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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캠퍼스 애정비사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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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899 회 작성일 24-02-21 10: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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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군바리와 호스테스의 외박



나는 도무지 어지러워지는 머리통을 감당하는 게 불가능했

다. 그것은 꿈도 꾸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 희창이의 그 이

야기는 그 말로만 듣던 접대부 아가씨들과의 2차, 즉 외박이

란 말이었다. 고로 나더러 저 뽀얗게 통통한 호스테스 현옥과

함께 자라는 권유 아닌가.



나는 기겁하여 녀석에게 항의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

다른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막히고 말았다.



"이사님, 차 준비되었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룸

살롱의 정문을 열어주며 안녕히 가십시오, 일제히 90도 각도

로 허리를 굽히는 그들이었다.



이쪽입니다, 손님. 엉겁결에 나 또한 한 말쑥한 양복쟁이

사내의 안내를 따라야 했다. 그는 주차장으로 나를 이끌더니

손수 희창이의 근사한 세단의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나더러

그 차를 타라는 의미였다.



"얼른 타세요…!"



그 뒷차창이 열리더니 손짓하는 목소리까지 있었다. 어리벙

벙한 내가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이미 말쑥한 회색 바지정장

으로 갈아입은 현옥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도리가 없었다. 그새 희창이도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현

옥의 손에 이끌려 뒷좌석에 몸을 싣자마자 양복쟁이는 앞좌

석에 자리를 잡고 능숙한 운전솜씨로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

로 향해야 하는지 진작에 지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나란히 앉은 현옥은 발그레한 얼굴을 감추지 않으며 연인

사이라도 되는 양 내게 팔짱을 끼고 달라붙고 있었다. 불안한

나는 운전석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어, 어디로 가는 거지 지금?"

"어디긴요, 이사님 오피스텔이래요."



"오피스텔?"

"네. 저도 한 번도 안 가봐서 몰라요."



기가 막힌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된 희창이길래 이런 최

고급 룸살롱의 호스테스 아가씨들을 자기 오피스텔에까지 자

신 있게 끌어들이는 것일까. 그 규모를 알 턱없는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끌려가기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차는 다리를 건너 강을 끼고 한참을 더 동북방향으로 향하

고 있었다. 대체 어디쯤인지 필경 교외로 빠져나왔을 무렵에

야 어느 산 속으로 들어서며 이내 어느 환한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는 희창이의 자가용이었다.



주차장 안에는 어깨동무를 한 희창이와 미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뜻한 캐주얼 차림인 미진은 다시금 선글라스를 끼

고 있었다.



"올라가자."

"여, 여기가 어디야?"

"후후… 올라가 보면 알아."



짤막한 그 대답과 동시에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희창이였다.

맨 꼭대기 층이 목적지인 듯 한참을 오르는 승강기, 나는 그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열렸을 때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래

지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희한한 건물구조는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 바

로 앞이 거대한 현관문이었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문을

빼고는 다른 어떤 문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앞에 선 희

창이 녀석이 다이얼 패드 같은 기계 앞에서 삑삑대는 소리를

내더니만 곧이어 그 거대한 문을 자동으로 열고 있었다.



"들어 와. 여기가 내 오피스텔이야."



이게 정녕 오피스텔? 믿기지 않는 나였다. 내가 아는 오피

스텔이라고는 고작 원룸(one-room)형 아파트가 전부이건만

이곳은 근 십 미터 넘는 복도를 돌아서야 그 전체 면모를 드

러내주는 엄청난 크기였다.



한 눈에도 양쪽이 확 트인 유리벽으로 된 공간이 나왔다.

한 이삼십 평도 넘을 그곳에는 근사한 소파와 테이블, 심지어

벽걸이형 TV까지 달려 있었다. 아마도 그곳이 거실쯤인 듯했

으니 건물의 구조상 이 8층 전체가 단 하나의 오피스텔이란

설명이었다.



"우와 굉장해요, 이사님…!"



철없는 현옥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쪽저쪽 구경에 정신

이 팔려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곳이 강 전체를 한꺼번에 내

려다보는 전망을 제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좀 씻지 그래?"



소파에 깊숙이 눌러 앉는 희창이는 여유만만이었다. 그리고

그의 얘기에 익숙하게 움직이는 것은 미진 쪽이었다. 그녀가

윗도리를 벗으며 어디론가 알아서 사라졌다. 그것은 분명 그

녀가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는 행동이었다.



"현옥이 넌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문을 열어 봐. 화장실은

세 군데나 되니까."



"진짜요? 후훗,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신바람 난 현옥도 거실을 나갔다. 화장실만 세 곳이라니.

나는 얼떨떨하여 희창이에게 물었다.



"여기… 여기는 대체 뭐냐?"



"어, 내가 반년 전부터 가끔 쓰는 곳이야. 사무실은 아니구,

머리 식힐 때만. 아버지가 여기 지을 때 투자를 조금 해두신

건데… 불경기 때도 이곳만은 안 팔아치우셨지."



머리 식힌다 - 보나마나 같이 하룻밤 같이 잘 여자와 올

때를 지칭하는 것일 게다. 아무튼 경외감마저 느끼는 나에게

녀석은 일어서며 씽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짱이 너 술 더 마실래? 저기 복도 끝이 주방이야. 거기 가

면 맥주 한두 박스 정도는 있을걸."



"아, 아니, 싫어. 그보다 너야말로 더 마시려구? 몸도 안 좋

아 보이는데…"



"괜찮아. 난 미진이랑 한 잔 더하고 잘 거야."



솔직히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이곳을 빠져나가고플 정도

로 주눅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시내에서 멀

고, 또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없는 외곽이었다.



