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그녀는 이중인격자...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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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동안에 수 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박완서,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갈림길-
여성스러운 아니 여자다운 지연이가 허겁지겁 자취방을 나갔을 때만 해도
나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지연이의 여자다운 컨셉도 굉장히 매력적이었으니까.
나는 인간이었기에 발정기 똥개 같은 똘이병처럼 어제 섹스했다고 해서 오늘도 섹스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말하자면 손안에 꽃을 든 남자의 여유랄까?
하지만 그 다음 날 저녁을 먹고 평소처럼 가양대교까지 걸으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지내다가도 내가 자취방에 가자고 하면 정색을 하고, 그 다음 날은 키스까지 하고 정색을 하고, 그 다음 날은 키스에 가벼운 애무까지 하고 정색을 하고, 그 다음 날은 진한 애무까지 하고 정색을 하고........
화가 났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서 주말 데이트를 거절할 때에는 진짜 화가 났다.
"오빠 삐졌어? 아니 나 학기 시작하면 알바 자리 구하기 힘들단 말야 지금부터 해야해 아니면 기회 없어"
"아니 뭐 그런거 아니라 아니 어휴"
"오~~빠 응? 왜 그래? 치~ 삐진거 맞네 응 화내지 말고"
진짜 왜 안 대주냐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고, 대놓고 말할 수 없으니 은근히 뜻을 전하는데 전혀 못 알아듣는 척하고, 게다가 키스나 패팅까지는 받아 주면서도 정작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면 정색을 하면서 집으로 가버리고,
스트레스 받았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너무나 자연스럽게도........클럽을 갔다.
어디까지나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놀아주지 못하는 지연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로는 좀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 꺼림직한 예감 때문이었다.
매우 찝찝한 그런 예감.
그 예감은 말하자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저번주 토요일 새벽 섹시한 그녀를 만난 것.
지연이는 저번주 토요일에 그 다음날 일요일 토익시험 공부때문에 데이트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 토요일 새벽 NV옆 삼거리 포차앞 건널목에서 그녀를 만났었다.
말도 안 되는 의심이라고 머리는 계속 소리쳤고, 이성은 계속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주 가던 5군데 클럽의 스탬프를 모두다 받았다. 마지막 M3에서 입장료를 내고 왼쪽 손목에 스탬프를 받을 때 황당해 하는 입구 가드의 얼굴이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5군데의 클럽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COCON, NV, SKI1, SKI2.. M3
NV를 가장 마지막에 간 것은 아마도 이곳에서 만날 확율이 가장 높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의 본능적인 위기에 대한 회피감각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원래 빙하기 시대부터 이런 본능적인 감각을 키워왔는데 자연이 아닌 도시에 살게 되면서 그 감각이 둔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인간의 코도 개만큼은 아니어도 다양한 냄새를 구분할 수 있고 몽고와 같이 평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최고 시력 2.0을 훨씬 뛰어 넘는다.
뭐 아무튼지간에 나의 본능적인 감각은 이곳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먼저 들어간 4군데에서 쿠폰과 바꾼 맥주와 데킬라와 버번콬?의 영향으로 살짝 붕 뜬 기분은 들어가자 마자 바로 곤두박질 쳤다.
NV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입구에서 보이는 계단..디제잉 하는 부스 바로 밑에 있는 그러니까 플로어보다 높게 설치되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곳을 보자마자 내 기분은 사정없이 곤두박질 쳤다.
지연이는 몇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 하면서 학기 시작되면 알바자리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방학 끄트머리인 당장 내일부터 주말 커피숍 알바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데이트 할 수 없다며 미안한 얼굴로 애교를 부렸었다.
그런 그녀는 지금 평소에 하던 머리띠를 푸르고 살짝 머리끝을 이쁘게 말은 생머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검은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서 살짝 흥분된 얼굴로 음악에 맞추어 옆에 서있는 어떤 재수 없게 생긴 놈팽이와 부비부비하면서 춤추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는 내가 준 목걸이도 아니었다. 그것을 확인했을 때 느낀 기분은 결혼한 신부가 결혼반지를 빼놓고서 다른 남자들과 놀고 있는 것을 보는 신랑의 심정과 비슷하였다.
거칠게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서 춤을 추고 있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끌어내려서 바로 클럽 밖으로 나갔다.
