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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회전그네 <3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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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00 회 작성일 24-02-25 03: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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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부- 마지막 모습


“야!최민지!뭘 그렇게 얼어붙어 있어!”

선배의 호통에 민지는 괜시리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녀는 괜시리 머리를 긁적였고,저마다 연습에 몰두하던 동아리 인원들은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행동에 의아해했다.

‘신경쓰여...왜이러지?’

정작 의아한 것은 민지 자신이었다.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하고 있지만,그녀의 온 신경은 출입문쪽에 집중되어 있었다.그녀가 그 쪽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벌써 며칠째,준후의 발길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일 때문일까?’

민지는 잊을수 없었다.눈을 떴을때, 자신의 옆에 준후가 없었다는 사실을.그리고 한동안 공허했던 마음은 또다시 준후에 대한 얄미움으로 바뀌었다.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때는. 그 얄미움은 그리움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민지는 하얀 볼을 간지럽히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그녀가 쉽사리 노래에 집중하지 못하자, 리더는 잠시 휴식을 하자는 제스쳐를 보내왔고,동아리의 남자들은 늘 그렇듯이 오늘따라 유난히 신경을 쓴,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의 민지의 옷차림을 훑어보기 바쁘다.

언제부턴가.민지는 바뀌어 갔다.그저 자기만족을 위해 옷을 입었던 그녀는 점점 누군가의 모습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투영시키고 있었다.딱 붙거나 혹은 노출이 심해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던 그녀의 패션은 점점 얌전해지고 여성스러워 졌다.무릎위를 넘나들던 치마 길이는 길어졌고,늘 타이트하게 붙어 있던 상의는 점차 섹시미 보다는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옷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단하나, 그날 공연장에서 보았던 준후의 미소와, 그가 미소를 짓게 만든 은채의 모습을 카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빨리와 나쁜놈아.나 자존심 그만 상하게 하라고..’

그녀는 오늘도 앞을 보며 노래를 불렀지만,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준후가 오지않는 동아리 방의 입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흑...”

준후는 자신의 앞에서 허물어지는 은수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수 없었다.은수 뿐만이 아니었다.조금만 눈을 돌리면,무릎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는 은채의 모습이 보였다.늘 청순함으로 물들어 있던 그녀의 두 눈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은하는 집안의 가장 연장자 답게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쓰는듯 보였지만,중간중간 그녀역시 고개를 숙일 뿐,동생들을 향해 그 어떤 말도 해주지 못했다.

자신의 앞에서 슬픔에 오열하는 세명의 여성. 모두 연인이라 할수 있는 세명의 가족.각자 다른 매력과 다른 사랑방식을 보여주지만, 준후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은 똑같은 세명의 여인.

준후는 그녀들 앞에서 그 어떤 말도 할수 없었다.따뜻한 위로의 말도 할수 없었으며, 그녀들처럼 같이 오열해줄 정도의 감성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지금의 이 사태는 그 어떤 말도 나오게 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강회장이...죽었다.’

준후는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언제나 강해 보였던 그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그것도 살해된지 며칠이나 지난 상태로.

준후와 세자매는 그야말로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것이나 다름없었다.피해자 가족으로써 경찰에게 소환되었고,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강회장의 시신을 보아야만 했다.그 잔인한 확인의 절차는, 곱게만 자랐던 세자매를 모두 주저앉게 만들어 버렸다.

준후는 말없이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는 기분이 묘했다.은채와 은수,그리고 은하는 졸지에 고아가 된것이다. 고아인 준후가 바라보는 고아의 모습.그것은 늘 보고 자랐던 고아원의 동료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그들은 대부분 영문도 모른채 고아가 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이번엔 달랐다.준후는 말 그대로 ‘고아가 되는 과정’을 조금의 여과도 없이 체험하고,또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기분이 더럽다.’

강회장의 죽음으로 인해,상속권의 대부분을 갖게 된 준후로써는 큰 행운이 온것이나 마찬가지였고,세 자매와의 관계에서 더이상 눈치 볼 존재가 사라졌으니 만세를 불러도 모자랄 일일지도 몰랐지만,준후는 기분이 상했다. 강회장의 죽음으로 인해,준후는 고아가 되는 세 자매의 슬픔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봐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세명의 여인에서 흐르는 눈물은 그의 기분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아빠!아빠!”

