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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고독천년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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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11 회 작성일 24-02-22 02: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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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5章 미궁(迷宮)의 요수(妖獸)


그그긍!
하나의 육중한 철문(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 헤매다 보니 이상한 곳까지 왔네! 」 
싸늘한 소녀의 음성과 함께 열려진 철문 안으로 하나의 날렵한 인영이 들어
섰다.
그 인영은 십 팔구 세 가량된 아주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경국지색이라할 만한 절색의 미모를 지녔지만 그 아름다운 얼굴과 어
울리지 않게 눈빛은 뱀의 그것처럼 냉혹하고 매몰차 보였다.


-하후진진(夏候眞眞)!


바로 그녀였다.
달단왕(??王) 철고륜(鐵古倫)의 양녀(養女)였으나 어머니를 잃은 원한으로 달
단왕부를 기필코 파멸로 몰아넣겠다고 맹세한 독심의 소녀 하후진진!
그녀 역시 이곳 십왕총으로 들어온 것이다.
헌데 석실 안으로 들어서던 하후진진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치떻다.
「 여기는····! 」 
그녀는 경악의 눈으로 석실 안을 둘러 보았다.
석실 안에는 수많은 쇠사슬들과 쇠기둥들, 그리고 복잡한 기계장치들이 가득
들어차 있지 않은가?
특히 석실의 가운데에는 아주 기괴한 물건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하나의 큼직한 쇠기둥이 서 있는데 그 쇠기둥에는 십여 개의 수정
(水晶) 거울들이 붙어 있었다.
헌데 그 수정거울들은 저마다 십왕총의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발견한 하후진진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 이곳이 십왕총의 기관중추(機關中樞)다! 」 
그녀는 기쁨에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그녀가 우연히 들어선 이 밀실은 바로 십왕총의 모든 기관함정들을 통제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하후진진은 격동과 흥분을 억누르며 밀실의 중앙에 자리한
천목신경(千目神鏡)앞으로 다가갔다.
십여 개의 수정거울들은 수시로 화면이 바뀌며 십왕총 곳곳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천목신경 앞으로 다가선 하후진진은 신기한 눈으로 천목신경을 들여다 보았
다.
「 저놈은······! 」 
돌연 그녀의 두 눈에 섬뜩한 한광이 번뜩였다.
십왕총의 내부 곳곳을 비추고 있는 천목신경 중 한 개의 거울에는 일남일녀
(一男一女)가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이검한과 무정모모, 바로 그 두 사람이었다.
거울을 통해 이검한의 모습을 발견한 하후진진의 두 눈에 짙은 살기가 번뜩
였다.
「 역시 저놈도 십왕총에 들어왔었구나! 」 
그녀는 지난밤 이검한에게 당했던 치욕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 바득! 잘 되었다. 십왕총의 기관중추를 내가 장악했으니 네놈을 가장 고통스
럽게 죽여주겠다! 」 
하후진진은 이검한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어 그녀는 주위의 다른 거울들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중 두 개의 거울에 하후진진의 눈에 낮익은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서 있는 금발벽안의 미부는 바로 달단여
왕(??女王) 나유라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거울에는 거구의 장한과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 금발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물론 철산산과 포대붕이었다.
나유라와 철산산 모녀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던 하후진진은 두 눈을 광기로
번뜩이며 사악하게 웃었다.
「 호호홋! 그래······· 그런 방법이 있지! 」 
그녀는 득의의 표정으로 깔깔 교소를 터뜨렸다.
「 저 두 계집을 잘만 이용하면 이가놈에게 백배 천배로 복수해줄 수가 있다! 」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그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전에 먼저 할 일이 있지! 」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또 다른 거울을 주시했다.
그 거울을 통해 비춰지는 곳은 한 칸의 석실이었는데 그 석실에서는 두 명의
인물이 맹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오이랍부의 족장인 철목풍(鐵木風)이었다. 철목풍은 지금
한 명의 창백한 안색의 청년을 핍박하고 있었다.
철목풍과 맞서 싸우는 청년은 이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데 아주 반듯하고 영
준한 용모를 지녔다. 하지만 영준한 외모와는 달리 청년에게는 우울하고 퇴
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어찌보면 그 청년은 철목풍과 흡사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두 사람은 전혀 남남이 아닌 듯했다.
하후진진은 거울을 통해 비치는 철목풍의 모습을 노려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 더러운 작자! 」 
그녀는 씹어뱉듯 중얼거리며 분노와 증오의 눈을 번뜩였다.
그런 그녀의 뇌리로 공포스럽던 그 밤의 기억이 선연하게 되살아났다.
달단왕부의 뇌옥에서 죽어가다가 본의 아니게 철목풍의 손에 구해진 하후진
진은 오이랍부로 호송되어 그곳의 의원들에게 치료를 받아 다시 소생할 수
있었다.
철목풍은 그런 하후진진을 자신의 양녀로 선포했다.
덕분에 하후진진은 오이랍부 부족빈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헌데 그녀의 상처가 그럭저럭 나아가던 어느날 밤이었다.
하후진진이 몸종과 함께 자는 천막으로 술에 취한 철목풍이 들이닥쳤다. 그
리고 그날 밤 하후진진을 무자비하게 겁탈했다.
철목풍에게 유린당하며 하후진진은 몸이 그대로 찢기는 듯한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철목풍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철목풍은 무자비했다. 그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애원하는 하후진진
을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자는 하후진진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기까지 했다.
하후진진과 같이 자던 하녀도 하후진진이 겁간당하면서 처절한 고통의 신음
을 질렀지만 못들은 척 잠자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힘없는 하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후진진은 철목풍에게 처녀를 잃었다.
겁탈당하던 중 그녀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잃고 기절
하고 말았다.
기절한 하후진진의 몸에 마음껏 짐승 같은 욕정을 푼 철목풍은 콧노래를 부
르며 사라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철목풍은 수시로 하후진진의 천막을 드나들며 그녀의 육
체를 유린했다. 오이랍부의 부족들은 모두 하후진진과 철목풍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나 누구도 감히 철목풍의 만행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괜히 철목풍
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불벼락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데 단 한 사람 철목풍의 잘못을 지적한 인물이 있었다.