강하게 거부하는 듯 힘을 잔뜩 주며 따라 오지 않으려는 그녀를 억지로 끌고 걸었다.
"놔! 이거 놔"
결국 거세게 뿌리치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살짝 고데기로 끝을 말아 자연스러운 생머리와 짙은 화장은 정말 섹시하게 잘 어울렸다. 고양이? 높은 음자리? 모양을 한 큐빅 귀걸이와 세트인듯한 목걸이도 전체적으로 검은색 일색인 그녀의 패션에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섹시한 매력이 큰 만큼, 내가 준 목걸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목걸이로 인해 섹시한 매력이 더 커진 만큼 나의 분노도 커졌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그리고 신경 꺼줘"
"뭐?"
"신경 끄라고 씨발"
[쫙~]
갑자기 튀어 나온 욕지거리에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서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때리고 난 나도 깜짝 놀랄 만큼
"미....미안"
".....이걸로 됬지? 그럼 이제 신경꺼 줘"
미안한 마음에 자연스럽게 뺨을 살펴보려는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그녀는 휙 돌아섰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저 거친 욕은? 신경 꺼달라는 이야기는?
얼른 그녀의 손목을 다시 붙잡았다.
"아니 이게 뭐 하는 거야? 씨발...이라니...그리고 신경 꺼달라니 무슨 소리야?"
순간 돌아본 그녀의 표독스럽게 뜬 눈에 도르르 흘러내린 눈물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야이 개새끼야 씨발 가지고 노니까 좋아? 하니까 좋아? 신나? 좃꼴리는대로 하니깐 좋아?"
"씨발 실컷 가지고 놀면서 했으면 됬자나 뭘 더 얼마를 더 바라니 개새끼야"
갑자기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그녀의 반응에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나 보다. 방귀뀐 사람이 성 낸다고 아니 내일부터 커피숍 알바를 해야 해서 나와 데이트 할 수 없다고 한 사람이 지금 나에게는 잔다고 거짓말을 하고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있던 주제에 누가 누구에게 화를 내는 건지...화가 난다기 보다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뭐...뭐 하는 거야 왜 그러는데"
"씨발 개자식아 개새끼야 더러운 새끼 꺼져 꺼지라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욕을 해대던 그녀는 욕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무차별적으로 손을 휘둘러 나를 치기 시작했다. 양 손목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자 이번엔 다리로 치기 시작했다.
아오~ 쪼인트에 구두굽으로 찍기에 난리도 아니었지만 손목을 잡은 팔을 땡겨서 확 끌어 안았다.
"흑흑 꺼져 꺼지라고 씨발 개새끼야 그렇게 가지고 놀면 됬지 더 하려고 그래? 흑흑흑"
그때 아까 클럽 안에서 그녀와 부비부비하며 춤추던 놈팽이가 술 취한 남자 무리를 이끌고 와서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이야? 여자가 싫다는데 왜 억지로 끌어가서 안고 그래"
당연 그녀의 황당한 욕지거리에 정신이 없는 나에게 그런 시비가 좋게 들릴리가 없었다.
아니 다른 때였다면 그냥 들은 채도 안하고 신경 꺼버렸겠지만 그녀의 황당한 욕지거리를 듣는 동안 무언가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내 뇌가 그녀의 말을 분석하느라 재수없게 생긴 -캐쥬얼 슈트와 청바지, 단추를 2개쯤 풀어준 스트라이프 셔츠 사이로 반짝이는 은목걸이 단정히 깎은 머리를 젤과 스프레이로 멋을 낸 키가 제법 큰 - 놈팽이가 술 취한 놈들과 함께 와서 거는 시비에 대한 적절한 반응에 대한 해답을 처리할 공간이 부족하였다.
"씨발 신경 쓰지 말고 꺼져 개새끼들아"
적절한 대응책 마련 뿐 아니라 평정심도 부족했나 보다.
나도 모르게 거친 욕이 터져나왔다. 사실은 그녀에게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욕때문에 맞대응을 하긴 해야하는데 차마 그녀에게는 못하고 삵힌 화가 그들에게 터진 것이다.
"이 새낀 뭐야 씨발"
퍽!
