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그네 <2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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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부-풍요속의 빈곤.
“오빠 오빠!저거봐요!”
“그래.뭐 아무거나.”
은영은 싱긋 웃으며 디비디 한장을 꺼내들었다.디비디방 아르바이트 생으로 보이는 그는 어려보이는 은영과 준후를 힐끗 바라보더니,이내 그들을 구석진 방으로 안내했다.
“재밌게 보세요.”
사실 은영의 제안에 의해 디비디 감상실이라는 곳에 와보긴했지만,준후에게도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은영은 종종 친구들끼리 와본적이 있다고 했다.역시나 몇번 와본 아이답게, 안에 펼쳐진 침대와도 같은 쇼파에 어안이 벙벙한 준후와는 달리 냉큼 신발을 벗고 올라가 살짝 기대는 여유를 보인다.
“킥..뭘 그렇게 서있어요?”
“아..뭐...좀 생소해서.”
준후도 신발을 벗고 은영의 옆에 살짝 누웠다.어두침침했던 방이 스크린이 밝아짐과 동시에 같이 밝아졌다.은영은 준후쪽으로 살짝 기대었다.
“오빠 요새 무슨일 있어요?저를 또 먼저 보자고 하고.”
준후는 그녀의 질문에 피식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막 학원을 끝나고 오는 길인 그녀.준후는 무슨생각에서였는지 그녀를 불러내고 만 것이었다.
그것은 준후가 생각해도 이상스런 일이었다.그녀를 저번에 만났을때와,그리고 오늘의 그의 상황은 전혀 정반대의 것이었다.저번에 은영을 불렀을때는 은채를 가질수 없다는 공허함이 가득했고,지금은 은채가 자신의 연인으로써 옆에 있는 상황이니까.
“니가 편해.”
준후는 그렇게 말을 해버렸다.은영은 귀엽고 동그란 두눈으로 멀뚱멀뚱 준후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이내 살짝 미소지었다.화면에서는 영화의 처음이 시작되고 있었지만,둘다 스크린을 보고있지는 않았다.
“그 언니랑 잘 안됐어요?”
“아니.그 반대야.”
“에?근데 왜 절불러요. 그 언니랑 있어야죠.”
“모르겠다.나도 왜인지.”
사실 은채는 학교의 일로 바빴고,준후는 동아리연습실에도 가지 않고 일찍 집에 귀가해 버린 탓일지도 몰랐다.집에서는 은수가 자신을 반겼고,연신 자신의 옆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 와중에서 은영이 생각난 것은,어쩌면 그녀가 주는 편안함이었을 지도 몰랐다.자신을 좋아하면서도,은채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유일한 여인.그리고 왠지 그녀를 만날때는 큰 고민이 없어지는것 같아 좋았다.
“에?치사하게 불러놓고 말도 안해줘요?무슨일이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어..그냥.좀 복잡하다.”
“그니까 어떤게 복잡한 건데요?”
은영은 사뭇 끈질기게 물었지만 준후는 평소처럼 짜증을 부리진 않았다.
“음...글쎄.아무래도 시작은했지만,이게 잘한일일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지.”
“치.그런게 어딨어요?오빠 그 언니 좋아하잖아요.”
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한다는 말은 은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늘 갖고 싶었던 은채. 그녀와 자신사이에 드리워진 가족이라는 벽을 얼마나 뛰어넘고 싶었던가. 하지만 정작 그 벽을 뛰어넘으니,현실이라는 더 큰 벽이 보였을 뿐이었다.
“좋아해.하지만...그 아이가 다른것을 다 이겨낼수 있을까가 의문이야.나는 확실히 괜찮아.누가 나에게 어떤 욕을 해도,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지만 그아이는 달라.여태까지 그런 대접을 받아본 경험따윈 없을거야.”
준후의 말에 은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준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치.오빠도 참 나쁜 남자네요.”
“뭐?”
“그렇잖아요.자기를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그런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뭐야.저번에 니가 한말은 그럼 뭘로 설명할래?”
“뭐..특별히 그걸로 화가나거나 가슴이 아프거나 하진 않아요.다만 오빠가 나쁜남자라는건 변함이 없을 뿐이죠.”
“말을말자.”
은영은 히히하고 웃으며 준후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주름진 치마 밑으로 은영의 하얀다리가 스크린의 불빛을 받아 빛이 났지만,그녀는 자신의 허벅지가 노출되는것은 별로 신경쓸 일이 아니라는듯 대화만 이어갈 뿐이었다.
“그럼..문제는 그거 뿐이에요?”
“뭐가?”
“그냥...그언니가 힘든게 싫다..그거냐구요.”
“음..사실은..”
준후는 말을 할까말까 살짝 고민을 했다.아무리 편한 은영이지만, 거기다 대고 은하와 은수의 존재까지 말하기란 참으로 버거운 일이었다.게다가 둘다 준후와 보통관계가 아니라는 것까지도.
“에에?”
힘겹게 말을 털어놓는 준후.은영은 그저 충격을 받았다는듯 눈만 껌벅 거린다.
“와..오빠 진짜 장난 아니게 나쁜사람이네.”
“...상기시켜줘서 고맙구나.”
은영은 은하와 은수의 이야기는 나름 충격이었다는 듯 눈을 껌벅거리며 준후를 바라보았다.
“흠..그럼..그 언니들도 오빠가 사랑하는 건가요?”
“뭐?그렇진 않아.그냥..어쩌다보니 그리 된거 뿐이지.”
“피.오빠가 저질러 놓고 뭘 어찌되다 보니에요?다 뿌린대로 거둔거죠.”
“...너 요새 논술학원 다니니?말이 많이 늘었다.”
은영은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는 얼굴표정을 지어보였지만,준후는 많이 속이 후련해 진것만 같았다.그녀가 아니면 어디가서 이런이야기를 할수 있을까?설사 절친한 친구인 기주라도 이런말 만큼은 하기가 상당히 민망한 내용이었다. 사실은 성격이 쿨한 편인 은하가 가장 적격이겠지만, 그녀도 어찌보면 갈등구조 안에 있는 여인이니 그녀에게 털어놓기란 더욱더 힘든 일이다. 준후가 또다시 은영을 찾은 이유는,아마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놔도 부담이 없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일 지도 몰랐다.
“오빠.”
준후는 은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준후를 껴안고 있던 그녀는 이제 살짝 그의 몸위에 올라가 있기까지 했다.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준후는 눈을 크게떴다.
“갑자기 왜그래?”
“그럼 오빠는...저를 왜 만나나요?”
“뭐?”
“솔직하게요.”
준후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솔직하게라...떠오르는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가식으로 포장하기도 싫었다.그렇게 한다 한들 은영이 그것을 눈치 못챌리가 없었으니까.
“즐길수 있어서.”
어찌보면 잔인한 말이었지만,은영은 예상했다는 듯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아예 준후의 위로 올라타서 그를 내려다 보는 그녀.서로의 중심부는 맞닿아있었지만,그녀는 그런것은 생각도 안한다는듯 말을 이었다.
