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브스쿨을 통해 다시 만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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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있었던 그렇고 그런 장면만 쓰면 간단한데 그러면 두남녀의 무분별한 성적 욕정으로만 비쳐 질 것 같아 미주알 고주알 쓰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 군요.
한 3번 정도로 나누어서 쓰겠습니다.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17년이 지난 아이러브 스쿨 모임에서 였다. 아이러브 스쿨이 공전의 히트를 칠 때인 2000년에 중학교 동창 한명이 게시판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아이러브 스쿨에서 TOP10에 들 만큼 우리의 게시판은 활성화 되고 있고 한 달에 한번씩 정기 모임과 번개를 하고 있다. 아마 남녀 공학이었던 것이 주된 이유인 것 같다,
첫 정기 모임을 하던 날 처음에는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얘기를 할 뿐 남녀 모두 존대를 하며 부끄러워 서로 말을 못했다. 그러나 술이 몇 잔 돌아가자 상황은 바뀌어 서로 말을 놓으며 동성간의 대화는 사라지고 이성 간의 대화로 파트너가 금새 바뀌고 말았다.
그날 미혼인 바퀴벌레 한 쌍은 눈이 맞아 그날로 호텔로 직행하고 결혼까지 하고 얼마 전에 돌잔치까지 한 케이스가 있을 정도로 모임은 새벽까지 이어진 광란의 도가니였다.
여러 명의 여자 동창 중에서 눈에 띄는 그녀는 중학교 때 처럼 역시 이뻤다. 그녀는 바로 내 옆에 있었기에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미국의 같은 도시에서 공부를 한 것을 서로 알게 된 후 더욱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돈 많은 3대 독자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공부를 도중에 그만 두고 결혼을 했다고 한다. 3대 독자인 남편의 집안에서 아들만 둘을 낳아 시부모와 남편 한테 거의 공주 대접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며 웃었다.
중학교 때 그녀(이하 은선)는 남학생들의 우상이었다. 예쁜 얼굴에 늘씬한 키 그리고 공부까지 잘하는 그녀를 생각하며 딸딸이를 쳐보지 않은 남학생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 한 친구 놈은 그녀를 생각하며 하루에 세 번 딸딸이를 쳐서 고추가 헐었다는 고백으로 우리들을 웃긴 적도 있다.
우리는 남자 반 4학급 여자 반 4학급 이었고 복식 건물이어서 남녀 반이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었는데 여자 반 체육시간이 되면 많은 놈들이 은선의 속옷을 보기 위해 개 떼 처럼 모여 들곤 했다. 요즘은 안 그렇지만 그 당시 우리는 수즙음에 남녀간에 대화 한번 없이 3년 간을 보낸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첫 정기 모임도 처음에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바로 옆에 앉은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나 기억 나니?”
“물론 기억 나지 너 모르는 남학생은 아마 없었을 걸”
“그런데 은선이 너는 나 기억 나니?”
“얼굴이 많이 바뀌어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전교 등수를 붙여 놓는 게시판에 너의 이름이 항상 내 앞에 있어서 너의 이름은 생생하다.”
나는 씩 하고 웃었다. 우리 학교는 시험이 끝나고 전교 50등 까지 게시판에 붙여 놓곤했다. 속으로는 “그게 나에 대한 기억의 전부냐?”라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했다.
“그런데 너 그 때는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키 크다.”
“응 남자들은 고등학교 올라가서 많이 크잖아.”
“너 결혼은 했니?”
“응 결혼 한지 두 달 됐다”
“회사는 어디야?”
“응 ㅇㅇ증권. 여의도에 있어”
“그래? 나도 여의도 사는데 가끔 전화 하면 맛있는 거 사줘야돼…”
농담식으로 그녀는 말했다.
3년 전 첫 모임에 이런 정도의 얘기를 한 것 같다. 술자리 후에 우리는 우르르 노래방을 갔고 새벽까지 미친 듯이 놀다가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미혼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정말 아줌마들 오늘은 가정을 포기하고 놀려고 나온 듯 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한번 씩 정기 모임은 계속 되고 은선과 나는 이메일을 서로 보내며 일상사를 가볍게 애기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이메일로 물어 보길래 나는 Chris de Burgh란 사실을 알려 주었다.
몇번 째 모임 이었는 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동창이 하는 라이브 카페에서의 모임이었다. 그녀는 아직 모임에 오지 않았는데 나에게 문자가 왔다. 그녀다.
“나 지금 가게 앞인데 내가 들어 가면 너 밖으로 나와서 큰 화분 속을 한번 봐라”
그녀가 입구로 들어오자 모두가 환호성이다.
“야 너 않나왔으면 나 그냥 집으로 갈려고 했다”는 남자 동창들의 아우성에 여자들(특히 미혼인 여자들)은 “야 너희들 재 한테만 관심 보이면 나 간다”라고 애교 섞인 불평을 한다.”
나는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밖의 화분으로 가서 속을 열어 보았는데 예쁜 포장지에 싼 것이 선물 같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화장실로 가서 뜯어 보았다. “나도 Chris de Burgh 너무 좋아. 17년 만에 좋은 친구 생긴 기념이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곡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가 있는 앨범이다.
나는 CD를 양복 속 주머니에 넣고 가게 안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른 아이들이 눈치 챌 거 같은 생각에 일부러 그녀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맥주가 몇번 돌고 그녀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듯하다가 내 옆에 앉았다.
