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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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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13 회 작성일 24-03-04 15: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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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창살 없는 감옥.



잔을 부딪친 문현구는 단숨에 술잔을 쭉 비운다. 그리고는 안주도 먹지 않고 입을 열었다.


“뭐, 인제 와서 내가 잊으라고 한다고 네가 순애 씨를 잊을 수 있겠냐만, 그래서 말인데.”


“.................??!”


“그렇게 헤어진 것이 두 사람 운명이라면, 아마 다시 만날 운명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 아까 일영이 네가 한 말처럼, 오늘처럼 우연히.”


현구가 나를 위로할 셈으로 수도 없이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 마셨다.


낮술로는 너무 많이 마신다고 생각하면서도 소주를 무려 네 병이나 비웠다. 그런데도 취기가 오르지 않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으로 문득문득 순애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끌어낸 탓도 있을 테지만, 해안가로 밀려와 거품으로 부서지는 파도처럼, 내 가슴을 헤집는 그리움의 조각조각은 술잔을 털어 넣는다고 맞춰질 퍼즐 조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횟집에서 나온 우리는 잠시 해변을 걸었다.


꽃을 시샘하는 바람치고는 다소 강하게 불어오는 해풍에 바다도 심하게 출렁거린다.

파도가 칠 때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거품이 모래 위로 깊숙이 밀려들어 나를 놀라게 했다.

현구가 피우던 담배를 바다로 튕겨 보내자 하얀 거품이 감쪽같이 삼켜버린다.

내 팔에 매달려 깡충거리던 순애가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 * * *


간결한 인테리어에 책상과 의자, 소파 등이 적당히 놓여있는 사무실.


바깥 출입문 위쪽에 "용두무역" 이란 작은 팻말이 걸려있다.


나는 윗도리를 챙겨 들고 막 사무실을 나오려다 말고 카드 판에 합석했다.


정말 오랜만에 긴장과 함께 힘이 스쳐 지나감을 느낀다.

판때기를 앞두고 느끼는 긴장과 쾌감은 여자를 안았을 때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섹스의 오르가즘이 파도라면, 판을 앞두었을 때 느끼는 쾌감은 안개 같은 것이다.


대교 나이트클럽 오상무, 자갈치에서 건어물 가게를 열고 있는 최 사장, 도리깨 형과 나, 그리고 영성의 김 부장.


카드 판의 그 심오한 철학 세계가 바야흐로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다.


“흐미. 이기 왜 이런다? 아주 개패가.”


“이게 뭐냐?”


“레이스, ...받고, 10 더 !”


“뭐하냐? 받을 거야 말 거야?”


“어? 어. 받아야죠. 레이스.”


앞서 레이스를 날린 최 사장의 패는 페인트(페이크)가 분명했다.


네 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카드를 돌리는 판에 뒤늦게 장난으로 끼어들었다.

근데, 배팅이 큰 판에서는 6구, 히든이 쪽쪽 빨려 올라온다.


오 상무는 내 끗발을 눈치채고는 슬그머니 패를 꺾었다.

숨도 안 쉬고 최 사장은 다시 한번 레이스를 날려왔다.


“오빠. 뭐해?”


잠깐 정신을 엉뚱한 곳으로 출장 보냈나 보다.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미스 윤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요즘, 오빠 너무 이상하다, 사무실에 나와서도 정신 놓은 사람처럼 멍하기가 일쑤고.”


“...콜!”


콜만 했다.


다시 한번 되바꾸(두번 레이스)는 날릴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장난삼아 참석했던 판이었고, 최 사장 앞에 놓인 돈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킹, 포카드...드세요”

“엥? 뭐라구...?”


도리깨 형이 뭔가 낌새를 차렸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내 앞에 깔린 바닥 패는 딸랑 투 원 페어뿐이었고, 최 사장의 바닥에는 킹과 에이스가 각각 한 장씩 놓여있었다.

