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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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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32 회 작성일 24-02-24 11: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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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마스터."

마스터의 옆에 나란히 공중에 떠있는 마족들이 고개를 숙였다.청순한 얼굴을 한 소녀,민아의 탈을 쓴 마스터의
동공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명령따위가 뭐가 필요하다는 거냐.애초에 이곳은 3일안에 점령되어야 할 곳이었다.한심한 것들."

"면목없습니다."

마스터의 손짓에 의해,붉은 빛무리의 화살들이 오너들의 진지를 무차별 폭격하기 시작했고,연이어 굉음과 함께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 올랐다.

"그 책임은 나중에 묻겠다.우선 이것들을 몰살시켜야만 다른 잔챙이들을 휩쓸기에 편하니까."

그의 말에 남은 인원들이 고개를 숙였고,마스터의 붉은 눈망울이 거대한 윌리엄스의 저택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어차피...파렐이 저번의 일을 잘 만회해 주었군."

마스터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그가 여태까지 오너들이 출동하면 자리를 감춘것은 결코 그들의 힘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단지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더욱 더 많은 마나를 섭취해야 했기에 몸을 사렸을 뿐이었다.

"하지만...숫적으로 저희가 열세입니다."

그가 여기에 찾아올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사라케인의 몸을 빌려 잠입한 파렐의 덕분이었다.오너진영의 우두머
리가 마나를 교묘히 숨기고 있던 탓에,마스터 역시 그들을 찾아내는데 꽤나 애를 먹어야만 했다.

"느껴지는가?가투."

가투라 불린 사내는 마스터의 말에 고개를 조아렸다.마족에게 있어서 상하 위계질서는 곧 법률과도 같은 것이었
기에,그는 최대한 공손한 모습이었다.마스터는 흡족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전의 기습으로 적의 숫자를 조금 줄일수 있었다.게다가..."

마스터는 저쪽에서 느껴지는 마기에 비릿하게 웃었다.바로 사라케인의 몸을 빌린 파렐의 마나였다.

"같은편에게 영문도 모르고 죽어나가는 녀석들까지 포함하면,우리도 나쁜 경합이 아니거든."








"주인님!"

곳곳에서 알람 마법이 요란하게 울려퍼졌고,세라는 급히 검을 뽑아들고 준을 찾았다.덕분에 노곤해진 몸을 따
뜻한 물로 씻고있던 준은 후다닥 뛰쳐나올수 밖에 없었다.

"뭐야?"

준은 홀딱 벗은 모습이었긴 했지만,세라는 침착하게 굉음이 울리는 건물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적인거 같습니다."

"뭐라고?여긴 윌리엄스가 마법으로 보호한다고 하지 않았어?"

"이유까지는 저도 모릅니다.확실한 것은 크룬들이 급습을 하고 있다는 것과,계속해서 마법이 날아오고 있다는 거
밖에는..."

세라의 다급해 보이는 표정을 본 준은 이를 살짝 악물었다.망설일 시간따윈 없었다.어느 경로로 크룬들이 급
습을 했을까 하는 것역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그는 황급히 옷을 챙겨 입었고,세라는 뮤즈를 챙겨들고 준이
옷을 입을때까지 혹시나 건물이 무너져 내릴것에 대비하여 엄호를 했다.

"주인님."

"응?"

"가장 큰 적은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옷을 입던 준의 손놀림이 살짝 느려졌다.약간은 애매모호하게 말한 세라의 말의 의미를 준은 잘 알고 있었다.
준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것은,적이 민아의 몸을 빌렸다는 사실이었다.그런 적을 준이 맘편히 없엘수 있을리가
없었다.세라의 말의 의미는 바로 그런것이었다.

"하지만..."

"어쩔수 없습니다.이미 그 댓가는 죄책감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치를것이지만,망설이면 다른 무고한 사람들이 더
죽어나갈 것입니다.알고 계시지요?예전에 여기서 모였던 오너들의 절반이상은 지금 그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세라의 말에 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여차하면 자신의 뮤즈로 민아를 처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물론,자신보다
더 강한 오너인 차우나 윌리엄스가 먼저 손을 쓸수도 있겠지만,이건 대전표를 짜고 하는 격투대회가 아닌,목숨
이 오가는 전장이자 실전이었다.

".....알았어 세라.무슨말인지."

"그럼..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제가 엄호하겠습니다."

