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애정비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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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이 문제가 되거든 삭제 해주시고요...
첫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보았는데 2번째 이야기가 보이지 않아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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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Ⅱ>
제 1화 프롤로그 - 제대하던 날
전체 차렷, 단결!
흔히 남자들은 말을 한다. 제대만 해봐라, 내 그럼 다시는
부대 쪽 산천으로는 오줌 한 방울도 아니 싸리라 -
왜 그런 말들을 하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 나는 사단장
정신교육을 마친 연병장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모든
공식적 전역 행사가 마쳐진 것이다. 방금 전의 그 단결 구호,
현역병 시절의 그 마지막 경례구호를 끝으로 나는 이제 예비
군의 신분이 되고 있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우두커니 선 내 눈앞으로 군용 트
럭들이 주르르 열을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경외감
을 지닌 채 나를 바라보는 얼굴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호기심과 겁이 반반씩 섞인 얼굴들. 나는 그들의 모표에 아
무 것도 붙어있지 않다는 걸 볼 수 있었다. 보나마나 이제야
이곳 사단본부로 자대 배치를 받아온 신병들이었다. 한 사람
이 나가면 그 자리를 채울 한 사람이 어김없이 들어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이런 군대라는 곳의 철칙이었다.
"아따, 안 됐다. 아그들아!"
왠지 씁슬한 내 곁에서 히히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 병장이었다. 소속부대에서 유일하게 나와 함께 전역하는
동기, 그가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찍찍 침을 뱉고 있었다.
나는 행여나 싶어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빨 새
로 한 번 더 침을 내쏘며 그가 핀잔을 주고 있었다.
"큭큭… 뭘 그렇게 쫀다냐. 인자 우리는 민간인인디."
머쓱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의 말이 맞기는 맞았다. 입수
보행을 해도, 이렇게 내놓고 담배를 펴도, 지금부터는 아무에
게서도 눈치를 받지 않는다. 나는 그 새로운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다시금 주변을 휘 둘러보는 나였다. 예비군 마크를 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아련한 아쉬움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올 수 없으리라. 이 연병장, 이 막
사, 그리고 3년 가까이 박박 기며 돌아다닌 이곳의 산천들…
그런 생각에 엊그제만 해도 지겹던 풍경들이 새삼 그리움으
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박 병장과 나는 천천히 사단본부의 위병소를 통과했다. 이
곳에서 시외버스만 잡아타면 그와 나는 곧장 집 앞으로 돌아
가게 될 길이었다.
"창희 너는 뭐할 것이여?"
"나…?"
"아 참, 니는 대학생이었제. 그라믄 다시 학교 댕기면 되겄
구만."
학교라. 왠지 아직은 어색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우리 대학
교, 어차피 얼마 후 복학하게 되겠지만 고졸 출신인 박 병장
은 나와는 처지가 조금 달랐다.
"에구… 난 뭘해야 할지 모르겄네. 고향 집 농삿일이나 도
와야 할텡께."
그에게 나는 슬그머니 웃어보였다. 신병시절 얼빵한 성격으
로 일찌감치 고문관으로 찍힌 탓에 애꿎은 동기인 나까지도
왕왕 고생시켰던 그였으나, 어차피 함께 그 긴 시절 동고동락
을 해왔던 셈이었으니 나로서는 그에게 적잖은 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판에 나도 서울 올라가서 장사나 해볼까나, 하는 그의
푸념을 듣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요란한 클랙션 소리가 들
려왔다. 그 생소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박 병장과 나인데,
순간 기대치 못하던 목소리가 나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있었
다.
"야, 짱이야!"
짱이 - 이럴 수가. 대번에 그 목소리를 알아들은 나는 뛸듯
한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를 그렇게 부를 녀석은 이 세
상에 단 한 놈만이 유일한 까닭이었다.
으리으리한 검은 색 세단, 그 옆에서 선글래스까지 낀 그
녀석이 나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마치 홍
콩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 팔을 벌리고 그에게 다가갔다.
"우하하하. 여기 이짱님이 납시셨다."
"임마… 너, 네가 어떻게?"
우리는 서로를 반갑게 부둥켜안았다. 희창이였다.
"짜식, 오늘 제대하는 날인 걸 어떻게 알았어?"
"어쭈… 내가 모르는 게 어딨냐? 어머님께 전화해서 미리
다 알아놨지. 근데 창희 너 군기 봐라, 고참한테 경례도 안
해?"
"하하, 웃기고 있네. 방위 녀석이 어디서 똥폼은."
그랬다. 외아들 희창이는 나보다도 서너 달이나 늦게 입대
를 해서 벌써 일 년 전에 제대, 아니 소집해제를 당해 있었
다. 생각도 못했던 차에 마중을 나와준 녀석을 보니 어쨌든
나로서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워매… 차 징허게 좋네?"