(룡풍(龍風) 오라버니········!)
하후진진은 거울을 주시하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철목풍과 싸우고 있는 어두운 안색의 청년은 하후진진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철룡풍(鐵龍風)!


바로 그가 철목풍이 하후진진을 겁탈하는 만행에 항의했던 단 한 명이었다.
그는 전대 오이랍부의 족장 철기륜(鐵騎輪)의 아들이었다.
철기륜은 대막과 초원일대에서 징기스칸의 재래로 불리던 일대호걸이었다.
철기륜의 대에서 비로소 오이랍부는 달단왕부를 압도하는 세력의 이름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철기륜은 십여 년 전 급사하고 말았다.
당연히 아들인 철룡풍이 그 뒤를 이어야 했으나 당시 철룡풍의 나이는 겨우
십 세 초반에 불과 했다.
결국 잠정적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으나 철기륜의 배다른 동생인 철목풍이
오이랍부의 족장 지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철룡풍은 충분히 오이랍부를 이끌 나이
와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나 철목풍은 처음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자는 조카에게 왕위를 이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하후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철목풍은 철룡풍을 위험지경으로 몰아넣고 있었
다.
애초 철룡풍은 철목풍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대로 가면 오래지 않아 철룡풍
은 철목풍의 칼 아래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후진진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 조금만 참으세요, 용풍오라버니! 원군을 보내드릴 테니! 」 
그녀는 급히 주위의 기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 중 하나의 사슬을 움켜쥐었다.
「 이가놈! 우선 짐승 같은 철목풍을 죽여 용풍오빠를 구해 드리거라! 」 
덜컹!
중얼거림과 함께 그녀는 힘껏 사슬을 잡아당겼다.
순간 이검한과 무정모모가 걷고 있던 밀로의 바닥이 확 뒤집히는 것이 보였
다.


