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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사대 천왕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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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119 회 작성일 24-02-20 01: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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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花精谷의 귀여운 惡女

패무극의 글을 다 읽고난 막붕비,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탄식했다.
"여인으로서 불행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혈관음은 행운아다.
친부모보다 더 좋은 양부모를 만났으니......!"
이어, 그는 복수혈경을 덮으며 문득 중얼거렸다.
"복수혈경은 반드시 혈관음에게 전해 주리다, 패종사!"
그는 만겁마종 패무극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그리고, 문득 그는 혈관음으로 인해 불행해진 여인 비취여제를
뇌리에 떠올렸다.
가짜 만겁마종에게 조종받은 혈관음 빙화정,
그녀는 제왕성의 여주인 비취여제의 무공을 폐하고 그녀를 매음굴에
팔아넘겨 뭇사내들의 노리개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은 실로 용서받지 못할 짓이었다.
하나, 아무것도 몰랐던 빙화정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막붕비는 쓸쓸한 표정으로 침음했다.
한데 문득,
"잠깐......"
비취여제를 떠올리던 그는 갑자기 안색이 대변했다.
어떤 한 줄기 예감이 번개같이 뇌리를 스친 것이었다.
대비암에서 보았던 여승 망아사태!
막붕비는 그녀의 음성과 뒷모습이 누군가와 흡사하다고 느꼈었다.
한데, 그 의혹이 이제야 풀린 것이었다.
막붕비는 무릎을 치며 문득 탄성을 발했다.
"아...... 이럴 수가......! 그녀가 바로 비취여제였다! 아아!
그것을 기억해 내지 못하다니......!"
그는 스스로를 질책하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 망아사태(亡我師太), 그녀가 바로 비취여제였음을 막붕비는
지금에야 기억해낸 것이었다.
비취여제는 차마 부끄러워 제왕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떠돌아 다녔다.
그러다, 그녀는 우연히 대비신니를 만나 그녀의 문하로 들어간
것이었다.
문득,
"윽!"
흥분하여 벌떡 몸을 일으키던 막붕비는 고통스런 신음을 발했다.
오른 팔의 상처가 진동하며 순간적으로 격렬한 통증이 엄습한
것이었다.
그의 팔을 중독한 시독은 열화진결로 일어난 강렬한 화기에 태워져
몸 밖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하나, 시독의 독기는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른팔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막붕비는 나직한 탄식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휴! 그나마 다행이다. 자살하지 않고 비구니로라도 살고
있으니......!"
그는 여승이 된 비취여제, 아니 망아사태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고소를 지었다.
하나,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의
일을......
그 날, 관음색모의 음약에 중독된 자신을 구한 것이 바로 그녀
비취여제인 줄은...... 그것은 꿈에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막붕비는 다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능한 빨리 대비암으로 돌아가 그녀를 만나보아야겠다!"
그는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이어, 그는 유리보갑과 장포를 입고 절벽 아래에서 걸어나왔다.
어느 덧, 주위의 안개는 점점 흩어지고 흐릿한 햇살이 안개 사이로
번지고 있었다.
막붕비는 그 햇살 속을 걸으며 문득 고소를 지었다.
(꽤나 긴 하룻밤이었다!)
장미공주 주약금과의 정사(情事), 대비신니(大悲神尼)와의 조우,
만겁마가(萬劫魔家)에의 잠입, 패무극과 만나 복수혈경을 받은 일----
그 모든 것이 하룻밤의 꿈만같이 느껴졌다.
문득, 막붕비는 침중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사정을 알았으니 혈관음 빙화정! 그녀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어, 그는 천천히 안개 속을 걸어 빠져나왔다.
"아마도 그녀는 십만대산의 자부문에 끌려가 갖은 수모를 겪고 있을
것이다! 패무극에게서 복수혈경을 부탁받은 이상...... 반드시 구해내
건네 주어야 한다! 그녀에게는...... 그 놈 가짜...... 뇌황(雷皇)의
목을 손수 베어야할 여러가지 원한이 있으니......!"
그는 혈관음 빙화정을 떠올리며 흐릿하게 미소지었다.
한데 그때,
"아......"
문득 막붕비의 입에서 한소리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라! 그의 앞, 꽃의 바다(花海)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지 않은가?
놀랍게도 전면의 드넓은 분지 전체는 온갖 기화이초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때는 늦은 가을이건만 기이하게도 분지 내에는 봄날같이 따뜻한
훈풍으로 가득했다.
온갖 기화이초가 만발해 있는 분지 아래, 그곳의 꽃과 꽃 사이로
각양각색의 나비와 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안개에 가려져 있다가 돌연 막붕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도화선경, 실로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넋을 잃고말 정도로
아름답고 진귀한 광경이었다.
"......!"
막붕비는 일순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는 갑자기 꿈 속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복우산 중에 이런 도원경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 걸......"
그는 넋을 잃은 듯 망연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한동안 꽃향기에 취해 있던 막붕비, 문득 그는 정신을 차리며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드넓은 꽃밭 저편, 몇 그루의 소나무가 운치있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 한 칸의 그림 같은 모옥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막붕비는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모옥을 주시했다.
(만겁마성과 지척인 곳에 누가 살고 있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호기심을 금치 못하며 모옥을 향해 다가섰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캬아아----!"
돌연 멀리서 모골을 송연케 만드는 섬뜩한 괴성이 들려왔다. 순간,
"그 강시다!"
막붕비는 안색이 일변하며 나직이 부르짖었다.
이어,
휙!
그는 급히 몸을 날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의 눈에 저 멀리 절벽이 합해지는 검은 곡구(谷口)가 보였다.
그리고, 그 곡구에 몇 개의 인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강시들이 이 계곡에 들어오려다 이곳 주인과 싸우는 모양이다!"
다음 순간,
슥!
막붕비는 급히 몸을 날려 곡구 쪽으로 다가갔다.
계곡의 입구----
병풍같이 치솟는 절벽에 풍상에 삭아 흐릿한 세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화정곡(花精谷).>

슥!
막붕비는 하나의 바위 뒤에 몸을 은신하고 계곡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화정곡이라니...... 이곳이 바로 화정곡이란 말인가?)
그는 절벽에 새겨진 글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문득, 그의 뇌리 속으로 몇 달 전 아수천황 북궁혼이 죽어가며 하던
부탁이 떠올랐다.

