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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회전그네 <1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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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311 회 작성일 24-02-25 02: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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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부-그녀들의 마음.




쨍그랑!

무언가가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며,순식간에 여자들의 비명소리로 가득차 버린다.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군상들도, 덩치큰 사내들이 몰려들어오자 겁을 집어먹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꺄악!”

서울시내에 잘나가는 고급 룸살롱.종업원들은 모두 혼이 뺏길 정도로 아름다운 아가씨들 뿐이지만,그녀들은 갑작스런 조직폭력배들의 침입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기 바빴다.

콰직!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용감하게 막아선 웨이터 한명이,덩치큰 사내의 발길질에 그만 주르륵 밀려나 벽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자아내었다.

“아이 시발 뭐 이렇게 시끄러워!”

술에 취해 호기있게 외친,손님으로 보이는 사내는 이내 술이 확깨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헉!”

그는 곧 외마디 비명을 지른채 뒤로 굴러버렸다.그가 룸의 문을 열자마자,조폭으로 보이는 사내가 자신의 배를 걷어찼기 때문이었다.그 방에서 그의 접대를 들던 여자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기집년들은 다 나가.”

험악한 사내의 말에 그의 곁에서 술을 따르던 두세명이 고개를 숙이고는 후다닥 밖으로 나가버린다.걔중에는 옷을 벗고 놀았는지 반라의 상태에서 옷으로 가슴만 가리고 나가는 여자도 있었다.

“다..당신들 뭐야.”

비싼돈 들여서 여자 불러서 양주빨며 즐겁게 놀다가 졸지에 봉변을 당한 사내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175정도의 키에 살짝 배가 나온,전형적인 중년의 사내였다.

“크윽!”

그는 대답대신 돌아온 발길질에 대굴대굴 굴러 양주며 과일안주가 펼쳐진 테이블에 머리를 박아 버린다.그는 입가에 느껴지는 비릿한 맛에 술이 홀랑깨는 느낌을 받았다.

사내는 얼른 놀려고 벗어뒀던 안경을 테이블에서 잡아 들어 자신의 얼굴에 썼다.혹시나 안경을 쓰면 더는 때리지 않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였다.

저벅..저벅..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여온다.그리고 자신의 방문앞에 서있던 조폭들이 좌우로 밀착하며 길을 만들었고,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였다.

“누..누구세요..?”

사내는 이제 겁이 질릴대로 질려 걸어들어온 사내를 바라보았다.180은 되보이는 훤칠한키에,호남형으로 잘생긴 청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고작해야 20대 중반은 넘지 않을것 같은 남자지만,그는 바보같이 넌 누구냐!라고 외칠수 없었다.저렇게 떡대 좋은 사내들이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남자이니,상황파악이 안될리 만무하다.

“한철호.맞나?”

검은정장이 너무나 맵시있고 멋드러지는 그.하지만 무표정인 그얼굴은 공포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청년...아니 기주는 품안을 뒤적거려 담배를 꺼내 물었고,그의 옆에 서있던 인물이 잽싼 동작으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마..마..맞습니다만..누구신지..”

뒤이어 철호라 불린 사내의 복부로 기주의 발길질이 꽂혀 버렸다.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는 뒤로 또 한두바퀴 굴러 버린다.

“윽..어윽..꺼억..”

철호는 호흡마져 곤란한지 꺽꺽 대었지만,기주는 여유롭게 그의 앞으로 다가와 양주테이블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꽤나 무거운 테이블인데다,각종 술들이 셋팅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주의 발길질 한번에 뒤로 주르륵 하고 밀려버린다.

“누구냐고?날 몰라서 묻는거냐?”

기주의 말에 철호는 호흡이 곤란해져 끅끅 거리면서도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아무리 봐도 초면의 얼굴이었다.게다가 자신의 지인중에 조폭이 있을리도 만무한 것이었다.

“저..정말 저는 모릅니다..으아악!”

이윽고 자신의 얼굴로 담배불똥이 튀자,그는 서둘러 자신의 얼굴을 쳐내었다.볼부분이 화끈거린다.기주가 피우던 담배의 불똥을 손으로 자신의 얼굴에다가 튀긴것이었다.