“고마워”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에 나는 고마움과 기쁨을 표시했다.
한 3번 정도로 나누어서 쓰겠습니다.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17년이 지난 아이러브 스쿨 모임에서 였다. 아이러브 스쿨이 공전의 히트를 칠 때인 2000년에 중학교 동창 한명이 게시판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아이러브 스쿨에서 TOP10에 들 만큼 우리의 게시판은 활성화 되고 있고 한 달에 한번씩 정기 모임과 번개를 하고 있다. 아마 남녀 공학이었던 것이 주된 이유인 것 같다,
첫 정기 모임을 하던 날 처음에는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얘기를 할 뿐 남녀 모두 존대를 하며 부끄러워 서로 말을 못했다. 그러나 술이 몇 잔 돌아가자 상황은 바뀌어 서로 말을 놓으며 동성간의 대화는 사라지고 이성 간의 대화로 파트너가 금새 바뀌고 말았다.
그날 미혼인 바퀴벌레 한 쌍은 눈이 맞아 그날로 호텔로 직행하고 결혼까지 하고 얼마 전에 돌잔치까지 한 케이스가 있을 정도로 모임은 새벽까지 이어진 광란의 도가니였다.
여러 명의 여자 동창 중에서 눈에 띄는 그녀는 중학교 때 처럼 역시 이뻤다. 그녀는 바로 내 옆에 있었기에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미국의 같은 도시에서 공부를 한 것을 서로 알게 된 후 더욱 많은 얘기를 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돈 많은 3대 독자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공부를 도중에 그만 두고 결혼을 했다고 한다. 3대 독자인 남편의 집안에서 아들만 둘을 낳아 시부모와 남편 한테 거의 공주 대접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며 웃었다.
중학교 때 그녀(이하 은선)는 남학생들의 우상이었다. 예쁜 얼굴에 늘씬한 키 그리고 공부까지 잘하는 그녀를 생각하며 딸딸이를 쳐보지 않은 남학생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 한 친구 놈은 그녀를 생각하며 하루에 세 번 딸딸이를 쳐서 고추가 헐었다는 고백으로 우리들을 웃긴 적도 있다.
우리는 남자 반 4학급 여자 반 4학급 이었고 복식 건물이어서 남녀 반이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었는데 여자 반 체육시간이 되면 많은 놈들이 은선의 속옷을 보기 위해 개 떼 처럼 모여 들곤 했다. 요즘은 안 그렇지만 그 당시 우리는 수즙음에 남녀간에 대화 한번 없이 3년 간을 보낸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첫 정기 모임도 처음에는 어색함 그 자체였다. 바로 옆에 앉은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나 기억 나니?”
“물론 기억 나지 너 모르는 남학생은 아마 없었을 걸”
“그런데 은선이 너는 나 기억 나니?”
“얼굴이 많이 바뀌어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전교 등수를 붙여 놓는 게시판에 너의 이름이 항상 내 앞에 있어서 너의 이름은 생생하다.”
나는 씩 하고 웃었다. 우리 학교는 시험이 끝나고 전교 50등 까지 게시판에 붙여 놓곤했다. 속으로는 “그게 나에 대한 기억의 전부냐?”라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했다.
“그런데 너 그 때는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키 크다.”
“응 남자들은 고등학교 올라가서 많이 크잖아.”
“너 결혼은 했니?”
“응 결혼 한지 두 달 됐다”
“회사는 어디야?”
“응 ㅇㅇ증권. 여의도에 있어”
“그래? 나도 여의도 사는데 가끔 전화 하면 맛있는 거 사줘야돼…”
농담식으로 그녀는 말했다.
3년 전 첫 모임에 이런 정도의 얘기를 한 것 같다. 술자리 후에 우리는 우르르 노래방을 갔고 새벽까지 미친 듯이 놀다가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미혼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정말 아줌마들 오늘은 가정을 포기하고 놀려고 나온 듯 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한번 씩 정기 모임은 계속 되고 은선과 나는 이메일을 서로 보내며 일상사를 가볍게 애기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이메일로 물어 보길래 나는 Chris de Burgh란 사실을 알려 주었다.
몇번 째 모임 이었는 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동창이 하는 라이브 카페에서의 모임이었다. 그녀는 아직 모임에 오지 않았는데 나에게 문자가 왔다. 그녀다.
“나 지금 가게 앞인데 내가 들어 가면 너 밖으로 나와서 큰 화분 속을 한번 봐라”
그녀가 입구로 들어오자 모두가 환호성이다.
“야 너 않나왔으면 나 그냥 집으로 갈려고 했다”는 남자 동창들의 아우성에 여자들(특히 미혼인 여자들)은 “야 너희들 재 한테만 관심 보이면 나 간다”라고 애교 섞인 불평을 한다.”
나는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밖의 화분으로 가서 속을 열어 보았는데 예쁜 포장지에 싼 것이 선물 같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화장실로 가서 뜯어 보았다. “나도 Chris de Burgh 너무 좋아. 17년 만에 좋은 친구 생긴 기념이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곡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가 있는 앨범이다.
나는 CD를 양복 속 주머니에 넣고 가게 안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른 아이들이 눈치 챌 거 같은 생각에 일부러 그녀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맥주가 몇번 돌고 그녀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듯하다가 내 옆에 앉았다.
“고마워”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에 나는 고마움과 기쁨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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