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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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전쟁의 끝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준은 천천히 걸어나가면서,오너협회에서 안면을 텄던 대부분의 오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것에 침통한 신음성을 흘려야만 했다.그리고 중간중간에 떨어진 카드들.오너가 죽자 초기봉인으로 돌아간 페어리들의 카드들일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준은 애써 그 카드들을 외면할 뿐이었다.
“리미.”
“네.”
“여기서 오너를 잃고 초기봉인된 페어리들은…어떻게 되는거야?”
리미는 그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어찌보면 페어리라는 존재는 가혹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소멸…되는 것이지요.”
“소멸?다시 프로센으로 돌아갈순 없어?”
“프로센으로 가는것 역시,오너와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끊고,이어진 마나의 연계역시 끊었을때 가능합니다.물론 돌아가면 저희는 페어리라는 존재가 아닌,평범한 존재가 되어 나이도 먹고 늙어가겠지만, 오너가 죽은 페어리는 이도 저도 되지 못합니다.그저,존재 자체의 소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다른 오너가 개화시키는것도 애초에 불가능 하니까요.”
“역시 그렇구나…”
준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을 힘겹게 이끌면서도,한쪽팔이 아직 완전치 않은 리미를 보호하듯 걸었다. 준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전쟁은 끝났지만, 약해빠진 자신이 원망스럽다.아무리 세라를 비롯한 페어리들이 강하다 해도,자신이 죽게되면
모두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게다가..
“전쟁은 끝이 아니야.”
그의 말에 리미는 동감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뭔가 잔뜩 똥씹은 얼굴로 페어리들을 바라보는 윌리엄스. 작전상 아군이었지만, 언제 다시 적으로 돌아설지 모르는 인물.준일행에게 있어서는 크룬보다도 위험한 존재가 될지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다.모두 무사해서.’
준은 리미에게 모두의 마나가 느껴진다고 들었다.물론 부상은 있겠지만,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세라.”
무너져 버린 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있는 청순한 한 여성의 모습을 보자,리미와 준은 얼른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세라의 호흡은 거칠었고,그녀의 팔에서는 한줄기 피가 흘러나왔다.
“리미.어서.”
“알고 있습니다.”
리미는 얼른 숨겨두었던 포션등을 꺼내 세라를 치료하기 시작했다.세라는 살짝 눈을 뜨며 준을 바라보았다.
“합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바보같은 소릴…우린 다 살아있잖아.그걸로 된거야.”
준의 말에 세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그녀의 바스타드 소드는 여기저기 금이 가며 깨져있었다.그것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는지 느껴지는것 같아 준은 가슴이 찡했다.
“주인님이 싸우시는 모습,..모두 지켜보았습니다.”
“어..어?”
“여기서 쉽게 보이던걸요.”
“싸우기는 무슨.,..숨어있다가 묻어간건데…”
“그게 바로 매복입니다.”
치료를 하면서도 자신이 세운 전략에 대한 개명은 용서치 않는 리미의 모습에 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매복.”
“아뇨.매복을 떠나서 마지막 그 기술…정말 최고였는걸요.”
“덕분에 난 마나를 다 끌어다 쓴 느낌이야.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걸 뭐.”
리미의 의술이 펼쳐지는 동안에도,세라는 계속 준의 손을 잡아주며 칭찬해 주었고,준은 그녀에게 살짝 미소를 띄웠다.
“그런데.높은 건물위에 있던 그 분은 누구인가요?”
“무슨소리야?”
준의 되물음에 세라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님의 공격범위를 줄여주던 남자 한분이 있었는데…”
“뭐?우리 주변에는 윌리엄스 일행하고 마스터 뿐이었다고.”
세라의 말에 리미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리미역시 처음듣는 다는 뉘앙스에 세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물론 준은 그 표정까지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분명 있었습니다.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동양인이…피리같은 것을 들고..”
“그럴리 없어 세라.나는 아무런 마나도 느끼지 못했어.”
이번엔 리미의 말이었다.그 부분 역시 세라로써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마나를 수족처럼 다루는 리미.대 자연이 내뿜는 미약하고 세세한 마나역시 모두 분별하는 리미에게 기척을 들키지 않고 접근할 사람이 있다니,그것은 세라역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리미는 세라의 말을 듣고 나서야 뭔가가 떠올랐다.생각해보면,준의 공격은 급조된 터라 무지막지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즉,아군역시 위험할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헌데,이상하게도 자신과 준,그리고 윌리엄스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그 공격은 고스란히 마스터의 몸에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리미는 곰곰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급박한 순간이라 내가 느끼지 못한걸까?그렇다 쳐도…그 중년의 남자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라는 거지?’
“당신은…도대체 누구십니까?”
차우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소와 샤이에게,투덜대며 치료마법을 행하는 유희를 보며 물었다.하지만 중요한것은,그런 유희의 뒤에 두명이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한명은 처음보는 동양인 남자였고,또 한명은…
“안녕 약골씨.”
가면을 쓴 검은 무복의 여인.초희가 살짝 손을 흔들며 차우에게 인사를 했다.순식간에 가투를 마치 식후 담배한대 피듯 처리해버리고는 사라져 버린 그녀, 그녀가 중년의 사내의 옆을 호위하듯 서있었다.
“몸은 괜찮은가?”
“아…네.”
덕분에..라는 말을 하려다 차우는 그만두었다.아직도 그의 신원은 불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많이 고생들 했더구만.전쟁이란건 참 많은 것을 앗아가는군.”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누구신지..”
차우의 말에 그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냥 갔으면 좋았을것을..’이라며 연신 투덜대는 유희의 말에도 그는 온화하게 웃었다.
“그냥 김노인이라고 부르게.”
“노…노인요?”
차우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었다.그가 지긋한 나이처럼 보이긴 했지만,결코 노인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좀 동안이라서..”
“.....”
차우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옆에 있는 초희는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혹시.....오너...이신 겁니까?”
차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고,김노인이라 밝힌 사내는 살짝 웃었다.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차우는 그것외는 설명될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네 이름은?”
“차..차우라고 합니다.”
“그래 차우군.사실 오너란 존재를 이 세계에 심으려는 노력은,자네세대에서 처음 시도된 일이 아니라네.”
“예에?”
차우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것도 잊은채 벌떡 일어섰다.단연코,그것은 단한번도 듣지 못한 사실이었다.
“나때에서 부터 있었지.하지만 자네때와는 많이 다르네.설명하기 복잡하니 이 정도만 말해두고 싶군.”
