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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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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60 회 작성일 24-02-24 16: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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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부>





#1- 습격







“잘먹었습니다!”



“으이그..오늘도 이 산에 오르는 거야?”



“뭐.그렇겠죠!”



식당 아주머니의 물음에 차우는 씨익 하고 웃었다.그가 깨끗히 비운 국수그릇을 치운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기암괴석들을 힐끗 바라보고는 차우에게 말했다.



“너..산에 보물이라도 숨긴거지?”



“잉?보물이라뇨?”



“여기 태항산이 얼마나 험준한 곳인데..여길 왜 매일 오르는거야?”



차우는 식당주인의 질문에 문제 없다는 듯 브이자를 그려보였다.어느새 많이 자라나 덮수룩해져 있는 머리칼들을 뒤로 묶은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그만큼 험준하니 사람이 없잖아요.그래서 올라가죠.”



“사람이 없어서?”



“네.”



“그게 무슨뜻이야?”



“사람이 있으면..제 축지법을 들킬 염려가 있거든요.”



능청스러운 차우의 말에 식당 주인은 화가난듯 퉁퉁하게 살집이 오른 허리에 양손을 갖다 대었다.



“욘석이! 미성년자도 아닌 녀석이 아직도 그런 거짓말을 하면서 어른을 놀려?”



“크헤헤헤.봐주세요.”



“그나저나..매일 따라다니는 아리따운 두 처자들은 어디갔어?”



“아..소소와 샤이요?걔들은 먼저 올라가 있어요.”



“이그! 욘석아 그런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그런 험한 산중으로 보내?”



“음..뭐..별일 없겠죠.”



태연한 차우의 대답에 그녀는 기가 막히다는듯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뼈아픈 오너 전쟁이후로 다시 개화한 소소와 샤이는 평화의 시대에도 아랑곳않고 맹훈련을 거듭하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이 차우가 홀로 식당에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인석이 여자를 그렇게 다루다니..너 조만간 차일게다!”



“푸하하하.차이면 뭐..선물 사주면서 풀면 되지 않을까요?”



“여자 둘 사귄다고 니가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요녀석!”



“에이 참..아주머니. 그런거 아니라니까..”



“얼른 인나. 다먹었으면.”



“얼마에요?”



“5위안이지 뭘 물어봐.매번 먹으면서.”



“아 혹시나 단골 디스카운트 되나 해서..”



차우는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가 식당주인이 물컵을 집어들자 얼른 돈을 테이블위에 놓고는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에휴..저 장난꾸러기 녀석 저거..”



그녀는 미닫이 문을 닫고 잽싸게 도망치는 차우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산 밑에 가게가 위치한 탓에 손님이 많지 않아, 차우는 몇안되는 단골손님중 하나였던 것이다.



“자자..이제 정리좀 하고..으응?”



그녀는 살짝 뒤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분명 구석진 테이블에 한명의 손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우의 몫을 계산하며 대화를 나누던 그 짧은 시간에 좁은 가게에 있던 다른 손님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었다.



“뭐..뭐야.무전취식?”



그녀는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손님이 있던 그 테이블로 다가갔다.깔끔하게 비워진 만두그릇.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정확하게 만두가격에 맞는 돈이 올려져 있었다.



“허..이거 참..나이가 들어서 가는귀가 먹은겐가?손님이 가는줄도 모르다니.”



구겨져있는 돈을 앞치마 주머니에 쑤셔넣으며, 그녀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배가 든든해진 차우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것을 확인하고는 가볍게 몸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등산로 따위는 없는 험준한 산등성이로 그의 몸이 솟구치듯 날아 올랐다.곳곳에 깎아지는 듯한 기암괴석위에 쌓인 먼지들이 가볍게 흩날렸다.차우의 신형이 마치 날아오르듯 그것들을 밟고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한 바람이 차우의 머리를 휘날렸으나, 그의 눈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한 지점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던 그의 몸이 갑자기 좌측으로 급격하게 틀어지며 방향을 바꿨다.절벽에 가까운 경사면을 날아가듯 경공을 펼치며 올라가던 그의 몸은 넓직한 구릉위로 가볍게 안착했다.