"아니.넌 리미를 엄호해줘.부상상태니까."

"그녀는 페어리이고,자신을 보호할 힘이 있습니다.주인님이 다치는것보다는..."

"세라.너도 잘 알고 있잖아.나 역시 강하진 않아.하지만."

세라의 침착한 눈망울이 떨린다.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역시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다치는게 싫어."

콰콰쾅!

또한번 굉음이 울렸고,몇동으로 이뤄진 윌리엄스의 저택중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장내는 순식
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아무리 강한 오너들이라지만,생각지도 못한 급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알겠습니다.제가 리미를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부탁할게."

준은 앞에 보이는 복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그가 내달리는 양옆으로,마나의 진동을 이기지 못한 유리창들이
마치 폭발하듯이 깨져나갔다.준은 손끝에 있는 뮤즈를 매만지며 날아가듯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제발....오늘이 마지막이기를."

준은 지긋지긋했다.물론 페어리가 모두 무사한것은 다행이지만,작은 부상까지 피하기는 힘든 것이었다.싸움이 길
어질수록 그들은 조금씩 부상을 입었고,그런 그들을 보는것도 너무나 괴로운 것이었다.아니, 무엇보다도 지금의
이 싸움이 준은 너무나 지긋지긋 했다.

"노아!유나!"

어차피 리미는 세라가 데리러 갔기에,준은 노아와 유나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들을 찾기 시작했다.그리고,준은
무언가 생각난 듯 심호흡을 했다.이제....J가 아닌 자신이 페어리가 된 그녀.

"마유미."

그와 동시에,건물이 크게 뒤흔들리기 시작했고,그와 동시에 몇몇의 오너와 격돌이 있는지,두개의 마나가 부딪히
는 느낌이 들어왔다.

"주인님."

그의 앞으로 노아를 데리고나온 마유미가 보였다.그녀는 어느정도 각오가 된듯,비장한 표정이었다.

"유나는?"

"아까이후로 본적이 없어서..."

"뭐?"

준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멈칫했다.차가운 느낌의 백색마나....그것이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나 이녀석..."

틀림없었다.유나는 그들중 가장먼저 밖으로 뛰어나간 것이었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준은 재빨리 마유미와 노
아를 이끌고 정원밖으로 내달렸다.

콰아앙!

밖은 그야말로 처참한 전장이었다.몇몇의 오너들,그리고 그의 페어리들이 크룬과 대치한 상황이 멀리서 달려가는
준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끄으으으...."

준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준 뿐만이 아니었다.준 뒤를 따르던 마유미,그리고 연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뛰어오던 노아마져도 준의 뒤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이게 무슨..."

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자신의 앞에서 한명의 오너가 부들부들 떨며 쓰러지고 있었다.그의 몸통에는 은빛
레이피어 한자루가 관통되어 있었다.그리고,조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내는 사라케인의 모습이 보인다.

"사...사라씨..."

준은 믿을수 없는 상황에 그저 그녀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아름다운 금발머리,그리고 늘 푸른 눈동자는 무언가
알수 없는 괴기스러운 분위기마저 내뿜고 있었다.

"이런이런...들켜 버렸군요."

준은 그제서야 알수 있었다.사라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그리고 사라케인의 몸을 빌린 파렐의 시선은
준이 아닌 노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또 만났군요.정령술사양."

이번엔 노아의 눈망울이 동그래 졌다.아무리 천진난만한 그녀지만,그 목소리를 모를리 없었다.준은 속으로 욕지
꺼리를 내뱉으며 뮤즈를 뽑아들었다.

"니놈들은 도대체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 몸을 유린할 셈인거냐....엉???"

준의 분노섞인 외침에도 사라케인...아니,파렐은 그저 싱긋웃는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마유미는 파렐의
주변에 배열되는 마나를 느끼며 황급히 수인을 맺었다.

"흑마법의 마나식..."

이중에서는 마나의 연산식을 느낄수 있는것은 마유미 뿐이었기에,그녀는 파렐이 얼마나 큰 마법을 쏘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마유미는 황급히 수인을 끝내며 시동어를 외쳤다.

"파이어 프로텍션!"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준과 노아,그리고 마유미를 감싸안는 것처럼 폭넓은 범위의 화염의 벽이 둘러지기 시작했
고,거의 같은 순간,파렐의 주변에서 뿜어져간 흑마법의 파동이 마유미의 방어 마법위로 직격했다.

