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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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천년 1부 1권 기연(奇緣)편
◈ 등장인물
고독마야(孤獨魔爺) 연남천!
무림인들 사이의 서열을 정해놓은 신마풍운록(神魔風雲錄) 서열 제일
위에 올라있는 천하제일인.
너무도 강했기에 친인도 없고 적수도 없어 필연적으로 고독해질 수밖
에 없었던 불우한 절대자.
고금오대고수(古今五大高手)의 일인이기도 하다.
이검한(李劒恨)
고독마야 섭장천의 후계자. 멸문당한 가문의 원한과 고독마야 섭장천
의 복수를 한몸에 짊어진 채 단신으로 전 무림과 격돌한다. 원하지
않았으나 운명적으로 고독마야처럼 고독한 인생행로를 걷게 된다.
혈황(血皇)
암중의 음모자. 천하를 피로 물들이는 사악한 흉계가 모두 그로부터
나왔다. 나이, 성별, 출신 모두 불명인 신비한 인물이다.
전모(電母) 냉약빙(冷若氷)
고독마야 섭장천의 의녀(義女). 의부(義父) 연남천을 대
신하여 이검한을 가르치는 스승이며 보호자다.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신술을 소유하여 전모(電母)라 불린다.
누란왕후(樓蘭王后) 흑요설(黑瑤雪)
서역 누란왕국의 마지막 왕후. 탐욕스러운 사내들에게 유린당한 원한
으로 이 세상에서 사내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맹세한 마녀(魔女).
이검한의 실수로 천 년 만에 부활하여 세상을 피로 씻는다.
유성신검황(流星神劒皇) 혁련휘(赫蓮輝)
신마풍운록 서열 삼위인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劒). 혁련검호각(赫蓮劒
豪閣)의 각주이고 사방무제(四方武帝)의 일인. 고독마야 섭장천을 협
공한 주역 중의 한 명이다.
독천존(毒天尊) 서래음(西來音)
신마풍운록 서열 제사위에 올라있는 독공(毒功)의 제일인자이며 독성
부(毒聖府)의 지존. 역시 사방무제의 일인이며 고독마야를 무형지독(
無形之毒)으로 중독시킨 장본인.
천존(毒天尊) 서래음(西來音)
신마풍운록 서열 제사위에 올라있는 독공(毒功)의 제일인자이며 독성
부(毒聖府)의 지존. 역시 사방무제의 일인이며 고독마야를 무형지독(
無形之毒)으로 중독시킨 장본인.
귀왕서시(鬼王西施) 음월방(陰月芳)
북망산 귀왕궁(鬼王宮)의 전대궁주였던 고루천존의 아내. 유령마제에
게 암산당해 사경에 처했다가 녹발수망천강인(綠髮鬚網天 刃)이라는
초절기를 얻어 가공할 고수가 되었다. 유령마제에게 남편과 아들을
잃은 복수를 꾀한다.
달단여왕( 女王) 나유라(羅維羅)
몽고의 양대부족 중 하나인 달단부( 府)를 영도하는 여걸.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되었으나 스스로 여왕이 되어 분열되려는 달단부를
결속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대원제국의 부활을 노리는 오이랍부[
衛拉府]의 효웅 철목풍(鐵木風)과 숙명적인 대립을 한다.
유령마제(幽靈魔帝) 구양수(九陽秀)
신마풍운록 서열 제오위. 음험하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군웅들
이 고독마야를 협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고독마야를 제외
하면 가장 강하다는 사방무제의 일인이다.
서장(序章)
-신마풍운록(神魔風雲錄)
이것은 당금의 강호무림을 활보하고 있는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의 이름을 나
열해 놓은 인명부(人名簿)다.
하지만 바로 그 단순한 인명부로 인해 무림역사상 최악의 살겁이 벌어지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지(大地)가 시신으로 뒤덮이고 사해오호(四海五湖)가 피로 물드는 대혈겁이
바로 이 신마풍운록으로 인해 발발되었다.
수많은 생명이 무참하게 스러지는 사상 초유의 대참사가 어이없게도 그저 사
람의 이름을 나열해놓은 한 권의 책자(冊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 * * *
-신마풍운록!
신마(神魔)와 풍운(風雲)이라는 말 그대로 신마풍운록에는 당금 무림에서 신
(神)과 마(魔)처럼 풍운을 일으키고 있는 정사(正邪) 양도(兩道)의 기인고수
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무림인이라 하여 누구나 신마풍운록에 기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한 지방의 패주(覇主)이거나 어느 한 방면에서 일가를 이룬 명인(名人)들만이
신마풍운록의 한 장을 장식할 수 있다.
따라서 신마풍운록에 이름이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 인물은 천하무림의 정
세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유력한 인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신마풍운록이 누구에 의해 작성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
다. 향후 무림의 대세를 좌지우지하는 막중한 비중을 지닌 신마풍운록은 어
느날 문득 천하각지에서 발견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불현듯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신마풍운록은 아주 짧은 시간에 남칠성
(南七省) 북육성(北六省)의 거의 전 지역에 배포되었으며 무림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신마풍운록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강호인들은 득의해 마지않았다. 신마풍운
록에 거론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신이 당금 무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
는 요인임이 증명된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서 무림인들의 호기심(好奇心)은 공포(恐怖)와 의혹(疑惑)
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신마풍운록에 이름이 오른 명숙들이 무
참하게 살해되는 참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잇달아 무림명숙들을 살해한 범인(氾人)이 누구인지는 이내 밝혀졌다.
신마풍운록-!
그것이 도처에서 일어난 참사의 원흉이었다.
물론 신마풍운록이라는 책이 살인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마풍운록이 살인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신마풍운록에 기록된 이름들에 서열(序列)이 매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신마풍운록의 기록자는 대단한 통찰력으로 개개인의 능력을 분석(分析) 비교
(比較)하여 서열을 매겨 놓았는 바, 그것이 재앙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제삼자가 보기에 신마풍운록의 서열은 상당히 일리가 있고 수긍이 갈만한 것
이었다.
하지만 이름이 거론된 당사자들의 입장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데 불화
의 불씨가 감춰져 있었다.
-내가 왜 그 작자보다 서열이 낮은가?
대다수의 명숙들이 그 같은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자기보다 상위서
열에 오른 인물들에게 격렬한 질시(嫉視)와 살의(殺意)까지 품는 결과를 초래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자가 사라진다면 내가 그자의 서열을 차지할 수 있지 않은가?
악마의 속삭임이 무림인들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이 대참극의 시발점(始發點)이었다. 신마풍운록상의 서열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자기 윗 서열의 명숙을 암살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사악한 유혹으로 인해 최초로 희생당한 인물은 신마풍운록사의 서열 백칠
위(百七位)였던 상강조수(湘江釣搜)라는 인물이었다.
상강조수는 한 자루 낚시대만 있으면 고래라도 낚아 올릴 수 있다는 풍진기
인(風塵奇人)이었다.
헌데 그가 자신보다 하위 서열로 기록된 몇 명의 고수들에게 합공당해 비참
하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것이 핏빛 회오리의 시작이었다.
도처에서 신마풍운록의 서열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자
기들보다 위 서열의 고수들을 암살하기 시작했다.
추악한 암살극은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으며 일단 불이 붙기 시작한 혈풍은
일거에 전 중원을 휩쓸었다.
피는 피를 부르고 죽음은 또 다른 죽음을 낳았다.
신마풍운록의 명숙들은 서로를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다. 살아 남으려면 먼저
상대를 죽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의심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무자비한 살륙으로 이어졌다.
이제 무림에서 평화란 말은 사라지고 살륙과 피비린내만이 중원전도를 휩쓸
었다.
그런 어느날 무림에 퍼진 한 가지 소문에 의해 신마풍운록이 일으킨 혈풍은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고독마야(孤獨魔爺)가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을 얻었다!
소문이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소문을 접한 무림인들은 공포와 경악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문에 언급된 한 인물의 이름과 비급의 제목이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독마야(孤獨魔爺) 연남천(燕南天)!
그가 누구인가?
다름아닌 당금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아닌가?
신마풍운록의 첫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고독마야 연남천인 것이다.
고독마야 연남천은 지난 육십 년의 세월을 고독하게 살아 왔었다.
그에게 친인(親姻)도 없었고 또 적수(敵手)도 없었다.
호적수는 고사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그 누구도 고독마야의 삼초지적(三招之
敵)이 되지 못했다.
적수조차 없는 것은 얼마나 고독하고 불행한 일인가?
너무나 강했기에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고독한 절
대자가 바로 고독마야였다.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
그 이름은 고독마야보다 오히려 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그것은 고금오대고수(古今五大高手)중 일 인으로 알려진 한 명의 흉마(凶魔)
가 남긴 비급이었다.
-흡혈마조(吸血魔祖)!
혈교(血敎)의 창시자인 그는 인육(人肉)을 먹고 인혈(人血)을 술 대신 마셨다
는 전설 속의 마인이었다.
흡혈마조는 천인공노할 숱한 악행을 자행하였으나 일백 수십살의 천수(天壽)
를 누리고 죽었다고 한다. 너무도 강한 그를 아무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
다.
심지어 염라대왕(閻羅大王)마저도 흡혈마조를 두려워하여 끝까지 살려두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그는 막강하였고 또 공포 그 자체였다.
그 흡혈마조의 필생마학이 담긴 비급이 혈마대장경이다.
헌데 그 혈마대장경이 고독마야 연남천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같은 소문을 접한 무림인들은 공포와 전율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히 인세무적(人世無敵)인 고독마야가 혈마대장경까지 연마
한다면 그 결과는 삼척동자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독마야에게 혈마대장경을 연마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가 혈마대장
경마저 익힌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영원히 고독마야를 능가하지 못한다!
-혈마대장경 중의 한 조각만 얻어도 독패군림(獨覇君臨)할 수 있다!
추악한 시기심과 탐욕이 전 무림을 열병처럼 휩쓸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수많은 무림인들이 꾸역꾸역 곤륜산(崑崙山)
고독애(孤獨崖)로 몰려 들었다.
그곳이야말로 저 불세출(不世出)의 기인 고독마야 연남천이 은거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신마풍운록의 영웅들은 거의 전원이 곤륜산으로 몰려들었
다.
하지만 이 모두가 천하를 집어 삼키려는 사악한 음모에 의해 비롯된 것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치밀하고도 잔혹한 음모와 살육의 그물(網)이 전 무림을
옥죄어가고 있음을··········!
第1章 우중인연(雨中因緣)
──── 기련산.
감숙성(甘肅省)과 청해성(靑海省)의 경계에 자리한 험산(險山).
기련산의 서쪽에는 그 유명한 서역(西域)과 중원(中原)의 관문인 옥문관(玉門關)
이 자리하고 있었다.
쏴아아.......
우르릉 ──── !
폭우(暴雨)!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대발같이 쏟아지는 거센 빗줄기는 기련산 전역을 맹렬한 기세로 휩쓸고 있었다.
한데,
쉬학!
스스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거친 폭우 속을 질풍같이 질주하는 하나의 인
영이 있었다.
「 으음...... 서둘러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다! 」
초조함과 근심이 가득한 여인의 음성.
여인의 신법은 너무 빨라 보통 사람이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설령 절정의 내공을 지닌 고수라 해도 여인의 흐릿한 그림자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가히 천지일성의 벼락과도 같은 빠르기였다.
스스.......
여인은 한 번 도약할 때마다 무려 삼사백 장씩 쭉쭉 쏘아져 나갔다.
가히 신(神)의 경지에 이른 경신술!
도대체 여인은 어떤 경신법을 연마했기에 그토록 빨리 달릴 수 있단 말인가?
촤아....... 아!
쏟아지는 폭우조차도 여인의 주위로는 접근하지 못했다.
너무 빨리 달리는 관계로 그녀의 주위로 진공상태가 생기는 까닭이었다.
「 아아! 어리석은 자들! 이 모두가 대가가(大哥哥)를 해치려는 음모인줄도 모르
고 그이를 핍박하려하다니.......! 」
여인은 폭우 속을 질주하며 초조한 듯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나이는 어느 정도 되었을까?
언뜻 보기에 그녀는 이십대 정도로 보였으며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명장이 조각한 듯 섬세하고 우아한 용모,
백옥같이 흰 피부,
천상선녀(天上仙女)가 하강한 것일까?
실로 보는 이의 혼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나,
자세히 보면 여인은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님을 알수 있었다.
먼저 여인의 귀밑머리는 희끗희끗한 백발이었다.
또한,
눈꼬리에 진 몇가닥의 잔주름도 그녕가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인임을 알게 해주었
다.
(만에 하나 가가(哥哥)가 이미 변을 당했다면 전 무림이 나 냉약빙(冷若氷)의 손
에 피로 씻기리라!)
여인은 질풍같이 몸을 날리며 붉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섬섬옥수는 자신의 허리에 찬 하나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고 있었
다.
그 주머니 안에서는 은은한 화약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이는 나의 생명과 다름없다! 그 분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굉천벽력탄(宏天霹
靂彈)보다 더한 것이라도 쓸 수 있다!)
그녀는 결연한 눈빛을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녀의 허리에 찬 주머니,
그 속에는 아주 무서운 화기(火器)가 십여 개나 들어있었다.
(하여간 서둘러야 한다! 곤륜까지는 아직도 이천여 리나 남았으니......!)
쉬학!
여인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하나의 산봉을 그대로 날아 넘었다.
한데,
그녀가 막 산봉을 날아 넘었을 때였다.
「 아 ──── 악! 」
돌연 빗 속에서 한소리 애처로운 여인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냉약빙(冷若氷)이라 자칭한 여인,
그녀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런 산속에 웬 여자가......!)
