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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체벌의 추억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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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29 회 작성일 24-02-23 07: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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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내가 아는 여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그 여자는 한국에서 체육과를 나온 운동선수였으며, 한국에서 체육과 후배들과 바람을

피우다 남편에게 걸려 별거상태에서 호주로 온 유학생엄마이다. 이 여자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글을 쓴다.

 

내 이름은 민지이다. 나는 중학교때부터 농구를 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들어간 실업팀이

I.M.F.때 해체가 되고 다시 대학교 체육교육과에 들어갔다.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후 일선

학교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다, 과 후배들과 섹스를 나누다 남편에게 들켜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이혼을 하지 않은 것은 유명 금융기관의 중견간부인 남편이 원해서였고, 당분간

떨어져 사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하나뿐인 딸을 데리고 호주로 건너 왔다.

 

이 이야기는 내가 중학교때부터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 키가 160cm가

넘었다. 평소에 운동을 좋아한 것도 큰 이유이지만, 키 때문에 운동부에 들것을 권유받아

농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키가 172cm까지 컸지만, 농구 선수로는 그리 큰 키가 아니라

특별히 주목을 받진 못했다.)

 

운동을 해 본 사람들은 알지만, 운동부에서의 체벌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체벌로

인하여 나는 내 몸속에 숨어 있는 나의 다른 기질을 알게 되었다. 남편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내 몸속에 숨어 있는 그 기질은 나를 섹스이외의 다른 것에 몸살을 앓게 했다.

 

내가 살았던 도시에는 아주 앙숙과도 같았던 라이벌 팀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사립학교 재단에 있어서 중학교 1학년때부터 쌓아 온 라이벌 의식은

고등학교때까지 우리를 괴롭혔고, 이로 인해 양쪽 학교 선수 모두 많은 괴로움을 당했다.

전국대회에 나가 다른 팀에는 져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 라이벌팀인 경화여고에게 지면

그 날은 감독, 코치, 선배로 이어지는 얼차려로 밤늦게까지 눈물이 쏙 빠지곤 했다.

 

더구나 나는 중학교 1학년으로는 제법 큰 키여서 주 득점원에 속했기에 더 큰 시련이 많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학교는 이 날 경화여중에게 대패를 당했다. 더구나 올해 소년

체전에 나갈 도 대표학교를 선발대회에서 진 것이다. 이 날 학교로 돌아오는 스쿨버스에서

벌써부터 오늘 밤의 시련이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감독선생님은 학교에 돌아와 체육관에서 간단한 훈시를 하고 나갔다. 그러나, 그 훈시는

우리 가슴속에 비수처럼 꽂혀졌다.

 

"모두들 정신을 딴 데 두고 있어. 내일까지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각오해라."

 

이 후 우리는 코치선생님으로부터 아주 뜨거운 얼차려를 받아야만 했다. 아주 지능적인

얼차려. 오리 걸음으로 체육관을 빙빙 도는건 시작이었다. 엎드려뻗힌 상태에서 뒤꿈치를

붙히고 손과 발로서 체육관을 돌때는 온 몸의 세포들이 반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 후론

우린 두시간동안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각종 순환운동을 골고루 맛보아야 했다.

 

코치 선생님이 퇴근한 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 1,2학년들은 모두 체육관에

엎드려 뻗혀 자세로 있어야 했고, 주장과 3학년 언니들은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마대자루를

만지며 이를 바득 바득 갈고 있었다.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우리까지 경을 치게 해. 오늘 어디 한번 맛을 봐라."

 

사실 나는 초등학교때는 운동을 하지 않았기에 운동부에 이런 식의 체벌과 얼차려가 있는 줄

몰랐다. 하지만 초등학교때부터 운동을 한 아이들은 이게 익숙한 모양이다.

 

주장언니가 2학년부터 때리기 시작했다. 우리 엉덩이에는 경우 반바지 운동복밖에 없었기에

아주 리얼한 소리가 체육관에 메아리쳐졌다. 마치 맨살을 때리는 듯한 소리였다. 원래 맞을때

더 무서운 것은 앞 사람이 맞는 걸 다 지켜보고 맞을때이다. 공포가 충분히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기에 더욱 더 아프게 느껴 진다.

 

주장언니는 아주 매몰차게 1인당 10대씩을 때렸다. 2학년 언니들은 보통 5대까지는 잘

버텼지만, 그 이후로는 픽픽 쓰러지기 일 쑤였다. 드디어 언니들이 다 맞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나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언제 맞아 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굵은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아야 한다니.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엉덩이에게 빨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아마

한대맞고 자세가 무너진 것은 내가 처음일게다.

 

"아니. 이것봐라. 이런 나약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으니 오늘같은 결과가 나오지. 빨리

자세잡아."

 

나는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내 엉덩이에 쏟아지는 몽둥이.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3대째를 넘기긴 너무 어려웠다. 엉덩이 살이 내 살이 아닌것 처럼 느껴졌다. 눈물을

쏟으며 주장언이의 10대를 다 맞았다. 엉덩이에 불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뒤이어 3학년 언니들이 차례로 5대씩을 더 때렸다. 4명의 3학년 언니들이 추가로 5대씩을

때렸으니 도합 20대, 주장 언니것까지 합치면 30대를 맞은거다.

 

1,2학년은 모두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나중에 들으니 이것은 약과라고 한다.

여름에 합숙훈련할때는 알궁둥이로 맞는적도 있으니까. 우리는 훌쩍거리며 샤워장으로

가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보니 모두들 엉덩이가 뻘겋게 익었다.

 

이게 나의 첫 체벌 경험이다. 그날밤 나는 불이 난 엉덩이를 손으로 마사지하면서 잠잤다.

누우면 엉덩이가 따가와 엎드려서 엉덩이를 만지며 잤는데, 이때 내 몸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기질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아까 엉덩이를 맞고 있을때 내 보지 주변이 축축해지고

뜨거워지는 걸 느꼈었고, 나중에 커가면서 이게 나의 또 다른 기쁨이란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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