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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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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310 회 작성일 24-02-24 16: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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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부>





#1-정체를 드러내는 새로운 적.





찰칵.



라이터가 켜지는 소리가 들리며 어둠속에 묻혀있던 두명의 인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불빛위로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곧 두 남자의 입술에는 한가피 씩의 담배가 물려졌고,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후 하고 허공에 연기를 뿌렸다



“야..우경.”



“왜?”



“달은 왜 저렇게 졸라 큰데 별로 안밝을까?”



우경이라 불린 남자는 옆에서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금발의 사내를 보며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동양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외모에 차이나 풍의 도복을 입은 그와는 달리, 금발의 사내는 짧은 커트머리와 높은 코,그리고 푸른색 눈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서양인이었다.



“달도 나름 졸라 큰데..태양이 더 졸라 커서 거기에 묻혀서 그래.”



“흠..”



금발의 사내는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난간에 앉은 발을 앞뒤로 까딱 거렸다.놀랍게도 그가 앉아 있는 난간은 수십층에 달하는 빌딩의 옥상 난간이었고, 그의 등에는 긴 장검하나가 달빛의 영롱한 빛을 반짝이며 매달려 있었다.



“근데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하냐?”



“우리 존재도 달이랑 좀 비슷한거 같아서.”



“..무슨소리야?”



금발의 사내는 눈앞으로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내어 버렸다. 까마득히 밑에 있는 지면으로, 그것은 붉은 점이 되어 계속해서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잖아. 달처럼 우리도 겁나게 밝은 애새끼들 때문에 빛을 못보고 그냥 어둠속에 짱박혀 살았잖아.그것도 10년이 넘게.”



“어이어이 리키. 말했잖아.난 그렇게 비유해서 말하는거 딱 질색이라니까.”



“낭만이 없기는..”



리키라 불린 금발의 사내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우경을 바라보았다. 우경 역시 앞에 있는 난간의 좁은 공간위로 사뿐히 올라섰다.바라보기만 해도 아득하여 일반인들이라면 덜덜 떨고도 남을 높이였지만,그들은 흡사 운동장에 서 있는것처럼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 뭐..니 말대로 이제 달빛처럼 사는 시대는 끝이 났지.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하니까 말야.”



우경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리키도 피식 하고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눈앞에 펼쳐진 빌딩숲의 야경을 지긋한 눈으로 감상하던 리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역시 보스의 말대로야. 정체를 숨기고 은신하니..결국 오너라는 것들은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 숫자를 알아서 반으로 줄여주던데?”



“뭐..정확히 따지자면 이계에서 온 ..그 뭐라더라..무슨 과자이름 같았는데..암튼 걔들의 공이 컸지. 아마 그 놈들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달빛생활은 청산하기 힘들었을거야.” 



달빛과 건물의 네온들이 은은히 비추는 옥상. 서로 다른 타입의 외모와 다른타입의 의상을 착용한 둘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바로 하나같이 그들의 오른팔에는 뱀 문양의 문장이 수놓아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저 년의 가치도 떨어져버렸군.”



리키의 말에 우경은 무심한 눈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옥상위에는 한 여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하얀 피부에 사뭇 귀여운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지만,그녀는 아주 깊은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은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우경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는 리키에게 말했다.



“또 그 사람조종하는 술수를 부린거냐?”



“술수가 아냐.뭐..도구를 이용하는것도 술수라면 술수겠지만.”



“그냥 쳐들아가서 쑤시면 되지 뭘 그렇게 늘 복잡하게 일을 처리하는거야?리키 넌 실력이 그렇게 떨어지는 놈도 아니잖아.”



우경의 말에 리키는 피식 하고 웃고는 또 한개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가피를 끝까지 다 피지 않고 꼭 몇모금만 빨고 버리는 그의 습관을 오래동안 봐온 우경은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뭐..보통의 상대라면 그렇게 했겠지만..우선 그 한국의 준이라는 녀석의 사무실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어.”