나는 손안에서 에이스 석 장을 천천히 꺼내놓았다.


“에이스 풀 하우스.”


“최 사장은 킹, 투 페어잖아”


화투나 카드는 섹스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다.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패를 들고, 판돈을 밀어 넣을 때는 마치 여자 몸에 힘차게 깃발을 꽂는 것만큼이나 황홀하다.

그러나 도박은 절대 깊이 빠져들면 안 된다.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나두.”


딴 돈의 1/3 정도를 뽀찌(개평)로 나눠주자, 옆에 착 달라붙어 몽실몽실한 가슴을 내 어깨에 은근슬쩍 비벼대고 있던 윤 모라도 덩달아 손을 내민다.


“자, 이 돈으로 고향다방에 커피 배달시키고, .형들 저녁도 주문해서 챙겨드려.”


“왜? 벌써 가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모라는 콧소리를 내면서 슬쩍 윙크를 보내왔다.


* * * *


요즘 이상하게 자미정의 순애 꿈을 많이 꾼다.

벌써 사나이 욕구를 참아온 게 일주일이 넘었다. 오늘은 봉 대신 닭이라도 잡아야 할까 보다.


`계집애가 순둥이 같으면서도 영, 씨알이 안 먹혀.`


순애 때문에 내 가슴속은 벌써 몇 달째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걸핏하면 이모 핑계를 대고, 진한 스킨십이 뭐냐. 겨우겨우 입술만 살짝 스치듯이 훔친 것뿐이니 아주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 * * *


급하게 여기저기 전화를 넣은 모라는 어느새 가방을 챙겨 들고는 나보다 한걸음 먼저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다.


가끔이지만 단골이 될 정도로 드나드는 갈매기 여관은 용두무역 사무실에서 두 마장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다.

걸어서 10 여분이면 당도하는 길이지만 그곳의 뒷골목은 화교인 들의 음식점, 그리고 내국인들은 출입할 수 없는 외국인 전용 술집들이 쭉 늘어서 있어 불량스럽다.


여느 유흥가 보다도 더욱더 청소년들의 출입이 금지된 골목,


겨우 샅만 가리는 팬티, 그것이 거의 다 드러나 보일 만큼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자신들이 일하는 가게 앞까지 나와, 때마침 지나가는 피부가 검은 선원에게 추파를 던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바의 호스티스들은 모두 한국 여자들이다.


미군 캠프의 군인들, 입항한 외항선에서 막 내린 선원들.

그들 중 열에 일곱 정도는 흑인들.


야트막한 언덕이 시작되는 골목의 끝은 곧장 일반주택가.

첨탑의 끄트머리 위에서 밤이면 빨간 십자가 불빛을 비추는 교회 건물.


교회 건물의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윤락녀들이 몸을 파는 장미 집이 자리 잡고 있다.


여관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내 목에 매달리는 윤 모라는 한때 자갈마당 장미 집에 있던 매춘녀였다.

스모선수를 연상케 하는 거구의 외국인에게도 돈만 내면 몸을 내줘야 하는 가련한 이 땅의 여자들,


개자식들.


나와 관련이 있는 누나 한 명도 게네들 외항선 선원과 관계를 맺은 적이 있어, 애초에는 흑인과의 붕가 장면을 묘사할까 했지만, 기분이 엿 같아서 생략했다.(회원님들은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요즘도 돈 때문에 일부 여성들이 유흥가로 흘러 들어가는 경향이 있지만, 이 무렵에는 도시를 동경해서 무작정 집을 나오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 저변에는 가난이라는 멍에가 굴레처럼 씌워져 있었겠지만 말이다.


모라는,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학업을 마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막상 집은 뛰쳐나왔으나, 채 일자리를 구하기도 전에 재수 없이 역전에서 찍새에게 걸렸고,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고 찍새가 꼬셔서 윤모라를 데려간 곳이 다름 아닌 장미 집이었다.