“이상한 일이로군.난 널 잘 아는데.물론 요 며칠 정보를 수집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기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그는 왠지 모를 공포심에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기주는 천천히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한철호.생명과학 연구원으로 정부산하 조직에서 10년간 근무.그리고 약 20년전에 아주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참가 했었지.”

기주의 말에 그의 눈동자는 크게 흡떠졌다.비밀리에 조직되고 비밀리에 해산된 그 프로젝트.반 인륜적인 고아를 다량 탄생시켰던 그 프로젝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도 잊혀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그 프로젝트를 이런 어린 청년이 어째서 알고 있는 것일까?

“재밌네.그때 생명가지고 장난쳤던 새끼들은 룸싸롱에서 이렇게 기집애 끼고 술빨고 있고 말이야.”

“도대체 당신..아니 선생님은 누구시길래..?”

“니가 그때 장난쳐서 만들어낸 애새끼들중 하나다.”

기주의 말에 철호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기주의 표정은 험상궂기 그지 없었다.철호는 마치 사자앞에선 사슴처럼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알고있나?”

기주의 말에 철호는 눈앞이 캄캄해 지는것을 느꼈다.모른다고 하면 죽이기라도 할 살기였기 때문이었다.더욱더 중요한 것은,그 책임자를 철호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원체 비밀리에 계획되었던 프로젝트이니,연구원중에 책임자와 손이 닿는 이는 한두명에 불과했다.

“저..저는 정말 모릅니...”

철호는 기주의 뒤에 있는 자가 품안에서 날이 시퍼런 칼을 꺼내는 것을 보며 얼어붙어 버렸다.냉철한 사신과도 같은 표정.20대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살기를 뿜으며,기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는대로 말해.목숨이 오가는 문제니까.”








그날도 준후는 여느때처럼 연습실에 쳐박혀 있었다.합격차 발표도 났겠다,이제 남은건 졸업뿐이니 남는건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는 곧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같이 음악을 하는 녀석들중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은 준후뿐이었기 때문에,모두들 음악을 하기 위해선 분주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빈둥거리던 준후는 금새 싫증을 느끼고는 집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어느덧 어둑어둑,달빛이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재밌는 일이 없으려나.’

목표한것을 일단계 이루고 나니,다음 단계가 보일때까지는 지루한 그였다.약간은 쌀쌀해진 날씨에 그는 약간 어깨를 움츠리며,어느 상가에 위치한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성은영이라도 찾아가 볼까?’

사실 은영에게는 몇번이고 연락이 왔었다.단한번도 휴대폰은 가르쳐준적없지만, 독서실 총무에게서 들은것인지 그녀는 종종 전화나 문자를 하곤 했던 것이다.그때마다 준후는 그냥저냥 답만 해줄뿐이었다.준후에게 있어서 당시엔 대학이 더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딱히 은영에게 연락하는것도 그닥 땡기지는 않았다.이미 반쯤은 꺾은 꽃이기 때문일까?여체의 즐거움을 안 그라고 할 지라도,지금 은영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찾아간다 한들,그녀는 혼자살고 있는 처지도 아니니까.

‘은수녀석은...어떨까.’

한동안 은수를 그냥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마구 달려들어서 좋을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때문에 준후는 은하의 자위영상을 찍어서 일부로 은수가 볼수 있게 한 것이기도 하다.동영상을 다시 본거 자체가,은수는 분명 그것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리고 준후의 생각대로라면,은수는 한번쯤은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며 어떤 느낌일지 느껴봤을지도 모르는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준후는 살짝 웃어버렸다.왠지 점점 더 그녀들은 가족의 범주에서 아예 벗어나고만 있는거 같았다.준후역시 처음엔 그들을 앞으로 함께 할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르다.가족이란게 뭔지 원래 모르는 그였지만,적어도 가족이라면 이런 생각이 안들어야 정상이라는 것 쯤은 알았다.

준후는 늘 은채를 동경했다.누나로써가 아닌 여자로써,고운 그녀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한번쯤은,가녀린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상상 역시 셀수없이 많이 했었다.