“그럼....전 세대의 오너가 또 있다는 말인가요?”
“나 이외에는 없지.물론 더 있었다네.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지.”
“어째서 입니까?”
김노인은 회상하듯이 먼 허공을 바라보았고,유희 마법에 의해 소소와 샤이는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벨런스...가 안맞았다고 표현하면 되려나?시행착오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지.프로센에서도 처음 페어리를 파견한 것이니,생각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진 것이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어르신.좀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차우의 예의바른 요청에 김노인은 씨익 웃었다.유희는 여전히 투덜거리며 치료를 끝내고 그의 뒤에 와서 섰다.
“페어리의 존재가 너무 컸던 것이지.어설프게 마나를 느끼는 인간은 페어리와의 감응이 맞지 않아 모두 죽어버린 거라네.마나라는게 얼마나 무서운건지....자네는 잘알고 있지 않는가?”
차우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김노인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것이라네.마나를 느낄순 있어도,그것을 완전히 다루지 못한 초창기 오너들은,점점 페어리의 마나들에 의해 자신의 마나를 잠식당했고,심지어는 생명력까지 잃었지.그것이 바로 지금의 페어리들이 다양하게 세분화된 이유라네.오너들과의 마나 감응력을 맞추기 위해,자네세대부터 벨런스를 낮춘 것이지. 그리고 덧붙여,마나의 양이 크고 감응력이 좋은 오너들은 계속해서 페어리를 개화시킬수 있게 된 것일테고.”
차우는 정말 처음듣는 세계를 접하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기절상태였지만 모두 대화를 듣고 있던 소소와 샤이 역시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자네들은 정말 강하구먼.많은 희생이 있었지만,그래도 잘 지켜내지 않았는가.자신들의 행복을 말이야.”
“행복....”
차우는 저도 모르게 김노인의 말을 되뇌였다.
‘그렇다면....저 흑백 무복의 페어리들은....1세대에 있던,힘이 나눠지지 않은 그런 페어리들이라는 건가.’
그제서야 차우는 초희가 보여주었던 무위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딱히 어느 계열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만,그녀는 강했다.무엇보다,가투의 기술을 보지도 않고 카피해 버린 그 능력은 그역시도 처음보는 페어리의 모습이었다.
“자.가도록 하지.많은 사람들이 다쳐 있으니,치료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준은 순식간에 침울한 표정이 되어버렸다.깊게 잠들어 있는 노아까지는 좋았다.그녀를 업고 돌아오는 길에,울상이 된 마유미와,그 옆에있는 유나를 보기 전까지는 정말 행복한 편이었다고 자부할수 있었다.
“유..유나.”
그녀는 숨을 헐떡 거리며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어깨에 맺힌 얼음의 결정모양의 문양이 계속해서 빛을 발했다가 사그러들다를 반복하고 있었다.자연스레 준의 시선이 마유미를 향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한 여자가 와서는 유나의 마법을 봉인해 버려서..”
“봉인?”
“막을수가 없었어요.몇 써클인지 파악조차 안되는 주문이었습니다.”
“도,도대체 누가...?”
세라도,리미의 표정도 굳어버렸다.붉은 머리칼의 고운살결.마유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유나와 같은....은발의 머리를 한 여성이었습니다.”
“저희가 모르는 다른 존재가 있는듯 합니다.”
얼른 유나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피는 리미의 덧붙임에도,준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마법봉인이라니...그런게 있기는 한거야?”
유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준을 바라보았다.빙백의 인을 처음보는 준이였지만,저게 뭐냐고 물을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그것은 계속해서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매우 이질적인 기척에 세라의 몸이 회전하며,순식간에 땅에 있던 돌맹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타악!
그것은 마치 총알처럼 깔끔하게 날아갔다.아군치고는 느껴본적이 없는 기운이었기에,세라의 몸이 적대적으로 반응한 것이겠지만,그녀가 던진 위협적인 돌맹이는 너무나 허무하게 옆으로 튕겨나갔다.
“차우....!”
준은 세라의 돌멩이를 가볍게 발로 차낸 흑색무복의 여인 뒤에,샤이와 소소를 이끌고 온 차우가 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었다.그리고 못보던 얼굴의 남녀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괜찮은 거야?”
준의 말에 차우는 씨익 웃었다.하지만 이내 뒷편에서는 투닥거리는 듯한 말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희.니가 저렇게 만든거냐?”
“어쩔수 없었다구요.인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라 봉인하는 수밖에는.”
“그래도 그렇지...8써클 마법사를 일반인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떡하냐?”
“제가 죽을수도 있었다니까요?”
“너...자꾸 말대꾸 할래?엉?”
세라는 그녀답지 않은 멍한 표정으로 김노인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녀는 알수 있었다. 그 사람이,준의 공격범위를 막아준 그 사내였다는 것을.
준역시 상황파악이 안되는 눈으로 차우만 바라볼 뿐이었다.옆에서 계속해서 들리는 다툼소리에 차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준에게 중얼거렸다.
“좀 복잡합니다만...설명이 필요할거 같네요.”
‘유나....’
준은 천천히 유나를 내려 놓았다.그녀는 여전히 불규칙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머릿속에 김노인의 말이 울려퍼진다.
-마법봉인이니,오너가 풀어줄수밖에 없지 않겠나.마나의 감응을 여는 방법은 오너인 자네가 가장 잘 알테지.-
아까 들은 페어리에 관한 이야기들도,그리고 제 1세대 오너인 김노인의 대한 궁금증도 지금은 신경쓸 여력이 없다.온몸이 너무나 피곤했지만,유나의 상황을 돌려놓을수 있는 것은 준 하나 뿐이었다.
준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하나쯤은 짐작할수 있었다.바로 유희의 술법에 의해,유나의 마법클래스가 모두 빙백의 인에 묶여버렸다는 것을.그래서 상대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유나가 힘들어 하며 몸을 가누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밖에서는 복구가 한창일 것이다.김노인과 차우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지만,중요한것은 복구일 것이 틀림없다.노아역시 잠들어 있지만 몸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유희가 치료마법을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밖에 없는 거구나.’
사실,지금은 상황상 유나와 이런것을 할때가 아니었다.물론 오너와 페어리의 접촉에 의해,페어리는 오너와 연결된 마나를 끌어당겨,자신을 쉴새없이 완전체로 만들게 되어 있지만,조금 덜 부숴진 건물에 이렇게 단 둘만 들어오게 될줄이야...준은 천천히 옷을 벗었다.