술 취한 남자 무리들이 욕하는 사람에게 좋은 반응이 나올 리가 없다. 거기다 한여름 밤 불쾌지수가 최고로 올라가는 열대야 현상에 술기운이 대해진 남자 무리들에게서 좋은 반응이 나올 리가 없다. 걸쭉한 욕지거리와 함께 주먹이 날라오면서 벌어진 싸움에서 내가 이길 방법 따위는 없었다. 물론 여러 놈이어서 그렇지 한 놈이었으면 아니 맞는 순간에도 한 놈은 아주 짖이겨 놨다...라고 훗날 술자리에서 이야기 하곤 했다.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 중에서 남자가 싸움에서 지는 법은 절대 없다.
여하튼 지간에 졸라 쳐 맞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뱃속 아기 때의 포즈, 한마디로 몸을 최대한 웅크리며 쳐 맞는데.....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얼굴에 잔뜩 맞아서 얼얼하고 화끈화끈한 얼굴에 여름 밤의 짜증나는 열대야 기운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물방울이 한방울한방울 떨어지더니 이내 내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이었다.
"흑흑흑 바보 멍충이 흑흑흑"
어떻게 그 개새끼들이 가버렸는지, 내가 왜 맞고 있었는지, 당장 쫓아가 그 놈들 뒤통수에 벽돌을 하나씩 박아서 머리모양을 최신 뒷 통수 혹부리 모양으로 코디해줘야지, 따위의 생각은 잊어버렸다.
"울지마.."
영화를...너무 안봤나보다. 아니 드라마를 너무 안봤나보다. 적절한 멋있는 대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온 것은 너무나 손발이 오글오글한 그런 대사였다...그것은 순전히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이야기.....라고 훗날 술자리에서 이야기 하곤 했다.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중에 남자는 언제나 로맨틱가이이다.
"흑흑흑 바보 멍충이 흑흑흑"
그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걷는데 온갖 잡생각에 온갖 고통이 겹쳐져서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그녀가 이야기한 꺼지라는 이야기와 신경 끄라는 이야기에 주말에 커피숍 알바해야 한다고 데이트를 거절한 그녀가 새벽 2시 넘어서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경우는 무엇이며 도대체 어떤 놈이 내 왼쪽 허벅지를 찍어서 걷기가 이렇게 힘들고 오른쪽 눈은 왜 안떠지고 이렇게 따끔따금하며 왜 팔은 이렇게 저리고 허리는 욱신욱신거리고 그새키들은 뭐야 어떻게 생겨먹은 놈들이었지? 라는 생각까지 너무나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그녀의 어깨에 기대어서 내 자취방으로 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물어봐야 하는데 도저히 물어볼 형편이 안되었었다. 온갖 복잡한 생각과 얻어맞은 고통에 정신이 없는 나보다 나를 부축하며 가고 있으면서도 펑펑 서럽게 울고 있는 그녀는 더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무언가를 질문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부축당하며 자취방에 겨우겨우 도착해서 침대에 눕자 그제서야 온몸의 근육이 긴장 풀림과 동시에 비명을 질러댔다.
"으윽~~"
"바보 멍충이 흑흑흑"
"으윽~ 나 괜찮다니깐 그..그것보다 지..지연아"
"흑흑흑흑...이 머저리 밥통 말미잘 멍게 흑흑...닥치고 가만히 누워 있어 패버리기 전에...엉엉엉"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나를 눕혀 놓구서는 부산스럽게 내방을 뒤적거리던 그녀가 수건에 물을 묻혀오더니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아! 아야"
오른쪽 눈 위가 찢어졌나 보다. 굉장히 쓰라렸다.
"흑흑흑 엄살 피우지 마 멍청이 흑흑흑"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참을 그 부드러운 손으로 따뜻하게 몇 번이고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의 울음은 멈추어졌고 내 얼굴과 온몸의 아픔도 멈추었지만 그녀의 손만은 멈추지 않고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고 그녀의 눈은 계속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녀의 눈이 말하는 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그런데 왜 울면서 온갖 히스테리성 화를 내며 꺼지라는 이야기와 신경 끄라는 이야기를 했는지, 주말에 커피숍 알바해야 한다고 데이트를 거절한 그녀가 새벽 2시 넘어서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경우는 무엇이며 도대체 아까 그 놈팽이는 어떤 놈인지 너무나 궁금하였다.