"그럼 창희 넌 현옥이랑 복도 맞은편 방을 써. 그 방이 두

번째로 크니까… 이틀에 한 번씩 파출부가 다녀가서 그런 대

로 깨끗할 거야."



그 말만을 남긴 희창이는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복도 끝으

로 들어가버렸다. 결국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설

사 술을 가져온다 해도 녀석이 이리로 올 리도 만무했다. 보

나마나 녀석은 미진이 기다리는 방 - 아마 제일 큰 방일 게

다 - 으로 갈 테니 말이다.



다른 방도가 없는 나는 가르쳐준 방을 찾아보았다. 그의 말

대로 복도 맞은 편에는 방이 단 하나였다. 빼꼼히 열어보자

이미 널찍한 그 방안은 훤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방 하나로도 우리 집 내 방의 서너 배와 맞먹는 크기였

다. 붙박이 옷장과 스탠드, 가운데에는 근사한 침대보에 싸인

널찍한 더블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모두가 갓 청소한

것처럼 깨끗하기에 넋이 빠질 노릇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

에서 새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깜짝이야."



화들짝 나도 등뒤를 쳐다보았다. 현옥이였다. 그곳이 화장

실 중 하나였던지 잇닿은 문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오던 그녀

였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몸뚱이에 달랑 수건 하나만을 걸친

채였다.



필시 더 큰 사이즈가 없었나본지 상체를 가리기도 벅찬 조

그만 수건이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그것을 가로 세워 아래위

를 가리려드는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옆구리부터 발꿈치까지

는 길게 드러나 있었다.



나는 벙찐 눈길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일직선에 이르기까

지 아무런 옷자락, 그 하얀 팬티자락도 없는 걸로 보아 현옥

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뚱이임이 틀림없

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의 손에는 조그맣게 구겨져 쥐어진 천

자락들까지 들려 있었다. 레이스가 달려 있는 게 눈에 띄었

다. 그녀는 홀라당 속옷까지 벗고 나온 모양이었다.



"아이 참… 샤워 안 하실 거예요?"



비로소 무의식중에 현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나는 허둥지둥 시선을 돌렸다. 뚱한 표정의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는 화장실로라도 자리를

피해줘야 할 성싶었다.



냉큼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기는 씻어야 할 터, 하지만 샤

워기 물줄기 아래에서도 막막하기만 한 심정이었다. 다른 방

에 가서 잘까. 하지만 어느 방이 어느 방인지도 모르니 그럴

수도 없다. 게다가 여기까지 자기 소임을 다하기 위해 온 저

방안의 아가씨에게 그것은 결례였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렇다고 같이 잘 수도 없다. 같이 잔다,

어쨌든 2차의 의미에 포함된 같이 잔다는 의미에서는 말이다.



나는 그 순간 선영이 누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군대 3년간

의 금욕생활, 어차피 강요된 것이기는 해도 그것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껏 그것을 사랑하는 그녀에 대한 정절의

뜻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연유였다.



그렇기에 종내 나의 선택이란 샤워를 마쳤어도 입고 들어

왔던 옷을 고스란히 다시 입고 나오는 것이었다. 온돌방이 아

니니 침대에 눕기는 누워야 할 터, 그래도 커다란 침대이니

그 한쪽 끝에서 아무 일없이 눈을 붙이자는 게 내 계산이었

다.



내가 나왔을 때 어느덧 방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창

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으로 나는 현옥이 이미 침대 속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색하게 그녀 곁에

몸을 뉘였다. 조용한 걸로 보니 벌써 잠이 든 것일지도 몰랐

고, 그렇다면 더욱 다행이었다.



"안 주무실 거예요?"



찰나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놀란 나는 그녀 쪽을 바

라보았다. 눈동자 두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잠이 든

게 아니었다.



"어… 근데 옷을 다 입고 나오셨네요? 그럼 불 켤까요?"



내 동의도 없이 침대맡에서는 확 불이 켜지고 있었다. 그

예고 없는 행동에 눈만 껌벅거리다가 나는 벌떡 벌떡 허리를

일으켜야 했다.



어이쿠, 황당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느 틈엔가

내 곁에 바싹 다가와 누운 현옥 - 당혹스럽게도 이 아가씨는

걷어버린 이불 안에서 아무 것도 가리지 않은 전라의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혀, 현옥이 너…!"



얼른 두 눈을 감았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왔던 벌거숭이

그대로를 아직 유지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누운 하반신조차

아찔한 나체였다. 그런데도 직후 현옥의 입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말과 행동이 한꺼번에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항, 오빠는 내가 벗겨주기를 바라는구나."



오빠고 어쩌고는 안중에도 없었다. 스스럼없이 나의 심리적

경계를 넘어온 그녀가 대번에 내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어

찌 손을 써볼 여유도 주지 않고 있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꿀꺽거리는 침 삼키기에 내

저항은 목구멍 속으로 오르락내리락거릴 뿐이었다. 이어서 찰

칵,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내 하복부에서 울려나왔다. 허리띠

버클이 풀어지는 소리였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헌데 그 심각한 와중에서 별안간 호호

호,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오빠, 오빠는 정말… 후훗!"



문득 뭐가 그리 우스운지 발가벗은 몸을 이리저리 굴러대

며 키들거리기 시작하는 현옥이었다.

제11화 들켜버린 군용 팬티





호스테스 현옥의 갑자기 터져나온 웃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허리띠부터 부여잡은 내가 도망치듯 침대 가장자리로

몸을 사리는데도 그녀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아유, 난 설마 했었는데… 후훗."



무엇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 것인지 도무지 알 턱이 없는

나로서는 당황한 눈동자만 멀뚱거려야 했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마저 찍어내는 현옥이 그제서야 허리를 일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창희 오빠, 오빠 군바리죠?"