은하에 대한 감정은 처음엔 경멸로 시작했지만,그녀역시 준후의 마음에서 자라나고 있었다.자신이 끔찍하게 싫어하던 의붓동생에게,이제는 오히려 그 동생에게서만 느끼고 있는 여인.일말의 연민도 들었다.은하는 어느순간부터 준후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가꾸고 또 가꾸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은수역시 예외가 될수 없었다.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동생이었지만,어느순간 점점 풋풋함을 벗으며 여자가 되어가는 그녀.맞다.분명히 상황은 바뀌고 있었다.그녀역시 준후의 상상속에서,조금씩 벗겨져 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달라도 참 너무 다르구나.’

바로 그점이었다.한집의 세자매.그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어쩌면 여자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준후가 재미를 느끼는 이유일지도 모른다.그리고 늘 신선하다는 그 점은 그가 음악에 빠진이유와 비슷한 것이었다.

‘어?’

한참을 상념속에 걷던 준후는 저도 모르게 살짝 벽으로 숨었다.자신의 집으로 진입하는 언덕으로 접어들무렵,그의 머릿속에 있던 세 여자중 두명이 눈앞에서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녀들은 가로등 밑에 서로를 마주보고 서있었다.

‘강은하랑...은수잖아.’

은하는 여느때처럼 섹시미를 돋보여주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약간은 타이트한 치마.길이는 길지 않지만 왠지 노출한것처럼 섹시해 보인다.웨이브 머리밑으로 멋드러진 코트를 걸친 그녀의 몸은 마치 알몸을 보는것처럼 뇌쇄적이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그녀와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귀여운 얼굴의 은수가 서있었다.은하보다는 키가 작지만,역시나 이 집안의 딸이라는것을 증명하듯 잘 발달된 몸매.트레이닝 팬츠에 두꺼운 후드티를 살짝 걸쳤을 뿐이지만 그녀역시 잘 차려입은 은하에 뒤지지 않는 묘한 매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너 지금..언니한테 대드는거야?”

“내가 뭘!”

준후는 길거리에서 마주보고 언성을 높이는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준후는 이 집안에 와서,은수가 은하의 말에 같이 언성을 높이는 것은 처음보는 광경이었기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몸을 숨겼다.

“내가 뭘??너 미쳤어?큰언니한테 지금 무슨 말버릇이야?”

“내가 틀린말했어?왜 나한테만 뭐라고해?언니나 잘해.”

“뭐..뭐?”

은하의 눈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간다.평소 은하를 무서워했던 은수가 똑바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들고 있지 않은가.은하역시 처음 겪는 경험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너...지금 뭐하는거야?언니나 잘하라고?”

“언니가 나 혼낼 자격이나 돼?”

준후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은수의 말투에서 비꼬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동생과 몸이나 섞는 주제에..라는 듯한 말투에,준후까지 마음이 조급해 진다.

“자격?너 그거 무슨뜻이야.어!”

“언니는 다 가졌잖아!나랑 은채언니보다 더 많이 갖잖아!늘 그러잖아!”

“뭐..?”

은하도,숨어서 듣고 있는 준후의 표정도 기묘하게 바뀌었다.

‘다 갖는다니...은수녀석 뭐라고 하는거야.’

준후는 살짝 고개를 더 틀어 은수의 표정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있기 까지 했다.도대체 뭘까.준후는 그녀의 말의 의미를 계속해서 곱씹기 시작했다.

“나도 지겨워!언니는 늘 제일먼저 갖잖아.언니가 흥미가 없어진 다음에야 은채언니나 내 차례잖아!맨날 그렇게 누리면서 왜 나한테 그래?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야..너..”

“지금도...독차지하고 있으면서..”

은수는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은하의 곁을 지나쳐 대문으로 들어가 버린다.한성깔 하는 은하이지만,은수의 의외의 반응에 당황했는지 그저 황당해 하며 그녀가 들어간 대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야 저녀석..’

당황하기는 준후역시 마찬가지였다.은수의 말이 너무나 묘했기 때문이었다.지금도 독차지 하고 있다?세 자매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관심없는 그이지만,왠지 은수의 마지막말은 뭔가를 은근히 암시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잠시후 준후의 시야에서 은하도 사라졌다.그녀역시 집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준후는 잘 알고 있었다.은하역시 약간은 찔리는게 있는 것이다.예전처럼 권위적이고 능력있는 큰언니의 역할을 하기에는,이미 도덕적 궤도에서 벗어난것이라고 은하 자신도 약간은 느끼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

준후는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갔다.쪼르르 들어가면 왠지 이상할것 같아 집앞을 약간은 서성거리긴 했지만.

