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雨緣) (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우연(雨緣) (1)

페이지 정보

조회 8,589 회 작성일 24-02-25 05:16 댓글 0

본문

공유하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음...창번방에서 이미 한번 언급을 했지만, 소라에다 얼마 전에 올려 완결 시켰던 글이라 이리로 올립니다..

소라는 이제 접으려고요...

로맨스 물이라 좀 밋밋할 겁니다...그냥 편하게 보시길 바랍니다...

총 24편 완결인데 한번에 도배를 하기는 그렇고 5편씩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

 

 

‘ 쏴아아~ 쏴~’


 


늦은 밤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어쩐 일로 이렇게나 정확하게 일기예보가 들어맞을 수도 있나 싶기부터 한다.


아니, 지금까지 해왔던 짓거리로 봐서는,


이번 예보 역시 맞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이었을 게 틀림없다.


단지, 그게 이렇게 우연히 들어맞았을 뿐이지.


하기야, 난 애초부터 방송이라는 자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 후우~~ 우~~”


 


열어놓은 창턱에다 팔꿈치를 댄 채로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정말 쏟아 붓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빗줄기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언뜻 자신의 이름과도 비슷하게 들리는 장대비라서 그런 걸까?


창 안으로 날아드는 빗물이 손가락 사이에다 낀 담배로 스며,


‘치익~’ 하는 소리를 내고서 맨 살이 드러난 팔뚝까지 적셨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 벽에 달라붙어있던 옷까지 축축하게 만들고 있지만,


왠지 불쾌한 느낌보다는 뭔가 시원한 듯하면서도 정겨운 기분마저 들고 있었다.


단지, 사르르 허공을 맴돌던 뽀얀 담배연기가 굵은 물줄기에 호되게 두들겨 맞아,


금새 그 생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까운 게 약간 아쉽다면 아쉽다고나 할까?


 


“ 으~으~ 어?”


 


내 그런 감상적인 기분에 육체는 도저히 동의를 못하겠다는 듯이,


팔뚝으로 소름이 쫘~ 끼치면서 으슬으슬한 느낌과 함께 몸이 후드득 떨렸다.


그런데, 그때 골목길 바로 건너로 마치 무성영화시대의 흑백필름 같은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봐도 이십 대 초 중반밖에 안 되는 듯한 젊은 아가씨가,


빗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의자와 테이블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 어라? 저건 또 언제 생긴 거야?’


 


분명 며칠 전까지도 주막이었던 걸 본 기억이 나는데 지금 보니 호프집으로 간판이 바뀌어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미 손에 쥐고 있던 꺼진 담배꽁초를 휙 집어 던지고서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방을 나서 현관계단을 건너뛰다시피 겅중겅중 내려와서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서 대문을 나섰다.


 


“ 아~이~ 쒸~~”


 


하지만, 머리를 두들기는 굵은 물방울과 더불어 벌써 속옷까지 젖어오는 걸 느끼고서야,


깜박하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은 늦은 다음이었다.


 


 


 


“ 이것들만 안으로 들여놓으면 되나요?”


“ 어, 어머?”


 


비에 흠뻑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테이블을 접느라 허둥대는 아가씨에게,


다가가 슬쩍 말을 걸면서 테이블의 한쪽을 붙들고 거들자 화들짝 놀란다.


검은 색의 굵은 테 속 작은 안경알이 흘러내리는 빗물에 가려져,


눈동자가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꽤나 크고 맑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서관 창가에 앉아서 책 속에 푹 빠져있다가


가끔씩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한없이 공상으로 빠져드는 모습이 정말 잘 어울릴 것만 같은 눈이었다.


 


“ 테이블은 제가 들여놓을 테니까...아가씨는 빨리 의자들이나 챙겨요...어서...”


“ 아~! 네, 네...고, 고맙습니다...”


 


테이블을 맞잡은 채로 멍하니 서있던 아가씨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꾸벅 하더니 후다닥 달려가 플라스틱 의자들을 쟁이기 시작했다.


 


 


 


“ 저...이거...”


“ 하하하~ 저보다 그쪽이 먼저인 것 같은데요?”


“ 어, 어머? 죄, 죄송해요...”