“그럼..다른 두 자매도 그러면 안되는거에요?”
“뭐라고?”
“오빠가 그 언니를 사랑하면서도 절 만나는건...그거 때문이잖아요.그럼 다른 두 자매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만나면 되지 않나요?”
“와...너 원래 그렇게 개방적인 아이였어?”
“피..오빠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구요.”
은영의 중얼거림.하지만 준후는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그녀는 당당하게 은수와 은하와의 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그녀의 말이 옳을지도 몰랐다.은채를 두고도 은영을 만나는것에 대해,준후는 조금의 죄책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유는 간단했다. 은채와는 다른 개념이지만,은영은 그저 편하게 볼수 있는 여자였으니까.
그녀의 말을들은 준후는 지금까지 은수와 은하에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졌다.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만나면서 은수, 은하와 계속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옳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것이 왠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그녀들이 은영과 다른점은 단 하나.단지 은채와 일련의 관계가 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 말은 준후 자신이 여태까지 은채에게 그녀들과의 과거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했다는 뜻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아이가 나보다 백배는 똑똑할지도 모르겠다.’
준후는 피식 웃어버렸다.그의 웃는 얼굴을 본 은영은 만족한듯 귀여운 웃음을 지었다.
“이제 내 말을 알아들었나 보네요.”
“그래.약간은.”
“그럼...”
은영은 고개를 숙여 준후의 입술을 고양이처럼 살짝 핥았다.약간은 의아한 준후의 표정을 보며 은영이 중얼거렸다.
“여기에 순수하게 영화만 보러오는 남녀가 얼마나 되겠어요?”
“날라리 다됐구나 성은영.”
말은 그렇게 했지만,은영을 따라 준후도 픽 하고 웃어버렸다.다시금 둘의 입술이 만났고,이번에는 준후의 손이 그녀의 치마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흠...”
그녀의 깊은 호흡이 준후의 입안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쳤다.순식간에 둘의 혀가 엉키었고,준후의 손은 은영의 잘 발달된 엉덩이를 주물렀다. 그것도 잠시,그는 참을수 없다는 듯 은영의 팬티 안으로 손을 넣어 살결의 감촉을 직접느끼기 시작한다.
“하아..”
은영은 준후의 몸위에 올라탄채로,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만지는 그의 손길에 몸을 조금씩 비틀었다.이윽고 그녀의 브라우스는 준후의 손에 의해 벗겨져나갔고,그것은 이윽고 침대를 가장한 쇼파 한구석에 쳐박혀 버렸다.
“오빠 천천히..흑!”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준후의 손은 그녀의 브라마져 벗겨버리고는 탐스러운 그녀의 가슴을 가득 움켜쥐었다.고교생이라고는 믿을수 없는 성숙한 몸매.스크린의 불빛을 받아 왠지 더욱 빛이나는 그녀의 하얀 허리가 조금씩 흔들렸다.그녀의 팬티마져 준후가 벗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찰칵.
옷이라곤 치마하나밖에 남지 않은 은영은,살짝 준후의 몸위에서 내려오며 그의 바지 후크를 풀어 주었고,이윽고 사각팬티위를 볼록하게 만든 그의 중심부를 볼수 있었다.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의 사타구니 사이로 얼굴을 가져갔다.그녀의 손에 의해 준후의 팬티는 무릎까지 내려갔고,곧이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사이로 벌개진 그의 귀두가 스르르 빨려들어갔다.
“음..”
은하와의 잦은 경험이 있는 준후도,문득 은영이 꽤 익숙해 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자신과의 관계는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그 짧은 관계에서 그녀는 점점 더 스킬이 좋아지는듯한 착각이 든다. 멀쩡한 아이를 요부로 만들었다는 아주 짧은 죄책감도 잠시,그녀의 얼굴이 위아래로 흔들렸고,자연스레 준후의 손도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위치한 깊은 샘쪽으로 빨려들어갔다.
“쪽..쪽..쪽..”
이미 영화의 대사는안들린지 오래였다.방안에는 준후의 거대해진 자지를 입에 문채로 연신 신음을 흘리는 은영의 목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뿐이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채로 치마하나만이 몸을 가린 아슬아슬한 복장.준후의 손에 의해 은영은 다시금 준후의 위로 살며시 올라탔다.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른 그의 기둥이 살며시 그녀의 조개살틈사이로 닿았고,준후는 무언가 부드럽고 뜨거운 감촉이 들어왔다.충분히 젖어있는 그녀의 샘.은영은 그때보다 더욱 흥분한것처럼 보였다.
“하윽..”
약간만 허리를 움직였을 뿐인데도,준비가 다 되어서 인지 결합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다.은영은 준후의 가슴쪽을 팔로 눌러 지탱하며 쉽사리 엉덩이를 뒤로 빼지 못했다.반쯤이나 들어간 그의 자지.준후는 은영의 가슴을 매만지며 살짝 골반을 위로 들었고,그것은 이내 기다렸다는듯 뿌리까지 깊이 은영의 몸안으로 침투했다.
“흐응..”
준후는 그자세에서 은영을 그대로 꽉 끌어 안았다.그의 위에 올라탄 그녀의 다리는 더더욱 벌어졌고,밑에 있는 준후의 허리가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폭주기관차처럼,은영의 몸안을 거침없이 해집어 놓았고,그녀는 준후의 목을 꽉 끌어 안은채 신음했다.
“아..아퍼요..흑..흐윽..흥..”
본능적으로,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력을 느낄수 밖에 없는 여자의 몸.그리고 너무나 싱그러운 나이의 그녀의 몸으로는 타오르는 듯한 그의 몸이 여지없이 직격되고 있었다. 준후는 허리가 아파오는것도 잊은채,계속해서 은영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아앙..하앙..아아..”
은영은 계속해서 몸을 비틀었다.준후는 한참동안의 행위중에,은영의 질이 자신의 자지를 엄청나게 세게 조이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이윽고 느껴지는 축축한 기분.그녀는 준후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부르르 떨었다.
“오빠..나 미치겠어요..”
“이쪽으로 누워봐.”
“하지만..힘들다구요.이것봐요.”
그녀가 살짝 몸을 옆으로 눕혔고,그녀의 몸안에 들어가있던 준후의 자지는 튕기듯 빠져나왔다.이윽고 거의 젖다시피한 그녀의 하반신이 보인다.그녀는 이미 한번 절정에 올라탔던 모양이었다.
“뭐하는거야?”
“나만 기분좋으면 미안하잖아요.기다려봐요.”
은영은 준후의 옆에 앉더니,이윽고 하얀 손으로 준후의 자지를 어루만졌다.그녀가 절정으로 혼자 가버린탓에 허탈했던 준후는 다시금 눈을 감고 쾌감을 즐겼다.그녀의 손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그를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쪼옥.쪽..”
