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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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부>
#1-소란
티나는 이를 악물었다.오늘만 해도 두번째.탈출시도는 그렇게 무산되고 말았다.빠른 타이밍으로 문지기들의 헛점을 파악한것 까지는 좋았다.마나가 봉쇄되었을뿐 그 몸놀림자체가 봉쇄된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또다시 나타난 금발머리의 사내였다.
“큭!”
그는 날아갈듯한 몸놀림으로 티나의 곁으로 나타나 그녀의 옆구리를 살짝 팔로 밀어내어 버렸다. 보통의 사람이 아닌 프루토 자작정도의 실력자에겐 그저 밀어낸다 라는 개념으로 끝날만한 일이 아니었다.
티나는 다시금 연무장의 먼지를 마시며 대굴대굴 굴렀다.프루토는 살짝 그녀의 앞에 안착하며 눈을 찡그렸다.
“정말 근성하나는 끈질긴 년이로군.교관들의 눈을 피해 탈출할 생각을 하다니.”
티나의 눈가 밑으로는 목각으로된 가면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그녀의 눈이 프루토를 쏘아보았지만,그는 덤덤하게 티나의 눈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너는 저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나?”
프루토의 손끝이 어딘가로 향했다.티나가 그것을 시선으로 따라가니,훈련을 받고 있는 한무리의 소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티나는 이를 악물었다.이미 터커와 프루토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느정도 감을 잡은 그녀기 때문이었다.
“너는 저들과 이계를 지킬 사자가 되기 위해 내일 떠나는거다.뭐,최적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았을때의 이야기지만.”
“그딴거에 굴복할거 같으냐!”
프루토는 앙칼진 그녀의 일갈에 피식하고 웃어버렸다.이 프로젝트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고위층인 프루토로써는 그녀의 의지가 우스울뿐이었다.
“과연 니가 굴복하지 않게 될까?”
“무슨뜻이지?”
티나의 눈이 붉게 빛났지만,이내 그것은 다시금 검정색으로 돌아와버렸다.더블워커의 무기라 할수 있는 눈마져 마나 봉쇄구에 의해 봉인당했으니 그 효력이 있을리 만무했다.프루토는 조소어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이계에 떨어지는 순간 반쪽짜리 존재가 된다.그리고 네 멘토를 찾아 남은 반쪽을 채워야만 하지.넌 결국 그곳에서 네 주인을 섬겨야만 한다.그렇지 않으면 존재자체의 의미가 불문명해질테니.그리고 결국엔 충실히 이계를 지키는 프로센의 사자가 되어 있겠지.”
“무슨 헛소리냐!”
스르릉.
프루토의 검이 어느새 티나의 목에 닿아 있었다. 그를 한번 카피한 경험이 있는 티나는 프루토가 추구하는 검술이 속도에 중점을 두는 쾌검술이란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전신을 옥죄어 오는 살기에 티나는 턱 하고 숨이 막혀버렸다.주무기를 모두 봉쇄당한 상태에서의 프루토는 그녀에게 있어 절대 해볼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검의 은빛 날이 티나의 목에서 서슬퍼런 살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알아들었나?넌 곧 이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할 운명이 되어버린 거다.”
“그럴바엔 자결하겠다.”
“아니.넌 그러지 못해.”
프루토는 피식 하고 웃었다.그가 앞으로 조금씩 다가가자,자연스레 티나의 걸음은 뒷걸음질로 바뀌었다.연무장 한쪽 구석에 다다르자 티나의 발걸음도,프루토의 발걸음도 멈추었다.티나의 등뒤로 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거든.”
티나는 입술을 깨물었다.프루토의 비열해 보이는 표정을 어떻게든 짓밟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 안타까웠다.
콰아아앙!
티나도,프루토도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그들이 서있는 연무장의 반대편 연무장쪽으로 멀리 뭉게뭉게 연기가 나고 있었다.프루토의 미간이 꿈틀하고 일그러졌다.
“단주님!”
이윽고 하드레더를 착용한 사내가 날아갈듯 프루토에게 달려왔다.그의 손이 빨리 움직이며,티나를 겨누었던 검이 빠른속도로 오른쪽 허리춤에 있는 프루토의 검집으로 스르릉 하고 빨려들어갔다.