 


나머지 테이블까지 접어서 실내로 옮기고는 한숨을 돌리는데 수줍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서자 뺨과 목덜미에 찰싹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젖은 옷이 몸에 휘감겨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민 손에 들린 마른 수건 한 장....


피부에 밀착된 채로 반투명해진 블라우스의 속으로부터,


브래지어 안에 숨은 봉긋한 융기가 선명하게 내비쳐 눈길을 슬며시 피하며 말했다.


그러자, 깜짝 놀라 황급히 돌아서는 아가씨의 행동이 유쾌한 기분을 던져주었다.


굉장히 신선하고 상큼한 느낌, 이런 기분을 얼마 만에 느끼는 걸까?


 


“ 저....주방에 가서...잠깐 옷을 갈아입고 올 테니까...이걸로 닦고 잠시만 앉아계세요...”


“ 아...네...천천히 하세요...전 괜찮으니까...”


 


고개를 돌리고 있는 내 손에다 수건을 살포시 쥐어준다.


그리고는, 귀에서 타박타박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에,


시선을 제자리로 하자 가녀리게만 느껴지는 뒷모습이 보였다.


착 달라붙은 청바지 아래로 양말을 신지 않은 뽀얗고 동그스름한 뒤꿈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욕실에서나 신을만한 큼지막하면서도 발등에서 키티가 웃고 있는,


이 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런 황당한 실내화 위에서,


그것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어쩐지 너무나 잘 어울려 보이는 건 왜일까?


다시 한번 빙긋이 웃음이 나오면서 온몸의 서늘하고 축축한 느낌마저 즐거워진다.


 


‘ 참...그나저나...주인은 어딜 간 건가? 이 늦은 시간에 저런 어린 알바 아가씨만 두고...’


 


분명히 생긴지 며칠이 되지도 않는 가게를 이렇게 비우다니,


무척이나 무책임한 사람이란 생각이 문득 든 건,                                                  


어쩌면 빗속에서 우왕좌왕하던 여리게만 느껴지는 그 모습을 본 탓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실내에 다른 사람은 물론 인기척마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자신과 달랑 둘 뿐인 것 같은데도 무딘 건지 원래 겁이 없는 건지,


옷을 갈아입겠다며 대뜸 주방을 향한 저 어린 여자가 조금 대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첫인상이 그만큼이나 좋았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 같아서 흐뭇해지기도 했다.


 


 


 


“ 어? 이건 뭐에요?”


 


일단 머리만 대충 닦고는 어차피 옷이야 갈아입어야 해결이 될 문제였기에,


대신 의자가 젖을까 신경이 쓰여 수건을 거기다 그냥 깔고서 앉았다.


그런데, 그때 치마로 옷을 갈아입은 아가씨가 양손에


위태위태하게 뭔가를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다 내려놓았다.


널찍한 접시에 한 가득 담긴 탕수육과 넘칠 듯이 찰랑거리는 생맥주 잔을,


조심스럽게 밀어놓고서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여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 저...주방을 보시는 분이 퇴근을 해서...제가 대충 만들긴 했는데...


  죄송해요...아마 맛이 없을 거에요..그나마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 하하하~ 아니에요...출출한데 잘됐네요....


  다른 손님도 없는데 일단 앉으시죠......


  아차~ 잠깐만 기다리세요...제가 금방 돌아올 테니까....”


“ 네?...화장실은...저쪽에...”


“ 하하~ 급하게 나오느라..지갑을 안 가져와서요...5분이면 돼요....”


“ 어, 어머? 아, 아니에요....이건 제가 너무 고마워서 그냥...”


“ 에이~ 그래선 안돼요....여기 오픈한 지 얼마 안되죠?”


“ 네? 네...오늘이 첫날인데요....”


“ 역시...못 봤다 싶더니...장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무료서비스를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더군다나 사장이 알면 무척 화를 낼지도 몰라요...아가씨 월급에서 깔지도 모르고....”


 


물론, 자신에게 장사를 하려고 가져온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이 여린 아가씨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 저....”


“ 네?”


“ ..제가...사장인데요?....”


“ 어?”


 


굉장히 주저하는 듯한 모습으로 이야기하는 아가씨에 당황하고 말았다.


 


“ 휴~ 역시...전혀 주인 같아 보이지 않죠? 어설프고....”