-유나양은 인이 맺혀 있습니다.샤이도 그랬지만,그 인을 페어리가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최초에 오너의 개입이 필요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인에 정신까지 빼앗겨 버릴지도 모른다구요.-
차우의 덧붙임이,망설이던 준을 이리로 이끌었다.누구에게 손가락질 당하거나 할일은 없다.오너에게 있어서 페어리의 손실된 마나를 채워주는 방법은 이거 하나뿐인 것이다.
‘그..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이네..’
전쟁탓도 있었고,마유미라는 페어리를 거둔 탓일수도 있었다.유나와의 이런시간은 참으로 오랜만이라 할수 있었다.
“으음...으음...”
유나는 몸을 뒤척이며 신음했다.분명 의식은있지만, 말을 할 기운조차 없는것이다.프로즌 레이디라는 칭호 답게 항상 차가웠던 유나의 뽀얀 살결은,뜨겁기 까지 했다.그녀의 한기가 모두 빙백의 인에 갇혀 버린 탓일 것이다.
‘나도 꽤 많은 마나가 손실된 상태인데 괜찮을까’
물론 이런 걱정을 아까도 안한것이 아니었다.하지만 1세대 오너라 자칭한 김노인은 그런 준의 마음을 알아챈듯 그에게 말을 해 주었었다.
-걱정말게.자네의 마나를 나눠주는게 아니라,인을 개방시켜 다시 묶여있던 마나들을 되찾게 해주는것 뿐이니까-
‘그런데...그 아저씨..아니 그 노인은 도대체...어디서 나타난 거지?’
사정설명은 다 들었다.자신도,그리고 그의 페어리인 세라와 리미,마유미도,모두 그 이야기에 충격을 받기도 했었지만,지금껏 보이지 않던 오너가 나타났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잡생각은 비우자.지금은 유나가 먼저다.’
준은 천천히,군데군데 찢어져 있는 유나의 옷을 벗겨내었다.전투탓에 약간 먼지가 묻기도 했지만,그런것을 찝찝해 할정도로 준은 철이 없지 않았다.유나를 잘 어르고 달랜 끝에,곧이어 유나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아름답다.여전히.’
그동안 너무나 잊고 살았던것 같았다.유나의 몸은 마치 설원처럼 하얗고 아름다웠다.세라의 경우에는 검을 휘두루는 탓에,약간 근육이 많이 섞여있는 느낌이지만,유나의 경우는 들어갈곳은 들어가고 나올곳은 나온,여성의 몸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런 몸이었다.
“으음...”
준은 살며시 유나의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다.단 그것 하나만으로도,핏기없던 유나의 얼굴은 점차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이상하게 준의 몸에도 땀이 흘러 나온다.그는 조심스레,유나의 몸위에 자신의 몸을 포개었다.
준의 손에,유나의 사과같은 가슴이 잡혀왔다.가냘픈 몸과 어울리는,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그런 이쁜 가슴이었다.그 밑에로 가늘게 뻗은 허리와 다리.그리고 페어리라는 존재를 여실히 증명하는,마치 이세상 사람의 것 같지 않은 너무나 이쁜 그녀의 은밀한 그곳.
“흑...흠...”
점차 끙끙 앓기만 했던 유나의 입술이 열려오기 시작한다.준의 입술이 몸에 닿았고,페어리와 오너가 교감할때 발생하는 특유의 기운에 유나의 몸은 조금씩 조금씩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유나...’
이 순간만큼은,준은 크룬에게 희생된 첫사랑 민아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라케인을 비롯한 오너들을 떠올리며 슬퍼하지 않았다.어찌보면 가장 슬프고 가여운 존재는,페어리라는 이름을 달고 자신의 오너를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세라와 유나,그리고 노아와 마유미,리미일 것이다.
“흑...”
유나가 조용히 흐느낀다.둘은 비로소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전쟁이 끝난후에,엉망이 되어버린 건물안에서 나누는 교감이지만,장소와 때는 어찌되었건 상관없었다.그녀는 준의 사랑스러운 페어리이자,항상 자신을 갈고 닦으며 용감하게 싸워서,늘상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으니까.
삐그덕,삐그덕.
하나 남아있는 건물이라 해도,충격으로 인해 가구는 온전치 않은 모양이었다.최고급 가구로 가득했던 윌리엄스의 저택이지만,심한 진동으로 인해 침대도 맛이 간 모양인지 계속해서 삐그덕 소리를 내었다.
“흥....흐윽...”
이윽고 유나의 팔이 준의 목을 감싸 안았고,더불어 그녀의 새하얀 다리가 준의 허리를 둘렀다.준은 움직이면서도 계속해서 유나의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다.지금그가 할수 있는것은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
“흑...아앙...”
준은 분명히 보았다.시간이 지나면서 스킨쉽의 열기가 가해질수록,유나의 몸은 더더욱 차가워 지는 것을.그리고 그녀의 어깨위에 맺힌 얼음문양에서 나오던 빛이 점차 유나의 몸으로 퍼지며 스며드는 것을.
“주인님...”
드디어 유나의 입술이 열리며 준을 불렀다.준은 그녀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더이상 이 행위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유나의 회복이 주 목적일지도 모르지만,마음같아선 잘 싸워준 모두를 다 유나처럼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흑...흐응...”
준의 허리놀림이 더욱 거세졌다.유나는 하얀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준을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순식간에 온몸에 전해져 오는 유나의 한기.빙백의 인이 반짝 하며 마지막 빛무리를 내뿜는 그 순간,준역시 유나를 더욱 세게 꽉 끌어 안았다.
“하아...하아...”
유나도,준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둘은 단 한번도 자세를 바꾸지 않고 서로를 갈구한 것이다.준은 그녀의 몸위에 올라탄채,완전히 생기를 찾아가는 유나를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유나...”
그녀의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한기로 인해 수증기마져 내뿜는다.그리고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하얀 연기에 쌓인 하얀 알몸.마치 설원의 여신처럼 유나는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고마워요 주인님....”
“알았으니까 이제 가자니깐?”
“다신 안해요 이거!”
계속 툴툴거리는 유희와 대충대충 달래는 김노인.겉모습은 중년의 사내와 아름다운 아가씨의 모습이지만,왠지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같기도 했다.초희는 아예 포기했다는 듯 먼산만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가시는 건가요?”