윽,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분명 스스로 내 신분을 밝힌

적도 없건만 - 그러나 벌써 다 들통났다는 듯 그녀는 한쪽

눈마저 찡끗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게요?"



도리도리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 일격을 당한 나

에게 힌트를 주는 현옥.



"팬티 때문이에요. 그거 군인들한테 공짜로 나오는 거잖아

요?"

"그, 그걸 어떻게…?"



"으응, 사실은요… 우리 친오빠도 군인걸랑요. 저보다 한 살

많은데 지금 상병인가 그렇던데. 그래서 전에 오빠 빨래해주

다가 본 적이 있었어요."



그랬구나. 실수라 할 수는 없어도 머쓱해지고 말 일이었다.

제대하는 날이랍시고 그래도 보급품 중에서 가장 새것을 골

라 포장만 뜯고 입은 것인데,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그것이

발각되리라고는 미처 꿈에도 상상 못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리 신기할 것도 없다는 듯 현옥은 베개를 끌어안

고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반짝일 뿐이었다. 웃어대느라 한참

을 두둥실 흔들어대던 그녀의 맨살 젖가슴이 그 덕분에 가려

지고 있었다.



"오빠는 계급이 뭐예요?"

"아, 아냐… 사실은 나 오늘 제대했어."



"오늘요? 진짜?"

"정말이야. 여기 전역증도 있는걸."



마치 누명이라도 벗는 것처럼 나는 지갑을 뒤적여 증거를

보여주었다. 그 까까머리 증명서를 들여다보고서야 현옥은 고

개를 끄덕거려주고 있었다.



"정말 그렇네… 근데 오빠 사진으로 보니까 너무 귀엽다.

그나저나 이사님과 동갑인걸 보면 꽤나 늦게 군대에 가셨나

봐요?"



"어… 원래 대학교 들어갈 때 재수를 했거든. 희창이는 방

위를 받아서 그런 거야."



"그래요? 그럼 저보다 세 학번쯤 위네요?"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현옥의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이

건 또 무슨 얘기냐, 세 학번 위? 그렇다면 이 아가씨가 대학

생이란 건가?



"어머,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아까 제가 그랬잖아요. 전 아르

바이트하는 거라구."



아르바이트라. 나는 지금껏 그 단어가 여기 오피스텔 어딘

가에서 희창이와 동침하고 있을 미진씨의 전속이라는 표현에

반대되는 말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말 그대

로 실제 여대생의 아르바이트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여자를 단 한 사람 알고 있기는 하다. 몰래바이

트 여대생 다미… 보영이의 친구이며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

던,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철없던 스물 한 살 시절의 나에게

적잖은 모험을 겪게 했던, 그 이름 안다미가 떠올려지고 있었

다.



그녀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여전히 작은 꿈을 간직하

며 그 글래머의 몸매를 간직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왠지

다미와 닮은 것 같은 현옥이었다. 짧은 머리에 비해 긴 스트

레이트, 소위 깻잎 머리라는 점만 빼면 그녀의 빵빵한 가슴

사이즈 따위가 그랬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변태 박 사장의 노리개였다는 어쩌

지 못할 그늘을 지녔던 다미와 달리 지금 현옥은 너무나 생

기발랄했다. 그녀는 자신이 여대생이라는 사실이 하등 거리낄

게 아니라는 투였다.



당당하다. 그 시절 다미에 비해. 이런 게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냐. 불과 이삼 년 번만 해도 쉬쉬해도 모자랐을 그런 이

야기가 이제는 그리 흠잡을 것도 아니란 것인가.



"하기야 제대를 했어도 군인 아저씨니까 모를 수도 있겠네

요. 우리 과(科)만 해도 흔한 일인데요 뭘. 아무래도 계열이

예체능이라 그런가…? 어쨌든 같은 과 안에서도 얼굴 예쁜

애들은 댓명씩 다 그렇던데."



얼굴 예쁜 애들이란 표현 자체가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뭔

가 아쉬운지 현옥에게선 푸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도 좀 더 잘빠졌으면 이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미진 언니가 부럽다니까요."



"미진씨…? 그럼 미진씨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뭐란 말이

야?"



그럼 미진씨 같은 경우란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나로서는

당연히 궁금할 만 했다. 다소 엉뚱했지만 황당한 현옥의 대답

은 이어졌다.



"오빠, 오빠는 오늘 술값이 얼마라고 생각하세요?"

"오늘 술값? 정확히는 모르는데… 아까 희창이가 이백 만원

이라고 하지 않았어?"



"맞아요. 그렇지만 그건 테이블하고 밴드, 그리고 제 팁만

그런 거예요. 거기에 미진 언니는 계산 안 한거라구요."



"그게 무슨 얘기야? 그럼 미진씨는 돈 안 받아?"



희창이네 닷컴(.com) 회사 모델이라더니, 설마 그 모델료에

포함되지는 않았을 텐데 - 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항, 그거요. 언니는 스폰서를 만난 거죠, 스폰서… 가끔

아주 잘 나가는 톱스타 아니면 그런 일들은 흔하거든요. 연예

활동 짬짬이 이런 일을 하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TV출연

한 번 한다고 해서 출연료가 얼마쯤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글쎄다. 낸들 그런 걸 알 리는 없어도 현옥은 혼잣말인 양

투덜댔다. 좌우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쥐꼬리만도 못해요.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래도

어느 정도 얼굴이 팔렸는데 아무 거나 입고 아무 거나 타고

다녀요? 활동비 필요하죠, 옷 값 들죠, 코디나 메이크업들 월

급 줘야죠… 그 돈들이 다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돈을 마련하면 그걸로 다시 활동비를 삼고, 그

활동비로 다시 이곳저곳 얼굴을 비칠 수 있게 로비도 하고,

결국 현옥이 들려주는 비화는 그것이었다.



