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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우연(雨緣)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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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30 회 작성일 24-02-25 05: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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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을 할 정류장까지만이라도 택시를 타자는 내 말에 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내게 있어서는 작은 마음의 표시 정도이겠지만, 수아한테는 자신의 생활이 걸린 큰 문제일 거다.


사람의 몸이란 건 너무나 간사해서 편했던 기억이 남으면 자꾸만 그걸 원하게 된다.


아마도 그녀는 스스로의 그런 태만을 경계하는 게 분명했다.


그 내심을 짐작했기에 더 이상 권하진 않았지만, 하다못해 환승하는 것 정도는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양을 하고 있었다.


 


“ 그만 들어가세요, 오빠.”


“ 버스든 지하철이든 신림역까지는 일단 가야 된다면서? 멀지는 않잖아? 그 정도는 내가....”


“ 좋아요.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버스를 탄 다음에 저 모퉁이를 돌 때까지만 지켜봐 주세요. 그러면 되겠죠?”


“ 그건...”


“ 오빠를 거기다가 혼자 남겨두는 게 정말로 싫어서 그래요...


  하지만, 여기서라면 제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쯤엔 오빠도 집에 들어갈 수가 있잖아요?”


“ ...그래....알았어...그렇게 하자...”


 


그 순간 수아가 이러는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다.


아픈 이별을 겪어본 사람은 혼자 남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잘 안다.


특히나, 원하지 않았던 이별, 즉, 버림받은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녀는 떠나가는 자신의 등을 내게 보여주기도, 남겨진 나를 뒤돌아보기도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런 뼈저린 경험이 있기에 더더욱 민감하게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 탁~ 탁~ 탁~’


 


“ 삼촌, 이렇게 일찍부터 어딜 갔다 와?”


“ 으, 응? 민지 너야말로 꼭두새벽부터 웬일이야? 천하의 잠꾸러기가?”


“ 삼촌~!!!”


 


현관에서 젖은 우산을 털고 있는데, 안방 문이 열리면서 주인집 큰 딸 민지가 나오더니 한마디를 툭 던졌다.


이제는 제법 머리가 굵었다고 여자로 봐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기에, 그걸 싹 무시했더니 최근에는 꽤나 삐딱하게 나오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요즘 애들답게 발육이 워낙 좋아서 종종 눈을 두기가 민망할 정도이긴 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여전히 단발머리 여중생으로만 남아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반바지 차림에 - 아니, 저건 핫팬츠라고 부르는 게 정확할 거다 - 팔짱을 낀 채로 비스듬히 서서는 턱을 약간 치켜들었던 도도함이, 장난스러운 내 말에 소리를 빽 지르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역시나 자꾸만 놀리고 싶게 만드는 내 기억 속의 어릴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 하~암~ 언니~ 뭐야? 깜짝 놀랬잖아?”


 


그때 민지의 뒤쪽으로 안방에서 등장하는 또 한 명, 졸음을 눈에다 덕지덕지 붙인 채 목젖이 보여라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해대는 이 집의 막내 예지였다.


 


“ 아~! 삼초~온~~ 앙~~”


“ 어이쿠~ 이 녀석? 내 허리가 부러지겠다.”


 


제 언니의 고함에 잠을 깼던지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내다 말고 달려오더니 덥석 안긴다.


두 살 위인 민지보다도 오히려 발육상태가 더 실한 녀석이 하는 짓은 완전히 애기였다.


이제는 대학생인데도 이렇게 덥석덥석 안겨와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를 바래곤 한다.


어릴 때부터 워낙 애교가 많은 예지였기에, 귀여움에 자신도 모르게 그랬더니, 아직도 그 버릇이 남아있었던 거다.


하기야, 지금 내 손이 거의 반사적으로 예지의 머리에 올라간 걸 보면, 나 역시도 그런 것 같았다.


 


“ 삼촌, 삼촌~ 비가 오잖아?”