“어서와 준후학생.은하랑 은수도 방금왔는데..”

“아.그래요?”

저번에는 토라진것처럼 말도 하지 않던 미진이,누가 들을까봐 의식을 했는지 베시시 웃으며 준후에게 말을 한다.하지만 준후는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대충 답하고는 그녀를 지나쳤다.

“무슨일 있는거야?”

살며시 속삭이는 미진의 말에 그녀를 지나치려던 준후의 발걸음이 멎었다.전혀 가정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녀.준후는 미진을 바라보며 똑같이 속삭였다.

“무슨뜻인데?”

“분위기가 이상해서.그리고 왜..나한테 오지 않는거야?”

“사람들 다 있잖아.”

준후는 미진의 은밀한 시선을 앞서 차단해 버렸다.미진의 표정이 잠시 굳어지더니,이내 그를 향해 의미있는 미소를 던졌다.

사실 준후의 입장에서도,그저 미진에게 싫증이 난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뭔가 알수 없지만 찝찝한 느낌.오히려 은하와 몸을 섞을때는 그런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데,미진은 뭔가 이상했다.그 느낌이 강해져 갈수록,준후는 미진에게 전혀 성적인 욕구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있었다.

미진은 미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처음에는 준후와 은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했지만,준후쪽에서 더이상 자신을 찾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작전의 궤도를 변경한 것이었다.하지만 아직 준후는 완벽한 강회장의 상속인이 아니었다.때문에 그녀는 아직 속을 드러내지 않고,묵묵히 기회가 올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지만,너는 내 난자로 태어났어.유산을 받으면 친모인 나를 무시할리가 없겠지.’

미진의 속도 모른채,고개를 돌린 준후는 은채의 방을 바라보았다.불이 꺼진 그녀의 방.저녁이 넘어서는 시간이지만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 아닌가.그를 바라보던 미진이 그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 친구들 만나서 늦는다고 했어.누나 생각이 끔찍하나 보네?그렇게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준후는 살짝 움찔 했으나,이내 무시해 버리고는 층계쪽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저녁은?”

“됐어요.”

이내 2층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준후.그를 보며 미진은 알수없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어..어머!”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곧바로 은하의 방에 들어선 준후는 그녀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은하는 속옷을 갈아입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갸날픈 목선과 쇄골 밑으로 균형있게 모여진 뽀얀 가슴.준후는 그녀의 몸을 스캔하듯 훑어 보았다.

“뭘 놀래.다 봤는데.”

은하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이내 뒤를 돌아 입고 있던 브라의 후크를 채웠다.고급스런 검정색 란제리.군살하나 없는 몸매가 탐스럽게 보인다.그녀는 검정색의 실크 슬립을 입고 나서야 준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들어와서 조금 놀랐어.”

예전에 비해 너무나 고분고분한 말투.둘에게서 예전의 모습을 찾기란 힘들것만 같았다.준후는 침대에 걸터앉았고,은하역시 약간떨어져 앉았다.

“은수랑 무슨일 있었어?”

“응?”

“아까 대문에서 싸우길래.”

“아..그녀석이 자꾸 내옷을 갖다 입길래.”

“옷?”

“응.예전엔 안그랬는데,내 향수며 옷을 가져다가 입더라.그거 가지고 한소리했더니만...대드는거 있지.”

“그런거 빌려줄수도 있잖어?”

“그..그렇긴한데,은수가 그랬던 적이 없어.아빠가 옷을 안사주는것도 아니잖아.근데 왜 갑자기 그러는지,화장품이며 옷을 자꾸 가져가서 한마디 했었는데..”

“그래?”

준후는 곰곰히 은하의 말을 곱씹어보았다.은하의 옷?준후는 그것들이 대부분 그녀의 몸매를 드러내는 섹시한 옷들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반면 은수는 고교생답게 편한 옷이나 귀여운 옷을 좋아했다.그런 그녀가 갑자기 때아닌 ‘은하 따라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니 옷이라면,늘 몸매를 드러내는것 뿐이잖아.”