“왠 소란인게냐?”
어깨에 있는 드래곤의 문장.이제 황실에 온지 일주일째,티나는 그동안의 눈치로 그 역시 프루토의 휘하에 있는 황룡기사단의 일원임을 알수 있었다.
“큰일났습니다.이계로 보내질 사자중 한명이 난동을..”
“뭣이?”
프루토의 인상이 험악해지자 그의 앞에 있는 기사단의 부하는 어쩔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였다.프루토의 몸이 잔상을 남길정도의 경악스러운 스피드로 먼지구름이 일어난 장소로 쏘아지듯 튀어나갔다.
‘이건...’
프루토와 그의 부하가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것을 보며 티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이정도의 힘에서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거지?’
은은하게 떨려오는 지면.귓가로는 때아닌 강풍이 지나가는 소리로 가득했다.티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정도의 물리적 후폭풍이 불어올 정도인데 느껴지는 마나는 제로였다. 그녀에겐 쥐약인 마법이라고 해도 마나가 재배열되며 느껴지는 미세한 일그러짐을 느꼈을텐데,이것은 아예 그런것이 없었다.
티나는 빠르게 몸을 놀렸다.마나를 쓸순 없어도 고유의 체술이 사라지는것은 아니었다.그녀는 빠르게 발을 놀려 저 멀리 점이 되었었던 프루토 일행을 따라 몸을 날렸다.
‘만약..난동을 부린다고 말할정도의 혼란이라면..탈출의 기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욕이 나올정도로 넓은 황실에서, 티나는 여태까지 10회가 넘는 탈출을 시도 했었다. 물론 매번 경비병 혹은 프루토에게 발각되었지만,그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티나의 머리속에는 황실 내부의 지리가 입력되고 있었다.
지금 티나가 달리는 곳은 넓다란 황실 연무장중 제 2연무장이라 불리는, 북쪽 게이트와 맞닿은 공간이었다.잘만 틈새를 노린다면 탈출의 순간을 잡을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티나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아니..!’
티나의 두 눈망울이 커졌다. 먼지구름을 해치고 다가간곳엔 참혹하기까지 한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황룡기사단의 엠블램을 달고 있는 수많은 시체들이 바닥에서 불에타는 역한 냄새를 전달하고 있었다.티나의 몸이 우뚝하고 멈춰졌다. 프루토를 비롯한 수많은 황룡기사단의 일원들이 어느 한명의 소녀를 원형으로 둘러싸 포진해 있었다.
그녀는 티나보다도 키가 작은 소녀였다.짧은 단발머리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약간은 허름한 옷을 걸친 소녀.그녀의 눈망울은 주변의 기사들을 경계하듯 양옆으로 움직였다.
‘저 아이인가..’
겉으로는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소녀.오히려 너무나 깜찍하게 생긴 소녀였다.하지만 그녀의 반경 50미터 이내의 사람들은 차마 접근하지 못하는듯 그녀를 애워싸고 주춤거릴 뿐이었다.
“뭐야 저년은?”
“마법사인 가터 경이 데려온 소녀입니다.”
프루토의 말에 한 병사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그의 두 눈망울안으로 소녀의 작은 몸이 투영되었다.
“소동을 일으킨다는것이 저년인게냐?”
“죄송합니다.”
“마법사인가?”
“아닙니다.”
“하긴..그렇다면 너희들이 이렇게 고전할리 없겠지.그럼 도대체 뭐야?”
“그..그것이..”
바로 그때, 황룡기사단의 소속 기사 한명이 검을 꼬나쥐고 맹렬하게 소녀에게로 달려나갔다.소녀 때문에 죽어간 동료들 때문일까?그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멈춰!명령을 따..”
프루토는 채 말을 잊지 못했다.맹렬하게 달려나가던 그가 순식간에 마치 토네이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땅으로 쑥 하고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점점 지면으로 먹혀들어가기 시작했다.우드드득 하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은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뭐야 저년은..”
프루토는 긴장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들었다.아무도 그녀가 손을 쓰는 것을 보지도 못한 상황.모두다 질린 표정으로 작은 소녀한명을 응시할뿐이었다.
“안그래도 가터경께서 주의를 주신 상태였습니다.비정상적일 정도로 정령들의 비호를 받는 소녀라고..”