-복우산(伏牛山) 화정곡(花精谷)에 노부의 딸 아이가 하나 있네. 그
아이를 보살펴 주게!

북궁혼은 죽어가며 막붕비에게 그렇게 당부했었다.
한데, 천만뜻밖에도 막붕비가 철혈강시와 싸우다 실족하여 떨어진
곳이 바로 화정곡이었던 것이다.
"......!"
막붕비, 그는 바위 뒤에 몸을 은신한 채 곡구를 주시했다.
그곳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
소녀, 갈의를 입은 한 명의 소녀가 막붕비를 등진 채 표표히 사
인(四人)의 괴인과 대치하고 있었다.
막붕비는 그 갈의소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소녀가 아수천황의 딸 북궁설일까?)
이어, 그는 갈의소녀와 대치하고 있는 사 인을 바라보았다.
그 중 한 사람은 막붕비가 잘 아는 인물이었다.
-천뇌자(千腦子)!
바로 마가삼태상 중 둘째의 인물, 그 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갈의소녀와 마주 서 있었다.
그의 옆, 시황이 전신을 붕대로 칭칭 감고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시황의 뒤, 두 구의 철혈강시가 유령같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한데, 그 중 한 철혈강시는 한 팔이 무엇인가에 녹아버린 듯
덜렁거리고 없었다.
그때였다.
"어린계집! 감히 나 시황의 귀여운 아이들을 다치게 하다니 용서치
않겠다!"
시황이 붕대 속에서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성큼 갈의소녀의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천뇌자가 문득 손을 들어 시황을 저지했다.
이어 그는 갈의소녀를 향해 타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이봐! 아해야! 우리는 너의 화정곡에 위해를 가할 생각은 절대
없다! 다만 한 놈 무뢰한의 종적을 찾게 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의 어조는 극히 신중했다.
일 개 소녀에게 마가삼태상의 일 인인 천뇌자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
막붕비 역시 천뇌자의 말에 해연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흥! 듣기 싫어, 수염쟁이야! 설아의 꽃밭을 너희들 따위에게 짓밟힐
수는 없어! 좋게 말할 때 물러갓!"
갈의소녀가 앙칼진 음성으로 당돌하게 교갈했다.
천뇌자, 그의 안면이 일순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사황(邪皇)의 후예라고 많이 봐주었더니...... 너는 너무
건방지구나!"
그는 싸늘하게 말하며 시황을 향해 슬쩍 손짓을 해보였다.
그 순간,
"카아----!"
"크크큽......!"
두 명의 철혈강시는 괴성을 내지르며 기다렸다는 듯 갈의소녀를
덮쳐들었다.
그 광경에 막붕비는 대경했다.
(위험하다!)
그는 철혈강시들의 흉흉한 기세에 위기감을 느끼며 당장 뛰쳐나가려
했다.
한데 그때, 기변이 일어났다.
파---- 앗!
돌연 갈의소녀의 두 눈에서 새파란 빛이 폭사되어 철혈강시의 머리를
강타했다.
순간,
"크아아----!"
"케---- 에엑!"
쿵! 쿵!
철혈강시들은 갑자기 눈을 감싸쥐고 괴성을 토하며 허공으로 뚝
떨어졌다.
아...... 보라!
그런 철혈강시들의 칠공에서는 시퍼런 액체가 꾸역꾸역 솟아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것들은 눈, 귀 할 것 없이 시퍼런 액체를 토해내며 전신을
부들부들 경련했다.
그러다 이내 철혈강시들은 뼈와 가죽만 남아 비쩍 마른 나뭇가지같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흡사 흡혈마황검에 정혈이 빨려 죽은 시체들과 똑같은
형상이었다.
순간,
"역...... 천사황(逆天邪皇)의 역천흡정마안(逆天吸精魔眼)이다!"
"......!"
화드득!
천뇌자와 시황은 독사를 만난 듯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며
부르짖었다.
이어, 그들은 급급히 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역천흡정마안!
가장 무서운 사공(邪功)!
다만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모든 정혈을 갈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천 년 전 사대천왕에 패퇴했던 막북(漠北)의 최고사공이었다.
하나, 그것은 천 년 전 역천사황이 실종됨과 함께 절전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무서운 절기가 갈의소녀에게서 재현된
것이 아닌가?