"아마 오빠도 아실 걸요, 왜 가끔 떴다 싶은 신인들이 두어

달씩 싹 들어가 있다가 잊혀질 만 하면 다시 나오죠? 바로

그런 때 이런 일들을 하는 거예요. 돈 많은 스폰서한테 붙어

서 같이 다녀준다던가… 정 안되면 몇 달 동거도 해주거나."



그렇다면 그 연예인들 모두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곰

곰 생각해보면 그녀의 설명은 딱딱 사리에 맞아 들어가고 있

었다. 하여간 이야기를 끝낸 현옥은 문득 하품을 하고 있었

다.



"오빠 안 주무실 거예요? 오늘 제대했다면서 체력이 남아도

시나 보다… 누우세요, 제가 옷 벗겨드릴게요."



종내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옷을 벗고 나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뻔한 것이기에 나는 꼭 겁탈이라도

당하듯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돼, 됐어. 나는 그냥 자도 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그러니까 나는…"



어째야 하나. 어찌보면 코앞에 대준 먹잇감이나 마찬가지인

데도 나의 부득불 거절하는 의사표시에 그녀는 갸우뚱하는

얼굴이었다.



"혹시…?"

"혹시 뭐?"



"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세요? 저 정도하고는 같이 자

기 싫으신 건가요?"



"아냐! 그런 거 아냐…!"

"그럼 왜 그러세요? 미진 언니처럼 비싸지 않아서 마음에

안 드시는 거예요?"



이것 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연할 따름인 나. 현옥은

실망이라도 한 듯 투덜거리며 베개를 저만큼 치워버리고 있

었다. 그 바람에 나는 못 볼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있었다.



출렁이는 두 개의 동산, 그 밑으로 쪼그려 앉은 채 여전히

전라인 그녀의 하복부가 다시 드러났던 것이다. 허둥지둥 시

선을 돌렸으나 언뜻 그 사이로 내보인 것은 틀림없이 거무스

름하게 조그만 수풀이었다.

제12화 팬티 속에 현옥의 모닝키스를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고개를 돌린 채 나로서는 도리 없는

변명을 둘러대야만 했다.



"혀, 현옥아. 아니 현옥씨. 그래서가 아니야. 나, 나는 솔직

히…"

"솔직히 뭐요? 설마 고자예요?"



"어휴. 고자라니 그럴 리가… 잠깐 내 말좀 들어봐. 난 말

야, 실은 애인이 있어. 그래서…"



선영이 누나. 나는 그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사실 터놓고

말해서 선영이 누나를 얻기 전까지 내가 다른 여자들의 몸을

거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그녀를 만나는 동안에도 다른 여자와 동침한 일

이 있었다. 보영이, 예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최 마담…

게다가 어떤 행위는 아니었어도 야릇한 단계까지 흘러갔었던

다미. 그렇지만 그 모두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고 항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듣고도 현옥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

다. 슬그머니 나는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거웃한 사

타구니가 다시 보였어도 애써 무시하며 얼굴을 마주보았다.

뭔가가 이상했다. 의외로 그녀는 눈썹을 모아 나를 묘한 눈초

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오빠 천연 기념물이에요?"

"처, 천연 기념물?"



천연기념물이 숫총각을 의미한다는 것은 뻔한지라 나는 설

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그래요?"

"그럼 왜 그러냐니…?"



"아무리 애인이 있다고 해도 그렇죠. 무슨 남자가 그래요?

저랑 그런다고 잔다고 사랑한다는 그 사람하고 헤어질 것도

아니면서."



이 말을 옳다 해야 하나, 틀렸다 해야 하나. 어처구니없게

도 남자답지 못하고 핀잔을 주는 것은 내가 아닌 그녀였다.



"남자란 다 그런 거 아녀요? 살다 보면 술 한 잔 마실 여자

를 만날 수 있는 거구, 그러다가 같이 하룻밤 잘 수도 있는

거구… 그래도 자기 마누라나 애인한테 죄짓는 건 아니잖아

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건데."



허허, 그렇게 말한다면야 할 말이 없다. 모르는 척하는 것

이지 기실 그런 일이야 유부남에게건 총각에게건 비일비재한

사건 아닌가.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눈에 불을 켜는

일 아닌가.



행여 그게 발각이라도 된다면 몰라도, 어쨌든 그런 일로 스

스로를 타락했다 자부하는 사람을 본 경우란 드물다. 하여 나

로서는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려야 했다.



"저도 이런 생활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걸

이해 못하는 여자들도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게 문제

된다고 느끼는 분도 처음보구요. 핏, 어쨌든 유별나시네요…!"



대체 이걸 개방적이라 해줘야 되는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

다. 그녀의 토라진 말씨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결심을 굳혔다.

여기 호스테스 아가씨 현옥의 말대로 나중에 어찌 될지야 내

스스로 장담은 못하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홀로이 내 사랑

선영이 누나를 기다려야 할 오늘 첫날부터 그 다짐을 깨뜨리

기에는 아직인 까닭이었다.



이야기를 마치자 정말로 삐진 듯 현옥은 자기 쪽 침대에

돌아누워버리고 있었다. 다시금 속옷 하나라도 걸치지는 않았

으나 스탠드 불마저 꺼버리는 그녀였다. 마치 그렇게 내 처분

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포즈였다.



나는 갈팡질팡한 머리 속을 억누르며 한참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담배를 찾아 빼물었어도 씁쓸할 뿐 필경 무슨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한참 후 머리맡에서 재떨이를 찾아 끈 나는

몸을 눕히며 슬그머니 현옥의 눈치를 살폈다.