그곳은 협곡의 중간중간에 위치한 약간 넓직한 평원이었다. 바위가 많이 솟아 올라 험준하기 그지 없는 능선과는 달리 비옥한 토양위로 많은 풀들이 자라있는 작은 초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이리저리 허리를 비틀며 몸을 풀더니,이윽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숨어서 따라오지 말고..그만 모습을 드러내도 될것 같은데..”



차우의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풀밭위로 뿌연기운이 아른거렸다.흡사 아지랑이와도 같은 이질적인 기운이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차우의 두 시선에 일렁였다.놀랍게도 아무도 없던 풀밭위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각외로 눈치가 빠른데..”



“식당에서부터 쭉 지켜보지 않았었나?”



차우는 킥킥 거리며 웃었다. 청색 무복을 입은 차우와는 대조적으로 검정색 무복을 걸친 사내가 차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팔에는 뱀의 문양이 자수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하루전부터 계속 차우를 추격해온 블랙맘바의 우경이었다.



“음..이런이런..나름 은신에는 자신이 있다고 여겼는데.”



“아 뭐..나쁘지는 않았어. 살기도 느끼지 못했고.다만..전신에서 풍기는 재수없는 기운까지는 못숨긴거 같은데?정체가 뭐야?”



차우의 물음에 우경은 피식하고 웃었다.연이어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려오며 차우의 양팔에 달려 있는 쇳덩이가 풀밭으로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이미 정체를 알고 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거 아닌가?”



“살수인 모양이군.”



“말하자면 그렇지.”



“살수로서는 불합격아닌가? 어떻게든 신분을 감추고 몰래 죽이는게 살수인데.”



장난기마져 깃들어 있는 차우의 말에 우경은 대답대신 오른손을 까딱 하고 움직였다.곧이어 그의 소매속에서 40센티 정도의 길이를 가진 단검하나가 나타났다.



“니가 말하는것은 그냥 청부를 받아 살인을 하는 녀석들 이야기고. 나는 그런 시시껄렁한 집단은 아니거든.”



차우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중국에 있는 수많은 갱단이나, 혹은 아직까지 무술을 연마하는 종파중에 뱀문양을 새기고 다니는 이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떤 집단인데?”



“글쎄.곧 죽을 녀석이 그걸 알 필요가 있을까?”



“음..니 입장에선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널 죽이고 배후세력을 캘때 유용히 쓰일 정보니까.”



차우의 말에 우경은 피식하고 웃어버렸다.이미 차우에 대한 데이터를 모두 숙지하고 있는 그로서는 그저 허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꽤나 자신만만하군? 페어리들이 보호해 줄거라고 믿는건가?”



페어리란 단어가 나오자 차우의 표정이 급격히 냉각되었다.한때 중국갱단중 하나를 박살을 낸 전적이 있는지라 그저 그들의 복수극 인줄만 알았던 차우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떻게..페어리라는것을 알고 있는거지?너도 오너인가?”



“푸하하.그런 시시껄렁한 주인님 노예 놀이를 할 사람으로 보이는거냐?”



“뭐?”



우경은 비릿하게 웃었다.햇빛을 받아 그가 들고 있는 단검의 검신이 유달리 번쩍 거리며 은은한 살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니들은 큰 착각속에 빠져 살고 있지.세상 모든 능력자들은 모두 오너라는 착각을 말이야.하지만 애석하게도 너희같은 피래미들을 지켜보는 능력자들이 음지에 아주 많거든.”



차우는 살짝 발을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발목에 감겨있는 쇳덩이들 역시 툭하고 떨어져 나갔다.우경의 단검에서 시퍼건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한 신원은 알수 없지만, 오너가 아닌 인간이 저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를 쉽게 보아선 안된다는 일종의 복선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소소와 샤이는..’



차우는 살짝 고개를 돌려 뒤쪽에 펼쳐진 협곡을 바라보았다.산을 두개는 넘어야 샤이와 소소가 있는 자신의 거처가 있는 것이었다.바로 그때, 우경의 몸이 화살처럼 차우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파팟!



