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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우연(雨緣)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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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493 회 작성일 24-02-25 05: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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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드득~ 투둑~ 툭~’


 


여전히 빗방울이 굵기는 했지만, 그래도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입 속을 완전히 녹여버릴 듯이 태풍처럼 몰아치던 뜨거운 키스도, 어느새 잔잔한 바람으로 변해서 두 혀가 얽힌 채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 하아아~”


“ 아~”


 


촉촉한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두 사람의 입에서는 탄식과 한숨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어둠 속이라 비록 눈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끈적한 타액이 두 입술 사이에서 실처럼 길게 늘어지며 턱에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이제 보니 자신의 양손이 어느새 수아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나눠 받치고 있었다.


적절하게 표현할만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를 않는 이 환상적인 감촉, 살짝 거머쥐면 손가락이 그대로 살 속 깊이 파고들 것만 같은 너무나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둥그스름하게 곡선을 그린 살결에 달라붙은 손가락의 끝부분으로, 저 깊은 계곡 사이에 숨겨진 뜨거운 온천의 열기가 은은하게 전해진다.


숨이 막혀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꾸만 손이 그 안쪽으로 미끄러지려고 했다.


어릴 적 들었던 선녀의 옷을 훔치러 살금살금 기어가는 나무꾼처럼, 그곳으로 몰래 숨어들어가고만 싶어한다.


하지만 그때, 자신은 당당하게 방문을 하겠노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성기가 꿈틀하면서 앞쪽에다 대고 노크를 해버렸다.


 


“ 아~!”


 


바로 그 순간, 수아에게서 짧은 탄성이 다시 흘러나오며 몸을 움찔했다.


수아의 하복부가 크게 한번 오르내리자, 살기둥에 밀착된 도톰한 둔덕이 마찰하면서, 짜르르한 감각을 온몸으로 퍼뜨려 현기증이 일었다.


숨결이 거칠어지고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누군가가 귀에다 대고서 ‘해버려, 가져버려’ 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유혹을 한다.


 


“ 사랑해...수아야...쪽~”


“ 오..빠...사랑해요, 고마워요...”


 


부드럽게 속삭이고는 입술에다 가볍게 입맞춤을 하자, 들끓던 본능이 오히려 약간 차분해진다.


수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귓가에다 뜨거운 숨결을 토해냈다.


 


“ 우리, 이번 주말에 놀러 갈까?”


“ 네? 하지만...”


 


갑작스런 내 말에 수아가 많이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아까까지 그렇게나 강조했던 영업지침과는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 후후후~ 가게가 끝나고 나서, 저번에 말했던 친구 카페에 가보자는 얘기야.


  그 녀석은 새벽 2~3시까지는 영업을 하거든? 주말엔 조금 더 오래할 거야.”


“ 아~ 거기에요?”


“ 어때? 금요일이나 토요일 둘 중의 하루면, 내가 다음날 출근을 안 하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 저 때문에...괜히 미안하게...”


“ 수아야...”


“ 네...”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자 수아가 찔끔한다.


 


“ 러브스토리의 대사에 그런 것이 있지...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난 거기에다 한가지를 더하고 싶어...고맙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미안하다, 고맙다 대신에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그 안에는 모든 게 포함되니까...”


“ ...사랑해요....오빠...정말...너무나...흑...”


“ 후후후~ 수아가 울보인 걸까? 아니면, 내가 나쁜 남자인가? 널 자꾸 울리기만 하는데...”


“ 오빠~~~”


 


어쩌면 절규처럼도 들리는 간절한 음성과 함께 수아의 입술이 아주 격렬하게 부딪쳐왔다.


지금까지의 부드럽고 섬세하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르게, 어떤 기교도 없이 그저 거칠게만 빨아왔다.


혀뿌리가 얼얼하게 아파올 정도의 투박한 키스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감미로웠다.


거기에 담긴 뜨겁고도 순수한 사랑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그리고, 둘이 계속 같이 있다가, 다음 날 이리로 바로 오는 거야...어때?”


 


품에 안겨있던 부드럽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건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걸 뜻했다.


잠시간의 정적, 어둠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 ...좋아요...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우리....”


 


일순 팽팽했던 신경이 느슨해지면서 맥이 쭉 빠졌다.


이런 대답을 예상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무척이나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슴 한구석에서 달콤한 느낌이 사르르 피어나더니, 곧 심장을 터뜨릴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었다.


