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A....1편.
페이지 정보
본문
2010년 1월.
찬웅은 오늘도 악몽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40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잠을 편하게 자 본적이 없었던 찬웅은 그나마 요즘 들어 희미하게나마 희망이란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꿈에서나 그려보았던 엄마, 숙정과 함께 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 자신을 버렸던 엄마였지만 이제 세상엔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숙정뿐이었다. 비록, 알콜 중독에 빠져있는 엄마였어도 그에겐 삶의 끈과 같은 존재였다.
숙정의 몸은 이제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했고 쭈글쭈글 했다. 젖가슴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그녀의 보지는 여성이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통로 일뿐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렇게 숙정을 씻겨주고 밥을 먹인 찬웅은 집을 나와 출근을 했다.
미싱사인 그는 기술이 출중해 동대문에서 알아주는 기술자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미싱사란 직업은 엄청나게 고되고 천시 받는 직업이었지만, 동대문이 쇼핑타운으로 바뀌면서 이제는 고급기술자 품귀현상 때문에 찬웅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접이란 것을 받고 있었다. 동대문에서 그를 찾지 않는 디자이너는 거의 없을 정도로 찬웅의 기술은 출중했다.
한쪽 다리를 저는 찬웅은 불구의 몸으로 열 몇 시간 동안 일을 하며 졸다가 바늘에 찔리기를 수십 번이 넘었고, 그렇게 일해서 받는 돈은 20만원이 채 되지 않았었다. 1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으려면 시다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술을 익혀야 했지만 누구도 그에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찬웅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 사람은 태혁이었다. 제 코가 석자였던 참혹한 현실 속에서 처음으로 찬웅의 손을 잡아주었던 사람이 태혁이었다. 그는 찬웅을 비롯해 미싱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그들을 조직화했고, 동대문이 패션타운 화 되면서 고수입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위암으로 죽고 말았다.
엄마인 숙정의 건강도 호전되면서 이제, 찬웅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숙정과 살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40평생을 살면서 가슴에 처음으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시 그에게 참혹한 현실이 다가왔다. 퇴근해 집에 돌아온 그를 맞아 준 것은 목을 매고 자살한 숙정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혀가 입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고, 보지에선 액체가 흘러나왔고, 바닥엔 검붉은 똥이 떨어져있었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찬웅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엄마를 만나기 전엔 눈물이 나온 적이 없었지만, 희망을 품고부터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었다.
숙정의 유해를 들고 찬웅은 고향에 내려갔다. 모텔에 방을 잡고 그는 뭔가를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자신이 살던 마을에 들른 찬웅은 기분이 묘했다. 그가 살았던 곳엔 대형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었고, 그 뒤로는 거대한 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작고 귀엽고 따뜻했던 교회는 너무나 거대하고 웅장해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자신의 엄마 숙정이 힘겹게 삶을 이어가던 방직공장은 사라지고 대형마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낯설었다. 너무나 낯설었다.
[사장 할머니와 아줌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찬웅의 기억속의 두 사람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이었다. 사장 할머니는 찬웅을 친손자처럼 대해줬고, 사장 아줌마는 항상 명랑한 얼굴로 찬웅을 친자식처럼 대해줬었다. 엄마 숙정이 자신을 버리고 사라졌을 때, 아버지인 대협이 죽었을 때 사장 할머니는 찬웅에게 ‘죄 와 벌’이란 책을 주었고, 그 책은 성경처럼 찬웅의 손에 아직도 쥐여져 있었다.
“차, 찬웅아!~~~”
찬웅이 고개를 돌리자 키가 작은 40대의 남자가 보였다. 그의 옆집에 살던 상철이었다. 그는 불구의 몸인 찬웅이 못된 친구들에게 당할 때마다 자신도 힘이 없으면서도 함께 당해주었던 유일한 친구이자 형과 같은 존재였다.