천뇌자와 시황은 공포의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물...... 러가자, 시황!"
"바...... 바득! 두고 보자!"
피---- 잉!
휘르르......
그들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며 황급히 곡구 밖으로 달아났다.
당당한 마가삼태상 중 일 인인 천뇌자, 그가 그런 부끄러운 꼴을
보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이때,
"흥! 염소 콧구멍 같은 늙은이들이 어디와서 야료야, 야료가?"
갈의소녀는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는 두 마두를 보며 싸늘하게
코웃음쳤다.
이어,
"자! 이제 그만 기어나올래? 도둑고양이 같은 자식!"
문득 그녀는 매섭게 외치며 막붕비가 은신한 쪽으로 홱 돌아섰다.
(이크......!)
막붕비는 움찔했다.
하나, 들킨 이상 어쩔 수 없이 그는 주춤주춤 일어섰다.
몸을 일으켜 갈의소녀를 바라보던 막붕비,
"......!"
순간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의 눈앞, 마치 요정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녀가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갈의소녀, 그녀의 나이는 대략 십 육칠 세 정도로 보였다.
화장이라고는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듯 청순하고 해맑은 용모의
소녀.
그녀는 만지면 꺼져 버릴 듯 그렇게 아름다왔다.
특히, 맑고 커다란 두 눈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상큼하게 휘어진 버들잎 같은 아미, 마늘쪽같이 오똑한 콧날의 선,
앵두를 입에 문 듯 붉고 도톰한 입술...... 실로 완벽의 미(美)를 갖춘
보기드문 미소녀였다.
한데, 그녀의 커다란 두 눈, 그곳에서는 요악한 사기가 안개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몸 주위로는 숨막히게 하는 요기의 덩어리가 감돌고
있지 않은가?
청순하고 맑은 미모와 너무도 대조적인 분위기, 그것이 소녀를 마치
지옥에서 도망쳐 나온 귀여운 소악마를 연상케 했다.
이때, 갈의소녀는 상큼 아미를 치켜세우며 싸늘하게 코웃음쳤다.
"흐응...... 네놈도 사내녀석이구나! 돌아가신 엄마가 그랬어!
세상에 믿을 사내는 단 한 놈도 없다고! 그래서 보는대로 잡아죽여야
한다고......!"
츠---- 읏!
그녀는 막붕비를 보자 두 눈을 새파랗게 물들이며 조잘거렸다.
그 말에 막붕비는 가슴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끔찍한 어머니에 공포스런 딸이로군!)
그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하나, 그는 내색지 않고 급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저, 사실 나는 소저의 아버님이......!"
그러나 그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닥치고...... 너도 그만 죽어!"
짜---- 작!
돌연, 갈의소녀의 두 눈에서 새파란 뇌전이 작렬하며 막붕비를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우웃!"
막붕비는 아연실색했다.
그는 황급히 양극마강을 두 눈에 모아 대항했다.
순간,
빠지직----
막붕비의 눈앞에서 폭죽이 터지듯 불꽃이 작렬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뒤로 붕 날아갔다.
"지...... 지독하군!"
막붕비, 그도 일시지간 자신의 두 눈이 실명했음을 깨닫고 경악성을
발했다.
그 순간,
꾸---- 끙!
막붕비는 재차 가슴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짐을 느끼며 아찔하게
정신을 잃어갔다.
(이...... 이런 엉터리 같은......!)
막붕비는 실로 어이가 없었다.
하나, 그의 의지와는 달리 그는 아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한데 그때,
"어! 이건 아빠의 칼(刀)인데...... 이 동물이 왜 갖고 있지?"
문득 혼미한 가운데 갈의소녀의 놀란 음성이 들렸다.
아마도 그녀는 막붕비가 마도 묵룡풍을 메고 있음을 발견한 듯했다.
소녀의 그 말에 막붕비는 어이없음을 금치 못하며 입술을 실룩였다.
(나...... 보고 동물이라고......?)
내심 실소하며 중얼거리던 막붕비, 마침내 그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막붕비는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윽......!"
그는 격렬한 두통을 느낌과 함께 두 눈을 가시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절로 신음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돌연,
"많이...... 아파?"
근심이 함빡 담겨 있는 소녀의 음성이 막붕비의 귓가로 흘러드는
것이 아닌가?
그와 함께,
슥......!
뼈조차 없는 연체동물같이 보드라운 손이 막붕비의 뺨을 쓰다듬었다.
(북궁설......!)
막붕비는 고통을 참으며 상대를 올려다 보았다.

북궁설(北宮雪)!

그녀는...... 바로 그녀였다.
북궁설은 근심 어린 시선으로 막붕비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막붕비...... 그는 만화(萬花)가 개화(開花)해 있는 꽃밭 속에 누워
있었다.
한데, 그의 머리는 한껏 물이 올라 탄력이 넘쳐 흐르는 북궁설의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었으니,
문득,
"미안해...... 아빠가 보낸 사람인 줄 알았으면 아프게 하지 않고
귀여워해 줄 걸......"
북궁설은 자못 심각한 어조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말을 들은 막붕비는 아무런 반박도 없이 씁쓸한
고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큽! 병주고 약주는군! 이건 순전히 애완동물로 취급하고
있으니......)
막붕비는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며 억지로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
"윽......!"
그는 관절의 마디마디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하여튼...... 무서운 사공(邪功)이었다! 정말 이 어린 계집이
역천사황의 전인이란 말인가?)
막붕비는 머리가 어지러움을 느끼며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를 북궁설은 암코양이 같이 쪼그리고 앉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마도---- 묵룡풍이 놓여져 있었다.
막붕비는 묵룡풍을 일별하며 말을 꺼냈다.
"아가씨가 정말 아수천황 북궁혼 선배의 따님이오?"
"그럼...... 설아의 아빠가 아수천황이 아니시면 누구지?"
막붕비의 말에 북궁설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렸다.
이어, 그녀는 마도 묵룡풍을 쳐들며 말을 이었다.
"한데...... 아빠의 칼(刀)을 왜 네가 갖고 있어?"
막붕비는 그녀의 스스럼 없는 반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산중에 홀로 살아와 세속의 예의범절을 모르는 그녀를 탓할
수는 없는 터......
"이봐! 나를 보고 함부로 말하면 안돼! 아가씨보다 내가
연상이니까!"
일단은 타이르는 막붕비, 하나, 북궁설은 도시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무어라고 해야 해?"
"......!"
막붕비는 말이 막히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가가(哥哥)라고 하거라!"
그의 말에 북궁설은 아기같이 환히 웃으며 손뼉을 쳤다.
"아......! 네 이름이 가가로구나!"
(아이쿠...... 두야!)
막붕비는 골머리가 찌끈거림을 느끼며 내심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녀와 말씨름할 힘도 없어 그대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말았다.
"그래, 마음대로 부르렴. 그리고...... 아가씨의 아버님은 먼 곳으로
떠나셔서 당분간 이 화정곡에 들리실 수 없게 되었단다! 그래서 나를
보고 이 마도 묵룡풍을 아가씨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셨단다!"
막붕비는 차마 아수천황 북궁혼이 죽었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생각나는 대로 둘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북궁설...... 그녀는 슬픈 표정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빠는...... 아주 멀리 가셨어?"
그녀의 울음섞인 물음에 막붕비는 나직이 한숨을 토로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아주 멀리 가셨단다! 그래서 설매를 나보고 보살펴 주라고
하셨어!"
그의 말이 끝나자, 북궁설은 그제야 다소 옥용(玉容)을 환하게
밝혔다.
아울러, 그녀의 두 볼은 살풋한 능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가가(哥哥)라면 좋아! 가가는...... 다른 남자들과는 조금 틀려!"
북궁설은 더욱 얼굴을 붉히며 순진무구한 시선으로 막붕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가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설아의 가슴이 막 뛰어요.
만져 볼래?"
슥......!
북궁설은 느닷없이 막붕비의 손을 잡아 자신의 봉곳한 가슴에
갖다대는 것이 아닌가?
일순, 뭉클......!
"어...... 엇!"
팽팽하다 못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탄력 넘치는 젖무덤의 감촉이 손
안에 가득 담겨오고......
막붕비는 질겁을 하며 황급히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그는 당황과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설매는 아까의 그...... 역천흡정마안을 어디서
배웠지?"
북궁설은 봉목을 반짝이며 입술을 나풀거렸다.
"응! 그것은 집 뒤의 이상한 동굴에서 배웠어!"
"동굴?"
막붕비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반문했다.
그의 되물음에 북궁설은 사슴같이 팔짝 뛰어 일어났다.
"함께 가볼래? 거기는 설아가 우연히 발견해서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은 곳이야!"
북궁설은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이 즐거운 듯 활짝 미소를
머금었다.
이어,
스슷......!
그녀는 춤을 추듯 꽃을 밟으며 화정곡의 끝으로 날아갔다.
언뜻 보기에 그녀의 경공은 별로 빠른 것 같지는 않았다.
하나, 막붕비는 거의 십성의 공력으로 경공을 펼쳐서야 겨우
북궁설과 보조를 맞출 수 있을 정도였으니......
"허어......! 도무지......"
막붕비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야!"
스---- 읏!
삽시간에 북궁설은 화정곡의 끝에 있는 절벽 앞으로 내려섰다.
그와 함께, 막붕비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뒤로 황급히 신형을 멈춰
세웠다.
절벽은 무성한 등나무 줄기로 빽빽하게 뒤덮여 있었다.
한데,
우수수...... 콰작!
절벽 우측 끝단의 등나무 줄기를 북궁설이 잡아 제치자 이내 좁은
바위 틈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천연동굴.
막붕비는 꿈에도 이런 곳에 동굴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만큼 동굴은 은밀하게 은닉되어 있었던 것이다.
"......!"
북궁설은 막붕비를 돌아보다 그의 붉게 상기된 미안(美顔)을 잠시
홀린 듯 응시했다.
아울러...... 기이한 열류가 가슴 저 밑바닥에 저미하게 흐름을
느끼며......
(어머......! 내가...... 왜 이러지......?)
문득, 북궁설은 처음 접한 기이한 감정에 화들짝 놀라며 당황하여
그대로 동굴 속으로 빨려들듯 교구를 미끄러뜨렸다.
막붕비, 그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녀의 상태를 눈치 못 챌
리는 없었다.
(저 아이가...... 벌써 이성을 느낄 나이가 되었군!)
막붕비는 내심 씁쓸한 고소를 머금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북궁설, 그녀는...... 철없는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이미, 이성을
그리워 할 줄 아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동굴은 안으로 진입할 수록 차츰 넓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천정이 갑자기 높아지며 하나의 월동문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사황동천(邪皇洞天).>