시퍼런 검기를 머금은 그의 단도가 차우의 정수리를 노리고 날아 들었다.차우는 재빨리 양손을 들어 우경의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엄청난 힘에 차우의 허리가 살짝 휘청거렸고, 살기에 번뜩이는 우경의 두 눈이 그를 향했다.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계집애들은 신경쓰지 않아도 좋아.지금쯤 조무래기들이 이리로 오지 못하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을테니까.”



“ㅤㅋㅡㅅ!”



차우는 왼쪽 어깨에 화끈한 감촉을 느끼며 몸을 비틀거렸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경은 그의 가슴부위를 강하게 걷어차 버렸다.



차우의 몸이 불품없이 풀밭위를 나뒹굴렀다.어깨죽지에서 뜨끈한 선혈이 흘러내렸다.



“어..어떻게..”



차우는 급히 혈을 눌러 지혈하며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분명 우경의 양손을 봉쇄했는데도, 그의 왼쪽 어깨에는 길게 검흔이 그려져 있었다.



‘저건..!’



차우의 눈이 크게 흡떠졌다.우경이 들고 있던 단도가 허공에 떠있는가 싶더니 이내 빠른속도로 날아가 우경의 왼손으로 안착했기 때문이었다. 



‘격공섭물? 그럴리가..’



그제서야 차우의 이마로 한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분명 우경의 검은 스스로 움직여 자신의 어깨에 상처를 낸것이었다.그것도 살기를 느낀 차우가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심장에 찔리는것을 겨우 피한 결과였다.게다가 그것은 차우에게 상해를 입힌 후에 마치 자아가 있는것처럼 스스로 움직여 우경의 손에 안착한 것이었다.



“별거 아닌줄 알았더니..반사신경 하나는 뛰어나네.그 상황에서 피하다니.”



차우는 우경의 중얼거림에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물체를..그것도 검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조종 하는 것은 분명 고도의 무공이었다.



그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쥐었다.어쩌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한 상대일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아까 우리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 했었지?”



우경은 긴 단도를 재주를 부리듯 손위에서 몇번 휙휙 하고 돌리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자신을 노려보는 차우를 보며 우경은 조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블랙맘바라는 조직이다.”



투두두둑!



하지만 차우는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할수 없었다.놀랍게도 아까 차우가 자신의 몸에서 해제시켜 놓았던 쇳덩어리들이 우경쪽으로 끌려가듯 움직이며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우의 시선이 놀라움으로 물들 그때, 우경의 근처까지 다다른 쇳덩어리들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우경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그리고...우리의 목표는 너같은 오너들의 제거..이기도 하지.”









#2-화려한 외출





준은 입을 쩌억 벌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좌중의 시선을 느끼며 한숨을 쉬어버렸다.아무 생각없이 주소등록을 사무실로 해놓은것이 화근이었다.



오너가 된지 꽤나 오랜시간이 흘렀고, 그도 다른 오너들이 그렇듯 예전생활에 약간의 향수를 느끼고 만 것이었다.오너가 되는순간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교우관계 유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페어리란 존재는 일반인들이 이해할래야 할수 없는 개념이었기 때문이었다.



준의 경우는 더더욱 심했다.크룬 전쟁이 있었고, 첫사랑이었던 민아가 마스터에 의해 희생당했으니 더더욱 수그러들고 숨고 싶을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아직까지 평범한 사람으로서 웃고 즐겼던 시절을 잊지 못한 그가 동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주소를 사무실로 남긴것이 큰 실수였다. 카페에서는 행방이 묘연했던 준이 나타나니 다들 떠들썩해졌고, 급기야 몇몇이 의견을 모아 준의 사무실을 급습한 것이었다.



“주인님이다아!”



사무실에서 노크소리가 들리고, 리미와 함께있는 사무실에 동창들 몇몇이 들이닥친 것까지는 그렇게 최악이 아니었다.문제는 산속에 있을줄 알았던 수아와 노아,마유미가 갑자기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노아가 귀여운 콧소리를 내며 준의 품에 와락하고 안겨버린 것이었다.



“주..주인니임?”



