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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외설 구운몽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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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667 회 작성일 24-02-19 05:0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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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굿데이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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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4장 - 용궁으로 가는 길

다음날 아침, 연화봉은 발칵 뒤집혔다. 절간 곳곳에서 스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댔다. 어제 온 초라한 늙은이가 바로 용왕이었다는 것이다. 법당에 말없이 앉아 육관대사의 경문을 듣기에 대부분의 스님들은 주제넘은 노인네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법회 도중에 육관대사가 빙긋 웃더니 법단에서 내려와 그 노인께 합장하며 치사를 하더라는 것이다.  
또 다른 화젯거리도 있었다. 간밤에 젊은 스님 여럿이 괴질에 걸렸다는 것이다. 몸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죄다 피가 새어나오는 해괴한 증세라고 했다.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전염되지는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는 스님도 있었다. 하지만 늘 농땡이나 치던 소전 패거리한테서만 병증이 나타나는 걸로 봐서 틀림없이 사하촌에 내려갔다가 무슨 탈이 난 것이라는 짐작이 대부분이었다. 너무 독한 곡차를 마셔 생긴 중독증이라고 단언하는 스님도 있었다.  
절간이 술렁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 공양에 참석한 육관대사의 낯빛은 평소와 똑같았다. 바리때를 먼저 비운 육관대사는 제자들이 모두 수저를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정호 용왕님께서 다녀가신 것은 모두 알고 있느냐? 애초에는 사나흘 묵을 예정이셨으나 함께 온 따님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다."
"따님이 독사에 물린 것은 다 알 터이지. 애초에 정성껏 모시고 올라왔어야 하는데 너희들이 결례를 한 셈이야."  
성진은 가슴이 뜨끔했다. 하지만 간밤의 일로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는 뜻이어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아준 용왕께 사례도 하고 따님의 문병도 할 겸해서 누가 좀 동정호 용궁에 다녀와야겠구나. 내가 직접 가야 예의겠으나 늙고 병든 몸이라 그리 할 수도 없고…."  
대사의 말끝이 좀 흐려졌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매일같이 정정한 기력으로 제자들을 다그치는 대사가 아닌가. 그 높은 도력으로 휙 다녀올 수도 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 누가 다녀올꼬?"  
모두 난데없는 일이라 서로 쳐다보기만 하는데, 성진이 불쑥 앞으로 나섰다.  
"스승님. 불초한 제자가 그 일을 맡으면 어떠할는지요?"  
오직 불도에만 전념할 뿐, 다른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성진이 자원하고 나서자 스님들이 모두 놀라 그를 바라봤다. 성진도 스스로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꼭 귀신에 씌어 말한 것만 같았다.
"너는 산문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지 않으냐?"  
육관대사가 되물었다. 이왕 쏟아진 국그릇이다. 성진은 마음을 모질게 다잡았다.  
"이번 기회에 세상 견문도 좀 넓히고 싶사옵니다."  
"허허, 그래? 그럼, 두가지 조건이 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성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사를 바라봤다.  
"가발을 쓰고 속인의 복장으로 다녀오너라. 그리고 절대로 곡차나 여색에 한눈 팔아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어길 시에는 파문 당할 것임을 명심하거라."  
스님들이 모두 술렁거렸다. 술과 여색을 경계하는 것은 승려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독실한 불제자이자, 대사 자신의 수제자인 성진에게 조건이라고 내세우는 게 좀 엉뚱했다. 그보다 가발을 쓰고 속인 행색으로 다녀오라는 것이 좀체 납득이 가지 않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성진은 두 가지 조건에 대해 반문하지 않았다.
대사가 건네주는 가발과 의복을 말없이 받은 성진은 자기 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옷은 단정한 문사의 복장이었다. 난생 처음 입는 속인의 복색과 머리에 쓴 가발이 어색하기만 했다. 여행에 필요한 행장을 대충 싸고 나와 육관대사께 하직 인사를 드렸다. 대사가 뭐라고 더 말을 걸까봐 도망치듯 일주문을 나서는데 혜천 사형이 그를 불렀다.  
"허허, 자네도 그렇게 차리고 보니 참 잘 생겼네 그려. 하지만 그 용왕의 딸을 조심하게."
"그게 무슨…?"  
