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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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부>
#1-爆走
리키의 이가 악물어졌다. 맹렬하게 원거리 공격을 날리던 4인방중 한명이 노아를 향해 달려든것이 크나큰 실수였다. 순식간에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통속에 죽어가는 아군을 보며, 리키의 눈은 떨리기 시작했다.
‘젠장..생각 이상이군.’
여왕이라는 자아를 입고 있는 노아는 상상이상의 강함을 갖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원거리 공격을 날리면 적어도 노아가 보내는 땅의 정령의 공격을 피할 여건이라도 마련되지만, 그녀에게 달려들면 여지없이 정령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을 도와주던 류호를 비롯한 블랙맘바의 4인방중 하나인 소호가 그대로 땅에 생매장 되어 버리는 광경을 본 리키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그래도..블랙맘바의 간부격인 소호가 저렇게 허무하게..’
명백하게 느껴지는 실력의 차. 하지만 조금더 버티면 승산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로는, 그녀의 힘은 막강한 대신 지구력, 즉 지속 시간이 짧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정령력을 무리해서 많이 사용하게 되면 휴식을 취하지 않을수 없는 노아의 특징을 잘 알기에, 리키는 무조건 원거리에서의 공격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칫!”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나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들을 모두 강풍으로 허공에 날려버리던 노아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적극적으로 한명을 공격하려니 엄호를 해주는 나머지 셋의 움직임을 신경써야 해서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크룬 전쟁때처럼 그냥 숫자만 많은 수환수가 상대라면 해 볼만하겠지만, 상대는 일반인 치고 꽤나 ‘강자’라는 소리를 들을법한 실력자 들이었다. 게다가 공격범위 자체가 전무후무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그 특징탓에, 노아는 자꾸만 다른 인물들을 신경쓰느라 전력을 다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위험하다..이대로라면..’
비록 방어에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계속해서 정령력을 끌어쓴다면 몸에 엄청난 피로가 걸릴것이 분명했다. 이 곳이 프로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의 전장은 정령을 소환하는거 자체에서 부터 정신력이 소요되는 이계(異界)였기 때문이었다.
“모두! 최대한 간격을 벌려!”
리키의 말에 류호와 와호, 그리고 일호는 황급히 갈라지며 세 방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리키까지 합쳐져, 노아는 사방에 적을 두고 둘러싸인 형상이 되어 버렸다.
“살라만더!”
노아의 명령에 따라 소환된 네마리 불의 도마뱀들이 흡사 풀밭을 누비는 독사처럼 날카로운 동선을 그리며 사방을 점한 적들에게 날려졌다. 발동속도가 제로에 가까운 빠른 공격에 그들은 당황하면서도 가까스로 몸을 피하거나, 마나를 이용해 그것을 소멸시켰다.
‘어...?’
긴장을 늦출수 없는 상황임에도, 노아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며 준 일행이 사라진 숲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마나를 다루지 않는 그녀지만, 여왕으로서의 노아는 적어도 그것을 ‘느끼는’것 정도는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마유...미?’
그녀는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전장인 것도 잊은채 넋이 나간 얼굴로 건너편의 숲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고운 주먹이 꽉 쥐어쥔 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찰나의 헛점을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은 리키의 검에서 짙푸른 검기가 넘실대며 노아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 들었다.
콰직!
순간적으로 지면이 솟아오르며 모처럼의 기습이 수포로 돌아가자 리키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노아와 자신의 사이를 순식간에 가로막은 거대한 돌무덤. 하지만 그것이 천천히 땅으로 꺼지며 사라지던 그때 리키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다시 나타난 노아의 표정에서는 숨히 막힐 정도의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가..감히 마유미를...”
노아의 머릿속에서 언제나 늘 따뜻하게 감싸주던 동료 마유미의 모습이 스쳐지나 갔다. 물론 여왕일때의 그녀와 마유미는 실제로 만난적은 없었지만, 자아가 달라도 공유하는 기억의 교집합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깜찍한 노아의 얼굴에서 무서운 살기가 드리워지자, 그녀를 포위한 넷은 긴장한 표정으로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그녀의 주변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일순간 달라지는 것에 그들은 모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싸한 느낌을 받았다.
노아는 느끼고 있었다. 준의 마나와 연결이 되어있던 마유미라는 끈이 뚝하고 끊어져 버렸다는 것을. 늘상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보살폈던 그녀의 하얀 얼굴이 산산이 부숴지는 이미지가 노아의 머리속으로 투영되었다.그녀의 분노에 바람의 정령들이 매섭게 사방으로 몰아치기 시작했고, 그녀를 감싼 4인방은 갑작스런 강풍에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이윽고 이글거리는 불의 정령들이 바람의 정령쪽으로 녹아드는 모습을 본 리키의 동공이 삽시간에 커졌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아군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들 후퇴해! 어서!”
콰직!
또한번 초희의 수도가 미호의 옆구리에 직격했다. 혈수라 불리는 극악의 마공임에도 불구하고, 미호의 몸은 휘청할뿐 조금의 데미지도 느껴지지 않는 다는 듯 다시금 초희에게 무식하기까지한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그녀는 다급하게 유희쪽을 향해 외쳤다.
“아직 멀었어!?”
“기..기다려! 이건 궁극 주문이란 말이야! 조금만 더 시간을 벌어줘!”
“큭!”
순간 미호의 대검이 땅에 푸욱 하고 박혔고, 그녀는 그 탄력을 이용하여 몸을 튕기며 초희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차 버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충격속에서 그녀는 얼른 붉게 물든 손을 뻗어 미호를 향해 장력을 폭사 시켰다.
콰쾅!
“크윽...저..빌어먹을 전능수...”
초희는 입안에 가득 고인 핏물을 뱉어내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미호역시 악바리처럼 달려드는 초희가 질렸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애석하게도 초희의 혈수에 직격당한 그녀의 몸은 조금씩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초희는 재빨리 복잡한 마나식을 계산하는 유희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엄호해 주지 않으면, 미호의 검은 유희쪽을 노릴 것이었다.
‘저건..?’
문득 가면에 가려진 초희의 눈이 반짝 하고 빛이 났다.미호가 자신을 공격하느라 땅에 꽂아 버린 대검이 눈에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초희의 장력 덕분에 미호와 그녀의 검사이의 거리는 약간 벌어져 있었다.
‘그래..룬어가 적혀있는 저 검으로 고대 마법까지 발동한다. 저것만 있으면...카피해 두었던 세라의 기술로 응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초희의 몸이 튕겨지듯 일으켜졌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엄청난 스피드로 미호를 향해 달려나갔다. 양 손에 알 수없는 기운을 맺히게 하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녀를, 미호는 조용히 응시하더니 살짝 자세를 낮추었다.