은영은 섹스에 있어서는 정말 모범생인것만 같았다.은하에 견줄수는 없겠지만,뭔가 자신이 스스로 센스있게 터득해 나가는 것만 같다.그녀는 확실히,어떻게 하면 남자가 기분좋은지 잘 아는 여자였다. 은영은 준후의 귀두를 입술로 쪽쪽 빨면서,손으로는 연신 그의 기둥을 위아래로 흔들어 주었다.
“야..나올거 같다.”
신호는 금새왔다.은영은 준후의 말을 듣고도 자신의 행위를 계속했다.별다른 말이 없었기에,준후는 그 자세 그대로 절정에 올랐다. 자신의 입속에서 준후의 자지가 꿈틀거리자,은영은 손을 흔드는 대신 그것을 꽉 움켜쥐여 보였다.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사이로,준후의 분신들은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콸콸 쏟아져 갔다.
한차례 머리속에서 폭풍이 치고나자,준후는 은영이 옷을 추스리지도 않고 한쪽에 놓인 티슈를 꺼내 자신의 정액을 뱉어나는 것을 볼수 있었다.
“휴지가 원래 여기 있었던 거야?”
준후의 질문에,은영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닦아내고는 옷을 추려입기 시작했다.여전히 옷을 추스리지 않고 있는 준후를 보며 은영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했죠? 여기오는 남녀중에는 영화만 보는 사람은 드물다구요.”
언제나처럼 달빛은 차가웠다.
가로등이 층층이 밝혀주는 밤거리.서울의 밤은 낮보다도 밝았다.준후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로,느긋하게 벽에 몸을 기대고는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인파를 바라보았다.약간은 늦은 시간. 하지만 그 시간동안 과제며 여러가지 학교일로 바쁜 은채를 데리러,준후가 직접 그녀의 학교로 찾아온 것이었다.
어딜봐도,은채보다 나은 여자는 없어보였다.단순히 외모뿐만이 아니라,늘 얼굴에 가득한 상냥함. 고아로 자란 자신에게도 따뜻한 것이 무언인지 알게 해준 그녀의 미소.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내에선,은채만한 여자가 없으리라,준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
문득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는 듯한 은채의 표정이 준후의 시야에 들어왔다.그녀는 황급히 같이있던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준후를 향해 달려왔다.파스텔톤의 원피스.어찌보면 수수하기 그지 없는 복장이었지만,머리를 예쁘게 묶어 올린 은채에게는 어떤 드레스보다도 아름다운 옷이 되어 있는것만 같았다.
“왠일이야?”
은채는 너무나 의외라는듯 준후를 보고 웃었다.준후역시 반사적으로 피식 하고 웃어보였다.
“그냥.너무 늦었는데 학교라길래 궁금해서.”
“내가 언제나올줄 알고 기다렸어..미안해.많이 기다렸지?”
“또 미안하다고 한다.뭐가 미안해.니가 오라고 해서 온것도 아니잖아.”
“그치만..”
은채는 멋적게 웃었지만,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져서,준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혹시 이 학교에 내가 니 동생이라는거 아는 사람있어?”
“아니?없는데 그건 왜?”
준후는 대답대신 은채의 손을 잡아끌었다.왠지 모르게 차가운 그녀의 손.준후는 힘을주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아주었고,은채는 행복한듯 싱긋 웃었다.
“겨우 손잡으려고 그거 물어본거야?”
“겨우라니.더 큰 스킨쉽을 원하는구나?”
“아..아니야!”
자신의 농담에 얼굴까지 붉어지며 당황하는 은채를 보고는,잘 웃지 않는 준후지만 오늘만 해도 몇번이고 웃었다,
자신의 손을 꽉 쥐어주는 은채의 감촉을 느끼며,준후는 그녀를 데리고 길가에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준후야.”
갑작스레 잡고있던 자신의 손을 확 놓아버리는 은채.준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은채를 바라보다가,그녀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저 멀리에 있는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것을 알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누군가가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하..?’
틀림없는 그녀였다.페셔너블한 정장차림.화장을 한 얼굴이 더욱 섹시하게 느껴지는 한 여인이 준후들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대치된 상황.주변사람들은 준후를 중심으로 양옆에 각각 느낌이 다른 미녀가 서있는 그 모습을 흘끔거리며 바라보고 지나갔다.
“어..언니.”
은채는 그 어느때보다 당황하며 은하를 불렀다.과연 살면서 은채가 이토록 당황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마져 붉어진 그녀를 보며,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둘이 같이 있었어?”
준후는 살짝 경직된 얼굴로 은하를 바라보았다.이게 뭐하는 거야?라는 듯한 그의 눈빛을, 은하는 바라보지 않은채로 은채의 얼굴만을 응시했다.
“아..응.준후랑 여기서 만나서..”
준후는 은채가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래서 무엇하랴.어차피 은하는 자신과 은채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언니는?이근처 지나간 거야?”
은채의 살가운 말에도 은하는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왠지 모르게 경직되기까지 한 그녀의 표정.그녀는 여전히 준후를 바라보지 않은채로 은채를 보며 말했다.
“잘됐네.같이 저녁먹을래?”
“형님.그여자는 없었습니다.”
기주는 부하의 보고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예상했던 일이지만,역시 눈치가 빠른 여자라고 생각하며.
‘그 여자..벌써 눈치를 채고 도망친건가.’
물론,기주의 리스트에 미진이 껴있었던 것은 아니다.아니,오히려 그녀는 위험리스트에서 제외된 후였다.그녀의 뒤를 봐주는 보스가 사라진 이상,그녀는 더이상 그 어떤 기득권도 갖고 있지 않은 허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미진이 준후의 집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부하의 보고는 기주를 조금 씁쓸하게 했다.
‘애초에 그여자가 노리던 것은 준후의 친모임을 주장해서 돈을 타내려는것이 아니었어.’
보스와 미진의 밀회를 엿들었던 기주는 잘 알고 있었다.오히려 강회장의 돈을 노리던 것은 보스였고,미진은 그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제거당할거라 생각해서 도망을 친건가?’
기주는 그럴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여자가 바로 미진이었다.
“강회장의 행방은?”
“워낙 출장을 많이 다니는 탓에 확실히 잡기가 어렵긴 합니다만..지금은 부산쪽에 내려간 것 같습니다.”
“부산?”
“네.한경건설 분사가 있는 곳입니다. 호텔에 체크인 한걸로 봐선 적어도 내일까지는 거기 있을듯 합니다.”
사내의 말을 천천히 곱씹은 기주는 살짝 머리를 움켜쥐었다.이제는 다시 돌아갈수 없는길.애초에 돌아갈 생각도 없었지만,그는 어찌됐던 준후의 보호자가 아닌가. 약간은 갈등이 되는것도 사실이었다.
‘그 사실만..내가 알지 않았어도.’
