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 천왕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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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赤鵬天皇의 最後
음양흡열마갱(陰陽吸熱魔坑).
콰드드득......!
돌연, 음양흡열마갱의 깊은 곳에서부터 용이 울부짖는 듯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우르르......!
음양흡열마갱이 무섭게 진동하며 소용돌이쳤다.
무슨 돌연한 변고란 말인가? 한 순간,
"우우......!"
주위를 뒤흔드는 굉렬한 장소성이 음양흡열마갱 아래에서
울려나왔다. 그와 함께,
촤아아......!
붉고 흰 서기가 그곳으로부터 질풍 같은 속도로 떠올랐다.
이어,
푸---- 하악!
음양흡열마갱의 지면이 산산이 박살나며 한무더기의 그림자가 백 장
상공으로 폭등했다.
고오오......!
화드드득!
붉고 흰 두 가지 창창한 광휘에 휩싸인 그림자, 그 중에 언뜻 손을
마주잡은 두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문득,
"후핫하......! 다시 태양을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구료!"
서기, 즉 양극천강 속에서 감회 어린 장소가 터져나왔다.
그 양극천강은 전에 막붕비가 펼치던 것보다 네 배는 강해져 있었다.
물론 지금 그것을 펼치는 인물도 바로 막붕비였다.
그는 재차 음양흡열마갱을 통과하여 양극천강이 또다시 두 배 강해진
것이었다.
음양흡열마갱, 그것을 통과할 때마다 강력한 음양강살이 몸에
유입되어 양극천강이 급증하는 것이었다.
"적붕......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여왕폐하! 핫하...... 폐하께서도
적붕천황(赤鵬天皇)에게 받을 빚이 많으실 테니까요!"
막붕비는 양극천강 안에서 유쾌하게 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공의 신세를 지겠어요!"
문득 서기 속에서 달단여왕 궁비연의 기품 있는 음성이 들렸다.
그녀의 음성에는 전에 없던 쾌활함이 담겨 있었다.
"핫하......! 하오면...... 실례하겠습니다!"
푸---- 학!
막붕비의 드높은 웃음소리가 초원의 저편을 울림과 함께 그의 신형은
단번에 백 장 저편으로 폭사되어 갔다.
그의 비파천류행의 경공도 배 이상 빨라져 있었다.
"우......!"
삽시에 두 사람의 그림자는 적붕성이 있는 동쪽 지평선으로
멀어졌다.
고오오......!
그 뒤로 죽음의 음양흡열마갱이 점차 가라앉으며 원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 * *
적붕성! 거대한 성루 위로 황혼이 지고 있었다.
피를 칠한 듯 붉은 노을이 적붕성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온통 피의 도가니에 빠진 듯 붉은 노을 속에 잠긴 적붕성, 그것은
왠지 섬뜩하게 불길한 인상을 더해 주고 있었다. 적붕성의 붉은 성벽,
그것은 선렬한 핏빛으로 타고 있었다.
적붕성의 드넓은 광장,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오이랍부의 원로들과 요인들이었다. 그들은 적붕천황의
소집령을 받고 급히 적붕성에 모인 것이었다.
하나, 중인들은 적붕천황이 무엇 깨문에 자신들을 소집했는지 몰라
모두 불안한 표정이었다.
광장의 끝에 자리한 높직한 단상,
"......!"
적붕천황 철극륜, 그가 태사의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는 막붕비에게 왼팔이 잘려 외팔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안색은 극히 창백해 보였으며 더욱 음험하고 잔인해
보였다.
그의 남은 오른손, 그곳에는 마검(魔劍) 지옥혈(地獄血)이 들려
있었다.
막붕비는 음양흡열마갱으로 빠져들며 어검술로 지옥혈을 날렸으나
적붕천황을 죽이지는 못했다.
적붕천황의 뒤, 다섯 명의 장한들이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하나같이 음험하고 흉폭한 인상의 장한들.
적붕오패(赤鵬五覇)!
적붕천황을 추종하는 적붕성의 호전적 젊은 무장들.
문득, 적붕천황은 음험하게 눈을 번뜩이며 힐끗 적붕오패를
돌아보았다.
(지옥십마성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믿을 것은 나 자신과......
오패 뿐이다!)
이어, 그는 음독한 음성으로 뒤를 향해 짤막하게 외쳤다.
"놈들을 끌고 와랏!"
"옛!"
대답과 함께 단상 뒤편에서 수십 명의 인물들이 병사들의 손에 질질
끌려나왔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수십 명의 인물들.
순간, 그들을 본 중인들의 안색이 홱 변했다.
"저...... 저 분은 왕제(王弟)이신 철해붕 공자가 아니신가?"
"붕공자의 외조부이신 철태사와 그 일족이다!"
"저 거인은 달단족의 제일용자인 혈부용사 구륜이다!"
중인들 사이에는 분분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불길한 술렁거림이 그들 사이를 휩쓸었다.
그렇다.
병사들에 의해 끌려나온 인물들, 그들은 바로 철해붕과 철태사의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달단의 혈부용사 구륜도 들어 있었다.
그들은 며칠 전 갑자기 들이닥친 적붕위사들에게 체포된 것이었다.
이때,
"조용하랏!"
적붕천황은 손을 내저으며 음험한 어조로 중인들에게 일갈했다.
그러자,
"......!"
"......!"
순식간에 드넓은 광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적붕천황은 음산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태사의에서 일어섰다.
이어, 그는 중인들을 향해 잔혹하고 위압적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철태사와 그 일족은 달단(達丹)의 무리를 끌어 들여 본황을
쓰러뜨리고 패권을 차지하려 하였다!"
그의 두 눈은 번뜩이는 광기와 살기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막붕비에게 한쪽 팔을 잃은 후 그의 성격은 더욱 음험하고
잔인해졌다.
그는 광기 어린 눈을 번들거리며 재차 목청을 돋구었다.
"역모를 꾸민 죄는 죽어 마땅하다! 또한 그대들 중 상당수가
철태사와 내통하고 있음을 잘 안다! 흐흣...... 배신자들은...... 오늘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그는 잔혹하고 독랄한 웃음을 배어물었다.
이어, 문득 그는 이를 부득 갈며 철태사를 내려다 보았다.
"철태사! 순순히 혈판장에 서명한 역도들의 이름을 불어랏! 그렇지
않으면 네놈 일족들이 네 눈앞에서 차례차례 오마분시 당할 것이다!"
그는 흉성을 폭발시키며 잔혹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마분시(五馬分屍).
가장 끔찍한 처형 방법.
사지와 머리를 줄로 묶어 다섯 마리 말에게 동시에 달리게 하여
죽이는 잔인한 방법이었다.
철태사, 그는 무릎이 꺾여 앉혀진 채 적붕천황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꿈꾸지 마라! 패륜무도한 놈!"
그는 숱한 고초를 당한 듯 신선 같은 그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움푹 꺼져들어간 그의 노안에는 증오와 원한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네놈은 욕정에 눈멀어 계모인 노부의 딸까지 강제로 욕보였고, 그
때문에 그 아이는 수치를 못견뎌 자진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십
년 전에 네놈은 패권을 노려 친부인 만붕왕 전하마저 독살을......!"
순간,
"닥쳐랏!"