“확인이라?”



“그래. 난 우경 너랑은 달라.일반인은 안죽이거든.그래서 내가 그 녀석을 도발할때도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을 골라 베어버린 거라고. 마찬가지로 괜시리 잡아족쳤는데 준이란 녀석이 아니면 매우 곤란해.그래서 저 연희라는 아이를 납치해서 세뇌를 좀 심어준거지.게다가,항상 준이라는 녀석의 옆에 따라다니는 계집애를 무시할수가 없었거든.”



“이 아이 말인가?”



우경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놀랍게도 그것은 준을 비롯한 페어리 전원의 사진이 빼곡하게 인쇄되어 있는 검은색의 종이였다.우경의 손가락이 가리킨곳에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두꺼운 책을 옆에 낀 채로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리미의 얼굴이 있었다.



“맞아.무서운 정도로 똑똑한 아이지. 벌써 연희라는 애가 첩자라는 것쯤은 생각해두고 있을지도 몰라. 나중에 보니 죽은 J와 우리가 연관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더군.게다가 말이야..”



이번엔 리키가 손을 뻗어 누군가를 가리켰다.은발 머리가 너무나 섹시하게 보이는 한 미소녀가 리키의 손끝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준이라는 녀석의 그룹중에서도 비교적 약해 보이는 이 아이가..영국에서 칼 일행을 얼음동상으로 만들어 놨지.”



“까다롭군.생각보다.”



우경의 표정이 심각해졌다.바람이 불며 그의 무복이 조금씩 흩날렸다.리키는 이번에도 몇모금 빨지 않은 담배를 허공에 던져 버리며 말을 이었다.



“너도 알고 있지?블랙맘바에서 이 녀석들과 대적할 만한 고수는 너와 나..심지어 보스와 미령까지 포함하더라도 열명이 되질 않아.나머지는 그저 있으나마나 한 오합지졸 들이지.일반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야만 겨우 강한축에 속하는 잉여인간들.”



“그래서 리키 넌 어떻게 할건데?”



“뭐..일단 칼에게 떨어졌던 임무는 윌리엄스라는 영국인집에 가서 마법서를 가져오라는 거였지만..일단 그게 그 은발머리 꼬맹이손에 있으니 임무 자체가 사장된 거고..역시나 내 임무는 준이라는 녀석을 죽이는 거겠지.그렇다면 자연히 마법서도 손에 넣고, 귀찮은 녀석들도 사라지니까.”



“흠..약간은 미안한데.내 쪽의 임무가 훨씬 편하거든.”



우경이 펼친 다른 한장의 종이.그곳에는 차우와 샤이, 그리고 소소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개개인의 세세한 사항까지도 빼곡히 기록되어 있는 일종의 임무하달장 이었다. 



“그렇진 않을껄?”



“무슨뜻이야?”



우경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리키와는 달리 필터까지 담배를 태운 오경이 밖으로 불똥을 튕겨내어 버리자, 리키는 먼곳을 응시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 녀석..생각보다 만만하진 않을거야.뭐..너와 같은 국적을 가졌으니 우경 니가 더 잘 알겠지.”



“흥. 그래봐야 시시껄렁한 가문전통의 무공을 쓰던지 하겠지 뭐. 계집 두마리야...뭐 알아서 다른 녀석들이 시선을 끌게 하면 되는거고.”



“니 임무니까 니가 알아서 해.나는 조금더 기다렸다가 움직일까 하니까.”



“기다려?뭘?”



“그 은색머리 소녀는 반드시 다시 영국으로 올거야. 그리고 내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검을 쓰는 여자와 같이 동행해서 오겠지.”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정보력의 차이라는 거지.”



“흠..그럼 그렇게 둘만 있을때 잡겠다?”



“말하자면 그래.”



“뭐하러?어차피 준이라는 녀석만 베면 나머지는 알아서 황천길로 따라갈텐데?”