기주가 이번 프로젝트 관련된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찾아낼때마다,그가 모르던 정보도 하나하나 입수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그 프로젝트로 인한 아이들중 고아원에 맡겨진 것은 차라리 잘 풀린 케이스라는 것이었다.조금이라도 장애,혹은 이상이 있는 아이들은 그대로 안락사 처리되었고,외부에 그것이 조금씩 알려질 기미가 보이자 프로젝트는 대량의 고아를 양산하고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기주는 그것을 절대 용서할수 없었다.그들이 얼마나 사회적인 약자로써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대부분이 왜 범죄쪽에 관련된 어두운길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택하는지도.나이는 어리지만 그쪽에 산증인이라 할수있는 기주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피우던 담배를 비벼껐다.망설이기엔 너무 늦었고,또 여기서 그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돈으로 비리를 덮은 강회장.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있는 유일한 인간으로써 기주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그는 살짝 몸을 일으키며,부하에게 지시했다.
“부산으로 가자.지금당장 차 준비시켜.”
레스토랑 안은 무거운 어색함만이 흘렀다. 늘 테이블위에서 상냥하게 이것저것 잘 물어보는 은채도,오늘은 왠일인지 조용했다.
“왜들 그렇게 말이 없어?”
은하는 아예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인듯,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준후와 은채에게 말했다.준후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지만,은하는 개의치 않는듯했다.
“아니..너무 갑작스러워서.”
“둘의 데이트라도 내가 방해한 거니?”
“무..무슨소리야 언니.아니야.”
은채는 괜시리 손까지 저어가며 부정했다.준후는 가슴이 답답해 지는것이 느껴졌다.지금 은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찌보면 첫 시련일지도 모르는 지금의 이 자리.그녀는 편안할까?
준후는 자신이 가만히 있을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앞에 있는 냉수를 들이키며,은하에게 말했다.
“그냥 너무 늦었길래 데리러 갔을 뿐이야.”
은하의 고양이 같은 눈망울이 준후를 응시한다.뭔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한 그녀의 눈빛을,준후는 살짝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묵묵히 그의 눈빛을 받아내었다.
“나 늦었을땐 한번을 안오더니?”
준후는 이를 살짝 물었다.은하와 단둘이 있을때면 모를까,지금 이 자리에서의 은하는 준후에게 있어서 ‘큰누나’이기 때문이었다.단둘이 침대에서 있을때는 준후의 말을 잘듣는 요부일지 몰라도,은채가 있게되면 말이 달라지는 것이다.
“니들 그렇게 붙어 있으니까 꼭 사귀는거 같다야.너무 그러고 다니지마.동네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
그녀의 말이 결정타였는지,은채는 더욱더 당황했다.모르는 사람이 봐도 은채와 준후의 관계를 의심할정도로 너무나 티가나는 은채의 표정. 준후는 은하에게 그만 하라는 눈빛을 보냈지만,은하는 애석하게도 준후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나 화장실좀 다녀올게.”
참다못한 은채가 살짝 몸을 일으켰다.준후는 천천히 걸어나가는 은채의 뒷모습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할수 없는 그런 사이.은채는 그런 벽을 지금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뭐하는 짓이야 너.”
준후는 살짝 얼굴을 감싸쥔채로 은하에게 중얼거렸다.그녀의 눈망울이 천천히 준후를 향한다.
“내가 뭘?”
“몰라서 물어?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말조심해.밖에 나오면 난 니 큰누나야.”
“뭐?”
준후는 황당한 표정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오늘 단단히 결심을 하고 나온것이다.그 목적은 비록 알수 없지만.
“도대체 이유가 뭐야?나랑 은채 관계를 알았으니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은하는 반짝이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준후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말을 조금은 아끼더니,이내 준후와 마찬가지로 앞에 있는 물잔에 입을 가져갔다.
“니가 그랬잖아.욕망 가는데로 하라고.성녀의 길은 갈수 없다고.”
준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은하와 처음 몸을 섞을때에 준후가 그녀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그래서?”
“나도 원하는걸 갖고 싶을 뿐이야.말했잖아?내가..너에게..”
은하는 눈물을 참는듯,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준후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첫번째가 아니어도 좋다고.”
진심이 담긴 그녀의 말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준후의 사랑을 갈구하는 듯했다.자신의 동생인 은채에게 가있는 준후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을 바라봐 주길 원하고 있었다.
“그걸 바래서 한 행동이 이거야?”
“적어도 니가 내 마음을 알테니까.”
마지막으로 그녀가 남긴 그 말. 은하는 처음으로 준후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속의 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지만 준후 역시 아무런 말을 할수 없었다.자신이 은채를 원했던 마음을 잘 알기에,그녀가 얼마나 힘들까 라는 것쯤은 쉽게 유추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띠리링.
테이블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에서 문자메세지 수신음이 울렸다.그는 살짝 테이블위로 시선을 돌렸다.
-나..먼저 집에 들어갈게.미안하지만 언니에게 잘 말하고..같이 밥먹고 와.-
은채의 메세지였다.준후는 반사적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애써 울음을 참는 듯한 그녀의 얼굴.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은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봐..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모두 끝이니까.”
준후는 달리고 또 달렸다.서둘러 레스토랑 앞을 나왔지만,있어야할 은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는 집이 있는 방향쪽으로 서둘러 달렸다.
‘아..’
준후는 저 멀리 보이는 한 실루엣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뒷모습이지만,준후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강은채!”
그녀의 걸음이 우뚝하고 멈춰섰다.있는 힘껏 그녀를 부른 준후는 달리는 속도를 더더욱 높였다.그녀가 천천히 뒤를 돌아서며 자신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녀의 근처까지 달려간 준후는 그녀를 안아 버렸다.은채는 몇번이고 준후의 품안에서 반항을 했지만,준후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는 더욱더 세게 안았다.이윽고 은채의 울먹임은 더욱 거세어 지기 시작했다.
“너 왜그래?”
“무서워..큰언니가 우리사이를 아는것만 같고..그게 무서워..”
“다 끝난 말이잖아.도대체 뭐가 무섭다는거야.”
“큰언니가 그냥 눈감아 준다고 한다면,다른 시련은 없을까?”
준후는 가슴이 답답해 지는것을 느꼈다.한없이 여린 은채의 마음. 그녀는 분명 오늘 은하의 말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늘 준후가 늦을 때마다 동네 놀이터에서 그를 기다렸던 은채의 배려.이제는 자신이 배려할 차례라 생각하며 준후는 은채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바보같은 소리좀 그만하자.도대체 왜그래?나만 믿으면 되잖아.”
은채의 울음소리는 점점 사그라 들었다.그녀의 작은 어깨를 껴안은 준후의 가슴은 계속해서 뛰었다.사람들은 그들을 힐끔거리며 바라보았지만,준후의 눈에는 그 어떤 것들도 들어오지 않았다.자신의 품안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그녀.준후는 그녀를 안은 손에 힘을 주며,조용히 그녀에게 속삭였다.
“가자..은채야..둘만 있는곳으로..”