"지연아"
문득 그녀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표정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었다. 표정을 읽는 것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불쾌감"이나 "화"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나 갈께"
"지연아 잠깐만"
황급히 냉랭한 표정으로 일어나 시선을 외면하는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린 채 서 있는 그녀를 붙잡고 있으려니 또 질문이 추가되었다. 왜 화를 내는 거지?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누군데...너무 많은 질문 중 어느 것을 먼저 물어봐야 할지를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이고 나에게는 많은 질문의 시간이 없어 보였다. 많은 질문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은 남자의 질투심으로 추가 효과를 얻은 그 질문이었다.
"그 남자는 누구야?"
[꽝]
이것이 뽑기였다면 꽝이라는 문구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녀는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서는 성큼성큼 걸어서 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남자 친구야"
[쾅]
.
.
.
.
.
[쾅]소리가 나게 닫히는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그녀가 한 말은 분명 [남자 친구야] 였다.
멍~~~~
한참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몸은 저절로 움직여졌다. 욱신거리는 몸이 고통을 참으며 저절로 움직여져서 간 곳은 냉장고였다. 소주는 달랑 1병 뿐 이었다.
국그릇도 필요없이 바로 마개를 따서 병나발을 불었다.
쓰디 썼다.
엄청나게 쓰디 썼다.
결국 그런 것이었다.
처음에 내가 술취한 그녀와 모텔에서 섹스를 하고 놀라서 집에 와서 걱정했던 그런 것이었다.
커트형님들이 조언해주고 소리가 조언해 줬지만 결국 그녀의 진심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당.한.것.이.었.다.
그녀가 해준 우렁각시 이벤트와 내 자취방에서의 섹스로 나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왜 그녀가 한번 열은 몸을 다시 안 열어 주는지 의아해 하고 있었었다.
결국 그런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느라 그러니까 나의 예전 모습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만나느라 그런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녀가 했던 것들이 다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뭐 커피숍 알바니 토익 시험이니도 다 거짓말 이었을 것이다.
섹스. 2번의 섹스에도 불구하고 다음 섹스로 이어지지 않은 것도 뭐 다 그런 것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몇 가지 있었다.
그녀가 느닷없이 화를 낸 부분이나 그 애틋한 시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생각해야 할 부분은 그녀가 나를 농락하느라 한 거짓말의 목록 파악
아니 생각하기 싫은데 저절로 생각나는 부분이 더 정답 일려나...막 저절로 계속 생각났다.
그래 시발 뭐 토익 시험? 조까라 그래.. 뭐? 커피숍 알바? 지랄하네..뭐? 다음날 출근해야 해서? 생쑈하네..
뭐 가벼운 사랑, 쾌락만 탐하던 나에게는 오히려 이게 더 좋은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달리고 애교를 부리고 장난을 치고 대화 하는 내내 집중해서 뭐라고 하는지 파악하고 대화의 진의나 의미심장한 말에 대한 해석이 안되었을 때 안절부절하고 진실이 뭘까 가늠하고 표정을 탐색하고 상대방의 작은 동작에도 큰 신경을 쓰고 하는 것에 질려버렸다. 게다가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오락가락한 태도에도 짜증이 났었다.
그래....나에게는 오히려 이게 더 좋은 결과 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울리지도 않은 애교와 장난, 재정파탄이 일어날 정도의 과도한 데이트비용이나 데이트 때의 머리 아픈 신경싸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는 그녀를 보면서 사실 이런걸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잘된 것이다.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눈이 자꾸만 흐리멍텅해지고 볼에 무언가 축축한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가슴은 아려오는지 모르겠다. 짜증나 죽겠다. 소주 한병의 위력일 것이다. 그런 것이다.
술이라도 더 마시고 싶은데 더 마실 술도 없고, 나가서 사먹기에는 온몸이 욱신거려서 움직일 수도 없고,
짜증이 가득 찬 채로 화풀이 할 것을 찾다가 문득 지연이가 정리해 놓은 씨디가 보였다.
냅다 발로 차버렸다.
"앜"
씨디 모서리를 차버렸나 보다.