너무나 두근거리고 아찔한, 그래서 숨마저 쉬기 곤란한데도, 이대로 죽어도 행복할 것만 같은 기분, 이런 게 바로 사랑이었다.


 


“ 이젠 정말로 가야만 되겠지?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 오빠의 손은 지금 다르게 이야기를 하는데요? 호호호~”


“ 하..하...이 녀석이 워낙 솔직해서 말이야...자~ 일어서자...”


“ 네...사랑해요...오빠...쪽~”


 


이제는 스스로의 마음을 결정한 상태여서인지, 수아의 행동에서 더 이상은 위축된 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거머쥐자, 농담과 함께 입맞춤을 해오는 모습이 너무나 신선했다.


그런 수아의 색다른 모습이 던져주는 유혹에, 난 한여름 땡볕 아래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내려 버렸다.


 


 


 


‘ 후우~~’


 


길게 내뿜은 뽀얀 담배연기가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점점 더 옅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를 지겹게도 쏟아지던 비였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휘영청 밝은 달빛이 새하얗게 뿌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너무나 큰 선물을 준 고마운 비였다.


 


“ 후훗~”


 


건너편의 간판 불빛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가슴 속이 따스해진다.


수아, 내가 사랑하게 된 여자가 바로 저기에 있다.


새로운 호프집이 생겼다는 게 조금씩 소문이 난 건지, 아니면, 계속 내리던 장마비가 그친 덕분인지, 오늘은 드나드는 손님이 제법 심심찮게 보였다.


어제까지는 정말로 처참할 지경이었다.


 


‘ 그래도, 수아가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게 내 덕분이라면 지나친 자화자찬일까?’


 


수아가 잠깐 나와서 손을 흔들어주는 정도도 못했을 만큼 너무 바빴던 게 조금은 아쉽긴 했다.


하지만, 다른 날보다 더욱 크고 맑은 웃음을 지을 수아를 생각하자 저절로 흐뭇해진다.


 


“ 어?”


 


텔레파시라도 통했던 건지, 갑자기 출입문 밖으로 수아의 얼굴이 쏙 나타나서는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입가에 걸린 환한 미소는 물론, 사랑한다고 말하는 눈빛의 속삭임마저 생생하게 느껴졌다.


밀려드는 반가움에 마주 손을 흔들려는 순간,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다시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 이거...누가 봤으면 무지 쪽 팔리는 일인데...쩝~’


 


의자에서 엉덩이를 완전히 뗀 것도 그렇다고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에다, 고개는 창 밖으로 내민 채 머리라도 긁을 것처럼 얼굴 옆에다 손을 쳐든 모습이었다.


 


“ 앗~ 뜨뜨뜨~”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에 정신이 번쩍 들어,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르고서 손을 탈탈 털었다.


폭죽처럼 어둠 속으로 빨갛게 비산하는 불똥들, 빌어먹을 담배를 깜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하...하...푸하하하~”


 


물집이라도 잡히려는지 손가락이 화끈거리고 쓰라렸지만, 자신의 바보 같은 모습에 유쾌한 웃음이 나왔다.


다시 털썩 주저앉고는 눈물이 맺힐 만큼 크게 웃었다.


왠지 답답했던 가슴 속이 후련해졌다.


 


‘ 사랑이란 게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했던가?’


 


바보라도 좋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허둥대고, 혼자서 울고 웃는 미치광이처럼 보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난 지금 무척이나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 오빠~ 지금 뭐해요?”


“ 어? 수, 수아야~?”


“ 어머? 떠, 떨어져요~ 조심해요~”


“ 하하하~ 걱정 마~ 하늘이라도 붕붕 날아갈 판인데 떨어지긴 왜 떨어져?”


“ 아이~ 참, 오빠도?”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앉아있는데 창 아래에서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떡 일어나 창 밖으로 몸을 반이나 내밀자, 바로 아래에 서있던 수아가 기겁을 한다.


 


“ 손님은? 바쁘지 않아?”


“ 지금은 괜찮아요~ 좀 전에 다 갔어요~”


 


어쩐지 골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수아의 가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나 보다.


확실히 사람은 뭔가를 하고 있을 때 가장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몇 시간을 제대로 앉지도 못했을 텐데, 수아의 모습은 아름답게 빛나기만 했다.


 


“ 오빠, 저녁은요?”


“ 응, 먹고 들어왔어. 넌?”


“ 저도 먹었어요. 아주 많이~ 아직도 배가 빵빵해요~ 헤헤~ 


  아휴~ 오빠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죽는 줄만 알았어요~오~”


“ 하하하~ 나도 마찬가지야...”