“오빠 오빠!저거봐요!”
“그래.뭐 아무거나.”
은영은 싱긋 웃으며 디비디 한장을 꺼내들었다.디비디방 아르바이트 생으로 보이는 그는 어려보이는 은영과 준후를 힐끗 바라보더니,이내 그들을 구석진 방으로 안내했다.
“재밌게 보세요.”
사실 은영의 제안에 의해 디비디 감상실이라는 곳에 와보긴했지만,준후에게도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은영은 종종 친구들끼리 와본적이 있다고 했다.역시나 몇번 와본 아이답게, 안에 펼쳐진 침대와도 같은 쇼파에 어안이 벙벙한 준후와는 달리 냉큼 신발을 벗고 올라가 살짝 기대는 여유를 보인다.
“킥..뭘 그렇게 서있어요?”
“아..뭐...좀 생소해서.”
준후도 신발을 벗고 은영의 옆에 살짝 누웠다.어두침침했던 방이 스크린이 밝아짐과 동시에 같이 밝아졌다.은영은 준후쪽으로 살짝 기대었다.
“오빠 요새 무슨일 있어요?저를 또 먼저 보자고 하고.”
준후는 그녀의 질문에 피식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막 학원을 끝나고 오는 길인 그녀.준후는 무슨생각에서였는지 그녀를 불러내고 만 것이었다.
그것은 준후가 생각해도 이상스런 일이었다.그녀를 저번에 만났을때와,그리고 오늘의 그의 상황은 전혀 정반대의 것이었다.저번에 은영을 불렀을때는 은채를 가질수 없다는 공허함이 가득했고,지금은 은채가 자신의 연인으로써 옆에 있는 상황이니까.
“니가 편해.”
준후는 그렇게 말을 해버렸다.은영은 귀엽고 동그란 두눈으로 멀뚱멀뚱 준후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이내 살짝 미소지었다.화면에서는 영화의 처음이 시작되고 있었지만,둘다 스크린을 보고있지는 않았다.
“그 언니랑 잘 안됐어요?”
“아니.그 반대야.”
“에?근데 왜 절불러요. 그 언니랑 있어야죠.”
“모르겠다.나도 왜인지.”
사실 은채는 학교의 일로 바빴고,준후는 동아리연습실에도 가지 않고 일찍 집에 귀가해 버린 탓일지도 몰랐다.집에서는 은수가 자신을 반겼고,연신 자신의 옆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 와중에서 은영이 생각난 것은,어쩌면 그녀가 주는 편안함이었을 지도 몰랐다.자신을 좋아하면서도,은채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유일한 여인.그리고 왠지 그녀를 만날때는 큰 고민이 없어지는것 같아 좋았다.
“에?치사하게 불러놓고 말도 안해줘요?무슨일이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어..그냥.좀 복잡하다.”
“그니까 어떤게 복잡한 건데요?”
은영은 사뭇 끈질기게 물었지만 준후는 평소처럼 짜증을 부리진 않았다.
“음...글쎄.아무래도 시작은했지만,이게 잘한일일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지.”
“치.그런게 어딨어요?오빠 그 언니 좋아하잖아요.”
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한다는 말은 은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늘 갖고 싶었던 은채. 그녀와 자신사이에 드리워진 가족이라는 벽을 얼마나 뛰어넘고 싶었던가. 하지만 정작 그 벽을 뛰어넘으니,현실이라는 더 큰 벽이 보였을 뿐이었다.
“좋아해.하지만...그 아이가 다른것을 다 이겨낼수 있을까가 의문이야.나는 확실히 괜찮아.누가 나에게 어떤 욕을 해도,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지만 그아이는 달라.여태까지 그런 대접을 받아본 경험따윈 없을거야.”
준후의 말에 은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준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치.오빠도 참 나쁜 남자네요.”
“뭐?”
“그렇잖아요.자기를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그런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뭐야.저번에 니가 한말은 그럼 뭘로 설명할래?”
“뭐..특별히 그걸로 화가나거나 가슴이 아프거나 하진 않아요.다만 오빠가 나쁜남자라는건 변함이 없을 뿐이죠.”
“말을말자.”
은영은 히히하고 웃으며 준후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주름진 치마 밑으로 은영의 하얀다리가 스크린의 불빛을 받아 빛이 났지만,그녀는 자신의 허벅지가 노출되는것은 별로 신경쓸 일이 아니라는듯 대화만 이어갈 뿐이었다.
“그럼..문제는 그거 뿐이에요?”
“뭐가?”
“그냥...그언니가 힘든게 싫다..그거냐구요.”
“음..사실은..”
준후는 말을 할까말까 살짝 고민을 했다.아무리 편한 은영이지만, 거기다 대고 은하와 은수의 존재까지 말하기란 참으로 버거운 일이었다.게다가 둘다 준후와 보통관계가 아니라는 것까지도.
“에에?”
힘겹게 말을 털어놓는 준후.은영은 그저 충격을 받았다는듯 눈만 껌벅 거린다.
“와..오빠 진짜 장난 아니게 나쁜사람이네.”
“...상기시켜줘서 고맙구나.”
은영은 은하와 은수의 이야기는 나름 충격이었다는 듯 눈을 껌벅거리며 준후를 바라보았다.
“흠..그럼..그 언니들도 오빠가 사랑하는 건가요?”
“뭐?그렇진 않아.그냥..어쩌다보니 그리 된거 뿐이지.”
“피.오빠가 저질러 놓고 뭘 어찌되다 보니에요?다 뿌린대로 거둔거죠.”
“...너 요새 논술학원 다니니?말이 많이 늘었다.”
은영은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는 얼굴표정을 지어보였지만,준후는 많이 속이 후련해 진것만 같았다.그녀가 아니면 어디가서 이런이야기를 할수 있을까?설사 절친한 친구인 기주라도 이런말 만큼은 하기가 상당히 민망한 내용이었다. 사실은 성격이 쿨한 편인 은하가 가장 적격이겠지만, 그녀도 어찌보면 갈등구조 안에 있는 여인이니 그녀에게 털어놓기란 더욱더 힘든 일이다. 준후가 또다시 은영을 찾은 이유는,아마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놔도 부담이 없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일 지도 몰랐다.
“오빠.”
준후는 은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준후를 껴안고 있던 그녀는 이제 살짝 그의 몸위에 올라가 있기까지 했다.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준후는 눈을 크게떴다.
“갑자기 왜그래?”
“그럼 오빠는...저를 왜 만나나요?”
“뭐?”
“솔직하게요.”
준후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솔직하게라...떠오르는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가식으로 포장하기도 싫었다.그렇게 한다 한들 은영이 그것을 눈치 못챌리가 없었으니까.
“즐길수 있어서.”
어찌보면 잔인한 말이었지만,은영은 예상했다는 듯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아예 준후의 위로 올라타서 그를 내려다 보는 그녀.서로의 중심부는 맞닿아있었지만,그녀는 그런것은 생각도 안한다는듯 말을 이었다.