“ 아, 아니에요....전 그냥...너무 어리셔서...당연히 알바라고...”


 


기운이 쭉 빠진 것 같은 의기소침한 목소리에 왠지 마음이 초조해졌다.


자신이 굉장히 큰 실수를 해서 이 여린 아가씨에게 상처를 준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상시 꽤나 냉소적인 나인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 아...어쨌든...그렇다면 더 안되죠...”


“ 네?”


 


얼른 화제를 돌리면서 제법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그 작은 안경으로 다 덮기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커다란 눈이 동그래지는 게 보였다.


역시나, 아까 느꼈던 대로 아주 크고 맑은 눈동자였다.


 


“ 개업 첫날인데...제가 돼지머리 입에다 돈 봉투는 못 물려줘도 마수걸이는 해드려야죠?”


“ ..하지만...”


“ 하하하~ 정 미안하면 나중에 장사가 잘될 때 따로 소주나 한잔 사세요...알았죠? 약속입니다..?”


“ 아..네?..네...약속할게요....호호호~”


 


그제서야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환하게 웃는 얼굴이 지겹게 쏟아지는 저 빗줄기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처럼,


순간적으로 눈을 부시게 해 덩달아 기분이 밝아지면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 그러니까..잠깐만 기다려주세요...설마...제가 이대로 도망을 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 아, 아니에요....”


“ 그러면...”


“ 자, 잠시만요...”


“ 네?”


 


내가 몸을 벌떡 일으키자 급하게 손목을 잡아왔다.


비를 맞아서 차가운 몸에 그 보드라운 살결이 닿아 따스한 느낌이 전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거리면서 잡힌 손목부근이 갑자기 화끈거렸다.


정말로 아주 이상한 날이다.


 


“ ..저..그러면...다 드시고 나중에 천천히 갖다 주세요....”


“ 네? 처음 본 저를 어떻게 믿고...”


 


역시 첫 느낌대로 이런 물장사를 하기엔 너무나 순진한 것만 같았다.


뭘까? 그런 천진함이 무척이나 반가우면서도 안타깝고 안쓰러운 이 기분은?


내가 나가버릴까 왠지 초초해하는 아가씨 때문에 다시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슬며시 떨어져나간 하늘하늘한 손길을 무척이나 허전하게 느끼고 있었다.


 


“ ...맞은 편...모퉁이 2층 방에 사시잖아요?”


“ 억~!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알 수 없는 야릇한 기대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 ...네...가게 오픈은 오늘 했지만...준비를 하느라 며칠 동안 새벽까지 있었어요...


  그래서...몇 번...창을 열고 담배를 피시는 걸....”


“ 아....네....”


 


혹시나 날 몰래 훔쳐보면서 좋아한 거나 아닌가 하고 기대를 했던 게 굉장히 낯부끄러웠다.


 


‘ 쩝....하기야...내가 무슨 연예인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동안 계속 술자리가 있어서,


밤 늦게 들어와서는 자기 전에 창을 열어둔 채 담배를 피우곤 했었다.


그래서, 아까 갑자기 뛰어든 낯선 남자를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던가 보았다.


게다가, 이 늦은 밤에 비마저 쏟아져 밖에는 인적이 거의 없는데도,


별로 주저하지를 않고서 주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쳐도 너무 순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면...좀 있다 문을 닫기 직전에 제가 갖다 드릴게요....”


“ 아, 아니에요...나중에 생각나실 때...”


“ 하하하~ 아니라니까요? 첫날에 외상손님이 들면...그런 징크스가 생겨요...”


“ 네? 네...아, 알겠어요....그러면...”


 


어쩐지 손님과 주인이 바뀐듯한 이 대화, 지금 시간이 무척이나 흥겨워지고 있었다.


 


“ 참...혹시...소주는 없어요?”


“ 네?...아...있어요...그걸 드릴까요?”


“ 네...그래 주세요...비를 맞았더니 조금 춥기도 하고...역시 탕수육에는 소주가 좋을 것 같네요...”


“ 네...잠시만 기다리세요...”


“ 아...그리고...”


“ 네? 또 필요한 게 있으세요?”


“ 그게 아니라...사장님도...같이 한잔 하시죠?...


  그냥 생맥주라도...드시고 싶은 걸로...그건 제가 살게요...”


“ 아, 아니..그러시면...”