그녀는 본능적으로 멈추어 섰다.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은 냉약빙의 우측 어느 계곡 안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가볼까?)
냉약빙은 갈등의 표정을 지었다.
평시였다면 그녀는 당연히 달려가 보았을 것이다.
하나,
지금 그녀는 촌각을 다투어 곤륜산까시 가야만 했다.
냉약빙은 잠시 망설임의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 아흑....... 제발....... 용서를....... 아아.......! 」
재차 여인의 절박하고도 애처로운 비명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누가 들어도 그것은 어떤 여인이 누군가에게 겁탈당하면서 내는 비명이었다.
그것을 안 이상 냉약빙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스악!
냉약빙의 신형은 그대로 비며이 들려온 계곡쪽으로 사라져 갔다.
같은 여인의 입장으로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찬 협곡의 끝,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절벽 앞,
하나의 공터가 있었다.
한데,
지금 그 공터에는 실로 천인공노할 만행이 벌어지고 있었다.
십여 명의 장한들이 한 명의 여인을 윤간하고 있지 않은가?
장한들은 일신에 시뻘건 혈포를 걸치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험악하고 흉흉한 인
상들이었다.
「 흘흘! 고것 요분질 한 번 기막히군! 」
「 빨리 끝내라, 장삼! 너 혼자 즐길 계집이 아니지 않느냐? 」
그 자들은 주위를 빙 둘러싼 채 저마다 음탕한 말들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쏴.......아!
폭우 속에서 한 명의 미부가 무참하게 사내에 유린당하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 전후 정도 되었을까?
기품있고 우아한 용모를 지닌 미부였다.
하나,
지금 그녀의 행색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일신에 걸친 의복은 처참하게도 갈가리 찢겨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빗물에 젖은
채 제멋대로 풀어 헤쳐서 봉두난발이 되어 있었다.
본래 그녀은 고아한 하늘색 궁장 차림이었다.
하나,
색마들의 손에 그녀의 의복은 무참하게 찢겨나가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모습이었
다.
그 바람에 미부의 백옥같이 희고 매끄러운 살과 풍만하고 탱탱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지금 그녀를 가운데 두고 네 명의 흉흉한 사내가 그녀의 사지를 힘껏 잡아 누르
고 있었다.
그리고,
활짝 벌려진 채 눌려진 두 다리,
그 사이로 한 명의 사내가 하의만 벗은 채 여인의 몸을 올라타고 헐떡이고 있었
다.
「 흐....... 꼭꼭 죄어대는게 일품이로군! 」
사내는 한 손으로 여인의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며 세차게 아랫도리를 흔들어댔다.
퍽....... 퍽!
그 자가 하체를 일렁일 때마다 살과 살이 부벼지는 묘한 소리가 장내를 자극시켰
다.
활짝 벌려진 여인의 허벅지,
그 사이로 무성한 방초로 뒤덮인 살찐 둔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둔덕 아래의 동굴로 검붉은 사내의 흉기가 연신 출입하고 있었다.
체액과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사내의 흉기.
그것이 동굴 속으로 쑤셔 박힐 대마다 여체는 마치 작살을 맞은 물고기처럼 세
차게 퍼득이며 경련을 일으켰다.
하나,
여인의 입에서는 이제 더 이상 신음성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직 한 명 사랑하는 남편에게만 허용했던 자신의 은밀한 비소,
그곳에 음적의 흉기가 무자비하게 찔러 들어오는 순간 여인은 엄청난 충격으로
반실신해 버린 것이었다.
「 헉헉.......! 」
출렁......
사내가 발정난 짐승의 수컷처럼 여체 위에서 날뛸 때마다 여인의 풍만한 유방이
아래 위로 물결치듯 출렁거렸다.
초점 잃은 여인의 두 눈은 멍하니 한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
한그루의 소나무 아래,
한 명의 어린 아이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나이는 겨우 삼사 세 정도,
귀업고 잘 생긴 사내아이였다.
한데,
그 사내아이는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바로 미소부의 아들이었다.
흉적들은 그녀의 아들을 헤치고 그녀의 육체를 유린하는 것이었다.
문득,
「 으헉! 흐으.......! 」
여체 위에서 헐떡이던 사내가 거친 신음을 토하며 전실을 부르르 떨었다.
드디어 그 자는 여체에 욕정을 폭발한 것이었다.
「 흐으...... 기막히는군! 문어빨판처럼 빨아들이는 것이.......! 」
그 자는 실체를 한껏 여체에 몰입한 채 전율적인 쾌락의 여운을 즐겼다.
그때,
「 장삼! 대충하고 일어나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참이냐? 」
「 맞다! 모두 네놈처럼 시간을 끌다가는 내 차례가 오려면 하루 종일 기다려야겠다! 」
주위를 둘러싼 장한들이 저마다 욕정에 침을 삼키며 여체 위의 사내를 재촉했다.
그러자,
비로소 장삼이라 불린 자는 아쉬운 표정으로 여체에서 떨어졌다.
그 자가 일어서자 미소부의 무참한 아랫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쏴아아아......
그녀의 아랫도리 검은 방초는 빗물에 흠씬 젖어 살갗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사이로,
아주 깊고 살찐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인의 그곳의 꽃잎은 아주 큼직했으며 밝은 색조를 띄고 있었다.
붉은색의 꽃잎이 수줍게 입을 벌린 사이로 허연 액체가 흘러나와 땅바닥을 적시
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론 그것은 사내가 토해낸 정액이었다.
빗물과 함께 희끄무레한 정액을 토해내는 여인의 비소는 사내를 녹이기에 충분
할 정도로 지극히 도발적이었다.
그때,
「 으헤헤! 내차례다! 」
첫 번째 놈이 일어서자 다른 한 사내가 급히 하의를 벗어던지며 그대로 여체를
덮쳐갔다.
그 자는 동료의 정액이 흘러나오는 여체의 비소에 자신의 흉기를 서슴없이 찔러
넣었다.
사내의 흉기가 다시 아랫도리에 그득하게 들어차자 여인의 허벅지가 일순 움찔
경령을 일으켰다.
하나,
그것 뿐 여인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 헉헉...... 흐...... 역시 대단한 명기로군! 이 대단한 계집을 그동안 태양황(太陽
皇)이란 놈이 혼자 즐겼단 말이지? 」
퍽퍽.......!
사내는 몸이 녹아나는 듯한 전율적인 쾌감을 만끽하며 거칠게 아랫도리를 움직
였다.
언어도단의 만행.
두 번째 사내도 미소부의 기막힌 그곳의 자극에 견디지 못하고 급격히 절정에 육
박해 들었다.
「 헉....... 헉......! 」
그 자는 발작적으로 하체를 흔들며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한데.
그 자가 막 눈앞이 노래지며 황홀한 절정에 올라 폭발하려 할 때였다.
「 켁! 」
「 크 ──── 악! 」
돌연 숨넘어 가는 단발마의 비명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순간,
「 무슨 일이냐? 산통깨지게.......! 」
미소부의 육체를 유린하던 사내는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그 자는 여전히 폭발 직전의 쾌감에 미쳐 하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 헉! 」
그 자는 돌연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퍼퍽!
쿠쿵──── !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동료들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나무토막처럼 거꾸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 육시를 할 놈들.......! 」
스으.......
한소리 사나운 교갈과 함께 장내로 한 명의 여인이 표표히 날아내렸다.
바로 냉약빙(冷若氷)이라는 그 신비여인이 아닌가?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 당....... 당신은.......! 」
미소부의 육체를 올라타고 있던 흉한은 두 눈을 한껏 부릅떴다.
그 자의 뇌리에 군마영웅보(群魔英雄譜)의 서열 제십위(第十位)에 올라있는 한
명의 무서운 여인의 존재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와 함께,
「 전모(電母) 냉약빙(冷若氷)! 」
화락!그 자는 공포에 질린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히 여체에서 떨어져 그대로 허공
으로 날아올랐다.
미소부의 아랫도리를 이탈한 그 자의 흉기는 이미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하나,
너무 놀란 그 자는 미처 하체를 가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눈앞에 나타난 여인의 존재는 공포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 전모(電母) 냉약빙(冷若氷)!
이것이 그 신비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여인의 몸이면서도 놀랍게도 군마영웅보의 서열 제 십위에 기록되어 있
었다.
그만큼 그녀의 일신의 무공은 기오막측했다.
특히,
그녀는 한 가지 절기 만큼은 단연 우내최강이었다.
그것은 바로 경공술이었다.
전궁만리비(電弓萬里飛)라는 그녀의 경신보법은 가히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빠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전궁(電弓)이란 다름아닌 벼락을 뜻하는 것이었다.
전모(電母)라는 냉약빙의 별호는 바로 그녀의 경공이 벼락만큼이나 빠르다하여
붙여진 것이었다.
구주팔황(九州八荒)을 통틀어 아무도 그녀보다 빠르지 못했다.
따라서,
아무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전모(電母) 냉약빙이 나타났으니 일개 음적에 불과한 흉한이 사색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헉! 」
전모(電母) 냉약빙을 보고 질겁하며 황급히 달아나려고 몸을 날리던 사내,
그 자의 입에서 이내 다급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스!
갑자기 눈 앞이 뿌옇게 변하다 싶은 순간 냉약빙이 모습이 유령같이 그 자의 앞
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와 함께,
쩌렁......
그녀의 섬섬옥수에서 일어나는 날카로운 쇳소리.
직후,
「 안돼...... 케 ──── 엑! 」
퍼 ──── 억!
우두둑!
처절한 비명과 동시에 허연 뇌수가 빗 속으로 확 번져 올랐다.
냉약빙의 손가락에서 일어난 강력한 지력이 그 자의 골통을 박살낸 것이었다.
「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 」
머리통이 어깨져 나뒹구는 음적의 시체를 노려보며 냉약빙은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한데 그때,
「 흑! 」
돌연 그녀의 옆에서 짤막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아차!)
급히 옆을 돌아보던 냉약빙은 안색이 싹 변했다.
사내들에게 윤간 당하던 미소부.
그녀가 어느 새 정신을 차려 한 자루 비수로 자신의 심장을 찌른 것이었다.
「 아아! 이런 실수를 하다니......! 」
냉약빙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책하며 발을 굴렸다.
하나,이미 늦은 후였다.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냉약빙은 급히 미소부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단
전에 장심을 붙이고 내공을 주입했다.
「 으음......! 」
내공을 주입하자 미소부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힘겹게 눈을 떴다.
냉약빙이 주입한 내공이 죽어가는 그녀를 잠시 되살린 것이었다.
「 정....... 정말...... 전모(電母) 언니....... 이신가요? 」
미소부는 죽어가는 눈으로 냉약빙을 올려다보며 미약한 음성으로 물었다.
냉약빙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요. 내가 바로 냉약빙이에요! 」
「 아아....... 죽기전에 언니를 만나다니....... 하늘이 저희 이씨 가문을....... 아
주 버리지는 않으셨군요.......! 」
미소부는 냉약빙의 대답에 안도와 함께 기쁨의 빛을 띠며 가쁘게 숨을 할딱였다.
순간,
(이(李)씨!)
냉약빙은 내심 흠칫했다.
미소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뇌리에 이씨 성을 지닌 한 명의 기협(奇俠)의 이
름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때,
「 부....... 부탁이 있어요. 언니.......! 」
미소부가 다시 꺼져드는 미약한 음성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 말해 보아요! 」
냉약빙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부를 내려다 보았다.
미소부는 문득 소나무 아래 쓰러져 있는 사내아이를 일별하며 비통하고 처연한
눈빛을 지었다.
「 저...... 아이를....... 부탁드려요.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이청천(李靑天)......
.! 」
「 이청천(李靑天)! 」
미소부의 말에 냉약빙의 입에서 놀라움의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만큼 이청천(李靑天)이란 이름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하늘 아래서 냉약빙이 존경하는 단 삼인(三人)의 기인중 한 명이었기 때문
이었다.
──── 태양황(太陽皇) 이청천(李靑天)
저 군마영웅보(群魔英雄譜)의 서열 제육위(第六位)에 올라있는 인물.
비록 군마영웅보 서열 육위에 올라있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사실상 천하제일
인(天下第一人)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태양황(太陽皇) 이청천(李靑天)이 군마영웅보의 서열 십위 내에 드는 기
인들 중 가장 나이가 젊기 때문이었다.
그의 나이는 겨우 삼십대 후반에 불과했다.
그 정도의 나이에 군마영웅보의 서열 육위에 올랐다는 것은 가히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또한,
그는 비단 무공이 기오막측할 뿐 아니라 성격 또한 인후하고 관대하기 이를데 없
어 그의 주위에는 늘 많은 기인이사들이 그를 따르고 추종했다.
만일 그가 천하제패의 야심만 있었다면 그는 단시일 내 수하에 거대한 조직을 이
룰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성격이 담백한 태양황(太陽皇) 이청천은 애초 천하의 패권같은 것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해서,
그는 난주(蘭洲) 교외의 태양곡(太陽谷)이란 곳에 아담한 장원을 짓고 칩거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는 서북제일미인(西北第一美人)이라는 아내가 있었다.
──── 옥수상아 우담혜(愚潭慧)!
태양황(太陽皇) 이청천의 아내,
이청천이 혼탁한 속세를 떠나 태양곡(太陽谷)에 은거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아닌
그 절세미인의 아내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전모 냉약빙,
문득 그녀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 여자가....... 바로 이대협의 아내인 옥수상아........!)
그녀는 아주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렇다.
사내들에게 윤간당한 후 자살을 시도했던 미소부,
그녀는 바로 태양황(太陽皇) 이청천(李靑天)의 아내이며 서북제일미인(西北第一
美人)이라던 옥수상아 우담혜(愚潭慧)였다.