"현옥아… 자, 자니?"

"안 자요."



"있잖아, 나는 네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이

렇게 한 번 생각해 봐. 만약 내가 현옥이 너의 애인이라면…

그렇다면 너는 어떻겠니? 널 사랑해주는 애인이 어디선가 너

를 떠올리고 나처럼 말해준다면 말이야."



약간은 감동적인 얘기였을까. 비로소 퉁명스런 대답을 멈춘

현옥에게서는 묵묵부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전… 전 오빠 같은 애인이 없는 걸요."

"그래. 그렇다고 그런 애인을 사귀고 싶지 않겠어?"



"그거야… 좋아요, 그럼 저도 창희 오빠한테 뭐 하나 물어

봐도 돼요?"

"물어볼 것 있으면 물어 보렴."



"있잖아요, 그럼 제 직업이 이렇다는 건 빼고… 오빠의 그

말은 저 같은 애라면, 그렇다면 사귈만한 애란 얘긴가요? 그

래서 그런 식으로 저를 지켜줄 애인이 될 수 있어요?"



이건 또 무슨 얘기람. 나는 현옥의 진의를 몰라 어둠 속에

서 눈을 껌벅였다. 아마도 자기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은 모

든 여성의 기본심리인 모양이었다. 따라서 강한 부정이 나올

수 없는 내 입장이었다.



"나한테 애인이 없다면 그, 그럴 수도…"

"그래요? 정말요? 그럼 오빠 저랑 한 번 사귀어 볼래요?"



역시나 톡톡 튀는 스타일인 현옥은 돌발질문을 계속하고

있었다. 뜨악거려도 모자를 나인데 쿡쿡, 작은 웃음소리로 돌

아누운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였다.



"후훗, 걱정 마세요. 농담이니까. 전 지켜주는 건 고마워도

오빠처럼 꽉 막히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군바리는 싫다구요."



어쩌랴. 나도 실 없이 웃을 수밖에. 그 순간 현옥이 살짝

돌아누웠다. 살살대는 동작으로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어디 한 번 지켜보세요."

"뭐… 뭘?"



"저랑 같이 섹스 안 하실 거면 대신 안아는 주세요. 그건

괜찮죠? 저 오빠 어깨 베고 자고 싶어서 그래요."



그마저 거절하지는 못할 일이었다. 나는 결국 작게 팔을 벌

려주어야 했다.



현옥의 고개가 내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 들어와 살포시 뉘

어졌다. 따스했지만 그녀는 그냥 잠을 자지도 않았다. 그렇게

잠들 때까지 우리는 악의 없는 장난을 쳐대야 했던 것이다.



"뭐, 뭐야…!"

"아이 참, 일부러 만진 거 아니에요. 오빠 쪽으로 돌아눕다

가 그런 거라구요."



"그래도 허, 허리 아래는…"

"알았다구요. 팬티 속에만 안 들어가면 되죠?"



종내 팔베개를 한 나머지 손을 사타구니에 끼워 넣고서야

잠을 청하는 게 가능했다. 나는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다. 현

옥의 손을 그 위에 얹은 채 이따금씩 애매한 가랑이 춤을 만

지작거리는 그녀의 손을 간신히 막아내며 날이다.



그래서 잠자리가 불안했던 탓인가. 얼마간 설잠에 빠졌던

나는 알지 못할 느낌에 서서히 깨고 있었다.



눈언저리가 부셔왔다. 어느새 새벽인 듯 창가 쪽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옷을 입고 잤어도 미처 이불을

끌어당기지 못했으므로 온몸에 다소간의 냉기가 느껴졌다.



누운 그대로 기지개를 켜려던 나는 순간 한쪽 어깨가 서늘

함을 느꼈다. 게슴츠레 눈을 떠보았다.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그쪽에 있어야 할 현옥이 없었다.



그 때문에 완전히 정신이 들고 있었다. 그 때였다. 언뜻 그

한쪽 어깨가 아닌 다른 쪽에도 허전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

는 그 실체를 확인하려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러자 당장 으악

- 외마디 비명이 내 입에서 질러졌다.



"뭐, 뭐하는 거야 너!"



맙소사. 후닥닥 허리를 일으켜야 했다. 그러나 상체만 그러

했을 뿐 하체는 뒤따를 수가 없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시야에는 실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중이었던 것이

다.



현옥은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당연하리라. 그녀의 입이 무

언가를 막 머금어대고 있는 탓이었다. 배시시 웃는 눈웃음으

로 올려다보는 그녀의 고개, 그 얼굴이 어디에 있나. 다름

아닌 내 아랫배 위였던 것이다.



그곳에는 간밤에 잠들면서도 그토록 지키려 애썼던 내 중

심이 잔뜩 성이 난 위용으로 서 있었다. 그 군용 팬티도, 청

바지자락도 가려져 있지 않았다. 간신히 채워놓았던 버클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다시 끌러져 있었다.



다름 아닌 그 위에 그녀의 얼굴이 있었다. 새벽 발기(發起),

술기운에 잠들었어도 그 예외 없는 아침나절에 나는 남성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 우뚝 선 곳을 덮쳐든 현

옥의 입술이었다.

제13화 같이 자주지 않았다고 화가 난 TV스타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는 잘 돌이켜지지도 않는다.

아마도 나는 그 순간적으로 허겁지겁 양손으로 현옥의 머리

채를 붙들었을 것이며, 곧바로 물리쳤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자세에서 화들짝 뛰어올랐다. 침대에서, 이어서

방밖으로.



재빨리 바지춤을 챙기고서 덜렁이던 분신을 팬티 속으로

감춘 것은 오피스텔의 거실에 다다라서였다. 가쁘게 숨을 돌

려야만 했다.