“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천천히 말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좋아서 방실거리던 예지가 내 팔을 잡고 흔들며 속사포같이 쏘아댔다.


 


‘ 이 녀석, 밖에서도 이러고 다니는 건가?’


 


하는 짓이 손에다가 사탕만 하나 쥐어주면 딱 초등학생의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싫은 건 아니었다.


아니, 싫기는커녕 너무 귀여워서, 나중에 결혼을 하면 꼭 저런 딸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우웅~ 그...러...니....까....”


“ 요 녀석이 삼촌을 놀려?”


“ 히잉~ 아파~”


“ 자~ 장난은 그만치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천천히 말하랬다고 아예 늘어진 테이프처럼 길게 끄는 말투에 가볍게 알밤을 먹이고서 재촉했다.


사실 전혀 아프지도 않을 텐데 일부러 울상을 지어 보이는 예지에게서 그 귀여움이 더욱 커졌다.


어릴 때 종종 꼬집어보곤 하던 예지의 통통한 볼로 무심결에 손이 갈뻔한 걸 겨우 머리로 돌렸다.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한 그 감촉이 어찌나 좋았던지, 얼굴에 젖살이 조금 남아있는 예지를 볼 때면, 아직도 가끔씩 자신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린다.


그래도, 이제는 다 큰 여자아이의 몸에다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일이라, 대신에 지금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한다.


 


“ 으~응~ 이렇게 종일 비가 오는 날은~”


“ 그래, 이런 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대충은 짐작이 갔다.


하여간에 무척이나 귀엽고 발랄한 녀석이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수제비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을 안 해? 삼촌~”


“ 글~쎄~ 잘....모르겠는데?”


 


웃음이 터질뻔한 걸 겨우 참았다.


예상대로였다.


시치미를 뚝 떼자, 그 속내를 너무나 알기 쉬운 예지답게 금새 초조한 기색이 떠오른다.


 


“ 아앙~ 삼초~온~ 그거 있잖아? 삼촌이 잘 만드는 거~? 감자도 넣고 호박도 넣고 또,”


“ 오호라~ 그러니까 내가 반가워서가 아니라, 수제비가 먹고 싶어서 이렇게 반가운 ‘척’을 한 거다?”


“ 아, 아니야...절대로...”


 


물론 반갑기도 했고, 수제비도 먹고 싶긴 했을 것이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시간이 될 때는 종종 만들어주곤 했었다.


객지에서의 오랜 자취생활로 남은 건 손맛뿐이라는 농담을 자주할 정도로 난 요리를 제법 한다.


어쨌던, 수아를 보내고 오면서 왠지 울적했던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그래서, 슬며시 장난을 또 걸어보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서 재미가 더했다.


 


“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난 출출해서 조금 전에 벌써 아침을 먹고 들어오는 길인데?”


“ 아악~ 안돼~”


“ 흐음~ 봐, 이래도 수제비 때문이 아니야?”


“ 앙~ 삼촌~ 내가 삼촌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정말로 아니야~ 언니, 빨리 말 좀 해봐~ 알잖아? 응?”


 


예지가 과장된 목소리로 마치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를 쥐어뜯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실망을 했다는 듯이 말해주자, 갑자기 내 목을 껴안고 코맹맹이 소리와 함께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 하아~ 이 녀석도 이젠 정말로 아가씨가 다됐네? 그나저나, 아무리 나하고 친하다지만....’


 


내가 어린애로 여긴다고는 해도 이렇게 뭉클하게 젖가슴을 마구 비벼오면 너무나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그런 걸 내색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 이 계집애가 빨리 안 떨어져? 이리와!”


“ 아얏~! 언니, 왜 그래? 아프잖아? 힝~”


 


제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엉뚱하게도 도끼눈과 함께 팔을 꼬집히는 거였다.


내게서 후다닥 떨어져 팔을 문지르는 예지의 눈에, 이슬방울이 얼핏 비치는 걸 보면 정말로 아팠던 모양이다.


왠지 민지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것 같았다.