사실 한때 전모 냉약빙도 태양황 이청천에게 마음이 끌린 적이 있었다.
하나,
그녀는 자신의 나이가 이청천보다 십여살 많다는 사실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었다.
그 후 이청천이 옥수상아와 결혼했다는 소문을 듣고 냉약빙은 쓰라린 실연의 고통
을 겪기도 했었다.
물론 옥수상아가 그런 사실을 알 리 없었지만,
냉약빙은 아미를 모으며 생각에 잠겼다.
(태양곡(太陽谷)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옥수상아가 이런 참변을 당했단 말인가?)
그녀는 의아함과 함께 근심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옥수상아 우담혜가 어린 아들과 함께 변을 당한 것으로 보아 태양황 이청천의
신변에도 좋지않은 일이 벌어졌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하나,
냉약빙으로서는 이청천의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기력이 쇠잔한 옥수상아,
그녀가 냉약빙의 품에서 숨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절벽 아래에 하나의 작은 무덤이 생겨났다.
물론 그것은 옥수상아 우담혜의 무덤이었다.
냉약빙은 옥수상아의 무덤 앞에 선 채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가엾은 여인이다. 장차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될 기협의 아내가 이토록 비
참한 최후를 맞다니.......!)
그녀는 못내 안타까움과 침통함을 금치못했다.
지금 그녀의 품에는 이청천과 옥수상아의 아들이 안겨있었다.
영준하고 총기있는 용모의 사내아이,
그의 머리의 상처는 대단하지 않았다.
다만 출혈이 심해 정신을 잃었던 것 뿐이었다.
냉약빙은 그 사내아이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훌륭한 근골이다. 대가가(大哥哥)가 이 아이를 보시면 기뻐하시겠군!)
그러다,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빨리 대가가를 도우러 가야만 한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처한 급박한 사정을 깨닫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녀는 급히 몸을 돌리려다말고 다시 한 번 옥수상아 우담혜의 무덤을 바라보았
다.
「 걱정 말아요. 우부인! 이 아이는 나 냉약빙이 친아들처럼 보살펴 줄테니......! 」
그녀는 나직한 음성으로 옥수상아의 무덤에 대고 약속했다.
이어,
스슥!
그녀의 교구는 그대로 쏟아지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쏴아아.......
사라지는 그녀의 그림자 뒤로 거센 폭우가 내리퍼부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푹우는 방금전 이곳에서 벌어진 무참한 만행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내고 있었다.
第2章 고독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곤륜 ──── !
천산(天山)과 함께 신강 대분지를 남북으로 감싸고 있는 대륙의 중추,
곤륜이라는 산명(山名)이 신(神)들의 궁성(宮城)을 의미함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다.
그 장대한 곤륜의 동쪽.청해(靑海)를 굽어보고 있는 천길 단애가 자리하고 있었
다.
──── 고독애(孤獨崖)!
거꾸로 꽂힌 거대한 칼의 허리 부분을 뚝 꺽어 세워놓은 듯한 웅자한 형상의 단애!
그 단애의 이름은 고독애(孤獨崖)였다.
그 허리가 늘상 자욱한 운무로 뒤덮여 있는 고독애,
그 형상은 이름 그대로 고독하고도 의연해 보였다.
그 고독애의 정상,
의외로 만여 평에 달하는 거대한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울창한 송림으로 가득 찬 넓디넓은 분지,
그 끝에는 돌로 지은 한 채의 아늑한 석옥(石屋)이 세워져 있었다.
아담하고도 운치있게 서 있는 석옥.
그것은 마치 세외도원 속의 한폭 그림인 덧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하나,
오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별세계의 선경(仙境)과도 같은 고독애는 지금 온통 역겨운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진 않은가?
고독애의 분지.
지금 그곳에는 천여 명의 무림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하나,
그들 중 절반 정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고독애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아담한 석옥.
그 일대에는 수백 구의 시신들이 처참한 형상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머리가 으깨졌거나 몸뚱이가 짓뭉개진 처참한 시신들,
그 자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내장들이 질펀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실로 보기만해도 치가 떨리는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처참한 시체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체가 된 자들의 신분이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태반이 한 지역의 당당한 패자들이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자들은 저 군마영웅보상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일대명
인들이라는 것이었다.
믿어지지 않게도 그 같은 막중한 신분을 지닌 자들이 중원으로부터 머나먼 이곳
곤륜의 고독애에 시신으로 화해 누워있는 것이었다.
침묵,
장내는 무섭도록 조용했다.
비록 운집한 군웅들 중 절반 정도가 죽임을 당했으나 여전히 고독애에는 오륙백
명에 달하는 무림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터질 듯 팽팽한 긴장감과 침묵.
장내는 온통 그 숨막히는 기운으로 가득차 있었다.
군웅들은 침묵 속에 하나의 거대한 포위망을 반원형으로 구축한 채 고독애 끝의
석옥을 에워싸고 있었다.
석옥을 포위하고 있은 군웅들의 면면을 보면 실로 대단했다.
그들 속에 천하무림의 모든 명숙들이 다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단 한명만 나타나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는 일대 기인들.
하나,
천하를 떨어올릴 고수들이 수백 명이나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가에 은은
하게 떠도는 공포의 빛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 」
「 .......! 」
군웅들은 온통 긴장과 공포의 눈빛으로 석옥을 주시하고 있었다.
석옥 안에는 누가 있단 말인가?
누가 있기에 천하의 뭇 군웅들을 떨게 만든단 말인가?
군웅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일견하기에도 삼인(三人)의 고수로 보였다.
석옥 뒤쪽의 천길 단애를 제외한 포위망의 삼면을 지키고 이씨는 인물들,
뭇 기인들 중에서도 그들 삼 인의 기도는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할만했
다.
포위망의 정면,
그곳을 지키고 선 인물은 한 명의 노검수(老劍手)였다.
일신에는 푸른색 학창를 걸치고 있었으며 가슴까지 드리운 검은 수염이 무척 인
상적이었다.
그는 보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절정에 달한 내가고수임이 분명했다.
노검수의 허리춤,
한 자루의 목검(木劍)이 걸려 있었다.
칠흑같이 검은 나무로 깎은 목검(木劍).
그것은 유서깊은 검술명가(劍術名家)의 상징이었다.
────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
우내제일의 검술명가,
그 연원은 천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직 검술 한 가지에만 매진해온 일족.
그 결과,
그들은 웅혼하고 장대한 검예를 이룩해냈다.
당대무림에서 검법(劍法)으로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에 필적하는 세력은 전무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창이를 걸친 노검수.
그는 바로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의 당대가주였다.
유성신검황(流星神劍皇) 혁련휘(赫連輝) ──── !
군마영웅보의 서열 제삼위(第三位)에 오른 인물.
다시 말해 그는 전무림을 통틀어 제 삼위의 강자였다.
하나,
단순한 검법만이라면 그는 가히 우내최강(宇內最强)으로 꼽히리라.
유성신검황(流星神劍皇) 혁련휘의 좌측,
한 명의 섬뜩한 괴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의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 긴 곰방대를 빨고 있었다.
오척의 단구.
게다가,
그는 볼품없는 꼽추에 추괴하기 이를 데 없는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기이하게도 그의 전신 피부는 짙푸른 녹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녹색 물감을 뒤집어 쓴 듯한 기괴한 형상.
비단 피부색만이 녹색이 아니었다.
그는 눈동자마저도 섬뜩한 벽록색이 아닌가?
실로 보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모습.
그 꼽추노인의 주위로는 군웅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군웅들은 이 기괴하고도 섬뜩한 모습의 꼽추노인을 극히 두려워하는 듯했다.
──── 독천존(毒天尊) 서래음(西來音)!
군마영웅보의 서열 제 사위(第四位)의 인물.
그는 가장 무서운 독공의 달인이었다.
그의 전신은 온통 극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단지 숨결만으로도 십 리 밖의 적을 중독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대리(大里)에 자리한 독성부(毒聖府)의 지존.
유성신검황(流星神劍皇) 혁련휘의 우측,
그곳에는 한 명의 섬뜩한 인상을 지닌 장한이 음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일신에 칠흑같이 검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위에 마치 박쥐 날개 모
양과도 같은 검은 피풍을 두르고 있었다.
제법 준수한 인상.
하나,
그의 안색은 핏기 한점 없이 보였다.
백지장같이 새하얗고 창백한 안색.
너무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까지 보여 그는 마치 무덤에서 뛰쳐나온 시체같아
보였다.
──── 유령대제(幽靈大帝) 구양수(九陽秀)!
군마영웅보 서열 제 오위(第五位)의 인물.
그는 북망산 구유마궁(九幽魔宮)의 지존이었다.
음유한 음부마공(陰府魔功)을 연마하여 소리없이 적을 죽이는 암수에 능한자.
그 자가 은연중 무림패권을 노리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유성신검황(流星神劍皇) 혁련휘.
독천존(毒天尊) 서래음.
유령대제(幽靈大帝) 구양수.
군마영웅보의 서열 삼, 사, 오 위를 차지하고 있는 절정고수들.
그 자들이 바로 고독애에 운집한 군웅들의 사실상 통솔자였다.
그들 삼 인과 태양황(太陽皇) 이청천을 합쳐 무림인들은 사대천왕(四大天王)이
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
독성부(毒聖府),
구유마궁(九幽魔宮).
그리고 태양황 이청천의 태양곡(太陽谷) 등의 사파를 합쳐 무림인들은 신주사패
천(神州四覇天)이라 칭했다.
현재 이곳 고독애에는 그 사대천왕과 신주사패천(神州四覇天) 중 태양황 이청천
과 그의 태양곡(太陽谷)만이 빠져 있었다.
사실상 중원무림의 정영이 모두 비좁은 고독애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었다.
「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거요, 서형? 」
문득,
오랜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유령대제(幽靈大帝) 구양수였다.
그 자는 짜증서러운 음성으로 말하며 독천존(毒天尊) 서래음을 돌아보았다.
「 연(燕)가는 이미 서형의 무형지독(無形之毒)에 중독당한 데다가 오백여 명의
고수들을 해치운 대가로 심각한 내상까지 입은 상태요. 그렇거늘 무엇을 두려워
하는 것이오? 」
그 자는 불만을 참지 못하고 음침한 음성으로 다그쳤다.
하나,
독천존 서래음.
그는 태연히 담뱃대만 빨고 있었다.
「 물론 노부의 무형지독(無形之毒)은 제법 쓸만하지! 」
그는 혼잣말을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 아무리 내공이 신화경에 이른 연가라 해도 무형지독(無形之毒)을 이겨내지는
못할걸? 」
그 말에 듣고 있던 유령대제는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재촉했다.
「 그걸 잘 알면서 왜 망설이는 것이오? 당장 쳐들어 갑시다! 」
하나,독천존 서래음의 가늘게 뜬 두 눈에 비웃음의 빛이 어렸다.
그는 유령대제를 향해 나직하게 혀를 찼다.
「 끌끌, 구양궁주는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에 눈이 멀어서 우리의 상대가 누군
지 모르고 있는 듯하구려! 」
그 말에 유령대제는 흠칫했다.
독천존은 그런 유령대제를 향해 차가운 조소를 보이며 문득 음악하게 웃었다.
「 우리의 상대는 다름아닌 천하의 고독마야(孤獨魔爺)요. 그래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오! 」
「 ....... 」
유령대제의 눈꼬리가 일순 미미하게 떨렸다.
독천존의 어투에서 모멸감을 느낀 것이었다.
허나,
그 자는 독천존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눈 앞의 석옥에 은둔하고 있는 인물.
그는 유령대제 구양수가 유일하게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었다.
다름 아닌
고독마야(孤獨魔爺) 연남천(燕南天) ──── !
그가 석옥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 클클....... 우린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거요! 연가 늙은이가 무형지독의 독
기를 견디지 못하고 제풀에 쓰러질 때까지.......! 」
독천존이 음악한 웃음을 흘리며 재차 확인시키듯 말했다.
그 자의 그런 사악한 웃음에 유성신검황 혁련휘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독천존이나 유령대제와는 달리 광명정대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다.
비록 적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중독되어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는 비겁한 짓은 할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그였다.
하나,
상대는 고독마야였다.
그의 필생의 숙적!
자칫 객기를 부리다가는 고독마야의 손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내 한몸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유성신검황은 내심 탄식하며 독천존과 유령대제를 돌아보았다.
그렇다.
만일 그가 고독마야와 맞서다 개죽음을 당하면 독천존과 유령대제만 이롭게 만
들뿐인 것이다.
독천존의 독성부(毒聖府)와 유령대제의 구유마궁(九幽魔宮)의 무림제패의 야욕
을 저지하고 있는 유일한 세력이 바로 유성신검황의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이
아닌가?
유성신검황은 지그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치욕스러운 일이나 이 방문좌도의 무리들과 행동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는 길게 탄식하며 석옥쪽을 주시했다.
석옥 안 ──── !
주위를 포위한 군웅들의 모습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
한 명의 마의노인이 담담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 후후...... 술도 이것이 마지막이군! 」
그는 빈 술병을 내려놓으며 공허롭게 웃었다.
육척의 훤칠한 체격,
희끗희끗한 머리,
그의 얼굴은 비록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두 눈만은 여전히 스산한 한망을
발하고 있었다.
마의노인의 분위기는 아주 독특했다.
온통 허무함과 공허로움으로 젖어있는 그의 모습,
그를 보고 있자면 절로 칼로 가슴이 저며지는 듯한 뼈저린 고독의 느낌에 휩싸
이게 된다.
그 고독감은 너무 절절하여 보는 이의 가슴까지 삽시에 물들일 듯했다.