등뒤에서 들려온 그 부러워하는 목소리에 그제야 나는 희
창이와 잠시 어깨동무를 풀었다. 멍하니 선 박 병장이 휘둥그
래진 눈으로 나와 희창이, 그리고 대형 승용차를 바라보며 감
탄사를 남발하고 있었다.
"어… 희창아, 인사해라. 나랑 같은 부대에서 제대하게 된
동기야."
안녕하십니까, 희창이가 인사를 건네자 어이구 안녕하시당
가요, 라며 어색하게 허리마저 굽신거리는 박 병장이었다. 얼
떨떨한 표정의 그에게는 이 최전방까지 번지르르한 양복 차
림으로 고급 승용차를 몰고 나타난 희창이 녀석이 어쩐지 어
마어마한 인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가자. 민간인 창희!"
희창이가 차 문을 열며 권했다. 나는 눈만 꿈벅거리는 박
병장을 돌아보았다.
"박 병장 이리 와. 서울 가서 기차 탈 거라고 했지? 같이
가자."
"어휴, 괜찮해… 내 주제에 무슨. 근디 창희 너 서울서 대단
한 인물인갑네? 저렇게 근사한 으리으리한 사람이 다 나와있
는 걸 보니께."
"하하, 아니야. 그냥 내 불알친구야. 그러지 말고 함께 타자
구."
하지만 내 거듭된 청에도 박 병장은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자기 신분엔 버스가 제격이라며 그는 굳이 동행을 고사
하고 있었다.
"그럼… 언제 서울 올라오면 꼭 연락이라도 줘. 내 연락처
적었지?"
그래서 결국 그와 나는 미리 교환해둔 연락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작별을 고해야 했다. 내가 차에
오르자 마자 희창이는 차를 출발시켰고, 나로서는 멀어져 가
는 그의 모습이 사라질 무렵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게 전부였
다.
얼마간 서먹한 기분을 정리한 나는 희창이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운전석이 아닌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앞자리에는
마찬가지로 반듯한 양복차림의 한 사내가 대신 운전을 하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근사한 차로 바꾼 거야? 그 스포츠카는 어쩌
구?"
"아, 그거… 뭐 그럴 일이 좀 있었어. 그나저나 인사해라.
상진이 형이라고, 내 일 좀 도와주는 분이셔."
상진이 형. 그것은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이름이었다. 내가
백미러를 통해 인사를 건네자 그가 마주 눈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어림잡아 희창이나 나보다 서너 살 위로 보이는 그는
다소 작은 눈을 제외하고 호남 형의 멀쑥한 인상이었다.
"창희 너 어디로 가고 싶냐?"
"어디라니?"
희창이가 내 무릎을 토닥거렸다. 입대 전 학창시절과 달리
좀더 호리호리해진 녀석이었어도 예의 그 장난기 가득한 미
소만은 여전히 얼굴에 가득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의 둘도 없는 친구인 네 녀석 제댓날 아
니냐. 이렇게 보낼 수야 없잖아? 말만 해라. 오늘 너 완전히
홍콩 보내줄 코스로 쫘악 안내를 할게."
홍콩 보내줄 코스? 나는 그의 허풍에 피식거리고 말았다.
아무리 군대를 다녀오고 몇 살을 더 먹었다지만 희창이 녀석
의 이 호탕한 성격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다 줘. 제대 인사는 드
려야지."
"오케이. 역시 예의 바른 놈이다, 너는."
희창이는 앞좌석의 상진이 형이라는 사람에게 우리 집이
있는 강북을 댔다. 경쾌하게 속력을 내기 시작한 차 안에서
그는 문득 생각난 양 물었다.
"근데 선영이 누나는 너 오늘 제대란 거 아냐?"
선영이 누나. 학교 선배이자 두 살 연상인 나의 연인. 아직
도 가슴 설레이는 그녀의 이름에 내게서는 작은 혼자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마 알 거야. 지난 주 편지에 그렇게 썼으니까."
"그래? 그러고 보니 나도 제수씨 얼굴 본 게 한참일세… 너
도 그렇지? 작년 여름방학이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타지에 멀리 떨어진지라 어느
덧 반 년 이상이나 우리는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희창이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래도 넌 참 행운이다. 군대에 있던 너나 유학 가 있는
선영 선배나 그 덕분에 서로 믿을 수 있었잖아."
녀석에게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적어도 나는 선영이
누나와 헤어지리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제 2화 프롤로그 - 이백만 원짜리 룸살롱
일단 집에 돌아온 나는 기다리고 계신 아버지 어머니께 제
대 신고와 함께 큰절을 올렸다. 비록 열흘 전 말년휴가 때도
뵌지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으나 그래도 만면에 희색이신
부모님들이었다.
오후가 되서야 도착한 서울이었기에 희창이와 나는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해야 했다. 역시나 민간인으로 처음 먹는 집
의 밥맛마저도 남다를 뿐이었다.
