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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렐 라이프(Parallel Lif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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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89 회 작성일 24-02-20 02:0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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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눈이 내렸다. 그것도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함박눈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을까? 5년 만에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눈이었지만 내게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신년의 문턱에 선 나의 세상은 오직 차가운 겨울바람에 시릴 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마지막 정거장에 기대어 버스를 기다렸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크리스마스 이브의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지겹도록 쏟아지던 눈이 멈춘 밤하늘 너머로 희미하게 달빛이 빛나고 있다. 가리워진 구름너머에서 애처롭고도 힘겹게. 문득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저려왔다. 무슨 이유인지. 후...

“......”

역시 눈이 내려 도면이 미끄럽기 때문일까. 버스는 한참을 기다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난 손목시계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퍼뜩 놀랐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런, 막차가 벌써 떠난 건가? 점점 불안한 마음이 나를 엄습해 왔다. 날씨는 그리 혹독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꽤 쌀쌀했다. 게다가 오늘은 그녀의 기일이었기에 내가 입고 있는 것은 결코 두껍다 말할 수 없는 검은색 정장에 검은 구두뿐이었다. 이런 추위에 집까지 걸어가는 것은 상당히 곤욕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될 대로 되라지.”

내 입에서 하얀 입김이 안개처럼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난 습관적으로 주머니에서 ‘디스’한 갑을 꺼내들었다. 꽉 차있는 무게감이 내 손에 전달됐다. 다른 사람 같으면 한 갑으로 꽤 많은 시간을 필수 있겠지만 나는 달랐다. 라이터를 꺼내어 담배에 불을 붙인 후 깊게 한 모금을 빨았다. 그리고는 아무 망설임 없이 태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이 행위를 스무 번 반복하니 어느새 담배 한 갑은 텅텅 비어버렸다. 담배의 맛은 첫 모금에 있어요. 그녀는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똑같은 답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나 ‘디스’밖에 안 태웠다.

“......”

전선이 바람을 맞아 가늘게 흐느낀다. 앙상한 나뭇가지의 떨림보다도 더 기분 나쁜 것은 바로 그것이다. 겁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전선의 흐느낌이 애처롭게 울부짖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양이를 싫어한다.

“뭐가 뭔지.”

부모님과 친구들은 종종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그녀와의 추억은 이제는 그저 빛바랜 사각의 나뭇가지 속에 담아놓으라고.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사랑이 아니야.”

마음속에서부터 진하게 울려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다. 그저 목을 거칠게 맴도는 웅얼거림일 뿐이다. 온 몸이 불쾌감에 끈적끈적하게 젖었다. 나에 대한 증오인가.

“왜 사랑이 아니죠?”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마치 그 공간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공기 같이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부드럽고 낮게 울리는 목소리. 그 여자의 목소리가 나의 귀를 조용히 파고들었다.

“아...?”

마음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의 몸은 어느새 목소리의 주인공을 좇고 있었다. 흰색의 미니스커트, 붉은색 털스웨터, 검은 가죽잠바, 부츠, 금목걸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칼.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의 시선을 자극한 것은 그녀의 눈빛이었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사람들의 눈빛 중에는 저런 눈빛은 없었다. 정말 묘하다. 굳이 말하자면 놀랍도록 무심한 눈빛이었다. 그 어떤 욕망도, 희열도, 분노도, 슬픔도, 아니 그 어떤 감정도 일체 비치지 않는 유리처럼 매끄러운 눈빛. 문득 나의 뇌리 속에 내 앞에 서있는 여자는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스쳐지나간 것보다도 더욱 빠르게 스러져갔지만.

“왜 사랑이 아니죠?”

그녀가 변함없는 톤으로 물었다. 감정이 일체 담겨있지 않은 무심한 눈은 묘하게도 생각만큼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초면에 대뜸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가 누군지 간에 깨끗하게 무시할 것이다.

“당신에게 대답할 의무는 없을 텐데.”

내 입에서는 평상시의 차가운 톤의 목소리가 아니라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가 가늘게 흘러나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에는 언제나 이렇다. 1년 동안 참은 눈물을 한꺼번에 흘려버리니까.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앉았다. 그녀의 몸동작은 단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같이.

“......”

나는 특별히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틀렸다. 그녀는 잠바 주머니에서 ‘디스’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담배를 머금는 소리는 단 한번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한 모금을 빨자마자 아무 미련 없이 왼손약지와 중지사이에 낀 담배 한 개피를 던져버렸다.

“너...”

“......”

“누구야.”

왼손, 그리고 한 모금.

“제 이름은 장량이에요.”


***


안녕하세요. 처음 올리는 글이군요.
원래 야설로 기획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평소 글쓰기를 즐겨하는데 h쪽에 미진한구석이 있어서 이리저리 끄적거리고 있습니다.
자기정진이라고 할까요. (웃음)
뭐. 이래저래 글을 쓰다보면 늘거라 확신합니다.
혹시라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다행이겠군요.
내용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그럼.

uasuki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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