월동문의 위에는 대전체로 그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글은 천 년 이전에 만들어진 듯했다.
끼---- 이익!
"여기야!"
북궁설은 주저없이 사황동천이라 쓰여진 월동문을 열어 젖히며
막붕비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들어가자 막붕비도 뒤를 따라 신형을 옮겼다.
한데, 사황동천으로 막 들어서던 막붕비는 흠칫하며 절로 두 눈을
감고 말았다.
동부의 안쪽,
츠으으......!
갑자기 골수로 스며드는 무서운 사기(邪氣)에 충격을 받은
때문이었다.
막붕비는 다급히 호연천존심결을 운용하여 사기에 대항하며 전면을
직시했다.
그곳은 둥근 석실(石室)이었다.
그리고, 석실의 중앙에는 하나의 검은 옥좌가 자리해 있었고, 그
옥좌 위에는 한 명의 고대인이 좌화해 있었다.
핏빛의 장포를 걸친, 기이하게도 수염과 모발이 새파란 청색으로
물들어 있는 강퍅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하나, 비록 사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었으나 그의 전신에서는
일대종사의 기품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노인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전면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 눈엔 아직도 생자(生者)인 양 파르스름한 청광이 폭출되고
있었으니, 막붕비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기(邪氣)는 바로 그
눈빛이었다.
(이...... 사람이 역천사황이란 말인가?)
막붕비는 노인의 시신을 일별하며 내심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이어, 그는 즉시 옷매무새를 고치며 역천사황의 시신에 정중히
일배(一拜)를 올렸다.
"후진말학...... 막붕비가 삼가 위대한 오패천(五覇天) 중 한 분이신
역천사황 노선배의 유체를 배알하오이다!"
"......!"
북궁설은 그런 막붕비의 행동을 의아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막붕비의 엄숙한 분위기에 짓눌려
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절을 마치고 일어서던 막붕비는 한 곳에서 시선을 멈춰 세웠다.
옥좌의 앞에 놓여진 몇 가지 기물(奇物)을 본 것이었다.
(이것은......?)
막붕비는 일순 기광(奇光)을 발했다.
하나의 옥함,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구리거울, 그리고 한 권의
대나무로 엮어만든 죽간(竹簡:대나무를 쪼개어 엮어만든 일종의 책)이
그것이었다.
한데, 그 중 옥함의 뚜껑은 열려 있는 상태였고 그 안엔 하나의
양피지만이 남아 있었다.
"......!"
막붕비는 조심스레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막북(漠北) 사황일맥(邪皇一脈)의 종주 역천사황이 죽어가며
적는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청발인(靑髮人)의 시체는 역시 저 오패천 중 막북의 역천사황!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가 천 년 전 만겁마종과의 싸움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못할 사도의 고금제일인!
그...... 이름은...... 역천사황이었다.
사(邪)의 신화(神話)를 찬란히 쌓아올렸던 역천사황!
그런데, 바로 그런 역천사황의 유체와 유물이 막붕비의 앞에 있는
것이었으니......
막붕비는 긴장된 마음으로 양피지를 계속 읽어내려 갔다.
그 내용은...... 잊혀진 신화(神話)의 신비(神秘)가 벗겨지는 엄청난
사실이었다.