“그..그렇지도 않아 뭐..”

은하는 괜시리 부끄러워 했다.예전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이지만,준후는 더이상 놀라지 않았다.은하는 이제 완전히 자신의 소유가 된것 같았다.

“맞지 뭘그래.늘 짧은 치마에 딱붙는 브라우스에...시집도 가야할텐데 얌전하게 입는것도 좋잖아?의상 디자이너면서..”

준후는 말을 뱉으면서도 적잖이 놀랐다.은하의 눈에 실망감이 가득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내가 시집가기를 원해?”

“왜그래 갑자기?당연히 가야 하는거 아냐?”

“니가 가지 말라면 안갈 거야.”

“뭐?”

은하는 자신의 슬립자락을 만지작 거리며 고개를 숙여버린다.어깨를 살짝 덮은 그녀의 웨이브 머리.화장을 지웠지만 너무나 깨끗한 피부위로,그녀의 눈망울이 반짝인다.

“안갈..거라고.니가 가지 말라면.”

“내가 뭔데 너 시집을 가라말라해?”

“그럼 난 너한테 뭔데?”

“뭐?”

은하의 질문에 준후는 황당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은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준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난 뭔데?그냥 니가 하고 싶을때 대주는..그거 뿐인거야?”

“넌 날 끔찍히 싫어했잖아.지금도 그렇지 않아?”

“나..나는..”

은하는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왠지 자신의 자존심과 싸우고 있는 듯한 모습에,준후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아해.”

“시덥잖은 말 그만하자.”

“니가 날 그냥 단순히 침대에서만 쓰는 여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좋아해...아니..사랑해.”

“술먹었어?도대체 왜..”

“날 그렇게 봐주면 안돼?예전에 내가 널 싫어했던 거 다 잊고.그냥 이제는 침대 밖에서도 여자로 봐주면 안돼?”

“강회장님께서 참도 좋아라 하시겠다.갑자기 왜그래?쿨한척은 혼자 다하더니.”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아빠가 뭐라고 해도...상관없어.그런거 신경썼다면 시작도 안했어.그러니까..한번만이라도..나를..”

준후는 은하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며 적잖이 놀라 버렸다.그것은 처음 오피스텔에서 자신에게 흠집을 잡혀 울때와는 다른 종류의 눈물이었다.그때에 너무 분해서 운것이라면,지금은 정말 감정이 복받쳐서 우는것만 같았다.자존심이 센 은하.그녀의 가면은 천천히 부숴지고 있었다.그랬다.준후와 은밀한 밀회를 즐기기 시작한 몇달간,그녀는 빠져서는 안되는 것에 빠지고 만 것이다.

“난 아직 너에대한 감정이 바뀌지 않았어.”

준후의 말에,은하는 흘러 떨어지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었다.준후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손을 뻗어 티슈를 몇장 뽑아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모르겠어.그 감정이 바뀔지 아닐지.복잡한건 생각하기 싫어.”

은하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난생 처음보는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준후였지만,이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갑자기 좋아해?”

“그냥..그냥..나도 희망은 있는거잖아.”

“너도 많이 변했다.예전에 집앞에 줄줄이 찾아온 남자들 다 차버렸잖아.만나주지도 않고.근데 너보다 한참 어린,그것도 한때 경멸하던 의붓동생을 사랑한다니.”

“뭐라고 해도 좋아.난 지금이 좋아.”

준후는 그제서야 느끼고 말았다.늘 냉랭하고 까칠했던 그녀도 결국엔 감정에 약한 여자였음을.그리고 자존심이 센 그녀에게 있어서는,지금 이 고백은 너무나 용기내어 한것임을.그리고...


‘그럼..아까 은수가 한 말의 의미는...’







준후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집안일이 끝난 지금은 미진역시 거실에 서성이지 않고 있었다.준후는 그녀의 방이 굳게 닫혀있는것을 바라보았다.

‘폐쇄 공포증이란건...거짓말 이었군.’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준후의 머릿속엔 그런것이 들어오지 않았다.기분이 묘했다.은하가 자신을 사랑한다니..왠지 맥까지 풀린다.그래서일까?준후는 안아달라고 하는 은하의 말을 거절하고 나와버린 것이다.