"오호..."

파렐은 비릿하게 웃었다.그는 이 세계에 있는 페어리들,특히 마법을 다루는 페어리들은 빙계,화염계,뇌전계 등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마유미 역시 익숙한 화염계의 방어진을 펼친 것이었지만,파렐은
나름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짧은 시간에 내 공격을 미리 읽었다라..."

파렐은 살짝 입맛을 다셨다.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상대가 아닐수 없었다.

"주인님."

준은 뒤에서 들려오는 신비로운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노아..."

그녀의 표정은 변해 있었다.늘상 천진난만하고 순수해 보이는,그런 노아의 표정이 아니었다.냉정한 눈으로 화염
의 벽 너머의 파렐을 응시하는 그녀.정령의 여왕이었다.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마유미와 함께 유나나 다른 오너들을 도우시길."

"뭐?하지만...협공으로 빨리 끝내는게 나아."

"상대는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통해 증식하는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협공을 해봐야,다른 오너들이나
유나를 도울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것 뿐입니다.게다가,전 한번 겨뤄봐서 잘 알고 있어요."

준은 노아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정령의 여왕이 된 노아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지,
그녀의 오너인 준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마유미.날 따라와."

"알겠습니다."

잠시후 마유미의 화염실드가 해제되고,준은 그곳에 노아를 세워둔채로 유나의 마나가 느껴지는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파렐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이런이런...도망치시는 겁니까?"

파렐의 손이 위로 올려지고,이윽고 몇줄기의 묵빛 빛줄기가 준과 마유미를 향해 뻗어나갔다.마치 유나가 즐겨쓰
는 빙백의 창처럼,그것은 준과 마유미의 목줄기를 정확히 노리고 뻗어가고 있었다.

콰지지직!

순간 파렐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자신이 쏘아낸 빛줄기가 갑자기 궤도를 바꿔 옆에 있는 애꿎은 나무만
갈기갈기 찢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니 상대는 나다."

파렐은 씨익 웃었다.블루블랙의 머리칼을 날리고 있는 한명의 여인.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사신처
럼 냉정해 보이는 눈이었다.

"재미있군요.바람의 정령으로 궤도를 돌린 모양이네요.뭐...괜찮겠죠.저 분들도 꽤나 없에주고 싶은 분들이지만,
당신도 꽤나 강한데다가 저번에 진 빚도 있으니."

"어떻게 다시 살아났지?"

노아는 냉정한 눈으로 파렐에게 물었다.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였지만,파렐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
기 까지 했다.

"글쎄요.아직은 제가 명이 긴 모양이지요.그때와는 달리 오늘은 저에게 말을 걸어 주시는군요?"

노아의 주변으로 조금씩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더불어 그녀의 주변으로는 조금씩 바람이 불어오며 으슥한
공명음을 내고 있었다.그 모습을 여유있게 지켜보는 파렐을 보며,노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때와는 달라.살려보내지 않겠다."









준은 쉴새없이 광채를 뿌리는 격전지를 향해 달려갔다.

"민아..."

준은 눈물이 울컥 나올뻔한것을 겨우 참아내었다.첫사랑의 여인.그녀는 이미 민아가 아니었다.크룬의 마스터에
게 몸을 빼았긴...비운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구해내고 말겠어."

하지만 준역시,그녀를 구해낼 방법따윈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설사 마스터가 민아의 몸을 버리고 다른곳으
로 옮겨간다 한들,이미 심령과 육체가 흑마법에 물든 상태이기 때문에 그 생명력은 다시 찾을수 없었다.하지만
준은 그것을 잘 알고도 끊임없이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올라오는것을 느꼈다.

"마유미."

"네?"

"저쪽에서 유나의 마나가 느껴져.저쪽으로 가서 유나를 도와줄래?"

"그럼 주인님은..."

"곧있으면 세라와 리미가 올거야.아니,어쩌면 둘도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지."

"혼자선 위험합니다.."

마유미의 큰 눈망울이 근심과 걱정으로 물들었다.준의 손에서 은빛 빛무리가 일며,뮤즈가 펼쳐졌다.

"마유미.노아도,유나도 지금 혼자 싸우고 있어.우린 한 팀이지만,지금은 팀업을 하기엔 무리가 있는거...잘
알고 있지?"

마유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준은 여전히 번쩍거리는 전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서가서 유나의 뒤를 도와줘.너희 둘이 합치면...한결 수월할거야."

