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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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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091 회 작성일 24-02-25 22: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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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경험담이나 야설을 통해 밝혔듯이 나는 시골출신이다. 아주 시골은 아니고 그래도 시(市)에 속하지만, 그래도 작은 동네이니 우리끼리는 항상 "시골간다"라는 말로 통용되는 그런 곳이다. 이런 작은 도시에는 누구에게나 엄청나게 친한 친구가 있고, 그 친구들 그룹중에서도 주변 친구나 동네 어른들로부터까지 인정받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나와 내 친구가 그랬다. 우리는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만났다.

세명 다 비슷한 생활수준의,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작은 도시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부모들과 그 당시에 괜찮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닐 정도, 그리고 남자들에게 필수인 야구글러브와 권투글러브 정도는 충분히 구비할 수 있는 집안이었다. 그리고 공부도 반에서 나란히 1,2,3등을 번갈아가며 할 정도고 키나 체격, 얼굴도 미남형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작은 도시에선 그래도 전도유망한 잘 나갈 가능성이 충분한 어린디르 세명이었다. 당시에는 삼총사(요건 칠공주 이전 세대다)가 유행했기에 우리는 삼국지의 도원결의와도 같은 결맹식을 산에서, 그것도 마치 고사상처럼 떡이랑 몇가지를 차려놓고 치루었다.

 

꼴에 영화나 동화책을 읽은 깜냥은 있어서 서로 문구도 멋들어지게 만들어 결맹을 했다.

 

"우리 셋은 한날한시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한날한시에 죽는다는 각오로 서로 의리를 지키며, 콩 한쪽도 반드시 서로 나누어 먹을것이며, 기쁨은 같이 기뻐하고, 슬픔은 나누며 형제보다 더 뜨겁게 지낸다."

 

우리는 정말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처럼, 그리고 서양동화의 삼총사처럼 친하게 지냈고, 주위에선 우리를 삼총사라고 불렀다. 요즘말로 해서 그 동네에선 잘나간다는 세명의 어린이가, 약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세명의 어린이가 그렇게 몰려 다니고 공부도 잘해 1,2,3등을 휩쓸고 반장, 부반장, 회장을 돌아가며 하는 녀석들이 몰려다니니 어른들도 귀여워 해주고 인정해주는 그런 좋은 친구들이었다. 아참, 이녀석들 이름을 소개안 시켜주었다. 한 녀석은 인우,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이다. 아주 곱상하게 생겨서 당시에도 여자 아이들이 친구하자고 할 정도. 또 한녀석은 동근이. 아버지가 조그만 건설회사 사장이라 그래도 셋중엔 가장 부자였고, 평생을 노가다에 종사한 아버지의 체격을 닮아서인지 셋중에 가장 강골로 생겼고, 체격도 제일 좋았다. 셋 중에 가장 남자답게 생겼다.

 

그뒤로 우리는 운이 좋았던지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정을 싹틔웠다. 그리고 결의에서 맹세했듯이 콩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정신으로 좋은 음식있으면 꼭 친구부터 챙겨주고, 친구의 잘못이 있으면 같이 뒤집어 써 주는 아주 멋진 의리도 지켜갔다. 그런데 중학교때부터 약간 이상한 조짐이 생겼다.

 