“ 혹시..술을 못 드세요? 그러면 저 때문에 일부러 무리는 마시고요....”


“ 아, 아니에요...그건..술을 조금 하긴 해요...”


“ 하하하~ 다행이네요? 혼자 마시려니까 왠지 좀 썰렁했는데...”


 


일부러 대작을 해주어 고맙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대충 봐도 이렇게 이미 늦은 시간에 비마저 오니 더 이상 손님이 올 가능성도 적었다.


그래서, 첫날부터 이러니 보나마나 심사도 복잡할 텐데 개업개시도 해줄 겸해서 권한 것이었다.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오지랖이 넓었던가 하고 의아해지는 순간이었다.


 


“ 어라? 사장님도 소주를 들게요?”


 


소주와 함께 생맥주가 아니라 빈 잔을 두 개 내려놓았다.


 


“ 네...저도 맥주는 별로 안 좋아해요....”


“ 하하하....이거 기쁜데요? 자~ 그러면 일단 사장님부터...”


 


작은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앞으로 쭉 내밀어온다.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은 수수한 손이었지만,


끝이 동그랗게 다듬어진 단정하고 반투명한 손톱 아래로,


연한 분홍색 속살이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예쁘게 보였다.


왜 자꾸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크고 맑은 눈동자와 오목조목하게 자리를 잡은 이목구비가 제법 귀엽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눈이 번쩍 뜨일만한 미인은 아닌데도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는 것 같은 건?


어쩌면, 흠뻑 젖은 채로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저 여린 어깨가 워낙 강한 인상을 남겨서인지도 모른다.


 


아까 창문 아래로 무심결에 처음 그 모습을 내려다봤을 때,


마치, 어미에게 버려진 새끼고양이가 비가 들이치는 처마 밑에서,  


처량하게 울고 있는 걸 발견한 그런 느낌이 들기는 했었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대로 두면 그냥 죽어버릴 것만 같은 애처로움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는 조심스럽게 품에다 안아 들게 되는 꼭 그런 기분...


 


“ ...영..수....”


“ 네?”


 


왠지 자신에게 맞추어주느라 소주를 택했으리라는 예상을 단번에 무너뜨리고서,


보고만 있어도 침이 넘어갈 만큼 아주 시원하게 원샷을 날린 아가씨가 중얼거렸다.


 


“ ...영..수...라고 불러주세요...사장..이라는 말...너무 어색해요....”


“ 영수..요?”


“ ...네....”


“ 아....네...전...장우입니다...한 장우....쿡...”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다.


그러자, 얼굴이 빨개지는 아가씨, 아니, 영수....


어떻게 저렇게나 여성스러운 사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이름을 지어줬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 아들을 바라고 짓지는 않았을 테고,


그 부모님이 굉장히 특이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여전히 발에 신겨져 있는 저 황당한 실내화처럼,


전혀 분위기에 안 맞는 이 엉뚱한 영수라는 남성적인 이름이었지만,


역시 이 여자에게만은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 그, 그래도...한자로는 굉장히 예쁜 뜻이라고요...”


“ 큭...아..네...꽃 뿌리 영 자에...빼어날 수...맞죠?”


“ 어머? 잘 아시네요?”


“ 하하하...여자들 이름에 쓰일만한 한자가 그리 많지는 않죠....”


 


억울하다는 듯이 빨개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는 그 모습이 순간적으로 너무나 예뻤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아주 평범해 보였던 얼굴이다.


왠지 자신의 얼굴도 붉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입 안을 가득 메우는 쌉쌀하면서도 알싸한 향기,


그리고, 목구멍을 차갑게 넘어간 액체가 식도를 짜르르 하게 울리더니,


곧 가슴께부터 명치까지를 후끈하게 달구며 타고 내려갔다.


 


“ 수아...”


“ 네?”


“ 앞으로 수아 씨라 부를게요...어때요?”


“ 어머?”


“ 왜요? 남의 이름을 마음대로 줄여 불러서 싫어요?”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더욱 기분을 즐겁게 한다.


정말 깜찍하고 귀여운 토끼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 그, 그게 아니라...저랑 정말 친한 친구 몇 명하고......그렇게 부르는데....”


“ 아...죄송해요....제가 너무 앞서나갔군요....”


