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와의 조우-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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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재수든 나쁜 재수든, 언젠가는 끝이 나는 법. 산길도 언젠 간 끝이 나죠. 터널을 지나 몇 분간 더 가니 봉오리 사이로 동해안 수평선이 보였습니다. 얼마간 더 가자 등산로 입구, 휴게소가 나타났습니다. 차를 주차장 구석진 곳에 세우고 휴게소 매점에서 티셔츠와 운동복, 운동화를 샀습니다. 미리는 뒷좌석에서 눈을 감은 채 얌전히 누워 있었고, 저는 미리가 입고있던 잠바를 벗기고 속옷 없이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나이는 아마 20대 초반일까? 머리카락이 허리가 아닌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갈 정도로 길었습니다. 혹 한국 최고기록은 아니겠지... 가만있자. 기네스 최고기록이 몇이더라? 3m쯤 되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진에는 동양계 같은 데, 인도인가? 스페인인가? 뭐였더라???
[여자알몸에 뒤숭숭 할때는 객관적인 사고가 제일!]
그렇게 객관적인 사고를 하고 옷을 갈아입히고 다시 차를 몰았습니다.
11시 쯤 되자 강릉 가까이 도착했습니다. 근처에 작은 모텔을 몇칠 빌렸습니다. 그전에 약국에 들렸지요. 필요한 약을 사고 모텔방안으로 미리를 부축해 들어갔습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겼습니다. 상처를 살펴보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였지만, 그녀는 별 신경 쓰지 않고 얌전히 따랐습니다. 오른쪽 정강이를 살펴보았습니다. 푸른 멍이 짙었지만, 붓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습니다. 붓기가 빠진 속도가 놀라웠습니다. 저는 그녀의 몸 이 곳, 저 곳을 매만지며 다른 골절이나 손상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여기 아파요?"
"아뇨."
"여기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고 저는 조금 마음이 놓였습니다.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거든요. 신경반응도 정상이었고. 정강이에 난 부상도 큰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약을 바르고 다리뼈를 고정시키면 몇칠 지나면 나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호기심에) 그녀의 배에 난 수술자국을 잘 들어다 보기 위해 손끝으로 매만지자 그녀는 제 손을 치며 다른 손으론 수술자국을 가렸습니다.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내가 고파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미리도 아침식사를 지나쳤지요.
"목욕 하세요. 들어온 문 쪽, 저 문을 열면 되요. 그 뒤 점심 사줄께요. 아! 그리고, 다리에 붕대엔 물을 묻히지 말고요. 아시겠죠."
미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며 걸어갔습니다. 다리에 붕대를 묶은, 옷을 다 벗은 여자가 조심스레 걸어가는걸 보노라니..... 긴 머리카락이 둥근 엉덩이를 살레살레 가리며 흔들리는걸 보노라니..... 어릴 적에 본 은하철도999에 나오는 메텔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밀림으로 덮혀진 행성에서 매텔과 철이가 벌거벗고 걸어가는 장면도 방영된 것 같았는데... 데자뷰인가? 데자뷰의 과학적 현상은 기억의 이미지가 몇 가지 특징적인 개념으로 디지털화 되면서 왼쪽 뇌의 사물의 단어변화전이라 할 수 있는....
[뒤숭숭 할때는 객관적인 사고가 제일!]
미리는 목욕실 문손잡이를 쥔 체, 손가락으로 비비며 머뭇거렸습니다.
"왜 그래요?"
"그게... 저... 목욕은... 저 혼자.... 해....본적 없어서...조금... 저..."
전 처음엔 이해를 못했읍니다만, 이런.하며 그녀에게 목욕을 해 주겠다 했습니다. 이거 참, 전 그 때까지 여자를 목욕시킨 적이 없었거든요. 먼저 욕조에 따스한 물을 채우고 스펀지를 준비하고 미리를 욕조에 눕혔습니다. 차 트렁크에서 가져온 휴대용 목발을 욕조에 걸치고, 붕대를 감은 오른쪽 정강이를 그 위에 올려 놔 물에 젖지 않게 했답니다. 비누거품을 많이 내어 긴 머리카락을 문지르고 빗질하고 씻어 낸 뒤 수건 위에 말아서 올려 놓은 뒤, 눈을 감은 체 누워 있는 그녀의 얼굴을 맛사지하고 욕조에 물을 뺀 뒤 스펀지로 그녀의 온 몸 구석구석을 문질러 주었습니다. 다만 그녀의 배에 난 수술자국은(그녀가 만지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대충 넘겼습니다. 그녀의 피부가 윤기나도록 반질반질해지자 샤워기로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을 씻어 주며 열심히 객관적인 사고를 하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몸매가 예쁜데, 왜 A컵인거지?하는 생각은 절로 나더군요.
그렇게 어디서 본 영화흉내를 낸 뒤 마른 수건으로 미리의 몸을 닦자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며 목욕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녀는 화장대에서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티슈를 한 웅쿰 뽑아내더니 자신의 배를 조심스레 닦았습니다. 훔뻑 젖은 티슈를 화장대에 놓아둔 체 그녀는 티셔츠와 츄리닝 하의를 입고 고개 숙인 채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양손으로 제 머리를 내리더니 제 이마에 키스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키스가 아닙니다. 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더니, 입술로 가볍게 이마를 두들겼습니다. 그리고 따스한 입김을 불더니 입술로 천천히 이마를 문질렸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애무했습니다. 혀 끝으로 가볍게 문지르고 천천히 부드럽게...
솔직히 기분은 좋았습니다. 영문 모르긴 했지만. 그녀는 키스하던 입술을 떼고 허리를 펴고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좋았어요."
그녀는 복부의 수술자국주변을 잘 닦지 않았는지, 그녀의 티셔츠는 배 부분이 젖어있었습니다.
"나 배고파요."
저도 그 때 배고팠기 때문에 흥쾌히 응했습니다. 바지가 좀 젖었었지만, 밖은 더우니 금방 마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