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청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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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내 방까지 데려다 줘.
3월의 초저녁은 해가 일찍 진다. 그 때문인지 막창집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람아! 여기다, 여기!”
입구에서 민기네를 찾으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아람을 먼저 발견한 형수 선배가 손을 흔든다.
“야, 너 왜 아까 나한테 욕하고 그러냐?”
아람이 형수 선배와 효령이 사이의 빈 의자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민기가 다짜고짜 묻는다.
“그럴 일이 있었어. 아, 선배 안녕하세요.”
아람은 귀찮다는 듯 대충 말하곤 오른편의 형수에게 인사했다. 형수는 담배 연기를 천정으로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난 안보이니?”
효령이가 아람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어, 어... 그래... 안녕.”
아람은 효령의 얼굴을 보자 어제 개강파티에서의 일이 생각나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인사가 그래? 자자, 일단 한잔 받아.”
효령이 싱긋 웃으며 아람의 손에 소주잔을 쥐어주었다. 얼떨결에 잔을 받은 아람은 효령이 주는 술을 받았다.
“자, 아람이도 왔고 건배 한번 하자.”
형수 선배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곤 소주잔을 들었다. 막창을 뒤적이던 민기도 젓가락을 놓고 잔을 들었다.
“건배!”
네 사람의 술잔이 막창 위에서 부딪혔다.
*
“국어는 말이야... 세종대왕님이 만들었거덩...... 근데! 요즘은 말이야! ......”
거나하게 술에 취한 형수가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말을 계속 이어 간다. 한잔 한잔 홀짝 홀짝 마신 네 사람의 테이블 위엔 어느새 소주가 일곱 병이나 된다. 술에 취한 형수는 아까부터 국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술자리를 재미없게 만든다. 아람이 몇 차례 화제를 바꾸려고 했지만 형수 선배는 막무가내다.
“외계어가 뭐 어때서요! 그것도 일종의 은어잖아요!”
그런 형수를 민기는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이젠 같이 토론까지 벌이고 있었다. 아람은 술자리가 재미없어졌다는 생각에 음료수만 홀짝였다.
“야, 이 자리, 재미없지 않냐?”
아람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효령이 아람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아람은 귓바람에 다시 어제의 일이 생각나 몸이 움찔거리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나갈까?”
“뭐? 안 돼. 어떻게 그러냐.”
효령의 말에 아람이 깜짝 놀라 대답한다.
“아이참. 어차피 두 사람 다 취해서 우리가 뭐라고 하면서 빠져나가는지도 모를걸. 야, 나가자.”
효령은 아람의 대답도 듣지 않고 옆자리에 놓아둔 트렌치코트를 들고는 아람의 팔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람은 효령이 이끄는 대로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선배~ 저랑 아람이는 내일 발표 수업이 있어서요, 먼저 일어날게요.”
“어, 어, 니들 어디가!”
형수가 술에 취해 멍한 눈으로, 일어선 두 사람을 바라보며 허공에 팔을 휘휘 저었다.
“내일 발표 수업이에요. 아직 준비가 덜 끝났거든요. 오늘 술 잘 마셨어요. 민기야, 내일 봐.”
효령은 눈웃음을 살살치며 아람의 팔을 잡고는 밖으로 나섰다.
“야! 야! 효령아~! 효령아!”
형수의 외침도 무시하고 두 사람은 막창 집 밖으로 나왔다.
“아! 저 선배 짱나!”
효령이 트렌치코트를 걸치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외쳤다.
“왜? 술도 사주고 좋은 사람이잖아.”
아람이 의아스러운 눈으로 효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넌 술만 사주면 다 좋은 사람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넌 모든 사람을 너무 긍정해서 탈이야!”
효령이 검지로 아람의 가슴을 탁탁 찌르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야, 그나저나 넌 나 본지 2주 밖에 안됐으면서 나에 대해 엄청 잘 안다는 말투다.”
“아이! 몰라, 몰라! 어째든 저 선배는 짱나!”
“왜, 왜 그러는데?”
아람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자 효령은 예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다 듣게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새끼 맨날 내 다리 훔쳐본단 말이야! 나만 보면... 몸매가 좋다는 둥, 다리가 잘 빠졌다는 둥!”
지나가던 사람들이 효령의 외침에 그녀와 아람을 쳐다봤다. 아람은 당황해서 허둥댔지만 효령은 주변 사람이나 아람의 곤란은 상관없다는 듯 계속 큰 소리로 외쳐댔다.
“오늘도 너 오기 전에 내 옆에 앉아서 지 발로 내 다리 막 비비고 그랬단 말이야! 그래도 넌 저 새끼가 사람 좋단 말이 나오니! 동기는 이렇게 곤란한데!”