은수는 쓰러지다 시피 하며 현실을 부정하듯 오열했다.더이상 그 모습을 볼수 없었던 준후는 말없이 경찰서를 가득매운 기자들과 인파들 사이를 해집고 그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생전에 이룩했던 많은 커리어 답게, 그의 죽음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제계에서 유명한 아버지를 두고도 늘 귀찮은 일 없이 각자의 관심사에 몰두했던 세 자매들 역시 아무런 보호구 없이 세상의 시선이라는 펀치에 노출되어 버린 것이었다.그리고 그렇게 노출된 그녀들에겐...이제 남은것은 준후 뿐이었다.

준후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무심하게도 햇살은 밝았다.

“왜 나와있는거야?”

준후는 굳이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준후가 앉아있는 계단쪽으로 다가온 사람이 누군지,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알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녀, 은하는 살짝 부은 눈으로 준후의 옆에 앉았다.

“안에 계속 있을 자신이 없더라.”

준후의 말에 은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집에서 입는 원피스 위에 가디건을 걸치고 나온 그녀는,초췌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너도...각오 단단히 해야해.”

“각오라니?”

뜬금없는 은하의 말에 준후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은하는 계단에 앉아 있는 탓에 신경이 쓰였는지 다리를 살짝 오므리고는 치마자락을 손으로 끌어 내렸다.

“당연하잖아.아빠가 돌아가셨어.상대적으로 회사를 노리는 사람들이 움직일거야.경영권은 니가 쥐고 있으니까.그걸 어떻게든 지켜야지.”

준후는 그저 입을 쩍하고 벌려 버렸다.야무지게 이야기 하는 은하의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만 것이었다.

“이 상황에...그런 말이 나와?”

“무슨상황?아빠가 돌아가신 거?”

“그래.”

은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준후를 바라보았다.

“되게 냉정한 줄 알았는데 그러지도 않네.”

“뭐?”

“아빠가 돌아가신건 슬퍼.은채도 그렇고 은수도 그렇고 너무 힘들어해.그렇다고 나까지 슬퍼만 할까?셋중 한명쯤은 현실적인 생각을 해야하는거 아냐?”

준후는 그녀답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원래 냉철한 은하의 성격은, 임신 사실을 밝힌 그 이후로 비온뒤 땅처럼 더욱더 강인해진것 같았다.

“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 건 준후너야. 이제 니가 지켜야해.아빠의 회사랑...우리 셋도.”

왠지 모르게 은하의 목소리에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수줍음이 베어나오는 것만 같았다.준후는 살짝 고개를 틀어 그녀를 바라보았다.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이지만, 잡티하나 보이지 않는 그녀의 맨얼굴. 남자들이 다가가기 힘든 차가운 미녀였지만,준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망울에는 알수 없는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은수도...곧 수긍할거야.지금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네가 유일한 우리집의 남자니까 너에대한 욕심도 줄일거고.”

하지만 그는 마냥 기뻐할수 없었다.자신만의 부를 갖게 되었고,또 그녀들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준후는 계속해서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준후는 살짝 고개를 틀어,은채와 은수가 있을 경찰서 안을 바라보았다.보이지는 않지만,그녀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처럼.








준후는 습관적으로 그녀를 찾았다.언제부터인가 준후의 쉼터처럼 되어버린 그녀.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몸매에, 하얗게 뻗은 다리까지.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특유의 낙천성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 주었던 은영이 생긋 웃으며 준후의 팔짱을 꼈다.

“오빠!진짜 오늘은 안늦으려고 했는데요...”

“됐어.들어봐야 늘 같은 이유겠지.”

“히힛!”

은영은 퉁명스러운 준후의 말에도 살짝 웃어주며 그의옆에 앉았다.고등학교때에 늘 준후의 주된 공간이었던 작은 연습실.이제는 은영을 그리로 불러내는 것이 그다지 어색한 광경이 아닌듯 하다.

늘 그렇듯이,은영은 또래 아이들이 즐겨하는 깜찍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본인도 자신의 하얀 다리가 매력 포인트라는 것을 아는듯,그녀는 오늘도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늘 성숙한 복장의 페셔너블한 은하나, 얌전하고 여성스런 차림의 은채와는 사뭇 다른 그녀의 복장. 그녀는 질끈 묶은 머리를 매만지며 동그란 눈을 연신 이리저리 굴렸다.

준후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은영은 연신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준후와 준후 근처에 널부러진 술병들을 바라보았다.

“오빠 괜찮아요?”

은영은 요새 핫이슈가 되고 있는 기업가의 살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더불어 그것이 준후의 아버지라는 것도 소문을 통해 알게 된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준후가 어떤 사람이던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그녀의 성격.어쩌면 준후는 그것이 편해서 힘들때마다 은영을 찾는 것일지도 몰랐다.

“괜찮아.나쁠거야 없지..나한테는.”

“그 언니랑도...잘 될수 있는거잖아요?”