준의 동창들은 리미를 비롯해서 세 명이나 되는 미녀가 준을 찾아오는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미 사무실에서 준의 옆에 꼭 붙어 있는 리미를 보며 1차 충격을 받은 뒤였기에 쇼크의 강도는 더더욱 컸다.



“야..니들 오해하지마 이건..”



“주인님 왜이렇게 집에 안와요?”



준이 해명할 틈도 없이 흘러나온 노아의 말에 그들의 표정은 더더욱 냉각되었다.걔중에 한명은 집에 안와요..라는 말만 계속 되뇌이는 녀석도 있었다.



“와!주인님 친구들이에요?”



“야 제발 그 주인님이란 말좀..”



금빛 머리칼의 수아마져도 준의 목을 끌어안자 분위기는 더욱더 이상해졌다.준의 오랜 동창인 현수는 허벅지가 훤히 보이는 수아의 치마를 보고는 휙 하고 고개를 돌리기 까지 했다.준은 구원의 요청을 담은 눈길로 황급히 리미를 바라보았지만,리미는 너무나 숙련된 자세로 다른곳을 응시하며 구원요청을 원천봉쇄 하고 있었다.



노아는 그제서야 현수를 비롯한 동창들을 인지한듯 준의 소매자락을 꽉 쥐고는 그의 뒤로 숨었다.



“죄..죄송해요.애들이 하도 보고싶다고 해서..”



믿고있었던 마유미마저 의심받기 딱좋은 멘트를 날려버리자 준은 체념한듯 의자에 몸을 묻어 버렸다.준을 찾아온 동창들은 그제서야 쭈뼛쭈뼛 페어리들에게 인사를 했다.



“주인님!왜 우리랑은 안놀아줘요?왜 맨날 리미하고만 놀아요?”



“크억!”



현수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짧은 치마를 입은(물론 유나의 것이었다)수아가 준을 마주보는 자세로 그의 무릎위로 철푸덕 주저 앉았기 때문이었다. 준의 얼굴이 창백해지면 질수록 마유미의 얼굴표정역시 미안함으로 변해갔다.



애초에 급습해서 준을 깜짝 놀래켜 주려던 동창들 역시 뭐라 할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었다.더욱이 예전 동창 모임에서 세라를 본 적이 있는 현수의 충격은 더더욱 컸다. 오랜만에 본 준의 모습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세라에 이어 이런 미녀들이 네명이나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것은 정말 설명 자체가 불가능한 미스테리였다.



리미는 재빨리 마유미쪽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연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하지만 리미가 그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노아와 수아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대외 활동이 전혀 없었다.무엇을 위해서 인지도 모른채 수련만 했었지..그러니 저 아이들의 앙탈을 마유미가 견뎌냈을리가..’



하지만 수아의 애정행각은 리미가 보기에도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마침 아예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민아의 이야기가 나와서 준을 비롯한 좌중들의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었을때 수아와 노아가 등장했으니까.어떤 방식으로든 준이 이슈의 중심이 되는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는것을 리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블랙맘바라는 단체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했는데..’



리미는 허둥지둥 하면서도 동창들에게 오해를 하지 말라며 식은땀을 흘리는 준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연희라는 여자의 발길이 갑자기 끊긴것도 수상하다.첩자일까?아니면..’



리미는 고개를 저었다.유나가 말한대로의 실력자들이 포진한 단체라면 구태여 첩자를 보낼 이유도 없었으며, 또한 보낼거라면 언제든지 준을 노릴수 있는 실력자를 보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연희는 그저 귀엽게 생긴 평범한 일반인이었을 뿐이었다.리미는 점점 더 시끌시끌 해지는 사무실의 정경에서 등을 돌려버리며 결론을 지었다.



‘확실한건..블랙맘바라는 집단은 무슨이유인지 모르지만 오너를 노리고 있다.그리고 연희라는 여자를 이용해서 주인님이 오너인지 아닌지를 판단한게 틀림없어.그렇다면..이 곳도 위험해.’