상철은 찬웅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그는 예전 집을 팔고 홀로된 엄마인 연옥과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찬웅을 본 연옥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안아주었다. 환갑이 지났음에도 연옥은 아직도 건강해 보였다. 상철이 중학교 때 그의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연옥도 고생을 많이 했었다. 찬웅과 같은 마을에 살았던 동창 중에 환기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엄마인 현숙은 이자놀이로 돈을 많이 모았다.
연옥도 현숙에게 돈을 빌렸다가 이자 때문에 곤욕을 많이 치렀고, 상철만 있는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도 해 상철도 곤욕을 치렀다. 보통, 2부에 빌릴 수 있는 돈을 현숙은 3, 4부에 빌려줬으니 동네에서 욕을 많이 먹었지만, 희한하게도 그 집은 참 잘 살았다. 그래서 상철은 찬웅에게 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상철에게는 남동생인 광주가 있었는데, 그는 변호사가 되었다고 했다. 중동 기술자였던 상철의 아버지인 기성의 고향은 광주였다. 그가 중동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군부에 의해 광주가 불바다가 된 것이 안타까웠던 기성은 막내의 이름을 광주로 지었던 것이었다. 상철은 아버지 기성의 유지를 받들어 일찍부터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어 홀로된 엄마와 어린 동생을 돌본 것이었다.
상철은 키도 작고, 말 주변도 없어서 그런지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결혼도 못하고 있었다. 연옥은 베트남처녀 얘기를 했지만, 상철은 펄쩍 뛰었다. 연옥과 상철의 모습을 보며, 찬웅은 오랜만에 가족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상철이 하고 있는 이 정도였다. 엄마 숙정과 단 둘이서라도 함께 사는 삶 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 정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구나란 생각이 들자 자신의 처지가 미치도록 한스럽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상철과 연옥에게 환대를 받은 찬웅은 감개가 무량했지만 그는 더 이상 삶의 희망이 없었다. 찬웅은 상철과 함께 자다가 새벽에 몰래 밖으로 나왔다. 모텔로 돌아간 그는 숙정의 유해를 들고 바다로 갔다. 넘실대는 바다에 숙정을 뿌려주며 찬웅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늘에 고운 달이 밝게 빛을 뿜고 있었다. 찬웅은 마지막으로 달을 바라보면서 회한에 잠겼다. 마흔의 나이에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을 독하게 먹었지만 막상, 자살하려고 보니 파란 만장했던 삶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며 그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와 앞을 가렸다.
태어날 때부터 한쪽 다리를 못 쓰게 태어난 찬웅은 4살 무렵에 교통사고로 형이 죽고, 아버지는 뇌를 다쳐서 세 살짜리 수준의 남자가 되고 말았다. 힘들게 생활을 책임지던 그의 엄마 숙정은 모진 삶을 견디지 못하고, 찬웅이 중학교 때 그를 버리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엄마 숙정이 도망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버지 대협은 요양원에 숨지고 말았다.
고아가 된 찬웅은 삼촌 대성에게 의지했지만, 그곳에서도 안주하지 못하고 참혹하게 무너져 가는 삼촌과 고모를 지켜봐야만 했다. 순진하게 농사만 짓던 삼촌 대성은 타짜들에게 걸려서 그나마 있던 땅과 재산을 탕진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성은 완전히 노름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대성은 어린 여동생 춘희를 40살이나 많은 군 장성 출신의 남자에게 재취로 팔다시피 보내버리고, 그 결혼으로 받은 돈까지 날려버리고 나중엔 아내인 자영까지 팔아버리고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말았다. 찬웅은 숙모, 자영이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가던 날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찬웅은 미싱일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는데, 하루라도 빨리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싶어 매일, 새벽까지 배운 것을 연습하고 있었다. 읍사무소에서 찬웅과 같은 장애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새벽에 스쿠터를 타고 집에 돌아온 찬웅은 집으로 들어가는데 문을 열어보니 자영이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울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자영을 강간했고, 다른 두 명은 옆에서 킬킬거리고 있었다.