<......中略......
만겁마종에게 당한 패배는 노부에겐 가히 치명적인 충격이었다.
그러나, 한 번의 패배로 주저앉는 것은 노부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노부는 내상을 치유할 생각도 없이 만겁마종을 이길
방도를 연구하는데 정신을 집중시켰다.
......中略......
일천 일......

꼬박 천 일의 낮과 밤이 지났을 때,
그제서야 노부는 한 가지의 영감(靈感)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최후 최강의 대사법을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의 이름은...... 전능대악마법신(全能大惡魔法身)!>

-전능대악마법신(全能大惡魔法身)!

달리...... 악마법신(惡魔法身)이라 불리우는 전무후무한
대사법(大邪法)이 그것이었다.
이를 완성하면 시선이 미치는 곳의 모든 생물 및 무생물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고 파멸시킬 수 있는 악마의 사법(邪法).
물론...... 인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전능대악마법신에 노출되면 자신의 의지가 바스러지며 시술자의 모든
명에 지배당하고 만다.
시술자의 명령이라면 스스로 자살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은...... 이름 그대로 악마(惡魔)의 사법이었다.
그것이 역천사황이 사경(死境) 속의 천일고심으로 창안해낸 최후의
사공(邪功)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대로 되기를 하늘은 거부했다.
역천사황은 전능대악마법신을 창안한 직후, 그 자신의 생명이 불과
일백 일도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역천사황은 만겁마종의 마겁패황혈강에 격중되어 심각한 내상을 입은
채 그 즉시 전능대악마법신의 창안에 몰두한 때문이었다.
한정된 생명의 기일은 일백 일!
그것은...... 고금최강의 절대사종주라 불리우던 역천사황일지라도
어찌할 수 없는,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벽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역천사황......
그는 그 즉시 막북(漠北)의 사황부(邪皇府)를 폐쇄하고
일로남하(一路南下) 하여 중원으로 진입했다.
그리하여 그는 만겁마종을 찾았다.
하나...... 그때는 이미 사대천왕이 동패구상하여 무림에서 사라진
뒤였다.
역천사황은 분노하여 환우천하를 뒤집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만겁마종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고, 그는 처절한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그에게는 막북으로 돌아갈 시간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을 깨달은 역천사황은 만겁마종의 최후종적으로 탐지된 이곳
복우산 화정곡에 사황동천을 짓고 최후를 맞이 했던 것이었다.
하나, 그는 꿈에도 한 가지 사실만은 알지 못했으니...... 바로 몇십
리 안에 만겁지종의 새로운 아성인 만겁마성이 구축되어 있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역천사황에게는 실로 통탄할 일이었다.

<......中略......
천기(天機)를 짚어보건대 천여 년 후 한 명의 여아가 노부의 진전을
이어 만겁마종에게 복수해 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노부의
필생내공과 전능대악마법신의 마력을 한 알의 원정내단으로 응축하여
남긴다.
이...... 전능대악마법신의 힘은 가히 초자연적인 것! 저 악마성황의
악마삼보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한다.
그래서 자칫 노부의 진전을 이을 아이가 전능대악마법신의 힘으로
세상을 파멸시킬까 심히 걱정되었다.
고심하던 노부는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어 심려를 놓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내 아이가 북(北)으로부터 와서 노부의 전인을 돌보아
주게 됨을 알았다.
그 아이를 위해 사황부 최강의 사병(邪兵)인 사황동경(邪皇銅鏡)과
역천사황경(逆天邪皇經)을 남기는 바...... 노부의 후예를 잘 보살펴
부기를 바라노라.
-역천사황(逆天邪皇) 냉각(冷角) 절필.>

글은 그렇게 끝나 있었다.
한데...... 그 어디에도 역천사황이 남긴 원정내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천사황의 유언대로 설매가 그 원정내단을 복용했군!)
막붕비는 침중한 신색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어머니가 병사하고, 산중에 홀로 남게된 북궁설은 어느 날
우연히 이곳 사황동천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사황동천 안에서 역천사황의 원정내단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신기한 노리개감으로 생각한 그녀는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먹고
말았던 것이었으니...... 그리고, 그녀는 엄청나고 무서운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전혀 무공을 익힌 적이 없는 북궁설이었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산을 허물고 대지를 찢어 버릴 미증유의 파천사력을
지니게 된 것이었다.
역천사황이 남긴 사황원정!
그것은...... 서서히 용해되며 북궁설은 생시의 역천사황의 가공할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궁설은 전혀 글을 읽을 줄 몰랐다.
그렇기에 역천사황경의 절대사공은 물론 전능대악마법신도 연성치
못한 상태였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북궁설은 이미 사대세가의 가주들만큼 강해져
있었다.

(만일...... 설매가 본격적으로 역천사황경의 사공을
연마한다면......?)
막붕비는 가슴 속으로부터 서늘한 한기(寒氣)가 피어오름을 느꼈다.
(고금유일의 여사황(女邪皇)이 탄생하겠군! 모든 것을...... 단 한
번의 눈짓으로 제압해 버릴 수 있는......!)
전율!
한 줄기 스산한 전율감에 막붕비의 가슴은 답답하게 침잠되어 갔다.
그러다가...... 문득,
"음?"
막붕비는 그제서야 북궁설이 자리에 없음을 알았다.
(요...... 무시무시한 장래의 여사황이 어디로 갔다지?)
막붕비는 흠칫하며 급히 사황동경과 역천사황경을 갈무리했다.

-사황동경(邪皇銅鏡)!
그것은...... 사황일맥의 천년호법마병이었다.
상대의 공격내력을 배로 되받아 그 상대를 격살시켜 버리는
고금십대중병 중 서열 이위에 올라 있는 일대마병이 바로 그것이었다.

"설매!"
막붕비는 희세의 기물(奇物)들을 아무렇게나 집어넣으며 비쾌하게
사황동천을 빠져나갔다.
북궁설의 이름을 부르며 가는 그의 마음은 뭔가 알 수 없는 기이한
예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만 같은...... 과연......?