준은 페어리들을 데리고,김노인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은 자연스레 김노인의 허리춤에 있는 피리모양의 악기에 눈이 가고 있었다.
“흠....뭐 그래야 하지 않겠나?전쟁은 끝이 났고 말이야 게다가....”
말을 하던 그가 어딘가를 가리켰고,동시에 차우와 준,그리고 그 둘의 페어리들도 일제히 김노인이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친구 꽤나 나를 경계하는것 같아서 말이지.”
차우는 살짝 이를 갈았다.물론 준도 마찬가지였다.무엇을 하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윌리엄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그는 다른것을 하는것처럼 보이지만,연신 그쪽을 주시하는 눈치였다.
“그냥 뒈져줬으면 편했을텐데.”
차우는 분하다는듯 중얼거렸다.어찌보면 사라케인이 죽은것은 윌리엄스의 계략일지도 몰랐다.반 윌리엄스 파인 사라케인은 자신에게 너무도 벅찬 파렐을 상대하다가 가진 마나를 모두 소진하고 그에게 신체를 빼앗겨 버렸으니까.
“저 친구..굉장히 야심이 있어 보이는군.”
“맞습니다.뭘 꾸미는지 모르는 녀석이니까요.”
준의 말에 김노인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윌리엄스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것들을 모아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윌리엄스는 페어리들을 시켜 부숴진 저택을 들추며 초기봉인된 카드들을 수습하고 있었다.자신의 카드가 아닌,다른 오너들의 카드를 수습하는 모습에 모두들 의아함 반,찝찝함 반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우우우웅....
갑자기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파성음에 좌중은 모두 김노인을 바라보았다.그리고는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특히,음파공을 다루는 준의 충격은 가장 심했다.어느틈인지 김노인이 악기를 불자마자,무질서하게 불던 바람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불어 닥치며,멀리 있는 윌리엄스와 준 일행사이에 부서진 벽돌들로 이루어진 담장을 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뭐...저놈이 저렇게 꺼림찍한 친구라면야 우리가 워프하는거 보여줘서 좋을거 없지 않겠어?”
모두 할말을 잃고 있었다.김노인은 피식 웃어주더니,유희를 향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나는 한국으로 갈거라네.내 고향이 거기니까.준 군은 나와함께 가면 될테고...차우군도 일단 같이 가겠나?아무래도 자네가 갖고 있는 스크롤로 영국에서 바로 중국까지 워프하기엔 불안정할수도 있을테니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하는게 안전하겠지.”
차우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유희의 손이 허공에서 교차를 했고,준은 워프가 시작될것이라는 느낌에 얼른 잠들어 있는 노아를 업었다.세라와 리미,그리고 유나와 마유미도 준쪽으로 와서 붙어섰다.
“워프!”
유희의 시동어가 울림과 동시에 서있는 그들의 밑으로 원형의 마법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마법을 다루는 세명의 법사인 샤이와 유나,그리고 마유미는 계열의 제한따윈 없어 보이는 유희의 마법에 그저 눈을 크게 뜰 뿐이었다.
부우우우우우...
전쟁탓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준은 더이상 워프를 할때의 울렁거림이 느껴지지 않았다.하얀 빛무리가 일행을 휘감는다.그리고 천천히 일그러지는 공간.
준은 보았다.자신이 사라지기 직전,김노인이 쳐놓은 벽돌의 담장이 부숴지는 것을.그리고 부숴지는 그 틈에서,자신을 바라보는 윌리엄스의 모습역시.
ㅡ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후 차우가 한장남은 스크롤을 이용해 단거리 워프를 해버리고 나서,등을 돌리며 어디론가 가려는 김노인을 준은 급하게 불러 세웠다.
“응?드릴 말씀이라니?어서 가서 자네 페어리들을 회복시켜줘야 하지 않겠나?”
“물론 그렇지만...”
준은 약간 망설였다.자신은 더더욱 강해져야만 한다.윌리엄스의 야망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전쟁때문에 어쩔수 없지만,무인도에 어쎄씬을 보내어 전멸시키려 했던 것이 바로 윌리엄스 아니던가.그 역시 전쟁으로 인한 재정비가 끝나면,필시 감추고 있던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저에게...음파공을 가르쳐주실수 없습니까?”
준의 발언에 유희와 초희는 물론,세라를 비롯한 준의 페어리들마져 흠칫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김노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준에게 되물었다.
“잘하던데 뭘 가르쳐 달라는 겐가?”
“저는 부족합니다.더욱 강해지지 않으면...제가 강하지 않으면 이 아이들을 지킬수 없어요.저는 전쟁으로 겨우 깨달았습니다.이 아이들이 저를 지켜야 하는것이 아니라,제가 이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요.”
“잘못된 생각이네.장기에서 아무리 차나 포가 살아있다고 한들,왕이 죽으면 게임은 끝나는 것이지.자네 페어리들을 더 간수하는게 나을게야.”
김노인은 피식 웃으며 뒤돌아서 버렸다.준은 다급한 마음에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혹시나.혹시나 가족이 있으신지요?”
김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없습니다.이 아이들 뿐입니다.그것도...이제서야 겨우 생긴..”
가면속에 있는 초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늘상 도도한 태도를 보였던 유희마져도 살며시 자신의 오너인 김노인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처음느껴보는,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그 기분에,마유미는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미안하지만...”
김노인의 말에 준은약간 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그가 거절할 것만 같아서였다.그런 준을 바라보던 김노인이 씨익 웃었다.
“난 수업료가 조금 비싸다네.”
“에에?”
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그런 준을 보는 세라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현금 2억은 준비해야 할거야.”
진지한 표정의 김노인의 말에,초희는 또다시 한숨을 푹쉬었고,유희는 ‘꼭 잘나가다가 저래...’라며 투덜거렸다.
그의 농담에 준은 쭈뼛쭈뼛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기...그렇게 큰 돈은 없는데요.”
김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진심을 털어놓은 준.그리고 그에게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그의 페어리들을 하나하나 바라본 김노인은,이내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괜찮아.카드도 된다네.물론 수수료가 조금 붙지만 말이야.”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초희의 한숨소리. 아무도 없는 어느 이름모를 야산에서는,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마치 그들의 앞에 새롭게 나타날 어느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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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전쟁의 끝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준은 천천히 걸어나가면서,오너협회에서 안면을 텄던 대부분의 오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것에 침통한 신음성을 흘려야만 했다.그리고 중간중간에 떨어진 카드들.오너가 죽자 초기봉인으로 돌아간 페어리들의 카드들일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준은 애써 그 카드들을 외면할 뿐이었다.