콰직!
미호와 초희의 손이 허공에서 만나자 불꽃 같은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초희의 권과 각은 쉴새없이 미호의 급소만을 노리고 파고 들었고, 미호의 몸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초희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팔괘(八罫) 무투식(武鬪式) 마하붕권(魔河崩拳)-
차우가 쓰는 공격중 최고의 대인공격을 표방하는 초식이 초희의 손에 의해 재현되기 시작했다. 미호의 주먹을 피하며 어깨로 살짝 그녀의 가슴을 쳐낸 초희는 온힘을 다해 몸을 날리며 양손에 맺힌 권식을 미호의 몸통에 꽂아 넣어 버렸다.
투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미호의 몸이 그대로 튕겨져 날아갔다. 마나와 마나가 만났을때의 척력(斥力)을 이용하여 상대를 그대로 밀어내는 기술. 미호의 몸역시 동극의 자석과 맞닿은 것처럼 힘없이 밀려나 날아가 버렸다. 초희는 재빨리 몸을 틀어 지면에 박힌 미호의 검을 뽑아 들었다.
“큭!”
검의 손잡이를 쥐자마자 수십개의 바늘이 돋아나며 초희의 양손을 관통해 버렸다. 미호가 아니면 잡을수 없는 마나감응의 장치가 되어 있음이 분명했지만, 초희는 지릿한 두 손의 고통속에서도 그것을 놓지 않았다. 어느새 재생을 끝마치고 다시 맹렬히 달려오는 미호의 모습을 똑똑히 볼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라. 네 기술좀 빌릴게.’
초희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키만한 대검을 들어 올려 눈높이에 맞추었다. 미호의 양손에 마나가 맺히는 것을 본 그녀의 두 눈이 신비한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그 눈으로 미호가 취할 동선이 쉴새없이 입력되기 시작했다. 마나가 많이 소모되는 기술이긴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마나량이 제로가 되지 않는 이상 뭐든지 해야만 했다.
-청랑십이검(靑狼十二劍) 무한연환검무(無限連環劍舞)-
수백개의 변칙공격을 단 한개의 초식에 담은 세라의 절기가 초희의 손에 의해 펼쳐지기 시작했다.그녀가 쥔 미호의 대검이 수십번의 변초를 거쳐가며 미호의 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피하려 몸을 움츠린 미호의 옆구리와 팔에 조금씩 검이 스쳐지나가며 상처가 생기는가 싶더니, 이윽고 초희가 들고 있는 검은 맹렬한 속도로 미호를 도륙해 나갔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유희는 마지막 수인을 맺고는 초희를 바라보았다. 미호의 신체가 난도질 되는 모습이 똑똑히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뼈와는 그 차원 자체를 달리하는 미호의 몸은 분리되지 않은채 피분수만 뿌려댈 뿐이었다. 궁극 주문을 손에 걸어둔 유희는 목소리를 높여 초희에게 소리쳤다.
“초희! 이제 그만 비켜!”
그녀의 외침을 들은 것일까. 무시무시한 초식을 쉴새없이 미호를 향해 날리던 초희의 몸이 순식간에 횡으로 이동했다. 유희의 말을 듣는순간, 초희는 자신의 손을 파고든 그 검의 손잡이를 놓아 버리며 그대로 옆으로 낙법을 친 것이었다.
“엘리네이먼트 엘리머..”
시동어를 외치려던 유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는 궁극 주문을 외려는 순간, 그녀의 몸은 일순간 정지했다. 몸이 부르르 하고 떨리기 시작한다. 마치 온몸이 부숴지는 듯한 충격이 유희를 엄습했고, 그녀는 최후의 일격을 날리지 못한채 그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유희!”
그녀를 향해 달려가려던 초희의 몸도 정지해 버렸다. 타는듯한 고통이 온몸을 감싸돌았다. 가면에 가려진 그녀의 두 눈이 김노인이 있을 법한 위치로 향해졌다. 틀림없었다. 자신의 오너와 연결된 고리끈이 끊어지는 고통. 점차 은빛 가루로 화해 버리는 유희의 모습을 본 초희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주..주인니..”
“허...허억...”
김노인에 손에 쥐었져 있던 옥빛 피리가 힘없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어느새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야마토의 비릿한 표정을 본 그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어떻게..헉..”
예전의 모습이 어떻든,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야마토에게 자신이 쓸수 있는 최고의 음공을 펼쳤던 그였다.
‘마..말도 안돼..파혼성(破魂聲)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는데..어떻게..이..이런..’
김노인의 몸이 반항한번 하지 못하고 축 하고 늘어졌다.소리로써 상대의 신체를 분리해 버리는 극성의 초식을 사용했음에도, 야마토의 몸은 멀쩡하기 그지 없었다. 오히려 공격이 끝나는 그 순간 순식간에 자신의 앞을 점해 목덜미를 움켜쥔 것이었다. 초식을 막아낸 것이 아닌 회피한 것이었다.
“아직도 음공이라는 갈래에 대해 회피가 불가능한 무적의 기술이라 생각하나?”
김노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조금씩 느껴지는 죽음의 공포에, 그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음공이 발동되는 속도에 필적하는 빠른 속도로 회피한다면..그 어떤 공격도 소용없는 거지..이런..니 페어리들은 벌써 니 몸에 온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죽어가고 있는 듯하군..”
야마토의 굵직한 음성에 김노인은 아득해지는 정신줄을 붙잡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보기에도 거북할 정도의 농도 높은 마나를 머금고 있던 그의 손이 자비없이 김노인의 복부를 강타했다.
콰지지지직!
흡사 연줄이 끊긴 연처럼, 그의 몸은 너무나 힘없이 자유비행을 하며 날아가 거대한 바위로 쳐박혀 버렸다.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을 하고는 축 늘어져 버린 김노인을 보며, 야마토는 비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잘가게..오랜 친구.”
“말해..누구냐.”
리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와호와 류호, 그리고 일호의 몸은 노아가 만들어낸 불의 폭풍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몸을 날린 그 역시, 노아의 사정권으로 들어오며 땅의 정령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목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땅에 묻혀 버린 형상이 된 그는,자신에게 다가오는 작은 소녀의 모습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유미를 죽인것이..누구냐.”
“크으으윽!”
리키는 고통에 몸부림 쳤다. 자신이 묻혀 있는 땅이 엄청난 압력으로 전신을 옥죄어 왔기 때문이었다. 블루블랙의 머리칼이 살짝 바람에 휘날렸다. 자비따윈 없는 노아의 차가운 눈망울이 리키를 향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마유미를 죽인것이 누구지?”