“그럼..다른 두 자매도 그러면 안되는거에요?”
“뭐라고?”
“오빠가 그 언니를 사랑하면서도 절 만나는건...그거 때문이잖아요.그럼 다른 두 자매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만나면 되지 않나요?”
“와...너 원래 그렇게 개방적인 아이였어?”
“피..오빠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구요.”
은영의 중얼거림.하지만 준후는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그녀는 당당하게 은수와 은하와의 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그녀의 말이 옳을지도 몰랐다.은채를 두고도 은영을 만나는것에 대해,준후는 조금의 죄책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유는 간단했다. 은채와는 다른 개념이지만,은영은 그저 편하게 볼수 있는 여자였으니까.
그녀의 말을들은 준후는 지금까지 은수와 은하에대해 심각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졌다.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만나면서 은수, 은하와 계속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옳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것이 왠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그녀들이 은영과 다른점은 단 하나.단지 은채와 일련의 관계가 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 말은 준후 자신이 여태까지 은채에게 그녀들과의 과거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했다는 뜻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아이가 나보다 백배는 똑똑할지도 모르겠다.’
준후는 피식 웃어버렸다.그의 웃는 얼굴을 본 은영은 만족한듯 귀여운 웃음을 지었다.
“이제 내 말을 알아들었나 보네요.”
“그래.약간은.”
“그럼...”
은영은 고개를 숙여 준후의 입술을 고양이처럼 살짝 핥았다.약간은 의아한 준후의 표정을 보며 은영이 중얼거렸다.
“여기에 순수하게 영화만 보러오는 남녀가 얼마나 되겠어요?”
“날라리 다됐구나 성은영.”
말은 그렇게 했지만,은영을 따라 준후도 픽 하고 웃어버렸다.다시금 둘의 입술이 만났고,이번에는 준후의 손이 그녀의 치마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흠...”
그녀의 깊은 호흡이 준후의 입안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쳤다.순식간에 둘의 혀가 엉키었고,준후의 손은 은영의 잘 발달된 엉덩이를 주물렀다. 그것도 잠시,그는 참을수 없다는 듯 은영의 팬티 안으로 손을 넣어 살결의 감촉을 직접느끼기 시작한다.
“하아..”
은영은 준후의 몸위에 올라탄채로,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만지는 그의 손길에 몸을 조금씩 비틀었다.이윽고 그녀의 브라우스는 준후의 손에 의해 벗겨져나갔고,그것은 이윽고 침대를 가장한 쇼파 한구석에 쳐박혀 버렸다.
“오빠 천천히..흑!”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준후의 손은 그녀의 브라마져 벗겨버리고는 탐스러운 그녀의 가슴을 가득 움켜쥐었다.고교생이라고는 믿을수 없는 성숙한 몸매.스크린의 불빛을 받아 왠지 더욱 빛이나는 그녀의 하얀 허리가 조금씩 흔들렸다.그녀의 팬티마져 준후가 벗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찰칵.
옷이라곤 치마하나밖에 남지 않은 은영은,살짝 준후의 몸위에서 내려오며 그의 바지 후크를 풀어 주었고,이윽고 사각팬티위를 볼록하게 만든 그의 중심부를 볼수 있었다.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의 사타구니 사이로 얼굴을 가져갔다.그녀의 손에 의해 준후의 팬티는 무릎까지 내려갔고,곧이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사이로 벌개진 그의 귀두가 스르르 빨려들어갔다.
“음..”
은하와의 잦은 경험이 있는 준후도,문득 은영이 꽤 익숙해 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자신과의 관계는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그 짧은 관계에서 그녀는 점점 더 스킬이 좋아지는듯한 착각이 든다. 멀쩡한 아이를 요부로 만들었다는 아주 짧은 죄책감도 잠시,그녀의 얼굴이 위아래로 흔들렸고,자연스레 준후의 손도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위치한 깊은 샘쪽으로 빨려들어갔다.
“쪽..쪽..쪽..”
이미 영화의 대사는안들린지 오래였다.방안에는 준후의 거대해진 자지를 입에 문채로 연신 신음을 흘리는 은영의 목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뿐이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채로 치마하나만이 몸을 가린 아슬아슬한 복장.준후의 손에 의해 은영은 다시금 준후의 위로 살며시 올라탔다.기세등등하게 솟아오른 그의 기둥이 살며시 그녀의 조개살틈사이로 닿았고,준후는 무언가 부드럽고 뜨거운 감촉이 들어왔다.충분히 젖어있는 그녀의 샘.은영은 그때보다 더욱 흥분한것처럼 보였다.
“하윽..”
약간만 허리를 움직였을 뿐인데도,준비가 다 되어서 인지 결합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다.은영은 준후의 가슴쪽을 팔로 눌러 지탱하며 쉽사리 엉덩이를 뒤로 빼지 못했다.반쯤이나 들어간 그의 자지.준후는 은영의 가슴을 매만지며 살짝 골반을 위로 들었고,그것은 이내 기다렸다는듯 뿌리까지 깊이 은영의 몸안으로 침투했다.
“흐응..”
준후는 그자세에서 은영을 그대로 꽉 끌어 안았다.그의 위에 올라탄 그녀의 다리는 더더욱 벌어졌고,밑에 있는 준후의 허리가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폭주기관차처럼,은영의 몸안을 거침없이 해집어 놓았고,그녀는 준후의 목을 꽉 끌어 안은채 신음했다.
“아..아퍼요..흑..흐윽..흥..”
본능적으로,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력을 느낄수 밖에 없는 여자의 몸.그리고 너무나 싱그러운 나이의 그녀의 몸으로는 타오르는 듯한 그의 몸이 여지없이 직격되고 있었다. 준후는 허리가 아파오는것도 잊은채,계속해서 은영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아앙..하앙..아아..”
은영은 계속해서 몸을 비틀었다.준후는 한참동안의 행위중에,은영의 질이 자신의 자지를 엄청나게 세게 조이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이윽고 느껴지는 축축한 기분.그녀는 준후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부르르 떨었다.
“오빠..나 미치겠어요..”
“이쪽으로 누워봐.”
“하지만..힘들다구요.이것봐요.”
그녀가 살짝 몸을 옆으로 눕혔고,그녀의 몸안에 들어가있던 준후의 자지는 튕기듯 빠져나왔다.이윽고 거의 젖다시피한 그녀의 하반신이 보인다.그녀는 이미 한번 절정에 올라탔던 모양이었다.
“뭐하는거야?”
“나만 기분좋으면 미안하잖아요.기다려봐요.”
은영은 준후의 옆에 앉더니,이윽고 하얀 손으로 준후의 자지를 어루만졌다.그녀가 절정으로 혼자 가버린탓에 허탈했던 준후는 다시금 눈을 감고 쾌감을 즐겼다.그녀의 손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그를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쪼옥.쪽..”