"스승님은 말씀을 안하셨지만 애초부터 자네가 용궁으로 가게 돼 있었네. 용왕의 따님이 자네를 보내달라고 점찍었다는 게야."  
성진의 가슴이 덜컥했다. 안 그래도 스승이 내세운 조건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한데 그 말을 들으니 더욱 불안감이 가중됐다.  
"게다가 내 영감으로는 용왕의 딸이라는 그 처녀아이의 정체가 겉보기와는 다를 듯하네."
영기에 대한 감응력으로는 육관대사에 버금간다는 혜천 사형이다. 문득 전날 밤 그 처녀아이가 던진 알쏭달쏭한 말이 생각났다. 무언가 스승님이 속셈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격일 뿐, 별일이야 있겠느냐고 애써 자위하며 성진은 산문 밖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저도 모르게 축 처졌다. 치유소 밖으로 기어 나온 소전이 자신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는 줄도 까맣게 몰랐다. 저녁나절이 돼서야 성진은 형산 아래 사하촌인 곽가장에 도착했다.
시장기를 느낀 성진은 우선 눈에 띄는 객점에 들어가 음식을 시켰다. 막상 나온 음식을 보니 온통 기름에 튀긴 고기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채소 절임 하나만 먹는 둥 마는 둥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날이 이미 저물었는지라 주인을 불러 방을 청했다. 주인이 직접 안채로 안내하며 성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손님은 연화봉에서 내려오셨죠? 요 며칠 사이에는 노인네랑 처녀 두 사람 말고는 올라간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네요."  
성진의 복색이 문사의 차림이라서 승려라고 생각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성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속인의 복색으로 내려가라는 육관대사의 말에는 승려의 신분을 감추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주인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어느 방문을 열었다.  
방은 매우 화려하게 치장돼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주단이 깔려 있었고, 침상 주위에도 오색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성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인이 나가자 성진은 침상에 드러누웠다. 연화봉에서는 자정이 다 돼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는데, 초저녁부터 푹신한 침상에 누우니 기분이 이상했다. 용궁으로의 여정이 머니 일찍 잠이나 청해두자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근래에 겪었던 사건들이 떠올라 마음이 산란했다. 잠을 못 이루고 전전반측하는 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여자의 흐느낌 같은 것이었는데, 이내 뭐라고 수군대며 언쟁을 벌이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그중 남자의 목소리는 자기를 안내한 주인의 목소리 같았다. 남의 사생활을 엿듣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삐걱."  
설핏 잠이 들락말락하는 성진의 귀에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진이 놀라 이불을 걷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누, 누구요!"
문간에 웬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스물 다섯이나 됐을까.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한 그녀는 몸매가 은은히 비치는 얇은 비단 속옷만 걸치고 있었다. 문간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그녀를 스칠 때마다 속옷이 흔들리면서 그녀의 젖가슴과 허벅지에 감겼다. 속옷에 닿은 부위의 굴곡과 살색이 촛불빛에 선연히 드러났다.  
"당신이 첫 번째로 뽑힌 건가요?"  
그녀가 꽉 잠긴 목소리로 영문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침상으로 다가왔다. 속옷에 은은히 비치던 그녀의 속살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짙은 향내가 성진의 코를 자극했다. 그녀의 짙은 화장과 향내는 성진이 처음 겪는 것이었다. 화장은 왠지 가면을 쓴 듯하여 기괴해 보이기도 했지만, 향내는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냄새만으로 이렇게 짜릿한 기분이 들 줄은 몰랐다.
"하려면 빨리 하세요. 그렇게 능청을 떨면 스님 대접하며 떠받들 줄 알았나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오? 난 연화봉에 들렀다가 돌아가던 과객일 뿐이오."  
"흥! 과객이라고?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군요. 미안하지만 연화봉에 오르는 손님은 반드시 우리 곽가장을 지나가게 돼 있어요. 댁은 아무도 본 적이 없어요. 잘 아실 텐데요, 스님?"  
성진은 당황스러웠다. 승려라는 것을 꿰뚫어 본 듯이 말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렇게 속옷차림으로 덤비는 그녀의 모습이 두렵기조차 했다. 그것도 냉랭한 적의를 품은 채 말이다.
"내 손으로 옷을 벗겨 주길 바라나 보죠? 하나같이 변태 쓰레기들 같으니!"  