“리미.”
“네.”
“여기서 오너를 잃고 초기봉인된 페어리들은…어떻게 되는거야?”
리미는 그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어찌보면 페어리라는 존재는 가혹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소멸…되는 것이지요.”
“소멸?다시 프로센으로 돌아갈순 없어?”
“프로센으로 가는것 역시,오너와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끊고,이어진 마나의 연계역시 끊었을때 가능합니다.물론 돌아가면 저희는 페어리라는 존재가 아닌,평범한 존재가 되어 나이도 먹고 늙어가겠지만, 오너가 죽은 페어리는 이도 저도 되지 못합니다.그저,존재 자체의 소멸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다른 오너가 개화시키는것도 애초에 불가능 하니까요.”
“역시 그렇구나…”
준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을 힘겹게 이끌면서도,한쪽팔이 아직 완전치 않은 리미를 보호하듯 걸었다. 준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전쟁은 끝났지만, 약해빠진 자신이 원망스럽다.아무리 세라를 비롯한 페어리들이 강하다 해도,자신이 죽게되면
모두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게다가..
“전쟁은 끝이 아니야.”
그의 말에 리미는 동감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뭔가 잔뜩 똥씹은 얼굴로 페어리들을 바라보는 윌리엄스. 작전상 아군이었지만, 언제 다시 적으로 돌아설지 모르는 인물.준일행에게 있어서는 크룬보다도 위험한 존재가 될지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다.모두 무사해서.’
준은 리미에게 모두의 마나가 느껴진다고 들었다.물론 부상은 있겠지만,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세라.”
무너져 버린 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있는 청순한 한 여성의 모습을 보자,리미와 준은 얼른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세라의 호흡은 거칠었고,그녀의 팔에서는 한줄기 피가 흘러나왔다.
“리미.어서.”
“알고 있습니다.”
리미는 얼른 숨겨두었던 포션등을 꺼내 세라를 치료하기 시작했다.세라는 살짝 눈을 뜨며 준을 바라보았다.
“합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바보같은 소릴…우린 다 살아있잖아.그걸로 된거야.”
준의 말에 세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그녀의 바스타드 소드는 여기저기 금이 가며 깨져있었다.그것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는지 느껴지는것 같아 준은 가슴이 찡했다.
“주인님이 싸우시는 모습,..모두 지켜보았습니다.”
“어..어?”
“여기서 쉽게 보이던걸요.”
“싸우기는 무슨.,..숨어있다가 묻어간건데…”
“그게 바로 매복입니다.”
치료를 하면서도 자신이 세운 전략에 대한 개명은 용서치 않는 리미의 모습에 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매복.”
“아뇨.매복을 떠나서 마지막 그 기술…정말 최고였는걸요.”
“덕분에 난 마나를 다 끌어다 쓴 느낌이야.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걸 뭐.”
리미의 의술이 펼쳐지는 동안에도,세라는 계속 준의 손을 잡아주며 칭찬해 주었고,준은 그녀에게 살짝 미소를 띄웠다.
“그런데.높은 건물위에 있던 그 분은 누구인가요?”
“무슨소리야?”
준의 되물음에 세라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님의 공격범위를 줄여주던 남자 한분이 있었는데…”
“뭐?우리 주변에는 윌리엄스 일행하고 마스터 뿐이었다고.”
세라의 말에 리미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리미역시 처음듣는 다는 뉘앙스에 세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물론 준은 그 표정까지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분명 있었습니다.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동양인이…피리같은 것을 들고..”
“그럴리 없어 세라.나는 아무런 마나도 느끼지 못했어.”
이번엔 리미의 말이었다.그 부분 역시 세라로써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마나를 수족처럼 다루는 리미.대 자연이 내뿜는 미약하고 세세한 마나역시 모두 분별하는 리미에게 기척을 들키지 않고 접근할 사람이 있다니,그것은 세라역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리미는 세라의 말을 듣고 나서야 뭔가가 떠올랐다.생각해보면,준의 공격은 급조된 터라 무지막지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즉,아군역시 위험할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헌데,이상하게도 자신과 준,그리고 윌리엄스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그 공격은 고스란히 마스터의 몸에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리미는 곰곰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급박한 순간이라 내가 느끼지 못한걸까?그렇다 쳐도…그 중년의 남자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라는 거지?’
“당신은…도대체 누구십니까?”
차우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소와 샤이에게,투덜대며 치료마법을 행하는 유희를 보며 물었다.하지만 중요한것은,그런 유희의 뒤에 두명이나 더 있다는 것이었다.한명은 처음보는 동양인 남자였고,또 한명은…
“안녕 약골씨.”
가면을 쓴 검은 무복의 여인.초희가 살짝 손을 흔들며 차우에게 인사를 했다.순식간에 가투를 마치 식후 담배한대 피듯 처리해버리고는 사라져 버린 그녀, 그녀가 중년의 사내의 옆을 호위하듯 서있었다.
“몸은 괜찮은가?”
“아…네.”
덕분에..라는 말을 하려다 차우는 그만두었다.아직도 그의 신원은 불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많이 고생들 했더구만.전쟁이란건 참 많은 것을 앗아가는군.”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누구신지..”
차우의 말에 그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냥 갔으면 좋았을것을..’이라며 연신 투덜대는 유희의 말에도 그는 온화하게 웃었다.
“그냥 김노인이라고 부르게.”
“노…노인요?”
차우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었다.그가 지긋한 나이처럼 보이긴 했지만,결코 노인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좀 동안이라서..”
“.....”
차우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옆에 있는 초희는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혹시.....오너...이신 겁니까?”
차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고,김노인이라 밝힌 사내는 살짝 웃었다.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차우는 그것외는 설명될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네 이름은?”
“차..차우라고 합니다.”
“그래 차우군.사실 오너란 존재를 이 세계에 심으려는 노력은,자네세대에서 처음 시도된 일이 아니라네.”
“예에?”
차우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것도 잊은채 벌떡 일어섰다.단연코,그것은 단한번도 듣지 못한 사실이었다.
“나때에서 부터 있었지.하지만 자네때와는 많이 다르네.설명하기 복잡하니 이 정도만 말해두고 싶군.”
“그럼....전 세대의 오너가 또 있다는 말인가요?”