“제..젠장 그걸 내가 어떻게 알...크아아아악!”
곧이어 그를 죄고 있던 땅의 정령은 그의 머리까지 삼켜버렸고 리키의 비명은 점점 메아리조차 존재하지 않는 땅속으로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
노아의 작은 어깨가 파르르 하고 떨렸다.분노에 찬 그녀의 눈동자가 좌우로 두리번 거려졌다. 이미 그녀를 포위했던 네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불에 그을린 황량한 숲의 정경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그녀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이미 지쳐가는 그녀의 호흡은 조금씩 불규칙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아의 눈에, 거대한 대검을 뽑아든 알몸의 미소녀와 검은색 도포를 입고 있는 한 중년남자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 2- 최강 대(對) 최강.
“흑..흑..”
준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유미의 흔적들은 그대로 따뜻한 물에 뿌려진 설탕처럼 흔적도 없이 공기중으로 녹아들어 버렸다. 붉은 잔상마져 남기는 그녀의 기운. 수아에 의해 세뇌력의 원천인 붉은 구슬이 박살나 버리자, 세라역시 정신을 잃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마..마유미..”
수아의 큰 두 눈망울에 점차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언제나 엄마 역할을 도맡아 했던 마유미의 허무한 죽음에 그녀는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오열하는 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멸겁화의 인이 맺힌 최강의 적법사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되어 버린 것이었다.
“마..말도 안돼..어째서 이런일이..”
평소 마유미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던 유나역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J에 의해 태어난 페어리이니, 아무리 중간에 주인이 준으로 바뀌었다 해도 그녀를 다시 소생시킬수는 없었다.
“주인님.”
들고 있던 활까지 떨궈 버리며 힘없이 주저앉은 수아도, 연신 눈물 맺힌 얼굴로 준을 바라보던 유나도 갑작스레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붕대로 응급처치를 한 채로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그녀는 바로 리미였다.
“리미..마유미가..”
수아가 입을 열자 리미는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다. 긴 머리카락이 단발로 잘려나가 기절해 있는 세라. 그리고 상처투성이인 준을 본 것만으로도 리미는 대략 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뒤늦게 합류하여 늘상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마유미의 착한 심성이 떠오르자, 리미의 눈에도 조금씩 이슬이 고였다.
“주인님. 일어나세요.”
준의 눈물젖은 얼굴이 들어올려지며 리미를 향했다. 최대한 냉정하려 애쓰는 그녀의 얼굴을 본 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온몸에 가득한 상처보다, 심각한 뇌의 충격을 입고 쓰러진 세라와 사라져 버린 마유미에 대한 슬픔이 큰 까닭이었다.
“모두..저 앞쪽으로 가야 합니다.”
“뭐?”
유나의 되물음에 리미는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망설이기 시작했다.높은 곳에서 내려오면서, 전장의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만 했던 리미는 괴로운 듯 입을 열지 못했다. 숨막히는 적막이 조금씩 지루해질 때쯤, 그녀는 준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노아가 혼자서 어느 페어리와 싸우고 있습니다.”
“페어리라고?”
유나의 불신어린 목소리에, 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들이 알기론 오너와 페어리로서 이 세계에 남아있는 적군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페어리가 맞아요.1세대 페어리인 듯합니다.그리고...”
그제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준을 보며, 리미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이었다.
“사부께서...돌아가셨습니다.”
“호오..저것이 그 소문만 무성한..2세대 페어리의 최강자로군,”
분노에 젖은 노아의 모습을 본 야마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숨히 막힐 정도였지만, 그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 어느새 온몸이 깔끔하게 재생된 미호가 거대한 검을 들고 따르고 있었다.
“여기서 부턴 한발자국도 못지나간다.”
노아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조용히 메아리를 그리며 울려퍼졌다. 그녀의 말과 동시에 흡사 대 지진이 몰려온 것처럼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여왕의 분노에 몸을 떠는 것과 같은 격렬한 반응이었다.
“위용을 보아하니...내 수하들은 대부분 니 손에 저승으로 간 듯하구나.”
야마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그의 예상을 훨씬 웃돌 정도로 블랙맘바의 손실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가장 두려운 싹을 제거 하고 나면 능력있는 동지들이야 금세 모을 수 있겠지. 중요한 건...그 과정이 어찌되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힘을 가진 1인이 남아야만 하는게 세상의 섭리거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위로 올려지는 그의 오른손. 그리고 그것이 신호인 듯 미호의 몸이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노아를 향해 튕겨지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지직!
노아의 미간이 살짝 움찔했다.미호가 달려오는 순간 늘 그렇듯 땅의 정령들이 방해공작을 펼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녀의 대검이 무차별로 휘둘러지며 그것들을 부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운다인!”
이번에는 검보다 날카로운 수천가닥의 물줄기들이 미호의 몸을 향해 한꺼번에 날아 들었다. 드는것 조차 힘겨울 것만 같던 미호의 검이 허공에서 팽글팽글 돌며 물줄기들을 튕겨내기 시작했고, 그녀의 주변에는 물안개 마져 형성되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었다. 하지만 그것을 다 막아내지는 못했는지, 조그마한 물줄기 하나가 미호의 어깨죽지를 관통해 버리며 핏빛 물보라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저건..?”
아이의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렸던 미호의 어깨가 순식간에 깔끔히 재생되는 것을 본 노아의 두 눈이 조금씩 떨려왔다. 어느새 미호의 몸은 점점 노아의 근처로 접근하고 있었고, 방어가 미호에게로 집중된 틈을 탄 야마토의 몸은 빠르게 노아를 스쳐 지나가며 준이 있는 숲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블레이즈.”
노아는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렸다. 쉴새없이 피어나는 물안개 속에서 미호의 검이 번쩍 하고 빛나더니, 이윽고 한번도 본적이 없는 검은빛깔의 화염구 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실다페!”
양 옆으로 팽팽히 당겨진 줄처럼 어느쪽이 끊어질지 모르는 접전이었다.미호가 쏘아낸 마법의 불꽃은 그대로 바람의 중급정령에 양분되며 애꿎은 숲을 태우고 있었고, 방어하는 노아와 공격하는 미호의 접전은 조금의 틈도 없이 맹렬히 이뤄지고 있었다.
-최대한 여왕의 힘을 빼도록.-
야마토에게서 내려진 명령이었다.미호는 그 명령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진작부터 미호의 상대는 노아로 낙인찍혀 있는지 오래였던 것이다.
‘위험하다..이대로라면..’