 


웃음과 애교가 넘치는 수아의 사랑스러운 모습, 며칠 만에도 아주 많이 달라졌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마음이 여유로워져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져, 웃음이 헤퍼지고, 눈동자에선 반짝반짝 빛이 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행복한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킨다.


그래서, 사랑은 정말로 아름답고도 위대한 축복인 것이다.


그때, 골목 어귀에서 대여섯 명이 떠들며 두리번거리다, 간판을 쳐다보더니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 수아야~ 저 사람들 너네 가게로 가는 것 같은데?”


“ 어머? 오빠~ 저 갈게요~ 미안~”


“ 하하하~ 그래, 어서 가봐~~”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뛰어가는 수아의 발에서,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데도 여전히 황당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키티가 웃고 있었다.


가게 앞에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수아를 보며, ‘어쩌면 저 실내화가 가게의 상징이 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에 웃음이 새나왔다.


 


 


‘ 딱~ 딱~’


 


창문에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아일 거라는 생각에 침대에서 일어나 고개를 내밀었다.


 


“ 이제 끝난 거야?”


“ 네~ 오빠~”


“ 잠깐만 기다려, 곧 내려갈게.”


“ 아, 아니에요~ 나오지 마세요, 그냥 바로 가게요.”


“ 왜?”


 


전날까지는 계속 비가 내린데다가 손님도 거의 없었기에, 주방장이 퇴근한 11시 이후부터 같이 있다가 바로 앞 정류장까지 바래다줬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까 봤던 그 손님들이 들어갈 때 벌써 11시가 넘었었다.


지금은 거의 1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시간이 빠듯해서 신림역까지는 택시를 타야겠어요. 그러니까, 일부러 나오지 마세요...


그리고, 어차피 내일은...오래 볼 거잖아요? 알았죠? 안녕~ 오빠~ 잘 자요~”


“ 수, 수아야~”


 


잠깐 주춤하면서 부끄러워하는 듯이 말했다.


달빛에 비친 수아의 하얀 얼굴이 순간적으로 언뜻 붉어지는 것도 같았다.


빠르게 인사를 내뱉고서 도망을 치다시피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그래, 내일..이지...’


 


수아의 말이 맞긴 했다.


내일이 바로 둘이서 친구의 카페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 후에 같이 밤을 보내고, 가게를 열 때까지도 계속 같이 있기로 약속한, 바로 그날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당장에 아랫도리가 단단해져 버렸다.


최근 며칠 동안 조금 더 진전된 애무를 나누기까지는 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꾹 참고 참았던 그 간절한 순간이 드디어 다가온 것이다.


 


 


‘ 똑~ 똑~’


 


갑자기 노크소리가 들렸다.


저럴 수 있는 사람이야 딱 두 명뿐이다.


 


“ 응, 들어와~”


“ 앙~ 삼초온~ 나야~ 헤헤헤~”


“ 예지구나? 아직도 안 잤어?”


 


하기야, 이 늦은 시간에도 스스럼없이 찾아올 사람이라면 민지보다는 예지였다.


최근 민지는 대낮에도 예전처럼 그렇게 자주 내 방을 찾지는 않는다.


그런 점이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약간 서운해지는 건, 아무래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 웅~ 잤었어~ 그러다가 깨서 화장실을 가는데 불빛이 보여서~ 내일 쉬는 날이야?”


“ 으, 응...아니, 출근해야지. 이제는 자려고...”


“ 하암~ 그렇구나~ 아~ 좋다~”


“ 이 녀석~? 하~”


 


제 방으로 돌아갈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침대 위로 기어올라와서 내 허벅지를 베고 덜렁 누워버렸다.


그러자, 부드러운 면 티 속에서 커다란 젖가슴이 출렁하는 게 눈에 확 들어온다.


저번처럼 자느라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건강을 생각하면 좋은 습관인 것 같기는 하지만, 다 커서도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 철딱서니가 솔직히 걱정이다.


 


“ 너~ 아무리 삼촌이라지만 창피하지 않아?”


“ 응? 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그 모습에 기가 막혔지만,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걱정이다.


꽤나 시선을 끄는 외모에다 애교까지 많은 아이가 이렇게 순진하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상처를 받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예지야~”


“ 웅~ 삼촌~ 헤헤~”


 


허벅지 위에 놓인 예지의 묵직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내게는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겪었던 그런 아픈 상처 따위는 모르고 살 수 있게 해주고 싶다.