* * *

"......!"
사황동천을 달려나가던 막붕비는 흠칫하며 신형을 멈춰 세웠다.
북궁설......!
그녀는 멍하니 사황동천의 앞에 서서 전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던 막붕비는 일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화정곡 안에는 나비나 벌 등, 곤충 뿐만 아니라 사슴이나 토끼 등의
동물들도 다수가 북궁설과 살아가고 있었다.
한데......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밭의 가운데를 보라!
한 쌍의 사슴...... 놈들은 서로의 사랑 행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가냘픈 암컷의 등에 올라탄 늠름한 수컷은 열심히 하체를 움직이고
있었고, 수컷에 딸린 암사슴은 연신 헐떡이며 몸부림치고
있었으니......
"가가......!"
막붕비의 체취를 느낀 북궁설은 옥용을 빨갛게 물들이며 급히
사슴부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참...... 이상해! 저 아이들은 힘들게 왜 저러지?"
북궁설은 얄밉다는 표정으로 사슴들을 흘겨보며 종알거렸다.
그녀의 이해할 수 없다는 투의 말에 막붕비는 당황하며 헛기침을
발했다.
"험! 그거야...... 아기사슴을 만들기 위해 그러는 거겠지!"
순간,
"정말?"
북궁설은 봉목을 반짝이며 막붕비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빛은 야릇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크! 이 철딱서니 없는 계집아이가 또 무슨 생각을......?)
막붕비는 움찔하며 마음을 졸였다.
뭔가...... 자신의 말에 이상함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은 순간적인
일이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귓전으로 그의 생각에 부응하는 음성이
파고들었다.
"우리도...... 저렇게 하면 아기를 가질 수 있어?"
드디어......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고......
"그...... 그거야......!"
막붕비는 등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한데, 그런 그를 북궁설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올려보며 대담하게 입술을 열었다.
"나...... 가가(哥哥) 같이 귀여운 아기라면 힘들더라도 갖고 싶어!"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
"안돼!"
당황한 막붕비의 거부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아연실색하고 펄쩍 뛸 듯이 놀라는 막붕비.
한데, 오히려 북궁설은 무척이나 기쁜 듯 생글거리고 있었다.
"늦었어! 설아는 이미 결심했는 걸. 가가를 닮은 아기를
갖기로......"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
츠---- 으......!
북궁설의 봉목이 일순 요악하게 번뜩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윽...... 위험!)
그녀의 시선을 접한 막붕비는 본능적으로 경각심을 느끼며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츠으......!
순간적으로 막붕비는 두 눈을 불로 지지는 듯한 충격에 신형을
휘청이고 말았다.
이어, 그의 의지는 무저의 나락으로 침몰되고......
"자...... 설아를...... 안아줘......"
북궁설은 본능적인 욕념에 휩싸여 헐떡이며 교구를 눕혔다.
한데, 그녀의 자세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사슴들의 사랑행위시에 취하는 자세 그대로가 아닌가?
"......!"
막붕비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이미, 의지를 상실한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북궁설에게로 다가가고
그는 초점없는 시선으로 북궁설의 뒤로 앉으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사르륵......!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북궁설의 치맛자락이 올라가고......
속옷조차 걸치지 않고 있는 여인의 하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탐스러울 정도로 뽀얀 우유빛의 탄력넘치는 둔부의 곡선이 환상처럼
막붕비의 눈으로 투영되었다.
그 사이...... 소담스레 솟아 있는 알맞은 둔덕과......
거뭇한...... 부드러운 초지 사이로 드러나는 신비의 영천.
부르르......!
막붕비는 무의식적으로 신형을 떨었다.
그와 아울러,
스---- 윽!
그의 손길이 초지 위를 미끄러지듯 쓸어가다가 이내 환상의 계곡으로
사라지고......
"아...... 하아......!"
막붕비의 손길이 내밀한 곳으로 닿아오자 북궁설은 교구를 파르르
떨며 짙은 교음을 토했다.
점점...... 사내의 우수는 신비림을 벌목하듯 파헤치고......
스르르......!
그의 또 다른 손 하나는 치마 속을 파고 점차 뻗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찌---- 이이......!
찢겨지듯 상체 위로 걷어 올려지는 옷자락......
물---- 컹!
일순, 사내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가득 차 넘치는 탄력적인 수밀도는
이지러지며 튀어나올 듯 몸부림치고......
"아흑...... 아파!"
유방이 터지는 듯한 고통에 북궁설은 몸부림쳤다.
출렁이는 탐스런 육봉, 아픔 중에서 서서히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황홀한 열락에 교구마저 떨리고......
"하아아......!"
여인은 차츰 숨결이 거칠어져 갔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내밀한 계곡으로 이상한 물체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격렬한 통증을 수반하며 뜨겁고 거대한 물체가 서서히 그녀의
안으로 침습해 들었다.
순간,
"흑! 아...... 아파!"
그녀는 난생 처음 경험하는 파괴의 아픔에 절로 비명을 토하며
둔부를 흔들었다.
하나, 사내의 굳센 손길은 족쇄처럼 여인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으니......
"아...... 파......! 흐윽......!"
이를 악문 그녀의 머리는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정사(情事)!