노아는 극심한 편두통이 몰려오는 느낌에 주춤거렸다. 땅의 상급 정령들이 쉴새 없이 미호의 발목을 잡아채고 있었지만, 그녀의 칼부림 한방에 그것들은 모두 자갈처럼 산산히 부숴지고 있었다. 물의 정령과 불의 정령을 있는대로 쏟아부어도, 금방 재생이 되어 버리는 미호의 모습에 노아는 점점 더 당황하고 있었다.
“프로즌 크래틱 에로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하고도 낭랑한 목소리. 미호역시 생각지도 못한 듯 무표정한 얼굴을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이윽고 허공에 떠있는 거대한 마법진에서, 보기에도 날카로운 얼음의 창들이 미호의 몸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당황한 미호의 몸위로 얼음의 창들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져 내렸다. 노아는 자신의 옆으로 착지하는 유나의 모습을 보며 살짝 휘청거렸다.리미의 지시에 의해 왔겠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노아에게는 입을 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으힉! 저거 진짜 완전 괴물이잖아!”
온몸이 관통된 상태로 조금씩 재생이 이루어지는 미호의 몸을 보며 유나는 질렸다는 듯 입을 벌렸다.아쉽게도 유나의 마법이 미호의 몸을 완벽하게 관통시키지 못한 모양인지,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몸에 박힌 얼음의 창들을 뽑아내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유나의 눈과, 미호의 무표정한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고, 여지껏 마법을 쓸때 이외에는 좀처럼 열리지 않던 미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대마법사..가터 스튜어드의 외동딸이로군. 너도 결국 페어리가 된건가.”
“뭐..?”
유나는 알수 없는 미호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미호는 바짝 날이 서있는 거대한 대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나를 만든 프로센의 대마법사 이자, 페어리라는 존재를 만든 사람. 결국 자신의 딸도 페어리로 만들어 이 세계로 보냈군.”
“너..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야?”
유나의 앙칼진 외침에 미호는 무표정한 얼굴을 조용히 끄덕였다.점차 지친 표정을 하는 노아와 영문을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유나를 번갈아 바라본 미호는, 낮은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군. 그는 곧 자신의 피조물에게 자신의 딸을 잃게 될테니.”
“실다페!”
노아의 힘겨운 외침소리와 함께 맹렬한 강풍이 미호에게 불어 닥쳤다. 그녀는 양손으로 검을 쥔채로 그것을 지면에 강하게 꽂아 넣으며 버티기 시작했다.
“노아.나에게 작전이 있어.”
조금씩 감기는 눈으로, 노아는 힘겹게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괴물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리미에게 들었어. 저건 전능수래.”
노아는 대답대신 힘겨운 호흡만을 할 뿐이었다. 유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저걸 잡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온 몸을 분리하는 것. 리미가 가르쳐준 그걸 써보자.”
노아는 유나의 말에 다시금 강풍속에서 버티고 있는 미호를 바라보았다. 불의 정령을 보낸다면 그녀를 태울 순 있겠지만,어차피 곧 그녀는 재생이 될 것이었다. 예전에 리미가 제안했던 유나와의 콤비 플레이를 떠올린 노아는 아득해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두 손을 맞대어 잡았다.
“부탁할게 노아.”
당부하는 듯한 유나의 말을 들으며 노아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강풍이 점차 잦아들며, 검에 매달려 허공에 떠있다 시피했던 미호의 몸이 지면으로 서서히 착지하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땅에 꽂혀있던 검과 미호의 몸이 동시에 땅 속으로 쑤욱 하고 빨려 들어갔다.
콰지지직!
미호는 재빨리 온몸을 휘둘러 자신의 몸을 잠식해 가는 땅을 부수기 시작했다. 노아는 땀이 가득한 얼굴로 재빨리 한쪽손을 뻗었다. 그녀의 동작을 신호탄으로 소환된 물의 중급정령은 빠른 속도로 지면으로 흡수되어 졌다.
‘이건..?’
미호의 얼굴이 굳어졌다.딱딱한 땅이 아닌, 질척한 늪지가 자신의 온몸을 감싸안고 빨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단단한 지면은 부술수 있었지만, 진흙과도 같은 늪이 되니 그녀의 몸부림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검이 완전히 늪속으로 묻혀 버리는 것을 본 미호의 표정이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그녀 역시 하반신 전부가 땅속에 묻혀가는 상태였다.
“프로즌 포그!”
이어서 유나의 외침이 들려오며, 미호의 몸 주변은 희뿌연 안개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폐까지 얼려 버릴 듯한 절대영도의 안개에, 미호의 살갖은 점점 창백해졌다. 미호는 자신의 몸을 쥐고 있는 늪을 빠져나오려 더욱 거세게 발버둥 쳤다.
“지금이야 노아! 어서!”
“우..운다인..”
이미 할당량을 모두 써버린 노아는 중급정령을 소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툭 하고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이미 방어할 기재를 잃은 미호의 몸으로 수백가닥의 물줄기들이 쏟아져 나갔다.
“흑...!”
아무도 듣지 못했던 미호의 신음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유일하게 그녀의 몸을 뚫을수 있었던 노아의 물줄기는, 미호의 몸을 관통하자마자 유나의 프로즌 포그로 인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미호는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리며 점차 형상을 알아 볼수 없을 정도의 잔혹한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그녀의 몸으로 빽빽하게 얼음의 창들이 꽂히며 피분수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마져 붉은 돌맹이처럼 얼어붙어 후두둑 떨어지는 광경을 보며, 유나는 기절해 버린 노아를 한쪽에 눕혔다.
파파파파파...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미호의 몸이 페어리 특유의 소멸형태를 띄며 부숴지기 시작했다. 늪처럼 그녀의 몸을 단단히 고정하던 땅도 노아가 기절을 하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린다. 재생할 틈도 없이 온몸을 빼곡하게 관통당한 미호는, 그렇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나는 금세 깊은잠에 빠져버린 노아를 바라보았다. 정신력 하나로 버틴 노아는 그대로 모든 힘을 소진하고는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이윽고 준이 있던 곳에서 콰앙 하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필시, 그 정체 불명의 1세대 오너와 준이 경합을 벌이는 소리이리라. 유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잠이든 노아에게 중얼 거렸다.
“조금만 기다려 노아. 마유미의 대한 복수는..우리가 꼭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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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들의 오너는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ㅡ^
#1-爆走
리키의 이가 악물어졌다. 맹렬하게 원거리 공격을 날리던 4인방중 한명이 노아를 향해 달려든것이 크나큰 실수였다. 순식간에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 뼈와 살이 분리되는 고통속에 죽어가는 아군을 보며, 리키의 눈은 떨리기 시작했다.