“아니. 준이라는 녀석에게 다가 가기가 오히려 더 힘들어. 각개격파가 편하지. 게다가..조금 재밌는 작전도 구상해 뒀거든.”



뭐가 재밌는지 히죽거리며 웃는 리키를 보며 우경은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난간위에서 성큼 밑으로 내려왔다.



“뭐..니가 알아서 해.니 스타일대로. 난 중국으로 출발할테니까 말이야.”



“그래.말했지만 방심하지 말고.”



“알았다니까. 그나저나..저기 저년은 어떻게 할건데?”



우경이 가리키는 곳에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연희가 있었다.리키는 다시금 반짝이는 야경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알아서 해.뭐..그냥 죽이던지.”



“뭐야..아까는 일반인 안 건드린다며?”



우경의 말에 리키는 피식 웃었다.그는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난간에 서서 크게 기지개를 켠후, 우경쪽을 돌아보며 씩 하고 웃었다.



“내가 직접 죽일꺼 라는 말은 안했잖아?”











#2- 사고뭉치들.







“노아,수아.안된다고 했잖아.”



“싫어!왜 맨날 우리만 수련해?리미는 주인님이랑 맨날 놀고..세라와 유나도 맨날 나가잖아!”



“맞아 맞아!”



마유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원래는 수아도, 노아도 리미가 짜준 프로그램에 따라 훈련을 하고 있었다.아직 완전하게 싸움이 끝난것 같지 않음을 직감한 리미가 황급히 마련한 대비책이었다. 역시나 그녀들의 감시역은 늘 그랬듯이 마유미가 맡은것 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노아와 수아의 집중력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점에 있었다.



마유미는 혼란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등에는 노아가, 앞에는 수아가 옷자락을 잡고 잡아당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정신연령 그대로 어린애들이라면 모를까,그녀들은 누가봐도 다 큰 아가씨들이었다.그것도 누가봐도 혹할만한 미모를 지닌.



“어..어딜가고 싶은건데?”



“말하면 보내줄거야?”



“일단 들어볼게..노아! 얼른 내려와..무거워.”



마유미의 질문에 정작 수아와 노아는 딱히 대답하지 못하고 멀뚱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마유미는 두 손을 허리에 올린채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노아는 도움을 요청한다는 눈빛으로 수아를 바라보았지만, 수아역시 딱히 목적지 없이 조른 것이었기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페어리들중 세라 다음으로 큰 마유미이긴 하지만, 왠지 오늘만큼은 세라보다 훨씬 더 커보인다고 생각하는 노아였다.



“주인님 있는 곳으로 갈래!”



한참 머뭇거린 수아가 급하게 말을 내뱉었다.하지만 마유미의 붉은 머리카락은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안돼. 지금 리미랑 일하고 계시잖아.”



“마유미 마유미! 넌 주인님 안보고 싶어?”



해맑은 눈동자,게다가 질문마져 해맑은 노아의 모습에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던 마유미의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수아의 눈빛이 반짝 하고 빛나더니 이윽고 그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유미는 주인님 싫어하나 보다.”



“수아.그런거 아니야.”



“그럼 왜 맨날 집에 있어?”



“주인님이 시키신 일이니까.”



“왜 우리만 시켜?”



“그건..”



차마 그녀들에게 ‘사고뭉치들이기 때문에’라는 말을 전달할수 없는 마유미였다. 자신의 경우야 전 오너인 J가 워낙 끌고다닌 탓에 그냥 ‘많이 예쁜 일반인’ 취급을 받을수 있을지 몰라도 수아와 노아는 달랐다. 노아의 경우엔 정령의 여왕이 현신하기 전에는 너무 어린탓이었고, 수아의 경우엔 개화하자마자 오너전쟁을 겪어야 했기에 사회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던 탓이었다.



“나 갈래!나 주인님 보고싶어!”



노아는 속옷이 훤히 보이는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원피스 차림 그대로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았다.흡사 시장에서 엄마에게 떡볶이를 사달라며 땡깡을 부리는 꼬맹이 같은 모습이었다.