 


‘ 민지 녀석, 아까 좀 놀렸다고 삐쳤나? 아니면, 혹시 그..날인가?’


 


조금은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발끈하기는 잘 하지만 그래도 금방 풀어지는 민지이었기 때문이다.


 


“ 이 바보가~? 어서 가서 브래지어를 안하고 와? 죽을래? 이게 창피한 줄도 모르고?”


“ 악~!”


 


민지의 말에 깜짝 놀라서 예지가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저 젖가슴에 브래지어가 없단 걸, 여기서 제일 늦게 알아차린 사람이 바로 예지 자신이었던 것이다.


 


“ 헤헤~ 삼촌~ 미안~”


“ 하하하~ 그래, 알았으니까 점심 때는 수제비를 해먹자, 알았지?”


“ 와~~ 삼초온~~ 최고~~”


“ 빨리 안 들어가?”


“ 치~ 알았어~ 나중에 언니는 먹지마~ 흥~”


 


안방을 향해 뛰어가던 예지가 방문 앞에서 돌아서서니 헤실거렸다.


정말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리고는, 커다란 젖가슴이 덜렁거리면서 꼭지까지 또렷이 내비치는 것도 아랑곳 않고, 내 말에 두 팔을 번쩍 들어 만세까지 부르는 모습에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지에게서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또 터져 나온 건 당연했다.


 


“ 민지야...아까 놀려서 화가 난 거라면 내가 사과할 테니까 그만 풀어...응? 알았지?”


 


자신도 모르게 예지에게 하듯이 머리를 쓰다듬을뻔했다.


그나마 그걸 빨리 깨닫고 멈춘 게 다행이었다.


가뜩이나 어린애 취급을 싫어하는 민지다.


그렇게 했다면 정말로 화를 냈을지도 몰랐다.


 


“ 파전”


“ 으, 응? 뭐라고?”


“ 난 파전이야, 삼촌, 알았지? 흥~”


“ 허~...”


 


밑도 끝도 없는 한마디에 쳐다보자, 다시 한번 던지고는 획 돌아서서 안방으로 들어가버린다.


왠지 당했다는 느낌에 허탈해졌다.


 


“ 하하하~ 녀석들...고맙다...얘들아...”


 


민지가 말은 저렇게 했어도 보나마나 미리 씻고 다듬어서 준비를 다해둘 게 뻔했다.


게다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 둘 다 내 옆에 서서는 쉴새 없이 재잘대면서 도울 거다.


너무나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밖에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기분이 완전히 화창해졌다.


 


 


 


가능하면 일찍 귀가하려고 했지만 직장생활이란 게 내 맘대로 될 리가 없다.


회식자리에서 눈치껏 빠져 나왔는데도 벌써 11시가 다되어있었다.


 


‘ 휴~ 하기야...여기의 위치도 위치지만, 하필이면 장마철에 개업을 해놨으니...’


 


오늘은 그나마 오후부터 비가 그쳤길래, 그래도 혹시나 했더니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내려올까도 잠깐 생각을 했었지만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아니, 그보다는 단 몇 분이라도 빨리 그리고 오랫동안 수아를 보고 싶었다는 게 솔직할 거다.


가게 현관문의 유리창을 통해 언뜻 안을 들여다봐도 썰렁한 것 같더니,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서자 혼자서 외롭게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발걸음소리를 죽였다고는 하지만 다가가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혹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마치 의자와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는 수아에게서, 체온이나 숨결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철렁했다.


뽀얀 얼굴과 새빨간 입술 그리고 여전히 기묘하게만 느껴지는 알록달록한 실내화마저도, 커다란 바위를 깎아서 만든 회색의 조각상처럼 느껴진다.


눈을 바로 마주치기가 두려워졌다.


왠지, 지금 수아의 눈은 그 맑고 투명하던 호수가 완전히 말라버려 텅 빈 동공만 남아있을 것 같았다.