‘젠장..생각 이상이군.’
여왕이라는 자아를 입고 있는 노아는 상상이상의 강함을 갖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원거리 공격을 날리면 적어도 노아가 보내는 땅의 정령의 공격을 피할 여건이라도 마련되지만, 그녀에게 달려들면 여지없이 정령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을 도와주던 류호를 비롯한 블랙맘바의 4인방중 하나인 소호가 그대로 땅에 생매장 되어 버리는 광경을 본 리키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그래도..블랙맘바의 간부격인 소호가 저렇게 허무하게..’
명백하게 느껴지는 실력의 차. 하지만 조금더 버티면 승산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로는, 그녀의 힘은 막강한 대신 지구력, 즉 지속 시간이 짧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정령력을 무리해서 많이 사용하게 되면 휴식을 취하지 않을수 없는 노아의 특징을 잘 알기에, 리키는 무조건 원거리에서의 공격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칫!”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나를 이용한 원거리 공격들을 모두 강풍으로 허공에 날려버리던 노아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적극적으로 한명을 공격하려니 엄호를 해주는 나머지 셋의 움직임을 신경써야 해서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크룬 전쟁때처럼 그냥 숫자만 많은 수환수가 상대라면 해 볼만하겠지만, 상대는 일반인 치고 꽤나 ‘강자’라는 소리를 들을법한 실력자 들이었다. 게다가 공격범위 자체가 전무후무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그 특징탓에, 노아는 자꾸만 다른 인물들을 신경쓰느라 전력을 다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위험하다..이대로라면..’
비록 방어에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계속해서 정령력을 끌어쓴다면 몸에 엄청난 피로가 걸릴것이 분명했다. 이 곳이 프로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의 전장은 정령을 소환하는거 자체에서 부터 정신력이 소요되는 이계(異界)였기 때문이었다.
“모두! 최대한 간격을 벌려!”
리키의 말에 류호와 와호, 그리고 일호는 황급히 갈라지며 세 방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리키까지 합쳐져, 노아는 사방에 적을 두고 둘러싸인 형상이 되어 버렸다.
“살라만더!”
노아의 명령에 따라 소환된 네마리 불의 도마뱀들이 흡사 풀밭을 누비는 독사처럼 날카로운 동선을 그리며 사방을 점한 적들에게 날려졌다. 발동속도가 제로에 가까운 빠른 공격에 그들은 당황하면서도 가까스로 몸을 피하거나, 마나를 이용해 그것을 소멸시켰다.
‘어...?’
긴장을 늦출수 없는 상황임에도, 노아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며 준 일행이 사라진 숲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마나를 다루지 않는 그녀지만, 여왕으로서의 노아는 적어도 그것을 ‘느끼는’것 정도는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마유...미?’
그녀는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전장인 것도 잊은채 넋이 나간 얼굴로 건너편의 숲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고운 주먹이 꽉 쥐어쥔 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찰나의 헛점을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은 리키의 검에서 짙푸른 검기가 넘실대며 노아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 들었다.
콰직!
순간적으로 지면이 솟아오르며 모처럼의 기습이 수포로 돌아가자 리키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노아와 자신의 사이를 순식간에 가로막은 거대한 돌무덤. 하지만 그것이 천천히 땅으로 꺼지며 사라지던 그때 리키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다시 나타난 노아의 표정에서는 숨히 막힐 정도의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가..감히 마유미를...”
노아의 머릿속에서 언제나 늘 따뜻하게 감싸주던 동료 마유미의 모습이 스쳐지나 갔다. 물론 여왕일때의 그녀와 마유미는 실제로 만난적은 없었지만, 자아가 달라도 공유하는 기억의 교집합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깜찍한 노아의 얼굴에서 무서운 살기가 드리워지자, 그녀를 포위한 넷은 긴장한 표정으로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그녀의 주변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일순간 달라지는 것에 그들은 모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싸한 느낌을 받았다.
노아는 느끼고 있었다. 준의 마나와 연결이 되어있던 마유미라는 끈이 뚝하고 끊어져 버렸다는 것을. 늘상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보살폈던 그녀의 하얀 얼굴이 산산이 부숴지는 이미지가 노아의 머리속으로 투영되었다.그녀의 분노에 바람의 정령들이 매섭게 사방으로 몰아치기 시작했고, 그녀를 감싼 4인방은 갑작스런 강풍에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이윽고 이글거리는 불의 정령들이 바람의 정령쪽으로 녹아드는 모습을 본 리키의 동공이 삽시간에 커졌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아군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들 후퇴해! 어서!”
콰직!
또한번 초희의 수도가 미호의 옆구리에 직격했다. 혈수라 불리는 극악의 마공임에도 불구하고, 미호의 몸은 휘청할뿐 조금의 데미지도 느껴지지 않는 다는 듯 다시금 초희에게 무식하기까지한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그녀는 다급하게 유희쪽을 향해 외쳤다.
“아직 멀었어!?”
“기..기다려! 이건 궁극 주문이란 말이야! 조금만 더 시간을 벌어줘!”
“큭!”
순간 미호의 대검이 땅에 푸욱 하고 박혔고, 그녀는 그 탄력을 이용하여 몸을 튕기며 초희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차 버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충격속에서 그녀는 얼른 붉게 물든 손을 뻗어 미호를 향해 장력을 폭사 시켰다.
콰쾅!
“크윽...저..빌어먹을 전능수...”
초희는 입안에 가득 고인 핏물을 뱉어내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미호역시 악바리처럼 달려드는 초희가 질렸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애석하게도 초희의 혈수에 직격당한 그녀의 몸은 조금씩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초희는 재빨리 복잡한 마나식을 계산하는 유희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엄호해 주지 않으면, 미호의 검은 유희쪽을 노릴 것이었다.
‘저건..?’
문득 가면에 가려진 초희의 눈이 반짝 하고 빛이 났다.미호가 자신을 공격하느라 땅에 꽂아 버린 대검이 눈에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초희의 장력 덕분에 미호와 그녀의 검사이의 거리는 약간 벌어져 있었다.
‘그래..룬어가 적혀있는 저 검으로 고대 마법까지 발동한다. 저것만 있으면...카피해 두었던 세라의 기술로 응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초희의 몸이 튕겨지듯 일으켜졌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엄청난 스피드로 미호를 향해 달려나갔다. 양 손에 알 수없는 기운을 맺히게 하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녀를, 미호는 조용히 응시하더니 살짝 자세를 낮추었다.
콰직!
