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짓는 드래곤(1편) : 제물로 바쳐진 묘인족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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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본 게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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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수명은 길다.
대략 1만년 정도? 어떤 장수한 용의 경우는 1만 5천살까지 살았다고 하니 말 다한 셈이다.
그래도, 그 기다란 인생을 함부로 소비할만큼 드래곤은 어리석지 않다.
보통 한 드래곤이 성인이 되려면 4천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결혼 적령기인 8천살까지는 무려 4천년이나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4천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드래곤들은 결혼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수컷 드래곤은 암컷 드래곤을 맞이 하기 위해, 자신만의 레어(둥지)를 트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암암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풍습이지만, 레어를 틀고 인간이나 엘프같은 종족을 잡아서
신부와의 첫날밤 연습을 하기도 한다.
내 이름은 브래드. 인간일때의 이름이고, 용족으로서의 진짜 이름은 브래드니안 슈바인오그다.
나는 한 30년 전 쯤 성인식을 치르고 비로소 완전한 성인 드래곤이 된, 신출내기다.
난 성인이 되자마자 난 벨키레스 산맥에 둥지를 틀었다. 애초에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마법만
엄청 강하지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하는 건 서툴다. 그래서 난 부근에 있는 드워프 마을을 습격해서
내 둥지를 안 틀면 싹 다 태워 죽이겠다고 선언했었지.
그래서, 불과 30년만에 나와 앞으로 내 아내가 될 드래곤이 살만큼 큰 레어가 벨키레스 산맥에
완성되었다. 보통 드래곤은 드래곤끼리의 모임이 있지 않는 한, 다른 종족으로 변신해 있기에
레어 내부는 드래곤이 활동하기 보단 인간이 활동하기에 더 적합한 구조를 띄고 있다.
"쳇, 감옥만 만들어 놓으면 뭘 해."
거의 50m에 달하는 감옥의 행렬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불평을 내던진다.
이 감옥들은 인간이나 엘프 등을 납치해서 가둘 때 쓰이는 감옥들. 이미 결혼을 한 어른 드래곤들의
레어를 찾아가서 보고 그대로 따라 만들었는데, 막상 만들고 나니 참 쓸데없이 감옥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인간 5명이 들어갈만한 감옥이 20개쯤이니까, 150명 정도 수감이 가능한건가.
인간이든 엘프든, 암컷을 150마리가 잡아 넣으려니 눈 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드래곤은 마법만 강한 게 아니다.
육체적 능력도, 다른 종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강하다.
인간의 몸으로 변신하고 있어도, 그 육체적 능력과 마법 능력은 그대로이다.
따라서, 인간같은 종족하고는 다르게 드래곤은 몇 날 며칠을 그짓(?)을 하면서 버틸 수도 있다.
애초에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그 능력이 신에 도달한 존재. 그런 것쯤은 아무도 아니지.
아무튼, 암컷을 100마리든 1000마리든 잡아 가두고 매일매일 한 녀석씩 갈아 치운다 하더라도
내가 드래곤인 한 지칠 일은 없다, 라는 것이 된다.
…뭐, 중요한 건 암컷들을 어떻게 잡아 들이냐가 문제인데.
"크오오오!!"
"……응?"
갑자기, 저 멀리 둥지 입구쪽에서 내 호위 몬스터들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침입자라도 나타난건가?
실상, 지은지 얼마되지 않은 드래곤의 둥지는 인간 탐험가들의 주된 목표가 된다.
인간도 그다지 무시할 순 없는 종족이어서, 때때로 매우 강한 녀석이 태어날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같은 신참 드래곤같은 경우는 방심하다가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 하지만 이 브래드, 젊은
드래곤 중에서도 단연 톱을 달리던 엘리트다. 인간같은 놈들에게 당한다면 다음 생에선 벌레로
태어나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난 공간이동 마법으로 내 몸을 둥지 입구쪽으로 옮겼다.
ㅡ 파지짓
공간이동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호위 몬스터들은, 인간의 무리를 빙 둘러싼 채 협박이라도 하듯
쿠오쿠오 소리지르고 있었다. 자식들, 되게 시끄럽네.
그러다, 그 인간의 무리 중 한 녀석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인간이 아니다. 녀석은 묘인족(猫人族)이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몸을 지니고 있지만, 고양이의 귀와 꼬리를 가진 종족. 인간만큼의 지성을 가지고
있고, 기르는 재미도 있기 때문에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종족이다.