마유미는 굳게 결심한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너도...이제 내 페어리잖아."

그녀는 뛸 듯이 기쁜것을 참아야만 했다.준은 조용히 한마디만을 남기고는 쏜살같이 전장을 향해 쏘아져 나아
갔다.

"민아에...사라씨까지....개자식들 진짜 용서하지 않겠어.."









콰지지직!

유나가 소환해낸 빙백의 창이 너무나 허무하게 부서져 버렸다.흑마법이 직격했을때,가장 먼저 뛰어나온 유나였
지만 결코 일행들과 같이 올걸 하는 후회는 하지 않았다.그녀는 양손에 방어마법이 깃든 백색 빛무리를 띄우고
는 연신 상대의 공격을 쳐내었다.

"마법사인가..."

마스터의 보좌관격중 한명인 람스는 자신을 노려보는 유나를 감정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너희 페어리들은....정말 귀찮은 존재로군."

람스는 세라에게 목숨을 잃은 다스의 친형이었다.그리고 그런 람스의 밑으로는 오너로 추정되는 몇구의 시신이
뒹굴고 있었다.유나가 바로 뛰어나갔지만,너무나 늦은 탓이었다.

"상황이 안좋잖아..."

오너가 죽었다면,페어리역시 초기봉인 상태로 돌아가버렸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은 다시 프로센으로 귀환할때 까
지 절대로 빛을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때문에 으스스한 기운을 풍기기까지 하는 람스를 상대로,유나 혼자서는
약간 힘에 부칠수도 있었다.

구우우우우..

람스의 팔 위로 희끄무레한 연기가 맺혀가기 시작했다.그것이 무엇인지,마법사 특유의 지식으로 잘 알고 있는
유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사라 케인의 페어리인 피어스와 마찬가지로,그는 원혼들을 다루는 사신이었다.

"치잇!"

유나는 재빨리 몸을 틀며 이동했고,유나가 서있던 자리는 마치 염산을 뿌린것처럼 녹아들었다.람스의 손에 맺
힌 백색 연기는 때로는 미사일같이 공격적이기도 했고,때로는 지금처럼 녹이는 공격을 하기도 했다.

"프로즌 포그!"

유나의 주변으로 주변의 습기가 빠르게 뭉쳐가기 시작했고,그것은 곧 좁쌀만한 크기의 알갱이가 되어 람스를 애
워쌓기 시작했다.한모금 들여마시는 순간,폐와 내장이 전부 얼어붙는 무서운 마법이었다.

"뭐..뭐 저런게..."

다음공격을 준비하려던 유나는 황당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람스의 손짓과 동시에 밑에 있던 오너의 시신 두 구가
벌떡 일어나며 람스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덕분에 유나의 마법은 애꿎은 시신만 얼려버릴 뿐이었다.

"너는..톱 메이지(Top mage)는 아닌가보군."

람스의 점잖기 까지한 비웃음에 유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그녀가 입고있는 원피스자락이 은빛머리칼과 함께
바람에 흩날렸다.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람스의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빙계의 법사라....가당치도 않군."

유나가 다루는 것은 순수한 마나를 이용하는 백마법의 정수라 할 수있었고,반대로 람스는 흑마법중에서도 사자
(死者)의 기운을 다루는 술법사였다.정말 극도로 대립된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결이었다. 그리고 람스는
마스터로부터 마법 계열의 페어리들을 도륙하라는 명을 받은 상태였다.

유나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왔다.톱 메이지란 바로 프로센에서 6써클 이상을 마스터한 마법사에게 붙는 훈장과도
같은 칭호였고,람스의 말에는 톱 메이지도 아닌자를 상대하자니 지루하다는 뉘앙스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넘어가면 안돼...나에게 더 큰 써클의 마법을 쓰게 유도하는거야.."

유나는 냉정히 생각했다.세라나 준이 엄호를 해주면 모를까,1대1상황에서 고차원의 마법을 쓰는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그만큼의 발동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람스는 교묘하게 심리전으로 유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
었다.

"상대는 망자의 술법을 이용하는 마족이다.작은기술로 주위를 끌어서 헛점을 노리는수밖에 없어."

생각을 정리한 유나는 신속하게 뒤로 이동하며 수인을 맺었다.람스역시 놓치지 않고 뭐라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
우기 시작했다.

"프로즌 스피어!"