자영은 그 와중에도 찬웅을 보고 도망가라고 외쳤고, 너무 놀란 찬웅은 멍하니 서 있다가 남자들에게 다구리를 당하고 땅바닥에 처박히고 만다. 배를 맞아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고, 머리를 맞아 터져버릴 것처럼 아팠다.
잠시 뒤, 자영은 하의가 벗겨진 채로 끌려나와 봉고차에 태워졌고, 또 한 놈은 차에 오르기 전에 찬웅의 배를 걷어차고서야 차에 올랐다. 그때였다. 먼발치에 누군가 서있었다. 그가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자, 그의 얼굴 윤곽이 들어났다. 찬웅의 삼촌 대성이었다. 봉고차는 떠나버렸고, 대성도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찬웅은 그 후, 자영과 춘희를 만날 수가 없었다.
졸지에 버려지게 된 찬웅은 고등학교 선생이었던 외삼촌 석현에게 의탁했다. 그곳에서 찬웅은 겨우 미싱일을 배우면서 어떻게든 자신 스스로가 독립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외삼촌 역시, 사기꾼들에게 속아 투자를 잘 못해 퇴직금 전부와 집까지 날려버리고 자살하고 말았다. 외숙모인 주연은 졸지에 찬웅과 대학생인 찬웅의 이모 건영을 책임져야만 했다. 다행히 일본에 있던 작은외삼촌 석기의 도움으로 조그만 분식집을 시작해 새로운 시작을 하려했지만, 그 나마도 재개발에 휘말리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용역들과 사투를 벌이던 주연과 건영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모두 조폭 용역들의 소행임을 알고 있었지만 경찰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외삼촌인 석기도 일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도 없었다. 찬웅은 더 이상 의탁할 곳이 없었는데, 태혁이란 최고의 미싱 기술자의 도움으로 기술이 늘면서 어느 정도 스스로가 독립할 여지를 마련하게 된다.
태혁으로 인해 다시금 삶에 대한 의지를 차린 찬웅은 경찰을 통해 만나게 된 엄마 숙정으로 인해 희망을 가슴에 품게 되었지만, 그렇게 40살의 나이에 희망을 품고 살려고 했던 찬웅은 엄마인 숙정의 자살로 더 이상 삶의 의지를 잃고 말았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낡고 너덜너덜해진 ‘죄와 벌’이란 책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책은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뜬 채, 흔들거리기만 했다.
찬웅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불행한 일들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듯 했다. 자신의 잘 못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점점 사라져 가는 노을을 보던 그는 다리에 줄로 연결한 돌을 안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 속에 빠진 찬웅은 점점 밑으로 내려가며 호흡이 가빠왔다. 많은 물이 그의 입속으로 들어왔고, 어두운 바다 속으로 계속 잠기며 의식을 잃어갔다. 입 안으로 물이 가득 밀려들어와 더 이상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이젠 폐에도 물이 가득 찼을 것이었다.
[그래...이제 그만 죽자, 박찬웅!! 더 이상 쓰레기 보다 못한 삶을 살아서 뭐 하냐...!!]
그렇게 체념하자 호흡이 되지 않고, 머리가 아득해지며 서서히 그의 눈이 감겼다. 아득하게 깊은 바다 속으로 떨어져 내리며 의식을 잃던 찬웅은 갑작스럽게 온 몸이 압박되며, 뼈와 살이 일그러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와 눈이 떠졌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자 입에서 물이 밀려나왔다. 찬웅은 코가 매워 머리가 아팠고, 호흡이 쉽지 않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조금 지나니 어딘가로 밀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던 찬웅은 머리가 뻐개지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밀려와 비명을 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찬웅은 마치 자신의 머리가 프레스기에 눌리는 듯한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찬웅의 머리를 잡아당겼고, 조금 지나 밝은 빛이 느껴지며 머리가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나더니 찰싹!~ 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화끈거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허!~ 이 놈 봐라 울지도 않고 숨을 쉬네...허허!~]
이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닦았지만 불빛이 너무 밝아 눈을 뜰 수 가 없었다. 찬웅은 누군가 자신을 안고 뭐라고 말을 했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저벅, 저벅~ ....바스락~ 바스락~ 스윽~ 슥!~
찬웅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는 머리가 상쾌했고, 몸에도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리게 보이던 주변 배경이 점점 확실해지며 고화질 티브이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1975년 4월 이었다. 1975년 이면 찬웅이 6살이었다.
