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탈-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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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돼, 말도 안돼...!! 어떻게 그 놈이 바람의 손을 조종할 수 있는거지? 소드마스터도 아닌 놈이!!"
아무리 국왕이라 해도 대륙 검사에게 함부로 본좌에게 처녀막을 바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얀이라면, 미와 무를 겸비한 재녀로서 평소 작위가 없었다 할 지라도 사실상 반 귀족이나 마찬가지로 주다스피스트의 소중한 보물 취급을 받아 왔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귀족 가문에서 막강한 후원을 받아가며 온실속에서 자라났다는 평가를 받는 주세페로서는 얀을 향한 애증이 도를 넘어선 상태였다. 아마도 그가 소드마스터에 이를 수 있었던 원동력도 그런 증오가 일조했을 터였다.
[내가 꺾지 못할 꽃이라면, 아무도 꺾지 못한다!!!]
주세페는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이를 꽉 깨물었다. 물리적으로라도 국왕과 얀이 합방하기 전에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아니 합방을 시작했다면, 아쉽지만 얀을 죽여서라도 국왕에게서 떼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자신의 정치적 야심과, 개인적 증오와, 바이퍼라는 묘한 사내에 대한 견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어디를 급히 가시나, 후작 나으리?"
외곽에 있는 가문의 별장에서 내성과 외성을 지나 입궐하여 마침내 가을궁전에 위치한 젊은 국왕의 침소에 다다랐을 때, 침실 입구를 막고 서 있는 자는 단 한 명의 사내였다. 입가에 요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놈은 비틀린 미소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얼굴을 하고 있어 천진난만하게 주세페의 마음을 농락하는 것만 같았다.
"네 이놈, 물러서질 못할까!!!"
채채챙!!
왕궁 내의 식솔들이 갈레라 친위대의 흉흉한 기색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근위대도 정예는 이미 씨몰살을 당해 허수아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이 곳에 샤샤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여전히 밉살스러운 여유가 철철 흘러 넘쳤다.
그 때 문 너머에서 얀의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처녀막 터지는 소리를 들은 샤샤는 두뺨에 떠오른 홍조와 함께 흐뭇한 미소를 얼굴 가득 지었다.
"어쩜, 우리 국왕 나으리께서는 정력도 좋으시지..."
"거기에서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겠다면 베겠다."
주세페의 평소의 신념은 선빵필승이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말로 딱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경계심을 느낀 주세페는 일단 위협을 했지만 샤샤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았다.
갈레라 친위대가 개나리스텝을 밟으며 미칠듯한 기세로 짓쳐들어오자 샤샤도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전신의 오라를 활성화시켰다. 어떻게 본다면, 이렇게 정상적인 상태에서 오라를 다루는 집단과의 싸움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러나 샤샤의 머릿속에는 그 날 체험해 보았던 니어미드 공작의 무서운 검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으럇!!"
샤샤는 사방에서 붉은 옷을 입은 친위대가 달려들자 땅 속 깊숙히 손을 찔러 넣었다. 이미 이런 사태를 대비하여 다크 엘프들에게 명령해 놓은 바가 있었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였지만 친위대 중 한 명인 폴렉은 그것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핏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째서, 부인의 뱃 속에서 얌전히 잉태되어 있어야 하는 자신의 아기가 왜 저런 몰골을 하고 이 곳에 있는거지?
"안돼...!! 다시 들어가, 다시 들어가...!!"
폴렉은 어느새 무기를 버리고 썩어가는 아이의 시체를 소중하게 안아 들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정원의 땅이 들썩거리며, 샤샤가 미리 죽여서 땅 속에 묻어 놓은 친위대의 가족들이 기어 올라 각자의 혈족을 찾아 방황하기 시작했다.
"에비야... 에비야... 집에 쌀이 없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 겠어요..."
"으으아악!!!"
"아아악!!! 오지 마!!"
"아버지, 어머니이이!!"
친위대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주에 걸려들지 않은 이는 갈레라 오직 하나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친족의 시체와 대치한 채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친위대는 이미 모두 정신줄을 놓아버린듯, 갈레라를 쌩깐 채 썩어가는 시체를 부둥켜 안고 있었다. 그 때 갈레라의 코에 미묘한 향기가 느껴졌다. 환각제 냄새. 자신도 가끔 대마나 아편을 즐기지만 이것은 비교를 거부할 만큼 지독한 농도의 환각제였다. 갈레라는 깜짝 놀라 급히 코를 틀어 막았다. 그러나 이미 쇼크 상태에 빠진 친위대는 점점 더 공황상태에 빠져들 뿐이었다. 단순히 시체만을 되살리는 네크로멘시 마법이 아닌, 사람의 심리적 약점을 자극하여 함정에 빠뜨리는 교활한 술책이었다.
"예상대로군... 자신들은 언제나 안전한 곳에서 타인의 고통을 관람만 해온 이들은 온갖 역경 속에서 살아가는 천민들보다 손쉽게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지. 게다가 나름 신성 왕국이라는데 흑마법에 대한 저항력도 끔찍할 정도로 낮군 그래."
"너...너... 크툴의 간자였구나!!"
유로파 대륙에서 흑마법을 사용하는 자는 동방 대륙에서 온 크툴인 뿐이다. 샤샤는 백색 피부를 가진 로만인이었지만, 흑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크툴에 포섭된 간자로 의심받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아...아..."
"으으으..."
장내에 이변이 일어났다. 어느덧 시체가 산사람을 껴안고 땅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정리에 현혹되어 두 눈이 풀린 이들은 모두 저항없이 끌려 들어가 땅 속에 거꾸로 처박힌 채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얼굴을 파 먹혔으며, 패닉에 빠져 가족의 시체를 난도질한 자는 울며 미쳐 날뛰었다.
두 눈이 멍하게 풀린 채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폴렉의 손에 들린 아이는 어느새 폴렉의 입 안으로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역한 시체 비린내에 콜록콜록 기침을 하던 그는 어느덧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피 속에는 조각난 내장의 살점들이 거의 민치 상태가 되어 토해져 있었다.
"쿨럭... 케헥...!"
마침내 자리에 쓰러진 폴렉의 배는 어느덧 홀쭉하게 들어가, 그 속에서 태아로 짐작되는 작은 덩어리가 살가죽을 찢고 나오려고 울렁거리고 있었다.
"사령의 저주라... 정말 지독하군. 밑준비에 정성이 들어간 만큼 고객을 만족시키는 정성이 있는 주문이야."
"죽어라!!"
차마 몰골을 보아줄 수 없었던 주세페는 부들부들 떨며 붉은 오라로 코팅된 검기를 날렸다. 황금빛 오라를 두르고 검을 막아내려던 샤샤의 팔이 성둥 잘려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으응...?"
절단면에서 피가 줄줄 새고 있었지만 샤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떨어진 팔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오라가 불충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