*          *          *          *


「 갑자기 기관장치가 움직이다니 누군가가 이곳의 기관중추를 장악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군요! 」 
「 그러게 말이다! 」 
밀실 안에서 두 남녀의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그긍!
이어 하나의 육중한 철문이 굉음과 함께 열리면서 일남일녀가 들어섰다. 바
로 이검한과 무정모모였다.
차차창!
「 크읏! 」 
헌데 철문 안으로 들어서는 두 남녀의 귓전으로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고통
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다름아닌 철목풍과 철룡풍이 싸우고 있는 석실이었다.
헌데 이검한과 무정모모가 석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철목풍은 철룡풍을 막
다른 곳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카캉! 콰당탕!
철목풍이 맹렬히 보도를 휘두르자 철룡풍의 칼은 그의 손을 떠나 멀리 튕겨
졌다.
「 컥! 」 
이어 철룡풍은 가슴에서 피분수를 뿌리며 쓰러졌다. 철목풍이 휘두른 칼날에
서 일어난 도기가 철목풍의 가슴을 깊이 베어버린 것이다.
「 흐흐흐! 어떠냐? 이제 내 칼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 」 
철목풍은 쓰러진 철룡풍의 목에 칼을 겨누며 득의의 음소를 흘렸다.
그자는 철룡풍과의 싸움에 혼신을 다해 열중하는 바람에 미처 이검한과 무정
모모가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철목풍은 음험한 눈을 번뜩이며 철룡풍을 내려다 보았다.
「 흐흐흐! 네놈은 애시당초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네놈이 이곳에서 죽으
면 네놈의 에미도 설마 내가 너를 죽였다고 생각이나 하겠느냐? 」 
그자의 말에 철룡풍은 가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참담하게 안면을 이지러뜨렸
다.
「 오냐! 어서 죽여라! 실력으로 패했으니 할 말은 없다! 」 
말과 함께 그는 체념의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물론 죽여준다. 그러나 그 전에 네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 
「 저승에 가서 죽은 네 애비에게 전해라. 예쁜 마누라는 이 어르신네가 잘 즐
기고 있다고! 」 
그자는 잔인한 어조로 씨부렁거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자의 말대로라면 철목풍은 이복형인 철기륜의 아내를 범
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철룡풍의 태도였다.
「 더러운 놈! 」 
그는 철목풍이 자신의 생모를 범했음을 간접적으로 실토했건만 한마디 욕설
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 흐흐········ 역시 네놈도 알고 있었군! 」 
철목풍은 그런 철룡풍의 태도를 예상했다는 듯 히죽 웃었다.
「 그럼 더 이상 볼일이 없군. 네놈을 한시라도 빨리 저 세상의 네 아비 곁으
로 보내주겠다! 」 
말과 함께 그자는 칼을 쳐들어 철룡풍을 내리치려 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 네놈이 죽어야할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었군! 」 
돌연 옆에서 한 가닥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막 철룡풍을 내리치려던 철목풍은 기겁하며 돌아보았다.
「 허억! 네놈은·········! 」 
철목풍은 마치 독사라도 본 듯 갑자기 펄쩍 뒤로 물러섰다.
그의 앞에 천신처럼 우뚝 서 있는 이검한의 모습을 본 철목풍은 삽시에 얼굴
이 사색으로 변했다. 한 번 이검한에게 쓴 맛을 본 그자였기에 이검한을 마
치 지옥사자(地獄使者) 보듯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달아나야 한다!)
철목풍은 교활하게 두 눈을 번뜩이며 빠르게 염두를 굴렸다.
파앗!
다음 순간 그자는 옆의 밀문을 향해 벼락같이 몸을 날려 달아났다.
「 흥! 감히·········! 」 
무정모모의 입에서 싸늘한 교갈이 터져나왔다.
쩌어엉!
동시에 한줄기 섬전 같은 푸른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 케에엑! 」 
콰당탕!
직후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과 함께 달아나던 철목풍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 그자의 등판에서는 피분수가 확 솟구쳤다. 무정모모가 눈부신 발도(拔
刀)로 그자를 거꾸러뜨린 것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철룡풍은 두 눈을 부릅떴다. 도대체 언제 무정모모가 칼을
빼어 철목풍을 쓰러뜨리고 다시 칼을 회수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
었다.
그저 한줄기 푸른 섬광이 번뜩인 순간 철목풍이 비명을 내지르며 거꾸러졌다.
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쾌무비한 쾌도(快刀)였다.
이검한은 바닥에 나뒹군 철목풍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 살려다오. 제발······! 」 
철목풍은 흉신악살같이 자신에게 다가서는 이검한을 바라보며 사색이 되어
애원했다.
「 크에엑! 」 
그러자 그자의 입에서 재차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검한이 그대로 철
목풍의 머리통을 짓밟아버린 것이었다.
우두두둑!
뼈가 부서지는 끈찍한 소리와 함께 철목풍의 두 눈은 죽음의 공포로 물들었
다.
보라! 그자의 코뼈와 광대뼈가 이검한의 발 아래 무참하게 으깨어져 버린 것
이 아닌가?
이검한은 그런 철목풍을 내려다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 너 같은 쓰레기를 한시라도 더 세상에 살려두는 것이 바로 죄악이다! 」 
그의 두 눈에서는 무서운 살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그는 생전 처음 인간을
죽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 네놈 때문에 피눈물을 흘린 사람들을 대신해서 내가 네놈을 죽여준다! 」 
그는 밟고 있던 철목풍의 머리통을 그대로 힘주어 눌렀다.
「 케엑········ 제········ 제발·······! 」 
우두두둑!
광대뼈가 으깨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철목풍의 입에서 처절한 고통의 비명
이 터져나왔다. 그대로 두면 그자의 머리통은 이검한의 발 아래 무참하게 으
깨질 것이다.
「 죽······· 죽이지 마시오! 」 
돌연 이검한의 옆에서 다급한 애원이 들려왔다.