──── 고독마야(孤獨魔爺) 연남천(燕南天)!
그렇다.
마의노인은 바로 그였다.
명실상부한 우내제일인(宇內第一人)!
육십여 년의 세월동안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고독한 절대자(絶對者)!
그가 한 자루 철검(鐵劍)을 짊어지고 나선 것은 약관도 되지않은 나이때였다.
그 후,
고독마야는 자신의 적수를 찾기 위해 중원 뿐만 아니라 새외와 변황까지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다.
하나,
고독마야는 그 어디서도 자신의 적수를 찾지 못했다.
이에 실망한 그는 이십여년 전 이곳 곤륜산의 험지에 석옥 한 채를 짓고 은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 절지를 스스로 고독애(孤獨崖)라 이름짓고 자신의 처소인 이 석옥을
고독헌(孤獨軒)이라는 현판을 새겼다.
「 어리석은 것들! 이 모두가 천하파멸을 노린 대음모(大陰謀)인 줄도 모르고 탐욕
에 눈이 어두워 몰려든 꼬락서리라니.......! 」
고독마야 연남천,
그는 스산한 비웃음을 흘리며 빈 술병을 찬 밖으로 던져 버렸다.
자세히 보면 그의 안면에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은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극독에 중독되었다는 증거였다.
──── 무형지독(無形之毒)!
색도 냄새도 없는 무색투명한 극독,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기에 누구도 무형지독의 암산을 피해내지 못한다.
일단 무형지독에 중독되면 반각 이내에 오장육부가 썩어들어가 죽게 된다.
고독마야는 그 무서운 무형지독을 다량 흡입한 상태였다.
그러고도 쓰러지지 않은 이유는 그의 내공이 신화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허나,
독천존(毒天尊) 서래음의 장담대로 고독마야의 내공이 아무리 극고하다고 하나
내공의 힘으로 무형지독을 태워버리지는 못했다.
그는 그저 무형지독이 발작하지 못하도록 억제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고독마야는 공허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려다 보았다.
(결국....... 이곳 고독애가 나 연남천의 무덤이 되겠군.)
그의 눈꼬리로 쓸쓸한 미소가 스쳤다.
(여한은 없다. 이 혼탁하고 추악한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으니까!)
그는 허허로운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군마영웅보(群魔英雄譜)라는 것을 만들어 세상을 피로
물들게 만든 놈의 상판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이다.)
문득,
그는 눈길을 한쪽 옆으로 돌렸다.
서탁.
그곳에는 몇권의 책자가 쌓여 있었다.
표지가 새것인 한 권의 책자,
그리고,
아주 낡은 세 권의 비단 책자가 그것이었다.
──── 군마영웅보(群魔英雄譜)!
최근에 지어진 듯한 새책자는 바로 군마영웅보였다.
그것은 얼마전 고독마야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리고,
세 권의 낡은 비단 책자,
────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
그것은 바로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이었다.
전무림인들로 하여금 고독마야 연남천을 합공하게 만든 장본인,
두달 전 ──── !
고독마야는 아주 우연히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을 수중에 넣게 되었다.
그는 천산(天山)으로 한 가지 약초를 구하러 갔었다.
그러다 어느 빙곡(氷谷)에서 하나의 빙동(氷洞)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빙동(氷洞)은 전대기인의 은거지였다.
한데,
고독마야가 그 빙동에 들어섰을 때 그곳을 이미 먼저 발견한 자가 있었다.
그 자는 새북인마(塞北人魔)라는 자였다.
군마영웅보 서열 삼십 위 안에 드는 대단한 고수자,
물론 고독마야의 입장에서 본다면 새북인마(塞北人魔)란 작자는 그저 하루살이
정도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고독마야는 새북인마가 먼저 전대기인의 유물을 발견한 사실을 인정하고 조용히
물러나려 했었다.
하나,
새북인마란 작자가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
그 자는 꿈에도 상대가 고독마야임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고독마야는 그저 평범한 약초 캐는 노인으로 보였기 때문이
었다.
새북인마는 자신이 비급을 발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시끄러워 질 것을 우려
했다.
해서,
그 자는 생각 끝에 살인멸구 한답시고 고독마야에게 덤벼들었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물론 새북인마는 고독마야의 일격도 받아내지 못하고 거꾸러지고 말았다.
고독마야의 단 일격에 한 팔이 으깨지고 나서야 새북인마는 비로소 상대가 누군지
알아 차리고 기겁했다.
사색이 된 새북인마,
그 자는 즉시 고독마야의 앞에 오체복지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이에,
고독마야는 굳이 새북인마의 목숨을 뺏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 자가 발견한 비급
만 뺏고 목숨은 살려 주었다.
그 자에게서 빼앗은 비급이 바로 혈마대장경이었다.
고독마야는 새북인마가 허둥지둥 달아난 후에야 자신이 흡혈마조(吸血魔祖)의
마경(魔經)을 얻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의 무공은 인간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에 다른 무공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
새북인마를 살려 보낸 것이 끝내 화근이었다.
그 자는 고독마야에게 복수한답시고 고독마야가 혈마대장경을 지닌 사실을 여기
저기 소문으로 퍼뜨리고 다닌 것이다.
고독마야,
허허로운 그의 두 눈에 문득 스산한 한기가 번뜩였다.
(나 연남천은 팔십평생 단 한 번도 도전을 회피해 본 적이 없다!)
그는 서늘한 한광이 일렁이는 눈으로 창 밖에 운집해 있는 군웅들의 모습을 바
라보았다.
(비록 저 어리석은 자들이 남의 꾐에 빠져 도전해 오긴 했으나 예외가 돌 수는
없다!)
문득,
그의 입꼬리에 차가운 조소가 떠올랐다.
(후훗! 너희들 모두는 나 연남천과 함께 이곳 고독애에 뼈를 묻게 되리라! 비록
무형지독에 오장육부가 썩어들어가고는 있지만 너희들을 지옥으로 함께 데려
갈 힘은 남아 있으니까.......!)
이윽고,
그는 서탁 위의 혈마대장경을 집어들었다.
(먼저 이 마경(魔經)들부터 없애야 하리라. 만일 이것이 욕심이 큰 놈의 손에 들
어가면 큰 화근이 될테니까!)
그는 손에 든 세권의 혈마대장경을 내려다보며 염두를 굴렸다.
세 권의 혈마대장경.
그 속에는 전설에 전해지는대로 실로 끔찍하기 이를데 없는 마공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단순히 파괴력만으로 따진다면 비록 고금오대고수(古今五大高手)의 일 인인 흡
혈마조(吸血魔祖)가 남긴 혈마대장경의 무공도 고독마야의 일신 절기보다는 못
했다.
하나,
혈마대장경의 잔혹하고 신랄한 면은 고독마야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해서,
고독마야는 죽기 전에 아예 이 화근덩어리를 없애버릴 작정을 한 것이었다.
「 후훗! 흡혈마조(吸血魔祖)에게 미안하군! 」
고독마야는 나직한 고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손에 힘을 주어 들고있던 혈마대장경을 으깨버리려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우우 ──── ! 」
돌연 한소리 날카로운 장소성이 고독애 아래에서 들려왔다.
순간,
(이 목소리는.......!)
막 혈마대장경을 으깨버리려던 고독마야는 흠칫하며 손을 멈추었다.
그 직후,
피 ──── 잉!
쐐액 ──── !
돌연 고독애 아래에서 한줄기 흐릿한 인영이 질풍같이 날아올랐다.
그 날아드는 속도는 너무 빨라 뭇 군웅들의 눈에도 인영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
지 않을 정도였다.
다음 순간,
「 전....... 전모(電母) 냉약빙이다! 」
「 막아랏! 」
비로소 고독헌을 포위하고 있던 군웅들 사이에 분분한 경악성이 터져올랐다.
동시에,
스슥!
화라락!
그들은 분분히 날아오르며 질풍같이 솟구쳐 오르는 인영을 막으려 했다.
하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스학!
군웅들이 미처 어찌해 보기도 전에 날아든 인영은 군웅들의 머리를 뛰어넘어 고
독헌으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 잡아랏! 혈마대장경이 전모(電母)의 손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
쐐액!
스스슥!
군웅들이 저마다 노호를 지르며 고독헌으로 날아가는 왜영의 뒤를 쫓아갔다.
──── 전모(電母) 냉약빙!
그렇다.
일거에 군웅들의 포위망을 날아넘은 여인은 다름아닌 전모 냉약빙이었다.
이윽고,
스슥!
눈 깜짝할 순간 고독헌의 앞으로 내려선 냉약빙.
그녀는 빙글 돌아서며 군웅들을 향해 사나운 교갈을 터뜨렸다.
「 바득! 죽고 싶은 작자들은 고독헌에 접근해라! 」
말과 함께,
핑 ──── !
그녀의 섬섬옥수가 빠르게 흔들려지며 하나의 검붉은 구슬이 추적해 들어오는
군웅들을 향해 던져졌다.
순간,
(저것은.......!)
지켜보고 있던 유성신검황 혁련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노련한 검호답게 한눈에 냉약빙이 던져낸 검붉은 구슬이 무엇인지 알아본
것이었다.
「 굉천벽력탄(宏天霹靂彈)이다! 」
그의 입에서 다급한 폭갈이 터져나왔다.
하나,
늦고 말았다.
콰르릉.......!
콰콰 ──── 쾅 ──── !
돌연 천둥치는 듯한 가공할 굉음이 터져 오르며 무서운 폭발이 장내를 휩쓸었다.
그와 함께 시야를 가리며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자욱한 화약년기!
그 속에서,
「 크악! 」
「 케에엑! 」
처절한 단발마의 비명의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삽시에,
수십 명의 군웅들의 육신이 혈체조차 없이 갈가리 찢겨 날아간 것이 아닌가?
실로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으으....... 굉천벽력탄(宏天霹靂彈)이다. 」
「 벽력장(霹靂莊)의 화기를 지니고 있다니........! 」
살아남은 군웅들은 사색이 되어 고독헌 주위에서 달아났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냉약빙은 싸늘한 살광을 폭사했다.
「 바득!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작자는 망동해도 좋다! 」
그녀는 고독헌 앞에 우뚝 선 채 오른손을 번쩍 쳐들어 보였다.
그녀의 섬섬옥수.
그 섬섬옥수에는 몇알의 검붉은 구슬이 들려 있었다.
물론 그것은 방금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던 굉천벽력탄(宏天霹靂彈)이었다.
그것을 본 독천존과 유령대제.
그 자들의 안색이 낭패함으로 물들었다.
「 으음....... 저 계집이 산통 다 깨는군! 」
「 빌어먹을.......! 」
그 자들은 일세를 풍미하는 고수자들이었다.
하나,
결코 굉천벽력탄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하물며,
전모 냉약빙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내 최강의 경공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녀가 자신들을 폭사시킬 작정을 한다면 결코 피해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
독천존과 유령대제가 낭패함을 금치못하고 있을 때,
스슥!
냉약빙은 훌쩍 고독헌 안으로 날아들었다.
이는 실로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바람에,
아무도 냉약빙의 가슴섶이 유난히 볼록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 헛허! 한 걸음 늦었다. 약빙! 」
고독마야는 다급히 고독헌 안으로 날아드는 냉약빙을 바라보며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무하기만 하던 그의 두 눈에 지금 이 순간만은 따스한 정감이 깃들었다.
그것은 전모 냉약빙이야말로 고독마야가 마음을 주고있는 단 한명이었기 때문이
다.
급급히 고독헌 안으로 들어서던 냉약빙.
일순 그녀는 사색이 되며 교구를 휘청했다.
「 가가! 중....... 중독당하셨군요! 」
그녀가 한눈에 고독마야가 극독에 중독된 사실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녀는 놀라움과 분노로 파르르 교구를 경련했다.
「 바득....... 잠깐만 기다리세요. 독천존이란 작자에게서 해약을 빼앗아 오겠어요! 」
그녀는 이를 갈며 다시 고독헌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나,
「 오라버니를....... 부끄럽게 만들 작정이냐, 약빙? 」
「 .......! 」
고독마야의 나직한 한 마디 말에 냉약빙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그 자리에 얼어붙
고 말았다.
그렇다.
고독마야!
그는 자존심이 극도로 강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살기 위해서 남에게 구걸한다는 것은 결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흐윽....... 가가! 」
마침내 냉약빙은 분노와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나,
고독마야는 극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 울지 마라, 약빙! 인간이란 언제고 한 번은 죽게 마련이다. 다만 그 시기가 문
제일 뿐! 」
그는 오열하는 냉약빙을 향해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냉약빙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는 더할 수없이 따스한 정감이 담겨져 있었다.
「 하여간 잘 왔다. 저 어리석은 작자들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몇 가지 마
음에 걸리는 점이 있는데........ 이제 네게 그것을 맡기면 되겠구나! 」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그의 말에 냉약빙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독마야를 주시했다.
「 저....... 쓰레기들과 동귀어진할 작정인가요? 가가! 」
그녀는 눈물 젖은 두 눈에 불신과 놀라움의 빛을 가득 담은 채 소리쳤다.
하나,
고독마야는 태연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 쓰레기들이라니....... 그래도 저들은 최소한 한 지역의 패자들인 대단한 고수
들이 아니냐? 」
그는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군마영웅보에 기록된 자들을 모조리 동반하여 저 세상에 간다면 손해볼 것도
없다! 」
그러나 냉약빙은 그의 말에 강하게 반발했다.
「 그....... 그래서는 안돼요! 가가! 」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고독마야를 주시했다.
하나,
이미 고독마야의 뜻은 확고부동한 듯했다.
◈ 등장인물
고독마야(孤獨魔爺) 연남천!