 


“ 나는 말이야...예지가 항상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늘 행복하면 좋겠어...”


“ 앙~ 삼촌~ 고마워~”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내 손을 당겨서는, 손바닥에다 뺨을 비비며 응석을 부리는 모습이 귀여운 강아지 같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예지의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살결이 너무나 기분 좋았다.


 


‘ 나중에 수아가 낳은 우리 애를 안으면 이런 느낌일까?’


 


갑자기 든 엉뚱한 상상에 머리를 흔들고서 정신을 차렸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더니 아무래도 내일에 대한 기대 때문인 것 같았다.


 


“ 남을 의심한다는 게 별로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조건 믿어서는 절대로 안돼...”


“ 아이~ 삼촌~ 걱정 마, 안 그래...치~ 내가 바본가~”


“ 하하하~ 그래, 맞아...우리 예지는 똑똑하지...미안해...”


 


그렇긴 했다.


워낙 착할 뿐이지, 머리가 굉장히 좋았다.


민지나 예지 둘 다 직접 가르쳐보았기에 잘 안다.


 


“ 내가 괜히 노인네 같은 소리를 했나 보다...그래도, 한가지만 더 이야기할게...”


“ 응~”


“ 난, 네가 정말로 널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해. 그건 물론 너도 마찬가지이고...


  사랑이라는 건 말이야, 자칫하면 굉장히 큰 상처를 남기거든...알았지?


  벌써 다 알아들었을 테니까 그만할게...자~ 이제 그만 가서 자야지?”


“ 으, 응, 알았어~ 삼촌~ 고마워~ 잘자~”


“ 하하~ 녀석? 그래, 너도 잘자...”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안아온다.


뭉클하게 눌러오는 젖가슴, 조금 전에 그렇게나 이야기를 했어도 이 버릇만큼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냥 웃으면서 등을 두드려주었다.


 


“ 참~ 삼촌~”


“ 응? 왜? 또 무슨 할말이 남았어?”


 


방을 막 나서려던 예지가 고개를 돌리면서 불렀다.


 


“ 10년, 딱 10년만 기다려..”


“ 10년? 뭘 기다려?”


“ 우웅~ 너무 일찍 아줌마가 되는 건 좀 억울하니까, 나도 삼촌처럼 30살이 될 때까지만 기다리란 말이야~”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네가 30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니?”


“ 응~ 아무리 생각해봐도, 날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삼촌이거든?


  이렇게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귀찮게 왜 고민을 해?


  내가 10년 후에는 삼촌한테 시집을 가줄게...그러니까...에~~”


“ 요 녀석이? 또 삼촌을 놀려? 그러면 난 40살 때까지 홀아비로 살고?”


“ 치~ 나처럼 어리고 예쁜 신부를 얻으려면 그 정도는~ 꺅~~ 잘자~ 내 신랑~~ 킥킥~”


“ 하~ 저 녀석 봐라? 이제 봤더니 아주 멀쩡하네? 하하하~”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결국엔 나를 놀리고 있었다.


짐짓 침대에서 내려가는 척을 하자 줄행랑을 놓으면서도 기어코 한마디를 덧붙인다.


안심이 되었다.


워낙 덤벙대고 응석만 부리기에 걱정을 했는데, 그 짧은 농담 속에서 많은 걸 알 수가 있었다.


즉석에서 저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순발력은, 그 바탕이 되는 사고의 폭이 필요한 법이다.


결혼을 서두르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욕과,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꽤나 냉정할 정도로 분석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갓 20살짜리가 저 정도라면 아주 훌륭한 편이다.


나머지 부족한 부분들은 경험이라는 게 채워줄 것이다.


 


“ 이제는 정말로 자야겠지?”


 


그랬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숙면을 취해야만 했다.


어쩌면, 내일은 잠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 여기에요?”


“ 응, 왜? 긴장돼? 그럴 이유가 뭐 있어? 그냥 손님으로 왔다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구경해...그 녀석한테 물어볼 건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만들면 되니까..”


“ 네~ 알았어요.”


 


수아의 손바닥에 촉촉하게 땀이 배인 게 느껴졌다.


첫무대에 서는 무희처럼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 이리와..”


“ 네? 왜? 어머? 오, 오빠~”


 


2층으로 올라가는 그 중간쯤의 계단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손을 끌어당겨 품에다 안으면서 벽으로 붙여 세우자 당황해 하며 눈이 동그래진다.


안경 대신에 렌즈를 한 눈동자가 더욱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 가만히 있어봐, 긴장을 풀어주는 특별처방을 해줄 테니까...”