“정령?”
“네.”
프루토의 미간이 씰룩하고 움직였다.그것이 화가났을때의 버릇이라는 것을 잘 아는 그의 부하는 긴장한듯 주춤거렸다.
“한낱 정령 나부랭이에 지금 황실의 황룡기사단이 이지경들이란 거냐!”
“며..면목없습니다.하지만 촌구석에 어설픈 정령술사나 혹은 정령을 겨우 다룰줄 아는 용병들의 레벨이 아닙니다.”
“그래서..저년역시 이계로 보내진다는건가?”
“네.원래는 예정대로 내일 차원이동시킬 예정이었지만..도대체가 접근 자체가...”
잔뜩 겁에 질려있는 수하들의 얼굴.그와 대조되는 차분하면서도 생각을 읽을수 없는 얼굴을 한 소녀를 번갈아 바라본 프루토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모두 철수한다.저년은 내가 맡겠다.”
“하..하지만..”
“닥치고 이행해!그리고 넌 가서 궁중마법사를 모아오도록해.최대한 많이.”
“아..알겠습니다! 전부 철수!”
순식간에 연무장을 가득 채우던 황룡기사단의 전원은 황급히 몸을 날려 그곳을 빠져나갔다.걔중에는 쌓여있는 동료의 시체를 보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맙소사..저게 정령의 힘이라고?’
티나는 황급히 벽에 몸을 숨겼다.지금처럼 소녀에게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이때에,기회를 봐서 탈출해야만 했다.하지만 그녀역시 쉽사리 움직일수 없었다.
‘그랬군.그래서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구나’
티나는 벽에 몸을 숨긴채로 멀리서 떨어져 있는 프루토와 소녀를 바라보았다.프루토는 어느새 검을 뽑아들고는 소녀를 겨누듯 자세를 취했다.이윽고 검신에 이글거리는 짙푸른 기운.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푸르토를 응시할 뿐이다.
“지금이라도 순순히 투항하고 명령에 순응한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프루토의 말에 그녀의 귀여운눈망울은 반짝 하고 빛이 났다.너무나 깜찍한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힘을 이미 보았던 프루토로서는 방심해서는 안될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년인가?”
“...”
스으으 하는 바람소리가 소녀를 중심으로 파장되기 시작했다.마치 접근 자체를 거부한다는 경고와도 같은, 맹렬하고도 차가운 바람이었다.
“네 이년...황실의 기사단을 능멸한 죄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프루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소녀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분노도,기쁨도,그리고 긴장하는 기색조차도 전혀 없는 무표정한 얼굴.검을 쥔 프루토의 왼 팔의 근육이 잠시 팽창되는가 싶더니,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우에서 좌로 베어졌다.
티나는 움찔하는 표정을 지었다.프루토와 소녀사이의 거리는 꽤나 멀었지만, 마스터란 칭호를 가진 자답게 짙푸른 검기가 맹렬하게 소녀에게로 날아갔기 때문이었다.애초에 생포하는것이 아닌, 제거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공격이었다.
콰아아아앙!
고막을 찢을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순식간에 그녀의 앞에서 지면이 순차적으로 솟아 오르며 프루토의 검기를 막아서듯 대항했다.그의 검을 떠난 검기다발들은 연차적으로 솟아오르는 지면에 부딪혀 소녀의 옷자락하나 스치지 못한채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프루토는 당황하지 않았다.연이어 그의 검을 떠난 검기들이 계속해서 소녀를 향해 폭사되기 시작했고, 그는 땅의 정령이 가드를 하는 그 틈을 타서 빠르게 몸을 날렸다.
“ㅤㅋㅡㅅ!”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프루토는 곧이어 형편없이 바닥을 뒹구르고 말았다.어디선가 수백가닥의 물줄기들이 전신으로 파고들며 날아왔기 때문이었다.화급히 검을 돌려 막았지만,충격은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모양인지 그는 몇바퀴나 땅을 뒹굴고 말았다.
“이..이..개같은년이!”
프루토는 크게 노한듯 거칠게 바닥으로 침을 뱉었다.피가 섞인 타액을 보자 그는 더욱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검을 잡은지 이제 20년차. 그리고 최근 6년간 누군가에게 이렇게 내동댕이 쳐져 본 기억따윈 그의 머릿속에 없었다.
