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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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돌이켜 보면 사람의 눈은 진짜 보는 것만큼 보게 된다. 상상력 또한 마찬가지. 내가 전남 보성의 벌교에 있었다면 깡패가 되었든지 검사가 되었든지 어떤 선택의 삶을 살았을 것 같은 느낌 정도.
별로 없는 댓글, 기대에 미치지 않는 추천수. 그냥 대충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나는 이 글을 더 이을 수 있다. 아마 어느 순간 관심권이 되지 못한다고 스스로 느낄 때 나는 아마 멈추게 되겠지. 어떤 과정의 삶이든 대충 그 경우일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더 이상 소설적 구성의 인내를 활용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는 경험에 덧붙는 상상으로 얘기를 이끌어 가면 된다.
자, 이제 세진이와의 경험 얘기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윤리와 억압을 깨뜨리게 만든 그녀. 중3의 그녀였다, 메일의 주인공은. 주 세진, 강남의 한 중학교 3학년 여학생.
여름이었다. 땀이 쏟아지고 냄새는 지독해지고 눈은 호강하고 있는 계절. 몇 번의 메일 교환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아마 초창기의 사이버 세상은 사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을 쉽게 무너뜨려 주었다.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인간은 의외로 쉽게 되어 버린다.
세진은 작았다. 물론 내가 보는 기준이었다. 160 센티미터 정도. 그리고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냥 평범한 중 3의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나는 여자로 보았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강남역이었다. 그곳은 붐볐고 반짝거렸다. 사람들과 건물과 금전으로. 돈, 사람, 동산, 그 완벽한 삼박자의 하모니. 그걸 누가 부정하겠는가. 못해서 안달할 뿐이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거부당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인 듯한 여자가 거부한다. 미성년자 어쩌고 땡!
미선을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 여자는 마흔 세 살이나 되었고, 고등학생의 남자와 중학생 여자 아이를 둔 어머니였다.
그런데 나는 반했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나는 심장의 일렁거림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미선을 대학 시절 만났다면 나는 이상형의 여인을 만난 기쁨으로 설레며 두근거리며 온갖 상상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실제로 접근해서 내 여자로 만들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 없지만.
그러나 현재의 나는 그 시절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미선을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언제나처럼 현재의 내 생활이 다 망가지더라도 던질 수 있는 포커의 마지막 배팅 같이 생각되었다. 물론 나는 언제나 매일 삶을 포커의 마지막 배팅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섰을 때 서 있던 여자. 그 여자. 큰 키에 여린 느낌의 몸매, 그리고 갖춰진 이목구비의 여자. 나이는 들었지만 살구꽃 향기를 풍기던 여자. 도시에서만 살다가 어쩌다 갔던 시골에서 본 살구꽃, 그 향기. 이질적이지만 그러나 이상향으로 느껴졌던 그 때의 기억.
나는 그 여자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 잘 부탁해요.”
다정다감하게 뱉어내는 그 목소리.
“......네.”
나는 겨우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1년 후 그 여자의 보지 속으로 내 자지를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것이 인과의 완성.
글을 쓰면서도 나는 계속 망설이고 있다. 미선을 처음 먹게 되었을 과정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 그러면서 이미 미선과의 현재 섹스를 말해 버렸는데 그것을 다시 얘기한다는 게 어떤 아마, 현재의 이 망설임이 이 글의 충동적 시작을 지적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얼마나 이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지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1회부터 내가 섹스신을 넣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으리라. 면피. 그런 야비한 변명으로서.
지금 내가 야설로서 쓸 수 있는 얘기의 선택지는 우선적으로 딱 두 가지다. 세진과의 섹스 경험, 아니면 미선과의 첫 섹스. 그 외의 선택지는 이 소설의 제목처럼 무궁무진하다. 민간인 여자와 천 명 이상의 섹스를 경험한 나로서는. 아마 그 경험들만 매일 한 장씩 늘어놓더라도 중언부언일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오늘 왜 이렇게 재미없는, 전혀 야설답지 않은 말을 늘어놓는 것일까.
현재 나는 한 여자에게 반해 있다. 그 여자의 나이는 마흔 여섯. 그러나 전혀 마흔 여섯 같이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일을 끊는 바람에 1년은 잘 버텼는데 어느 순간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 때문에 나는 평생 한번도 겪지 못한 빈궁을 겪게 된다. 두 달을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전혀 믿지 않았던 사람이 내게 빈궁 탈출의 계기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받아들인다. 과거 같으면 전혀 하지 않았겠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거의 1년간을 방안에서만 주로 지냈다. 그래서 한번쯤 1시간 10분의 시외버스에 앉아 있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토털 3시간은 잡아야 하는 시간이긴 했지만.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도시에서 나는 한 여자를 보게 되고 그녀가 뿜어내는 그 매혹에 굴복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망설이고 있다. 아니 서성거리고 있다.
마흔 여섯의 그녀는 결코 46이란 숫자로 규정할 수 없다. 내 눈에는. 내게 그 여자는 청춘의 빛나는 후광을 갖고 있고, 늘 웃는 눈자위로 내게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그 매혹의 정도를 느끼게 해 주고, 그 덕분에 나는 언제나 보는 여자의 가슴이나 몸매에 대해서 어떤 시각적 기억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여자는 너무 젊으면서 너무 웃고 있었다. 현재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재수를 결심한 아들과 곧 고등학교에 진학할 아들을 둔 엄마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실로 나는 반해 버렸다. 언제나처럼 매일 그렇게 살아왔던 인생의 총체를 지금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아아, 그러나 사실 돌이켜 보면 그런 경우가 세 번째이긴 하다. 그래서 지금이란 부사어는 성립 불필요.
충동적으로 시작했던 이 글에 대해서 나는 오늘 무엇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야설다운 글, 말초적이면서도 내가 추구하는 어떤 그 욕망의 발산? 새로운 판타지아?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내 상태에 대한 고백? 결국 별 볼 일 없는 인간일 수밖에 없는 나에 대한 자각?
어쨌든 오늘의 문체는 이것이다.
아침에 눈 떴을 때 내 품에 안긴 유리를 발견한다. 창으로 스며든 빛살은 유리의 살색이 얼마나 하얀 색인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눈앞에 십 팔세의 가슴이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펼쳐져 있었다. 작은 젖꼭지는 연분홍색이다. 언제나처럼 기시감.
주말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걷게 되는 종로의 한 노래방에 세진과 나는 있었다. 딱 봐도 중 3임을 알 수 있는 차림을 한 세진은 동그란 얼굴에 안경을 낀 우등생 스타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