막붕비의 행위는 절정이 가까와질 수록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아아...... 아흑!"
북궁설은 어느 새 고통이 사라지며 어떤 미증유의 거대한 희열이
전신을 휘감음을 느끼며 짐승같이 흐느꼈다.
그녀의 손은 풀과 꽃을 쥐어 뜯으며 떨리고 있었으며,
콰---- 콰콰콰......!
내부의 폭발이 점점 커지고 최후의 절정에 다다르며, 하얗게 봉목을
치뜬 채 연신 거친 열락의 비음을 토하고 있었다.
"아...... 아학! 하아......!"
그와 함께, 북궁설의 한줌 허리를 끊어 버릴 듯이 움켜쥐고 있는
막붕비의 움직임도 가일층 배가 되어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콰---- 아아......!
열락의 끝...... 폭풍의 가라앉음은 갑자기 찾아들었다.
"으음......!"
막붕비는 한 소리 묵직한 신음성과 함께 그대로 무너지듯 북궁설의
교구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아......!"
북궁설도 아찔한 현기증에 전신을 떨며 꽃밭 위로 길게 나신을
뉘었다.
두 남녀, 그들은 열락의 잔재를 여운처럼 길게 음미하고 있었다.
그런 북궁설의 하체 부근의 꽃잎에는 십여 방울의 앵혈이 선명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미안...... 해! 가가......"
잠시 후, 북궁설은 옥용을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막붕비의 가슴 위로
얼굴을 묻었다.
그와 함께, 막붕비를 제압하고 있던 전능대악마법신의 제어가
해제되었다.
"으음......!"
막붕비는 낭패한 신색으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파고드는 북궁설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막붕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매...... 너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헛되이 내게 준 것을......"
북궁설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설아는 후회하지 않아요...... 나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돌연,
"흐흐...... 이거 괜찮은 눈요기감인데?"
한 소리 음산한 괴소가 두 사람의 귓가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
"......!"
막붕비와 북궁설은 흠칫하며 비쾌하게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물론 여인은 사내의 등 뒤로 돌아서 한껏 나신을 움츠리며......
한데,
스---- 읏!
언제였을까?
막붕비의 십 장 전면에는 한 명의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핏빛의 혈포(血袍)에 지극히 음산한 귀기를 흩뿌리는
혈염노인이었다.
"크큽...... 역천사황 조사님의 종적을 찾아나왔다가 혼자보기
아까운 장면을 무자비하게 목격하게 되었군!"
혈염괴노는 히죽이며 음악한 괴소를 터뜨렸다.
"누구요. 당신은......?"
막붕비는 재빠르게 자신의 옷을 입고 북궁설을 가려 주며 싸늘한
시선으로 전면을 직시했다.
순간,
"캇...... 애송아! 한 번 즐겼으면...... 곱게 떠나라. 이번에는
노부 혈우사황(血雨邪皇)이 저 계집의 살맛을 봐야 되겠다!"
혈염괴노는 흉흉한 시선으로 북궁설의 전신을 훑으며 음소를 흘렸다.
한데, 그의 말을 들은 막붕비는 대경하고 말았다.
"무엇이, 그대가 혈우사황?"

-혈우사황(血雨邪皇)!
그렇다. 그 자는 바로 환우십강의 오사에 드는 사도제일인
혈우사황이었던 것이다.
아수천황 북궁혼을 도살한 사황혈련의 종사!
그는 우연히 막북에서 사황부의 유적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그는 만부의 사황경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천 년 전 역천사황이 이곳 복우산 어딘가에서 죽었음을 알게
되어 중원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역천사황의 유물을 얻으려 이 복우산을 뒤지던 중 우연히
화정곡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바로 지옥문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흐흐...... 노부가 누군지 알았으면 썩 꺼져 버려라! 노부는 더
이상 못 참겠으니......"
혈우사황의 두 눈은 욕정으로 인해 희번뜩이고 있었다.
다가드는 혈우사황을 바라보는 막붕비의 시선은 새파란 살광(殺光)이
줄기줄기 폭사되고 있었다.
막붕비는 이를 갈아붙이며 마도 묵룡풍을 움켜쥐었다.
"잘 만났다, 혈우사황!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마도 묵룡풍을 일별한 혈우사황, 그 순간,
"헉!"
혈우사황은 안색을 시커멓게 물들이며 헛바람을 삼켰다.
"마...... 마도 묵룡풍! 네놈이 어떻게 죽은 아수천황의
마도를......!"
혈우사황은 신형을 비칠거리며 물러서고......
"바득! 나는 그 분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이다! 아수천황을
위해...... 마도의 목을 베겠다!"
막붕비는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마도 묵룡풍을 치켜 올렸다.
한데, 막붕비는 그것을 쓸 기회가 없었다.
번---- 쩍!
돌연, 그의 옆에서 하나의 갈영이 빛줄기처럼 폭사되어 그대로
혈우사황을 덮쳐갔던 것이었다.
갈영은 물론 북궁설이었다.
"허---- 억!"
쾅----!
혈우사황은 급작스런 상황에 대경(大驚) 하며 일 장을 후려쳤다.
한데,
찌---- 익!
파스스---- 슷......!
혈우사황의 사황혈강이 북궁설의 가슴을 정면으로 강타했음에도
그녀의 갈의만 찢겨졌을 뿐이었으니......
탐스런 육봉이 한 번 출렁였을 뿐 북궁설은 그대로 혈우사황을
덮쳐갔다.
"괴...... 괴물이군! 커---- 억!"
대경실색하여 뒤로 물러서던 혈우사황은 일순 돼지의 목을 따는
비명을 토하였으니......
빠---- 득!
어느 새 북궁설의 섬섬옥수는 새파랗게 청옥색으로 변하여
혈우사황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이익......!"
쾅! 콰---- 앙!
목을 잡힌 혈우사황은 발악하듯 두 손으로 북궁설의 전신을
후려쳤다.
그러나, 혈우사황의 공격은 북궁설의 의복만을 찢었을 뿐 그녀의
몸에는 한 줄기의 상흔도 나지 않았다.
그녀가 이미 금강불사지체를 이루었음을 혈우사황은 몰랐던
것이었다.
"네...... 네놈! 무어라고 했지? 다시 말해 봐! 아빠를......
죽였다고?"
북궁설은 발작하듯 교갈을 토하며 움켜쥔 혈우사황의 목을 잡아
흔들었다.
"커---- 억!"
쿠---- 드드......!
단번에 혈우사황의 목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탁음이
터져나오고...... 혈우사황은 혀를 길게 빼물며 낚시에 걸린 잉어처럼
발버둥을 쳤다.
하나, 북궁설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혈우사황에게 분노의
절규를 발하고 있었다.
"말해! 아빠를 어떻게 했어?"
파---- 앗!
북궁설은 절규하며 혈우사황의 어깨를 내리쳤다.
그녀의 새파란 청옥수에 스쳐 혈우사황의 오른팔이 어깻죽지로부터
이탈되고......
"컥! 제...... 제발...... 그만!"
혈우사황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말해, 말해 봐!"
북궁설은 찢어지는 듯이 날카로운 교갈을 터뜨리며 혈우사황을 마구
후려쳤다.
그럴 때마다 혈우사황의 몸은 분육이 되어 튀어나갔다.
"......!"
너무도 처참한 광경......
하나, 막붕비는 멍하니 서서 말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
광란의 시간은 흘러 지나갔다.
이윽고,
"......!"
털---- 썩!
혈우사황이 죽었음을 안 북궁설은 힘없이 시체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전신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의 혈수로 화한 교수와 나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멍하게
초점이 상실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북궁설은 이내 교구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내...... 내가...... 사람을 죽였어!"
북궁설은 절규하듯 부르짖고 말았다.
최초의 살인!
그 충격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설매!"
막붕비는 급히 북궁설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교구를 부드럽게 보듬어
안아 주었다.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속으로 끌어당겨 처참한
시체의 편육을 보이지 않게 하며......
"괜찮아! 이제 되었어! 설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야! 그것은...... 자식으로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니
결코 살인은 아니야......"
"흐흑! 가가......!"
막붕비는 오열하는 북궁설을 안아들고 꽃밭 중앙에 지어져 있는
모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흐윽......! 설아가...... 죽였어. 그 사람을......!"
막붕비의 가슴 속에 얼굴을 묻은 채 북궁설은 간헐적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아수...... 천황! 이제 만족하셨소?)
막붕비는 내심 탄식을 토로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 빛...... 그곳에도 음울한 회색빛의 먹장구름이 가려져 있었다.
마치...... 막붕비의 가슴같이......