순식간이었어도 자칫 발그레한 그녀의 입술이 위 아래로

움직이기 직전이었다. 아니 이미 절반 이상 그 안으로 사라졌

으니 몇 번쯤 들락이며 삼켜졌던 것 같았다. 아찔한 머리를

흔들며 나는 거실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침의 기습이라, 실로 어이없는 아가씨 현옥이었다. 고작

스물 하나 짜리가 그토록 농염하다는 사실에 나로서는 혀만

내둘러야 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나는 그곳에서 전혀 뜻밖의 인물과 맞닥뜨렸다.



"어… 자, 잘 주무셨어요?"



전혀 어울릴 리 없었어도 나는 그런 인사를 더듬거려야 했

다. 그것은 미진씨였다. 일찍 일어났는지 어느덧 말끔하게 화

장까지 끝낸 얼굴로 희창이의 방 쪽 복도에서 나타난 그녀였

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 아침인사까지 했건만 미진씨는 나

를 본 체 만 체 지나치고 있었다. 나는 오뚝한 콧날을 찡그린

그 표정이 미모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험악해져 있다는 것

을 알아차리고는 순간적으로 뜨끔해야 했다.



분명히 그 앞이건만 미진씨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

다. 다시 선글라스를 쓴 채 고개 한 번 까딱이지 않은 그녀의

또각또각 발소리에 이어 쿵, 하고 신경질적으로 닫혀지는 오

피스텔의 문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나는 떨떠름해졌다. 그 몇 초 동안에도 그 연예인 아

가씨가 상당히 화가 나있다는 것은 누구든 알 수 있는 일이

었다. 왜 그런 걸까, 희창이와 싸우기라도 한 것일까?



의아해진 나는 자연스레 그녀가 나온 문으로 다가갔다. 채

닫혀지지도 않은 그 방문에 고개를 디밀고 슬쩍 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그 이삼십 평이나 되보이는 방안은 호화스런 침대와 함께

테이블과 소파까지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맥주 병 몇

개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워낙 근사하고 큰 침대인지라

가까이 가서야 그 안에 누운 이를 알아볼 정도였다.



그 주인공은 응당 희창이였다. 녀석은 미진씨가 나간 것도

모르는 듯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그제야 시계를 보았

다. 여덟 시가 넘은 시간, 나는 녀석을 내버려두고 나가려다

망설였다. 그래도 이사님 신분인 희창이였기에 출근시간이 훌

쩍 넘고 있는 지금에는 아무래도 깨워야 할 성싶은 까닭이었

다.



"저기… 희창아."



희창아, 라고 두어 번을 더 불러서야 그의 눈은 떠지고 있

었다.



"으응, 창희구나. 벌써 아침이네… 몇 시냐?"

"여덟시 반인데… 안 일어나도 돼?"

"그래? 아니야, 일어나야지…"



끄응, 그러고서도 한동안이 지나 힘겹게 일어나는 희창이였

다. 과음 탓인지 어제보다 더 많이 상해 눈자위가 시커먼 얼

굴이었다. 침대 맡에 걸터앉은 내가 걱정스럽게 물어야 했다.



"너 요새 무리하나 보다. 안색이 안 좋아."

"후… 괜찮아. 다 그런 거지 뭘."



"그래도 좀 더 자는 게 좋지 않겠어?"

"나야 그러고 싶지만 이제 일어나야 해. 상진이 형이 데리

러 올 테니까."



상진이 형이란 그 사람이 이미 이쪽으로 오게 되어있는 듯

했다. 조심스럽게 나는 하나 더 머쓱한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미진씨가 방금 전에 나간 거 알어?"

"미진이? 몰라. 없으면 간 거겠지 뭐."



얼레, 묘하기는 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희창이는 그 몸값

비싼 모델 아가씨의 행방조차 전혀 궁금하지 않은 표정이었

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이런 말을 해

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까 미진씨 굉장히 화난 얼굴이

던걸."



피식, 그럼에도 녀석에게서는 그런 코웃음 비슷한 소리가

날 뿐이었다. 도통 알쏭달쏭한 반응이었다.



"혹시 지난밤에 둘이 싸웠어? 너 설마…?"

"설마 뭐?"



글쎄다. 얼버무리기는 했어도 난 희창이 이 녀석의 플레이

보이 기질을 연관시키고 있었다. 행여 그럴지도 몰랐다. 보나

마나 나와는 정 반대였을 테니 여자인 미진씨가 싫다는데 억

지로 동침을 했거나, 하기 싫다는 다소 야시시한 짓거리를 강

요했거나.



그렇지만 그는 내 상상과는 오히려 정반대 되는 대꾸를 하

고 있었다.



"그거… 내가 자기랑 같이 안 잤다고 그런 거야."

"같이 안 자다니? 같이 잤잖아?"

"어휴… 임마, 그런 거 말구."



희창이의 핀잔에 나는 얼떨떨하게 입이 벌어져야 했다. 녀

석은 정확한 의미의 동침, 다시 말해 섹스를 의미하고 있었

다.



"그럴 리가… 미진씨가 같이 자기 싫다든?"

"아니. 거꾸로야. 그 여자애가 같이 자달라고 하는 걸 내가

너무 피곤해서 싫다고 했거든."



뭐라구? 이게 정녕 무슨 이야기냐. 기가 막혔다. 톱스타는

아니더라도 연예인은 연예인인 CF모델 이미진, 헌데 희창이

가 자달라고 애원한 것도 아니고 거꾸로 그녀가 희창이와 함

께 자고 싶었는데 못 자서 화가 난 것이다?