무림인들 사이의 서열을 정해놓은 신마풍운록(神魔風雲錄) 서열 제일
위에 올라있는 천하제일인.
너무도 강했기에 친인도 없고 적수도 없어 필연적으로 고독해질 수밖
에 없었던 불우한 절대자.
고금오대고수(古今五大高手)의 일인이기도 하다.
이검한(李劒恨)
고독마야 섭장천의 후계자. 멸문당한 가문의 원한과 고독마야 섭장천
의 복수를 한몸에 짊어진 채 단신으로 전 무림과 격돌한다. 원하지
않았으나 운명적으로 고독마야처럼 고독한 인생행로를 걷게 된다.
혈황(血皇)
암중의 음모자. 천하를 피로 물들이는 사악한 흉계가 모두 그로부터
나왔다. 나이, 성별, 출신 모두 불명인 신비한 인물이다.
전모(電母) 냉약빙(冷若氷)
고독마야 섭장천의 의녀(義女). 의부(義父) 연남천을 대
신하여 이검한을 가르치는 스승이며 보호자다.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경신술을 소유하여 전모(電母)라 불린다.
누란왕후(樓蘭王后) 흑요설(黑瑤雪)
서역 누란왕국의 마지막 왕후. 탐욕스러운 사내들에게 유린당한 원한
으로 이 세상에서 사내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맹세한 마녀(魔女).
이검한의 실수로 천 년 만에 부활하여 세상을 피로 씻는다.
유성신검황(流星神劒皇) 혁련휘(赫蓮輝)
신마풍운록 서열 삼위인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劒). 혁련검호각(赫蓮劒
豪閣)의 각주이고 사방무제(四方武帝)의 일인. 고독마야 섭장천을 협
공한 주역 중의 한 명이다.
독천존(毒天尊) 서래음(西來音)
신마풍운록 서열 제사위에 올라있는 독공(毒功)의 제일인자이며 독성
부(毒聖府)의 지존. 역시 사방무제의 일인이며 고독마야를 무형지독(
無形之毒)으로 중독시킨 장본인.
천존(毒天尊) 서래음(西來音)
신마풍운록 서열 제사위에 올라있는 독공(毒功)의 제일인자이며 독성
부(毒聖府)의 지존. 역시 사방무제의 일인이며 고독마야를 무형지독(
無形之毒)으로 중독시킨 장본인.
귀왕서시(鬼王西施) 음월방(陰月芳)
북망산 귀왕궁(鬼王宮)의 전대궁주였던 고루천존의 아내. 유령마제에
게 암산당해 사경에 처했다가 녹발수망천강인(綠髮鬚網天 刃)이라는
초절기를 얻어 가공할 고수가 되었다. 유령마제에게 남편과 아들을
잃은 복수를 꾀한다.
달단여왕( 女王) 나유라(羅維羅)
몽고의 양대부족 중 하나인 달단부( 府)를 영도하는 여걸.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되었으나 스스로 여왕이 되어 분열되려는 달단부를
결속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대원제국의 부활을 노리는 오이랍부[
衛拉府]의 효웅 철목풍(鐵木風)과 숙명적인 대립을 한다.
유령마제(幽靈魔帝) 구양수(九陽秀)
신마풍운록 서열 제오위. 음험하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군웅들
이 고독마야를 협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고독마야를 제외
하면 가장 강하다는 사방무제의 일인이다.
서장(序章)
-신마풍운록(神魔風雲錄)
이것은 당금의 강호무림을 활보하고 있는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의 이름을 나
열해 놓은 인명부(人名簿)다.
하지만 바로 그 단순한 인명부로 인해 무림역사상 최악의 살겁이 벌어지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지(大地)가 시신으로 뒤덮이고 사해오호(四海五湖)가 피로 물드는 대혈겁이
바로 이 신마풍운록으로 인해 발발되었다.
수많은 생명이 무참하게 스러지는 사상 초유의 대참사가 어이없게도 그저 사
람의 이름을 나열해놓은 한 권의 책자(冊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 * * *
-신마풍운록!
신마(神魔)와 풍운(風雲)이라는 말 그대로 신마풍운록에는 당금 무림에서 신
(神)과 마(魔)처럼 풍운을 일으키고 있는 정사(正邪) 양도(兩道)의 기인고수
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무림인이라 하여 누구나 신마풍운록에 기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한 지방의 패주(覇主)이거나 어느 한 방면에서 일가를 이룬 명인(名人)들만이
신마풍운록의 한 장을 장식할 수 있다.
따라서 신마풍운록에 이름이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 인물은 천하무림의 정
세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유력한 인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신마풍운록이 누구에 의해 작성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
다. 향후 무림의 대세를 좌지우지하는 막중한 비중을 지닌 신마풍운록은 어
느날 문득 천하각지에서 발견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불현듯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신마풍운록은 아주 짧은 시간에 남칠성
(南七省) 북육성(北六省)의 거의 전 지역에 배포되었으며 무림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신마풍운록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강호인들은 득의해 마지않았다. 신마풍운
록에 거론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신이 당금 무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
는 요인임이 증명된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서 무림인들의 호기심(好奇心)은 공포(恐怖)와 의혹(疑惑)
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신마풍운록에 이름이 오른 명숙들이 무
참하게 살해되는 참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잇달아 무림명숙들을 살해한 범인(氾人)이 누구인지는 이내 밝혀졌다.
신마풍운록-!
그것이 도처에서 일어난 참사의 원흉이었다.
물론 신마풍운록이라는 책이 살인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마풍운록이 살인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신마풍운록에 기록된 이름들에 서열(序列)이 매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신마풍운록의 기록자는 대단한 통찰력으로 개개인의 능력을 분석(分析) 비교
(比較)하여 서열을 매겨 놓았는 바, 그것이 재앙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제삼자가 보기에 신마풍운록의 서열은 상당히 일리가 있고 수긍이 갈만한 것
이었다.
하지만 이름이 거론된 당사자들의 입장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데 불화
의 불씨가 감춰져 있었다.
-내가 왜 그 작자보다 서열이 낮은가?
대다수의 명숙들이 그 같은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자기보다 상위서
열에 오른 인물들에게 격렬한 질시(嫉視)와 살의(殺意)까지 품는 결과를 초래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자가 사라진다면 내가 그자의 서열을 차지할 수 있지 않은가?
악마의 속삭임이 무림인들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이 대참극의 시발점(始發點)이었다. 신마풍운록상의 서열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자기 윗 서열의 명숙을 암살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사악한 유혹으로 인해 최초로 희생당한 인물은 신마풍운록사의 서열 백칠
위(百七位)였던 상강조수(湘江釣搜)라는 인물이었다.
상강조수는 한 자루 낚시대만 있으면 고래라도 낚아 올릴 수 있다는 풍진기
인(風塵奇人)이었다.
헌데 그가 자신보다 하위 서열로 기록된 몇 명의 고수들에게 합공당해 비참
하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것이 핏빛 회오리의 시작이었다.
도처에서 신마풍운록의 서열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자
기들보다 위 서열의 고수들을 암살하기 시작했다.
추악한 암살극은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으며 일단 불이 붙기 시작한 혈풍은
일거에 전 중원을 휩쓸었다.
피는 피를 부르고 죽음은 또 다른 죽음을 낳았다.
신마풍운록의 명숙들은 서로를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다. 살아 남으려면 먼저
상대를 죽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의심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무자비한 살륙으로 이어졌다.
이제 무림에서 평화란 말은 사라지고 살륙과 피비린내만이 중원전도를 휩쓸
었다.
그런 어느날 무림에 퍼진 한 가지 소문에 의해 신마풍운록이 일으킨 혈풍은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고독마야(孤獨魔爺)가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을 얻었다!
소문이란 바로 그것이었다.
이 소문을 접한 무림인들은 공포와 경악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문에 언급된 한 인물의 이름과 비급의 제목이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독마야(孤獨魔爺) 연남천(燕南天)!
그가 누구인가?
다름아닌 당금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아닌가?
신마풍운록의 첫 장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고독마야 연남천인 것이다.
고독마야 연남천은 지난 육십 년의 세월을 고독하게 살아 왔었다.
그에게 친인(親姻)도 없었고 또 적수(敵手)도 없었다.
호적수는 고사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그 누구도 고독마야의 삼초지적(三招之
敵)이 되지 못했다.
적수조차 없는 것은 얼마나 고독하고 불행한 일인가?
너무나 강했기에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고독한 절
대자가 바로 고독마야였다.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
그 이름은 고독마야보다 오히려 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그것은 고금오대고수(古今五大高手)중 일 인으로 알려진 한 명의 흉마(凶魔)
가 남긴 비급이었다.
-흡혈마조(吸血魔祖)!
혈교(血敎)의 창시자인 그는 인육(人肉)을 먹고 인혈(人血)을 술 대신 마셨다
는 전설 속의 마인이었다.
흡혈마조는 천인공노할 숱한 악행을 자행하였으나 일백 수십살의 천수(天壽)
를 누리고 죽었다고 한다. 너무도 강한 그를 아무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
다.
심지어 염라대왕(閻羅大王)마저도 흡혈마조를 두려워하여 끝까지 살려두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그는 막강하였고 또 공포 그 자체였다.
그 흡혈마조의 필생마학이 담긴 비급이 혈마대장경이다.
헌데 그 혈마대장경이 고독마야 연남천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같은 소문을 접한 무림인들은 공포와 전율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히 인세무적(人世無敵)인 고독마야가 혈마대장경까지 연마
한다면 그 결과는 삼척동자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독마야에게 혈마대장경을 연마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가 혈마대장
경마저 익힌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영원히 고독마야를 능가하지 못한다!
-혈마대장경 중의 한 조각만 얻어도 독패군림(獨覇君臨)할 수 있다!
추악한 시기심과 탐욕이 전 무림을 열병처럼 휩쓸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수많은 무림인들이 꾸역꾸역 곤륜산(崑崙山)
고독애(孤獨崖)로 몰려 들었다.
그곳이야말로 저 불세출(不世出)의 기인 고독마야 연남천이 은거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신마풍운록의 영웅들은 거의 전원이 곤륜산으로 몰려들었
다.
하지만 이 모두가 천하를 집어 삼키려는 사악한 음모에 의해 비롯된 것임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치밀하고도 잔혹한 음모와 살육의 그물(網)이 전 무림을
옥죄어가고 있음을··········!
第1章 우중인연(雨中因緣)
──── 기련산.
감숙성(甘肅省)과 청해성(靑海省)의 경계에 자리한 험산(險山).
기련산의 서쪽에는 그 유명한 서역(西域)과 중원(中原)의 관문인 옥문관(玉門關)
이 자리하고 있었다.
쏴아아.......
우르릉 ──── !
폭우(暴雨)!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대발같이 쏟아지는 거센 빗줄기는 기련산 전역을 맹렬한 기세로 휩쓸고 있었다.
한데,
쉬학!
스스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거친 폭우 속을 질풍같이 질주하는 하나의 인
영이 있었다.
「 으음...... 서둘러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된다! 」
초조함과 근심이 가득한 여인의 음성.
여인의 신법은 너무 빨라 보통 사람이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설령 절정의 내공을 지닌 고수라 해도 여인의 흐릿한 그림자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가히 천지일성의 벼락과도 같은 빠르기였다.
스스.......
여인은 한 번 도약할 때마다 무려 삼사백 장씩 쭉쭉 쏘아져 나갔다.
가히 신(神)의 경지에 이른 경신술!
도대체 여인은 어떤 경신법을 연마했기에 그토록 빨리 달릴 수 있단 말인가?
촤아....... 아!
쏟아지는 폭우조차도 여인의 주위로는 접근하지 못했다.
너무 빨리 달리는 관계로 그녀의 주위로 진공상태가 생기는 까닭이었다.
「 아아! 어리석은 자들! 이 모두가 대가가(大哥哥)를 해치려는 음모인줄도 모르
고 그이를 핍박하려하다니.......! 」
여인은 폭우 속을 질주하며 초조한 듯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나이는 어느 정도 되었을까?
언뜻 보기에 그녀는 이십대 정도로 보였으며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명장이 조각한 듯 섬세하고 우아한 용모,
백옥같이 흰 피부,
천상선녀(天上仙女)가 하강한 것일까?
실로 보는 이의 혼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나,
자세히 보면 여인은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님을 알수 있었다.
먼저 여인의 귀밑머리는 희끗희끗한 백발이었다.
또한,
눈꼬리에 진 몇가닥의 잔주름도 그녕가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인임을 알게 해주었
다.
(만에 하나 가가(哥哥)가 이미 변을 당했다면 전 무림이 나 냉약빙(冷若氷)의 손
에 피로 씻기리라!)
여인은 질풍같이 몸을 날리며 붉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섬섬옥수는 자신의 허리에 찬 하나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고 있었
다.
그 주머니 안에서는 은은한 화약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이는 나의 생명과 다름없다! 그 분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굉천벽력탄(宏天霹
靂彈)보다 더한 것이라도 쓸 수 있다!)
그녀는 결연한 눈빛을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녀의 허리에 찬 주머니,
그 속에는 아주 무서운 화기(火器)가 십여 개나 들어있었다.
(하여간 서둘러야 한다! 곤륜까지는 아직도 이천여 리나 남았으니......!)
쉬학!
여인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하나의 산봉을 그대로 날아 넘었다.
한데,
그녀가 막 산봉을 날아 넘었을 때였다.
「 아 ──── 악! 」
돌연 빗 속에서 한소리 애처로운 여인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냉약빙(冷若氷)이라 자칭한 여인,
그녀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런 산속에 웬 여자가......!)