이검한은 흠칫하며 발의 힘을 뺐다.
「 귀하가 왜····! 」 
철목풍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용서받지 못할 효웅 철목풍
을 살려달라고 애원한 사람이 너무도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부탁하오. 제발 그를 죽이지는 마시오! 」 
중상을 입은 철룡풍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이검한의 앞에 무릎을 끓으며 말
했다.
그의 이같은 뜻밖의 태도에 이검한과 무정모모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사람이 왜?)
그들은 도무지 철룡풍의 태도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지만 철룡풍과 철목풍은 철천지 원수 사이였다.
헌데 철룡풍은 뜻밖에도 원수인 철목풍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닌
가?
이검한과 무정모모의 의구심은 이내 풀렸다.
「 그는 저의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능욕한 불구대천지수요. 그자가 은공의 손
에 편히 죽게 할 수는 없소이다! 」 
철룡풍은 무릎을 꿇은 채 탄식하며 이검한에게 말했다.
「 소생에게 기회를 주시오. 언제고 내 손으로 그자를 쳐죽여 살부능모(殺夫凌
母)의 원한을 갚을 수 있도록·······! 」 
그는 처연한 음성으로 이검한을 향해 사정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뜨거
운 통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엾은 어머니···!)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처절한 고통에 입술을 악물었다.
철룡풍은 그 충격적인 장면을 본 것은 그의 나이 열 두 살때였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어머니 소류부인(素柳婦人)은 어린 철룡풍을 다른 천막에
서 자도록 쫓아냈다. 처음에 철룡풍은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철룡풍은 마침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날은 철기륜의 기일(忌日)이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깬 철룡풍은 불현듯 죽은 아버지가 생각나 마을 외곽에 자
리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갔다.
헌데 그곳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철룡풍의 생모인 소류부인이었
다.
「 흑흑! 이 천한 계집을 용서하세요, 상공········! 」 
소류부인은 하얀 소복을 걸친 채 무덤 앞에 엎드려 서럽게 오열하고 있었다.
한때 대막제일미인(大漠第一美人)으로 불리던 소류부인이다. 소복을 걸친 그
녀의 모습은 아들 철룡풍이 보기에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철룡풍은 부친의 무덤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어머니 소류부인의 모습이 너무
슬퍼보여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가까운 봉분 뒤에 몸을 숨
기고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흐흐········ 역시 여기 있었군! 」 
돌연 한소리 음험한 웃음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한 명의 인물이 훌훌 날아내
리자 철룡풍은 흠칫 놀랐다.
(목풍숙부님이 아닌가?)
나타난 자는 당시 이십대 중반의 나이였던 철목풍이었다.
처음에 철룡풍은 철목풍도 자신의 부친의 무덤에 참배하러온 줄 알았다. 하
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었다.
「 당신이······! 」 
철목풍을 본 소류부인은 마치 맹수라도 본 듯이 질겁했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을 철룡풍은 영원히 잊지 못했다. 철목풍이 돌연 소복을
걸친 소류부인을 덮친 것이다.
「 제발, 오늘은 그이의 기일이에요. 그러니 오늘만이라도 제발 참아줘요! 」 
소류부인은 철목풍에게 간절히 애원하며 몸부림쳤다.
그러나 철목풍은 그런 그녀를 무자비하게 찍어눌렀다.
「 흐흐! 알아서 해라! 너무 앙탈을 부리면 룡풍이란 놈의 신상에 좋지 않은 일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 
그자는 음험한 음성으로 소류부인을 위협했다.
그자의 위협에 소류부인의 몸은 그대로 경직되고 말았고 이내 자포자기한 듯
저항을 포기해 버렸다.
그렇다. 철목풍은 오래 전부터 철룡풍의 목숨을 미끼로 소류부인을 위협하여
그녀의 육체를 농락해온 것이다.
비로소 철룡풍은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소류부인이 밤마다 자신을 다른 천막
으로 쫓아냈는지를·············
철목풍은 거의 매일 소류부인을 능욕해왔던 것이다.
「 흐흐! 그래야지. 귀여운 아들이 오래 살기를 원한다면! 」 
철목풍은 히죽 웃으며 소류부인의 소복치마를 위로 걷어 올렸다. 그러자 눈
이 부시게 희디흰 허벅지가 드러났다.
철목풍은 소류부인의 허벅지 사이 둔덕을 가리고 있던 고의마저 벗겨내고는
거침없이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 흐흐! 소복을 걸친 모습은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는군! 」 
소류부인의 허연 다리 하나를 쳐들어 겨드랑이에 낀 그자는 거칠고 무자비하
게 그녀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어린 철목풍에게는 너무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철목풍 혼자 일방적으로 열을 냈다.
헌데 언제부터인지 철목풍의 밑에 깔린 소류부인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푸들푸들 경련하는 허연 허벅지. 입술을 악다문 소류부인의 아름다운 얼굴은
이지러졌다. 우는 듯 웃는 듯한 알수 없는 표정은 너무도 생경한 것이었다.
「 나쁜 놈······· 너····· 넌 천벌을 받을 거야! 」 
소류부인은 울부짖으면서도 미친 듯이 철목풍을 휘감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녀는 허리로 요염한 율동을 일으키며 철목풍의 행위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가?
그것은 실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날 밤의 그 일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철룡풍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
로 남아 있었다.


