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번역) 음란한 집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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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까지 알아? ]
[ 뭘 어디까지 알아요? 다 봤다니까요. 근데 이상해요.]
[ 뭐가? ]
[ 아까, 집에서도 그림을 보고있었거든요.]
[ 근데.]
[ 그림을 보고 있는데, 사장님이 내려오셨어요.]
[ 응.]
[ 그림 앞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사장님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었는데... 누나도 그런거 같아서요. 그림에 뭐가 있어요? ]
[ 호호호호! 아무튼 그 안엔 들어가지 마. 나도 들어갔다가 혼난적 있었거든...]
[ 네에...]
[ 피곤할텐데 눈 좀 붙여. 새벽에 일어나야 해.]
[ 누구 만나야 하는거 아니에요? ]
[ 새벽에 만날거야.]
[ 새벽요? ]
[ 응. 자고 있어. 들어와서 깨워줄께.]
[ 어디 가게요? ]
[ 볼일 좀 보고 올께. 그리고 혹시 머리아프면 이 약 먹어, 금새 나 질거야.]
[ 무슨 약인데요? ]
[ 두통약. 장시간 운전해서 머리 아플지 몰라.]
[ 괜찮아요. 그까짓것 운전했다고...]
[ 이따가 봐...]
거실로 나가 티브이를 켰다. 막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모 부대 방문 연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방안으로 달려가 시영이 던져 놓고간 알약을 찾았다.
5분 쯤 지났을까, 신기할 정도로 통증이 사라졌다.
머리가 아파질 것을 시영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제도 비슷한 통증을 느꼈던것 같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홉개의 알약이 남은 티피티를 주머니에 넣었다.
자정이 다 될때까지도 시영은 돌아오지 않았고 졸린 눈을 껌뻑이며 나는 잠자리로 들었다.
[ 어서 옷 입어. 빨리 가야돼.]
시영이 씨익거리며 나를 흘겨본다.
[ 너, 처음이었지? ]
치마 속으로 휴지를 넣어 벌어진 가랑이를 닦으며 시영이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종용하며 시영이 급하게 서둘렀다.
[ 늦었어요? ]
[ 일은 다 끝났어. 서울로 가는거야.]
[ 저랑 같이 가는게 아니었나요? ]
[ 상관없어. 혹시 아줌마가 물으면 같이 갔었다고 말해. 다음에 혼자 오게 되면 내가 알려줄께.]
[ 일 다 봤으면 천천히 가죠, 아직 캄캄한데...]
[ 그럴일이 있어.]
어둠속을 달리는 차 안에서 시영은 재차 당부했다.
[ 집에가면 가까운 사이처럼 굴지말어. 집에서 하던 대로 해.]
일주일이 지날 즈음 나는 그들의 생활에 역겨움을 느끼고 퇴직을 요구했다. 요오꼬는 쉽게 나를 보내주었다.
내겐 꿈이 있고 의지가 있었다. 마치 환상의 파라다이스인양, 보이는 곳마다 유혹의 덫을 놓아 나를 영원히 잡아두려 했겠지만, 강한 의지로 무장된 나의 정신을 그들은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했다. 어느새 인이 박힌 설엽차의 중독이었다. 중석으로 하루에 두번 씩 받아 마신 설엽차는 언젠가 시영과 함께 한, 부산에서 정기적으로 보급 받는 일급 마약이었다.
[ 아닙니다.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어서요.]
[ 알았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떠나거라.]
[ 오랫동안 일을 봐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괜찮아, 어디 머무를거지? ]
[ 당분간 서울 친구집에 있으려구요.]
[ 알았다. 가서 쉬어...]
[ 죄송합니다. 여기...]
[ 모지? ]
[ 전에 받은 선불입니다.]
[ 됐어, 집어 넣어.]
[ 아닙니다.]
[ 집어 넣어, 나중에 갚던지... 필요할거야. 지금은 가지고 있어.]
[ 음...]
[ 어서 가 쉬어라.]
마지막 통증을 거실에서 맞았고 나는 요오꼬의 발 아래에서 뒹굴어야 했다.
오랜시간 통증을 보고난 뒤 요오꼬는 하영을 불렀고 하영은 거품물린 입을 열어 설엽차를 부었다.
통증은 풀리는 마술처럼 금새 사라져버렸다.
그날 밤 나는 또 한번 통증에 시달려야했고 반 죽음 상태에 이르러 하영을 맞았다.
그녀는 작은 병에 담아 온 설엽차를 마시게 했고 한통의 요오꼬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떠났다. 정신을 돌이킨 뒤 태희야... 로 시작되는 요오꼬의 편지를 읽어내렸다.
태희야... 너를 만나던 날 요절한 동생 생각에 뜬눈으로 하얀밤을 지샜단다. 어쩌면 말투와 생각하는 게 동생과 그리 똑같을 수 있는지...
너를 보는 순간 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너와 함께 살 수 있기만을 바랬지, 그래서 설엽차를 썼단다.
치료도 가능하단다. 네가 나를 떠나지 않을거란 확신만 든다면 언제든 약을 쓰겠다.
아니면 너는 거리에서 죽음을 맞겠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와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다까하끼 요오꼬.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 미친년! 미친년들! )
다음날 아침 찾아온 통증은 더욱 심했고 나는 실신하고 말았다. 눈을 떳을 땐 요오꼬의 침실이었다. 이틀을 더 앓고난 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