바보가 아닌이상,준후는 독서실에서 만난 은영이 자신을 좋아하는것을 알고 있었다.그 마음을 교묘히 이용해서 그녀를 안으려고 했었으니까.하지만 그때와는 기분이 조금 다르게 묘했다.은하는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다.기분이 나쁘거나 좋거나의 문제가 아니다.어쩌면 은하의 마음을 얻은것이 이 집안에서의 존속에 더욱 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이상스레 기분은 묘하기 그지 없었다.

은채의 방은 여전히 불이 꺼져있었다.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것을 준후는 잘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현관불을 끄지 않았을테니까.현관불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잘된것일지도 모르지.은채가...지금은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준후는 천천히 은수의 방으로 다가갔다.이제 준후는 알수 있었다.왜,어째서 은수가 은하에게 그런말을 했는지를.그리고 왜 뒤늦게 큰언니인 은하를 조금씩 따라하려고 하는 지를 말이다.

그는 은수의 방문에 귀를 대보았다.분명 방문은 걸어잠궜을 것이다.요즘들어 은수의 방은 늘 그렇게 굳게 잠겨있었다.은하와,준후의 정사를 그녀가 본 그 순간부터.

-흡...흥..-

준후의 귓가에,애써 신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누구라고 유추할것도 없고 무엇을 할까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그곳은 은수의 방이었고,은수는 자신의 손에 의해 조금은 뜨거워진 모양이었다.

똑.똑.

준후는 작지만 들릴수 있게 문을 두드렸다.귀를대고 있는 준후의 귓가로 허둥대는 은수의 동작들이 소리가 되어 전해져온다.그녀의 마음,아니 그녀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준후는 느긋해졌다.은하,은수.둘다 누나와 동생이라는 일말의 장벽은 이미 한줌모래처럼 허물어지고 쓸려나갔다.

“오빠...”

은수의 눈이 동그래져 준후를 바라보았다.준후의 코에,은은한 향수의 냄새가 감돈다.그리고 그것은 은하가 쓰는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준후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갔다.은수는 허둥지둥하며 준후를 바라보고 있었다.살짝 헝클어진 원피스 자락.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위로 곱게 묶어 올린 그녀의 귀여운 눈망울.준후는 손을 뒤로 뻗어 문을 잠궜다.은수는 아무말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하고 있었어?”

은수는 준후의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어째서 일까.그녀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래서,저번에 준후가 왔을때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은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붉게 물든 얼굴을 들킬까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준후는 천천히 은수에게 다가갔고,은수는 가만히 서있었다.준후의 손이 은수의 머리위를 살짝 어루만졌고,그녀는 살짝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은하를 따라하지 않아도 돼.은하의 향수,옷 이런것 모두.”

“그..그런게 아니..”

“그냥 은수 너는 은수야.그리고..넌 은하와 달라.은하를 따라하지 않아도,강은수 자체가 떨어지지 않아.”

떨리는 그녀의 눈망울.준후는 그대로 은수를 안아버렸다.여태까지 같이 살면서,한번도 가까이서 느끼지 못했던 은수만의 향기.풋풋하면서도 상큼한 내음이 준후를 간지럽힌다.준후의 입술이 은수의 입술을 덮는다.

“읍..읍!”

은수는 발버둥을 치기도 하고,준후의 가슴을 때리기도 했다.준후는 아예 그녀의 팔과 함께 끌어 안아 버렸다.누구에게도 열린적 없던 입술.준후는 달콤한 사과향을 느끼며 은수의 아랫입술을 살짝 빨아주었다.

“읍..음..”

은수의 반항과 몸부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준후는 능숙하게 그녀를 밀어붙였다.이윽고 침대에 끝에까지 몰린 은수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고,그 틈을 놓치지 않고 준후가 그녀를 눕히며 입을 맞췄다.그리고 약간은 벌어진 은수의 입술 사이로,준후는 조금씩 혀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조금씩,천천히 몸이 떨리기 시작하는 그녀.그리고 놀라움에 크게 떠져 준후를 바라보던 은수의 촉촉한 눈망울은,조금씩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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