우리 아버지나 인우의 아버지는 국가에서 봉급을 받아 먹는 처지라 큰 부자는 아니어도 큰 걱정없이 살지만, 건축업을 하는 동근이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잘 나갈때는 엄청나게 잘 나가서 그 당시에는 드물게 작은 도시에서 자가용을 끌고 다닐 정도였지만, 우리가 중학교 2학년을 지날때쯤 사업이 조금씩 안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소문에 따라 동근이의 얼굴에도 약간은 그늘이 있고, 공부하는 시간보다는 다른 잡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랑 같이 어울려 놀때는 어릴때의 그 순진하던 동근이지만, 성적도 조금씩 덜어지고 공부에 몰두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하던 가락은 있어서인지 당시 우리 지역에선 제일 잘나가는 고등학교에 셋이 같이 입학할 수 있었다. 나와 인우는 상당히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공부를 조금 게을리했던 동근이는 간신히 턱걸이해서 들어갈 정도. 하지만, 턱걸이라 해도 다른 학교에 가면 상위 10%에 드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동근이는 공부를 멀리하고 소위 말하는 논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근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망했다는 소식도 같이 들려 왓다. 다행히도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았던 동근이 아버지의 경영덕분에 쫄딱 망하진 않고 그래도 먹고 살 집과 조그만 음식점 정도는 낼 수준이 되었다. (동근이네는 그 동네에선 꽤 유명한 "가락우동"집을 차려서 나중엔 아주 장사가 잘되었다.)

 

집안 사정이나 노는 바닥이 조금 달라지긴 했어도 우리 삼총사는 여전히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아무리 논다는 애들과 어울려도 동근이는 공부의 끈은 놓지 않았다. 거기에는 나와 인우의 힘이 컸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논다 하고 돌아다니게 되면 수업시간에도 한눈을 팔거나 땡땡이도 치고, 야간 자율학습은 90%이상 땡땡이를 치다보니 당연히 성적이 바닥에서 기고 다녀야 하지만, 동근이는 그래도 중간은 쫓아갔다.

 

그건 인우와 내가 주말이나 방학때는 동근이를 억지로라도 붙잡아 두고 그동안 정리한 보물노트(우리는 우리의 공부 노하우가 담겨진 잘 정리된 노트를 보물노트라고 불렀다. 친구들이 훔쳐가고 싶어하는 노트이다.)를 가지고 동근이에게 특별과외를 시켰기 때문이다. 그때는 과외가 금지되었던 시대라 다른 애들은 돈이 있어도 비밀과외를 해야했지만, 동근이는 공부잘하는 의리있는 친구덕에 그런 고급과외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동근이는 이것에 너무 고마와하고 있고, 우리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동근이는 학교에서 날라리, 깡패 소리를 듣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동근이였지만, 항상 성적은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어서 모두들 놀라워 했다. 당시 우리학교는 비평준화지역의 최고학교인지라 학생의 절반정도가 서울의 상위 5개학에 들어가고 나머지 학생들도 서울의 그 다음 대학이나 지방의 국립대학에 다 들어갈 정도로 명문고였다.

 

내가 총각딱지를 떼었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잇다. 그 총각딱지를 떼어준 사람이 바로 동근이였다. 동근이가 노는 그룹의 그나마 순진한 여자를 소개해주어 총각을 떼게 해주었고, 인우 역시 동근이의 적극적인 협조(?)하에 총각 딱지를 떼었다. 친구 잘 만나서 총각 딱지를 사창가가 아닌 여고생에게 뗀 것이다. 조금 노는 여자애라 그렇지.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삼총사의 전설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서로의 아랫도리의 비밀을 말게 된(총각딱지 현장의 비밀) 우리들은 당시의 고등학생이 그렇듯이 이야기가 허리 아랫쪽에서 머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어릴때 맺었던 삼총사 결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에 이르러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도 같이 공유하자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의를 하게 된 것이다. 하긴 그당시엔 한창 포르노비디오가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그 포르노 비디오가 그룹섹스로 공전의 히트를 칠때였으니 그걸 보고 자란(?) 우리로서는 당연히 여자도 그렇게 서로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 이루어젔다. 3학년 졸업하는 해에 우리 셋은 모두 대학에 합격했다. 인우와 나는 서울에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에 입학을 했고, 동근이도 지방의 국립대학교의 유망한 학과에 입학을 했다. 인우와 나의 합격은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노는 그룹이었던 동근이의 합격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래도 공부를 하던 가락이 있고, 공부를 하는 머리가 있던 동근이는 그렇게 노는 그룹에 어울려 다녔지만 공부의 끈을 놓치지 않은게 주효했고 동근이는 거기에 큰 도움을 준 우리를 평생 은인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동근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예전에 했던 사업기반을 바탕으로 다시 건설업에 뛰어들어 지역에선 제법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동근이 아버지는 비록 회사가 망했더라도 양심적으로 회사를 정리하여 기존에 명성이나 기반은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 동근이에게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서울로 대학교를 가고, 한 학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왓을때, 동근이가 셋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동근이는 우리에게 근사한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지역에서 괜찮은 레스토랑(당시엔 경양식집)에서 만났다. 그런데 동근이의 옆에는 우리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하지만, 좁은 지역이다보니 오다가다 얼굴은 봤고, 이름은 들어 본 예쁜 여자아이가 같이 나왔다.