쌀쌀한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왔다.준은 오랜만에 외출이라고 생각했다.그의 앞으로는 마유미의 인솔하에 노아와 수아가 서로 장난을 치며 걷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미인들에게 둘러쌓인 준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비록 동창들을 서둘러 보내며 다음을 기약하고, 노아와 수아의 요청에 못이겨 구석진곳의 유원지를 찾은 것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흐뭇한 그였다.하루하루가 평범함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긴 하지만, 전쟁이후에 점점더 안정이 되는것이 그의 눈에도 보였기 때문이었다.흡사 지진이 온 것 마냥 텅텅 비어있던 거리들은 조금씩 활기가 넘쳐나기 시작하고 있었다.아직까지는 혼란의 시기지만, 처음처럼 대혼란이라고 표현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곧이어 리미와 대화를 하면서, 준은 평화로워 지고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위기를 느낀 리미가 유나와의 약속을 부득이하게 어겨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블랙맘바?”



“네.저희중에선 유일하게 유나가 대적한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그 건물에 있는 뱀표식을 남긴 그 녀석과 같은부류란 말야?”



“말하자면 그렇지요.”



“그걸 왜 지금 말하는거야?”



리미는 준의 되물음에 한참동안 말문이 막힌것처럼 대답이 없었다.나란히 걷는 사이에 약간의 적막이 흐르고 그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확실치 않은것도 있었고..유나가 혼자 조사해본다고 했기 때문에요. 그리고 방금전에서야 그냥 유나에게 조사를 맡길정도의 작은 일이 아니란걸 깨달은 탓도 있구요. 그래도 아직도 그들의 목적은 알수가 없습니다. 다만..”



“다만?”



“그들이 도발하는것은 순전히 오너들을 표면에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추측을 할뿐이죠.”



“오너..라면..이 세계에 딱 셋뿐이잖아.”



“맞습니다. 덧붙여서 J가 속해있던 단체이기도 하지요.”



“J..가?”



자연스레 준의 시선은 마유미에게로 향해졌다.과일쥬스를 사달라며 마구 조르는 노아와, 신기한지 유원지를 연신 두리번거리는 수아의 틈바구니에서 그녀는 둘을 잘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네. 저의 실수입니다.두 번의 전쟁을 치렀기에 설마설마 했던 탓이겠지만요.”



“그..그렇지만 그들이 윌리엄스의 저택에 있었다고 해서 단순히 오너를 노린다는 보장이 없잖아?”



“아뇨. 그들은 유나를 보았을때 ‘알아서 마법사가 찾아왔다’라고 했다고 했어요. 마법사라는 존재를 알고 있다면, 분명 노리는것은 오너혹은 페어리라는 뜻입니다..그러므로..”



갑자기 리미의 말이 뚝하고 멈췄다.준은 의아한 시선으로 리미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두 눈동자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오예에! 또한개 맞추시고!”



한쪽에서는 손가락마다 한개씩의 다트를 끼고 풍선터트리기 놀이를 하는 수아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백발 백중으로 맞히는 수아의 실력에 가게주인이 경악을 하고 있었고, 마유미는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서 농구게임을 하는 노아를 말리기 바빴다. 급기야 다트 놀이장 주인과 농구 자유투 놀이장 주인은 기절직전의 표정으로 두 미소녀를 바라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왜그래 리미?”



준은 한쪽에서 벌어지는 소란도 듣지 못한채 리미의 표정을 바라보았다.리미는 마치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듯 이마를 감싸쥐었다.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모습에 준이 이질감을 느낄 그 무렵, 리미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제..생각이 맞다면...지금 영국에 있는 유나와 세라가..위험합니다.”











#3-위기의 세라.









다행히도 리미가 지정해 준것은 한국행 비행기가 있는 영국의 국제공항중에 가장 한적한 공항이었다.세라는 품을 뒤적여 티켓을 꺼내들었다. 리미 덕분에 워프라는 편리한 수단이 준일행에게는 주된 교통수단이 되어버린지 오래지만, 서류상으로 안정된 준의 신부가 되기위해서는 번거럽더라도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것이 그녀는 조금 불편했다.



‘오지..않는건가.’