“ 아, 아니에요...그냥....조금 놀랐을 뿐이에요...그렇게 불러주시는 게 저도 좋아요...”


 


이야기를 하다가 약간 주춤하는 모습에 그 순간 가슴이 싸해졌다.


 


‘ 어쩌면, 친구들 다음에 삼킨 말은...아마 남자친구였겠지?


  후후후~ 역시...나도 그냥 그런 속물이었던가?’


 


여자가 보이는 약간의 호의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하려는 남자의 속성...


갑자기 입 안에서 소태라도 씹은 듯이 쓴 맛이 느껴졌다.


 


“ 참...수아 씨는...이런 장사가 처음이죠?”


“ ...네...너무 표가 나죠? 어설픈 게....”


 


왠지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엉겁결에 꺼낸 이야기가 이번에는 수아를 우울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푹 삶은 우거지 마냥 어깨가 축 쳐지고 눈꼬리와 입술마저 아래로 살짝 휘는 게,


젖소를 연상시키는 저 맑고 커다란 눈망울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그 표정에 자신이 굉장히 나쁜 짓을 했다는 기분이 들면서,


등에다 얼음덩어리를 넣은 것 같은 써늘한 느낌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아...그게 그러니까 수아 씨가 어설프다...이런 게 아니라...


  뭐라고 할까요? 일단은..이런 장사를 하시기에 너무 어리기도 하고...”


“ 저...그렇게까지 안 어린데요?”


“ 네? 아...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그러니까...


  보통 사회에 첫발을 디디면서 바로 이런 업종을 택하는 게 흔치 않아서....”


“ 저...스물 여덟이에요....”


“ 아~ 네, 스물 여덟....네? 스물 여덟이요?”


“ 네...후후~~”


 


이번에는 전세가 완전히 역전이 되었다.


많이 봐줘도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24~5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나하고는 두 살 터울밖에 안지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경험은 더 선배일지도 모른다.


깜짝 놀라 말문이 막힌 자신을 이번에는 수아가,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 제가 그렇게나 어려 보여요?”


“ 네..솔직히 처음엔 알바 대학생인줄 알았다가....직접 한다 길래...스물 네다섯까지는 봐줬는데...”


“ 어머나~? 호호호~”


 


수아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기야 어려 보인다고 해서 싫어할 여자는 미성년자 밖에 없으리라.


활짝 웃는 수아의 모습에 또다시 가슴이 뛴다.


 


‘ 제길....이게 무슨 짓이람? 멀쩡한 남자친구가 있을 여자한테.....’


 


입 안이 다시 씁쓸해오는 걸 느끼고서 그걸 헹구기라도 한다는 듯이 소주를 넘겼다.


 


 


 


“ 우리...노래방 가요, 노래방...장우 오빠~~ 그건 제가 쏠게요~~ 어서~~”


“ 휴~~~”


 


자신의 팔에 매달려 온몸을 흔들어가며 칭얼거리는,


이 철없는 아가씨를 내려다보자니 괜한 한숨부터 나온다.


약간 취한 듯한, 그래서 더욱더 애교를 부리는 귀여운 모습이지만,


직장생활 5년이면 예상처럼 자신보다 사회인으로서는 선배였다.


더군다나 여자론 정말 특이하게 차 세일즈, 그것도 상용차 영업을 했었다니,


뭔가 언밸런스 한 부분이 많은 아가씨인데도 그게 또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은 신기한 여자였다.


처음 접해보는 인간형의 신 인류라고만 지칭해야만 할 듯한 수아가,


마치 껍질에 겹겹이 둘러싸인 양파같이만 느껴지면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음흉한 내심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가뜩이나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있는데다가,


- 수아는 그나마 가게에 준비된 우산도 없어,


자신이 어차피 젖은 김에 비를 맞으며 방으로 와서는,


젖은 옷을 갈아입고서 지갑과 우산을 챙겨 가게로 다시 왔었다 -


하체는 포기하더라도 웃옷은 젖지 말자는 식으로 바짝 달라붙어있던 상체를 더욱 밀착시켜,


아까 비에 젖었을 때 언뜻 비쳤던 그 봉긋하고 말랑거리는 살로 비벼오는 통에,


순간적으로 정말 그 속(?)을 확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이 왈칵 밀려왔다.