“목숨을 살려주려던 생각이 바뀌었다. 말로 할수 없는 고통속에서 죽어가게 해주지.”
그는 부드득 하고 이를 갈았다.그의 검에 맺힌 검기의 색깔이 점점 더 진해지기 시작했다.티나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왠지 모르게 상황은 점점 더 위험해 지고 있는것만 같았다.
#2-정령들이 사랑한 소녀.
“허억..허억..”
프루토의 호흡은 시간이 갈수록 거칠어 졌다.실로 오랜만에 래더 아머 안으로 질척하게 땀이 차기 시작했다.거리를 줄이려고 다가가면 어디선가 강풍이 불어오며 접근을 거부했고, 검기를 날리면 또다시 지면이 솟아오르며 완벽하게 소녀를 방어했다.그 모든것들을 뿌리치고 접근하려 들면 또다시 이글거리는 화염덩어리,혹은 송곳보다 날카로운 물줄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접근이 불가하다면 강력한 원거리 공격밖에 없다는 뜻 아닌가?’
프루토는 그렇게 단정을 지어버렸다.지면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암석들이 흡사 도미노 처럼 솟아올라 방어한다면,그것을 모두 깨부수고 소녀의 몸에 검기가 닿을만큼 강한 공격을 하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는듯했다.
‘이 나라에..저런 계집의 몸을 갖고 있는 코흘리게 꼬맹이가 기사보다 강하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프루토는 입술을 악물고 마지막 힘까지 끌어 올렸다.전신의 근육이 팽창하는 듯한 짜릿한 기운이 몸 주변을 돌고 도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어왔다. 들고 있는 검이 마치 자기장에 접근한 금속마냥 파르르 떨렸다. 마치 얼마든지 기다려 준다는 듯, 그녀는 공격을 하지 않고 초점없는 눈으로 프루토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타아앗!”
프루토의 검이 또한번 수직으로 베어졌다.아까와는 비교자체가 불가한 짙푸른 검기들이 마치 꽃처럼 그의 검위로 피어나더니,이윽고 그것은 튕겨나가듯 검을 떠나며 한 점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스터 급의 기사가 온힘을 짜낸 마나의 정수가 노리는 것은 바로 연약하게만 보이는 작고 하얀 한명의 소녀였다.
콰지지직!
여지없이 집채만한 암석덩어리가 지면위로 하나둘씩 솟아올랐다.강인한 기세의 검기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지면의 조산운동을 종이자르듯 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프루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막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어보였고, 곧 그녀는 자신의 검기에 쏘일것만 같았다.
“아니!”
티나는 숨어있던 자신의 처지도 잊은채 그렇게 소리치고 말았다.프루토 역시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목표지점을 바라보았다.맹렬하게 뿜어져 나간 검기는 그녀가 서있던 자리까지 싹 밀어버리며 지면을 찢어발길듯 깎아대고 있었지만,정작 그 자리에 소녀는 없었다.
“치잇!”
프루토는 재빨리 허공을 응시하고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이를 악물고 다시금 검을 고쳐쥐었다.소녀의 몸이 보이지도 않는 사이에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것이었다. 그것이 바람의 정령이 그녀를 태우고 있는 것임을 눈치챈 프루토는 재빨리 지면을 박차 올랐다. 관찰하던 티나의 미간이 찡그려졌다.프루토로써는 일생일대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그때 저지른 셈이었다.
‘이.이건!’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지면을 박차고 힘차게 뛰어오른 자신의 몸은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하강하고 있었다. 땅에서 부터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와 자신의 양발목을 잡고 밑으로 계속해서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콰앙!
그는 지면에 몸을 부딪히며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이윽고 땅에서는 두개의 손이 솟구쳐 오르며 프루토의 양팔마져 잡아 지면에 고정시키고 있었다.추락으로 인한 충격으로 그의 정신이 아득해 질 그때에, 그는 자신의 몸위로 수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들을 보며 눈을 감아 버렸다.
콰콰콰쾅!
“프루토경!”