지독한 허무와 외로움에 찌들어 그 바닥을 짐작조차 하기 힘든 무저갱(無底坑), 그걸 바라보면 수아를 건져내기는 고사하고 자신마저 끌려들어갈지도 모른다.


 


“ 흠, 흠, 아름다운 사장님, 혹시 시간 있으면 저랑 데이트나 하시지 않을래요?”


“ 어, 어멋~! 오..빠...?”


 


그렇다고 뒤에서 덥석 안는다거나 어깨를 주무르는 것 같은 행동은 너무 놀라게 할 것 같아서 자제했다.


만약 내가 들어왔을 때 수아가 움직이고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래도 놀라긴 하겠지만 이렇게 완전히 정신을 놓고 있는 경우와는 다르다.


수아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인기척을 내고는 말을 걸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흠칫하는 것 같던 수아가 고개를 돌리고서 반색을 했다.


가로등 불빛이 서서히 밝아지듯이, 흐릿하던 눈동자에서 본래의 색채가 돌아오는 걸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 이제 퇴근하는 거에요?”


“ 응, 좀 일찍 오려고 했더니...”


“ 그러지 말아요...매일 들르지도 말고...”


“ 왜? 벌써 내가 싫어진 거야?”


“ 아이~ 참? 오빠도?”


 


수아의 말뜻을 모를 리가 없다.


그저 가벼운 농담으로 기운을 북돋워주려고 한 것뿐이었다.


그러자, 수아가 살포시 미소를 짓는다.


 


“ 참, 주방을 보는 사람은 몇 시에 가는 거야? 이제 겨우 11시인데...”


 


그랬다.


개업을 한 날인 그저께에 이어서 오늘도 12시 전인데 벌써 보이지가 않는다.


 


“ 아~ 집이 많이 멀어서 11시가 되면 가요...좀 전에 막 퇴근했어요...”


“ 그래도 너무 빨리 퇴근하는 거 아니야? 보통 이런 호프집은 아무리 빨라도 12시는 되야...”


“ 아니에요...원래부터 그렇게 이야기가 된 거에요...”


 


수아의 말에 의하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호프집의 주방을 맡았다가 직접 뭔가를 하기 위한 준비 중에도, 수아가 주방 일을 완전히 전수받는 기간을 두 달로 잡고서 그 동안만 도와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11시 퇴근에다 손님이 많은 주말 같을 때만 조금 더 남아있기로 했단다.


물론, 신장개업을 한 날부터 일주일 정도는 늦게까지 남아있을 예정이었지만 수아가 일찍 보냈다.


어차피, 어느 정도의 일정한 매상이 올라올 때까지는 인건비를 최대한 줄여야만 했다.


그렇기에 두 달 후부터는 수아가 주방을 직접 책임지고, 서빙을 볼 알바만 1명 구할 계획이었다.


 


“ 참~! 저랑 데이트를 하자고 했죠?”


“ 그래...후후후~”


“ 좋아요, 아무래도 오늘은 그만 닫고...”


“ 잠깐만 기다려봐, 수아야.”


“ 네? 왜요?”


 


조금 전처럼 삭막한 게 아닌 이렇게 생기가 도는 수아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게다가 그 원인이 자신인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물론, 지금 둘이서 데이트를 즐긴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달콤한 기분부터 든다.


하지만, 내 욕심만 차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가게는 수아에게 직장이라는 생존의 수단이자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시도였다.


 


“ 한가지만 물어볼게.”


“ 네...이야기해요...”


“ 네가 생각하고 있는 영업시간은 언제까지야?”


“ 아~ 일단은 12시 반까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 손님이 많아지면 시간을 더 늘리더라도 지금은 막차시간 때문에라도...”


“ 흐음...네 말처럼 나중에는 어쩌려고?”


“ 그때는 상황을 봐서 가까운 곳에다 지낼 곳을 찾던지, 아니면 중고차라도 하나 장만을 해야죠...”


“ 그래...그건 나중에 봐서 결정하면 되겠고...그러면, 우리 나가지 말고 12시 반까지는 여기에 있자..”