공항의 입구쪽을 돌아보아도, 유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정말 같이가기 싫을 정도로 화가 난 것일까? 세라는 미련없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유나의 마음을 존중해주어야 할것만 같았다.



세라는 멀리보이는 안내판을 보며 공항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아직 40분이상 남은 상황. 그녀는 명상을 하기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흡사 천사와도 같은 외모를 지닌 그녀가 한적한 공항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지만, 사실 세라의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검술의 오의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는 명상을 하는 도중에 살짝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으응?’



세라의 눈가가 살짝 파르르 떨렸다.무언가 계속해서 전신에 감지되는 이질적인 감각.그것은 노골적으로 세라를 압박하진 않았지만, 봄바람에 실려오는 꽃향기처럼 은은하게 느껴지고 있었다.다만, 지금의 감각은 봄의 향기처럼 감미로운 것이 아니라는게 문제였다.



‘살기.’



세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그와 동시에 세라의 전신을 감시하듯 느껴지던 살기들이 일순간 사라지고 있었다.그녀는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쓰며 차분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공항의 모습과 별다를게 없었다.트렁크 가방을 끌며 저마다 행선지를 확인하는 승객들.티켓팅을 위해 도열한 인원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공항의 직원들. 하지만 무심한듯한 세라의 시선은 그들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좌측에 넷.우측에 다섯.전방에 둘.’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몇몇의 모습이 이질적이었다.보통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일정한 보폭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동작들. 사소해 보일지는 모르나 특수한 훈련을 받은 이들에게서나 보이는 움직임들이 세라의 눈에 거슬렸다. 그들은 모두 세라를 주시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동선 자체가 세라의 주변을 빙빙 맴도는 것이 더더욱 수상했다.



‘시험을 해보자.’



세라는 침착해지려 애를 쓰며 여유있는 표정으로 전광판을 응시했다.한국행 비행기의 탑승수속이 10분후부터 시작되는 알림이 보였다.세라는 목표로 한 인물을 살짝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그는 바로 공항 보안 직원의 옷을 입고 서있는 한명의 건장한 사내였다.



“큭!”



세라의 몸을 중심으로, 은은한 마나의 파동이 흘러나가며 보안직원의 몸주위를 애워쌌다.마나를 모르는 일반인 이라면 전혀 느낄수 없는 이질적인 감촉. 세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라가 몸안에 마나를 슬쩍 흘려넣은 그 대상자는 다리가 풀려 쓰러지며 갑자기 숨겨두었던 살기를 방출했기 때문이었다.



“꺄아아아악!”



갑작스레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저마다 변장을 하고 있던 이들이 품안에서 꺼낸것은 보기에도 서슬퍼런 일본도였다.



세라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그런 그녀의 머리결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표창 세개가 날아들었고, 무심히 허공을 가른 그 표창들은 어느 영국인 남성의 가슴에 나란히 꽂혀 버렸다. 공항은 순식간에 비명소리와 선혈이 가득한 아비규환으로 변해 버렸다.



세라는 황급히 손을 허공에 저었다.순식간에 엄청난 빛무리가 그녀의 손에서 일어나더니, 이윽고 묵빛 검신의 바스타드 소드가 세라의 손에 잡혀졌다.



“당신들은..?”



세라의 눈이 경계하듯 주위를 훑어보았다. 도합 이십여명은 되어 보이는, 제각각의 복장을 착용한 인원들이 세라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포진하며 그녀를 애워싸고 있었다.









“당황할거 없다. 어차피 발각될 거였으니.”



쌀쌀한 날씨에도 몸에 딱 붙는 민소매티셔츠를 입은 금발의 사내, 리키는 공항의 2층에서 여유롭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블랙맘바 소속의 하수인들이 세라를 애워싼 광경을 천천히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마져 걸려 있었다.



“애초에 너희들이 저 여검사를 이기길 바라지 않아.그저..”



리키의 갈색 눈동자가 천천히 푸른빛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 걸려진 긴 장검이 그의 손에 의해 스르릉 하고 뽑혀나왔다.



“저 여자에게 술수를 걸수 있을 정도만...묶어두면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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