씨디 정리해 놓은 것이 완전히 흐트러지는 것을 보며 살짝 풀리려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
침대로 돌아가서 눕는데 짜증이 100만 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짜증나는 물기가 눈가에서 흘러 내려가고 있어서 더 짜증이 나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힘찬 함성을 5초간 발사하자 조금 멍울진 가슴이 풀어지는 듯 하였다.
멍울진 가슴이 풀어지자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감이 갑자기 몰려들어서 스르르륵 눈이 감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눈이 감긴 세상에서 떠오른 것은 바로 지연이. 세상이 갑자기 지연이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짜증이 나서 눈을 뜨자 다행히도 지연이는 사라져 버렸지만 피로감에 저절로 눈이 감기려 하면 여지없이 나타났다. 그렇게 거의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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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요란한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핸드폰을 찾았다. [토요일 오후08:30]
잠에서 막 깬 멍한 머리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아 저소리에 깨어났었지...이 밤중에 누가 저렇게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거야 하면서 일어나려는데...
"으읔.."
아팠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제서야 잠에서 덜 깬 머리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어젯밤의 일들....
더 자세히 더 완벽하게 생각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저 요란한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잠에서 덜 깬 머리가 기억해 낸 첫 번째 감정은 [짜증] 이었다.
[짜증]을 내면서 누가 이렇게 개념 없이 시끄럽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거야 하고 현관문을 열어서 누가 이렇게 개념이 없는 거야 하고 쳐다 보았을 때. 두 번째 감정이 생각났다. [분노]였다.
"뭐야 오빠 얼마나 오래 두드렸는지 알아? 아유~ 술 냄새 얼마나 마셨길래 그렇게 두드렸는데도....어?
오빠 얼굴 왜 그래? 싸웠어?"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환한 미소로 들어오는 지연....짜증난다. 화가 치솟는다.
처음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환한 미소를 보고 조금이나마 환하다. 예쁘다. 시원하다 라고 느껴버려서 더 짜증이 났다. 어제 그 난리를 치고서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저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나를 시험하려고 아니 가지고 놀려고 그러는 것이다 라는 결론 말고는 내려지지가 않았다.
"왜 왔어"
"어?"
"왜 왔냐구 씨발"
"어? 아니 오빠..아니 난...왜...왜 그래?"
"하~ 참나....씨발 조까 꺼지라고"
"오빠..아니..왜...왜 그래? 오늘 데이트 못한다고 삐졌어? 그래서 커피숍 알바 일찍 끝내고 ..왔는데"
실소가 나왔다. 무슨 이중인격자도 아니고 저 얼굴 저 표정 저 연기에 내가 속아 넘어간 걸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그녀가 왜 저런 씨알도 안 먹힐 어이없는 연기를 하는지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걸 생각하는거 자체가 그냥 싫었다. 대화 하는 내내 집중해서 뭐라고 하는지 파악하고 대화의 진의나 의미 심장한 말에 대한 해석이 안되었을 때 안절부절하고 진실이 뭘까 가늠하고 표정을 탐색하고 상대방의 작은 동작에도 큰 신경을 쓰고 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아니 지금 지연이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어제라면 어제밤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피하고 싶었다.
꼴도 보기 싫었다.
"조까 됬어 이젠 짜증나서 못해먹겠어 너 맞춰주는거 더 이상은 못하겠어 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서 잘 살든 말든 니 맘대로 해 난 더 이상 니 얼굴 보기 싫으니깐"
"오..오빠...흑...왜...흑흑..왜 그래"
"씨발 가증스러우니깐 울지마. 그리고 니 좋아한다는 그 남자 만나 짜증나니깐"
"흑흑흑 무..무슨 말이야 흑흑흑"
"꺼지라고 씨발!!"
"흑흑흑 오빠 흑흑"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씨발"
"흑흑흑 오..오빠 왜 그래 엉엉 왜...왜 그래 흑흑흑"
"아 씨발 짜증나네 나가라고 안나가? 빨리 꺼져"
"흑흑흑흑 오...오빠..흑흑흑"
"안 나가? 씨발...그래 안 나간다 이거지? 그럼 조또 내가 나간다"
거칠게 그녀를 밀어젖히고 맨발로 뛰쳐나가 버렸다.
등뒤에서 그녀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도대체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하는지 왜 어제 사건을 모른 척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곧 머리 속에서 지워버렸다.