“나 이외에는 없지.물론 더 있었다네.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지.”
“어째서 입니까?”
김노인은 회상하듯이 먼 허공을 바라보았고,유희 마법에 의해 소소와 샤이는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벨런스...가 안맞았다고 표현하면 되려나?시행착오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지.프로센에서도 처음 페어리를 파견한 것이니,생각지 못한 일이 많이 벌어진 것이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어르신.좀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차우의 예의바른 요청에 김노인은 씨익 웃었다.유희는 여전히 투덜거리며 치료를 끝내고 그의 뒤에 와서 섰다.
“페어리의 존재가 너무 컸던 것이지.어설프게 마나를 느끼는 인간은 페어리와의 감응이 맞지 않아 모두 죽어버린 거라네.마나라는게 얼마나 무서운건지....자네는 잘알고 있지 않는가?”
차우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김노인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것이라네.마나를 느낄순 있어도,그것을 완전히 다루지 못한 초창기 오너들은,점점 페어리의 마나들에 의해 자신의 마나를 잠식당했고,심지어는 생명력까지 잃었지.그것이 바로 지금의 페어리들이 다양하게 세분화된 이유라네.오너들과의 마나 감응력을 맞추기 위해,자네세대부터 벨런스를 낮춘 것이지. 그리고 덧붙여,마나의 양이 크고 감응력이 좋은 오너들은 계속해서 페어리를 개화시킬수 있게 된 것일테고.”
차우는 정말 처음듣는 세계를 접하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기절상태였지만 모두 대화를 듣고 있던 소소와 샤이 역시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자네들은 정말 강하구먼.많은 희생이 있었지만,그래도 잘 지켜내지 않았는가.자신들의 행복을 말이야.”
“행복....”
차우는 저도 모르게 김노인의 말을 되뇌였다.
‘그렇다면....저 흑백 무복의 페어리들은....1세대에 있던,힘이 나눠지지 않은 그런 페어리들이라는 건가.’
그제서야 차우는 초희가 보여주었던 무위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딱히 어느 계열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만,그녀는 강했다.무엇보다,가투의 기술을 보지도 않고 카피해 버린 그 능력은 그역시도 처음보는 페어리의 모습이었다.
“자.가도록 하지.많은 사람들이 다쳐 있으니,치료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준은 순식간에 침울한 표정이 되어버렸다.깊게 잠들어 있는 노아까지는 좋았다.그녀를 업고 돌아오는 길에,울상이 된 마유미와,그 옆에있는 유나를 보기 전까지는 정말 행복한 편이었다고 자부할수 있었다.
“유..유나.”
그녀는 숨을 헐떡 거리며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어깨에 맺힌 얼음의 결정모양의 문양이 계속해서 빛을 발했다가 사그러들다를 반복하고 있었다.자연스레 준의 시선이 마유미를 향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한 여자가 와서는 유나의 마법을 봉인해 버려서..”
“봉인?”
“막을수가 없었어요.몇 써클인지 파악조차 안되는 주문이었습니다.”
“도,도대체 누가...?”
세라도,리미의 표정도 굳어버렸다.붉은 머리칼의 고운살결.마유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유나와 같은....은발의 머리를 한 여성이었습니다.”
“저희가 모르는 다른 존재가 있는듯 합니다.”
얼른 유나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피는 리미의 덧붙임에도,준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마법봉인이라니...그런게 있기는 한거야?”
유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준을 바라보았다.빙백의 인을 처음보는 준이였지만,저게 뭐냐고 물을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그것은 계속해서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매우 이질적인 기척에 세라의 몸이 회전하며,순식간에 땅에 있던 돌맹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타악!
그것은 마치 총알처럼 깔끔하게 날아갔다.아군치고는 느껴본적이 없는 기운이었기에,세라의 몸이 적대적으로 반응한 것이겠지만,그녀가 던진 위협적인 돌맹이는 너무나 허무하게 옆으로 튕겨나갔다.
“차우....!”
준은 세라의 돌멩이를 가볍게 발로 차낸 흑색무복의 여인 뒤에,샤이와 소소를 이끌고 온 차우가 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었다.그리고 못보던 얼굴의 남녀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괜찮은 거야?”
준의 말에 차우는 씨익 웃었다.하지만 이내 뒷편에서는 투닥거리는 듯한 말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희.니가 저렇게 만든거냐?”
“어쩔수 없었다구요.인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라 봉인하는 수밖에는.”
“그래도 그렇지...8써클 마법사를 일반인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떡하냐?”
“제가 죽을수도 있었다니까요?”
“너...자꾸 말대꾸 할래?엉?”
세라는 그녀답지 않은 멍한 표정으로 김노인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녀는 알수 있었다. 그 사람이,준의 공격범위를 막아준 그 사내였다는 것을.
준역시 상황파악이 안되는 눈으로 차우만 바라볼 뿐이었다.옆에서 계속해서 들리는 다툼소리에 차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준에게 중얼거렸다.
“좀 복잡합니다만...설명이 필요할거 같네요.”
‘유나....’
준은 천천히 유나를 내려 놓았다.그녀는 여전히 불규칙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머릿속에 김노인의 말이 울려퍼진다.
-마법봉인이니,오너가 풀어줄수밖에 없지 않겠나.마나의 감응을 여는 방법은 오너인 자네가 가장 잘 알테지.-
아까 들은 페어리에 관한 이야기들도,그리고 제 1세대 오너인 김노인의 대한 궁금증도 지금은 신경쓸 여력이 없다.온몸이 너무나 피곤했지만,유나의 상황을 돌려놓을수 있는 것은 준 하나 뿐이었다.
준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지만,하나쯤은 짐작할수 있었다.바로 유희의 술법에 의해,유나의 마법클래스가 모두 빙백의 인에 묶여버렸다는 것을.그래서 상대적으로 마나를 다루는 유나가 힘들어 하며 몸을 가누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밖에서는 복구가 한창일 것이다.김노인과 차우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지만,중요한것은 복구일 것이 틀림없다.노아역시 잠들어 있지만 몸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에,유희가 치료마법을 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밖에 없는 거구나.’
사실,지금은 상황상 유나와 이런것을 할때가 아니었다.물론 오너와 페어리의 접촉에 의해,페어리는 오너와 연결된 마나를 끌어당겨,자신을 쉴새없이 완전체로 만들게 되어 있지만,조금 덜 부숴진 건물에 이렇게 단 둘만 들어오게 될줄이야...준은 천천히 옷을 벗었다.
