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번역)음란한 집9-10
페이지 정보
본문
그 공간을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서음희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커다란 쇠문이 닫히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를 똑똑하게 들은 뒤 반사적으로 튀어나왔을 뿐이다.
한마디로 순식간이었다. 다락을, 안방을, 그리고 현관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층으로 달려와 정신없이 현관을 두드렸고 한참만에 문을 연, 아랫층 여자의 얼굴을 보고서야 차츰 정신이 돌아왔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 언니...]
[ 왜 그래? 무슨일이야? ]
갑자기 몰려온 현기증이 서음희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 아...]
기대오는 서음희를 부축해 소파에 뉘우곤 여자는 냉수를 가져왔다.
[ 이거 마셔봐.]
[ 언니, 아...]
[ 무슨일이야? ]
[ 전화 좀...]
전화를 받아 든 서음희는 소파에서 일어나 앉으며 번호를 찾아 눌렀다. 잠시 후 상대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저 예요...]
[ 왠일이야 전활 다하고. 목소리가 왜 그래? ]
[ 집으로좀 와줘.]
[ 무슨일인데.]
[ 집이 무서워, 빨리좀 와줘.]
이규석과의 전화를 끊은 뒤 아랫층 여자의 손에 쥔 물잔을 건네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통화 내용을 지켜본 아랫층 여자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 무슨일이야, 얼굴보니깐 되게 놀랜거가터.]
빈 물잔을 양손으로 움켜쥔채 서음희는 떨고 있었다.
[ 누워있어, 이불 덮어줄까? ]
소파위로 다시 누우며 서음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요, 됐어요.]
리고 있었다.
꿈을 상기시켰다. 걸레질을 하던 중 벽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소리나는 쪽으로 다가가 벽을 어루만지다
물렁한 느낌을 받음과 동시 밀쳐 보았을 때, 도배지로 위장한 벽이 찢어지며 모습을 보인, 굴뚝 속 같던 공간을 기억해냈다.
방금 전 불쾌한 소리가 들린 곳도 바로 그 자리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발끝에서 부터 전신으로 닭살이 일어났다.
그때, 느닷없이 요란한 벨 소리와 함께 문을 두들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서음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을 감싸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랫층 여자도 덩달아 몸을 움츠렸다.
또 한번 기분나쁜 벨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무엇인가 물어보려는 듯 한 커다란 남자의 목소리가 문틈을 타고 작은 소리로 들려왔다. 아랫층 여자의 손바닥이 가슴을 짚는다.
[ 아휴... 놀래라. 선생님이 놀라니깐 나까지... 휴우.]
아랫층 여자가 모서리를 돌아 현관으로 나갔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말씀좀 여쭙겠는데요. 혹시 2층에 사시는 분... ]
남자의 목소리를 확인한 서음희가 반갑게 그를 부르며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이규석을 끌어안으며 얼음장보다 더욱 싸늘했던 서음희의 긴장은 언제 그랬나 싶게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규석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 채 2층으로 올라왔다. 현관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뒤 서음희는 이규석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 와줘서 고마워요.]
[ 얼굴이 떳어, 뭐에 놀란거야.]
잠시 생각하던 서음희가 입을 열었다.
[ 몰라요 뭐였는지... 쥐 같았어요.]
[ 하하하. 생물선생님이 무슨 쥐를 보고 놀라냐.]
[ 고양이 만한 쥐였나봐, 엄청 컸었어.]
[ 후후, 도독 고양일 봤나보다. 들어가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서음희를 보면서 이규석은 활짝 열
려진 다락문을 안방 문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 고양인지 쥔지 다락에서 나왔나봐? ]
이규석이 다락문을 향해 안방으로 들어서자, 서음희가 빠른 걸음으로 이규석을 앞질러 다락문을 닫고는, 얼버무리며 말했다.
[ 다락에서... 짐 정리하고 내려오다가... 내려오다가... 현관문을 열어놓고 했었거든... 규석씨 말대로 고양이였나 봐, 모가 갑자기 확하고 밖으로 나가는 걸 봤어.]
[ 피곤했나보다, 그런걸 보고 다 놀래는걸 보면.]
[ 그랬나봐...]
[ 그러게 쉬엄쉬엄 하지.]
[ 규석씨 밥 아직 안먹었지? ]
[ 응, 못먹었지.]
[ 미안해, 우리 외식하자.]
[ 외식은 무슨. 이사하느라 돈도 많이 깨졌을텐데. 밥 아직 안했지? ]
[ 응, 아직...]
[ 쉬어, 내가 해줄께. 쌀 어딨어? ]
[ 아니야... 나가자. 규석씨 나가있어, 옷 갈아입고 바로 나갈께.]
잡지에 시선을 둔채 이규석이 말했다.
[ 다 했어? ]
[ 나아... 다락 정리 마저하고 나갈께, 조금만 기다려줄래? ]
서음희를 한번 바라본 이규석은 다시 잡지에 시선을 꽃으며 말했다.
[ 그래라.]
[ 나좀 쳐다봐바.]
이규석이 서음희를 바라본다.
[ 나... 속옷 정리하는 거니깐, 들여다 보면 안되에? ]
다시 잡지로 눈을 돌리며 이규석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 다, 본 것들 일텐데 모올...]
[ 암튼 오지마? ]
조명을 모두 켜 놓은 아랫층으로 인해 공간은 밝아있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어둑한 구석을 향해 서음희는 몸을 기었다.
서음희는 조급했다. 시간을 오래 끌면 이규석이 다락으로 올라와 볼지도 몰랐다.
모서리를 중심으로 오른쪽 벽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서음희가 있던 자리가 어두워졌다.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가는 써늘한 한기를 느끼며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아랫층 거실의 조명이 꺼진 것이었다. 안방 쪽에서만 불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빨리 확인해보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라이바로 오른 쪽 벽을 찌르는 순간, 꽝! 하는 굉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서음희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반사적으로 소리난 곳을 바라보았다. 출입구였다. 출입구 문이 닫힌 것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음희는 출입문을 향해 낮은 자세로 뛰어갔다.
끼이이이익!
[ 앗! ]
빵! 빵빵!
[ 아이, 깜짝이야.]
[ 저 새끼가! ]
이규석은 창문을 내린 뒤 달아나는 청년을 향해 소리쳤다.
[ 야이, 개새끼야! ]
그리고 중얼거렸다.
[ 개자식, 눈을 어따 뜨고 다니는거야. 괜찮아? ]
[ 응, 괜찮아. 아휴, 깜짝 놀랬네...]
[ 실컷 먹은거 얹히는 줄 알았다. 쌍노무새끼.]
한마디 내 뱉은 이규석은 흘러나오는 카셋트 테입의 볼륨을 높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팝송을 따라 불렀다.
[ 워레벌유고 와레벌유두우우 아윌비 라잇 히 웨딩퍼유... 워레벌 잇 테 ...... ]
다락에서 공간으로 내려가는 출입문을 열면 출입문이 넘어져 닫히는 일이 없도록 무거운 짐을 끌어 받쳐나야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저절로 닫히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오늘도 급하게 내려오느라 깜빡 잊었던 것이고 출입문은 약한 진동이나 바람에 의해 저절로 닫쳤던 것이었다.
서음희는 공간속 오른 쪽 벽을, 도라이바로 찔렀을 때의 느낌을 떠 올렸다. 단단한 콘크리트의 느낌을 주는 왼쪽 벽과는 달리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의 접촉이었다.
놀람으로 인해 자세히 확인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오늘밤 이규석이 잠든 사이, 다시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