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와의 조우-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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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겪은 이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기하죠. 아무도 믿지 않을 것 입니다. 하긴 그래서 맘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 실명을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비밀스런 이야기거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치 엄청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한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작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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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에 어느 큰 병원의 외과의사입니다. 저에겐 2년을 사귄 연인이 있었습니다. 연말회식에서 그녀가 절 유혹했었고, 전 그녀를 믿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었습니다. 차와 보석같은 선물 등등. 친구들은 그런 나를 바보라고 불렸고, 저는 그런 내 친구들에게 그녀를 소개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일이 바쁘다든가, 아직 마음 준비가 안되었다든가 하며 미루었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그녀를 공원에서 보았습니다. 같은 병원의 성형외과에 근무하는 의사와 진한 키스를 나누는 걸. 그녀에게 화를 내자 그녀는 도리어 내게 화냈습니다. 매일 늦게 수술실에서 일하며 시간을 내 주지 않는다고, 수술 때문에 피곤하다며 밤 늦게 놀아주지 않는다며. 그런 면도 있었지만,[외과의사는 병원 내에서 막노동으로 취급되지요. 힘이 가장 들면서 보수가 좋지 않은, 그래서 젊은 의사들은 하려 들지 않아 인력난도 심하답니다.] 그러나 내가 만나자고 할 때 회피한건 그녀였습니다. 무언가 선물이나 무엇을 해줄 때만 그녀는 나와 데이트를 하였지요. 그러나 그녀가 너무나도 뻔뻔하게 목소리 높이는 통에 전 강하게 반박하지 못했고 그냥 물러났습니다. 친구들의 비야냥이 옳았습니다. 전 바보입니다.
차라리 그녀의 뺨을 때리고 끝내야 했을 것을, 성형외과의 그를 찾아가 따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웬 놈이 짜증나게 한다며 컵 안의 물을 나에게 끼얹었습니다. 그래서 홧김에 주먹으로 그의 턱을 쳤지요.
바보같은 짓이었습니다. 같은 의사이지만, 그와 전 파워가 다릅니다. 전 그저 막노동자와 같은 위치였다면, 그는 원장과 아주 친한 사이었고 재산도 많았고 티비 연애계에도 연줄이 강했습니다. 주먹을 휘두른 바로 뒤 아차하며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아닐까 다를까 다음날, 저를 아끼시는 부원장님이 저를 부르더군요. 어리석은 짓을 했다. 부원장님은 그렇게 운을 띄고 그 일을 무마시켜 주었습니다. 대신 저에게 권하더군요. 1-2년간 지역의료지원을 나가 보라고.
그 뜻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부원장님이 제게 해준 최선의 타협책임을.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대학 은사님이 강원도에서 작은 병원을 하시며 이웃들에게 의료봉사를 하고있습니다. 은사님에게 연락해 부탁하였더니 도리어 고맙다고, 사람이 부족에서 힘들다고, 빨리 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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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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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은 덥든 춥든 은근히 춥습니다. 밤이면 더 그렇죠. 내 왼편엔 낙석방지용 철망이 제 신경을 긁고, 오른편엔 가드레일 넘어 강이 나 있어 더 춥게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한밤중이라 강 수면은 보이지도 않고 민가도 없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해서 8월 열대야 같은 소리는 서울애기죠. 장마 끝난 뒤 몇칠 안 된 초여름 밤이지만 그 때에 분위기는 눈이 없는 겨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눈물도 나는 듯. 한밤중 홀로 어두운 길을 운전하다 보니 갖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그녀에게 무릎 꿇고 생각을 잘 해 보라고 애원했다면 어찌했을까? 어쩌면 그녀는 진짜로 저와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어했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전 현실주의자입니다. 높은 이상을 향하지 않고 주어진 조건을 사용해 최대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 난 충분히 그녀에게 성실하였고 그녀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였으니 그것으로 끝내는 게 옳습니다. 혹 그녀가 자신의 에고를 높이지 않고, 저의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인다면,(일본 포르노 SM플레이에 나오는 여자노예처럼) 또 모를까... 그렇다고 그녀를 조교시킬 능력이 제게 없고.
그 놈에게 따진 것도 제 실수죠. 처음으로 내 맘을 헌신한 첫 상대였기에 그 상처가 너무 커 그만 저지른 실수입니다. 자제를 못한 겁니다. 고등학교, 대학 인턴 때에는 아버지의 충고에 여자를 멀리하였으니 굉장히 늦은 첫 상대였기에, 분별을 못하고 충동적으로 어리석은 짓을 한거죠.
그녀를 죽여 버릴까? 그녀를 위해 쓴 돈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2년이란 시간이 제 기억 속 큰 부분을 차지하며 힘겨운 상처로 남았습니다. 견디기 힘들어서 살인충동도 들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하며 왼쪽 커브로 들어가는 순간 절벽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UFO가 갑자기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굵은 햄버거같은 은빛 외모에 온갖 색상에 둥근 전구들이 테두리를 장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건 평면으로 우아하게 떠 있지 않고 거의 수직으로 기울인 불안한 자세로 지면에 가장 가까운 부분이 바로 제 차 지붕보다 낮아, 제 이마와 충돌할 듯 하여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었습니다. 차는 거의 한바퀴를 돌더니 길가의 공사 표지판을 치고 기우뚱하게 멈췄습니다. 백미러로 보니 UFO는 꿰 멀리 지나간 듯, 작은 모습으로 기우뚱하게 허공에 떠있다가, 갑자기 불빛이 꺼져 사라지더니 조금 다른 위치에서 다시 불빛을 내며 나타났다가, 쓰러지는 팽이처럼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며 다시 제 쪽으로 다가오더니 방향을 바꾸며 언덕위로 솟구치며 사라져 버렸습니다.
말로만 듣던 UFO를 보았다는 흥분감 보다 차량충돌 할뻔했다는 충격에 심장박동이 급작스레 올라갔습니다. 좀 뒤 아드레날린이 적어지자 핸들에 부딪친 뼈 부위의 통증이 극심해졌습니다.
왜 차가 기울어져 있지?
라이트를 위로 올려 보니 몇칠 전 있었던 수마에 도로 일부분이 유실되면서 복구공사가 한창 중인 현장이었습니다. 차는 아슬아슬하게 한쪽 바퀴가 유실된 곳 밖으로 나가 비스듬히 위태로움 상태였고요. 다행히 조수석 쪽이 유실된 곳이라, 조심스레 차 밖으로 문 열고 빠져나갔습니다. 차는 더 기울어졌지만, 중심을 잃고 강으로 덜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하려 했는데, 맙소사! 휴대폰은 조수석 아래 구석에 굴려 떨어져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꺼내려 들다간 차는 굴려 떨어질 테고.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포크레인과 트럭 등이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 공사장 인부들이 출근하면 그 때 부탁하면 되겠지 하며, 그 날 밤은 도로 구석에서 눈을 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