적붕천황은 두 눈을 까뒤집으며 악을 쓰듯 외쳤다.
철태사가 자신의 치부를 속속 들먹이자 그는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광기 어린 눈을 번뜩이며 거칠게 이를 갈았다.
"바득! 좋다!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네놈이 불지 않아도 역도들을
찾아낼 방도는 얼마든지 있다!"
쩡!
그는 흉흉한 기세로 마검 지옥혈을 뽑아들었다.
"두 쪽을 내주마, 늙은이!"
위---- 잉!
그는 벼락같이 단상에서 뛰어내리며 그대로 철태사의 정수리를
후려쳐 갔다.
순간,
"할아버지!"
보고 있던 철해붕이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처참하게 외쳤다. 위기의
순간.
그때였다.
"철...... 극륜!"
우르릉!
돌연 천지를 뒤흔드는 무서운 폭갈이 장내를 울렸다.
동시에,
쩌---- 쩡!
푸---- 하악!
하늘 서편에서 뇌전이 작렬하는 듯 섬광이 일며 한 자루
장도(長刀)가 벼락치듯 날아들었다.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굉렬한 도기(刀氣)를 휩쓸며 날아드는
장도(長刀)! 그 칼이 날아드는 속도는 빛보다 빠른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순간,
"어억!"
"앗! 저것은...... 마도(魔刀) 묵룡풍(墨龍風)이다!"
"대형(大兄)!"
분분한 경악성과 환호성이 한꺼번에 광장을 뒤흔들었다.
이때,
기이잉......!
적붕천황은 본능적으로 마검 지옥혈을 휘둘러 검막을 일으키며 몸을
지키려 했다. 그 순간,
꽈르릉......!
"크---- 악!"
천균뇌정이 작렬하는 듯한 가공할 굉음이 짓터져 올랐다.
그와 함께, 적붕천황은 마검 지옥혈을 놓치며 십 장 밖으로 퉁겨져
나뒹굴었다.
이기어도술로 날아든 마도 묵룡풍, 그것이 지옥혈을 퉁겨내며
적붕천황의 호구를 박살낸 것이었다.
적붕천황의 오른 손바닥은 처참하게 찢겨져 온통 피범벅으로 변했다.
그때,
휘---- 이잉!
선풍이 일며 한쌍의 남녀가 적붕성의 서쪽 성벽을 훌훌 날아넘어
장내로 다가섰다.
흡사 한쌍의 천신같이 날아드는 두 남녀.
그들을 본 순간,
"여왕님!"
"헤헤! 대형(大兄)! 돌아오실 줄 알았어요!"
혈부용사 구륜과 철해붕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적붕천황, 그는 일순 사색이 되어 벌떡 일어났다.
"죽...... 죽지 않았다니......!"
그의 안면은 낭패함으로 거칠게 일그러졌다. 이어,
"마...... 막아랏! 놈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발악하듯 외쳤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놈! 죽어랏!"
"캇! 건방진 중원 놈! 적붕오패를 아느냐?"
콰드득!
쐐---- 액!
여기저기서 수백 명의 고수들이 날아올라 막붕비를 향해 메뚜기
떼같이 몰려들었다. 하나,
"물러가랏! 하루살이들!"
막붕비는 위압적인 음성으로 대갈일성했다. 그와 함께,
츠츠츳...... 콰드득!
그의 몸에서 붉고 흰 강기의 막이 폭발하듯 일어났다.
양극천강!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그 위세가 며칠 전보다 네 배 강해졌다는 것이 틀릴 뿐이었다.
순간,
콰---- 자작!
쩌러렁......!
"케---- 액!"
"크악...... 마신(魔神)같이 강한 놈이다!"
"우와악......!"
막붕비와 궁비연에게 달려들던 적붕천황의 수하들은 피보라를 뿌리며
사방으로 퉁겨져 나갔다.
그 광경에 적붕천황의 얼굴은 완전히 흑빛으로 변했다.
"인...... 인간같지도 않은 놈!"
그러다 문득, 그는 밧줄에 묶여 있는 어린 철해붕의 모습을
발견했다.
번---- 쩍!
적붕천황의 날카롭게 찢어진 눈이 일순 잔혹하게 번뜩였다. 순간,
팟!
"악!"
그는 벼락같이 몸을 날려 철해붕의 목을 움켜쥐었다.
"지옥혈황! 여기를 봐랏!"
그는 철해붕의 몸을 치켜들며 발악하듯 외쳤다.
"이 어린 놈을 살리고 싶으면...... 거기 멈춰랏!"
순간,
"비겁한 놈! 끝까지 추태로군!"
츠읏!
막붕비는 싸늘하게 일갈하며 달단여왕 궁비연의 손을 잡고
적붕천황의 십 장 앞에 내려섰다.
"흐흐...... 어떤 방법을 쓰든 과정은 중요치 않다!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일 뿐!"
적붕천황은 야비한 표정으로 히죽 웃었다.
"흐흣! 지겨운 놈! 이제 마도 묵룡풍을 내려놓고 초원을 떠나랏!
의리를 따지는 무사인 네놈이 이 어린 놈을 죽게 하지는 않겠지?"
순간, 막붕비의 눈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무섭게 적붕천황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나는 네놈이 효웅(梟雄)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비루먹은 개만도 못한 놈이었구나!"
그는 교활하게 눈을 번뜩이는 적붕천황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때 문득, 막붕비는 한 명의 여인이 적붕천황의 뒤로 다가서는 것을
보았다.
황홀하도록 화사한 용모의 궁장미부. 순간,
"누님......!"
막붕비는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보고 반가운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철접!
궁장미부는 바로 화접부인으로 화한 철접이었다.
이때, 적붕천황도 철접이 자신의 뒤로 다가서는 것을 보았다.
하나 그는 별로 경계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철접이 바로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자객인 줄 어찌
그가 꿈에라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막붕비는 다가서는 철접을 바라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누님에게...... 적붕천황의 목을 딸 기회를 주어야겠군!)
이어, 그는 철접의 암격을 도우기 위해 전신에 끌어모았던 공력을
풀었다. 그리고,
따---- 당!
그는 들고 있던 마도 묵룡풍을 땅에 내던졌다.
그 모습에 적붕천황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렸다.
"후핫핫......! 그래야지! 마검 마도가 본좌의 손에 들어온 이상
본좌는 이제 당당한 신강지옥성의 성주도 되는 것이다! 이제
네놈은......!"
하나 문득 그의 웃음소리가 뚝 멎었다.
우둑!
그 순간 한 자루의 비수가 뒤쪽으로부터 적붕천황의 목을 꿰뚫고
목젖 부근까지 튀어나온 것이었다.
적붕천황은 찢어질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화접(花蝶), 네...... 네년이......!"
그는 자기의 목젖 부근까지 튀어나온 새파란 칼날을 보며 불신의
빛을 띠었다. 그때,
"네목을 벤 것이 누군지 염왕에게 정확히 고하기나 해라......
본녀는 동영 밀종(密宗)의 상인(上忍) 철접(鐵蝶)이다!"
슷!
철접은 쥐고 있던 비수를 옆으로 그으며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순간,
"케---- 엑!"
후두둑!
처참한 비명과 함께 선혈이 확 번져올랐다.
아...... 보라!