“나도 이제 리미가 짜준 기술익히는거 싫어!”



겉모습은 마유미만큼 성숙한 수아마져 털썩 주저 앉아 버리니 마유미는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노아의 큰 눈망울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문득 마유미는 초희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초희씨 조차도 노아의 세세한 과거까지는 알지 못했지.자아가 불안하다는것..이외엔.’



개개인의 장단점,혹은 전투의 센스를 고려하지 않고 볼때 분명 노아는 최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절대 방어와 발동시간 제로의 공격성. 공격범위 등 모든것을 따져도 인정해야할..정말 강한 아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어린 정신연령에 있었다.침착하고,냉정하고,도도한 정령의 여왕과는 아예 상반된 그녀의 본 자아.



‘나도 내 과거는 모르지만..분명 노아가 고아라고 했었지.’



수아랑 팀을 짠듯이 계속해서 칭얼대는 노아를 마유미는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노아가 얼마나 많이 준을 따르는지 누구보다도 마유미 본인이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가슴이 뭉클했다.



‘하긴..예전에 주인님이 한번 데리고 나간 이후로..쭈욱 여기에만 있었으니..이 아이들도 지치지 않을까.’



다같이 재밌게 살기엔 이 세계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유나는 아무도 없는 해외로 이사가자고 몇번이나 준에게 조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준은 사부인 김노인의 명령으로 전쟁의 후폭풍을 정리하기에 바빴기에, 결정적으로 페어리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여유따윈 없는것이 문제였다.



“보내줘!보내줘!갈래에!”



“알았어.”



“싫어..나 갈꺼..응?마유미 방금 뭐라고 했어?”



“가자고.주인님한테.”



“정말?”



마유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수아와 노아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수아의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은색돼지 옷을 빌려야겠다!”



최속의 페어리답게, 그녀의 몸은 거의 화살과 같은 속도로 유나의 방으로 쏘아져 나갔다.노아는 신이나서 마유미를 끌어 안고는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런 노아의 표정이 귀여워,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웃던 마유미는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 고개를 저었다.



‘잠깐..잠깐이면 괜찮을거야.’











‘오오옷!’



김노인은 쾌재를 부르며 서랍에 있는 책을 꺼내들었다.반딱반딱한 칼라의 잡지책. 표지에는 역시나 아슬아슬한 옷을 걸친 여자모델이 뇌쇄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가 기뻐하는 이유는 단 하나.꽤 오래전에 ‘짱박아 두었다가 까먹었던’ 고급 아이템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음..초희한테 이 여자로 변신해 달라고 하면 욕먹을까?”



김노인은 킥킥 거리며 책장을 넘겼다.온갖 종류의 ‘고급 성인 정보’가 수록된 잡지들을 대충 훑어 보던 그는 손을 뻗어 서랍 밑부분을 뒤적거렸다.



‘엥?이게 뭐야?’



뭔가 잡지보다 크지만 두께는 두꺼운 사각형의 감촉이 손가락 사이로 전해졌다..



‘앗!설마 이것은 그렇고 그런 야시시한 비디오인가! 음..이거..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서랍을 여니까 계속해서 득템을 하네 이거..’



하지만 김노인의 기대처럼 잡지 이상의 야시시한 그 물건은 아니었다.빛이 많이 바래 있었지만, 그것은 조금 두꺼운 노트였다.실망스런 눈으로 노트를 꺼내든 김노인은 몇장 넘겨보고 나서야 아하!하는 탄성을 질렀다.그것은 바로 검은색 표지를 달고 있는 조금은 두꺼운 일기장이었다.



‘하긴..내가 예전에 참 일기는 잘 썼었지.으허허.’



그는 왼손에 있던 도색잡지를 옆으로 툭 하고 던져버리고는 아예 한쪽 구석에 털썩 주저 앉았다. 매일매일 무료하던 차에 잘되었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자고로 일기란 것은 다시 읽으면 와방 재밌거든!’



