를 향한 도전정신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 화려한 장거리 원정 번개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얘기하도록 하고.....
친구 빛나리는 삶의 모든 기준이 재미있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별 시덥지 않은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녀석은 자신이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사회적 속설과 가설 및 교훈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매우 탐구적이나 때로는 무모한 실험도 몸소 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정하는 딱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 날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습니다.
2.
“마루야! 드디어 진짜 비아그라를 구했다. 우헤헤헤....”
문장 중에 유난히 강조되어 있는 ‘진짜’라는 단어를 근거로 유추해 볼 때
녀석은 이미 몇 번의 시도로 가짜 약의 효능까지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녀석의 성격이라면 가짜는 왜 가짜인지 직접 먹어보고 느껴야겠다고 생각했으니
지가 비싼 돈 주고 사기 당했다는 생각보다 가짜라는 걸 직접 확인한 걸로 만족했을 겁니다.
“먹어봤냐? 괜찮든?”
나 같으면 불안하고 찜찜해서 안 먹을 덴데
녀석은 특유의 모험정신과 흥미본위의 삶의 목적에 충실하듯 당연한 듯 대답을 했습니다.
“우와. 효과 좋긴 좋은 것 같아. 근데....”
녀석의 말인 즉, 어찌어찌 하여 알고 지내는 여자를 만날 때 주로 사용했는데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약 기운에 의해서 커진 건지
아니면 여자 때문에 커진 건지 약간 헷갈린다는 말을 했습니다.
“몇 개 있는데?”
녀석은 작은 걸로 모두 5알을 구했는데 모두 반을 잘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10개를 가지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야! 두개만 가져와라!”
나는 당당하게 5분의 2를 내 몫이라 생각했습니다.
3알 달라고 하면 주인보다 많이 가지는 것이 되니 2알이라면 적당한 배분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정작 빛나리가 내게 전해준 것은 한개, 그것도 반쪽짜리였습니다.
“야. 이게 뭐야????”
그러자 녀석은 매우 한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야 임마. 넌 잘 서잖아! 그리고 너 심장도 안 좋지? 그리고 약에 의존하면 인생이 피곤해져.”
도대체 핑계를 댈 껄 대야지, 지가 언제 내 심장을 봤다고
심장이 안 좋다는 얘길 변명거리로 하는지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녀석이 다 내 건강을 생각하고 정신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일 거라 생각하고
얼른 맘 변하기 전에 반쪽짜리 비아그라를 얼른 낚아챘습니다.
“얌마. 다음에 몇 개 더 가져와 오케?”
빛나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평소에 잘 하는 욕도 안한 채 기분 좋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3.
며칠 뒤 일요일이었습니다.
집안에 혼자 있게 되어 빈둥거리며 TV를 보다 문득 빛나리가 주고 간 비아그라 반쪽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빛나리가 전해준 미덥지 않은 임상실험 결과 또한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날 입었던 옷의 주머니 구석에서 반쪽 짜리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물과 한께 얼른 삼켰습니다.
이 대목에서 많은 분들이 의문점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파트너도 없는데 왜 비아그라를 혼자 먹었느냐는 의문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빛나리와 나의 차이점입니다.
임상실험이라 함은 실험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주변 상황을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약효만을 점검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임상실험이라는 사실을 나는 사악하게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벌어진 임상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하면 이렇습니다.
복용후 20분 경과 : 약간의 미열증세가 생김.
복용후 30분 경과 : 머리가 약간 멍해지고 아파 옴.
복용후 50분 경과 : 가운데 그곳의 신경이 둔해짐. 감촉이 별로 없음.
복용후 60분 경과 : 커질 수 있는 데까지 커짐. 꼬집어도 안 작아짐.
발기후 60분 경과 : 아직도 발기 후 크기 유지.
발기후 90분 경과 : 평소보다 약간 커져 있으나 말랑말랑함.
물론 발기 후 60분과 90분 사이에 약간 팔이 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그런대로 약효는 좋았습니다.
머리가 약간 아프고 미열 증세가 있는 게 불쾌했지만 괜찮은 여자와 함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4.
약효를 확인한 나는 바로 빛나리에게 전화를 때렸습니다.
“나 마루다. 빛나리냐? 어디냐?”
전화기 너머로 빛나리의 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응, 식구들 데리고 놀러갔다 오는 길이야. 지금 운전중이구.”
빛나리는 나름대로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휴일에 식구들과 놀러갔다 오는 길이었습니다.
다짜고짜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니가 준 비아그라 임상실험 끝냈다. 효과 죽이더라. 더 없냐?
그거 먹고 하니까 여자들 죽지. 그치? 우와. 얼른 몇 개 더 갔다주라. 너 많잖아. 음하하하...”
준다 안준다의 명확한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빛나리는 나의 질문과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거 지금 핸즈프리야......”
나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어떤 일이 이후 발생할지 생각하기 싫어서 곧바로 달려나가
집 앞에 있는 기원에 갔습니다. 신선처럼 바둑을 두며 나쁜 일은 빨리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5.
이후에 빛나리를 만났습니다.
다행히도 내가 우려했던 일들은 순발력 좋은 빛나리가 잘 수습했답니다.
다행이긴 했지만 비아그라 반쪽만 더 달라는 말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빛나리를 통해 알게 된 비아그라는 효능은 좋을지 몰라도
좋은 효능만큼 정신건강이 황폐해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사정하고 나서도 커져 있으니 두 번 할 것 같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기분만 더럽답니다.
혹시 여자가 아직 서있다는 걸 알게 될까봐 짜증난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비아그라를 먹다가 안 먹으면 잘 서지 않는답니다.
의존도가 점점 커지는 것이겠지요.
약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효능의 양면성을 확연히 보여주는 사례일 것 같습니다.
이후로 나는 아직 비아그라를 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거시기가 큼직하게 잘 서는 것도 좋고 남보다 오랜 시간 힘 있게 떡을 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만족하는 떡입니다.
물론 정신적인 부분이 빠지면 안되겠지요. 기대치만 조금 낮춘다면 떡은 생활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괜찮은 여자 찾고 있습니다.
비아그라를 찾는 일보다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여자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는 일산마루의 한마디 -
떡 좋다고 남용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
- 일산마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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