"gokito gastga."

유나가 만들어낸 백색 빛깔의 창이 람스에게 날아가려는 순간,람스의 손에서도 큰 칼날 모양의 기운이 폭사되
기 시작했고,그것들은 곧 허공에서 부딪히면 엄청난 굉음을 토해냈다.

콰콰콰콰...

유나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두 마법이 부딪혀 앞이 안보이는 사이에,분명 람스가 무슨 공작을 펼칠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유나의 생각은 적중했다.곧 그녀가 서있던 자리가 연기를 내면서 녹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함부로 공격해서는 안돼.어떤 마법이 있을지 모른다."

유나는 흑마법이 꽤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까닥 잘못하면 기상천외한 마법으로 되
갚아 주는것이 흑마법이다.애초에 타격을 주는 마법이라면 실드로 방어하면 그만이지만,저주 마법같은것에 걸
려버리면 일이 커진다.

"어차피 마법의 승부라면.."

유나의 손이 허공에서 세번정도 교차했지만,그것은 보통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였다.마법사가
가진 발동시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위해,그녀가 무인도에서부터 늘 수련한 결과였다.

"프로즌 월!"

유나의 주변으로 긴 얼음의 방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본디 물리적 공격의 방어용도로 사용되는 마법이었지만,
빙벽이 생겨나는 위치에 대상이 있으면 같이 얼어붙어 버리기 때문에 공격적인 용도로도 쓰이는 마법이었다.

"뭐..뭐야!"

유나는 당황하고 말았다.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빙벽을 뚫고 자신에게 뛰어 들어오는 람스의 모습이 보였기 때
문이었다.원거리 공격승부라고만 생각했던 유나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꺄악!"

재빨리 양손을 교차한 유나였지만,람스의 공격을 받아낸 유나는 몇미터나 뒤로 날아가 버렸다.그리고 잔인하게
도,람스는 날아가고 있는 유나를 향해 마법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kafze erigo...."

"플레임 스피어!"

람스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멎어야만 했다.길게 파고 들어오는 화염의 창. 아까 유나의 프로즌 스피어가 모
든것을 얼리는 창이라면,이번것은 모든것을 불살라 버릴것만 같은 창이었다.

콰쾅!

람스는 재빨리 뒤로 빠지며 공격을 피했다.너무나 신속하게 몸을 움직인 탓에,발목뼈가 돌아간거 같은 느낌이
들어왔다.

"역시...인간의 몸은 허접하기 그지 없군."

람스는 그런것은 별로 신경쓸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앞을 바라보았다.붉은 머리칼.그리고 고운 양손에
맺혀진 두개의 화염구. 방금전의 유나와 같은 미인이었지만,마치 흑과 백을 보는것과 같이 심하게 대조되는 한
여인이 서있었다.






-
슈웅!

계속해서 달려나가던 준은 무언가 자신의 귀를 찢는듯한 파공음에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고,그와 동시에 그가
서있던 자리는 움푹 패여 버렸다.

"여기서부터 앞으론 못나간다."

고개를 들자,준의 앞에는 한명의 남자가 허공에 뜬채로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물론 인간의 몸을 빌린 크룬이겠
지만,어서 민아에게 가려던 준은 방해물이 나타났다는 생각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꽤나 약한 놈을 배정받았군."

그는 비웃듯이 준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뮤즈를 움켜쥐고 그를 노려보았다.평범
한 동양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마기는 숨이 막힐정도였다.

"체술가...인가."

준은 앞에 있는 마족이 긴 창을 들고 있는것을 보고는 그렇게 확신을 내렸다.뛰어난 체술가도 아니고,그렇다고
마법을 쓰는 계열도 아닌 준에게는 체술쪽으로 극히 발달된 타입은 조금 까다롭지 않을수 없었다.그가 아무리
세라에게 특훈을 받았다 해도, 단시간에 오를수 있는 경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부우우우우...

준의 주변으로 마나의 파공음이 울리기 시작했다.뮤즈가 공명하면서 내는 특유의 파성음이었지만,그것을 바라본
마족은 피식 웃어버렸다.

"허접하군 허접해....마스터가 원망스럽군.크룬의 휴가일족에게 저런 애송이를 붙여 주시다니.."

휴가(Fuga)라는 일족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그는 자신에게 배정된 인물을 보며 실망을 금치 못했다.그
는 계속해서 기사와 겨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특히 크룬일족중에서도 나름 강자로 꼽히던 다스를 베었다는
그 기사를 휴가는 너무나 보고싶었기도 했다.