「 쯧! 」 
이검한은 철룡풍의 부탁에 하는 수 없이 철목풍의 머리통을 누르고 있던 발
을 치웠다.
「 크으·······! 」 
이검한이 발을 치우자 철목풍은 안도와 함께 고통의 신음을 발하며 급급히
일어섰다.
그런 그자의 모습은 실로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얼굴은 뼈가 부러지고
으깨져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 이놈! 이 대가는 열배 백배로 치르어야 할 것이다! 」 
철목풍은 원한의 눈으로 이검한을 노려보며 악에 받친 음성으로 내뱉았다.
그자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석실을 나가려 했다.
「 기다려라, 철목풍! 」 
철룡풍이 싸늘한 음성으로 외치자 철목풍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 흐흐········ 왜, 생각이 바뀌었느냐?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 없앨 작정이
라도 했느냐? 」 
그자는 철룡풍을 돌아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철룡풍은 분노와 원한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철목풍을 노려보며 싸늘한 어조
로 말했다.
「 걱정마라! 남의 힘을 빌어 네 더러운 목을 딸 생각은 없다! 」 
그는 결의에 찬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 하지만 언제고 내 손으로 네놈의 목을 따버리고 말겠다. 이것을 명심해라! 」 
철목풍은 그의 말에 돌연 광소를 터뜨렸다.
「 크흐흐! 누가 누구 손에 죽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 
파앗!
말을 마침과 함께 그자는 급히 몸을 날려 석실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 감사합니다, 은공! 」 
철목풍이 사라지고 나서 철목풍이 이검한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큰절을
올렸다.
「 이러지 마시오! 」 
이검한은 난감한 표정으로 급히 철룡풍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러나 철룡풍은 막무가내였다.
「 은공은 제게 구명의 은혜 뿐 아니라 내 손으로 살부능모의 복수를 할 기회
도 주셨습니다. 이제 소생 철룡풍은 평생을 은공의 종복으로 살겠습니다! 」 
그는 결연한 음성으로 확고부동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이검한은 질겁했다.
「 그런 무리한 말씀을··········! 」 
그는 실로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룡풍은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다. 또한 그는 보통 평범한 사람이 아니
라 명실공히 징기스칸의 후손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종복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것이 아닌가?
이검한은 당황을 금치 못하며 안절부절했다.
하지만 이미 뜻이 확고해진 철룡풍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 소인을 거두어 주시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칼을 물고 고꾸라지겠습니다! 」 
그는 결연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 백모님! 」 
이검한은 난감함을 금치 못하며 보고있던 무정모모에게 구원을 청했다.
무정모모는 그 모습에 빙그레 미소지었다.
「 그럼 이렇게 하자! 」 
그녀는 봉목을 유현하게 빛내며 제의했다.
「 이 늙은이는 천애고독한 신세예요. 만일 철공자가 허락한다면 철공자를 노
신의 양자(養子)로 삼고 싶어요. 그럼 검한이와는 종형제가 되지 않겠어요? 」 
듣고 있던 이검한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 그게 좋겠군요! 」 
그는 궁지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무조건 찬성했다.
철룡풍도 거부할 입장은 아니었다. 눈치빠른 그는 눈앞의 이 냉막한 노부인
이 저 전설속의 고수들인 하토삼기의 일 인임을 알아보았다.
하토삼기!
그들은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절정고수다. 만일 무정모모를 의모로 모시면
장차 철목풍에 원수를 갚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 어머니! 소자 룡풍(龍風)의 절을 받으십시오! 」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는 철룡풍은 무정모모를 향해 넙죽큰절을 올렸다.
「 노신이 복이 많아서 늘그막에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두게 되는구나! 」 
무정모모는 서글서글한 두 눈을 기쁨으로 물들이며 철룡풍을 부축해 일으켰
다.
이검한은 두 결의모자를 바라보며 절로 콧등이 시큰해졌다.
(잘되었다. 외로운 신세이신 백모님을 위해서도········!)
그는 괜히 눈물이 나려 했다.
그것을 참기 위해 그는 시선을 돌려 석실의 내부를 살펴보다 흠칫했다.
그제서야 그는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 석실의 한쪽 끝에 한 명의 인물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죽어 있는 모습을. 앙상하게 뼈만 남은 그 인물은 아주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겹쳐입은 저고리와 통이 넓어 통풍이 잘될 것
같은 바지등은 중원이나 신강쪽의 복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해골 앞에는 세 가지 물건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세자 다섯치 정도의
길고 검은 빛이 도는 한자루의 장검과 한 자루의 부채, 그리고 한 자 길이의
짧은 칼집이 그것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인물은 두 손으로 짧은 칼을 쥐어 자신의 배부위에 대고 있
었다.
그 자세로 미루어 보건대 그 인물은 스스로 배를 갈라서 자결한 듯했다.
이검한은 시체를 바라보며 두 눈을 번뜩 빛냈다.
(저것은 왜국(倭國)무사의 복장이다!)
그는 급히 시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바로 십왕중 부풍신검황(扶風神劒皇)!)
그는 흥분을 금치 못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시체 옆의 바닥에는 손가락으로 휘갈겨 쓴 몇자의 글이 남아 있었다.