…게다가 여자다. 나이는 한 열 일곱이나 됐을까.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그 묘인족 암컷은,
높이가 100m도 넘는 내 둥지의 입구를 올려다보며 헤에- 입 벌리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곤 급히 주저 앉았다.
"호, 혹시 드래곤님 되세요?!"
"……그런데."
그러자, 그 녀석의 주위에 있던 남은 인간들도 우루루 무릎 꿇더니 이내 내게 미친듯 절을 해대기 시작했다.
뭐야, 이 녀석들. 탐험가가 아니었나? 게다가 등에 매고 있는 짐같은 걸 보니, 흐음...아마 상인들일까?
"휴, 다행이다. 똑바로 찾아왔구나."
"...똑바로 찾아왔다구?"
?????
상인이 왜 날 찾으러 온거야.
설마하니, 드래곤과 장사하려는 맛 간 녀석들은 아니겠지, 이 놈들?
그 때, 그 묘인족 소녀가 번쩍 고개를 쳐들며 내게 말걸어왔다.
"저, 저, 드래곤님!"
"...왜?"
"저, 저희는 벨키레스 산맥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그, 그러니까...저희 마을을 보살펴 주십사하고, 이렇게 바칠 것을......"
호오?
드래곤에게 뭘 바치겠다는거야?
하지만 드래곤이 마음만 먹으면 손에 넣지 못할 것은 없다. 이 녀석들이 매고 온 것도 다 내게
바치려고 들고 온 것 같은데, 이런 깡촌 산맥 아래에 처박혀 있는 마을에서 엄선해 들고 와봤자
거기서 거기겠지. 조금은 녀석들에게 흥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싹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거 필요없어. 너희 마을은 안 건드릴테니까 얼른 물러가."
"가, 감사합니다, 드래곤이시여!"
그리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인간 무리들은 지고있던 짐을 내려놓고 미친 듯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더니 이내 횅하니 산기슭을 향해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난 그 녀석들에게 공격 마법이나
쏴버릴까, 하고 중얼거리다가, 아직도 가지 않고 무릎 꿇고 있는 그 묘인족 소녀를 바라보았다.
"넌 안 가냐?"
"하, 하지만 저는..."
"너는?"
"...제물로 바쳐져서......"
제물?
호오, 이거 재밌는걸.
난 손짓으로 주위에 몰려있는 호위 몬스터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낸 후 말했다.
"제물, 제물이라. 너, 드래곤에게 잡혀진 제물이 어떻게 되는진 알아?"
잡혀서 온갖 능욕을 당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런데, 이 묘인족 녀석은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하고 떨면서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로
더듬더듬 말했다.
"그...사, 산채로 잡아먹힌다고......"
"엥?"
산채로 잡아먹는다니.
그거 어느 나라 어느 용의 취향이냐. 모르긴 몰라도 미친 용인 거 같다.
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이 묘인족 소녀를 바라보다, 이윽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녀석은 올 게 왔구나, 라는 표정으로 두 눈을 꼬옥 감아버렸다. 설마하니, 정말로 내가
자기를 잡아 먹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난 소랑 돼지랑 닭 이외엔 안 먹어. 일어나."
"엣...? 하, 하지만......"
"왜 또?"
"저...그래도 저는 제물이니까..."
"......"
안 잡아먹는다고 했는데도 왜 이래 이 녀석.
그렇다고 이 녀석을 순순히 풀어줄 생각은 아니지만, 이 녀석 무언가 이상하다.
"너 죽고싶은 거냐? 왜 그렇게 제물을 자처해?"
"어차피...마을에 돌아가도 저는 죽어요......"
"...왜?"
"제물로 바쳐졌는데도 살아서 돌아온다면...드래곤님의 분노를 샀다고......"
"......"
뭐야, 그럼 어차피 이 녀석은 오갈 데 없는 신세라는 말이잖아.
난 팔짱을 끼며 여봐라는 듯 하아, 하고 크게 한숨 쉬며 말했다.
"그럼 따라와."
"엣...?"
"제물이면 제물답게 취급해 줄테니까. 잡아먹지는 않을테니까 얌전히 따라와."
"아......네!"
녀석은 그제서야 살았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포옥 내쉬며 벌떡 자리서 일어섰다.
그게 묘하게 웃겨서, 난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공간이동 마법을 시동했다.
공간이동을 할 상대는 나와 이 묘인족 소녀, 공간이동의 목표는 나의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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