그녀들은 요정의 나이 어린 동기를 돈 많은 놈들에게 머리를 올리게 하는 경우와는 좀 다르다.

모라처럼 순진한 처녀들은 상당한 액수의 웃돈에 첫 몸이 팔린다.


이른바 아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쉐이들, 돈이라면 똥구멍에서 삐질삐질 삐져나올 만큼 많이 가진 작자들, 그리고 회춘해 보겠다고 아등바등 헐떡거리는 노친네들.


돼지 잡아먹는데 누가 얼굴 보고 잡아먹나.


2년 전 일이니, 그때 모라 나이가 순애와 같은 또래의 20살, 성인은 성인이었다.


* * * *


막 여름 자락의 무더위가 시작되려는 초하의 어느 날이었다.

카드는 아니지만, 오늘처럼 화투판이 벌어져 시간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사무실에 딱 한 대뿐인 전화벨이 띠리리링 울린다.


“네, 용두무역입니다”


"누고? 나, 이 여사인데, 공 사장님 자리에 있나?"


기분 더럽네, 대뜸 첫마디가 반말이다.

걸걸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장미 집의 왕 포주 이 여사였다.


“철주 형님은 **국장님 부친, 회갑연에 참석차 가셨는데.”


"너, 누구고? 손 부장은...?"


“이런, 니미. 싸라기 밥만 처먹고 살았나. 전화 거는 매너가 아주 똥이네. 내가 누구면? 씨발, 손 부장 지금 자리에 없어”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욕을 한바탕해주고 수화기를 탁! 내려놓으려는데 공 철주 형님이 때마침 들어오셨다.



“왜? 무슨 일이야? 누구 전환데 열 받고 그래.”


“장미 집 이 여사 같은데요”


수화기를 넘겨주자마자 대뜸 형님 입에서 거친 말투가 튀어나온다.


“아니, 그딴 일로 나를 찾아? 필요 없어. 뭐? 누구냐고? 누구긴. 내 참모야. 응? 그래서 바꿔 달라고? 응. 알았어. 귀찮아.”


“...............?!”


국장 부친 회갑연에서 뭔가 밸이 뒤틀린 일이 있었나 보다.

하긴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 변변하게 집안 살림 책임질 여자 하나도 없으니 오죽하겠냐마는.


“그 여편네. 일영이 좀 보자고 한다. 퇴근하면서 장미 집에 가봐.”


“네? 제가요?”


“그래. 계집애 하나가 사고 쳤나 봐.”


그 바닥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었다.


신삥 계집애 하나를 얼려고 달래서 어느 누룩 돼지에게 웃돈 듬뿍 받고 하룻밤 잠자리를 시중들게 했는데, 그 계집애가 새벽녘에 사고를 치고 튀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제가 뭐 사고처리반입니까? 토낀 년을 어디 가서 잡아 와요?”


“내 말끝까지 들어봐. 그건 사흘 전 일이고, 조재걸이 잡아 와서 족쳐놨는데 더 손타기 전에 보신하라고 날 찾았다는 거야”


“그럼 당연히 형님이 가셔야.”


“자식이. 너, 오늘 토가 심하다.”


“아, 아닙니다”


“자미정 월선이만 아니었으면, 너 임마! 한 대 맞았어.”


“조심하겠습니다.”


화투패를 쪼이고 있던 도리깨 형이 도끼눈을 뜬다. 내심 움찔했다. 솔직히 겁대가리 상실했던 행동이었다.


“가봐. 젖비린내 나는 애숭이 계집애들은 너 같은 젊은 놈이 제격이야. 그리고 참, 주말에 자미정 예약 잊지 말고”


“예, 형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는 넙죽넙죽, 철주 형님과 도리깨 형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비라도 한줄기 쏟아지려는지 어스름한 거리 풍경이 무척이나 후덥지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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