김노인은 살짝 책장을 넘겼다.그의 기대처럼 아주 오래전은 아니었다.그가 20대 후반으로 접어 들었을때의 일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허허.이거 그립구만.’



인도자를 만나 두장의 카드를 받았던 기억을 일기로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는 별 미친놈 다보겠네..라는 욕지꺼리를 퍼부으며 카드를 어딘가로 던져버리고는 술을 마시러 나갔던 그였다. 당시에 어처구니 없었던 심정이 일기장을 통해 보이자 그는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캬..내가 봐도 참 나는 달필이란 말이야.소설계로 나갈까?’



그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킥킥 거리고 웃고 있을 즈음 상념속으로 유희의 메세지 마법이 전달되어 왔다.



-뭐해요?밥안먹고-



-니들끼리 먹고 있어봐-



-아 진짜..배고프다고 할땐 언제고 이 늙은이...내가 진짜 하루이틀이면 이해를 하겠는 데 이건뭐...-



전음을 통해 대답을 한 김노인의 말 뒤로 유희의 불평섞인 투덜거림이 들려오자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털며 유희의 메세지를 쿨하게 흘려버렸다.



‘오오!이것도 기억나는구나..’



몇장을 주르르 넘기니, 꼬맹이 상태로 태어났던 유희와 초희의 육아일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매번 눈만뜨면 투닥거리면서 싸웠던 둘. 매번 말리다가 살림이 거덜났던 기억들. 그리고 사귀던 여자마저도 오해를 하고 떠나버린 사건들.



추억을 회상하는 그의 주름살 사이로 살짝 미소가 번져나갔다. 둘을 얻은것이 흡사 하늘의 선택을 받은 것인양 으쓱대며 다녔던 기억들도 일기장에는 모두 적혀 있었다. 게다가 유희가 워프를 익혔을때 함께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다니는 도중, 우연히 얻은 중국의 고서를 통해 음공을 습득하게 된 것과 수련하던 모습들 까지도 낱낱히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아아.이 얼마나 순박한 청년의 모습인가.일기도 꼬박꼬박 쓰고.’



10번째 페이지에 써져 있는 여자꼬시는 장면마져도 순박으로 미화한 그는 피식 웃으며 몇장의 페이지를 더 넘겼다. 한줄한줄 읽어내려가던 그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좌충우돌 오너의 모습으로 재미와 추억을 동시에 자아냈던 앞의 내용과는 달리 뒤의 내용은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날 죽이려 한다. 나와 같은 힘을 갖고, 같은 방식으로 선택된 이들. 그들은 유일한 하나가 되기위해 상대를 죽이고 있다. 어째서.어째서 공존하는 방법따윈 고려하지 않는것인가.-



-싸움은 싫다며 내 뜻에 동조했던 중국아이도 죽었다. 마법에 온몸이 녹아드는 고통을 참으며 나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말했던 그 아이. 이제..이제 남은것은 10명뿐이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더이상 참고 있을수만은 없다.-



김노인은 잠시 벽에 머리를 기대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간결하게 쓰여진 1세대 오너들간의 치열했던 분쟁들. 그가 추구했던 것은 중립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당시엔 중립이라는 개념따윈 없었다.



‘최후의..10인.’



그는 당시를 회상해 보았다.수많은 사람들이 오너로 선택되어 카드를 받았지만, 페어리가 개화하고도 살아남은 자는 별로 없었다. 당시 페어리들의 힘이 분화가 되지 않았던 탓에, 그들이 소비하는 마나때문에 생명력이 빨려 죽어버린 것이었다.게다가 남아있던 오너들, 즉 마나 운용에 그나마 능했던 이들도 서로 밟고 오르려는 경쟁을 벌인탓에 마지막 까지 남은 오너는 단 10명뿐이었었다.



‘지금은...나 혼자만 남았지만.’