"저 아버님, 오늘 창희 좀 데려가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자리에서 희창이는 대뜸 아버지에게 그렇게
여쭙고 있었다. 고맙게도 그간 내가 집에 없는 사이 가끔씩
우리 집에 들려 안부를 보살펴주었던 녀석이었다. 그 덕에 어
려울 리 없는 청인지라 우리 부모님의 어쩌려느냐는 웃음 띤
물음에도 그는 눈만 찡긋댈 수 있었다.
"헤헤, 이 놈한테 사제 물좀 먹이려고 그러죠. 지난 말년휴
가 때도 제가 바빴던 통에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하고 들여보
냈었는데, 오늘은 간만에 창희랑 좀 놀다 오겠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못내 허락을 내리시는 아버
지였고 다만 어머니만이 술 많이 마시지 말아라, 라고 주의를
주고 계셨다. 그래도 워낙 넉살 좋은 희창이의 언변에 그리
걱정을 보내시는 눈치는 물론 아니었다.
"나가자, 옷 갈아입어."
나는 녀석이 시키는 대로 군복을 벗고 대충 편한 옷으로
바꾸어 입어야 했다. 그러나 뭔가가 못마땅한지 희창이는 내
게 핀잔 아닌 핀잔을 보내고 있었다.
"청바지? 그런 옷들밖에 없냐?"
"그럼 뭘 입어. 다 군대 가기 전에 입던 옷들인걸."
"안되겠군. 나중에 너 양복 한 벌 빼주랴?"
대체 어디를 데려가려는 것이길래 그러는지 몰라도 퍽 호
들갑스런 희창이였다. 어쨌든 군복을 벗고 깔끔한 옷을 고르
자 녀석은 서둘러 대문을 나서며 앞장을 섰다.
"가요, 상진이 형."
놀랍게도 우리가 타고 온 세단은 집 앞에서 세워진 채 기
다리고 있었다. 희창이와 내가 다시 차에 오르자 상진이 형이
라는 그 사람은 잠자코 운전대를 붙잡으며 행선지를 물을 따
름이었다.
"뻔하죠 뭐… 홍콩으로 가요, 형. 연락 좀 해주시구요."
홍콩? 아까는 농담으로 홍콩을 보내준다더니 대체 무슨 말
일까. 그러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아 예, 지금 홍콩으로
모시고 가는 길입니다 - 라고 보고까지 하는 상진이 형이었
다.
의아할 수밖에 없는 나인데, 그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릴
것이었다. 우리가 탄 차는 한강을 건너 강남의 한복판을 지나
더니 어느 고층빌딩 앞에 세워지고 있었다. 십여 층이 훌쩍
넘는 건물, 지은 지 얼마 안되어 상당히 호화로운 그 빌딩 앞
주차장에 다다라서야 나는 어디에 온 것인지 비로소 눈치를
챘다.
룸살롱 홍콩 - 이라는 번쩍번쩍한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었
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장소임을 안 내가 돌아봤으나 희창이
는 한 발 먼저 당당히 차를 내리면서 뭐라 지시를 내렸다.
"상진이 형 아직 저녁식사 안 하셨죠? 그럼 여기서 그냥 퇴
근하세요."
"그래도 되겠어? 차는 어쩌려구?"
"여기 세워두죠. 정 뭐하면 대리운전시키고요."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할게."
잠깐만요, 형… 그런데 차 키를 건네고 물러가려는 상진씨
를 희창이가 다시 돌려세웠다. 녀석이 속주머니에서 뭔가를
내밀어 그에게 건네고 있었다. 언뜻 보니 하얀 색 수표인 것
같았다.
"어디서 저녁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럼 잘 놀다가. 내일 스케쥴은
알고 있지?"
저녁값으로 수표라. 상당한 씀씀이였다. 그를 돌려보낸 희
창이가 다가오자 나는 저으기 놀란 표정으로 물어야 했다.
"어떻게 된 거야? 저 분 너희 집 운전기사냐?"
"누구? 상진이 형? 그런 건 아니구…. 뭐랄까 내 비서 같은
형님이지."
비서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내가 알기로 희창이는 아
직 한두 학기가 더 남은 학생의 신분인데, 그런 대학생이 비
서까지 두었다는 걸까?
"뭐해 임마. 들어가지 않구."
나로서는 어리둥절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고 이내 빌딩의 지하에서는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척 보기에 기도로 보이는 어깨 하나와 웨이터 두엇이었다.
기도가 꾸벅 허리를 굽혔고 한 웨이터는 차 열쇠를 받아들었
다. 그리고 나머지 웨이터는 주차장에서부터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어머나, 우리 이사님 오셨네?"
이사님? 겉보기만으로도 으리으리한 룸살롱의 문 안에 들
어서자 당장 달려나오는 인삿말은 그것이었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입으로 보이는, 홍콩이란 이름에 걸맞게 옆선이 쭉 트
인 야시시한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여자였다. 마담인 모양이
었다.
"어머. 이사님 오셨어요, 언니?"
이건 또 뭐냐. 이어서 마담을 언니라고 부르는 아가씨 서넛
또한 쪼르르 달려나온다. 희창이 녀석, 녀석이 이곳에서 퍽
대단한 단골손님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광경이었다.