은영이 말하는 그 언니란 은채를 말하는 것이었다.준후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술잔을 내밀었다.

“마실래?”

“네!”

“...고등학생 주제에.”

“치.그럼 왜 물어 봤어요?예의상?”

“됐다.받어.”

은영은 싱긋 웃으며 준후에게 받은 소주잔을 비웠다.고교생 답지 않게 제법 익숙한 듯한 자세에 준후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솔직히 말해서...속상하죠?”

그녀의 질문에 준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한때는 강회장이 없어져 주기를 바라기 까지 했다.그만큼 은채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커졌었으니까.하지만 막상 그 불순한 소망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자,준후는 왠지 맘껏 웃을수가 없었다. 은수와 은채의 우는 모습.그것을 바라볼때에 마냥 기쁠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고아가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고아인 준후가 관찰해야만 하는 그 현실이 유쾌할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네 말대로야.좋을줄 알았는데 좋지만은 않아.”

“그치만.이제부턴 오빠에게 많은게 달렸잖아요.그 언니도 그렇고.오빠 집 전체가 다 그렇고.”

어느덧 은영은 좋은 카운셀러이자,준후의 속사정을 낱낱히 알고 있는 유일한 한사람이 되어 있었다.쉽게 남에게 속을 내비치지 않는 준후에게도,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난 관계였다.

“너...나 좋아하는거 아니었어?”

“맞는데요?왜요?”

“그냥..늘 느끼는 거지만 니가 그렇게 날 대하는게 신기해서.”

“푸하.그럼 어떻게 대해야 하는데요?오빠한테?”

“뭐...딱히 그렇게 물어보면 나도 할말은 없지만.”

은영은 준후의 대답에 뭐가 재밌는지 쿡쿡 거리며 웃었다.마주앉은 그녀의 허벅지가 치마를 입은 탓에 훤히 보였지만,준후는 골똘히 은영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어차피 오빠는 제꺼가 될순 없잖아요.그 언니를 사랑하니까.대신에 그 언니랑 조금이라도 오빠를 나눠 갖는거에 만족하기로 했을 뿐이에요.”

은영의 대답에 준후는 조용히 술잔을 비웠다.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은하에게도 저런 비슷한 류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들만의 사랑방식. 준후도 그것을 이제는 존중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쇼파에 기댄 그의 주변으로, 따뜻한 체온이 조금씩 자리하기 시작했다.준후를 달래주는 방식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이,어느새 은영이 준후의 무릎위로 올라타며 그에게 안긴 것이었다.

준후도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다.준후의 손이 자연스레 그녀의 허벅지를 훑었지만,은영은 능숙하게 준후의 품에 안겨 그를 위로하듯 쓰다듬어 주었다.

땡그랑.

자연스레 엉겨붙은 둘의 움직임 덕분에 소주병이 쓰러지며 연습실 바닥을 굴렀다.준후의 손은 끊임없이 그녀의 치마 속을 해집고 다녔지만,그녀는 마치 그것을 더 원한다는 듯 엉덩이를 살짝 들어주며 화답했다.

“하앗..”

탄성인지,신음인지 모를 은영의 음성이 준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좁고 차가운 연습실 바닥이지만,둘은 그곳이 너무나 익숙한듯 더욱더 적극적으로 서로를 끌어 안았다.이윽고 준후 바지는 은영의 손에 의해 내려갔고,은영의 치마로부터 그녀의 팬티가 조금씩 말려 내려왔다.

“흑..”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어떻게 해야 준후가 안정을 찾으며,어떻게 해야 그가 즐거워 하는지를.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지금 표현 할 수 있는 사랑방식이란 사실도.

“아파요..”

어느덧 둘의 몸은 뒤에 있는 쇼파위로 뒹굴렀다. 살짝 위로 올라가 있는 은영의 하반신 사이로 준후의 몸이 완벽하게 밀착했다.그것이 완벽한 알몸보다도 훨씬 더 자극적이었는지 은영의 신음소리는 점점 커져갔고,준후의 손은 그녀의 브라우스위 가슴을 움켜쥐었다.

“흑....”

철문틈 사이로 조금씩 짙어지는 은영의 신음소리.작은 이 공간에서,서로 다른 종류의 상처를 가진 둘은 그렇게 오랜시간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평소에 늘 걷는 길이 오늘은 유달리도 짧게 느껴지는 그였다.왜일까.쉽사리,섣불리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뗄수가 없었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로써,그리고 경영권을 쥐게 된 열쇠로써 할일이 산더미 처럼 쌓여 부담이 되어서는 아니었다.