-화정곡(花精谷)!
이곳은...... 역천사황의 천년심원이 깃들어 있던 사의
성역(聖域)이었다.



* * *

대비암(大悲庵).
먹장구름으로 뒤덮인 암천(庵天) 아래 대비암은 울창한 수림을
옷처럼 두르고 있었다.
스---- 읏!
문득 삭풍을 타고 십여 명의 괴인영들이 대비암의 산문 앞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천뇌자와 시황, 그리고 여덟 구의
철혈강시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나타난 또 하나의 괴인영은 훤칠한 장신의
흑염노인이었다.
관운장을 연상케 하는 흑염노인은 일신에 가공할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천뇌자가 힐끗 그를 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다 왔소. 준비하시오, 전황(戰皇)!"
천뇌자의 말에 흑의노인은 고뇌의 표정을 떠올렸다.
"둘째, 정말 신니(神尼)를 쳐야만 하는 거요?"
그의 말을 들은 천뇌자의 쌍안에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신니는 이미 외부의 적을 끌어들여 본 마가(魔家)의 안위를
위태롭게 한 죄인이오. 그녀를 벌 주라고 하는 것은...... 바로
마종(魔宗)의 뜻이오!"
천뇌자는 싸늘하게 말을 마치며 슬쩍 한 자루 검은 빛 옥비녀를
들어보였다.

-마왕잠(魔王簪)!
그것은 마왕잠이라 불리우는 만겁마가 가주의 신물이 아닌가?

"음......!"
마왕잠을 본 흑의노인은 괴로운 신음성을 터뜨렸다. 이때,
"무슨 바람이 불어서 두 분 오라버니께서 이 누추한 곳에까지
찾아오셨습니까?"
갑자기 대비암 안쪽에서 온화한 여인의 음성이 들리며,
사박사박!
두 명의 여승이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바로 대비신니와 망아사태였다.
온화한 대비신니의 옥용에는 여전히 관음보살같이 그윽한 미소가
감돌았다.
천뇌자는 대비신니를 보자 안광을 번뜩였다.
"신니! 그대를 마왕잠의 이름으로 문책하니 대죄하시오!"
천뇌자가 마왕잠을 쳐들며 일갈하자, 대비신니는 마왕잠을 보며
흠칫했다. 그러나, 조금의 동요도 없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가주의 신분이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빈니는 둘째
오라버니의 명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대비신니의 말은 잔잔했으나 어조는 단호하고 확고부동했다.
"뭣이라고?"
천뇌자는 간교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흑의노인을 돌아보고 외쳤다.
"전황! 이래도 그녀에게 역심이 없다고 우기실 작정이오?"
"음......!"
흑의노인은 괴로운 안색으로 대비신니를 응시했다.
전황! 이런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불사전황(不死戰皇)!

그렇다!
마가삼태상의 제일인자이며 만겁마가의 실질적인 제일고수가 바로
그였다.
그는 다만 천뇌자가 지닌 마왕잠의 권위에 마지 못해 따라온
것이었다.
천뇌자는 불사전황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마왕잠을
쳐들고 대갈했다.
"마왕잠의 대리인으로 명하오! 불사전황은 지금 즉시 반역자
대비신니를 포박하시오!"
순간,
"용서하시오!"
불사전황은 표정을 괴롭게 일그러뜨리며 우수를 펼쳐 대비신니를
움켜쥐어 갔다.
빠지직----!
꽈---- 릉!
순간 불사전황의 우수 끝에서 시커먼 낙뢰가 작렬하며, 허공에
거대한 그물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대비신니를 덮쳤다.
가볍게 펼친 일격이건만 그 안에는 산을 허물어 버릴 듯 가공할 힘이
깃들어 있었다.
"아미타불......!"
대비신니도 그냥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어 동자배불의 자세로
불사전황의 일격을 옆으로 흘려냈다.
츠---- 읏!
꽈르르---- 릉!
대비신니의 하얀 옥수에서 우유빛 장영이 일어나 불사전황의 일격과
충돌하자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피어올랐다.
서로가 가볍게 허초를 교환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비신니와
불사전황의 주위에는 오 장 깊이의 웅덩이가 생겨 버렸다.
그 뿐만 아니라 대비신니와 불사전황은 무릎까지 땅 속에 파묻혀
버렸다.
이 일전으로는 어느 누구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으음! 무서운 연놈들이다! 노부보다 최소한 이성 이상 강한
내공들을 지녔군!)
두 경세고수의 대치상태를 보며 천뇌자는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비록 같은 마가삼태상이라 하나 그는 두 사람에 비하면 공력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천뇌자는 언제나 느끼고 있었던 사실이건만 실상 눈으로 목격을 하자
질투심과 열등감이 북받쳤다.
"시황! 그대는 철혈강시들을 이끌고 대비암을 수색하랏!"
천뇌자는 거의 발작을 하다시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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