-유나양은 인이 맺혀 있습니다.샤이도 그랬지만,그 인을 페어리가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최초에 오너의 개입이 필요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인에 정신까지 빼앗겨 버릴지도 모른다구요.-
차우의 덧붙임이,망설이던 준을 이리로 이끌었다.누구에게 손가락질 당하거나 할일은 없다.오너에게 있어서 페어리의 손실된 마나를 채워주는 방법은 이거 하나뿐인 것이다.
‘그..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이네..’
전쟁탓도 있었고,마유미라는 페어리를 거둔 탓일수도 있었다.유나와의 이런시간은 참으로 오랜만이라 할수 있었다.
“으음...으음...”
유나는 몸을 뒤척이며 신음했다.분명 의식은있지만, 말을 할 기운조차 없는것이다.프로즌 레이디라는 칭호 답게 항상 차가웠던 유나의 뽀얀 살결은,뜨겁기 까지 했다.그녀의 한기가 모두 빙백의 인에 갇혀 버린 탓일 것이다.
‘나도 꽤 많은 마나가 손실된 상태인데 괜찮을까’
물론 이런 걱정을 아까도 안한것이 아니었다.하지만 1세대 오너라 자칭한 김노인은 그런 준의 마음을 알아챈듯 그에게 말을 해 주었었다.
-걱정말게.자네의 마나를 나눠주는게 아니라,인을 개방시켜 다시 묶여있던 마나들을 되찾게 해주는것 뿐이니까-
‘그런데...그 아저씨..아니 그 노인은 도대체...어디서 나타난 거지?’
사정설명은 다 들었다.자신도,그리고 그의 페어리인 세라와 리미,마유미도,모두 그 이야기에 충격을 받기도 했었지만,지금껏 보이지 않던 오너가 나타났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잡생각은 비우자.지금은 유나가 먼저다.’
준은 천천히,군데군데 찢어져 있는 유나의 옷을 벗겨내었다.전투탓에 약간 먼지가 묻기도 했지만,그런것을 찝찝해 할정도로 준은 철이 없지 않았다.유나를 잘 어르고 달랜 끝에,곧이어 유나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아름답다.여전히.’
그동안 너무나 잊고 살았던것 같았다.유나의 몸은 마치 설원처럼 하얗고 아름다웠다.세라의 경우에는 검을 휘두루는 탓에,약간 근육이 많이 섞여있는 느낌이지만,유나의 경우는 들어갈곳은 들어가고 나올곳은 나온,여성의 몸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런 몸이었다.
“으음...”
준은 살며시 유나의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다.단 그것 하나만으로도,핏기없던 유나의 얼굴은 점차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이상하게 준의 몸에도 땀이 흘러 나온다.그는 조심스레,유나의 몸위에 자신의 몸을 포개었다.
준의 손에,유나의 사과같은 가슴이 잡혀왔다.가냘픈 몸과 어울리는,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그런 이쁜 가슴이었다.그 밑에로 가늘게 뻗은 허리와 다리.그리고 페어리라는 존재를 여실히 증명하는,마치 이세상 사람의 것 같지 않은 너무나 이쁜 그녀의 은밀한 그곳.
“흑...흠...”
점차 끙끙 앓기만 했던 유나의 입술이 열려오기 시작한다.준의 입술이 몸에 닿았고,페어리와 오너가 교감할때 발생하는 특유의 기운에 유나의 몸은 조금씩 조금씩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유나...’
이 순간만큼은,준은 크룬에게 희생된 첫사랑 민아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라케인을 비롯한 오너들을 떠올리며 슬퍼하지 않았다.어찌보면 가장 슬프고 가여운 존재는,페어리라는 이름을 달고 자신의 오너를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세라와 유나,그리고 노아와 마유미,리미일 것이다.
“흑...”
유나가 조용히 흐느낀다.둘은 비로소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전쟁이 끝난후에,엉망이 되어버린 건물안에서 나누는 교감이지만,장소와 때는 어찌되었건 상관없었다.그녀는 준의 사랑스러운 페어리이자,항상 자신을 갈고 닦으며 용감하게 싸워서,늘상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으니까.
삐그덕,삐그덕.
하나 남아있는 건물이라 해도,충격으로 인해 가구는 온전치 않은 모양이었다.최고급 가구로 가득했던 윌리엄스의 저택이지만,심한 진동으로 인해 침대도 맛이 간 모양인지 계속해서 삐그덕 소리를 내었다.
“흥....흐윽...”
이윽고 유나의 팔이 준의 목을 감싸 안았고,더불어 그녀의 새하얀 다리가 준의 허리를 둘렀다.준은 움직이면서도 계속해서 유나의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다.지금그가 할수 있는것은 그것이 전부일 것이다.
“흑...아앙...”
준은 분명히 보았다.시간이 지나면서 스킨쉽의 열기가 가해질수록,유나의 몸은 더더욱 차가워 지는 것을.그리고 그녀의 어깨위에 맺힌 얼음문양에서 나오던 빛이 점차 유나의 몸으로 퍼지며 스며드는 것을.
“주인님...”
드디어 유나의 입술이 열리며 준을 불렀다.준은 그녀의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더이상 이 행위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유나의 회복이 주 목적일지도 모르지만,마음같아선 잘 싸워준 모두를 다 유나처럼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흑...흐응...”
준의 허리놀림이 더욱 거세졌다.유나는 하얀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준을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순식간에 온몸에 전해져 오는 유나의 한기.빙백의 인이 반짝 하며 마지막 빛무리를 내뿜는 그 순간,준역시 유나를 더욱 세게 꽉 끌어 안았다.
“하아...하아...”
유나도,준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둘은 단 한번도 자세를 바꾸지 않고 서로를 갈구한 것이다.준은 그녀의 몸위에 올라탄채,완전히 생기를 찾아가는 유나를 기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유나...”
그녀의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한기로 인해 수증기마져 내뿜는다.그리고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하얀 연기에 쌓인 하얀 알몸.마치 설원의 여신처럼 유나는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고마워요 주인님....”
“알았으니까 이제 가자니깐?”
“다신 안해요 이거!”
계속 툴툴거리는 유희와 대충대충 달래는 김노인.겉모습은 중년의 사내와 아름다운 아가씨의 모습이지만,왠지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같기도 했다.초희는 아예 포기했다는 듯 먼산만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가시는 건가요?”