술이다. 술
이럴땐 술이 최고다. 술을 마시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젠장....하지만 지금 정신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 이 근방에 몇 놈이 분명 자취하고 있었지...하고 핸드폰을 찾았지만 그것 역시 가지고 오지 않았었다.
나란 놈이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을 리도 없었고 술 취한 여자 후배라면 모를까 남자 놈들을 데려다 준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 어디 사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도 않았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희미한 인간관계, 핸드폰이 없어지면 흐지부지 되어버릴 인간관계,
마치 게임에 접속하면 누구보다 먼저 귓을 보내고 친하게 채팅을 주고 받지만 접속이 끊어지면 그만인 인간관계.
난 이 도시가 정이 없다고 투정 부렸지만 정이 없게 만든 것은 바로 나였다.
그리고 그것을 핸드폰이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명확하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저기 내 자취방에서 울고 있는 지연이의 문제도 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워버렸다.
나 몰래 "남자 친구"를 만나고 토익 시험 공부를 해야 한다고, 커피숍 알바를 해야 한다고 거짓말 하고 클럽을 간 것은 지연이지 내가 아니다.
아무튼 어떻게 해서 든지 간에 술은 먹어야겠는데 외상이 되는 집이 있을리가 없고....
그래서 생각난 곳이 편의점이었다. 분명 주근깨 덕지덕지가 근무하고 있을 시간.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서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돈을 안 가져 왔다고 알바비에서 빼서라도 몇 병 사야겠다고 설명해서 소주 5병을 샀다. 먹고 죽을 생각이었다. 맨정신에는 깨어있는게 힘들었다. 빨리 사서 마시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줄 것을 재촉하는데 주근깨 덕지덕지가 뭐라고뭐라고 종알거리면서 소주 5병을 챙겨서 주더니 슬그머니 포장 족발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뭐지? 하고 고개를 들어 주근깨 덕지덕지를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그녀의 이름, 명찰표에 [선미]라고 써있는 것이 보였다. 주근깨 덕지덕지 아니 선미의 머리가 살짝 갈색 염색한 것도 그 때 알았다. 그리고 그녀의 말 아니 목소리도 그때서야 들렸다.
"아유 오빠 술만 그렇게 먹으면 속 버려 이거는 내가 살테니깐 깡소주 마시지 마 응?! 그리고 월요일 새벽 제시간 맞춰오고! 술 먹고 늦기만 해봐 아주 혼내 줄테니깐! 그리고 인수인계 받을 땐 멀쩡한 금액이 왜 오빠가 받으면 맨날 틀려! 진짜 또 술 먹고 해롱거리며 오기만 해봐 아주 혼내줄거야!"
따따부따조잘조잘시끌시끌 이야기 하는 주근깨 덕지덕지 아니 선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참 기분이 생소했다. 묘했다. 분명 거의 두 달이 넘게 한 편의점 알바 내내 나는 주근깨..아니 선미에게 인수인계 받고는 했는데 언제나 귀찮다 시끄럽다는 생각만 했지 그녀의 얼굴 이름 표정 머리색깔 목소리 이야기 톤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타인에 대한 관심을 끊고 살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었다.
"또또 또 딴생각 한다. 저 귀찮은 표정. 제대로 듣고 있어요?? 오빤 왜 맨날 사람이야기에 집중을 안해 이야기 할 땐 집중을 좀 해봐 응! 좀 관심을 가져봐 좀!! 오빠!"
얘가 언제부터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고 이렇게 계속 오빠라는거야? 하긴 얘랑 내가 2달 동안 매일 만났는데 분명 친하기야 하겠지 그런데 얘랑 그 동안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명확히 생각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신변잡기나 연예인 스포츠 사회 정치 같은 개인간의 인간관계 진전에는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만 주고 받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주근깨...아니 선미와의 대화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 뿐이었다. 그러기에 정확히 생각나지 않았을 것이다....아니면 진짜 관심을 가지지 않았거나....그제서야 내가 여전히 그대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모텔에서 마녀를 만나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를 바꿔 나가기로 했지만 나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듣고 있어? 아이 참 답답해 죽겠네. 진짜 오빠 여자친구 누가 될지 심히 궁금하다. 여자 친구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줘? 오빠는 정말 오빠 여자친구 누가 바꿔치기 해도 모를걸."