이것 때문에 나더러 근사한 옷 없느냐 물은 녀석인 듯했다.
도무지 주눅만 드는 나로서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그녀들의
환대 속에 깊숙한 안쪽으로 따라가야 했다. 두꺼운 나무 문을
지나니 한 열 명은 들어가도 남을 크기의 커다란 룸이 나타
났는데, 엉거주춤 우리가 그곳에 앉혀지자 그 나긋나긋한 마
담이 희창이에게 상냥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사님 오늘은 어떻게 맞춰드릴까요?"
말끝마다 붙는 그 이사님이란 호칭. 그런데도 하나 어색하
지 않게 거드름을 피우는 희창이였다. 나는 녀석의 입에서 너
무나 수월하게 튀어나오는 한마디에 그만 입이 떡 벌어졌다.
"글쎄… 오늘은 둘 뿐이니까, 일단 술값만 한 이백 정도 계
산해 줘."
이백… 뭐라구 이백? 설마 장난은 아닐 테니 이백 원은 절
대 아닐 게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듣는 마담 여자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네, 알았어요. 애들은 어떡할까? 오늘 새로 오신 손님도 있
는데 신고식부터 해드릴까요?"
"응. 이쁜 애들 골라서 이 친구한테만. 나는 누군지 알지?"
"아유, 이사님이야 알죠,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주 쫙
빠진 애들로 대령할게요."
도저히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할 나는 그저 마담과 희창이
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았다. 신고식이 뭘 의미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나,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대체 어떻게 이 녀
석이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이는 게 가능한가 그것이었다. 마담
이 나가자 나는 황당한 얼굴로 그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어야
만 했다.
"얌마, 이짱. 이게 다 뭐야?"
"뭐긴 뭐야? 룸살롱이지."
"누가 룸살롱인지 몰라서 물어? 니가 이사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구!"
주눅은 들었어도 으르렁대는 내 목소리에 그제야 희창이는
아차하며 말을 꺼내고 있었다.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든 녀석이 그것을 불쑥 내게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나는 영어로 씌어진 그것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무슨무슨
코퍼레이션(기업)이라는 밑에 굵은 글씨가 똑똑히 박혀 있었
다. 이사. 희창이의 이름 앞에 씌여진 것은 분명 이사(理事)라
는 직함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으응… 내가 깜빡 잊고 말을 안 했구나. 우리 아버지 말야,
그 양반이 요새 새로운 데에 투자를 좀 하셨거든. 그래서 그
냥 거저 얻게 된 직함이지 뭐."
사업을 하시는 희창이 아버지야 나도 잘 아는 터, 녀석은
대충 저간의 사정을 짤막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IMF를 겪기 직전 - 딱 내가 군대에 있던 시간이다 - 그의
아버지가 별 생각없이 인터넷 쪽에 돈을 돌리셨다… 헌데 그
것이 대박을 터뜨렸고 결국 그 덕분에 그 경제 불황을 극복
하셨다… 하지만 워낙 그 내용이 젊은 감각을 요구하다보니,
어차피 후계자 수업을 시키느라 경영학과로 보낸 아들놈인
자기에게 의지하시게 되더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간단해. 닷컴(.com) 하나 개발한 거지. 그 덕분에 휴학까지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많이 바빴어. 그래서 너 말년휴
가 때도 술 한 잔 못사줬던 거구."
그렇게 하여 학생 신분에도 엄청난 신분을 겸하게 된 희창
이였다. 허허, 듣고 보면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쉽사리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날라리
희창이가 겨우 스물 넷에 이사라?
"킥킥, 너무 놀라지 마. 그래서 아까 상진이 형 같은 사람이
있는 거니까. 사실 회사 일은 그 형이 다 알아서 해. 난 아버
지 대리인으로 얼굴마담일 뿐이야."
그런 건가. 그러나 내가 재차 궁금증을 해소할 새도 없었
다. 문득 똑똑, 두드려진 룸의 문이 정중히 열리고 있었다.
"이사님, 인사드리러 왔는데요."
빼꼼이 들려오는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 급기야 나는 두 눈
이 왕방울만해졌다. 젊디 젊은 여자들 예닐곱이 한꺼번에 들
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엄청났다. 족히 170 전후의 늘씬한 키, 게다가 얼굴
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미모들이었다. 짧은 머리, 긴 머리,
가무잡잡한 미인, 뽀얀 미인. 게다가 저게 치마인가, 아니면
속옷인가.
그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만 가린 미니
스커트 차림이었다. 그러나 정작 넋이 나갈 것은 그것만이 전
부가 아니었다. 그들과 맞은 편의 깊숙한 자리에서 희창이가
던지는 넋두리, 나는 그 넋두리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
다.
"에이, 잘 안 보이는데… 어디 한 명씩 치마 걷고 거기 테
이블 위로 올라와 봐."
어딜 올라오라구? 그리고 치마를 걷어?