적붕천황, 그의 목이 깨끗하게 잘려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
"......!"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이 엄청난 변고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이때,
"......!"
철접은 정인 막붕비에게 촉촉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어, 그녀는 급히 적붕천황의 목을 가죽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다음
순간,
피---- 잉!
그녀는 나비같이 훌훌 날아올라 적붕성의 남쪽 성벽을 날아넘어갔다.
그제서야 조용하던 중인들 가운데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그 반응은 두 가지였다.
"적붕천황이...... 죽었다! 천하의 패륜아가......!"
"철해붕 공자를...... 왕으로 모시자! 초원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인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며 철해붕과 철태사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바...... 바득! 이 복수는 반드시 한다! 지옥혈황, 철접!"
"대몽고의 혼(魂)이신 천황(天皇)을 시해한 원한은 결코 잊지
않겠다!"
화드득!
쐐!
상당수의 무리들이 이를 갈며 속속 적붕성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적붕오패를 위시한 호전적 소장파들이었다.
적붕천황 철극륜을 도와 패권을 주도하던 흉포한 무리들.
그들은 대세의 불리함을 알고 적붕성에서 물러가는 것이었다. 후일,
그들은 장성과 음산(陰山) 일대에서 새로운 오이랍왕부를 세워 풍파를
일으킨 무리가 된다.
하나, 결국 그들도 영락제의 삼차에 걸친 북벌에 패퇴하여 아득한
북방으로 쫓겨가고 만다.
적붕성---- 적붕천황의 죽음으로 적붕성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발전적인 도약의 전환점을......!
* * *
대혼란 중에 서 있는 막붕비, 그의 귓전으로 문득 멀리서
천리전성(千里傳聲)으로 보내는 서시독후 철접의 음성이 들려왔다.
"신첩은 먼저 금릉으로 돌아가 아버님을 뵙겠어요!"
"누님......!"
막붕비는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철접이 사라진 남쪽을
주시했다.
"아우님은...... 적붕성을 정리한 후에 돌아오세요. 특히...... 그
아이 달단여왕을 잘 보살펴 주도록 하세요!"
철접의 전음은 야릇한 여운을 끌며 사라졌다.
그때, 문득 지극히 보드라운 손이 막붕비의 팔을 꼭 쥐었다.
(여왕......!)
막붕비는 미소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달단여왕 궁비연----
그녀가 수줍게 미소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음양흡열마갱에서 생사를 함께했고 그 때문에 몸까지 섞은 두 사람,
그들은 어느 덧 서로의 심령까지 교감할 정도로 친밀해져 있었다.
문득, 궁비연은 살짝 머리를 숙이며 수줍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를...... 위해서 며칠 더 머물러 주실 수 있으시겠지요?"
궁장 위로 살짝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가 눈이 부시도록 희고
깨끗했다.
막붕비는 궁비연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저라고 하셔서는 안됩니다! 짐이라고 하셔야 합니다. 폐하는
여왕(女王)이시니까요!"
이어,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검과 마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중 마검 지옥혈을 궁비연의 손에 쥐어 주었다.
문득,
"십마성(十魔聖)!"
막붕비는 허공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순간,
"부르셨습니까, 검주(劍主)?"
"신강지옥성의 천년가신...... 십마성! 대령했습니다!"
스스슷!
대답과 함께 여기저기서 열 개의 그림자가 솟아올라 막붕비의 앞에
부복했다.
-지옥십마성(地獄十魔聖)!
바로 그들이었다. 남녀노소가 섞인 십 인(十人)의 초고수들.
신강지옥성이 사대천왕에게 멸망당한 후 천 년이 지났건만 묵묵히
신강지옥성의 영토를 지켜온 충신들.
사실상 신강지옥성은 멸망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오랫 동안 그 주인을 기다리며 변황을 떠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들은 지옥저주마경의 사본을 얻은 적붕천황을 자신들의
주인인 줄 알고 그에게 충성을 바쳤다.
하지만, 그들이 적붕천황이 신강지옥성의 주인될 재목이 못됨을 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적붕천황 철극륜----
그는 패기는 있으나 종사(宗師)로서의 포용력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분부...... 계십니까, 성주(城主)?"
지옥십마성의 첫째인 신강혈성(新疆血聖),
그가 핏빛 모발의 머리를 숙이며 정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막붕비는 그 말에 나직한 기소를 발했다.
"후훗! 나를 성주라 하지 마시오! 그대들이 이제부터 성주로 모실
분은 바로 이 분이시오!"
그는 옆으로 물러서며 달단여왕 궁비연을 가리켰다.
그러자,
"상공......!"
갑작스런 막붕비의 태도에 궁비연은 당황하여 울상을 지었다.
하나 이때,
"십마성! 주모님을 뵙습니다!"
"하명을 하시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습니다!"
지옥십마성은 막붕비의 명을 받들어 일제히 궁비연에게 예를 취했다.
"......!"
막붕비, 그는 당황하는 궁비연에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궁비연은 그제서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옥십마성을 향해
말했다.
"일어들 나요! 그대들은 지금 즉시 철극륜의 십대분성으로 가서
그곳을 접수한 후 짐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도록 해요!"
그녀는 침착하고 의연한 태도로 지시했다.
어느 덧, 그녀는 일국의 여왕으로 되돌아온 상태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하나, 그 음성에는 더할 수 없는 기품과 사람을 절로 복종케 하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지옥십마성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분부 거행하겠습니다!"
"심려 놓으십시오! 누가 있어 위대한 신강의 여제왕님께
저항하겠습니까?"
스슷!
그들은 일제히 대답한 후 각기 열방향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
"......!"
막붕비와 궁비연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대형!"
"여왕폐하!"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던 철해붕과 혈부용사가 겨우 중인들 속을
빠져나와 두 사람 쪽으로 달려왔다.
막붕비와 궁비연, 그들은 활짝 웃으며 반갑게 두 사람을 맞아갔다.
광장의 서쪽 끝----
"......!"
"......!"
십 일 인이 군중들 속에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인파에 휩싸여 있는 막붕비와 궁비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십 인의 우람한 체격을 지닌 장한들, 그리고 한 필의 검은 준마 위에
앉은 한 명의 여전사(女戰士)가 바로 그들이었다.
여인이 타고 있는 말은 흑사금강총이라는 전설적 명마(名馬)였다.
-대막여왕 철낭자!
-대막십전(大漠十箭)!
바로 그들이었다.
지금, 철낭자는 아주 복잡한 시선으로 군중들 틈의 막붕비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막붕비에 복수하러 적붕성에 왔다가 그에 의해 적붕성의
주인이 뒤바뀌는 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하나, 막상 막붕비를 보자 복수심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미묘한
울렁거림이 그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좋아...... 지옥혈황!"
문득, 철낭자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 흥을 깨지는 않겠다! 하지만...... 네
목숨은 내 것이야! 나 대막여왕 철낭자의......!"
이어,
슥!
그녀는 흑사금강총의 고삐를 쥐며 돌아섰다.
"가자! 십전(十箭)!"
말을 마침과 함께,
두두두......!
흑사금강총은 철낭자를 태우고 질풍 같은 기세로 적붕성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뒤로,
두두두두!
대막십전이 서로 얼굴을 마주본 후 급히 뒤따라 달려나갔다.