 

그 여자애는 은영이라고 하는데, 남자애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던 아이였다. 얼굴도 예쁘고 학교도 우리 지역의 여자고등학교로는 최고 명문여고에 다니는 여자애였다. 이번엔 대학도 지방국립대의 가장 유망한 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은영이는 남자친구가 없고,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는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사실은 고 2때부터 동근이와 사귀었다고 한다. 동근이 녀석은 가장 친한 우리에게도 비밀로 했을 정도였다. 우리는 동근이 녀석에게 정말 이럴수 있냐고 웃으면서 욕을 해댔다. 동근이는 자기가 그렇게 좋지 않은 행실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시기여서 혹시라도 은영이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이젠 대학생도 되고 했으니 자기가 은영이의 남자친구라고 해도 좋을만한 상황이 되어서 이제 밝힌다고 했다. 역시 생각이 깊은 녀석이다.

 

우리는 당시에 고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돈까스나 비후까스를 시키고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우리 송별회에 왜 은영이가 같이 나왔는지 몰랐다.우리는 어렸을때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웠고, 은영이는 우리들의 그런 우정을 부러워 했다. 더구나 동근이가 집안 문제등으로 방황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중에도 동근이에게 미래를 꿈꿀수 있게 해준 우리들을 존경의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이젠 대학생이 되었기에 우리는 마음놓고 맥주를 시켜 놓고 마셨다. 물론 나이상으론 대학교 1학년이래도 미성년자라 마시면 안되지만, 그전에도 고등학생들이 몰래 술마실만한 여건은 되었고, 대학생이면 이젠 마음놓고 그런 음식점에서 마셔도 되었다.

 

조금 술이 기분좋게 취할 정도가 되었을때 동근이가 운을 띄었다.

"우리가 말야, 어렸을때도 삼총사결의를 할때 콩 한쪽도 나누어 먹고, 그리고 자지에 털 났을때는 다시 두번째 결의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도 나누어 먹기로 했잖아? 그래서 그 결의를 첫번째로 내가 지키려고 해. 괜찮지아?"

 

나와 인우는 깜짝 놀랐다. 그 전에도 우리는 동근이 덕분에 딱지도 떼고, 그리고 노는 여자애들이랑은 같은 방에서 떡을 친 사실은 있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안한 자기 여자친구를 우리와 공유한다고 한것에 대해 너무 놀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여자애들은 노는 여자애들이라 솔직히 말해 별 생각없이 같이 떡을 쳤지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은영이는 그런 부류의 여자애가 아니었다. 우리는 동근이에게 그건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동근이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은영이도 이런 동근이의 의지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인우와 나는 한번 더 사양을 했지만, 동근이와 은영이는 이미 결심한 듯 의자가 확고했다.

 

결국 우리는 동근이의 뜻데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역이 좁다보니 네 사람이 같은 모텔에 들어가거나 누구 다른 사람 집에 가서 한다는 것은 어렵기에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은 우리 지역에서 두 시간정도의 거리인 유명한 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해서 삼총사의 이상스러운 결의가 첫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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