-나 부풍신검황의 깨끗한 패배다. 만독모모(萬毒母母)의 천층독강(千層毒?)은
우내최강인 본좌의 질풍검기(疾風劍氣)로도 뚫지 못하는구나.
패자는 스스로 죽어야 하는 법. 이에 천층독강이 본좌의 내장을 녹여내기 전
에 스스로 할복을 할 작정이다!


얼마 되지 않는 글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부풍신검황(扶風神劒皇)!


해골의 주인은 바로 그였다.
해외(海外)의 제일검사(第一劍士)! 아니 삼백 년 전 당시 우내최강의 검사가
바로 부풍신검황이었다. 동영 신풍검막(神風劒幕)의 지존이었던 그는 늘 천하
에서 적수가 없다고 자만했던 이유로 이곳 십왕총으로 유인되었다.
하지만 그는 십왕총에서 한 명의 무서운 여살성을 만나 일전을 겨룬 끝에 팔
십 인생을 끝마치게 되었다.


-만독모모(萬毒母母)!


부풍신검황을 쓰러뜨린 것은 바로 최강의 여독종(女毒宗) 만독모모였다.


이검한은 경이의 눈으로 부풍신검황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 부풍신검황의 절기는 아주 냉혹하고 신랄합니다. 이것이 철목풍 같은 자의
손에 들어가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 
언제 다가왔는지 철룡풍이 부풍신검황의 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검한은 그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빙긋 미소 지었다.
「 부풍신검황의 후계자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형님! 」 
철룡풍은 질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 무슨 말씀을! 부풍신검황의 진전은 당연히 은공께서 거두셔야 합니다! 」 
그의 말에 이검한은 고소를 지었다.
「 아직도 은공이라 합니까? 철형님이 어머니로 모신 분이 제게는 백모님이 되
시거늘! 」 
「 그렇기는 하지만······! 」 
철룡풍은 어색한 표정으로 어쩔줄 몰라했다.
바로 그때였다.
드드드드!
돌연 석실 전체가 지진이라도 만난 듯 세찬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물론 기관중추에서 하후진진이 또다시 기관을 작동시킨 때문이었다.
「 위험하다, 검한아! 」 
「 조심하십시오! 백모님! 」 
「 흩어지면 안됩니다. 한곳으로 모이십시오! 」 
각기 다른 세 남녀의 다급한 외침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콰콰쾅!
다음 순간 사방의 벽이 무너지고 바닥이 갈라지며 가공할 굉음이 그들의 외
침을 집어 삼켰다. 이 모두가 하후진진이 기관중추에서 기관장치를 조작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검한의 앞에는 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인가?


*          *          *          *


「 음! 도대체 어떤 자가 기관중추를 장악했단 말인가? 」 
캄캄한 어둠 속. 한소리 나직한 신음성이 어둠 속에서 울려 나왔다.
붉은 피풍자락을 펄럭이며 어두운 밀로를 걸어오는 소년은 바로 이검한이었
다. 그는 부풍신검황의 시신이 있던 석실이 뒤집히는 바람에 무정모모 화소
연과 철룡풍들과 헤어지고 만 것이었다.
(두 분 다 무사하셔야할 텐데!)
이검한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는 어둠 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전진해 나갔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촤아아아!
돌연 앞쪽에서 경쾌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목욕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이검한은 흠칫하며 멈춰섰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는 뜻밖의 장소에서 들려온 뜻밖의 소리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허억!)
막 어두운 밀로의 모퉁이를 지나던 이검한은 일순 질겁하며 두 눈을 부릅떴
다. 그의 앞에 실로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널찍한 지하광장이었는데 광장 가운데의 천장에는 하나의 동굴이 위
를 향해 뚫려 있었다.
깔때기 형상인 그 동굴의 끝부분은 온통 수정(水晶)과 석영(石英)으로 매워져
있었다.
스으! 스으!
동굴을 막은 수정과 석영을 통해 태양빛이 스며들어 동굴 안은 온통 신비로
운 광채로 가득했다.
천정에 뚫린 그 동굴 아래 하나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촤아! 촤아!
헌데 넓이 삼 장 정도의 연못 가운데는 한명의 여인이 상체만 드러내 채 목
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검한 쪽으로 등을 돌린 채 목욕을 하고 있는 여인의 주위로 수정을 통과한
오색광채가 휘황한 빛을 뿌리고 있어 신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투명한 우윳빛 피부, 엉덩이까지 치렁치렁하게 드리워진 삼단 같은 머릿결·····
··