대초원......!
그곳에 서서히 평온한 휴식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 * *
-연경(燕京).
만리장성의 요새 팔달령(八達嶺)으로부터 불과 이백여 리 떨어진
북방의 고도(古都), 역대 강북에서 일어난 왕조의 도읍이다.
대원제국도 연경을 도읍으로 하여 천하를 다스렸으며 그 당시에는
대도라 불렀다.
후일, 영락제의 북방정책으로 북경(北京)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이곳 연경이었다.
늦가을의 연경.
휘---- 이잉----!
스산한 가을바람이 밤의 북경 일대를 휩쓸고 있었다.
삼경 무렵, 연경 북서쪽의 어느 강변----
한 채의 사당이 어둠 속에 음침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토지신을 모신 낡은 사당이었다.
문득,
스윽......!
어둠을 가르며 하나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사당 앞으로 내려섰다.
그는 내려서자마자 영활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염 하나없이 창백한 안색의 노인,
-유령음황(幽靈陰皇)!
바로 그 자가 아닌가?
만겁마가의 사대가신 중 한 명.
일전, 북망산에서 풍뢰쌍염을 이용하여 양심초극마공을 연마하던 중
막붕비에게 저격당해 낭패를 본 장본인이었다.
이때,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유령음황, 그는
기민하게 토지묘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갱주(坑主)! 본좌보다 늦으셨소!"
낮으나 한 줄기 음혼한 음성이 유령음황의 귓전을 울렸다.
"......!"
유령음황은 흠칫하며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토지묘, 중앙에는 하나의 신단이 있었다.
그 뒤로, 토지신인 토지공공(土地空空)이 어둠 속에 버티고 서
있었다.
신단 앞,
"......!"
하나의 산(山) 같은 그림자가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다만,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푸르스름한 뇌전이
흘러 그 그림자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인물의 무릎 위, 길이 열 한 자의 장극(長戟)이 올려져 있었다.
이윽고,
"전...... 마(戰魔) 혼해룡! 동작이 빠르군!"
그 인물이 누군지 확인한 유령음황은 음침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마 혼해룡!
그 인물은 바로 만겁마가의 가신들 중 가장 강하다는 전마
혼해룡이었다.
한데, 만겁마가의 두 가신, 그들이 무슨 이유로 이 한적하고 황폐한
토지묘에서 만나고 있는 것일까?
슥!
유령음황은 이윽고 혼해룡과 마주보고 다른쪽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문득,
츠---- 읏!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격돌하며 새파란 불똥을
튀었다.
일전, 천강노조의 두 손녀를 이용하려던 일로 인해 유령음황과
혼해룡의 사이는 서로 불편한 상태였다.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유령음황쪽이었다.
그 자신 혼해룡에게 빚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령음황은 혼해룡의 시선을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한데...... 팔마왕은 아직 안 온 거요? 이미 삼경이
지났는데......!"
그의 중얼거림이 끝났을 때였다.
"흐흣! 본좌가 그대 같은 줄 아는가?"
돌연, 두 사람의 측면에서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
"......!"
유령음황과 혼해룡은 흠칫 놀랐다.
이어, 그들은 안색이 홱 변하며 벌떡 일어섰다.
언제 나타났을까?
어둠 속, 한 명의 인물이 유령같이 나타나 앉아 있었다.
홀쭉한 얼굴에 푸르스름한 안색을 한 인물.
눈이 가늘고 날카롭게 찢어진 것으로 보아 그의 성격은 음독하고
잔인해 보였다.
이때,
"혼해룡! 도마왕(刀魔王)을 뵙소이다!"
혼해룡은 어둠 속의 인물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했다.
그것으로 보아 그 인물은 만겁마가의 요인인 듯했다.
"흐흐...... 고명하신 팔대마왕 중의 한 분을 뵙게 되어 영
광이오!"
유령음황은 음산하게 말하며 형식적으로 포권했다.
-도마왕!
그렇게 불린 인물은 힐끗 유령음황을 바라본 후 음침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들을 지휘하던 혈관음 소가주는 가주께 죄를 지어 지금 모처에
갇혀 있소. 그래서 본좌가 오늘부터 그대들을 지휘하게 되었소, 그렇게
아시오!"
"......!"
혼해룡은 묵묵하게 입을 닫은 채 아무런 표정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나, 유령음황은 배알이 꼬인 듯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귀하에게...... 마가사가신을 통솔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구료!"
순간,
번---- 쩍!
도마왕의 가는 눈이 새파랗게 광망을 토했다.
"유령...... 음황! 오래 살고 싶다면...... 입을 조심해야 한다!"
그는 칼로 자르듯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어라고?"
유령음황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했다. 그 순간,
츳!
찌리링!
돌연 도마왕의 손이 허리에 닿는가 싶더니 한 가닥 도광 (刀光)이
벼락치듯 작렬했다.
토지묘 전체는 새파란 도광으로 찰나지간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직후,
투두둑......!
"억!"
놀랍게도 유령음황의 전신 의복이 갈가리 찢겨 걸레쪽같이 변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유령음황이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이 도마왕은 유령음황의 몸에는
상처하나 안 내고 그의 옷자락만 찢어 버린 것이었다.
유령음황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무...... 서운 쾌도(快刀)!)
그는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한데, 기이한 것은 도마왕의 몸 어디에도 칼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도마왕은 새파란 광망이 번뜩이는 눈으로 냉혹하게 유령음황을
노려보았다.
"흥! 잡기나 익힌 너희 사가신과 만겁마류의 정통마공을 연마한 우리
팔대마왕(八大魔王)이 똑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싸늘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마가의 가신으로라도 계속 남고 싶으면...... 입은 조심하는 것이
좋다!"
(끙......!)
유령음황은 무어라 대꾸할 말조차 잊고 입술을 실룩였다.
하나, 그는 도마왕의 무서운 쾌도(快刀)를 본 후 감히 반발하지
못했다.
도마왕은 음산한 눈으로 유령음황과 혼해룡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너희들에게 마종의 두 가지 명령을 전하겠다! 첫째는 예의
악마혈종의 종적을 찾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곳 연경 주위에 있는 한 곳의 장원을 탐색하라는 것이다!"
"......!"
"......!"
유령음황과 혼해룡은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도마왕의 음산한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그 장원의 이름은 은황금마장! 미확의 정보에 의하면 그 장원은
태양도(太陽島)의 중원전초기지로 개축 중인 곳이라고 한다!"
순간,
"태양도!"
"태...... 양성황의 후예들이 중원에 들어 왔단 말이오?"
유령음황과 혼해룡은 안색이 홱 변하며 부르짖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양도라는 이름은 만겁마가 이상으로 무서운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성황(太陽聖皇)!
그들은 바로 저 사대천왕 중 태양성황의 후예들이었다.
무공의 다양함과 초식에 있어서는 사대천왕의 그 누구도 적수가
못되었다는 희세의 대천재.
태양도는 바로 태양성황이 세운 문파였다.
그들은 동해(東海) 어딘가에 정변 등 천하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무공을 발전시켜온 태양일맥!
그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 발달했는지 아무도 추측하지 못했다.
어쩌면, 태양도(太陽島)의 잠력은 만겁마가보다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제삼의 세력!