"뭐...신속히 처리하고 가면 되겠지."

준은 그의 비웃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속하게 신형을 뒤로 빼었다.접근전 보다는 원거리전으로 가자는 판단에
서였다.

부우웅..

뮤즈의 연주가 시작되며,지면은 푹푹 페이기 시작했다.윌리엄스 고택의 건물외벽도 마치 레이져가 스친것처럼
푹푹 페이기 시작했지만,휴가는 여유롭게 창을 까닥 움직여 보였다.

투웅!

둔탁한 소리에 뮤즈를 불던 준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단지 창을 휘둘렀을 뿐인데,음성을 이용한 공격이 모두 튕
겨져 나가버린 것이었다.

"쳇!"

준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다시한번 뮤즈를 운용했다. 준의 음공은 음악 그 자체를 이용하기 보다는,대기의 흐름
을 조절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따라서 공기를 압축시키면 지면을 솟아오르게 하는 변칙공격도 가능했던 것이
었다. 지금의 공격역시,대기의 흐름을 맞물리게 해서 충격파를 발생시키는 방법이었다.

콰직!

허나 이번에 휴가는 몸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피해내어 버렸다.준은 그제서야,그가 여지껏 겨뤄
왔던 상대중에 가장 껄끄러운 상대라는 것을 인지할수 있었다.

한참 공격을 퍼붓던 준은 눈에띄게 당황한 표정으로 입에대고 있던 뮤즈로 방어자세를 취했다.휴가의 몸이 엄청
난 스피드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채앵!

준은 가까스로 휴가의 창을 막아내었지만,팔이 후들후들 떨리는것을 느낄수 있었다.자신은 두손으로 뮤즈를 잡
고 있었고,반대로 휴가는 한손으로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것을 본 준은 등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너희들은 약하다."

창을 막아내느라,점점 정원 바닥으로 발이 빠지고 있던 준의 귓가에 휴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차르릉.

휴가의 창이 뮤즈를 따라 스르르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준의 허벅지쪽을 노리고 들어왔다. 이번역시
가까스로 뮤즈를 틀어 막아내긴 했지만,준은 점점 힘이 빠지는것이 느껴졌다.그리고 휴가의 창끝이 점점 준의
허벅지에 닿고 있었다.실로 엄청난 힘이었다.

"동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무언가를 파괴하고자 하는...그런 동기."

"큭!"

준은 외마디 비명을 지른채 십여미터나 날아가 나무기둥에 쳐박혀 버렸다.휴가가 무방비 상태가 된 준의 복부를
세게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넌 재미없는 녀석이니,너 말고 다른 녀석들에게 조금 더 재밌게 동기부여를 해줘야 겠군."

휴가의 창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하며,주변으로 거무스름한 마나의 덩어리가 뭉쳐지기 시작했다.그것은
창이 만들어 내는 원을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나가며 이글거렸다.검은 빛깔이기는 했지만,그것은 마치 불 같기도
했다.

콰콰콰콰!

이윽고,휴가의 창에 맺혀있던 기운들은 일제히 준을 향해 날아갔다.준에게 날아가는 그 동안에도,그것에 닿은
땅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푹푹 패여가기 시작했다.

콰앙!

휴가는 흡족하게 웃었다.이미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다.설사 죽지 않았더라도 최소 중상
일 테니,더이상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그리고 곧 다스를 베었다는 세라라는 전사를 찾아갈 요량이었
다.

스스스...

바로 뒤를 돌아서 버렸던 휴가는 뭔가 사늘한 기운에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스럽게 차가운 한기.그리고 날
씨와는 전혀 맞지 않는, 대기에 휘날리는 흰색 가루들.

"뭣이?"

휴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방금전 준이 쳐박혔던 나무등걸.그리고 그 이후 자신이 행한 기술에 준과
함께 박살이 났을줄 알았던 휴가는 순간 환상을 보는 착각에 빠지기 까지 했다.

나무를 중심으로,마치 북극의 이글루처럼 거대한 얼음의 장벽이 둥그렇게 펼쳐져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곧 자잘
한 균열과 함께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

백색 눈가루가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휴가는 이윽고 비릿하게 웃었다.눈가루 사이
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준을 보며 휴가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이거...재미없는 놈이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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