준은 페어리들을 데리고,김노인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은 자연스레 김노인의 허리춤에 있는 피리모양의 악기에 눈이 가고 있었다.
“흠....뭐 그래야 하지 않겠나?전쟁은 끝이 났고 말이야 게다가....”
말을 하던 그가 어딘가를 가리켰고,동시에 차우와 준,그리고 그 둘의 페어리들도 일제히 김노인이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친구 꽤나 나를 경계하는것 같아서 말이지.”
차우는 살짝 이를 갈았다.물론 준도 마찬가지였다.무엇을 하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윌리엄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그는 다른것을 하는것처럼 보이지만,연신 그쪽을 주시하는 눈치였다.
“그냥 뒈져줬으면 편했을텐데.”
차우는 분하다는듯 중얼거렸다.어찌보면 사라케인이 죽은것은 윌리엄스의 계략일지도 몰랐다.반 윌리엄스 파인 사라케인은 자신에게 너무도 벅찬 파렐을 상대하다가 가진 마나를 모두 소진하고 그에게 신체를 빼앗겨 버렸으니까.
“저 친구..굉장히 야심이 있어 보이는군.”
“맞습니다.뭘 꾸미는지 모르는 녀석이니까요.”
준의 말에 김노인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윌리엄스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것들을 모아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윌리엄스는 페어리들을 시켜 부숴진 저택을 들추며 초기봉인된 카드들을 수습하고 있었다.자신의 카드가 아닌,다른 오너들의 카드를 수습하는 모습에 모두들 의아함 반,찝찝함 반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우우우웅....
갑자기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파성음에 좌중은 모두 김노인을 바라보았다.그리고는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특히,음파공을 다루는 준의 충격은 가장 심했다.어느틈인지 김노인이 악기를 불자마자,무질서하게 불던 바람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불어 닥치며,멀리 있는 윌리엄스와 준 일행사이에 부서진 벽돌들로 이루어진 담장을 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뭐...저놈이 저렇게 꺼림찍한 친구라면야 우리가 워프하는거 보여줘서 좋을거 없지 않겠어?”
모두 할말을 잃고 있었다.김노인은 피식 웃어주더니,유희를 향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나는 한국으로 갈거라네.내 고향이 거기니까.준 군은 나와함께 가면 될테고...차우군도 일단 같이 가겠나?아무래도 자네가 갖고 있는 스크롤로 영국에서 바로 중국까지 워프하기엔 불안정할수도 있을테니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하는게 안전하겠지.”
차우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유희의 손이 허공에서 교차를 했고,준은 워프가 시작될것이라는 느낌에 얼른 잠들어 있는 노아를 업었다.세라와 리미,그리고 유나와 마유미도 준쪽으로 와서 붙어섰다.
“워프!”
유희의 시동어가 울림과 동시에 서있는 그들의 밑으로 원형의 마법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마법을 다루는 세명의 법사인 샤이와 유나,그리고 마유미는 계열의 제한따윈 없어 보이는 유희의 마법에 그저 눈을 크게 뜰 뿐이었다.
부우우우우우...
전쟁탓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준은 더이상 워프를 할때의 울렁거림이 느껴지지 않았다.하얀 빛무리가 일행을 휘감는다.그리고 천천히 일그러지는 공간.
준은 보았다.자신이 사라지기 직전,김노인이 쳐놓은 벽돌의 담장이 부숴지는 것을.그리고 부숴지는 그 틈에서,자신을 바라보는 윌리엄스의 모습역시.
ㅡ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후 차우가 한장남은 스크롤을 이용해 단거리 워프를 해버리고 나서,등을 돌리며 어디론가 가려는 김노인을 준은 급하게 불러 세웠다.
“응?드릴 말씀이라니?어서 가서 자네 페어리들을 회복시켜줘야 하지 않겠나?”
“물론 그렇지만...”
준은 약간 망설였다.자신은 더더욱 강해져야만 한다.윌리엄스의 야망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전쟁때문에 어쩔수 없지만,무인도에 어쎄씬을 보내어 전멸시키려 했던 것이 바로 윌리엄스 아니던가.그 역시 전쟁으로 인한 재정비가 끝나면,필시 감추고 있던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저에게...음파공을 가르쳐주실수 없습니까?”
준의 발언에 유희와 초희는 물론,세라를 비롯한 준의 페어리들마져 흠칫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김노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준에게 되물었다.
“잘하던데 뭘 가르쳐 달라는 겐가?”
“저는 부족합니다.더욱 강해지지 않으면...제가 강하지 않으면 이 아이들을 지킬수 없어요.저는 전쟁으로 겨우 깨달았습니다.이 아이들이 저를 지켜야 하는것이 아니라,제가 이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요.”
“잘못된 생각이네.장기에서 아무리 차나 포가 살아있다고 한들,왕이 죽으면 게임은 끝나는 것이지.자네 페어리들을 더 간수하는게 나을게야.”
김노인은 피식 웃으며 뒤돌아서 버렸다.준은 다급한 마음에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혹시나.혹시나 가족이 있으신지요?”
김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없습니다.이 아이들 뿐입니다.그것도...이제서야 겨우 생긴..”
가면속에 있는 초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늘상 도도한 태도를 보였던 유희마져도 살며시 자신의 오너인 김노인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처음느껴보는,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그 기분에,마유미는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미안하지만...”
김노인의 말에 준은약간 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그가 거절할 것만 같아서였다.그런 준을 바라보던 김노인이 씨익 웃었다.
“난 수업료가 조금 비싸다네.”
“에에?”
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그런 준을 보는 세라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현금 2억은 준비해야 할거야.”
진지한 표정의 김노인의 말에,초희는 또다시 한숨을 푹쉬었고,유희는 ‘꼭 잘나가다가 저래...’라며 투덜거렸다.
그의 농담에 준은 쭈뼛쭈뼛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기...그렇게 큰 돈은 없는데요.”
김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진심을 털어놓은 준.그리고 그에게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그의 페어리들을 하나하나 바라본 김노인은,이내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괜찮아.카드도 된다네.물론 수수료가 조금 붙지만 말이야.”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초희의 한숨소리. 아무도 없는 어느 이름모를 야산에서는,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마치 그들의 앞에 새롭게 나타날 어느 운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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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이 조금 길어져서 죄송하구요...내용상 다섯개를 넘겨 14부까지 잘랐습니다.
즐감하시고 고생하시는 작가분 위해 좋은 리플 많이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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