은영은 섹스에 있어서는 정말 모범생인것만 같았다.은하에 견줄수는 없겠지만,뭔가 자신이 스스로 센스있게 터득해 나가는 것만 같다.그녀는 확실히,어떻게 하면 남자가 기분좋은지 잘 아는 여자였다. 은영은 준후의 귀두를 입술로 쪽쪽 빨면서,손으로는 연신 그의 기둥을 위아래로 흔들어 주었다.
“야..나올거 같다.”
신호는 금새왔다.은영은 준후의 말을 듣고도 자신의 행위를 계속했다.별다른 말이 없었기에,준후는 그 자세 그대로 절정에 올랐다. 자신의 입속에서 준후의 자지가 꿈틀거리자,은영은 손을 흔드는 대신 그것을 꽉 움켜쥐여 보였다.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사이로,준후의 분신들은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콸콸 쏟아져 갔다.
한차례 머리속에서 폭풍이 치고나자,준후는 은영이 옷을 추스리지도 않고 한쪽에 놓인 티슈를 꺼내 자신의 정액을 뱉어나는 것을 볼수 있었다.
“휴지가 원래 여기 있었던 거야?”
준후의 질문에,은영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닦아내고는 옷을 추려입기 시작했다.여전히 옷을 추스리지 않고 있는 준후를 보며 은영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했죠? 여기오는 남녀중에는 영화만 보는 사람은 드물다구요.”
언제나처럼 달빛은 차가웠다.
가로등이 층층이 밝혀주는 밤거리.서울의 밤은 낮보다도 밝았다.준후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로,느긋하게 벽에 몸을 기대고는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인파를 바라보았다.약간은 늦은 시간. 하지만 그 시간동안 과제며 여러가지 학교일로 바쁜 은채를 데리러,준후가 직접 그녀의 학교로 찾아온 것이었다.
어딜봐도,은채보다 나은 여자는 없어보였다.단순히 외모뿐만이 아니라,늘 얼굴에 가득한 상냥함. 고아로 자란 자신에게도 따뜻한 것이 무언인지 알게 해준 그녀의 미소.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내에선,은채만한 여자가 없으리라,준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
문득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는 듯한 은채의 표정이 준후의 시야에 들어왔다.그녀는 황급히 같이있던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준후를 향해 달려왔다.파스텔톤의 원피스.어찌보면 수수하기 그지 없는 복장이었지만,머리를 예쁘게 묶어 올린 은채에게는 어떤 드레스보다도 아름다운 옷이 되어 있는것만 같았다.
“왠일이야?”
은채는 너무나 의외라는듯 준후를 보고 웃었다.준후역시 반사적으로 피식 하고 웃어보였다.
“그냥.너무 늦었는데 학교라길래 궁금해서.”
“내가 언제나올줄 알고 기다렸어..미안해.많이 기다렸지?”
“또 미안하다고 한다.뭐가 미안해.니가 오라고 해서 온것도 아니잖아.”
“그치만..”
은채는 멋적게 웃었지만,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느껴져서,준후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혹시 이 학교에 내가 니 동생이라는거 아는 사람있어?”
“아니?없는데 그건 왜?”
준후는 대답대신 은채의 손을 잡아끌었다.왠지 모르게 차가운 그녀의 손.준후는 힘을주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아주었고,은채는 행복한듯 싱긋 웃었다.
“겨우 손잡으려고 그거 물어본거야?”
“겨우라니.더 큰 스킨쉽을 원하는구나?”
“아..아니야!”
자신의 농담에 얼굴까지 붉어지며 당황하는 은채를 보고는,잘 웃지 않는 준후지만 오늘만 해도 몇번이고 웃었다,
자신의 손을 꽉 쥐어주는 은채의 감촉을 느끼며,준후는 그녀를 데리고 길가에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준후야.”
갑작스레 잡고있던 자신의 손을 확 놓아버리는 은채.준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은채를 바라보다가,그녀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저 멀리에 있는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것을 알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누군가가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하..?’
틀림없는 그녀였다.페셔너블한 정장차림.화장을 한 얼굴이 더욱 섹시하게 느껴지는 한 여인이 준후들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대치된 상황.주변사람들은 준후를 중심으로 양옆에 각각 느낌이 다른 미녀가 서있는 그 모습을 흘끔거리며 바라보고 지나갔다.
“어..언니.”
은채는 그 어느때보다 당황하며 은하를 불렀다.과연 살면서 은채가 이토록 당황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마져 붉어진 그녀를 보며,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둘이 같이 있었어?”
준후는 살짝 경직된 얼굴로 은하를 바라보았다.이게 뭐하는 거야?라는 듯한 그의 눈빛을, 은하는 바라보지 않은채로 은채의 얼굴만을 응시했다.
“아..응.준후랑 여기서 만나서..”
준후는 은채가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래서 무엇하랴.어차피 은하는 자신과 은채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언니는?이근처 지나간 거야?”
은채의 살가운 말에도 은하는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왠지 모르게 경직되기까지 한 그녀의 표정.그녀는 여전히 준후를 바라보지 않은채로 은채를 보며 말했다.
“잘됐네.같이 저녁먹을래?”
“형님.그여자는 없었습니다.”
기주는 부하의 보고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예상했던 일이지만,역시 눈치가 빠른 여자라고 생각하며.
‘그 여자..벌써 눈치를 채고 도망친건가.’
물론,기주의 리스트에 미진이 껴있었던 것은 아니다.아니,오히려 그녀는 위험리스트에서 제외된 후였다.그녀의 뒤를 봐주는 보스가 사라진 이상,그녀는 더이상 그 어떤 기득권도 갖고 있지 않은 허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미진이 준후의 집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부하의 보고는 기주를 조금 씁쓸하게 했다.
‘애초에 그여자가 노리던 것은 준후의 친모임을 주장해서 돈을 타내려는것이 아니었어.’
보스와 미진의 밀회를 엿들었던 기주는 잘 알고 있었다.오히려 강회장의 돈을 노리던 것은 보스였고,미진은 그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제거당할거라 생각해서 도망을 친건가?’
기주는 그럴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를여자가 바로 미진이었다.
“강회장의 행방은?”
“워낙 출장을 많이 다니는 탓에 확실히 잡기가 어렵긴 합니다만..지금은 부산쪽에 내려간 것 같습니다.”
“부산?”
“네.한경건설 분사가 있는 곳입니다. 호텔에 체크인 한걸로 봐선 적어도 내일까지는 거기 있을듯 합니다.”
사내의 말을 천천히 곱씹은 기주는 살짝 머리를 움켜쥐었다.이제는 다시 돌아갈수 없는길.애초에 돌아갈 생각도 없었지만,그는 어찌됐던 준후의 보호자가 아닌가. 약간은 갈등이 되는것도 사실이었다.
‘그 사실만..내가 알지 않았어도.’