미호와 초희의 손이 허공에서 만나자 불꽃 같은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초희의 권과 각은 쉴새없이 미호의 급소만을 노리고 파고 들었고, 미호의 몸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초희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팔괘(八罫) 무투식(武鬪式) 마하붕권(魔河崩拳)-
차우가 쓰는 공격중 최고의 대인공격을 표방하는 초식이 초희의 손에 의해 재현되기 시작했다. 미호의 주먹을 피하며 어깨로 살짝 그녀의 가슴을 쳐낸 초희는 온힘을 다해 몸을 날리며 양손에 맺힌 권식을 미호의 몸통에 꽂아 넣어 버렸다.
투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미호의 몸이 그대로 튕겨져 날아갔다. 마나와 마나가 만났을때의 척력(斥力)을 이용하여 상대를 그대로 밀어내는 기술. 미호의 몸역시 동극의 자석과 맞닿은 것처럼 힘없이 밀려나 날아가 버렸다. 초희는 재빨리 몸을 틀어 지면에 박힌 미호의 검을 뽑아 들었다.
“큭!”
검의 손잡이를 쥐자마자 수십개의 바늘이 돋아나며 초희의 양손을 관통해 버렸다. 미호가 아니면 잡을수 없는 마나감응의 장치가 되어 있음이 분명했지만, 초희는 지릿한 두 손의 고통속에서도 그것을 놓지 않았다. 어느새 재생을 끝마치고 다시 맹렬히 달려오는 미호의 모습을 똑똑히 볼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라. 네 기술좀 빌릴게.’
초희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키만한 대검을 들어 올려 눈높이에 맞추었다. 미호의 양손에 마나가 맺히는 것을 본 그녀의 두 눈이 신비한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그 눈으로 미호가 취할 동선이 쉴새없이 입력되기 시작했다. 마나가 많이 소모되는 기술이긴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마나량이 제로가 되지 않는 이상 뭐든지 해야만 했다.
-청랑십이검(靑狼十二劍) 무한연환검무(無限連環劍舞)-
수백개의 변칙공격을 단 한개의 초식에 담은 세라의 절기가 초희의 손에 의해 펼쳐지기 시작했다.그녀가 쥔 미호의 대검이 수십번의 변초를 거쳐가며 미호의 몸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피하려 몸을 움츠린 미호의 옆구리와 팔에 조금씩 검이 스쳐지나가며 상처가 생기는가 싶더니, 이윽고 초희가 들고 있는 검은 맹렬한 속도로 미호를 도륙해 나갔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유희는 마지막 수인을 맺고는 초희를 바라보았다. 미호의 신체가 난도질 되는 모습이 똑똑히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뼈와는 그 차원 자체를 달리하는 미호의 몸은 분리되지 않은채 피분수만 뿌려댈 뿐이었다. 궁극 주문을 손에 걸어둔 유희는 목소리를 높여 초희에게 소리쳤다.
“초희! 이제 그만 비켜!”
그녀의 외침을 들은 것일까. 무시무시한 초식을 쉴새없이 미호를 향해 날리던 초희의 몸이 순식간에 횡으로 이동했다. 유희의 말을 듣는순간, 초희는 자신의 손을 파고든 그 검의 손잡이를 놓아 버리며 그대로 옆으로 낙법을 친 것이었다.
“엘리네이먼트 엘리머..”
시동어를 외치려던 유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는 궁극 주문을 외려는 순간, 그녀의 몸은 일순간 정지했다. 몸이 부르르 하고 떨리기 시작한다. 마치 온몸이 부숴지는 듯한 충격이 유희를 엄습했고, 그녀는 최후의 일격을 날리지 못한채 그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유희!”
그녀를 향해 달려가려던 초희의 몸도 정지해 버렸다. 타는듯한 고통이 온몸을 감싸돌았다. 가면에 가려진 그녀의 두 눈이 김노인이 있을 법한 위치로 향해졌다. 틀림없었다. 자신의 오너와 연결된 고리끈이 끊어지는 고통. 점차 은빛 가루로 화해 버리는 유희의 모습을 본 초희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주..주인니..”
“허...허억...”
김노인에 손에 쥐었져 있던 옥빛 피리가 힘없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어느새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야마토의 비릿한 표정을 본 그의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어떻게..헉..”
예전의 모습이 어떻든,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야마토에게 자신이 쓸수 있는 최고의 음공을 펼쳤던 그였다.
‘마..말도 안돼..파혼성(破魂聲)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는데..어떻게..이..이런..’
김노인의 몸이 반항한번 하지 못하고 축 하고 늘어졌다.소리로써 상대의 신체를 분리해 버리는 극성의 초식을 사용했음에도, 야마토의 몸은 멀쩡하기 그지 없었다. 오히려 공격이 끝나는 그 순간 순식간에 자신의 앞을 점해 목덜미를 움켜쥔 것이었다. 초식을 막아낸 것이 아닌 회피한 것이었다.
“아직도 음공이라는 갈래에 대해 회피가 불가능한 무적의 기술이라 생각하나?”
김노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조금씩 느껴지는 죽음의 공포에, 그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음공이 발동되는 속도에 필적하는 빠른 속도로 회피한다면..그 어떤 공격도 소용없는 거지..이런..니 페어리들은 벌써 니 몸에 온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죽어가고 있는 듯하군..”
야마토의 굵직한 음성에 김노인은 아득해지는 정신줄을 붙잡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보기에도 거북할 정도의 농도 높은 마나를 머금고 있던 그의 손이 자비없이 김노인의 복부를 강타했다.
콰지지지직!
흡사 연줄이 끊긴 연처럼, 그의 몸은 너무나 힘없이 자유비행을 하며 날아가 거대한 바위로 쳐박혀 버렸다.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을 하고는 축 늘어져 버린 김노인을 보며, 야마토는 비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잘가게..오랜 친구.”
“말해..누구냐.”
리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와호와 류호, 그리고 일호의 몸은 노아가 만들어낸 불의 폭풍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몸을 날린 그 역시, 노아의 사정권으로 들어오며 땅의 정령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목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땅에 묻혀 버린 형상이 된 그는,자신에게 다가오는 작은 소녀의 모습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유미를 죽인것이..누구냐.”
“크으으윽!”
리키는 고통에 몸부림 쳤다. 자신이 묻혀 있는 땅이 엄청난 압력으로 전신을 옥죄어 왔기 때문이었다. 블루블랙의 머리칼이 살짝 바람에 휘날렸다. 자비따윈 없는 노아의 차가운 눈망울이 리키를 향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마유미를 죽인것이 누구지?”
“제..젠장 그걸 내가 어떻게 알...크아아아악!”