씁쓸함이 몰려왔다.살아남은 것은 영광이나 혹은 훈장이 아닌 씁쓸함과 상처뿐이었다.그때부터였다. 유희와 초희를 대동한 은둔생활의 시작이 서막을 알린것은. 그리고 그때부터 일기역시 더이상 쓰여져 있지 않았다.



김노인은 책장을 펴서 마지막 날짜의 일기를 읽어 내려갔다.자신을 포함한 최후의 10명.직접 그들의 시체를 확인해야만 했던 김노인의 일기장에는 당시 10인의 오너들의 명단이 하나하나 적혀 있었다.비록 살아남기 위해 그들과 맞서야만 했지만, 가해자역시 결국엔 자신이 되는 상황을 회개하기 위한 일종의 반성문과도 같은 일기였다.



‘응?’



김노인은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한줄에 한명씩 적혀있는 그 날..그러니까 최후의 전쟁이 있었던 그 날의 희생자 명단이 뭔가 이상했다.



‘어째서..어째서지?’



김노인은 눈까지 비벼가며 다시한번 차근차근 그 명단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자신을 포함해서 10명이니 9명이 적혀 있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한명이...없다..?’



김노인은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워낙 오래전 일이었고, 또 서로 죽여야만 했던 참상에 대한 회의로 기억에서조차 지우려 했던 그날의 기억을 서둘러 끄집어 내었다. 최후의 오너들의 이름과 인상착의를 하나씩 떠올리며 명단과 대조를 해보았다.그렇게 몇번이고 같은 자세로 일기장을 바라보던 김노인의 눈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맙소사..알아채지 못하다니..아직까지..’



툭.



얼굴라인을 따라 내려간 땀 한방울이 이제는 누렇게 바랜 일기장위로 떨어졌다.그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맞아..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도..없다..녀석과 당시에 싸웠던 기억이 없어.이..이럴수가..그럼..나는 도대체..’



-아 왜 안와요!진짜 밥상 태워버린다!-



유희의 메세지가 머릿속으로 전달되었지만,김노인은 그것을 전혀 인식할수 없었다.마른침을 꿀꺽 하고 삼킨 그는 자기도 모르게 마지막 페이지를 꽉 움켜쥐어 버렸다.투툭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일기장의 마지막장은 힘없이 구겨지며 찢어져 나갔다. 그의 입술사이로..침통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야마토..”









#3-두갈래 길.









“쳇!정말 귀찮게 시리..”



유나는 일부러 큰소리를 내어 투덜거렸다.사람들의 시선은 금세 유나와 그녀를 따라 걷는 세라에게로 집중되었다.섹시한 느낌의 미녀와 청순한 매력의 미녀가 나란히 걷는 것은 분명 영국시민들에게도 희귀한 광경이 아닐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쩔수 없잖아.계속 숨어서 살수는 없으니까.”



세라의 대답에 유나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뭐어? 웃기지마! 넌 주인님의 아내가 되는거니까 그렇게 마음이 가벼운 거잖아.”



“단지 서류상으로 그럴뿐 아무런 의미가 없어.”



“흥!”



유나는 다시금 훽 하고 고개를 돌리고는 성큼성큼 걸어나갔다.세라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세라와 유나. 어찌보면 오랜 친우이자 라이벌관계인 둘이였다. 처음 개화했을때는 티격태격 했으며, 무인도에서 윌리엄스의 페어리와 싸울때는 팀웍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크룬전쟁과 오너전쟁을 겪으며 어느정도 전우애가 쌓였지만 결국 준의문제가 걸려 있을때에 유나는 역시나 지극히 예민했다.



때문에 세라가 리미에게 영국으로 워프를 한후 다시 입국하라는 절차를 밝으라고 했을때에 망설인것이기도 했다. 준과의 결혼. 비록 서류상의 혼인신고일 뿐이겠지만 그것은 늘 세라가 꿈꿔오던 일이기도 했었다.그 동행이 다른사람도 아닌 유나라는 것이 걸렸다.