 


“ 수아 씨...”


“ 흐응~ 오빠~~ 노래 부르러 가요~~ 어서~ “


“ 아, 알았으니까 그만 흔들어요...비가 다 들어와요...”


“ 헤헤헤~ 이러면 되죠?”


“ 그, 그렇죠....”


 


팔을 잡고 흔드는 바람에 우산이 흔들려 비가 들이치는 걸 수아의 머리 쪽으로 기울여주자,


두 손으로 내 허리를 바짝 감으면서 품에다 얼굴을 대고 안기다시피 해서는 헤실거렸다.


일단은 노래방으로 가긴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말은 안 했었지만 이 장대비처럼 수아의 가슴 속은 축축하게 젖어있는지도,


그래서, 바락바락 악을 쓰기라도 해서 그걸 날려버리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 장우 오빠...이러면...”


“ 그만...안 그러면 그냥 갈 테니까...내 말을 들어요...”


“ 하지만....”


“ 자~ 대신...다음 번에 소주 살 때 삼겹살에다 소주 사기...알았죠?”


 


노래방은 생각 외로 북적거렸다.


주말에다 비가 와서 더 그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내를 보면서 언뜻 수아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왜 안 그럴까?


미혼의 젊은 여자가 아무런 연고나 경험도 없이 이런 업종에 뛰어들 때면,


아마 이런저런 힘든 사연은 물론이고 나름대로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말임에도 첫날부터 완전히 파리만 날린데다가,


그런 울적함이라도 잊어보려고 이리로 왔더니,


바로 근처의 노래방은 이렇게 손님으로 미어지고 있을 때 그 심정이 어떨까?


 


한걸음 앞으로 나가 미리 계산과 함께 예약을 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수아가 화들짝 놀라 말렸다.


 


‘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어쨌던 난 평범한 월급쟁이에 혼자서 자취를 하는 주제에 불과하다.


그나마 저런 가게라도 열었다면 나보다 훨씬 더 나을 텐데도,


자꾸만 이렇게 나서서 감싸주고 보듬어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걸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걸,


그냥 비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라 여기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하자는 결심이었다.


 


“ 저...장우 오빠...”


“ 왜요? 수아 씨...”


“ ...그냥...수아 라고 불러주면 안 되요?”


“ 수아...?”


“ 네...편하게 말도 놓고...”


 


방이 빌 때까지 기다리면서 나란히 앉아있던 수아가 갑자기 그랬다.


왠지, 가슴이 뭉클하면서 따스해져 오는 느낌이 든다.


문득 옆으로 보이는 수아의 약간은 짱구인듯한 동그스름한 이마와,


크거나 작지도 않고 오만하게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팍삭 주저앉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를 한 귀여운 코의 능선이 아주 단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래의 새빨갛고 도톰하면서도 촉촉하게 윤기가 흐르는 입술,


낮게 소곤거리면서 부드러운 음성을 흘려내는 저 빨간 꽃송이가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잘 안다.


아까부터 모른 척, 아닌 척 자꾸만 이런저런 핑계를 댔었지만,


너무나 오랜만에 찾아온 이 감정을 더 이상은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휩쓸리면 십중팔구는 또다시 큰 상처만 받을 가능성이 컸다.


 


“ 으, 응...그래...수아야....”


“ 고마워요...오빠....”


 


이래선 안 되는 것이다.


말이란 게 비록 형식적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무의식에다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 요청을 받아들이는 순간,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거리감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와버린 대답이었다.


 


‘ 그게 고마운 일인 건가? 아니, 그보다 무엇이 고마운 걸까?


  마음의 부담을 덜어줘서? 아니면 그만큼이나 친숙하게 대해줘서?’


 


여전히 앞만 쳐다보며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소곤거리는 수아의 옆모습에 갈증이 밀려왔다.


 


“ 너 솔직히 말해봐....”


“ 뭘요?”


 


조금은 장난스럽게 말을 하자 그제서야 수아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었다.


왠지 가슴이 뜨끔했다.


어쩌면, 수아는 자신의 눈길에 담긴 어떤 열망과 그리움을 알아채고서,


조금 전까지 일부러 시선을 맞추지 않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 오늘...첫 개시로 몇 테이블이나 손님을 받은 거야?”