그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떤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작은 체구의 여자는 봉긋한 젖가슴을 브래지어로 가렸고, 보지에는 검은 털이 수북했다.
찬웅이 손을 움직이자 그의 의지대로 팔이 움직여졌다. 몸을 일으키자 몸도 움직였다.
“어머나~ 찬웅이 일어났니?”
움직이는 찬웅을 본 여자가 깜짝 놀라며 팬티만 입은 채 그에게 다가왔다. 찬웅은 아직 평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녀가 손을 잡아주자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어머, 어머~ 섰네~! 우리 찬웅이가 일어섰네!~~”
우당탕탕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꼬마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상철아, 찬웅이가 일어났어, 찬웅이가!”
“와!~ 찬웅이가 일어났다! 와!~~”
찬웅은 꼬마를 보고 나서야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찬웅의 옆집에 살 던 불알친구 상철이었고, 옷을 갈아입던 여자는 그의 엄마 연옥이었다. 분명히 어제 봤던 그들은 아니었다. 찬웅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알 수 없어서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찬웅이 상황을 파악하느라 애쓰기를 30분이 지나자, 연락을 받은 그의 엄마 숙정이 달려와 찬웅을 껴안으며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갑작스런 이 상황에 당황할 뿐이었다.
“괜찮아, 찬웅아? 어디 아픈데 없어?”
숙정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뱉어내고 있었고, 연옥도 눈물을 흘리며 찬웅의 얼굴을 만지고 몸을 만져댔다. 상철은 계속 찬웅을 뚫어져라 보며 숙정과 연옥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됐어, 숙정아, 이젠 모두 잘 된 거야, 그렇지?”
“어, 언니 덕분이야... 고마워 언니, 정말 고마워!~”
숙정은 그렇게 말하고는 연옥을 껴안고 서럽게 울었고, 연옥은 숙정의 등을 토닥이며 잘됐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찬웅은 도대체 뭐가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꿈인가? 나와 상철이는 여섯 살짜리의 몸이고, 엄마와 아줌마는 너무 젊잖아...! 또 악몽인가? 이러다가 이 사람들이 내 목을 쥐고 터뜨려 버리겠지?]
하지만 찬웅의 생각처럼 그들이 자신의 목을 쥐고 터뜨리는 일은 한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숙정에게 안겨 오랜만에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잠이든 찬웅은 다음날 깨어나 자신의 볼을 쥐고 늘였지만 아픔이 밀려왔고, 세수를 하기위해 물에 손을 담그자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자신의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머리털이 곤두서게 만들었다. 분명히 꿈은 아니었다.
정신이 돌아 온지 일주일이 지나면서 찬웅은 자신이 다시 태어났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1975년 4월, 그가 6살 때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그는 다시 태어났음에도 또래에 비해 여전히 덩지가 작았지만, 예전처럼 다리를 저는 불구가 아닌 정상이어서 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대로였다. 찬웅의 예전 기억대로 형은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의 아버지 대협은 사고 후유증으로 요양원에 있었고, 그의 엄마 숙정은 동네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악착같이 일하고 있었다.
찬웅은 난감했다. 예전 그 지옥 같은 삶은 또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악몽을 꾼 것인가? 악몽이었다면 너무나 긴 꿈이었고, 너무나 선명하고도 잔인한 꿈이었다. 머릿속이 다시 혼란스러워진 찬웅은 6살의 몸으로 마흔 살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