그 태양도가 이제 바야흐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음양흡열마갱(陰陽吸熱魔坑).
콰드드득......!
돌연, 음양흡열마갱의 깊은 곳에서부터 용이 울부짖는 듯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우르르......!
음양흡열마갱이 무섭게 진동하며 소용돌이쳤다.
무슨 돌연한 변고란 말인가? 한 순간,
"우우......!"
주위를 뒤흔드는 굉렬한 장소성이 음양흡열마갱 아래에서
울려나왔다. 그와 함께,
촤아아......!
붉고 흰 서기가 그곳으로부터 질풍 같은 속도로 떠올랐다.
이어,
푸---- 하악!
음양흡열마갱의 지면이 산산이 박살나며 한무더기의 그림자가 백 장
상공으로 폭등했다.
고오오......!
화드드득!
붉고 흰 두 가지 창창한 광휘에 휩싸인 그림자, 그 중에 언뜻 손을
마주잡은 두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문득,
"후핫하......! 다시 태양을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구료!"
서기, 즉 양극천강 속에서 감회 어린 장소가 터져나왔다.
그 양극천강은 전에 막붕비가 펼치던 것보다 네 배는 강해져 있었다.
물론 지금 그것을 펼치는 인물도 바로 막붕비였다.
그는 재차 음양흡열마갱을 통과하여 양극천강이 또다시 두 배 강해진
것이었다.
음양흡열마갱, 그것을 통과할 때마다 강력한 음양강살이 몸에
유입되어 양극천강이 급증하는 것이었다.
"적붕......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여왕폐하! 핫하...... 폐하께서도
적붕천황(赤鵬天皇)에게 받을 빚이 많으실 테니까요!"
막붕비는 양극천강 안에서 유쾌하게 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공의 신세를 지겠어요!"
문득 서기 속에서 달단여왕 궁비연의 기품 있는 음성이 들렸다.
그녀의 음성에는 전에 없던 쾌활함이 담겨 있었다.
"핫하......! 하오면...... 실례하겠습니다!"
푸---- 학!
막붕비의 드높은 웃음소리가 초원의 저편을 울림과 함께 그의 신형은
단번에 백 장 저편으로 폭사되어 갔다.
그의 비파천류행의 경공도 배 이상 빨라져 있었다.
"우......!"
삽시에 두 사람의 그림자는 적붕성이 있는 동쪽 지평선으로
멀어졌다.
고오오......!
그 뒤로 죽음의 음양흡열마갱이 점차 가라앉으며 원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 * *
적붕성! 거대한 성루 위로 황혼이 지고 있었다.
피를 칠한 듯 붉은 노을이 적붕성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온통 피의 도가니에 빠진 듯 붉은 노을 속에 잠긴 적붕성, 그것은
왠지 섬뜩하게 불길한 인상을 더해 주고 있었다. 적붕성의 붉은 성벽,
그것은 선렬한 핏빛으로 타고 있었다.
적붕성의 드넓은 광장,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오이랍부의 원로들과 요인들이었다. 그들은 적붕천황의
소집령을 받고 급히 적붕성에 모인 것이었다.
하나, 중인들은 적붕천황이 무엇 깨문에 자신들을 소집했는지 몰라
모두 불안한 표정이었다.
광장의 끝에 자리한 높직한 단상,
"......!"
적붕천황 철극륜, 그가 태사의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는 막붕비에게 왼팔이 잘려 외팔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안색은 극히 창백해 보였으며 더욱 음험하고 잔인해
보였다.
그의 남은 오른손, 그곳에는 마검(魔劍) 지옥혈(地獄血)이 들려
있었다.
막붕비는 음양흡열마갱으로 빠져들며 어검술로 지옥혈을 날렸으나
적붕천황을 죽이지는 못했다.
적붕천황의 뒤, 다섯 명의 장한들이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하나같이 음험하고 흉폭한 인상의 장한들.
적붕오패(赤鵬五覇)!
적붕천황을 추종하는 적붕성의 호전적 젊은 무장들.
문득, 적붕천황은 음험하게 눈을 번뜩이며 힐끗 적붕오패를
돌아보았다.
(지옥십마성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믿을 것은 나 자신과......
오패 뿐이다!)
이어, 그는 음독한 음성으로 뒤를 향해 짤막하게 외쳤다.
"놈들을 끌고 와랏!"
"옛!"
대답과 함께 단상 뒤편에서 수십 명의 인물들이 병사들의 손에 질질
끌려나왔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수십 명의 인물들.
순간, 그들을 본 중인들의 안색이 홱 변했다.
"저...... 저 분은 왕제(王弟)이신 철해붕 공자가 아니신가?"
"붕공자의 외조부이신 철태사와 그 일족이다!"
"저 거인은 달단족의 제일용자인 혈부용사 구륜이다!"
중인들 사이에는 분분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불길한 술렁거림이 그들 사이를 휩쓸었다.
그렇다.
병사들에 의해 끌려나온 인물들, 그들은 바로 철해붕과 철태사의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달단의 혈부용사 구륜도 들어 있었다.
그들은 며칠 전 갑자기 들이닥친 적붕위사들에게 체포된 것이었다.
이때,
"조용하랏!"
적붕천황은 손을 내저으며 음험한 어조로 중인들에게 일갈했다.
그러자,
"......!"
"......!"
순식간에 드넓은 광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적붕천황은 음산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태사의에서 일어섰다.
이어, 그는 중인들을 향해 잔혹하고 위압적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철태사와 그 일족은 달단(達丹)의 무리를 끌어 들여 본황을
쓰러뜨리고 패권을 차지하려 하였다!"
그의 두 눈은 번뜩이는 광기와 살기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막붕비에게 한쪽 팔을 잃은 후 그의 성격은 더욱 음험하고
잔인해졌다.
그는 광기 어린 눈을 번들거리며 재차 목청을 돋구었다.
"역모를 꾸민 죄는 죽어 마땅하다! 또한 그대들 중 상당수가
철태사와 내통하고 있음을 잘 안다! 흐흣...... 배신자들은...... 오늘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그는 잔혹하고 독랄한 웃음을 배어물었다.
이어, 문득 그는 이를 부득 갈며 철태사를 내려다 보았다.
"철태사! 순순히 혈판장에 서명한 역도들의 이름을 불어랏! 그렇지
않으면 네놈 일족들이 네 눈앞에서 차례차례 오마분시 당할 것이다!"
그는 흉성을 폭발시키며 잔혹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마분시(五馬分屍).
가장 끔찍한 처형 방법.
사지와 머리를 줄로 묶어 다섯 마리 말에게 동시에 달리게 하여
죽이는 잔인한 방법이었다.
철태사, 그는 무릎이 꺾여 앉혀진 채 적붕천황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꿈꾸지 마라! 패륜무도한 놈!"
그는 숱한 고초를 당한 듯 신선 같은 그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움푹 꺼져들어간 그의 노안에는 증오와 원한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네놈은 욕정에 눈멀어 계모인 노부의 딸까지 강제로 욕보였고, 그
때문에 그 아이는 수치를 못견뎌 자진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십
년 전에 네놈은 패권을 노려 친부인 만붕왕 전하마저 독살을......!"
순간,
"닥쳐랏!"
적붕천황은 두 눈을 까뒤집으며 악을 쓰듯 외쳤다.