곧이어 그를 죄고 있던 땅의 정령은 그의 머리까지 삼켜버렸고 리키의 비명은 점점 메아리조차 존재하지 않는 땅속으로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
노아의 작은 어깨가 파르르 하고 떨렸다.분노에 찬 그녀의 눈동자가 좌우로 두리번 거려졌다. 이미 그녀를 포위했던 네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불에 그을린 황량한 숲의 정경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그녀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이미 지쳐가는 그녀의 호흡은 조금씩 불규칙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아의 눈에, 거대한 대검을 뽑아든 알몸의 미소녀와 검은색 도포를 입고 있는 한 중년남자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 2- 최강 대(對) 최강.
“흑..흑..”
준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유미의 흔적들은 그대로 따뜻한 물에 뿌려진 설탕처럼 흔적도 없이 공기중으로 녹아들어 버렸다. 붉은 잔상마져 남기는 그녀의 기운. 수아에 의해 세뇌력의 원천인 붉은 구슬이 박살나 버리자, 세라역시 정신을 잃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마..마유미..”
수아의 큰 두 눈망울에 점차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언제나 엄마 역할을 도맡아 했던 마유미의 허무한 죽음에 그녀는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오열하는 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멸겁화의 인이 맺힌 최강의 적법사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되어 버린 것이었다.
“마..말도 안돼..어째서 이런일이..”
평소 마유미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던 유나역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J에 의해 태어난 페어리이니, 아무리 중간에 주인이 준으로 바뀌었다 해도 그녀를 다시 소생시킬수는 없었다.
“주인님.”
들고 있던 활까지 떨궈 버리며 힘없이 주저앉은 수아도, 연신 눈물 맺힌 얼굴로 준을 바라보던 유나도 갑작스레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붕대로 응급처치를 한 채로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그녀는 바로 리미였다.
“리미..마유미가..”
수아가 입을 열자 리미는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다. 긴 머리카락이 단발로 잘려나가 기절해 있는 세라. 그리고 상처투성이인 준을 본 것만으로도 리미는 대략 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뒤늦게 합류하여 늘상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마유미의 착한 심성이 떠오르자, 리미의 눈에도 조금씩 이슬이 고였다.
“주인님. 일어나세요.”
준의 눈물젖은 얼굴이 들어올려지며 리미를 향했다. 최대한 냉정하려 애쓰는 그녀의 얼굴을 본 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온몸에 가득한 상처보다, 심각한 뇌의 충격을 입고 쓰러진 세라와 사라져 버린 마유미에 대한 슬픔이 큰 까닭이었다.
“모두..저 앞쪽으로 가야 합니다.”
“뭐?”
유나의 되물음에 리미는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망설이기 시작했다.높은 곳에서 내려오면서, 전장의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해야만 했던 리미는 괴로운 듯 입을 열지 못했다. 숨막히는 적막이 조금씩 지루해질 때쯤, 그녀는 준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노아가 혼자서 어느 페어리와 싸우고 있습니다.”
“페어리라고?”
유나의 불신어린 목소리에, 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들이 알기론 오너와 페어리로서 이 세계에 남아있는 적군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페어리가 맞아요.1세대 페어리인 듯합니다.그리고...”
그제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준을 보며, 리미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을 이었다.
“사부께서...돌아가셨습니다.”
“호오..저것이 그 소문만 무성한..2세대 페어리의 최강자로군,”
분노에 젖은 노아의 모습을 본 야마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숨히 막힐 정도였지만, 그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 어느새 온몸이 깔끔하게 재생된 미호가 거대한 검을 들고 따르고 있었다.
“여기서 부턴 한발자국도 못지나간다.”
노아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조용히 메아리를 그리며 울려퍼졌다. 그녀의 말과 동시에 흡사 대 지진이 몰려온 것처럼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여왕의 분노에 몸을 떠는 것과 같은 격렬한 반응이었다.
“위용을 보아하니...내 수하들은 대부분 니 손에 저승으로 간 듯하구나.”
야마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그의 예상을 훨씬 웃돌 정도로 블랙맘바의 손실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가장 두려운 싹을 제거 하고 나면 능력있는 동지들이야 금세 모을 수 있겠지. 중요한 건...그 과정이 어찌되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힘을 가진 1인이 남아야만 하는게 세상의 섭리거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위로 올려지는 그의 오른손. 그리고 그것이 신호인 듯 미호의 몸이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노아를 향해 튕겨지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지직!
노아의 미간이 살짝 움찔했다.미호가 달려오는 순간 늘 그렇듯 땅의 정령들이 방해공작을 펼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녀의 대검이 무차별로 휘둘러지며 그것들을 부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운다인!”
이번에는 검보다 날카로운 수천가닥의 물줄기들이 미호의 몸을 향해 한꺼번에 날아 들었다. 드는것 조차 힘겨울 것만 같던 미호의 검이 허공에서 팽글팽글 돌며 물줄기들을 튕겨내기 시작했고, 그녀의 주변에는 물안개 마져 형성되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었다. 하지만 그것을 다 막아내지는 못했는지, 조그마한 물줄기 하나가 미호의 어깨죽지를 관통해 버리며 핏빛 물보라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저건..?”
아이의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렸던 미호의 어깨가 순식간에 깔끔히 재생되는 것을 본 노아의 두 눈이 조금씩 떨려왔다. 어느새 미호의 몸은 점점 노아의 근처로 접근하고 있었고, 방어가 미호에게로 집중된 틈을 탄 야마토의 몸은 빠르게 노아를 스쳐 지나가며 준이 있는 숲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블레이즈.”
노아는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렸다. 쉴새없이 피어나는 물안개 속에서 미호의 검이 번쩍 하고 빛나더니, 이윽고 한번도 본적이 없는 검은빛깔의 화염구 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실다페!”
양 옆으로 팽팽히 당겨진 줄처럼 어느쪽이 끊어질지 모르는 접전이었다.미호가 쏘아낸 마법의 불꽃은 그대로 바람의 중급정령에 양분되며 애꿎은 숲을 태우고 있었고, 방어하는 노아와 공격하는 미호의 접전은 조금의 틈도 없이 맹렬히 이뤄지고 있었다.
-최대한 여왕의 힘을 빼도록.-
야마토에게서 내려진 명령이었다.미호는 그 명령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진작부터 미호의 상대는 노아로 낙인찍혀 있는지 오래였던 것이다.
‘위험하다..이대로라면..’