기주가 이번 프로젝트 관련된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찾아낼때마다,그가 모르던 정보도 하나하나 입수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그 프로젝트로 인한 아이들중 고아원에 맡겨진 것은 차라리 잘 풀린 케이스라는 것이었다.조금이라도 장애,혹은 이상이 있는 아이들은 그대로 안락사 처리되었고,외부에 그것이 조금씩 알려질 기미가 보이자 프로젝트는 대량의 고아를 양산하고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기주는 그것을 절대 용서할수 없었다.그들이 얼마나 사회적인 약자로써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대부분이 왜 범죄쪽에 관련된 어두운길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택하는지도.나이는 어리지만 그쪽에 산증인이라 할수있는 기주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피우던 담배를 비벼껐다.망설이기엔 너무 늦었고,또 여기서 그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돈으로 비리를 덮은 강회장.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있는 유일한 인간으로써 기주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그는 살짝 몸을 일으키며,부하에게 지시했다.
“부산으로 가자.지금당장 차 준비시켜.”
레스토랑 안은 무거운 어색함만이 흘렀다. 늘 테이블위에서 상냥하게 이것저것 잘 물어보는 은채도,오늘은 왠일인지 조용했다.
“왜들 그렇게 말이 없어?”
은하는 아예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인듯,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준후와 은채에게 말했다.준후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지만,은하는 개의치 않는듯했다.
“아니..너무 갑작스러워서.”
“둘의 데이트라도 내가 방해한 거니?”
“무..무슨소리야 언니.아니야.”
은채는 괜시리 손까지 저어가며 부정했다.준후는 가슴이 답답해 지는것이 느껴졌다.지금 은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찌보면 첫 시련일지도 모르는 지금의 이 자리.그녀는 편안할까?
준후는 자신이 가만히 있을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앞에 있는 냉수를 들이키며,은하에게 말했다.
“그냥 너무 늦었길래 데리러 갔을 뿐이야.”
은하의 고양이 같은 눈망울이 준후를 응시한다.뭔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한 그녀의 눈빛을,준후는 살짝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묵묵히 그의 눈빛을 받아내었다.
“나 늦었을땐 한번을 안오더니?”
준후는 이를 살짝 물었다.은하와 단둘이 있을때면 모를까,지금 이 자리에서의 은하는 준후에게 있어서 ‘큰누나’이기 때문이었다.단둘이 침대에서 있을때는 준후의 말을 잘듣는 요부일지 몰라도,은채가 있게되면 말이 달라지는 것이다.
“니들 그렇게 붙어 있으니까 꼭 사귀는거 같다야.너무 그러고 다니지마.동네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
그녀의 말이 결정타였는지,은채는 더욱더 당황했다.모르는 사람이 봐도 은채와 준후의 관계를 의심할정도로 너무나 티가나는 은채의 표정. 준후는 은하에게 그만 하라는 눈빛을 보냈지만,은하는 애석하게도 준후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나 화장실좀 다녀올게.”
참다못한 은채가 살짝 몸을 일으켰다.준후는 천천히 걸어나가는 은채의 뒷모습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할수 없는 그런 사이.은채는 그런 벽을 지금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뭐하는 짓이야 너.”
준후는 살짝 얼굴을 감싸쥔채로 은하에게 중얼거렸다.그녀의 눈망울이 천천히 준후를 향한다.
“내가 뭘?”
“몰라서 물어?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말조심해.밖에 나오면 난 니 큰누나야.”
“뭐?”
준후는 황당한 표정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오늘 단단히 결심을 하고 나온것이다.그 목적은 비록 알수 없지만.
“도대체 이유가 뭐야?나랑 은채 관계를 알았으니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은하는 반짝이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준후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말을 조금은 아끼더니,이내 준후와 마찬가지로 앞에 있는 물잔에 입을 가져갔다.
“니가 그랬잖아.욕망 가는데로 하라고.성녀의 길은 갈수 없다고.”
준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은하와 처음 몸을 섞을때에 준후가 그녀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그래서?”
“나도 원하는걸 갖고 싶을 뿐이야.말했잖아?내가..너에게..”
은하는 눈물을 참는듯,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준후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첫번째가 아니어도 좋다고.”
진심이 담긴 그녀의 말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준후의 사랑을 갈구하는 듯했다.자신의 동생인 은채에게 가있는 준후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을 바라봐 주길 원하고 있었다.
“그걸 바래서 한 행동이 이거야?”
“적어도 니가 내 마음을 알테니까.”
마지막으로 그녀가 남긴 그 말. 은하는 처음으로 준후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속의 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지만 준후 역시 아무런 말을 할수 없었다.자신이 은채를 원했던 마음을 잘 알기에,그녀가 얼마나 힘들까 라는 것쯤은 쉽게 유추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띠리링.
테이블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에서 문자메세지 수신음이 울렸다.그는 살짝 테이블위로 시선을 돌렸다.
-나..먼저 집에 들어갈게.미안하지만 언니에게 잘 말하고..같이 밥먹고 와.-
은채의 메세지였다.준후는 반사적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애써 울음을 참는 듯한 그녀의 얼굴.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은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봐..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모두 끝이니까.”
준후는 달리고 또 달렸다.서둘러 레스토랑 앞을 나왔지만,있어야할 은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는 집이 있는 방향쪽으로 서둘러 달렸다.
‘아..’
준후는 저 멀리 보이는 한 실루엣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뒷모습이지만,준후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강은채!”
그녀의 걸음이 우뚝하고 멈춰섰다.있는 힘껏 그녀를 부른 준후는 달리는 속도를 더더욱 높였다.그녀가 천천히 뒤를 돌아서며 자신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약간의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녀의 근처까지 달려간 준후는 그녀를 안아 버렸다.은채는 몇번이고 준후의 품안에서 반항을 했지만,준후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는 더욱더 세게 안았다.이윽고 은채의 울먹임은 더욱 거세어 지기 시작했다.
“너 왜그래?”
“무서워..큰언니가 우리사이를 아는것만 같고..그게 무서워..”
“다 끝난 말이잖아.도대체 뭐가 무섭다는거야.”
“큰언니가 그냥 눈감아 준다고 한다면,다른 시련은 없을까?”
준후는 가슴이 답답해 지는것을 느꼈다.한없이 여린 은채의 마음. 그녀는 분명 오늘 은하의 말에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늘 준후가 늦을 때마다 동네 놀이터에서 그를 기다렸던 은채의 배려.이제는 자신이 배려할 차례라 생각하며 준후는 은채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바보같은 소리좀 그만하자.도대체 왜그래?나만 믿으면 되잖아.”
은채의 울음소리는 점점 사그라 들었다.그녀의 작은 어깨를 껴안은 준후의 가슴은 계속해서 뛰었다.사람들은 그들을 힐끔거리며 바라보았지만,준후의 눈에는 그 어떤 것들도 들어오지 않았다.자신의 품안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그녀.준후는 그녀를 안은 손에 힘을 주며,조용히 그녀에게 속삭였다.
“가자..은채야..둘만 있는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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