여인은 무엇인가 나지막하게 흥얼거리며 섬섬옥수로 물을 퍼 가슴과 어깨를
닦고 있었다.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목욕하는 여인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고
혹적이었다.
이검한은 의아함을 금치 못하며 검미를 찡그렸다.
(저 여인은 누군데 이런 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여인의 뇌살적인 뒷모습에 절로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낀 이검한은 자신도 모
르게 이끌리듯 주춤 한 걸음 연못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툭!
그러다가 그의 발 끝에 작은 돌이 걸려 소리를 냈다.
「 ············! 」 
그 순간 여인의 뒷모습이 움찔 경직되는 듯했다.
이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허억!)
헌데 돌려진 여인의 모습을 본 이검한의  두 눈이 한껏 부릅떠졌다. 그는 일
순 숨을 죽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검한 쪽을 향한 여인의 얼굴, 그 아름다움을 어찌 표현해야 좋을 것인가?
십전완미(十全完美)!
그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 여인의 얼굴은 절세의 명공(名工)이 혼신의 힘을 다해 세공한 완벽한 미
(美)의 결정체, 바로 그것이었다.
추수같이 맑고 서늘한 눈동자, 마늘같이 오똑한 코, 그리고 작고 도톰한 입술
에 상아빛 두 뺨은 그녀를 인간세상의 존재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
더할 수 없이 청순한 소녀처럼 보이는 얼굴과 달리 여인의 몸매는 아주 완숙
했다. 폭발적인 염기를 뿜어내는 그녀의 알몸은 난숙한 중년여인의 그것이었
다.
「 끼아아악! 」 
이검한을 본 연못속의 여인은 마치 새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교성을 토하며
비칠 뒤로 물러섰다. 그녀 역시 이검한의 출현에 어지간히 놀란 듯했다.
여인이 놀라는 모습에 이검한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 죄송합니다, 소저! 결코 훔쳐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 
그는 급히 포권하며 사과했다.
그때였다.
첨벙!
여인은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린채 연못 속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마 놀라
기절한 듯했다.
촤아아아!
삽시에 여인의 모습은 물 속으로 잠겨버렸다.
「 소저! 」 
파앗!
이검한은 질겁하며 다급히 연못 안으로 뛰어들었다. 여인이 기절했다면 익사
하기 전에 구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헌데 물에 뛰어드는 순간 이검한은 무엇인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연못물은 겨우 이검한의 허벅지 정도밖에 안차 그다지 깊지 않았다. 그 물에
들어서는 순간 무엇인가 기이한 감촉이 이검한의 발 아래 밟히는 것이 아닌
가?
「 뱀[蛇]? 」 
깜짝 놀라 고개를 숙여 연못 바닥을 내려다 보던 그는 아연실색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 허억! 」 
그는 절로 터져나오는 놀라움의 신음을 어쩌지 못했다.
이검한이 밟고 있는 것은 온통 검은 비늘로 뒤덮인 둥글고 긴 물체였다. 그
물체는 연못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이검한에게 밟힌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놀라움의 시작에 무로가했을 뿐이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이검한은 다음 순간 아연실색했다.
「 너········ 너는! 」 
그의 두 눈은 경악과 불신으로 한껏 흡떠졌다.
언제였을까?
「 ··········! 」 
연못의 바닥에는 한 명의 여인이 반듯이 누운 채 배시시 웃고 있지 않은가?
물 속에 누운 채 이검한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는 여인은 놀랍게도 방금 전
이검한에게 등을 보인 채 목욕을 하고 있던 그 나녀(裸女)였다.
헌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 나녀는 믿어지지 않게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었다.
나녀는 허리까지는 분명 인간의 여자와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끔찍하게도 나녀의 허리 아래쪽은 한아름이 넘는 뱀의 몸뚱이가 아닌가?
즉, 이검한이 지금 밟고 서있는 것은 그 반인반사(半人半蛇)의 아랫도리인 것
이다.
이검한은 아연실색을 금치 못하면서도 어느 고서에서 읽은 반인반수(半人半
獸)의 괴물의 이름을 뇌리 속에 떠올렸다.
「 여와음교(女蝸陰蛟)! 」 
이검한의 입에서 한소리 불신에 찬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여와음교(女蝸陰蛟)!