“ 네? 오빠...저랑 데이트를 하자면서요?”


“ 하하하..그거야 이렇게 여기서 하면 되지?”


“ 하지만...그건...”


“ 내 말을 잘 들어봐...”


“ 네..오빠..”


 


약간은 당혹스러워하는 수아의 손을 꼭 잡아주자 미소를 지었다.


작고 따스한 손의 온기와 함께 촉촉하고 빨간 저 입술이 유혹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욕심 낼 때가 아니었다.


입 안이 말라오는 느낌에 침을 삼켰다.


 


“ 영업시간이라는 건 손님과 한 일종의 약속이야...”


“ 네..”


“ 그러니까 그것만큼은 최대한 지켜야 해...


우연히 늦게 들렀던 손님이 다시 생각이 나서 그 시간에 왔다가 닫혀있으면 그걸로 땡이야..


반대로, 여전히 그 시간에 열려있었다면 단골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거고...”


 


원래 술장사라는 게 정말로 목이 좋지 않은 다음에는 결국엔 단골장사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단골이 쌓이다 보면 일정한 수준의 매출이 꾸준히 유지가 되는 것이다.


 


“ 아...네...오빠...”


“ 쉬는 날도 정해진 날짜에 딱딱 맞춰서 쉬어. 그것도 마찬가지니까...


  참, 그리고 그냥 카운터에만 앉아있어도, 주인은 가급적이면 가게를 지키는 게 좋아...


  어쩌다 일이 생겨서 안 보이는 건 몰라도, 자주 그런 모습을 보이면 손님들이 떨어져...”


 


술 손님의 심리란 게 원래 그렇다.


약간만이라도 자신이 소홀하게 취급 받는다는 기분이 들면 바로 돌아서버린다.


물론 술이든, 안주든, 분위기든, 하다못해 예쁜 여종업원이라도, 다른 곳과의 차별성만 있다면야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은 카페를 하는 친구녀석에게 들은 것도 있지만, 이래저래 술자리를 다니면서 평소에 느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수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를 말해주었다.


다행히도 수아는 그걸 공감하는지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입으로는 이렇게 제법 이성적인 말을 하고 있었지만, 손아귀에 잡힌 부드러운 감촉과 은은하게 맡아지는 체향이 어제 일을 떠올리게 하면서 자꾸만 갈증을 일으킨다.


 


“ 어머? 또 비가 오네?”


“ 그래? 그러면 밖의 테이블을 안으로 들여야지?”


“ 미안해요...오빠...”


“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서운해져, 알았지? 이럴 땐 그냥 좀 도와줘요..그러는 거야...”


“ 좀 도와줘요, 오빠~ 헤헤~”


“ 응, 자~ 그때처럼 넌 의자를 챙겨, 테이블은 내가 맡을 테니 서두르자, 빗방울이 굵어지기 전에..”


“ 네~”


 


처음의 미안해하던 기색을 지우고서 싹싹하게 부탁을 해오는 모습이 날 행복하게 했다.


누군가에게 사심 없이 뭔가를 해준다는 건 참으로 기분이 좋은 일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벌떡 일어서면서 내 손을 잡아 끄는 수아의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출입문을 살짝 열어두고서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러고는, 옆에 서있는 수아에게 내 무릎을 두드려 보이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렇게 밖을 내다보고 있다 손님이 오면 미리 일어서면 된다’라는 설득에, 잠깐 고민을 하다가 엉덩이를 살짝 걸쳐왔다.


푹신한 살집이 기분 좋은 따스함을 전해준다.


양팔을 앞으로 돌려 수아의 날씬한 허리를 안는 순간 자연스럽게 등을 기대어 왔다.


어깨에다 턱을 고이면서 보드라운 목덜미에다 코를 묻으니, 비가 갠 다음의 풀밭을 떠올리게 하는 상큼한 냄새가 맡아진다.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나도 모르게 ‘킁킁’ 하고 소리를 내자, 작게 웃으면서 손을 올려 뺨을 쓰다듬어왔다.