철태사가 자신의 치부를 속속 들먹이자 그는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그는 광기 어린 눈을 번뜩이며 거칠게 이를 갈았다.
"바득! 좋다!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네놈이 불지 않아도 역도들을
찾아낼 방도는 얼마든지 있다!"
쩡!
그는 흉흉한 기세로 마검 지옥혈을 뽑아들었다.
"두 쪽을 내주마, 늙은이!"
위---- 잉!
그는 벼락같이 단상에서 뛰어내리며 그대로 철태사의 정수리를
후려쳐 갔다.
순간,
"할아버지!"
보고 있던 철해붕이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처참하게 외쳤다. 위기의
순간.
그때였다.
"철...... 극륜!"
우르릉!
돌연 천지를 뒤흔드는 무서운 폭갈이 장내를 울렸다.
동시에,
쩌---- 쩡!
푸---- 하악!
하늘 서편에서 뇌전이 작렬하는 듯 섬광이 일며 한 자루
장도(長刀)가 벼락치듯 날아들었다.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굉렬한 도기(刀氣)를 휩쓸며 날아드는
장도(長刀)! 그 칼이 날아드는 속도는 빛보다 빠른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순간,
"어억!"
"앗! 저것은...... 마도(魔刀) 묵룡풍(墨龍風)이다!"
"대형(大兄)!"
분분한 경악성과 환호성이 한꺼번에 광장을 뒤흔들었다.
이때,
기이잉......!
적붕천황은 본능적으로 마검 지옥혈을 휘둘러 검막을 일으키며 몸을
지키려 했다. 그 순간,
꽈르릉......!
"크---- 악!"
천균뇌정이 작렬하는 듯한 가공할 굉음이 짓터져 올랐다.
그와 함께, 적붕천황은 마검 지옥혈을 놓치며 십 장 밖으로 퉁겨져
나뒹굴었다.
이기어도술로 날아든 마도 묵룡풍, 그것이 지옥혈을 퉁겨내며
적붕천황의 호구를 박살낸 것이었다.
적붕천황의 오른 손바닥은 처참하게 찢겨져 온통 피범벅으로 변했다.
그때,
휘---- 이잉!
선풍이 일며 한쌍의 남녀가 적붕성의 서쪽 성벽을 훌훌 날아넘어
장내로 다가섰다.
흡사 한쌍의 천신같이 날아드는 두 남녀.
그들을 본 순간,
"여왕님!"
"헤헤! 대형(大兄)! 돌아오실 줄 알았어요!"
혈부용사 구륜과 철해붕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적붕천황, 그는 일순 사색이 되어 벌떡 일어났다.
"죽...... 죽지 않았다니......!"
그의 안면은 낭패함으로 거칠게 일그러졌다. 이어,
"마...... 막아랏! 놈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발악하듯 외쳤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놈! 죽어랏!"
"캇! 건방진 중원 놈! 적붕오패를 아느냐?"
콰드득!
쐐---- 액!
여기저기서 수백 명의 고수들이 날아올라 막붕비를 향해 메뚜기
떼같이 몰려들었다. 하나,
"물러가랏! 하루살이들!"
막붕비는 위압적인 음성으로 대갈일성했다. 그와 함께,
츠츠츳...... 콰드득!
그의 몸에서 붉고 흰 강기의 막이 폭발하듯 일어났다.
양극천강!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그 위세가 며칠 전보다 네 배 강해졌다는 것이 틀릴 뿐이었다.
순간,
콰---- 자작!
쩌러렁......!
"케---- 액!"
"크악...... 마신(魔神)같이 강한 놈이다!"
"우와악......!"
막붕비와 궁비연에게 달려들던 적붕천황의 수하들은 피보라를 뿌리며
사방으로 퉁겨져 나갔다.
그 광경에 적붕천황의 얼굴은 완전히 흑빛으로 변했다.
"인...... 인간같지도 않은 놈!"
그러다 문득, 그는 밧줄에 묶여 있는 어린 철해붕의 모습을
발견했다.
번---- 쩍!
적붕천황의 날카롭게 찢어진 눈이 일순 잔혹하게 번뜩였다. 순간,
팟!
"악!"
그는 벼락같이 몸을 날려 철해붕의 목을 움켜쥐었다.
"지옥혈황! 여기를 봐랏!"
그는 철해붕의 몸을 치켜들며 발악하듯 외쳤다.
"이 어린 놈을 살리고 싶으면...... 거기 멈춰랏!"
순간,
"비겁한 놈! 끝까지 추태로군!"
츠읏!
막붕비는 싸늘하게 일갈하며 달단여왕 궁비연의 손을 잡고
적붕천황의 십 장 앞에 내려섰다.
"흐흐...... 어떤 방법을 쓰든 과정은 중요치 않다!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일 뿐!"
적붕천황은 야비한 표정으로 히죽 웃었다.
"흐흣! 지겨운 놈! 이제 마도 묵룡풍을 내려놓고 초원을 떠나랏!
의리를 따지는 무사인 네놈이 이 어린 놈을 죽게 하지는 않겠지?"
순간, 막붕비의 눈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무섭게 적붕천황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나는 네놈이 효웅(梟雄)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비루먹은 개만도 못한 놈이었구나!"
그는 교활하게 눈을 번뜩이는 적붕천황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때 문득, 막붕비는 한 명의 여인이 적붕천황의 뒤로 다가서는 것을
보았다.
황홀하도록 화사한 용모의 궁장미부. 순간,
"누님......!"
막붕비는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보고 반가운 음성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철접!
궁장미부는 바로 화접부인으로 화한 철접이었다.
이때, 적붕천황도 철접이 자신의 뒤로 다가서는 것을 보았다.
하나 그는 별로 경계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철접이 바로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자객인 줄 어찌
그가 꿈에라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막붕비는 다가서는 철접을 바라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누님에게...... 적붕천황의 목을 딸 기회를 주어야겠군!)
이어, 그는 철접의 암격을 도우기 위해 전신에 끌어모았던 공력을
풀었다. 그리고,
따---- 당!
그는 들고 있던 마도 묵룡풍을 땅에 내던졌다.
그 모습에 적붕천황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렸다.
"후핫핫......! 그래야지! 마검 마도가 본좌의 손에 들어온 이상
본좌는 이제 당당한 신강지옥성의 성주도 되는 것이다! 이제
네놈은......!"
하나 문득 그의 웃음소리가 뚝 멎었다.
우둑!
그 순간 한 자루의 비수가 뒤쪽으로부터 적붕천황의 목을 꿰뚫고
목젖 부근까지 튀어나온 것이었다.
적붕천황은 찢어질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화접(花蝶), 네...... 네년이......!"
그는 자기의 목젖 부근까지 튀어나온 새파란 칼날을 보며 불신의
빛을 띠었다. 그때,
"네목을 벤 것이 누군지 염왕에게 정확히 고하기나 해라......
본녀는 동영 밀종(密宗)의 상인(上忍) 철접(鐵蝶)이다!"
슷!
철접은 쥐고 있던 비수를 옆으로 그으며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순간,
"케---- 엑!"
후두둑!
처참한 비명과 함께 선혈이 확 번져올랐다.
아...... 보라!