티나는 어디선가 한무리의 인원들이 달려오는 것을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입을 쩍 벌리고는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수백가닥의 물줄기들은, 마치 철로 만들어진 창처럼 프루토의 몸위로 쏟아지며 지면을 뚫어버렸다.자욱한 핏빛 물보라가 연무장위를 적시며 뿜어져 나왔고, 소녀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천천히 연무장의 지면위로 안착하고 있었다.
“프..프루토경!”
“단주님!”
로브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황룡기사단의 몇몇과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이미 늦어 버린 상황.그의 뒤로는 그의 제자들로 보이는 마법사들이 황급히 뒤따랐다.
“스..스승님.이를 어떻게 해야..”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중 한명이 침통한 음성으로 중년의 사내에게 입을 열었다.궁중 마법사중 한명인 가터. 그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소녀를 페어리의 후보로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런..우려했던 일이 터져버리다니..”
“도대체 저 소녀는..”
“이계 사자의 징벌을 위해 산골 마을에 답사를 했을때 발견한 소녀라네.마을 사람들은 저 아이를 로이드라고 부르더군.그 마을 출신이 아니라,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라고 했었지.”
“스승님께서는 정령술사인줄 알고 데려오신 겁니까?”
가터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달려온 황룡기사단의 일원들은 일제히 검을 뽑았으나, 마스터의 칭호를 가진 자신들의 단주가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져 있는것을 보고는 섯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를 먼 발치에서 애워쌀 뿐이었다.
“실로 놀라웠지.10살도 되지 않는 꼬마가 저런 힘을 갖게 될 줄이야..정령들이 그녀의 곁에서 보호하는 느낌마져 들더군. 하지만 저 소녀는 사람을 두려워하지.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그녀와 대화를 할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더군.”
제자인듯한 그는 가터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어느새 신관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프루토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아직 숨이 붙어 있는것을 확인한 그들은 서둘러 그를 이송하기 시작했다.
“그럼..어떻게 저 소녀를 데려오신 겁니까?”
“다행히 정령들이 내가 접근하는 것을 허락한 모양일세.뭐..마법으로 전신을 릴렉스 시켰으니 그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수도 있겠군.”
“하지만 저 상태로 어떻게 이계에 보내진단 말입니까?저희가 아예 손조차 댈수 없는걸요.”
“방법이 없는것은 아니야.우리가 저 로이드라는 소녀와 친해질 필요가 있겠지.그녀가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면,정령들 역시 호의를 보일테니까.그 이후는 나중일일세. 아무래도 저 소녀는 내일 보내지는 첫 원정에서 제외해야만 할거 같군.
가터는 황급히 손을들어 기사단의 철수를 요청했다.단주가 없는 지금, 마법사이지만 고위층인 가터의 말을 따를수 밖에 없던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검을 집어넣었다.
“저 아이,로이드의 자아는 지금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라네.일단 저 소녀를 잠시만 혼자 두도록 하지.시간이 지나고 내가 대화를 시도해볼테니까.알겠는가?”
“명령 받들겠습니다.”
어느새 그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는 준역시 초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노아는 쪼르르 준에게 달려가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이후는요?”
“나도 몰라.나 역시 곧 다시금 잡혀들어갔으니까.하지만 저 아이가 지금 우리와 함께있는게 나름의 해답이 되지 않을까?”
유나의 물음에 초희는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세라는 침착한 표정으로 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준을 바라보고는 다시 초희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다면...노아는 원래 1세대의 페어리였다는 뜻이군요.우리와 함께하지 못했을수도 있었겠네요.”
초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좌중의 시선은 어느새 노아에게 집중되었고 노아는 그것이 싫은지 준의 뒤로 숨어버리며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저 아이는 강해.괜히 최강의 페어리라는 말이 붙은게 아니지.다만..불규칙적인 자아만큼은 프로센의 마법사들도 바로잡아주지 못했어. 그저 기억을 지웠을 뿐이지. 어쩌면 저 아이가 너희들과 함께하게 된것도 하나의 인연이자 운명일수 있겠지.”
“그럼..그 프루토라는 녀석은 노아에게 혼쭐이 나고도 세라에게 찝적댄 거야?”
불쑥 끼어든것은 수아였다.하늘하늘한 금발의 머리밑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눈망울.뭔가 불만이 가득하다는 그녀의 귀여운 눈빛에도 초희는 피식 웃으며 말해주었다.