주근깨...아니 선미 이 기집애가 사람을 뭘로 보고 여자 친구를 바꿔치기 해도 모른다는게 말이 되. 그리고 내가 얼마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데 진짜 잘 들어주다 못해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었는데 그 철석같이 믿었던 여자친구가 나를 속이고....어?...................어?...........바꿔...바꿔쳐?
"오빠. 오빠.. 오빠!!! 야!!!! 아휴~"
시끄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선미의 목소리와 카운터에 술과 선미가 챙겨준 포장족발을 그대로 놔둔 채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천천히 편의점을 나섰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혼란의 끄트머리인 실마리...그 실마리가 이끄는 곳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천천히 걷던 내 걸음은 혼란의 실마리가 점점 확실해 지는 것이 느껴지자 점점 빨라지고 이내 전력을 다해 뛰어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내가 향한 곳은 지연이의 자취방이었다.
[딩동딩동쾅쾅쾅쾅쾅쾅쾅쾅]
"문 열어! 문 열어!"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시간마저 아까워서 문을 두드리고 소리쳐서 불렀다. 너무나 황당한 내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정신 없이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치고 벨을 눌렀다.
[딸깍]
방안의 형광등 불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문이 열리고....안에 있는 사람이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침이 꼴깍 삼켜졌다. 나온 사람은.....
"지연....이니?"
그 사람은 문을 닫으려고 하였다. 문을 닫지 못하게 붙잡고서 다시 내 머리 속에 계속 생각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물어보았다.
"지호...니?"
아무 말이 없었다. 눈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기쁨이나 환희 등 좀 밝고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눈이 하는 말은..........딱히 꼬집어 말하자면 너무나 슬펐다.
"언니...울고 있어요. 빨리 가보세요"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턱 하니....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술 취한듯한 비틀거리는 걸음 걸이로 지연이가 울고 있을 내 자취방을 향했다. 그제서야 머리 속에 휘몰아치던 혼돈의 카오스가 정리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앞뒤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난 정말 바보였다.
그러니깐 그녀와 나의 대화에서 내가 한 수많은 혼선을 눈치 못 채고 있었다.
나는 지연이의 대화를 듣고 내 성격과 가치관 경험 가족관계를 대입해서 해석해버렸다.
나는 당연히 운동하고 오는 누나..아니 언니에게 술을 권하고 통닭으로 유혹하는 사람이 나처럼 남동생이라고 생각했고 집에서 트림하고 방귀뀌고 덥다고 속옷차림으로 다녀서 민망하게 하는 사람 역시 당연히 남동생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마침 그때 하고 있던 인기 드라마 "외조의 여왕"의 남자 출연진의 이름이 "지호"였다는 점에서 나는 "지호"라는 지연이 동생 이름에서 여자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당연히 지연이의 동생은 남동생이므로 천사일 때의 지연이와 마녀일 때의 지호가 같은 사람이라는 판단을 성급하게 내렸다. 그것은 순전히 지연이의 외모와 지호의 외모가 같은 것에서 오는 한마디로 선입견이었다. 나는 그녀들의 외모만을 보고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7편 앞에 언급한 코끼리를 만지는 3명의 장님들처럼 나는 내가 아는 범위 그러니깐 내 경험과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 성급하게 판단하고 그녀에 대해 결론 내렸었던 것이다.
물론 지연이가 여동생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었고 내가 이야기를 유도해 낼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아니 그것은 사람을 깊게 알아가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었다. 지연이와 사귀다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그런 내용들 이었다. 그런데 나는 서둘렀다. 급하게 서둘렀다. 아니...이미 한번 마녀인 그녀 아니 지연이라고 착각한 지호와 섹스를 한 상태였기에 오히려 성을 내며 왜 안 대주는지 의아해하면서 서둘렀다. 섹스에 눈이 어두워 서둘렀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 주제가 나와도 꼭 야한 쪽으로 [섹스]나 [스킨쉽]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돌렸었다. 맞다. 첫 번째 데이트 때 지연이가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을 때. 나는 지연이 너는 왜 담배 피우면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느냐는 질문 보다는 [섹스]나 [스킨쉽]에 대한 답변이 나올 질문 "언제 담배냄새가 나는데?" 따위의 질문을 했었다.