“ 누, 누가 오면....”


“ 후후후~ 걱정 마..”


“ 그래도...”


 


한 손으로 허리를 당기면서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자 불안해하면서도 눈을 감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윤기가 흐르는 것만 같은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리면서도 입술을 뾰족이 내미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달콤하게만 보이는 빨간 입술을 누르자 촉촉하고 보드라운 느낌이 몸살을 나게 한다.


 


“ 어때? 이젠 마음이 편해졌어?”


“ 네....”


“ 후후후~ 자, 그러면 들어갈까?”


“ 네...오빠...”


 


눈 아래가 발갛게 달아오른 모습이 매혹적이었다.


손을 잡자 팔짱을 끼면서 찰싹 달라붙는다.


 


 


“ 오~ 장우~ 마이 베스트 프렌드여~~ 하하하하~”


“ 아~참~ 임마, 그것 좀 하지 말래도?”


“ 하하하하~ 잘 지냈어?”


“ 그래, 너도? 하하하~”


 


카페에 들어서서 Bar 안에 서있던 친구 녀석과 눈이 딱 마주쳤을 때 불안감부터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자마자, 실내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지르며, 성큼성큼 다가와 와락 포옹을 한다.


화들짝 놀라 내게서 떨어진 수아의 동그래진 눈과 다른 손님들의 키득거림으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건 이 녀석만의 환영인사법이었다.


번번히 이렇게 시선집중을 받는 쪽 팔림에 나중에는 애원까지 했건만, 한동안 좀 잠잠하다 싶더니 결국에 오늘 또다시 터져 나온 거였다.


물론, 다소 과장된 말투와 몸짓이었지만 이건 이 친구의 진심이었다.


그래서, 딱 잘라 정색을 하고 거절도 못하는 아주 묘한 통과의례이기도 했다.


 


“ 아~! 이런? 이거 죄송합니다, 제수씨. 제가 이놈을 간만에 봤더니...하하하하~”


“ 어머?”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던지다시피 툭 밀어내더니 수아에게로 다가가 대뜸 그렇게 부른다.


잘 익은 토마토처럼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수아의 얼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전 장우의 가장 친한 친구, 배 진철이라고 합니다...악수나 한번 하죠? 하하하~”


 


진철의 특기인 유들유들함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아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면서 애원하듯이 나를 쳐다본다.


 


“ 후후후~ 수아야, 손이나 한번 잡아줘라.


  자식이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핑계 삼아 미인의 손을 만져보고 싶은 모양이다~”


“ 오~ 수아 씨? 정말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 아, 안녕하세요?”


“ 하하하하~”


 


진철의 커다란 손아귀에 덥석 잡혀서는, 크게 흔들어대는 그 손짓에 몸마저 휘청거리는 수아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 어때? 보기에는...”


“ 참 좋네요...조용하면서도 편안하고...”


 


화려하지 않은 인테리어에 은은한 불빛 아래로 여기저기 테이블에 몇 팀, 그리고 Bar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이 가게의 특징이기도 했다.


혼자든 여러 명이든 대부분 Bar를 더 선호하는 건, 진철 특유의 융화력과 한쪽 벽을 꽉 메운 음반들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녀석이라서 어릴 때부터 한 장씩 사 모은 LP판만 해도 수천 장이었다.


 


“ 어~? 이건 뭐냐?”


 


그때, Bar 안에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음악을 틀고 종종 주문까지 받느라, 정신 없이 바빴던 진철이 다가와 술잔 3개를 내려놓았다.


 


“ 뭐긴 임마? 이렇게 제수씨를 만난 기념이지. 이건 내가 내는 거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수씨...하하하~ 자~ 건배~”


“ 네? 네, 저도 반가워요..”


“ 그래, 고맙다, 임마. 건배~”


 


아마, 어디에다 짱 박아두고서 아꼈던 술인 모양이다.


노르스름한 빛깔의 액체가 찰랑거리는 작은 잔을 들어 부딪치고서 단숨에 넘겼다.


양주 특유의 톡 쏘는 첫 맛이 느껴지더니, 곧이어 매끄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면서, 부드러운 향이 남아 코끝을 맴도는 걸 보니 꽤나 고급인 것 같았다.


 


“ 어때? 괜찮지? 제수씨는 어때요?”


“ 네...향이 참 좋네요...”


“ 후후~ 너 어째 무리한 것 같다? 양주는 별로인 내 입에 이 정도면...흐흐흐~


  너 임마, 아까워서 나중에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 통곡하는 거 아니야?”