그녀는 본능적으로 멈추어 섰다.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은 냉약빙의 우측 어느 계곡 안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가볼까?)
냉약빙은 갈등의 표정을 지었다.
평시였다면 그녀는 당연히 달려가 보았을 것이다.
하나,
지금 그녀는 촌각을 다투어 곤륜산까시 가야만 했다.
냉약빙은 잠시 망설임의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
「 아흑....... 제발....... 용서를....... 아아.......! 」
재차 여인의 절박하고도 애처로운 비명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누가 들어도 그것은 어떤 여인이 누군가에게 겁탈당하면서 내는 비명이었다.
그것을 안 이상 냉약빙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스악!
냉약빙의 신형은 그대로 비며이 들려온 계곡쪽으로 사라져 갔다.
같은 여인의 입장으로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찬 협곡의 끝,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절벽 앞,
하나의 공터가 있었다.
한데,
지금 그 공터에는 실로 천인공노할 만행이 벌어지고 있었다.
십여 명의 장한들이 한 명의 여인을 윤간하고 있지 않은가?
장한들은 일신에 시뻘건 혈포를 걸치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험악하고 흉흉한 인
상들이었다.
「 흘흘! 고것 요분질 한 번 기막히군! 」
「 빨리 끝내라, 장삼! 너 혼자 즐길 계집이 아니지 않느냐? 」
그 자들은 주위를 빙 둘러싼 채 저마다 음탕한 말들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쏴.......아!
폭우 속에서 한 명의 미부가 무참하게 사내에 유린당하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 전후 정도 되었을까?
기품있고 우아한 용모를 지닌 미부였다.
하나,
지금 그녀의 행색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일신에 걸친 의복은 처참하게도 갈가리 찢겨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빗물에 젖은
채 제멋대로 풀어 헤쳐서 봉두난발이 되어 있었다.
본래 그녀은 고아한 하늘색 궁장 차림이었다.
하나,
색마들의 손에 그녀의 의복은 무참하게 찢겨나가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모습이었
다.
그 바람에 미부의 백옥같이 희고 매끄러운 살과 풍만하고 탱탱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지금 그녀를 가운데 두고 네 명의 흉흉한 사내가 그녀의 사지를 힘껏 잡아 누르
고 있었다.
그리고,
활짝 벌려진 채 눌려진 두 다리,
그 사이로 한 명의 사내가 하의만 벗은 채 여인의 몸을 올라타고 헐떡이고 있었
다.
「 흐....... 꼭꼭 죄어대는게 일품이로군! 」
사내는 한 손으로 여인의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며 세차게 아랫도리를 흔들어댔다.
퍽....... 퍽!
그 자가 하체를 일렁일 때마다 살과 살이 부벼지는 묘한 소리가 장내를 자극시켰
다.
활짝 벌려진 여인의 허벅지,
그 사이로 무성한 방초로 뒤덮인 살찐 둔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둔덕 아래의 동굴로 검붉은 사내의 흉기가 연신 출입하고 있었다.
체액과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사내의 흉기.
그것이 동굴 속으로 쑤셔 박힐 대마다 여체는 마치 작살을 맞은 물고기처럼 세
차게 퍼득이며 경련을 일으켰다.
하나,
여인의 입에서는 이제 더 이상 신음성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직 한 명 사랑하는 남편에게만 허용했던 자신의 은밀한 비소,
그곳에 음적의 흉기가 무자비하게 찔러 들어오는 순간 여인은 엄청난 충격으로
반실신해 버린 것이었다.
「 헉헉.......! 」
출렁......
사내가 발정난 짐승의 수컷처럼 여체 위에서 날뛸 때마다 여인의 풍만한 유방이
아래 위로 물결치듯 출렁거렸다.
초점 잃은 여인의 두 눈은 멍하니 한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
한그루의 소나무 아래,
한 명의 어린 아이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나이는 겨우 삼사 세 정도,
귀업고 잘 생긴 사내아이였다.
한데,
그 사내아이는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바로 미소부의 아들이었다.
흉적들은 그녀의 아들을 헤치고 그녀의 육체를 유린하는 것이었다.
문득,
「 으헉! 흐으.......! 」
여체 위에서 헐떡이던 사내가 거친 신음을 토하며 전실을 부르르 떨었다.
드디어 그 자는 여체에 욕정을 폭발한 것이었다.
「 흐으...... 기막히는군! 문어빨판처럼 빨아들이는 것이.......! 」
그 자는 실체를 한껏 여체에 몰입한 채 전율적인 쾌락의 여운을 즐겼다.
그때,
「 장삼! 대충하고 일어나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참이냐? 」
「 맞다! 모두 네놈처럼 시간을 끌다가는 내 차례가 오려면 하루 종일 기다려야겠다! 」
주위를 둘러싼 장한들이 저마다 욕정에 침을 삼키며 여체 위의 사내를 재촉했다.
그러자,
비로소 장삼이라 불린 자는 아쉬운 표정으로 여체에서 떨어졌다.
그 자가 일어서자 미소부의 무참한 아랫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쏴아아아......
그녀의 아랫도리 검은 방초는 빗물에 흠씬 젖어 살갗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사이로,
아주 깊고 살찐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인의 그곳의 꽃잎은 아주 큼직했으며 밝은 색조를 띄고 있었다.
붉은색의 꽃잎이 수줍게 입을 벌린 사이로 허연 액체가 흘러나와 땅바닥을 적시
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론 그것은 사내가 토해낸 정액이었다.
빗물과 함께 희끄무레한 정액을 토해내는 여인의 비소는 사내를 녹이기에 충분
할 정도로 지극히 도발적이었다.
그때,
「 으헤헤! 내차례다! 」
첫 번째 놈이 일어서자 다른 한 사내가 급히 하의를 벗어던지며 그대로 여체를
덮쳐갔다.
그 자는 동료의 정액이 흘러나오는 여체의 비소에 자신의 흉기를 서슴없이 찔러
넣었다.
사내의 흉기가 다시 아랫도리에 그득하게 들어차자 여인의 허벅지가 일순 움찔
경령을 일으켰다.
하나,
그것 뿐 여인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 헉헉...... 흐...... 역시 대단한 명기로군! 이 대단한 계집을 그동안 태양황(太陽
皇)이란 놈이 혼자 즐겼단 말이지? 」
퍽퍽.......!
사내는 몸이 녹아나는 듯한 전율적인 쾌감을 만끽하며 거칠게 아랫도리를 움직
였다.
언어도단의 만행.
두 번째 사내도 미소부의 기막힌 그곳의 자극에 견디지 못하고 급격히 절정에 육
박해 들었다.
「 헉....... 헉......! 」
그 자는 발작적으로 하체를 흔들며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한데.
그 자가 막 눈앞이 노래지며 황홀한 절정에 올라 폭발하려 할 때였다.
「 켁! 」
「 크 ──── 악! 」
돌연 숨넘어 가는 단발마의 비명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순간,
「 무슨 일이냐? 산통깨지게.......! 」
미소부의 육체를 유린하던 사내는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그 자는 여전히 폭발 직전의 쾌감에 미쳐 하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 헉! 」
그 자는 돌연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퍼퍽!
쿠쿵──── !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동료들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나무토막처럼 거꾸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 육시를 할 놈들.......! 」
스으.......
한소리 사나운 교갈과 함께 장내로 한 명의 여인이 표표히 날아내렸다.
바로 냉약빙(冷若氷)이라는 그 신비여인이 아닌가?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 당....... 당신은.......! 」
미소부의 육체를 올라타고 있던 흉한은 두 눈을 한껏 부릅떴다.
그 자의 뇌리에 군마영웅보(群魔英雄譜)의 서열 제십위(第十位)에 올라있는 한
명의 무서운 여인의 존재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와 함께,
「 전모(電母) 냉약빙(冷若氷)! 」
화락!그 자는 공포에 질린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히 여체에서 떨어져 그대로 허공
으로 날아올랐다.
미소부의 아랫도리를 이탈한 그 자의 흉기는 이미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하나,
너무 놀란 그 자는 미처 하체를 가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눈앞에 나타난 여인의 존재는 공포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 전모(電母) 냉약빙(冷若氷)!
이것이 그 신비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여인의 몸이면서도 놀랍게도 군마영웅보의 서열 제 십위에 기록되어 있
었다.
그만큼 그녀의 일신의 무공은 기오막측했다.
특히,
그녀는 한 가지 절기 만큼은 단연 우내최강이었다.
그것은 바로 경공술이었다.
전궁만리비(電弓萬里飛)라는 그녀의 경신보법은 가히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빠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전궁(電弓)이란 다름아닌 벼락을 뜻하는 것이었다.
전모(電母)라는 냉약빙의 별호는 바로 그녀의 경공이 벼락만큼이나 빠르다하여
붙여진 것이었다.
구주팔황(九州八荒)을 통틀어 아무도 그녀보다 빠르지 못했다.
따라서,
아무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전모(電母) 냉약빙이 나타났으니 일개 음적에 불과한 흉한이 사색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헉! 」
전모(電母) 냉약빙을 보고 질겁하며 황급히 달아나려고 몸을 날리던 사내,
그 자의 입에서 이내 다급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스!
갑자기 눈 앞이 뿌옇게 변하다 싶은 순간 냉약빙이 모습이 유령같이 그 자의 앞
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와 함께,
쩌렁......
그녀의 섬섬옥수에서 일어나는 날카로운 쇳소리.
직후,
「 안돼...... 케 ──── 엑! 」
퍼 ──── 억!
우두둑!
처절한 비명과 동시에 허연 뇌수가 빗 속으로 확 번져 올랐다.
냉약빙의 손가락에서 일어난 강력한 지력이 그 자의 골통을 박살낸 것이었다.
「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 」
머리통이 어깨져 나뒹구는 음적의 시체를 노려보며 냉약빙은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한데 그때,
「 흑! 」
돌연 그녀의 옆에서 짤막한 신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아차!)
급히 옆을 돌아보던 냉약빙은 안색이 싹 변했다.
사내들에게 윤간 당하던 미소부.
그녀가 어느 새 정신을 차려 한 자루 비수로 자신의 심장을 찌른 것이었다.
「 아아! 이런 실수를 하다니......! 」
냉약빙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책하며 발을 굴렸다.
하나,이미 늦은 후였다.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냉약빙은 급히 미소부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단
전에 장심을 붙이고 내공을 주입했다.
「 으음......! 」
내공을 주입하자 미소부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힘겹게 눈을 떴다.
냉약빙이 주입한 내공이 죽어가는 그녀를 잠시 되살린 것이었다.
「 정....... 정말...... 전모(電母) 언니....... 이신가요? 」
미소부는 죽어가는 눈으로 냉약빙을 올려다보며 미약한 음성으로 물었다.
냉약빙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요. 내가 바로 냉약빙이에요! 」
「 아아....... 죽기전에 언니를 만나다니....... 하늘이 저희 이씨 가문을....... 아
주 버리지는 않으셨군요.......! 」
미소부는 냉약빙의 대답에 안도와 함께 기쁨의 빛을 띠며 가쁘게 숨을 할딱였다.
순간,
(이(李)씨!)
냉약빙은 내심 흠칫했다.
미소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뇌리에 이씨 성을 지닌 한 명의 기협(奇俠)의 이
름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때,
「 부....... 부탁이 있어요. 언니.......! 」
미소부가 다시 꺼져드는 미약한 음성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 말해 보아요! 」
냉약빙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부를 내려다 보았다.
미소부는 문득 소나무 아래 쓰러져 있는 사내아이를 일별하며 비통하고 처연한
눈빛을 지었다.
「 저...... 아이를....... 부탁드려요.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이청천(李靑天)......
.! 」
「 이청천(李靑天)! 」
미소부의 말에 냉약빙의 입에서 놀라움의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만큼 이청천(李靑天)이란 이름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하늘 아래서 냉약빙이 존경하는 단 삼인(三人)의 기인중 한 명이었기 때문
이었다.
──── 태양황(太陽皇) 이청천(李靑天)
저 군마영웅보(群魔英雄譜)의 서열 제육위(第六位)에 올라있는 인물.
비록 군마영웅보 서열 육위에 올라있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사실상 천하제일
인(天下第一人)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태양황(太陽皇) 이청천(李靑天)이 군마영웅보의 서열 십위 내에 드는 기
인들 중 가장 나이가 젊기 때문이었다.
그의 나이는 겨우 삼십대 후반에 불과했다.
그 정도의 나이에 군마영웅보의 서열 육위에 올랐다는 것은 가히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또한,
그는 비단 무공이 기오막측할 뿐 아니라 성격 또한 인후하고 관대하기 이를데 없
어 그의 주위에는 늘 많은 기인이사들이 그를 따르고 추종했다.
만일 그가 천하제패의 야심만 있었다면 그는 단시일 내 수하에 거대한 조직을 이
룰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성격이 담백한 태양황(太陽皇) 이청천은 애초 천하의 패권같은 것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해서,
그는 난주(蘭洲) 교외의 태양곡(太陽谷)이란 곳에 아담한 장원을 짓고 칩거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는 서북제일미인(西北第一美人)이라는 아내가 있었다.
──── 옥수상아 우담혜(愚潭慧)!
태양황(太陽皇) 이청천의 아내,
이청천이 혼탁한 속세를 떠나 태양곡(太陽谷)에 은거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아닌
그 절세미인의 아내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전모 냉약빙,
문득 그녀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 여자가....... 바로 이대협의 아내인 옥수상아........!)
그녀는 아주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렇다.
사내들에게 윤간당한 후 자살을 시도했던 미소부,
그녀는 바로 태양황(太陽皇) 이청천(李靑天)의 아내이며 서북제일미인(西北第一
美人)이라던 옥수상아 우담혜(愚潭慧)였다.