설마 내가 못 만난 일 년 새에 이 녀석이 희대의 정력가라

도 되었단 말인가. 그래서 이 친구의 절륜을 하루라도 받기

위해 이미진 같은 스타도 안달이란 건가. 잘못 들은 것이 아

니었다.



나는 그 믿지 못할 이야기에 귀를 의심했다. 그럴 수만 있

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남성들이 한 번쯤은 동침을 꿈꾸었을

그녀인데 그런 그녀가 먼저 원했다니 이 무슨 해괴한 얘기일

까.



"너는 어땠냐? 현옥이란 애 쌈빡하지 않았니?"



입이 다물어질 새도 없건만 조금씩 기운이 난 희창이는 질

문의 화살을 내게 돌리고 있었다. 현옥이 그녀와 잘 기회도

어쨌든 이 녀석이 만들어준 것이기에 차마 실상을 고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저 얼렁뚱땅 넘길 이야기였다.



"그, 그냥 그랬어."



"그냥 그래? 웃기지 마… 걔들이 보통 애들인 줄 알아? 어

제 그런 데 있는 애들은 함부로 외박 안 나온다구. 보나마나

2차 따윈 한 번도 안 나간 애들도 수두룩할 거야. 그렇다 해

도 그 애들 2차가 얼마나 비싼데."



비싸다니 얼마나… 라는 내 물음에 희창이는 손가락 하나

를 펴보였다가 다시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펼쳐 보였다. 그렇다

면 일 더하기 오, 최소한 육십 만원이라는 표시였다.



이럴 수가. 목구멍으로 꼴까닥 소리가 넘어갔다. 총액이 이

백 이상이었으므로 양주 두어 병이 한 돈 백 이상, 밴드는 이

삼십, 고로 룸에서의 기본 팁을 포함한다 해도 현옥이 단 한

명에게 육십 만원 이상 - 틀린 계산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알기로도 흔히 듣는 그렇고 그런 술집 아가

씨에 비해 두 배, 아니 세 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그런 그

녀를 손 하나 안 대고 재웠다니, 누구 다른 사람의 경우엔 돈

이 아까워서라도 동침을 마다 않았을 일이었다.



"몰랐어? 거기 애들 전부 다 전문대 이상은 다니는 애들일

거야. 아니면 최소한 어느 방송국에 공채 몇 기(旗)는 다 될

테구."



갈수록 나는 변해버린 이 희창이 녀석의 처지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녀석은 그 모든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지나가는 어

투로 지껄이고 있었다. 놀란 내가 말문을 잃고 있는데 우리

가 있는 방문 쪽에서 때 마침 빼꼼이 고개를 들이민 목소리

가 들려왔다.



"저기… 이사님."



현옥이었다. 어느새 정장을 가지런히 차려 입은 그녀는 새

삼 공손해진 얼굴로 우리에게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응, 왜?"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오전 수업이 있어서요."



수업. 그녀가 여대생임을 증명해주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

육십 만원 짜리 아가씨답게 아침까지 예의바른 그 모습에 희

창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보였다.



"근데 저기요… 창희 오빠, 저 좀 잠깐 보실래요?"



그런데 돌아서려던 현옥은 귀엽게 웃어 보이며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엉거주춤 일어선 내가 다가서자 그녀는

팔짱을 끼며 밖으로 불러내고 있었다.

모르겠다. 방금 전 그렇게 침대에서 뛰쳐나왔건만 현옥은

그리 내가 화를 낼만한 일을 저질렀다 생각지 않는 것 같았

다. 나로서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나 하도 생글생글 웃는 그녀

인지라 일단 희창이의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따라나올 수밖

에 없었다.



"후훗, 아까 제가 그래서 화나셨어요 오빠?"

"아… 아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더니, 나는 그 천진한 아양에 뭐

라 할 말을 잃어야 했다. 그러자 그녀는 당장 희색을 띠며 무

작정 내 등을 떠밀고 있었다.



"어… 뭐, 뭐하는 거야?"

"다행이네요. 그럼 우리 같이 나가요."

"같이 나가? 어디를?"

"이 아래 버스 정류장까지요. 어제 미진 언니한테 물어봤는

데, 여기 오피스텔 앞에도 시내버스가 다닌대요."



얼렐레, 희창이를 놔두고 나더러 함께 시내로 돌아가자는

건가. 막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려는데 어깨마저 흔들며 애교

를 떠는 현옥이었다.



"아이, 저 안 바래다 주실 거예요? 이사님은 좀 더 주무시

라 그러구, 그 동안 오빠는 잠깐 내려갔다 오면 되잖아요. 혼

자서 내려가는 건 심심해서 그렇단 말이에요…!"



자기 혼자서 내려가는 게 심심해서 - 정말 한참은 철이 없

는 아가씨였다. 도리 없이 나는 반 억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말았다. 아침부터 내 바지까지 벗기면서 엉뚱하기 짝이 없는

짓을 펼쳤음에도 그녀는 마치 나와 무슨 데이트라도 나온 양

천연덕스럽게 굴고 있었다.



어쨌든 일단 밖으로 나온 나는 그제야 오피스텔의 전경을

제대로 보는 것이 가능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높다른 언덕

위에 위치한 그곳은 그녀의 말대로 씽씽 차소리가 들려오는

국도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와… 신난다. 날씨 정말 좋죠?"



쌀쌀함이 가시지는 않았으나 아닌게 아니라 아침 햇볕만큼

은 화사했다. 언덕 아래에 이르는 탄탄히 뻗은 아스팔트 진입

로는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고, 결국 나는 책망

한 마디 못한 채 현옥에게 팔짱마저 끼인 채 터덜터덜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걸어야 했다.



"진짜 상쾌해요. 이런 길 정말 오랜만인데."