다정하고도 섬세한 손길, 왠지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면서 솔솔 잠마저 오는 기분이 든다.


 


 


‘ 쏴아~~’


 


또다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덧 12시가 다되었다.


아까 수아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여전히 아무도 찾아오지를 않아서 너무나 행복했다.


한편으론, 그래서 많이 미안했다.


 


“ 춥지는 않아?”


“ 따뜻해서 너무 좋아요...편안하고 포근한 게...”


 


나직하게 들려오는 수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꿈결처럼만 느껴진다.


 


“ 잠깐만요...오빠...”


“ 왜?”


“ 정리를 좀 하고 올게요...”


“ 벌써?”


“ 아니에요...정리를 하다 보면 아마 12시 반은 금방이에요...


  그리고, 그때까지도 손님이 없으면 간판 불만 끄면 되고...”


“ 아~”


“ 주방만 약간 치우면 되니까, 그냥 있어요...”


“ 그래...알았어...”


 


품에서 빠져나가는 부드러운 여체와 함께 그 따스하던 온기가 멀어지자,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왠지 늦가을 같은 선듯함이 느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 호호~ 심심했죠?”


“ 다 끝낸 거야? 자~ 이리 와서 앉아...”


“ 네...”


 


주방에서 물소리가 그치더니, 곧 저 안쪽부터 실내등이 순서대로 꺼지면서 어둠이 밀려왔다.


그리고는, 출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카운터의 작은 불빛만 남았다.


살며시 어깨를 짚어오는 손을 잡아 끌자, 무대 위를 미끄러지는 커튼처럼 소리도 내지 않고 흐느적거리며 안겨온다.


조금 전처럼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어깨에다 턱을 대고 수아의 뺨에다 얼굴을 비볐다.


보드랍고 따스한 촉감, 이제서야 한겨울의 허허벌판처럼 황량했던 가슴 속이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수아가 손을 들어 내 반대쪽 뺨을 애무라도 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위로 올라와서는 귀를 잠시 만져보더니,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턱으로 미끄러진다.


내 모습의 작은 것까지도 자신의 손끝에다 모두 담고만 싶다는 듯이, 너무나 섬세한 손길이었다.


엄지손가락이 턱밑의 수염을 더듬는 동안에도, 나머지 손가락은 가지런히 모인 채로 코와 입술을 어루만졌다.


 


“ 하아~”


 


다정하면서도 애잔한 그 손길이 세차게 쏟아지는 비와 함께, 가슴 속을 축축하게 적셔와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따스한 숨결이 수아의 손바닥에 부딪쳐서는 그 온기까지 품고서 되돌아왔다.


고개를 살짝 틀어 보드라운 손바닥에다 입술을 갖다 댔다.


 


“ 하아~ 오빠~~~”


 


내 가슴팍에 기댄 수아의 등이 움찔하더니, 이번엔 수아에게서 한숨이 새나왔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열기, 성기가 단단해지며 나도 모르게 수아의 허리를 강하게 당겼다.


그러자, 성기에 닿은 엉덩이가 꿈틀하면서 잔뜩 긴장을 한다.


 


“ 어제...하루 종일 생각을 해봤어요..그리고 오늘도...”


“ 그래...”


“ ...무서웠어요...오빠를 불행하게 만들까 봐....”


“ 수아야...”


 


정말로 두려움을 느끼는지 몸까지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이 내 몸으로 전해지면서 큰 파도로 변하더니, 심장에 도달할 때쯤에는 해일이 되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도대체 무엇이 수아를 이렇게나 힘들게 만드는 건지, 안타까움에 미칠 것 같았다.


이 가녀린 몸을 내 심장 안에다 집어넣어, 그 뜨거운 피로 꽁꽁 얼어붙은 응어리를 녹여내고만 싶다.


수아를 더욱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 ...하지만...오빠를 못 보는 게 더 무섭다는 걸 알았어요...