사실 한때 전모 냉약빙도 태양황 이청천에게 마음이 끌린 적이 있었다.
하나,
그녀는 자신의 나이가 이청천보다 십여살 많다는 사실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었다.
그 후 이청천이 옥수상아와 결혼했다는 소문을 듣고 냉약빙은 쓰라린 실연의 고통
을 겪기도 했었다.
물론 옥수상아가 그런 사실을 알 리 없었지만,
냉약빙은 아미를 모으며 생각에 잠겼다.
(태양곡(太陽谷)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옥수상아가 이런 참변을 당했단 말인가?)
그녀는 의아함과 함께 근심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옥수상아 우담혜가 어린 아들과 함께 변을 당한 것으로 보아 태양황 이청천의
신변에도 좋지않은 일이 벌어졌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하나,
냉약빙으로서는 이청천의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기력이 쇠잔한 옥수상아,
그녀가 냉약빙의 품에서 숨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절벽 아래에 하나의 작은 무덤이 생겨났다.
물론 그것은 옥수상아 우담혜의 무덤이었다.
냉약빙은 옥수상아의 무덤 앞에 선 채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가엾은 여인이다. 장차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될 기협의 아내가 이토록 비
참한 최후를 맞다니.......!)
그녀는 못내 안타까움과 침통함을 금치못했다.
지금 그녀의 품에는 이청천과 옥수상아의 아들이 안겨있었다.
영준하고 총기있는 용모의 사내아이,
그의 머리의 상처는 대단하지 않았다.
다만 출혈이 심해 정신을 잃었던 것 뿐이었다.
냉약빙은 그 사내아이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훌륭한 근골이다. 대가가(大哥哥)가 이 아이를 보시면 기뻐하시겠군!)
그러다,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빨리 대가가를 도우러 가야만 한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처한 급박한 사정을 깨닫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녀는 급히 몸을 돌리려다말고 다시 한 번 옥수상아 우담혜의 무덤을 바라보았
다.
「 걱정 말아요. 우부인! 이 아이는 나 냉약빙이 친아들처럼 보살펴 줄테니......! 」
그녀는 나직한 음성으로 옥수상아의 무덤에 대고 약속했다.
이어,
스슥!
그녀의 교구는 그대로 쏟아지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쏴아아.......
사라지는 그녀의 그림자 뒤로 거센 폭우가 내리퍼부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푹우는 방금전 이곳에서 벌어진 무참한 만행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내고 있었다.
第2章 고독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곤륜 ──── !
천산(天山)과 함께 신강 대분지를 남북으로 감싸고 있는 대륙의 중추,
곤륜이라는 산명(山名)이 신(神)들의 궁성(宮城)을 의미함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다.
그 장대한 곤륜의 동쪽.청해(靑海)를 굽어보고 있는 천길 단애가 자리하고 있었
다.
──── 고독애(孤獨崖)!
거꾸로 꽂힌 거대한 칼의 허리 부분을 뚝 꺽어 세워놓은 듯한 웅자한 형상의 단애!
그 단애의 이름은 고독애(孤獨崖)였다.
그 허리가 늘상 자욱한 운무로 뒤덮여 있는 고독애,
그 형상은 이름 그대로 고독하고도 의연해 보였다.
그 고독애의 정상,
의외로 만여 평에 달하는 거대한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울창한 송림으로 가득 찬 넓디넓은 분지,
그 끝에는 돌로 지은 한 채의 아늑한 석옥(石屋)이 세워져 있었다.
아담하고도 운치있게 서 있는 석옥.
그것은 마치 세외도원 속의 한폭 그림인 덧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하나,
오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별세계의 선경(仙境)과도 같은 고독애는 지금 온통 역겨운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진 않은가?
고독애의 분지.
지금 그곳에는 천여 명의 무림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하나,
그들 중 절반 정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고독애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아담한 석옥.
그 일대에는 수백 구의 시신들이 처참한 형상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머리가 으깨졌거나 몸뚱이가 짓뭉개진 처참한 시신들,
그 자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내장들이 질펀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실로 보기만해도 치가 떨리는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처참한 시체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체가 된 자들의 신분이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태반이 한 지역의 당당한 패자들이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자들은 저 군마영웅보상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일대명
인들이라는 것이었다.
믿어지지 않게도 그 같은 막중한 신분을 지닌 자들이 중원으로부터 머나먼 이곳
곤륜의 고독애에 시신으로 화해 누워있는 것이었다.
침묵,
장내는 무섭도록 조용했다.
비록 운집한 군웅들 중 절반 정도가 죽임을 당했으나 여전히 고독애에는 오륙백
명에 달하는 무림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터질 듯 팽팽한 긴장감과 침묵.
장내는 온통 그 숨막히는 기운으로 가득차 있었다.
군웅들은 침묵 속에 하나의 거대한 포위망을 반원형으로 구축한 채 고독애 끝의
석옥을 에워싸고 있었다.
석옥을 포위하고 있은 군웅들의 면면을 보면 실로 대단했다.
그들 속에 천하무림의 모든 명숙들이 다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단 한명만 나타나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는 일대 기인들.
하나,
천하를 떨어올릴 고수들이 수백 명이나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가에 은은
하게 떠도는 공포의 빛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 」
「 .......! 」
군웅들은 온통 긴장과 공포의 눈빛으로 석옥을 주시하고 있었다.
석옥 안에는 누가 있단 말인가?
누가 있기에 천하의 뭇 군웅들을 떨게 만든단 말인가?
군웅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일견하기에도 삼인(三人)의 고수로 보였다.
석옥 뒤쪽의 천길 단애를 제외한 포위망의 삼면을 지키고 이씨는 인물들,
뭇 기인들 중에서도 그들 삼 인의 기도는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할만했
다.
포위망의 정면,
그곳을 지키고 선 인물은 한 명의 노검수(老劍手)였다.
일신에는 푸른색 학창를 걸치고 있었으며 가슴까지 드리운 검은 수염이 무척 인
상적이었다.
그는 보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절정에 달한 내가고수임이 분명했다.
노검수의 허리춤,
한 자루의 목검(木劍)이 걸려 있었다.
칠흑같이 검은 나무로 깎은 목검(木劍).
그것은 유서깊은 검술명가(劍術名家)의 상징이었다.
────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
우내제일의 검술명가,
그 연원은 천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직 검술 한 가지에만 매진해온 일족.
그 결과,
그들은 웅혼하고 장대한 검예를 이룩해냈다.
당대무림에서 검법(劍法)으로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에 필적하는 세력은 전무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창이를 걸친 노검수.
그는 바로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의 당대가주였다.
유성신검황(流星神劍皇) 혁련휘(赫連輝) ──── !
군마영웅보의 서열 제삼위(第三位)에 오른 인물.
다시 말해 그는 전무림을 통틀어 제 삼위의 강자였다.
하나,
단순한 검법만이라면 그는 가히 우내최강(宇內最强)으로 꼽히리라.
유성신검황(流星神劍皇) 혁련휘의 좌측,
한 명의 섬뜩한 괴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의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 긴 곰방대를 빨고 있었다.
오척의 단구.
게다가,
그는 볼품없는 꼽추에 추괴하기 이를 데 없는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기이하게도 그의 전신 피부는 짙푸른 녹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녹색 물감을 뒤집어 쓴 듯한 기괴한 형상.
비단 피부색만이 녹색이 아니었다.
그는 눈동자마저도 섬뜩한 벽록색이 아닌가?
실로 보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모습.
그 꼽추노인의 주위로는 군웅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군웅들은 이 기괴하고도 섬뜩한 모습의 꼽추노인을 극히 두려워하는 듯했다.
──── 독천존(毒天尊) 서래음(西來音)!
군마영웅보의 서열 제 사위(第四位)의 인물.
그는 가장 무서운 독공의 달인이었다.
그의 전신은 온통 극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단지 숨결만으로도 십 리 밖의 적을 중독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대리(大里)에 자리한 독성부(毒聖府)의 지존.
유성신검황(流星神劍皇) 혁련휘의 우측,
그곳에는 한 명의 섬뜩한 인상을 지닌 장한이 음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일신에 칠흑같이 검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위에 마치 박쥐 날개 모
양과도 같은 검은 피풍을 두르고 있었다.
제법 준수한 인상.
하나,
그의 안색은 핏기 한점 없이 보였다.
백지장같이 새하얗고 창백한 안색.
너무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까지 보여 그는 마치 무덤에서 뛰쳐나온 시체같아
보였다.
──── 유령대제(幽靈大帝) 구양수(九陽秀)!
군마영웅보 서열 제 오위(第五位)의 인물.
그는 북망산 구유마궁(九幽魔宮)의 지존이었다.
음유한 음부마공(陰府魔功)을 연마하여 소리없이 적을 죽이는 암수에 능한자.
그 자가 은연중 무림패권을 노리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유성신검황(流星神劍皇) 혁련휘.
독천존(毒天尊) 서래음.
유령대제(幽靈大帝) 구양수.
군마영웅보의 서열 삼, 사, 오 위를 차지하고 있는 절정고수들.
그 자들이 바로 고독애에 운집한 군웅들의 사실상 통솔자였다.
그들 삼 인과 태양황(太陽皇) 이청천을 합쳐 무림인들은 사대천왕(四大天王)이
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
독성부(毒聖府),
구유마궁(九幽魔宮).
그리고 태양황 이청천의 태양곡(太陽谷) 등의 사파를 합쳐 무림인들은 신주사패
천(神州四覇天)이라 칭했다.
현재 이곳 고독애에는 그 사대천왕과 신주사패천(神州四覇天) 중 태양황 이청천
과 그의 태양곡(太陽谷)만이 빠져 있었다.
사실상 중원무림의 정영이 모두 비좁은 고독애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었다.
「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는거요, 서형? 」
문득,
오랜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유령대제(幽靈大帝) 구양수였다.
그 자는 짜증서러운 음성으로 말하며 독천존(毒天尊) 서래음을 돌아보았다.
「 연(燕)가는 이미 서형의 무형지독(無形之毒)에 중독당한 데다가 오백여 명의
고수들을 해치운 대가로 심각한 내상까지 입은 상태요. 그렇거늘 무엇을 두려워
하는 것이오? 」
그 자는 불만을 참지 못하고 음침한 음성으로 다그쳤다.
하나,
독천존 서래음.
그는 태연히 담뱃대만 빨고 있었다.
「 물론 노부의 무형지독(無形之毒)은 제법 쓸만하지! 」
그는 혼잣말을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 아무리 내공이 신화경에 이른 연가라 해도 무형지독(無形之毒)을 이겨내지는
못할걸? 」
그 말에 듣고 있던 유령대제는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재촉했다.
「 그걸 잘 알면서 왜 망설이는 것이오? 당장 쳐들어 갑시다! 」
하나,독천존 서래음의 가늘게 뜬 두 눈에 비웃음의 빛이 어렸다.
그는 유령대제를 향해 나직하게 혀를 찼다.
「 끌끌, 구양궁주는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에 눈이 멀어서 우리의 상대가 누군
지 모르고 있는 듯하구려! 」
그 말에 유령대제는 흠칫했다.
독천존은 그런 유령대제를 향해 차가운 조소를 보이며 문득 음악하게 웃었다.
「 우리의 상대는 다름아닌 천하의 고독마야(孤獨魔爺)요. 그래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오! 」
「 ....... 」
유령대제의 눈꼬리가 일순 미미하게 떨렸다.
독천존의 어투에서 모멸감을 느낀 것이었다.
허나,
그 자는 독천존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눈 앞의 석옥에 은둔하고 있는 인물.
그는 유령대제 구양수가 유일하게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었다.
다름 아닌
고독마야(孤獨魔爺) 연남천(燕南天) ──── !
그가 석옥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 클클....... 우린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거요! 연가 늙은이가 무형지독의 독
기를 견디지 못하고 제풀에 쓰러질 때까지.......! 」
독천존이 음악한 웃음을 흘리며 재차 확인시키듯 말했다.
그 자의 그런 사악한 웃음에 유성신검황 혁련휘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독천존이나 유령대제와는 달리 광명정대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다.
비록 적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중독되어 쓰러질 때까지 기다리는 비겁한 짓은 할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그였다.
하나,
상대는 고독마야였다.
그의 필생의 숙적!
자칫 객기를 부리다가는 고독마야의 손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내 한몸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유성신검황은 내심 탄식하며 독천존과 유령대제를 돌아보았다.
그렇다.
만일 그가 고독마야와 맞서다 개죽음을 당하면 독천존과 유령대제만 이롭게 만
들뿐인 것이다.
독천존의 독성부(毒聖府)와 유령대제의 구유마궁(九幽魔宮)의 무림제패의 야욕
을 저지하고 있는 유일한 세력이 바로 유성신검황의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이
아닌가?
유성신검황은 지그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치욕스러운 일이나 이 방문좌도의 무리들과 행동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는 길게 탄식하며 석옥쪽을 주시했다.
석옥 안 ──── !
주위를 포위한 군웅들의 모습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
한 명의 마의노인이 담담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 후후...... 술도 이것이 마지막이군! 」
그는 빈 술병을 내려놓으며 공허롭게 웃었다.
육척의 훤칠한 체격,
희끗희끗한 머리,
그의 얼굴은 비록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두 눈만은 여전히 스산한 한망을
발하고 있었다.
마의노인의 분위기는 아주 독특했다.
온통 허무함과 공허로움으로 젖어있는 그의 모습,
그를 보고 있자면 절로 칼로 가슴이 저며지는 듯한 뼈저린 고독의 느낌에 휩싸
이게 된다.
그 고독감은 너무 절절하여 보는 이의 가슴까지 삽시에 물들일 듯했다.