“ ..그, 그건....”


“ 빨랑...거짓말하지 말고....”


“ ......”


 


겨우 맞추었던 시선을 급히 돌리면서 바닥을 향한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그냥 자신이 노래방비를 내는 것에 너무 부담을 갖지 말라는 뜻으로 꺼낸 말이었다.


팔을 뻗어 수아의 무릎 위에 꼭 쥐어진 그 작은 손을 살며시 덮어 감쌌다.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두근거림이나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도 저런 걸 잘 안다.


주먹을 꼭 거머쥐고 울음을 참을 때 저절로 생기는 울림이란 걸, 너무나 잘 안다.


 


설마....?


고개를 숙인 수아의 길게 휜 속눈썹 끝에 달랑 매달리는 이슬 방울이 눈에 띄었다.


무심결에 던진 말이 얼마나 수아를 아프게 만든 건지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수아가 이렇게 노래방에 와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한 이유도,


자신에게 너무나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이유도 알아차렸다.


오늘 개업 날에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던 것이다.


 


“ 수아야...기운 내..나랑 친한 친구 놈이 신촌에서 카페를 하는데....


  그 놈도 별거 없어..처음에 무작정 서울로 와서 고생도 많았지...


  언제 나하고 거기에 한번 놀러 가자...아마 가보면 이래저래 배울 점도 보이고...


  나는 잘 모르지만 네가 물어볼 점은 꽤 있을 거야...


  나하고는 정말로 가까운 녀석이니까...아마 노하우도 알려줄걸? 알았지?”


“ 오빠...흑...정말...너무....”


“ 어? 방이 났나 보다...빨리 가자...”


“ 네...훌쩍....”


 


가슴에다 바위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묵직한 느낌, 그리고,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손아귀에 잡힌 보드랍고 작은 주먹의 떨림과 저 눈물방울이 전해주는,


아련한 슬픔의 향기가 너무나 짙고 강해서 질식을 할 것만 같았다.


 


‘ 이건 도대체?’


 


자연스럽게 수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마구 떠들었다.


그나마 순간적으로 친구 녀석이 떠오른 게 정말 다행이었다.


말을 하면서도 왜 진작에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할 정도로,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아주,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수아가 품에다 어깨를 기댄 채 고개를 발딱 쳐들자,


속눈썹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던 이슬방울이 갑자기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젖은 눈동자에서 별이 뜨고 있었다.


희망과 기쁨의 빛이 보였다.


그리고, 고마움과 감사가 가득 담긴 정감 어린 표정으로,


새빨간 입술이 살며시 벌어져 새하얀 이빨이 살짝 내비쳤다.


가냘픈 숨결이 흘러나와 코끝에 부딪치고 그 달싹하고 뜨거운 열기를 전해줬을 때,


자칫 그대로 고개를 숙여 저 유혹적인 산딸기를 맛보아버릴 뻔했다.


 


카운터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빈 방이 난 걸 적절한 타이밍에 알려준 게 천만다행이었다.


전혀 어색한 기분도 없이 수아의 손을 잡아 끌자 순순히 따라온다.


가늘면서도 보드라운 작은 손가락이 손아귀에 녹아 붙어오는 느낌이다.


그 짧은 순간 순간적으로 ‘이게 내 여자의 손이라면..’ 이라는 생각을 했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추천114 비추천 26
관련글
  • 자연 지구에는 단 6마리의 북부흰코뿔소만 남아있다
  • 실화 귀신을 보던 군대 후임..
  • 그냥 끄적이는 썰
  • 통한의 눈물(단편)
  • 그녀의 일기-11
  • 그녀의 일기-10
  • 그녀의 일기-9
  • 그녀의 일기-8
  • 그녀의 일기-7
  • 그녀의 일기-6
  • 실시간 핫 잇슈
  • 단둘이 외숙모와
  • 굶주린 그녀 - 단편
  • 엄마와 커텐 2
  • 그녀들의 섹슈얼 판타지
  • 명기인 그 여고생과의 황홀한 ... - 하편
  • 그녀는 명기였다.. - 단편
  • 나와 아내의 경험담 --2부
  • 아들의 선물
  • 애인이 된 엄마 친구
  • 공장 아줌마랑 떡친 썰
  • Copyright © www.hambora.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