첫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보았는데 2번째 이야기가 보이지 않아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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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Ⅱ>
제 1화 프롤로그 - 제대하던 날
전체 차렷, 단결!
흔히 남자들은 말을 한다. 제대만 해봐라, 내 그럼 다시는
부대 쪽 산천으로는 오줌 한 방울도 아니 싸리라 -
왜 그런 말들을 하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 나는 사단장
정신교육을 마친 연병장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모든
공식적 전역 행사가 마쳐진 것이다. 방금 전의 그 단결 구호,
현역병 시절의 그 마지막 경례구호를 끝으로 나는 이제 예비
군의 신분이 되고 있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우두커니 선 내 눈앞으로 군용 트
럭들이 주르르 열을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안에는 경외감
을 지닌 채 나를 바라보는 얼굴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호기심과 겁이 반반씩 섞인 얼굴들. 나는 그들의 모표에 아
무 것도 붙어있지 않다는 걸 볼 수 있었다. 보나마나 이제야
이곳 사단본부로 자대 배치를 받아온 신병들이었다. 한 사람
이 나가면 그 자리를 채울 한 사람이 어김없이 들어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이런 군대라는 곳의 철칙이었다.
"아따, 안 됐다. 아그들아!"
왠지 씁슬한 내 곁에서 히히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 병장이었다. 소속부대에서 유일하게 나와 함께 전역하는
동기, 그가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찍찍 침을 뱉고 있었다.
나는 행여나 싶어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빨 새
로 한 번 더 침을 내쏘며 그가 핀잔을 주고 있었다.
"큭큭… 뭘 그렇게 쫀다냐. 인자 우리는 민간인인디."
머쓱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의 말이 맞기는 맞았다. 입수
보행을 해도, 이렇게 내놓고 담배를 펴도, 지금부터는 아무에
게서도 눈치를 받지 않는다. 나는 그 새로운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다시금 주변을 휘 둘러보는 나였다. 예비군 마크를 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아련한 아쉬움이 밀려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올 수 없으리라. 이 연병장, 이 막
사, 그리고 3년 가까이 박박 기며 돌아다닌 이곳의 산천들…
그런 생각에 엊그제만 해도 지겹던 풍경들이 새삼 그리움으
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박 병장과 나는 천천히 사단본부의 위병소를 통과했다. 이
곳에서 시외버스만 잡아타면 그와 나는 곧장 집 앞으로 돌아
가게 될 길이었다.
"창희 너는 뭐할 것이여?"
"나…?"
"아 참, 니는 대학생이었제. 그라믄 다시 학교 댕기면 되겄
구만."
학교라. 왠지 아직은 어색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우리 대학
교, 어차피 얼마 후 복학하게 되겠지만 고졸 출신인 박 병장
은 나와는 처지가 조금 달랐다.
"에구… 난 뭘해야 할지 모르겄네. 고향 집 농삿일이나 도
와야 할텡께."
그에게 나는 슬그머니 웃어보였다. 신병시절 얼빵한 성격으
로 일찌감치 고문관으로 찍힌 탓에 애꿎은 동기인 나까지도
왕왕 고생시켰던 그였으나, 어차피 함께 그 긴 시절 동고동락
을 해왔던 셈이었으니 나로서는 그에게 적잖은 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판에 나도 서울 올라가서 장사나 해볼까나, 하는 그의
푸념을 듣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요란한 클랙션 소리가 들
려왔다. 그 생소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박 병장과 나인데,
순간 기대치 못하던 목소리가 나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있었
다.
"야, 짱이야!"
짱이 - 이럴 수가. 대번에 그 목소리를 알아들은 나는 뛸듯
한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를 그렇게 부를 녀석은 이 세
상에 단 한 놈만이 유일한 까닭이었다.
으리으리한 검은 색 세단, 그 옆에서 선글래스까지 낀 그
녀석이 나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마치 홍
콩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 팔을 벌리고 그에게 다가갔다.
"우하하하. 여기 이짱님이 납시셨다."
"임마… 너, 네가 어떻게?"
우리는 서로를 반갑게 부둥켜안았다. 희창이였다.
"짜식, 오늘 제대하는 날인 걸 어떻게 알았어?"
"어쭈… 내가 모르는 게 어딨냐? 어머님께 전화해서 미리
다 알아놨지. 근데 창희 너 군기 봐라, 고참한테 경례도 안
해?"
"하하, 웃기고 있네. 방위 녀석이 어디서 똥폼은."
그랬다. 외아들 희창이는 나보다도 서너 달이나 늦게 입대
를 해서 벌써 일 년 전에 제대, 아니 소집해제를 당해 있었
다. 생각도 못했던 차에 마중을 나와준 녀석을 보니 어쨌든
나로서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워매… 차 징허게 좋네?"
등뒤에서 들려온 그 부러워하는 목소리에 그제야 나는 희
창이와 잠시 어깨동무를 풀었다. 멍하니 선 박 병장이 휘둥그
래진 눈으로 나와 희창이, 그리고 대형 승용차를 바라보며 감
탄사를 남발하고 있었다.