‘강은채의 우는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그것이 준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은영을 만나느라 중간에 사라져 버린 그였지만, 아직은 해결해야할 일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강회장의 사인은 타살이었고, 한 기업과 한 집안의 중심인 그의 부재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들 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상심에 빠져 있는 은채의 모습이었다.

은하가 없었더라면,제 아무리 똑똑한 준후라도 패닉상태에 빠졌을 터였다.세상 물정 모르는 은채와 은수는 그저 울기만 했을 테니까.그나마 은하의 현실적인 판단에 의해,준후가 이렇게 약간이나마 밖에서 나돌 시간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휴우.”

준후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오늘만큼은 은영을 만나도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준후는 언제나 은채가 있던 그 놀이터의 그네 앞에서 서성거렸지만,좀처럼 밖에서 계속 있을 만한 핑계는 찾을수 없었다.

끼이익.

담배를 피며 시간을 벌려고 했던 준후는, 놀이터 바깥쪽으로 낯익은 세단 한대가 와서 정지하는 것을 볼수 있었다.

“뭐하고 있냐 여기서.”

용케도 준후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지,기주가 차에서 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준후는 굳어진 얼굴로 기주를 바라보더니 이내 담배연기 섞인 한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오랜만이네.그네.나도 한개 주라.”

기주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자,준후는 품을 뒤적여 담배를 꺼내고는 기주에게 건냈다.기주는 묵묵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가로등 불 비추는 허공으로 길게 연기를 뿜어버렸다.

“힘드냐?”

“알고 온거야?”

“불행히도.”

하기야, 세상이 떠들썩해 질 정도의 살해 사건이니 기주가 모를리 없을거라고 준후는 생각했다.한동안의 적막이 흘렀고,기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오래 산게 절대 아니지만.참 웃긴거 같더라 세상이란게.”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그냥.돌고 돌더라.예전에는 인생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그네인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더라. 계속 돌고 도는 뺑뺑이 같은거더구만.”

준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기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증오를 품고 살아간다 해도, 결국은 내가 증오했던 그 짓을 나 역시 하게 되는거...그런게 인생이라고.말하자면...요런 식으로 타는 그네같은 거지.”

기주는 몸을 살짝 비틀어 그네줄을 꼬이게 했고,곧이어 그네 줄이 풀리며 기주가 앉아 있는 그네는 핑글핑글 돌더니 멈추었다.

“미안하다 준아.널 또다시 고아로 만들게 해서.”

준후는 머릿속에 천둥이 치는 것만 같은 충격으로 쉽사리 기주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직접적인 것이 아니었지만,그의 말에는 엄청난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숨막히던 적막이 끊어지고,준후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기주는 굳어져 버린 준후의 표정을 보면서도 국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몇번이고 각오한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이유는...말할수 없어. 하지만 나로썬 그렇게 할수 밖에 없었다.”

“그럼 왜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지?”

“말해주는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니까.”

준후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지만,그것을 기주를 향해 휘두르지 못했다.아니, 그러지 않았다. 은채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기주에게 주먹을 휘두를 정도의 자격이,자신에게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쩔...생각이냐. 그런 인물을 건드렸다면...파장도 클텐데.도망쳐야 할거 아냐.”

“글쎄.아마 아무 의미가 없을거야.강회장 호텔 CCTV에 내가 찍혔을 테니까.곧 내 얼굴이 전국에 수배되겠지.”

준후는 고개를 들어,조금의 동요도 없이 이야기 하는 기주를 바라보았다.어째서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은채로.

“미안하다.오늘 내가 널 찾아온건 그 사과를 하기 위해서야.그리고...이 일을 그저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너가 누릴수 있는것은 다 누렸으면 좋겠다는 말도 해주고 싶고.”

“무슨뜻이야?”

준후의 물음에도 불구하고,기주의 시선은 저 멀리 언덕 밑을 향하고 있었다.요란한 사이렌 음성과 함께,경찰차의 불빛이 골목을 조금씩 메워오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기주는 여유롭게 담배를 비벼 껐다.

“친구로써 줄건 이거 밖에 없는거 같다.넌 이 세상에서 나랑 가장 닯은 녀석이니까.”

“무슨 소리야.경찰차가 오고 있잖아.”

“걱정마.내가 직접 부른 거니까.”

“뭐?”

준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기주를 바라보았다. 사이렌 소리는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기주는 품안에서 칼을 꺼내 준후가 앉아 있는 그네 앞에 떨어 뜨렸다. 점차 밝아지는 경찰차들의 불빛들. 기주는 조용히 준후에게 속삭였다.

“자...이제 너는...너희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잡은 용감한 후계자가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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