“ 크~~ 이 자식이 아픈 데를 찌르고..조금 전에 내 손이 떨리는 걸 봤냐?..”


“ 호호호호~”


 


두 사람의 너스레에 수아가 깔깔대고 웃었다.


전혀 구김살이 없는 밝은 웃음, 이제야 분위기에 젖어 완전히 편안해진 그 모습에, 아래쪽에서 손을 꼭 쥐자 진철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도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그때, 그걸 빙긋이 웃으며 보고 있던 진철이 판을 골라 걸고는 윙크를 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면서 가슴 속을 파고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 자~ 제수씨하고 블루스 한 곡 춰야지? 네 전용노래인데?”


“ 임마, 비도 안 오는데 청승스럽게....”


“ 이 자식이? 너 땜에 하도 틀어서, 나도 이제는 이 노래에 완전히 중독이 됐는데?


  그리고, 비가 안 오긴 왜 안 와? 아주 주룩주룩 잘만 내리누만?”


“ 어? 비가 와?”


“ 그래, 그만 빼고 빨랑 나가서 춰라...자식이 내숭은?”


“ 하하하~ 그렇다면야~ 좋지. 자~ 수아야...”


“ 오, 오빠...”


 


크지 않은 카페 안에서 딱 두 사람 정도가 춤을 출만한 공간이 창가에 있다.


전혀 예상을 못했던 일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주춤주춤 따라왔던 수아가 조용히 품에 안겼다.


진철의 말처럼 이틀 동안 조용했던 빗줄기가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으로 화려한 간판들과 거리를 뛰어가는 사람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양팔에 쏙 들어오는 가느다란 허리가 너무나 부드럽게 느껴진다.


내 목을 껴안은 수아의 하늘하늘한 몸이 휘감겨오듯이 달라붙어서는 그 따스함을 전해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흐느끼는 듯한 약간 떨리는 음색이 애잔함을 준다.


 


“ ..이 노래...뭐에요?..”


“ 후후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지....’Uriah Heep’의 ‘Rain’이라는 곡이야...마음에 들어?”


“ ..네...왠지 눈물이 날 것처럼...그런 기분이 드는데도...너무 좋아요...정말...”


 


쏟아지는 비, 애절한 음악,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이 3가지가 바로 앞에 있다면, 그 순간은 그 누구도 시인이 되고 말 것이다.


 


“ 사랑해, 수아야...”


“ 사랑해요, 오빠...”


 


수아의 허리를 강하게 당기며 속삭이자, 수아 역시 더욱더 품으로 파고들면서 뜨겁게 말했다.


 


“ ..우리가 여기서 나가면....”


“ 네...”


 


천천히 옮기는 다리를 따라 가녀린 여체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수아는 전혀 주저함이 없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 난 널 가질 거야...그리고,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거야...사랑해...”


“ 그래요, 오빠...저도 오빠를 가질래요...사랑해요...”


 


두 사람이 떨리는 음성을 주고받고 있을 때, Bar에서 쳐다보고 있는 진철이 보였다.


걱정이 서린 눈빛, 수아는 지금 진철이 저런 표정일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이 음악, 이 장소, 그리고 비까지....하지만, 지금 내 품에 안긴 사람은 달랐다.


내가 가진 상처를 너무나 잘 알기에 진철은 우려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는 걸, 들어설 때부터 진철은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그랬기에, 내가 유일하게 마시는 아주 거친 양주를 놔두고, 일부러 처음 먹어보는 새 술을 가져왔을 것이다.


아주 부드럽고 향기로운 술, 아마 그와 같은 사랑을 기원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다른 건 그때와 똑같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만은 달랐다.


그렇다면, 모두 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와 이 음악, 그리고 이곳에 서린 과거의 아픈 기억은 이제 영영 이별을 고할 때다.


진철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짓궂은 미소를 짓고서 움직이는 게 보였다.


 


“ 어머?”


“ 사랑해, 수아야~”


“ 오, 오빠~ 흡~”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자 수아가 당황을 했다.


진철이 이쪽의 실내등을 꺼버린 것이었다.


조금 전의 짓궂은 미소가 아마 이걸 의미했던 모양이다.


수아를 내려다보면서 입술을 가져갔다.


깜짝 놀라 버둥거리던 수아가 곧 뜨겁게 호응을 해왔다.


언뜻 박수소리가 들리는 걸 느끼면서 수아의 혀를 더욱 세차게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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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내일 다시 5편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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