──── 고독마야(孤獨魔爺) 연남천(燕南天)!
그렇다.
마의노인은 바로 그였다.
명실상부한 우내제일인(宇內第一人)!
육십여 년의 세월동안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고독한 절대자(絶對者)!
그가 한 자루 철검(鐵劍)을 짊어지고 나선 것은 약관도 되지않은 나이때였다.
그 후,
고독마야는 자신의 적수를 찾기 위해 중원 뿐만 아니라 새외와 변황까지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다.
하나,
고독마야는 그 어디서도 자신의 적수를 찾지 못했다.
이에 실망한 그는 이십여년 전 이곳 곤륜산의 험지에 석옥 한 채를 짓고 은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 절지를 스스로 고독애(孤獨崖)라 이름짓고 자신의 처소인 이 석옥을
고독헌(孤獨軒)이라는 현판을 새겼다.
「 어리석은 것들! 이 모두가 천하파멸을 노린 대음모(大陰謀)인 줄도 모르고 탐욕
에 눈이 어두워 몰려든 꼬락서리라니.......! 」
고독마야 연남천,
그는 스산한 비웃음을 흘리며 빈 술병을 찬 밖으로 던져 버렸다.
자세히 보면 그의 안면에는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은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극독에 중독되었다는 증거였다.
──── 무형지독(無形之毒)!
색도 냄새도 없는 무색투명한 극독,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기에 누구도 무형지독의 암산을 피해내지 못한다.
일단 무형지독에 중독되면 반각 이내에 오장육부가 썩어들어가 죽게 된다.
고독마야는 그 무서운 무형지독을 다량 흡입한 상태였다.
그러고도 쓰러지지 않은 이유는 그의 내공이 신화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허나,
독천존(毒天尊) 서래음의 장담대로 고독마야의 내공이 아무리 극고하다고 하나
내공의 힘으로 무형지독을 태워버리지는 못했다.
그는 그저 무형지독이 발작하지 못하도록 억제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고독마야는 공허한 눈빛으로 창밖을 내려다 보았다.
(결국....... 이곳 고독애가 나 연남천의 무덤이 되겠군.)
그의 눈꼬리로 쓸쓸한 미소가 스쳤다.
(여한은 없다. 이 혼탁하고 추악한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으니까!)
그는 허허로운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군마영웅보(群魔英雄譜)라는 것을 만들어 세상을 피로
물들게 만든 놈의 상판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이다.)
문득,
그는 눈길을 한쪽 옆으로 돌렸다.
서탁.
그곳에는 몇권의 책자가 쌓여 있었다.
표지가 새것인 한 권의 책자,
그리고,
아주 낡은 세 권의 비단 책자가 그것이었다.
──── 군마영웅보(群魔英雄譜)!
최근에 지어진 듯한 새책자는 바로 군마영웅보였다.
그것은 얼마전 고독마야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리고,
세 권의 낡은 비단 책자,
────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
그것은 바로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이었다.
전무림인들로 하여금 고독마야 연남천을 합공하게 만든 장본인,
두달 전 ──── !
고독마야는 아주 우연히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을 수중에 넣게 되었다.
그는 천산(天山)으로 한 가지 약초를 구하러 갔었다.
그러다 어느 빙곡(氷谷)에서 하나의 빙동(氷洞)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빙동(氷洞)은 전대기인의 은거지였다.
한데,
고독마야가 그 빙동에 들어섰을 때 그곳을 이미 먼저 발견한 자가 있었다.
그 자는 새북인마(塞北人魔)라는 자였다.
군마영웅보 서열 삼십 위 안에 드는 대단한 고수자,
물론 고독마야의 입장에서 본다면 새북인마(塞北人魔)란 작자는 그저 하루살이
정도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고독마야는 새북인마가 먼저 전대기인의 유물을 발견한 사실을 인정하고 조용히
물러나려 했었다.
하나,
새북인마란 작자가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
그 자는 꿈에도 상대가 고독마야임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고독마야는 그저 평범한 약초 캐는 노인으로 보였기 때문이
었다.
새북인마는 자신이 비급을 발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시끄러워 질 것을 우려
했다.
해서,
그 자는 생각 끝에 살인멸구 한답시고 고독마야에게 덤벼들었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물론 새북인마는 고독마야의 일격도 받아내지 못하고 거꾸러지고 말았다.
고독마야의 단 일격에 한 팔이 으깨지고 나서야 새북인마는 비로소 상대가 누군지
알아 차리고 기겁했다.
사색이 된 새북인마,
그 자는 즉시 고독마야의 앞에 오체복지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이에,
고독마야는 굳이 새북인마의 목숨을 뺏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 자가 발견한 비급
만 뺏고 목숨은 살려 주었다.
그 자에게서 빼앗은 비급이 바로 혈마대장경이었다.
고독마야는 새북인마가 허둥지둥 달아난 후에야 자신이 흡혈마조(吸血魔祖)의
마경(魔經)을 얻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의 무공은 인간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에 다른 무공이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
새북인마를 살려 보낸 것이 끝내 화근이었다.
그 자는 고독마야에게 복수한답시고 고독마야가 혈마대장경을 지닌 사실을 여기
저기 소문으로 퍼뜨리고 다닌 것이다.
고독마야,
허허로운 그의 두 눈에 문득 스산한 한기가 번뜩였다.
(나 연남천은 팔십평생 단 한 번도 도전을 회피해 본 적이 없다!)
그는 서늘한 한광이 일렁이는 눈으로 창 밖에 운집해 있는 군웅들의 모습을 바
라보았다.
(비록 저 어리석은 자들이 남의 꾐에 빠져 도전해 오긴 했으나 예외가 돌 수는
없다!)
문득,
그의 입꼬리에 차가운 조소가 떠올랐다.
(후훗! 너희들 모두는 나 연남천과 함께 이곳 고독애에 뼈를 묻게 되리라! 비록
무형지독에 오장육부가 썩어들어가고는 있지만 너희들을 지옥으로 함께 데려
갈 힘은 남아 있으니까.......!)
이윽고,
그는 서탁 위의 혈마대장경을 집어들었다.
(먼저 이 마경(魔經)들부터 없애야 하리라. 만일 이것이 욕심이 큰 놈의 손에 들
어가면 큰 화근이 될테니까!)
그는 손에 든 세권의 혈마대장경을 내려다보며 염두를 굴렸다.
세 권의 혈마대장경.
그 속에는 전설에 전해지는대로 실로 끔찍하기 이를데 없는 마공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단순히 파괴력만으로 따진다면 비록 고금오대고수(古今五大高手)의 일 인인 흡
혈마조(吸血魔祖)가 남긴 혈마대장경의 무공도 고독마야의 일신 절기보다는 못
했다.
하나,
혈마대장경의 잔혹하고 신랄한 면은 고독마야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해서,
고독마야는 죽기 전에 아예 이 화근덩어리를 없애버릴 작정을 한 것이었다.
「 후훗! 흡혈마조(吸血魔祖)에게 미안하군! 」
고독마야는 나직한 고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손에 힘을 주어 들고있던 혈마대장경을 으깨버리려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우우 ──── ! 」
돌연 한소리 날카로운 장소성이 고독애 아래에서 들려왔다.
순간,
(이 목소리는.......!)
막 혈마대장경을 으깨버리려던 고독마야는 흠칫하며 손을 멈추었다.
그 직후,
피 ──── 잉!
쐐액 ──── !
돌연 고독애 아래에서 한줄기 흐릿한 인영이 질풍같이 날아올랐다.
그 날아드는 속도는 너무 빨라 뭇 군웅들의 눈에도 인영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
지 않을 정도였다.
다음 순간,
「 전....... 전모(電母) 냉약빙이다! 」
「 막아랏! 」
비로소 고독헌을 포위하고 있던 군웅들 사이에 분분한 경악성이 터져올랐다.
동시에,
스슥!
화라락!
그들은 분분히 날아오르며 질풍같이 솟구쳐 오르는 인영을 막으려 했다.
하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스학!
군웅들이 미처 어찌해 보기도 전에 날아든 인영은 군웅들의 머리를 뛰어넘어 고
독헌으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 잡아랏! 혈마대장경이 전모(電母)의 손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
쐐액!
스스슥!
군웅들이 저마다 노호를 지르며 고독헌으로 날아가는 왜영의 뒤를 쫓아갔다.
──── 전모(電母) 냉약빙!
그렇다.
일거에 군웅들의 포위망을 날아넘은 여인은 다름아닌 전모 냉약빙이었다.
이윽고,
스슥!
눈 깜짝할 순간 고독헌의 앞으로 내려선 냉약빙.
그녀는 빙글 돌아서며 군웅들을 향해 사나운 교갈을 터뜨렸다.
「 바득! 죽고 싶은 작자들은 고독헌에 접근해라! 」
말과 함께,
핑 ──── !
그녀의 섬섬옥수가 빠르게 흔들려지며 하나의 검붉은 구슬이 추적해 들어오는
군웅들을 향해 던져졌다.
순간,
(저것은.......!)
지켜보고 있던 유성신검황 혁련휘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노련한 검호답게 한눈에 냉약빙이 던져낸 검붉은 구슬이 무엇인지 알아본
것이었다.
「 굉천벽력탄(宏天霹靂彈)이다! 」
그의 입에서 다급한 폭갈이 터져나왔다.
하나,
늦고 말았다.
콰르릉.......!
콰콰 ──── 쾅 ──── !
돌연 천둥치는 듯한 가공할 굉음이 터져 오르며 무서운 폭발이 장내를 휩쓸었다.
그와 함께 시야를 가리며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자욱한 화약년기!
그 속에서,
「 크악! 」
「 케에엑! 」
처절한 단발마의 비명의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삽시에,
수십 명의 군웅들의 육신이 혈체조차 없이 갈가리 찢겨 날아간 것이 아닌가?
실로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으으....... 굉천벽력탄(宏天霹靂彈)이다. 」
「 벽력장(霹靂莊)의 화기를 지니고 있다니........! 」
살아남은 군웅들은 사색이 되어 고독헌 주위에서 달아났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냉약빙은 싸늘한 살광을 폭사했다.
「 바득!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작자는 망동해도 좋다! 」
그녀는 고독헌 앞에 우뚝 선 채 오른손을 번쩍 쳐들어 보였다.
그녀의 섬섬옥수.
그 섬섬옥수에는 몇알의 검붉은 구슬이 들려 있었다.
물론 그것은 방금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던 굉천벽력탄(宏天霹靂彈)이었다.
그것을 본 독천존과 유령대제.
그 자들의 안색이 낭패함으로 물들었다.
「 으음....... 저 계집이 산통 다 깨는군! 」
「 빌어먹을.......! 」
그 자들은 일세를 풍미하는 고수자들이었다.
하나,
결코 굉천벽력탄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하물며,
전모 냉약빙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내 최강의 경공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녀가 자신들을 폭사시킬 작정을 한다면 결코 피해 달아날 수 없을 것이다.
독천존과 유령대제가 낭패함을 금치못하고 있을 때,
스슥!
냉약빙은 훌쩍 고독헌 안으로 날아들었다.
이는 실로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바람에,
아무도 냉약빙의 가슴섶이 유난히 볼록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 헛허! 한 걸음 늦었다. 약빙! 」
고독마야는 다급히 고독헌 안으로 날아드는 냉약빙을 바라보며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무하기만 하던 그의 두 눈에 지금 이 순간만은 따스한 정감이 깃들었다.
그것은 전모 냉약빙이야말로 고독마야가 마음을 주고있는 단 한명이었기 때문이
다.
급급히 고독헌 안으로 들어서던 냉약빙.
일순 그녀는 사색이 되며 교구를 휘청했다.
「 가가! 중....... 중독당하셨군요! 」
그녀가 한눈에 고독마야가 극독에 중독된 사실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녀는 놀라움과 분노로 파르르 교구를 경련했다.
「 바득....... 잠깐만 기다리세요. 독천존이란 작자에게서 해약을 빼앗아 오겠어요! 」
그녀는 이를 갈며 다시 고독헌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나,
「 오라버니를....... 부끄럽게 만들 작정이냐, 약빙? 」
「 .......! 」
고독마야의 나직한 한 마디 말에 냉약빙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그 자리에 얼어붙
고 말았다.
그렇다.
고독마야!
그는 자존심이 극도로 강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살기 위해서 남에게 구걸한다는 것은 결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흐윽....... 가가! 」
마침내 냉약빙은 분노와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나,
고독마야는 극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 울지 마라, 약빙! 인간이란 언제고 한 번은 죽게 마련이다. 다만 그 시기가 문
제일 뿐! 」
그는 오열하는 냉약빙을 향해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냉약빙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는 더할 수없이 따스한 정감이 담겨져 있었다.
「 하여간 잘 왔다. 저 어리석은 작자들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몇 가지 마
음에 걸리는 점이 있는데........ 이제 네게 그것을 맡기면 되겠구나! 」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그의 말에 냉약빙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독마야를 주시했다.
「 저....... 쓰레기들과 동귀어진할 작정인가요? 가가! 」
그녀는 눈물 젖은 두 눈에 불신과 놀라움의 빛을 가득 담은 채 소리쳤다.
하나,
고독마야는 태연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 쓰레기들이라니....... 그래도 저들은 최소한 한 지역의 패자들인 대단한 고수
들이 아니냐? 」
그는 껄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군마영웅보에 기록된 자들을 모조리 동반하여 저 세상에 간다면 손해볼 것도
없다! 」
그러나 냉약빙은 그의 말에 강하게 반발했다.
「 그....... 그래서는 안돼요! 가가! 」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고독마야를 주시했다.
하나,
이미 고독마야의 뜻은 확고부동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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