또 한 번 팔뚝 사이로 뭉클한 그녀의 젖가슴이 닿아왔다.

철부지여서일까, 아니면 정말 나와 산책이라도 나왔다 착각하

는 걸까. 하여간 애교 하나는 뚝뚝 넘치는 그녀의 말에 나로

서는 멍청히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불가항력적으로 따라나선 길이었어도 상쾌함만은 사실이었

다. 만약 이 얼떨떨한 아침만 아니라면 누군가와 한적하게 삼

림욕 데이트라도 하기엔 딱 안성맞춤인 주변이었다.



"아, 잠깐만요!"



그러다 생각난 게 있다는 듯 현옥은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

다. 잠시 멍청하게 구경하는 내 앞에서 핸드백을 뒤적여 종이

와 볼펜을 꺼내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뭔가를 적더니 그

곱게 접힌 메모지를 불쑥 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자요, 창희 오빠."

"이, 이게 뭐야…?"

"으응, 제 핸드폰 번호에요."

"핸드폰 번호? 이걸 왜 나한테…?"



핸드폰 번호라. 메모지를 펼쳐보는 내 앞에서 그녀가 귀엽

게 혀를 내밀어보였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설마하는 예감에

황당해졌으나, 재빨리 설명이 들려왔다.



"킥킥. 걱정 마세요, 어제 했던 말처럼 오빠랑 사귀자고 적

어드리는 것 아니니깐… 사실 어제랑 오늘 죄송해서 나중에

언제 제가 맛있는 것 사드리려고 그래요. 누가 알아요? 오빠

여자친구는 외국에 있다는데, 잘되면 제가 소개팅이라도 시켜

줄지?"



뭐라구? 술집에서 만난 이 호스테스 아가씨가 소개팅을?



"농담 아니에요. 오빠는 좀 쑥맥이긴 해도 그게 저는 맘에

들걸랑요… 제 친구 중에서 제일 예쁜 애로 소개팅해 드릴게

요. 고리타분한 성격 좀 바뀌라고 진짜 끝내주는 애루."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생경하여 웃지도, 그

렇다고 울지도 못할 그 말에 내게서는 한숨소리만 지어졌다.



도대체 요즘 아가씨들은 왜 이렇게도 당차단 말이냐. 술집

에서 2차를 나와서 하룻밤을 함께 잔 사이 - 물론 정확히 말

해서는 따로 잤지만 - 의 남자에게 서슴없이 자기 친구를 소

개시켜준다니. 그러나 내 황당함에도 아랑곳 않는 현옥은 손

뼉까지 치며 기꺼워했다.



"어머, 근데 여기가 정류장인가 봐요…?"



벌써? 그러고 보니 그 사이 큰길가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

하고 있는 우리였다. 미처 대꾸할 틈도 없는데 이내 버스가

저 멀리서 나타나고 있었다.



버스가 서자 현옥은 운전기사에게 시내 방향을 물은 뒤 금

방 올라탔다. 나는 어제와 달리 깔끔한 세미정장인 현옥의 뒷

모습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찰랑이는 치마폭으로 예쁜 다리를

내보이는 그녀는 얌전한 오피스걸이나 여대생의 모습으로 완

전히 돌아간 모습이었다.



"그럼 갈게요. 오빠. 꼭 전화하셔야 돼요!"



차창으로 손까지 흔들어주는 아가씨,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침나절 헤어지는 연인으로 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

심스런 나는 고개만 설레설레 저어졌다.



종내 그녀를 보내고 다시 오피스텔을 향해 걸어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백여 미터 갔을 무렵이었다. 문득 등

뒤에서 울리는 요란한 클랙션 소리가 있었다.



"아, 창희씨가 맞군요."



뒤를 돌아보니 자동문이 내려서며 누군가가 아는 체를 하

고 있었다. 그것은 상진씨였다. 그가 희창이의 고급승용차를

몰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타시죠, 어차피 올라가는 길이면."



나는 그가 열어주는 차 문으로 올라타야 했다. 그는 어느새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는데, 뒷좌석에는 양복케

이스를 싣고 있었다. 아마도 희창이의 옷가지까지 챙겨오는

길인 것 같았다.



"어때요? 아가씨들이랑 좋은 시간 보냈습니까?"



아가씨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다… 깍듯했어도 그 묘한 표

현에 나는 그만 머쓱해졌다. 상진이 형이란 이 사람은 희창이

와 내가 당연히 아가씨들과 동침했으리라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아 예, 덕분에. 대답을 얼버무렸더니 그는 흘끔대며 나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행여 내가 불만족스럽지 않았을까 하

는 그런 눈치였다.



"그 룸살롱 홍콩은 초일류급 아가씨들만 나오는 곳이죠. 아

실 테지만."



무어라 그런 것도 아닌데 슬그머니 감싸고 도는 그의 말에

나는 그 탤런트 호스테스 미진씨와 방금 전 현옥의 모습을

교차시켰다. 저으기 호기심이 생기고 있었다. 어제 룸살롱 복

도에서의 일이 생각난 때문이었다.



"저… 근데요, 어제 미진…"

"네…?"



그렇지만 미진씨와 댁하고는 어떤 사이입니까, 라고 물으려

다 나는 차마 입을 다물었다. 그럴 필요는 없는 까닭이었다.

딱히 그런 연예계 비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겠으나 혹시라도

내가 들은 그 상진이 오빠 운운하던 CF모델 미진씨의 말이란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컸다.



"다시 한 번 말해주시죠. 어제라니오?"

"아,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집요해지는 질문은 상진씨에게서였다. 그의 눈

썹이 교묘히 찡그려지는 것을 깨달은 나는 멋적게 실없는 웃

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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