노아는 극심한 편두통이 몰려오는 느낌에 주춤거렸다. 땅의 상급 정령들이 쉴새 없이 미호의 발목을 잡아채고 있었지만, 그녀의 칼부림 한방에 그것들은 모두 자갈처럼 산산히 부숴지고 있었다. 물의 정령과 불의 정령을 있는대로 쏟아부어도, 금방 재생이 되어 버리는 미호의 모습에 노아는 점점 더 당황하고 있었다.
“프로즌 크래틱 에로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하고도 낭랑한 목소리. 미호역시 생각지도 못한 듯 무표정한 얼굴을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이윽고 허공에 떠있는 거대한 마법진에서, 보기에도 날카로운 얼음의 창들이 미호의 몸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당황한 미호의 몸위로 얼음의 창들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져 내렸다. 노아는 자신의 옆으로 착지하는 유나의 모습을 보며 살짝 휘청거렸다.리미의 지시에 의해 왔겠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노아에게는 입을 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으힉! 저거 진짜 완전 괴물이잖아!”
온몸이 관통된 상태로 조금씩 재생이 이루어지는 미호의 몸을 보며 유나는 질렸다는 듯 입을 벌렸다.아쉽게도 유나의 마법이 미호의 몸을 완벽하게 관통시키지 못한 모양인지,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몸에 박힌 얼음의 창들을 뽑아내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유나의 눈과, 미호의 무표정한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고, 여지껏 마법을 쓸때 이외에는 좀처럼 열리지 않던 미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대마법사..가터 스튜어드의 외동딸이로군. 너도 결국 페어리가 된건가.”
“뭐..?”
유나는 알수 없는 미호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미호는 바짝 날이 서있는 거대한 대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나를 만든 프로센의 대마법사 이자, 페어리라는 존재를 만든 사람. 결국 자신의 딸도 페어리로 만들어 이 세계로 보냈군.”
“너..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야?”
유나의 앙칼진 외침에 미호는 무표정한 얼굴을 조용히 끄덕였다.점차 지친 표정을 하는 노아와 영문을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유나를 번갈아 바라본 미호는, 낮은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군. 그는 곧 자신의 피조물에게 자신의 딸을 잃게 될테니.”
“실다페!”
노아의 힘겨운 외침소리와 함께 맹렬한 강풍이 미호에게 불어 닥쳤다. 그녀는 양손으로 검을 쥔채로 그것을 지면에 강하게 꽂아 넣으며 버티기 시작했다.
“노아.나에게 작전이 있어.”
조금씩 감기는 눈으로, 노아는 힘겹게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괴물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리미에게 들었어. 저건 전능수래.”
노아는 대답대신 힘겨운 호흡만을 할 뿐이었다. 유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저걸 잡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온 몸을 분리하는 것. 리미가 가르쳐준 그걸 써보자.”
노아는 유나의 말에 다시금 강풍속에서 버티고 있는 미호를 바라보았다. 불의 정령을 보낸다면 그녀를 태울 순 있겠지만,어차피 곧 그녀는 재생이 될 것이었다. 예전에 리미가 제안했던 유나와의 콤비 플레이를 떠올린 노아는 아득해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두 손을 맞대어 잡았다.
“부탁할게 노아.”
당부하는 듯한 유나의 말을 들으며 노아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강풍이 점차 잦아들며, 검에 매달려 허공에 떠있다 시피했던 미호의 몸이 지면으로 서서히 착지하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땅에 꽂혀있던 검과 미호의 몸이 동시에 땅 속으로 쑤욱 하고 빨려 들어갔다.
콰지지직!
미호는 재빨리 온몸을 휘둘러 자신의 몸을 잠식해 가는 땅을 부수기 시작했다. 노아는 땀이 가득한 얼굴로 재빨리 한쪽손을 뻗었다. 그녀의 동작을 신호탄으로 소환된 물의 중급정령은 빠른 속도로 지면으로 흡수되어 졌다.
‘이건..?’
미호의 얼굴이 굳어졌다.딱딱한 땅이 아닌, 질척한 늪지가 자신의 온몸을 감싸안고 빨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단단한 지면은 부술수 있었지만, 진흙과도 같은 늪이 되니 그녀의 몸부림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검이 완전히 늪속으로 묻혀 버리는 것을 본 미호의 표정이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그녀 역시 하반신 전부가 땅속에 묻혀가는 상태였다.
“프로즌 포그!”
이어서 유나의 외침이 들려오며, 미호의 몸 주변은 희뿌연 안개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폐까지 얼려 버릴 듯한 절대영도의 안개에, 미호의 살갖은 점점 창백해졌다. 미호는 자신의 몸을 쥐고 있는 늪을 빠져나오려 더욱 거세게 발버둥 쳤다.
“지금이야 노아! 어서!”
“우..운다인..”
이미 할당량을 모두 써버린 노아는 중급정령을 소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툭 하고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이미 방어할 기재를 잃은 미호의 몸으로 수백가닥의 물줄기들이 쏟아져 나갔다.
“흑...!”
아무도 듣지 못했던 미호의 신음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유일하게 그녀의 몸을 뚫을수 있었던 노아의 물줄기는, 미호의 몸을 관통하자마자 유나의 프로즌 포그로 인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미호는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리며 점차 형상을 알아 볼수 없을 정도의 잔혹한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그녀의 몸으로 빽빽하게 얼음의 창들이 꽂히며 피분수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마져 붉은 돌맹이처럼 얼어붙어 후두둑 떨어지는 광경을 보며, 유나는 기절해 버린 노아를 한쪽에 눕혔다.
파파파파파...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미호의 몸이 페어리 특유의 소멸형태를 띄며 부숴지기 시작했다. 늪처럼 그녀의 몸을 단단히 고정하던 땅도 노아가 기절을 하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린다. 재생할 틈도 없이 온몸을 빼곡하게 관통당한 미호는, 그렇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나는 금세 깊은잠에 빠져버린 노아를 바라보았다. 정신력 하나로 버틴 노아는 그대로 모든 힘을 소진하고는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이윽고 준이 있던 곳에서 콰앙 하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필시, 그 정체 불명의 1세대 오너와 준이 경합을 벌이는 소리이리라. 유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잠이든 노아에게 중얼 거렸다.
“조금만 기다려 노아. 마유미의 대한 복수는..우리가 꼭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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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들의 오너는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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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님이랑 채팅하다가 얼떨결에 시작한 "요정들의 오너" 배달도 종착지가 보이는군요. 요샌 야미님이 연락두절이라
야미님이랑 채팅하다가 얼떨결에 시작한 "요정들의 오너" 배달도 종착지가 보이는군요. 요샌 야미님이 연락두절이라
생사를 알수 없지만ㅎㅎ 마지막까지 많은 응원과 격려의 리플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리플은 작가님께 제가 직접 배달
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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