어제 아침에 헤어지고...아까 오빠가 올 때까지...계속 눈물이 나려고 했었어요...


이대로 오빠가 영영 안 나타날까...무서워서...겁이 나서...”


“ 수아야...사랑해...”


“ 오빠...사랑해요...”


 


중얼거리는 것 같던 수아의 목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지면서 열기를 더해갔다.


몸의 떨림 또한 잦아들다가 마침내 사랑한다는 말을 토해내면서 일어나 돌아섰다.


그리고는, 내 머리 위로 한 팔을 쭉 뻗으며 몸을 붙여왔다.


순간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뭉클한 것에 얼굴이 파묻히고서야 그게 젖가슴이란 걸 깨달았다.


 


‘ 딸깍~’


 


그때, 스위치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실내가 캄캄해졌다.


문틈을 통해서 골목의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들어왔다.


 


“ 꼭 안아줘요...사랑해요...오빠...”


“ 수아야~ 흡~~”


 


수아의 다리가 벌어져서는 내 허벅지 위로 다시 내려앉고, 두 팔로 목을 안으며 키스를 해왔다.


뜨거운 숨소리와 함께 말캉한 혀가 들어와 끈적하게 감겨온다.


입 안으로 스며드는 미지근한 타액이 너무나 달콤하게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안았던 수아의 허리를 잡아당기자, 단단해진 기둥으로 딱딱한 듯하면서도 푹신한 살결이 부딪쳐왔다.


순간,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오면서 심장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내 성기가 자리한 곳은 수아의 허벅지 사이에 있는 깊고 깊은 계곡이었다.


그리고, 살기둥의 끝, 너무나 예민한 귀두가 문지르고 있는 건, 바로 그 뜨겁고 연약한 꽃잎이었다.


 


이미 내 몸은 아찔했던 과거의 쾌감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이 감질나는 짜릿함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허리가 저절로 움직여 더욱더 강하게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수아의 팔이 숨쉬기 힘들 정도로 목을 조여오면서 아프게 혀를 빨아들였다.


거기다가, 놀랍게도 수아의 가랑이 역시도 아래위로 조금씩 흔들리면서 동조를 하고 있었다.


두 성기 사이에는 몇 겹의 장막들이 있었지만, 수아의 음부에서 느껴지는 열기와 움찔거리는 움직임이 너무나 생생했다.


당장에 터질 것만 같은 귀두에서 약간씩 새나온 액체가 내 팬티를 이미 축축하게 적셨다.


부드럽게 휘면서 물결치고 있는 수아의 허리에서 아래쪽으로 한 손을 미끄러뜨렸다.


갓 구워낸 식빵처럼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한 살덩어리가 손바닥에 달라붙어온다.


녹아버릴 것만 같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촉감에 아찔해지면서도 문득 한가지가 떠올랐다.


 


“ 후~ 수, 수아야!”


“ 하아~ 하아~ 오빠?”


 


너무나 뜨겁고도 음란한 모습이었다.


마주보고 안은 채로 서로의 성기를 비비면서, 수아의 엉덩이를 잡은 자신과 목을 껴안고 가쁜 숨을 내뿜는 수아, 당장 이대로 하나가 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장면이었다.


갑자기 입술을 떼어낸 것에 약간의 항의마저 섞인 듯한 수아의 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막차는? 너무 늦은 거 아니야?”


 


이런 순간에 그런 걸 따지다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은 내 자신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수아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지만, 그리고 그 기회가 드디어 왔지만, 영원히 기억해야 할 두 사람의 첫 순간을 이곳에서 이런 식으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 하아~ 가게를 정리하는 시간이 줄어서...아직은 괜찮아요...20분 정도는...”


 


수아가 빠르게 내뱉고서 그 말을 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다시 입술을 덮쳐왔다.


또다시 뜨겁게 키스를 퍼붓는 수아의 등 뒤로 세찬 빗소리가 아득하게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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