"어… 희창아, 인사해라. 나랑 같은 부대에서 제대하게 된
동기야."
안녕하십니까, 희창이가 인사를 건네자 어이구 안녕하시당
가요, 라며 어색하게 허리마저 굽신거리는 박 병장이었다. 얼
떨떨한 표정의 그에게는 이 최전방까지 번지르르한 양복 차
림으로 고급 승용차를 몰고 나타난 희창이 녀석이 어쩐지 어
마어마한 인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가자. 민간인 창희!"
희창이가 차 문을 열며 권했다. 나는 눈만 꿈벅거리는 박
병장을 돌아보았다.
"박 병장 이리 와. 서울 가서 기차 탈 거라고 했지? 같이
가자."
"어휴, 괜찮해… 내 주제에 무슨. 근디 창희 너 서울서 대단
한 인물인갑네? 저렇게 근사한 으리으리한 사람이 다 나와있
는 걸 보니께."
"하하, 아니야. 그냥 내 불알친구야. 그러지 말고 함께 타자
구."
하지만 내 거듭된 청에도 박 병장은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자기 신분엔 버스가 제격이라며 그는 굳이 동행을 고사
하고 있었다.
"그럼… 언제 서울 올라오면 꼭 연락이라도 줘. 내 연락처
적었지?"
그래서 결국 그와 나는 미리 교환해둔 연락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작별을 고해야 했다. 내가 차에
오르자 마자 희창이는 차를 출발시켰고, 나로서는 멀어져 가
는 그의 모습이 사라질 무렵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게 전부였
다.
얼마간 서먹한 기분을 정리한 나는 희창이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운전석이 아닌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앞자리에는
마찬가지로 반듯한 양복차림의 한 사내가 대신 운전을 하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근사한 차로 바꾼 거야? 그 스포츠카는 어쩌
구?"
"아, 그거… 뭐 그럴 일이 좀 있었어. 그나저나 인사해라.
상진이 형이라고, 내 일 좀 도와주는 분이셔."
상진이 형. 그것은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이름이었다. 내가
백미러를 통해 인사를 건네자 그가 마주 눈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어림잡아 희창이나 나보다 서너 살 위로 보이는 그는
다소 작은 눈을 제외하고 호남 형의 멀쑥한 인상이었다.
"창희 너 어디로 가고 싶냐?"
"어디라니?"
희창이가 내 무릎을 토닥거렸다. 입대 전 학창시절과 달리
좀더 호리호리해진 녀석이었어도 예의 그 장난기 가득한 미
소만은 여전히 얼굴에 가득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의 둘도 없는 친구인 네 녀석 제댓날 아
니냐. 이렇게 보낼 수야 없잖아? 말만 해라. 오늘 너 완전히
홍콩 보내줄 코스로 쫘악 안내를 할게."
홍콩 보내줄 코스? 나는 그의 허풍에 피식거리고 말았다.
아무리 군대를 다녀오고 몇 살을 더 먹었다지만 희창이 녀석
의 이 호탕한 성격만큼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다 줘. 제대 인사는 드
려야지."
"오케이. 역시 예의 바른 놈이다, 너는."
희창이는 앞좌석의 상진이 형이라는 사람에게 우리 집이
있는 강북을 댔다. 경쾌하게 속력을 내기 시작한 차 안에서
그는 문득 생각난 양 물었다.
"근데 선영이 누나는 너 오늘 제대란 거 아냐?"
선영이 누나. 학교 선배이자 두 살 연상인 나의 연인. 아직
도 가슴 설레이는 그녀의 이름에 내게서는 작은 혼자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마 알 거야. 지난 주 편지에 그렇게 썼으니까."
"그래? 그러고 보니 나도 제수씨 얼굴 본 게 한참일세… 너
도 그렇지? 작년 여름방학이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타지에 멀리 떨어진지라 어느
덧 반 년 이상이나 우리는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희창이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래도 넌 참 행운이다. 군대에 있던 너나 유학 가 있는
선영 선배나 그 덕분에 서로 믿을 수 있었잖아."
녀석에게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적어도 나는 선영이
누나와 헤어지리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제 2화 프롤로그 - 이백만 원짜리 룸살롱
일단 집에 돌아온 나는 기다리고 계신 아버지 어머니께 제
대 신고와 함께 큰절을 올렸다. 비록 열흘 전 말년휴가 때도
뵌지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으나 그래도 만면에 희색이신
부모님들이었다.
오후가 되서야 도착한 서울이었기에 희창이와 나는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해야 했다. 역시나 민간인으로 처음 먹는 집
의 밥맛마저도 남다를 뿐이었다.