적붕천황, 그의 목이 깨끗하게 잘려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
"......!"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이 엄청난 변고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이때,
"......!"
철접은 정인 막붕비에게 촉촉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어, 그녀는 급히 적붕천황의 목을 가죽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다음
순간,
피---- 잉!
그녀는 나비같이 훌훌 날아올라 적붕성의 남쪽 성벽을 날아넘어갔다.
그제서야 조용하던 중인들 가운데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그 반응은 두 가지였다.
"적붕천황이...... 죽었다! 천하의 패륜아가......!"
"철해붕 공자를...... 왕으로 모시자! 초원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인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며 철해붕과 철태사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바...... 바득! 이 복수는 반드시 한다! 지옥혈황, 철접!"
"대몽고의 혼(魂)이신 천황(天皇)을 시해한 원한은 결코 잊지
않겠다!"
화드득!
쐐!
상당수의 무리들이 이를 갈며 속속 적붕성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적붕오패를 위시한 호전적 소장파들이었다.
적붕천황 철극륜을 도와 패권을 주도하던 흉포한 무리들.
그들은 대세의 불리함을 알고 적붕성에서 물러가는 것이었다. 후일,
그들은 장성과 음산(陰山) 일대에서 새로운 오이랍왕부를 세워 풍파를
일으킨 무리가 된다.
하나, 결국 그들도 영락제의 삼차에 걸친 북벌에 패퇴하여 아득한
북방으로 쫓겨가고 만다.
적붕성---- 적붕천황의 죽음으로 적붕성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발전적인 도약의 전환점을......!
* * *
대혼란 중에 서 있는 막붕비, 그의 귓전으로 문득 멀리서
천리전성(千里傳聲)으로 보내는 서시독후 철접의 음성이 들려왔다.
"신첩은 먼저 금릉으로 돌아가 아버님을 뵙겠어요!"
"누님......!"
막붕비는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철접이 사라진 남쪽을
주시했다.
"아우님은...... 적붕성을 정리한 후에 돌아오세요. 특히...... 그
아이 달단여왕을 잘 보살펴 주도록 하세요!"
철접의 전음은 야릇한 여운을 끌며 사라졌다.
그때, 문득 지극히 보드라운 손이 막붕비의 팔을 꼭 쥐었다.
(여왕......!)
막붕비는 미소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달단여왕 궁비연----
그녀가 수줍게 미소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음양흡열마갱에서 생사를 함께했고 그 때문에 몸까지 섞은 두 사람,
그들은 어느 덧 서로의 심령까지 교감할 정도로 친밀해져 있었다.
문득, 궁비연은 살짝 머리를 숙이며 수줍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를...... 위해서 며칠 더 머물러 주실 수 있으시겠지요?"
궁장 위로 살짝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가 눈이 부시도록 희고
깨끗했다.
막붕비는 궁비연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저라고 하셔서는 안됩니다! 짐이라고 하셔야 합니다. 폐하는
여왕(女王)이시니까요!"
이어,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검과 마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중 마검 지옥혈을 궁비연의 손에 쥐어 주었다.
문득,
"십마성(十魔聖)!"
막붕비는 허공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순간,
"부르셨습니까, 검주(劍主)?"
"신강지옥성의 천년가신...... 십마성! 대령했습니다!"
스스슷!
대답과 함께 여기저기서 열 개의 그림자가 솟아올라 막붕비의 앞에
부복했다.
-지옥십마성(地獄十魔聖)!
바로 그들이었다. 남녀노소가 섞인 십 인(十人)의 초고수들.
신강지옥성이 사대천왕에게 멸망당한 후 천 년이 지났건만 묵묵히
신강지옥성의 영토를 지켜온 충신들.
사실상 신강지옥성은 멸망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오랫 동안 그 주인을 기다리며 변황을 떠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들은 지옥저주마경의 사본을 얻은 적붕천황을 자신들의
주인인 줄 알고 그에게 충성을 바쳤다.
하지만, 그들이 적붕천황이 신강지옥성의 주인될 재목이 못됨을 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적붕천황 철극륜----
그는 패기는 있으나 종사(宗師)로서의 포용력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분부...... 계십니까, 성주(城主)?"
지옥십마성의 첫째인 신강혈성(新疆血聖),
그가 핏빛 모발의 머리를 숙이며 정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막붕비는 그 말에 나직한 기소를 발했다.
"후훗! 나를 성주라 하지 마시오! 그대들이 이제부터 성주로 모실
분은 바로 이 분이시오!"
그는 옆으로 물러서며 달단여왕 궁비연을 가리켰다.
그러자,
"상공......!"
갑작스런 막붕비의 태도에 궁비연은 당황하여 울상을 지었다.
하나 이때,
"십마성! 주모님을 뵙습니다!"
"하명을 하시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습니다!"
지옥십마성은 막붕비의 명을 받들어 일제히 궁비연에게 예를 취했다.
"......!"
막붕비, 그는 당황하는 궁비연에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궁비연은 그제서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옥십마성을 향해
말했다.
"일어들 나요! 그대들은 지금 즉시 철극륜의 십대분성으로 가서
그곳을 접수한 후 짐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도록 해요!"
그녀는 침착하고 의연한 태도로 지시했다.
어느 덧, 그녀는 일국의 여왕으로 되돌아온 상태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하나, 그 음성에는 더할 수 없는 기품과 사람을 절로 복종케 하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지옥십마성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분부 거행하겠습니다!"
"심려 놓으십시오! 누가 있어 위대한 신강의 여제왕님께
저항하겠습니까?"
스슷!
그들은 일제히 대답한 후 각기 열방향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
"......!"
막붕비와 궁비연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대형!"
"여왕폐하!"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던 철해붕과 혈부용사가 겨우 중인들 속을
빠져나와 두 사람 쪽으로 달려왔다.
막붕비와 궁비연, 그들은 활짝 웃으며 반갑게 두 사람을 맞아갔다.
광장의 서쪽 끝----
"......!"
"......!"
십 일 인이 군중들 속에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인파에 휩싸여 있는 막붕비와 궁비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십 인의 우람한 체격을 지닌 장한들, 그리고 한 필의 검은 준마 위에
앉은 한 명의 여전사(女戰士)가 바로 그들이었다.
여인이 타고 있는 말은 흑사금강총이라는 전설적 명마(名馬)였다.
-대막여왕 철낭자!
-대막십전(大漠十箭)!
바로 그들이었다.
지금, 철낭자는 아주 복잡한 시선으로 군중들 틈의 막붕비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막붕비에 복수하러 적붕성에 왔다가 그에 의해 적붕성의
주인이 뒤바뀌는 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하나, 막상 막붕비를 보자 복수심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미묘한
울렁거림이 그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좋아...... 지옥혈황!"
문득, 철낭자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 흥을 깨지는 않겠다! 하지만...... 네
목숨은 내 것이야! 나 대막여왕 철낭자의......!"
이어,
슥!
그녀는 흑사금강총의 고삐를 쥐며 돌아섰다.
"가자! 십전(十箭)!"
말을 마침과 함께,
두두두......!
흑사금강총은 철낭자를 태우고 질풍 같은 기세로 적붕성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뒤로,
두두두두!
대막십전이 서로 얼굴을 마주본 후 급히 뒤따라 달려나갔다.
대초원......!