세라는 그제서야 리미가 노아도 같이 보내지 않은 이유를 알수 있었다.노아역시 영국국적을 갖고 있으니 한국으로 재입국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야 하지만, 이 상황에서 천방지축 노아까지 있게 되면 상황이 더욱더 골치아파질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유나.우선 공항으로 가자.”



“그러고 있잖아.”



유나는 쌀쌀맞게 세라에게 쏴 붙이고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무릎위로 한참이나 올라오는 짧은 반바지에, 은근히 어깨가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은 유나의 옷맵시에 영국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모이고 있었다. 



‘아차차!’



유나의 걸음이 갑작스럽게 느려졌고,그녀를 뒤따르던 세라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윌리엄스 집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비록 보통의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일반인을 얼음동상으로 만들어 놨으니 유나가 꺼림직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블랙맘바..라고 했는데..도대체 걔들은 뭐하는 애들일까?’



유나는 더이상 걸음을 옮기지 않고 아예 멈춰서 버렸다.세라만 없었더라면 영국에 온김에 실컷 조사를 하고 갔을꺼라는 후회가 밀려왔다.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라쪽으로 훽 하고 고개를 돌렸다.



“세라!너먼저 한국으로 들어가.”



“왜?”



“나..온김에 조사할게 있어.”



“조사라니?”



“윌리엄스의 집.”



“나도 갈게.”



“안돼!”



갑자기 고함을 버럭 지르는 유나의 모습에, 세라의 표정은 수상하다는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째서지?”



“마법서를 찾으려는 거야. 세라 넌 마법에 관심이 없잖아.그러니까 먼저 들어가.”



“리미는 너와 같이 오라고 했었어.”



“칫!리미의 명령을 들어야할 이유가 있어?”



“주인님의 말을 전달하는 아이니까.”



세라의 침착한 말에 유나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바뀌어 버렸다.그녀는 살짝 심호흡을 하더니 세라에게 말을 이었다.



“그럼 내 말을 전할게.난 너와 가고 싶지 않아.”



“어째서?”



“자존심이 상하니까!”



눈에 눈물까지 살짝 고인 유나의 표정을 보고는 세라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질투심 많고 자존심이 센 유나로서는 세라와 준의 혼인신고가 달가울리 없었다. 워프로 영국에 도착해서,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투덜거리던 그녀. 세라는 말문이 막혀버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해해 달라고 안할게.그럴필요도 없고.하지만 나 혼자 갈거야. 너도 비행기 정도는 탈수 있잖아.”



말을 마친 유나가 몸을 돌렸다.세라는 그녀를 붙잡지 않고 묵묵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질투...인가.’



세라는 그녀를 약간이나마 이해할수 있을거 같았다. 유나나 마유미처럼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은 자신이 그런 세계를 이해할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유라면 단 하나, 준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느끼면서 부터일 것이다. 자신이 유나의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고 쓰려왔다. 점점 멀어져 가는 유나를 보면서, 세라는 그녀를 존중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흐음..역시나..인가.’



양옆으로 갈라지며 각자 다른 길로 걸어나가는 두 미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남자가 있었다.그는 두모금정도 빨아들인 담배를 미련없이 바닥에 던져 버렸다.왼팔에 문신처럼 세겨진 독사의 문양. 그는 바로 영국에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던 리키였다.



그는 높은 빌딩 옥상위에서 그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에는 블랙맘바의 문양을 옷에 새긴 수십명의 인원들이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공항으로.귀찮은 것들은 제거해도 좋다.”



리키의 명령에 그들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여유로운 표정으로 유나쪽을 살짝 바라본 리키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은발머리쪽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 지금 우리가 잡아야 할것은 머리가 긴..저 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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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간 일본 출장중이신 야미님이 고맙게도 일본에서 올려주셨네요....

 

야식과 리플을 먹고 사는 야미언니를 위해  많은 리플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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