"저 아버님, 오늘 창희 좀 데려가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자리에서 희창이는 대뜸 아버지에게 그렇게
여쭙고 있었다. 고맙게도 그간 내가 집에 없는 사이 가끔씩
우리 집에 들려 안부를 보살펴주었던 녀석이었다. 그 덕에 어
려울 리 없는 청인지라 우리 부모님의 어쩌려느냐는 웃음 띤
물음에도 그는 눈만 찡긋댈 수 있었다.
"헤헤, 이 놈한테 사제 물좀 먹이려고 그러죠. 지난 말년휴
가 때도 제가 바빴던 통에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하고 들여보
냈었는데, 오늘은 간만에 창희랑 좀 놀다 오겠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못내 허락을 내리시는 아버
지였고 다만 어머니만이 술 많이 마시지 말아라, 라고 주의를
주고 계셨다. 그래도 워낙 넉살 좋은 희창이의 언변에 그리
걱정을 보내시는 눈치는 물론 아니었다.
"나가자, 옷 갈아입어."
나는 녀석이 시키는 대로 군복을 벗고 대충 편한 옷으로
바꾸어 입어야 했다. 그러나 뭔가가 못마땅한지 희창이는 내
게 핀잔 아닌 핀잔을 보내고 있었다.
"청바지? 그런 옷들밖에 없냐?"
"그럼 뭘 입어. 다 군대 가기 전에 입던 옷들인걸."
"안되겠군. 나중에 너 양복 한 벌 빼주랴?"
대체 어디를 데려가려는 것이길래 그러는지 몰라도 퍽 호
들갑스런 희창이였다. 어쨌든 군복을 벗고 깔끔한 옷을 고르
자 녀석은 서둘러 대문을 나서며 앞장을 섰다.
"가요, 상진이 형."
놀랍게도 우리가 타고 온 세단은 집 앞에서 세워진 채 기
다리고 있었다. 희창이와 내가 다시 차에 오르자 상진이 형이
라는 그 사람은 잠자코 운전대를 붙잡으며 행선지를 물을 따
름이었다.
"뻔하죠 뭐… 홍콩으로 가요, 형. 연락 좀 해주시구요."
홍콩? 아까는 농담으로 홍콩을 보내준다더니 대체 무슨 말
일까. 그러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아 예, 지금 홍콩으로
모시고 가는 길입니다 - 라고 보고까지 하는 상진이 형이었
다.
의아할 수밖에 없는 나인데, 그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릴
것이었다. 우리가 탄 차는 한강을 건너 강남의 한복판을 지나
더니 어느 고층빌딩 앞에 세워지고 있었다. 십여 층이 훌쩍
넘는 건물, 지은 지 얼마 안되어 상당히 호화로운 그 빌딩 앞
주차장에 다다라서야 나는 어디에 온 것인지 비로소 눈치를
챘다.
룸살롱 홍콩 - 이라는 번쩍번쩍한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었
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장소임을 안 내가 돌아봤으나 희창이
는 한 발 먼저 당당히 차를 내리면서 뭐라 지시를 내렸다.
"상진이 형 아직 저녁식사 안 하셨죠? 그럼 여기서 그냥 퇴
근하세요."
"그래도 되겠어? 차는 어쩌려구?"
"여기 세워두죠. 정 뭐하면 대리운전시키고요."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할게."
잠깐만요, 형… 그런데 차 키를 건네고 물러가려는 상진씨
를 희창이가 다시 돌려세웠다. 녀석이 속주머니에서 뭔가를
내밀어 그에게 건네고 있었다. 언뜻 보니 하얀 색 수표인 것
같았다.
"어디서 저녁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럼 잘 놀다가. 내일 스케쥴은
알고 있지?"
저녁값으로 수표라. 상당한 씀씀이였다. 그를 돌려보낸 희
창이가 다가오자 나는 저으기 놀란 표정으로 물어야 했다.
"어떻게 된 거야? 저 분 너희 집 운전기사냐?"
"누구? 상진이 형? 그런 건 아니구…. 뭐랄까 내 비서 같은
형님이지."
비서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내가 알기로 희창이는 아
직 한두 학기가 더 남은 학생의 신분인데, 그런 대학생이 비
서까지 두었다는 걸까?
"뭐해 임마. 들어가지 않구."
나로서는 어리둥절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고 이내 빌딩의 지하에서는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척 보기에 기도로 보이는 어깨 하나와 웨이터 두엇이었다.
기도가 꾸벅 허리를 굽혔고 한 웨이터는 차 열쇠를 받아들었
다. 그리고 나머지 웨이터는 주차장에서부터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어머나, 우리 이사님 오셨네?"
이사님? 겉보기만으로도 으리으리한 룸살롱의 문 안에 들
어서자 당장 달려나오는 인삿말은 그것이었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입으로 보이는, 홍콩이란 이름에 걸맞게 옆선이 쭉 트
인 야시시한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여자였다. 마담인 모양이
었다.
"어머. 이사님 오셨어요, 언니?"
이건 또 뭐냐. 이어서 마담을 언니라고 부르는 아가씨 서넛
또한 쪼르르 달려나온다. 희창이 녀석, 녀석이 이곳에서 퍽
대단한 단골손님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광경이었다.