“뭐...어쩌면 노아에게 당했던 복수심의 일환이었을수도 있고.아니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드르렁 하는 코고는 소리. 초희의 뒤로는 어느새 유희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버린 김노인이 무아지경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깊은잠에 빠져 있었다.초희는 한숨을 푹 쉬고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면 지 버릇 개 못주는것일수도 있고 말야.”
#3.결혼 초읽기. 세라와 준.
“휴우...”
“무슨한숨을 그렇게 쉬어?”
리미답지 않은,무언가에 고심하는 듯한 그 모습에 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녀는 문이 닫혀있는 사무실의 입구를 슬쩍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연희씨라는 그분. 계속 나오게 할겁니까?”
“나오게 하다니 무슨소리야.지가 지발로 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 여자분이 맘에 드시는건 아니구요?”
“뭬야? 넌 무슨 그런 망발을..”
준은 실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리미의 표정은 사뭇 냉정하기 그지 없었다.
“페어리가 여섯이나 되는데 새로운 여자를 보고 신선해 하는것을 보면 주인님도 남자는 남자군요.”
“...이봐.좀 단정지으며 이야기 하지 말아줄래?”
“좀있으면 연희씨가 올겁니다.그 건물에서 나온 뱀문양의 문장.예사 조직이 아닐거에요.괜시리 달고 다녔다간 짐이 되는건 둘째치고 그 여자분이 위험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니가 연금술 한방으로 기억을 지...알았다.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지마.생명에겐 연금술을 하면 안된다! 됐지?”
“그리고 또..”
리미는 몇개의 서류뭉치를 뒤적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세라와의 결혼문제도 있고요.”
“흠..뭐 그건 그냥 조촐하게 하면..”
준의 말에 리미는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준을 바라보았다.그 마져도 너무나 깜찍하고 예쁜 얼굴이었지만 준은 또 움찔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왜그래.”
“지금 결혼식을 올리자는게 아닙니다.혼인신고만 해야죠. 남들 이목을 받아봐야 좋을게 있겠습니까?하객도 없을텐데.”
“야..야! 하객이 왜없어!내가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다 치죠 뭐.”
“...”
“여하튼. 그럴려면 유나와 세라가 영국으로가서 다시 한국으로 입국절차를 밟아야만 해요.”
“어째서?”
“대회의 당시에 영국에 갈땐 윌리엄스의 자가용비행기를 타고 가셨고,올때는 워프타고 오셨다면서요? 그럼 당연히 한국에 입국기록이 없겠죠.”
“아..그렇구나.그럼 가면되는거 아냐? 이번에는 반대로 워프타고 영국가서 비행기타고 오면 되지 않나? 그 정도 돈은 조금 있는데..”
사실 리미의 고민은 그런 단순한 부분이 아니었다.윌리엄스의 재산을 삥땅(?)치기 위해 영국에 갔던 유나를 공격했던 정체 불명의 집단들.섣불리 유나와 세라가 외국에 갔다가 당할까봐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아직까지 확실히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블랙맘바라는 존재들이 어떤 집단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리미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은 강한 존재가 아닌, 그것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존재였다.
‘일단 둘을 영국으로 보내야 할까?아니면..’
안그래도 요새 세라만 보면 질투에 불타는 유나가 그것을 수긍할리 없었다.그렇다고 세라만 보내자니 아직 사회적응이 안된 그녀이기에 불안감이 앞섰다. 그렇다고 해서 여권도 없는 자신이 갈수도 없으니...리미로써는 꽤나 골치아픈 문제였다.
“흠..그럼 내가 오늘밤 유나에게 말을 해보지 뭐.”
리미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괜시리 말을 꺼냈다간 유나와의 협약(?)에 어긋나는 결과가 되어버릴것 같아서였다. 다시금 그때당시 수집해놓은 건물들의 잔해를 꼼꼼하게 살펴보며 마나의 흔적을 찾는 준을 바라본 리미는, 다시금 너무나 잔잔해서 불안한 사무실의 출입구를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왜 그 연희라는 여자는 안오는거지?안오니까 왠지 두배로 불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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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연재분까지 모두 올렸습니다. 부디 작가님께 많은 리플과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야미님께서 리플에 많은 힘을 얻으시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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