“아니... 그... 나는 그... 사정을 몰랐으니까... 일단 효령아, 조금만 진정하고, 목소리를 낮추고...”
아람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효령을 타일렀다. 그러고 보니 효령은 오늘도 자신의 매끈한 다리가 잘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상의는 프릴이 달린 분홍색 셔츠에 아래엔 허벅지를 반쯤 드러낸 흰색 짧은 주름 치마였다. 가슴 주변에 특히 강조된 프릴은 안 그래도 커 보이는 효령의 가슴을 더욱 커 보이게 했다. 치마 아래로 드러난 효령의 다리는 형수가 예쁘다고 칭찬할 만 했다. 높은 힐 위의 발목은 가느다란 게 어떻게 효령의 그 큰 키를 지탱하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종아리도 너무 굵지도 얇지도 않은 적당히 살이 붙은 것이 보기 좋았다. 특히나 반쯤 드러난 허벅지는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침을 꿀꺽 삼키게 했다. 거기다 지금은 하얀색 하프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어서 뒤에서 보면 치마를 안 입은 것처럼 보여 더욱 야해보였다.
아람은 그런 효령의 차림에 어제 그의 가슴에 부벼지던 효령의 가슴 감촉과 아까 본 미경 선배의 자태가 생각나 다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 너 왜 갑자기 얼굴이 붉어져?”
아람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안 효령이 물었다.
“몰라. 홍역인가 보지. 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집에 갈 거야?”
“가야지. 재수 없어서......”
미경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려, 그럼 조심해서 가라. 나도 내 방에 갈란다.”
아람은 효령에게 손을 들어 보이곤 몸을 돌렸다. 아람은 방에 가서 자위나 할 심산이었다. 최 교수와 미경의 그 행위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민기의 전화만 아니었다면 삽입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애초에 최 교수 그 인간이 콘돔만 좀 잘 끼웠더라면!
“야! 어디가!”
돌아서서 가려는 아람의 뒷덜미를 효령이 잡아챘다.
“왜, 아 왜?”
아람이 돌아섰다.
“넌 어떻게 된 애가 매너가 없냐.”
“뭐가?”
“나 방까지 데려다 줘.”
“뭐? 내 방에?!”
아람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람의 말에 효령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씨! 뭐 잘못 먹었냐! 내 방 말이야, 내! 방! 날도 어두워 졌는데 혼자 가라고? 넌 어떻게 된 애가 매너가 없냐.”
“니 방?”
“그래! 내 방!”
효령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날도 꽤 어두워 져 있었고 효령의 이런 옷차림이며 몸매라면 그녀가 방까지 가다가 무슨 일을 당해도 당연할 것 같았다. 아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지. 앞장 서. 가자.”
“정말 미덥지 못한 경호원이다.”
효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길을 따라 원룸촌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람은 그런 미경의 옆에 서서 걸었다. 힐을 신은 미경은 아람과 거의 같은 키였다.
“넌 뭘 먹어서 키가 이렇게 크냐.”
아람이 효령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투덜거렸다. 그런 아람이 어이없다는 듯이 효령도 아람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이구! 그러는 넌 뭘 먹어서...... 남자가 키가 이게 뭐냐!”
“아 뭐! 177이 어때서!”
“180도 안 되는 키가 남자냐?”
“야, 그럼 대한민국 성인 남성 대다수는 다 성 전환이라도 하리?”
아람과 효령은 서로 사이좋게 토닥대며 효령의 방으로 향했다.
*
토닥거리며 걷던 두 사람은 어느새 효령의 방 앞에 왔다. 아람의 방에서도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겨우 3분 정도 밖엔 걸리지 않는 거리다.
“들어가라. 난 갈란다.”
“야, 여기까지 왔는데 커피나 한잔 하고 가.”
“됐어. 나 방에 빨리 들어가야 돼.”
아람은 연구실에서의 모습을 잊기 전에 빨리 방으로 돌아갈 심산으로 대충 대답했다.
“아, 아까부터 진짜! 야, 들어와!”
효령은 그런 아람의 태도가 귀찮다는 듯 아람의 손을 잡고 원룸 위로 향하는 계단으로 잡아끌었다.
“야, 야! 나 방에 가야 된다니까.”
아람이 효령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효령은 손에 힘을 더욱 꽉 주며 아람의 팔을 놓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해?”
“글쎄 그런 게 있다니까!”
“무슨 일인데! 새로 받아둔 야동이라도 있어?”
“아니... 그게... 그런 건 아니고...”
효령의 말에 아람은 뜨끔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럼 따라와. 커피 한잔인데 뭘 그렇게 비싸게 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