이것 때문에 나더러 근사한 옷 없느냐 물은 녀석인 듯했다.
도무지 주눅만 드는 나로서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그녀들의
환대 속에 깊숙한 안쪽으로 따라가야 했다. 두꺼운 나무 문을
지나니 한 열 명은 들어가도 남을 크기의 커다란 룸이 나타
났는데, 엉거주춤 우리가 그곳에 앉혀지자 그 나긋나긋한 마
담이 희창이에게 상냥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사님 오늘은 어떻게 맞춰드릴까요?"
말끝마다 붙는 그 이사님이란 호칭. 그런데도 하나 어색하
지 않게 거드름을 피우는 희창이였다. 나는 녀석의 입에서 너
무나 수월하게 튀어나오는 한마디에 그만 입이 떡 벌어졌다.
"글쎄… 오늘은 둘 뿐이니까, 일단 술값만 한 이백 정도 계
산해 줘."
이백… 뭐라구 이백? 설마 장난은 아닐 테니 이백 원은 절
대 아닐 게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듣는 마담 여자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네, 알았어요. 애들은 어떡할까? 오늘 새로 오신 손님도 있
는데 신고식부터 해드릴까요?"
"응. 이쁜 애들 골라서 이 친구한테만. 나는 누군지 알지?"
"아유, 이사님이야 알죠,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주 쫙
빠진 애들로 대령할게요."
도저히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할 나는 그저 마담과 희창이
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았다. 신고식이 뭘 의미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나,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대체 어떻게 이 녀
석이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이는 게 가능한가 그것이었다. 마담
이 나가자 나는 황당한 얼굴로 그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어야
만 했다.
"얌마, 이짱. 이게 다 뭐야?"
"뭐긴 뭐야? 룸살롱이지."
"누가 룸살롱인지 몰라서 물어? 니가 이사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구!"
주눅은 들었어도 으르렁대는 내 목소리에 그제야 희창이는
아차하며 말을 꺼내고 있었다.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든 녀석이 그것을 불쑥 내게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나는 영어로 씌어진 그것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무슨무슨
코퍼레이션(기업)이라는 밑에 굵은 글씨가 똑똑히 박혀 있었
다. 이사. 희창이의 이름 앞에 씌여진 것은 분명 이사(理事)라
는 직함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으응… 내가 깜빡 잊고 말을 안 했구나. 우리 아버지 말야,
그 양반이 요새 새로운 데에 투자를 좀 하셨거든. 그래서 그
냥 거저 얻게 된 직함이지 뭐."
사업을 하시는 희창이 아버지야 나도 잘 아는 터, 녀석은
대충 저간의 사정을 짤막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IMF를 겪기 직전 - 딱 내가 군대에 있던 시간이다 - 그의
아버지가 별 생각없이 인터넷 쪽에 돈을 돌리셨다… 헌데 그
것이 대박을 터뜨렸고 결국 그 덕분에 그 경제 불황을 극복
하셨다… 하지만 워낙 그 내용이 젊은 감각을 요구하다보니,
어차피 후계자 수업을 시키느라 경영학과로 보낸 아들놈인
자기에게 의지하시게 되더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간단해. 닷컴(.com) 하나 개발한 거지. 그 덕분에 휴학까지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많이 바빴어. 그래서 너 말년휴
가 때도 술 한 잔 못사줬던 거구."
그렇게 하여 학생 신분에도 엄청난 신분을 겸하게 된 희창
이였다. 허허, 듣고 보면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쉽사리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날라리
희창이가 겨우 스물 넷에 이사라?
"킥킥, 너무 놀라지 마. 그래서 아까 상진이 형 같은 사람이
있는 거니까. 사실 회사 일은 그 형이 다 알아서 해. 난 아버
지 대리인으로 얼굴마담일 뿐이야."
그런 건가. 그러나 내가 재차 궁금증을 해소할 새도 없었
다. 문득 똑똑, 두드려진 룸의 문이 정중히 열리고 있었다.
"이사님, 인사드리러 왔는데요."
빼꼼이 들려오는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 급기야 나는 두 눈
이 왕방울만해졌다. 젊디 젊은 여자들 예닐곱이 한꺼번에 들
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엄청났다. 족히 170 전후의 늘씬한 키, 게다가 얼굴
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미모들이었다. 짧은 머리, 긴 머리,
가무잡잡한 미인, 뽀얀 미인. 게다가 저게 치마인가, 아니면
속옷인가.
그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만 가린 미니
스커트 차림이었다. 그러나 정작 넋이 나갈 것은 그것만이 전
부가 아니었다. 그들과 맞은 편의 깊숙한 자리에서 희창이가
던지는 넋두리, 나는 그 넋두리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
다.
"에이, 잘 안 보이는데… 어디 한 명씩 치마 걷고 거기 테
이블 위로 올라와 봐."
어딜 올라오라구? 그리고 치마를 걷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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