나는 그런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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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중 하나가 바로 자기 중심적인 해석이다.
이를테면 어떤 이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친절한 행동을 호감의 표시로 받아 들인다던지.
문화적인 표현의 차이 때문에 악수, 포옹, 키스와 같은 스킨쉽을 애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라던지.
사람의 판단은 아무리 객관적인 척해도 그 사람의 가치관 성격 지식수준 경험 등에 의해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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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 중심적인 해석으로 지연이가 하는 행동과 지호가 하는 행동을 내 편한 대로 해석했다.
특히 마녀인 그녀 아니 "지호"가 하는 행동 그러니깐 2번째 섹스를 나는 내 마음대로 사랑의 아니 섹스의 허락이라고 받아 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깐 지호가 한 사랑의 허락을 지연이가 한 것이라고 마음대로 해석하고는 왜 그 다음 허락은 안 해주는지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 바보 멍청이였다. 한마디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야말로 나만 보고 있던 사랑스러운 6시 천사인 지연이에게 화를 내고 욕을 퍼부어서 울려버리고는 나와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상처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쏟아져서 너무나 머리 아플 지경으로 어지러웠다.
그러고 보니 지연이는 오른손으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오른손 잡이였다. 하지만 지호는 왼손으로 담배를 피웠었다. 그리고 지연이에게서는 언제나 체리향이 났지만 담배 냄새는 나지 않았었는데 지호에게서는 언제나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났었다. 정말 세세한 것까지 하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나는 계속 보내 오는 그 신호들을 아니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그 차이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로지 머리 속에 한가지 생각만 하느라 그 차이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가 좀 이상한...이중인격자라고 생각하고 내가 사랑으로 감싸주겠다! 하는 뻘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틀비틀 혼란스러운 걸음으로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면서 자취방으로 향하던 나는 나의 멍청한 또 다른 실수를 깨닫고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또 나는 내 충격만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못한 것이다.
[지호] 내가 마녀인 지연으로 착각한 지호는???
그제서야 나는 "언니...울고 있어요. 빨리 가보세요" 라고 말한 그녀의 표정이 슬펐다는 것, 그리고 어젯밤 클럽에서 본 것이 지연이가 아니고 지호였다는 것, 그리고 어제 떠나기 전 나를 돌볼 때는 그렇게 표정에 "사랑"이 써있던 그녀가 내가 지연이의 이름을 부르자 화를 내며 떠나갔다는 것,
거기다가 더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또 멍청하고도 커다란 실수를 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모텔에서 나와 섹스를 하고 그 다음날 내가 자취방에 끌고 온 사람은 지호였다. 그녀의 어색한 듯한 태도. 맞다.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고보니 지연이가 동생은 메탈이니 락이니 싫어한다고 한말이 생각났다. 녹차도 아마 싫어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호를 지연이로 착각하고 그녀의 태도가 나와 거리감을 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하니 그녀에게 아니 지호에게 한말은 그야말로 그녀 아니 지호를 혼란에 빠트리기 충분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클럽죽순이였던 그녀가 "나 더럽고 한심하지"라는 자책적인 말에 대한 내 대답이 "어떤 모습의 너라도 좋다"였으니....나는 내 착각으로 인해 지호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그녀는 그 대답에 몸으로 허락을 했었다.
그리고...내가 한 행동은 지연이를 만나는 것.
지호는 분명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이다. 실컷 사랑해 사랑해 해놓고서는 자신의 언니와 노닥거리고 있을 나를 보며 그녀가 느낀 상처. 그제서야 지호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고 지호가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이해되고 지호가 방금 나에게 "언니 울고 있으니 빨리 가보세요"라고 말하는데 얼마나 큰 상처를 감내하는 용기가 필요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미치겠다.
나는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지랄발광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내가 두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이었다.
분명 나는 저 두사람을 위로해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한명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내 자취방과 지연이, 지호의 자취방 중간이었다.
지금 가던 방향으로 가면 지연이를, 오던 방향으로 돌아가면 지호를 위로해 줄 수 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정말 바보 멍청이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나는
정말
미치겠다.
ps-결말을 여러분께 드리겠습니다. 1과 2중에 선택해 주세요
1. 지연이에게 간다.
2. 지호에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