그곳에 서서히 평온한 휴식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 * *
-연경(燕京).
만리장성의 요새 팔달령(八達嶺)으로부터 불과 이백여 리 떨어진
북방의 고도(古都), 역대 강북에서 일어난 왕조의 도읍이다.
대원제국도 연경을 도읍으로 하여 천하를 다스렸으며 그 당시에는
대도라 불렀다.
후일, 영락제의 북방정책으로 북경(北京)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이곳 연경이었다.
늦가을의 연경.
휘---- 이잉----!
스산한 가을바람이 밤의 북경 일대를 휩쓸고 있었다.
삼경 무렵, 연경 북서쪽의 어느 강변----
한 채의 사당이 어둠 속에 음침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토지신을 모신 낡은 사당이었다.
문득,
스윽......!
어둠을 가르며 하나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사당 앞으로 내려섰다.
그는 내려서자마자 영활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염 하나없이 창백한 안색의 노인,
-유령음황(幽靈陰皇)!
바로 그 자가 아닌가?
만겁마가의 사대가신 중 한 명.
일전, 북망산에서 풍뢰쌍염을 이용하여 양심초극마공을 연마하던 중
막붕비에게 저격당해 낭패를 본 장본인이었다.
이때,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유령음황, 그는
기민하게 토지묘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갱주(坑主)! 본좌보다 늦으셨소!"
낮으나 한 줄기 음혼한 음성이 유령음황의 귓전을 울렸다.
"......!"
유령음황은 흠칫하며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토지묘, 중앙에는 하나의 신단이 있었다.
그 뒤로, 토지신인 토지공공(土地空空)이 어둠 속에 버티고 서
있었다.
신단 앞,
"......!"
하나의 산(山) 같은 그림자가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다만,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푸르스름한 뇌전이
흘러 그 그림자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인물의 무릎 위, 길이 열 한 자의 장극(長戟)이 올려져 있었다.
이윽고,
"전...... 마(戰魔) 혼해룡! 동작이 빠르군!"
그 인물이 누군지 확인한 유령음황은 음침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마 혼해룡!
그 인물은 바로 만겁마가의 가신들 중 가장 강하다는 전마
혼해룡이었다.
한데, 만겁마가의 두 가신, 그들이 무슨 이유로 이 한적하고 황폐한
토지묘에서 만나고 있는 것일까?
슥!
유령음황은 이윽고 혼해룡과 마주보고 다른쪽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문득,
츠---- 읏!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격돌하며 새파란 불똥을
튀었다.
일전, 천강노조의 두 손녀를 이용하려던 일로 인해 유령음황과
혼해룡의 사이는 서로 불편한 상태였다.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유령음황쪽이었다.
그 자신 혼해룡에게 빚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령음황은 혼해룡의 시선을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한데...... 팔마왕은 아직 안 온 거요? 이미 삼경이
지났는데......!"
그의 중얼거림이 끝났을 때였다.
"흐흣! 본좌가 그대 같은 줄 아는가?"
돌연, 두 사람의 측면에서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
"......!"
유령음황과 혼해룡은 흠칫 놀랐다.
이어, 그들은 안색이 홱 변하며 벌떡 일어섰다.
언제 나타났을까?
어둠 속, 한 명의 인물이 유령같이 나타나 앉아 있었다.
홀쭉한 얼굴에 푸르스름한 안색을 한 인물.
눈이 가늘고 날카롭게 찢어진 것으로 보아 그의 성격은 음독하고
잔인해 보였다.
이때,
"혼해룡! 도마왕(刀魔王)을 뵙소이다!"
혼해룡은 어둠 속의 인물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했다.
그것으로 보아 그 인물은 만겁마가의 요인인 듯했다.
"흐흐...... 고명하신 팔대마왕 중의 한 분을 뵙게 되어 영
광이오!"
유령음황은 음산하게 말하며 형식적으로 포권했다.
-도마왕!
그렇게 불린 인물은 힐끗 유령음황을 바라본 후 음침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들을 지휘하던 혈관음 소가주는 가주께 죄를 지어 지금 모처에
갇혀 있소. 그래서 본좌가 오늘부터 그대들을 지휘하게 되었소, 그렇게
아시오!"
"......!"
혼해룡은 묵묵하게 입을 닫은 채 아무런 표정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나, 유령음황은 배알이 꼬인 듯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귀하에게...... 마가사가신을 통솔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구료!"
순간,
번---- 쩍!
도마왕의 가는 눈이 새파랗게 광망을 토했다.
"유령...... 음황! 오래 살고 싶다면...... 입을 조심해야 한다!"
그는 칼로 자르듯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어라고?"
유령음황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했다. 그 순간,
츳!
찌리링!
돌연 도마왕의 손이 허리에 닿는가 싶더니 한 가닥 도광 (刀光)이
벼락치듯 작렬했다.
토지묘 전체는 새파란 도광으로 찰나지간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직후,
투두둑......!
"억!"
놀랍게도 유령음황의 전신 의복이 갈가리 찢겨 걸레쪽같이 변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유령음황이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이 도마왕은 유령음황의 몸에는
상처하나 안 내고 그의 옷자락만 찢어 버린 것이었다.
유령음황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무...... 서운 쾌도(快刀)!)
그는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한데, 기이한 것은 도마왕의 몸 어디에도 칼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도마왕은 새파란 광망이 번뜩이는 눈으로 냉혹하게 유령음황을
노려보았다.
"흥! 잡기나 익힌 너희 사가신과 만겁마류의 정통마공을 연마한 우리
팔대마왕(八大魔王)이 똑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싸늘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마가의 가신으로라도 계속 남고 싶으면...... 입은 조심하는 것이
좋다!"
(끙......!)
유령음황은 무어라 대꾸할 말조차 잊고 입술을 실룩였다.
하나, 그는 도마왕의 무서운 쾌도(快刀)를 본 후 감히 반발하지
못했다.
도마왕은 음산한 눈으로 유령음황과 혼해룡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너희들에게 마종의 두 가지 명령을 전하겠다! 첫째는 예의
악마혈종의 종적을 찾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곳 연경 주위에 있는 한 곳의 장원을 탐색하라는 것이다!"
"......!"
"......!"
유령음황과 혼해룡은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도마왕의 음산한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그 장원의 이름은 은황금마장! 미확의 정보에 의하면 그 장원은
태양도(太陽島)의 중원전초기지로 개축 중인 곳이라고 한다!"
순간,
"태양도!"
"태...... 양성황의 후예들이 중원에 들어 왔단 말이오?"
유령음황과 혼해룡은 안색이 홱 변하며 부르짖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양도라는 이름은 만겁마가 이상으로 무서운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성황(太陽聖皇)!
그들은 바로 저 사대천왕 중 태양성황의 후예들이었다.
무공의 다양함과 초식에 있어서는 사대천왕의 그 누구도 적수가
못되었다는 희세의 대천재.
태양도는 바로 태양성황이 세운 문파였다.
그들은 동해(東海) 어딘가에 정변 등 천하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무공을 발전시켜온 태양일맥!
그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 발달했는지 아무도 추측하지 못했다.
어쩌면, 태양도(太陽島)의 잠력은 만겁마가보다 강해졌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제삼의 세력!
그 태양도가 이제 바야흐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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