이것이 이검한이 밟고 있는 괴물의 이름이다.
여와(女蝸)란 흙으로 인간을 빚어 만들었다는 전설의 여신(女神)을 일컫는 말
이다.
여신 여와는 흙으로 인간을 빚어 창조했으며 축융(祝融)과 공공(空空)의 싸움
으로 하늘이 무너져 대홍수가 났을 때 오색돌을 녹여 무너진 하늘을 막고 거
대한 거북이 네 다리를 잘라 하늘의 네 귀퉁이를 떠받쳤다는 보천설화(補天
說話)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 다른 신인 복희(伏羲)의 누이동생 또는 부부로 알려진 여신 여와는 상체
는 인간의 여인이었으되 하체는 뱀의 그것을 지닌 반인반사(半人半蛇)였다고
한다.
지금 이검한이 보고 있는 반인반사는 일종의 이무기(蛟)다.
오랜 수련을 거치면 언제고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고 알려진 영물인데 여
와음교(女蝸陰蛟)라는 이름은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뱀인  그 모습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여와음교는 여신 여와와 겉모양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
고 있었다.
여신 여와가 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보호해준 데 비해 여와음교는 닥치는 대
로 인간들을 해치는 악독한 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한 여와음교는 아주 음탕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 괴물은 아무 수컷이
나 만나는 대로 사로잡아 양기를 빨아먹는다. 여와음교는 불사(不死)의 몸을
지녀 인간의 손으로 죽일 수가 없다.
해서 여와음교에게 붙은 다른 이름은 불사미인교(不死美人蛟)였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사(不死)의 요물! 그 전설의 요물이 놀랍게도 이곳
십왕총의 깊은 곳에 살고 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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