여인이 갑자기 덤벼들더니 성진의 옷을 벗기려 했다. 손길이 어찌나 능숙한지 금세 그의 윗도리가 반이나 벗겨졌다. 성진이 손을 휘저어 그녀를 뿌리쳤다. 그 서슬에 그녀의 잠자리날개 같은 속옷이 북 찢어졌다. 여인의 탐스러운 유방과 허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허리 아래로 엉치뼈와 계곡의 윤곽이 언뜻 보였다. 젖가슴은 통통한데, 허리 언저리는 엉치뼈가 불쑥 솟을 정도로 마른 체형이었다.  
"흥, 아주 본성을 드러내는구먼. 겁탈을 해보고 싶은 모양이죠?"  
여인이 속살은 감출 생각도 않고 허리에 손을 짚고 선 채 말했다. 여인은 온몸에 향유를 바른 듯 살결이 번들번들하게 빛났다. 은은한 사향의 냄새가 성진의 코를 자극했다. 문득 여인의 속옷을 마저 찢어버리고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정을 참느라 성진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이제 대놓고 얼굴이 달아오르는군요. 가면을 벗기로 한 모양이죠? 자, 그럼 맘대로 겁탈을 해보세요. 아니지, 당신 패거리는 반항하는 여자를 찍어누르는 걸 좋아한다죠?"  
여인이 갑자기 성진의 윗도리 자락을 잡더니 마구 흔들어댔다. 이미 반쯤 벗겨졌던 그의 옷이 훌렁 벗겨져 나갔다. 그녀가 냉큼 옷을 집어들더니 그를 두들겨패 듯 옷을 휘둘렀다.  
"안돼! 이 나쁜 놈아. 안 된단 말야!"  
그녀의 과격한 몸짓에 성진이 놀라 몸을 웅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계속 그를 향해 옷자락을 휘두르며 비명 섞인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다가 그녀의 찢겨진 속옷이 슬쩍 땅으로 흘러내렸다. 그녀의 알몸이 촛불 빛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빈약한 허리만큼이나 날렵한 엉덩이였다. 아기를 가지기도 어려워 보일 정도였다.  
웅크렸던 성진이 눈을 휘둥그래 뜨고 여인의 나신을 바라봤다. 유방만 봉긋이 도드라졌을 뿐, 메마른 그녀의 나신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모양이 참으로 기괴했다. 억누르던 욕정이 더욱 솟구쳤다.
성진이 여인의 팔을 붙잡았다. 미친 듯이 팔을 휘두르던 여인의 동작이 딱 멈추었다. 메마른 알몸의 여인과 상의가 벗겨진 채 그녀의 팔을 붙든 유생. 흡사 춘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지?"
여인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성진은 더 이상 그녀의 영문 모를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먼저 원한 일이다. 더 이상 욕정을 다스릴 인내심은 사라졌다. 이왕지사 파계를 한 몸이 아니던가.
"내 잘못이 아니오."  
성진이 여인을 잡아당겨 침상에 거꾸러뜨렸다. 여인은 더 이상 벗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급히 자신의 바지를 벗어 던졌다. 시위를 떠나려는 화살처럼 양물이 튀어 올랐다. 토끼를 덮치는 살쾡이같이 여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뜻밖에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언제 이 여인이 미친 듯이 날뛰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애무고 뭐고 할 겨를도 없이 양물을 부여잡고 여인의 계곡을 향해 찔러 넣으려 했다. 방사라는 건 무턱대고 서두른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옥문을 제대로 못 찾고 허둥대다가 손으로 더듬어서야 간신히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드디어 합궁이 이뤄지려는 순간, 갑자기 여인이 엉덩이를 뒤로 빼며 발악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 나쁜 놈아! 이 쳐죽일 놈들. 엉엉."  
통곡을 해대며 두 주먹으로 맹렬히 성진의 가슴을 쳐댔다. 그 서슬에 놀란 성진이 잠시 양물을 후퇴시키고 여인을 내려다봤다. 단련된 몸이니 그녀의 주먹질이 아픈 것은 아니다. 하지만 느닷없이 객점 손님의 방에 들어와 방사를 하자고 덤벼들더니,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짓거리인가? 실성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한번 타오른 욕정은 쉽게 식지 않았다. 어쩐지 미친 여자인 양 이랬다저랬다 날뛰는 것이 더 기름을 들이붓는 듯했다. 성진은 그녀의 팔을 붙들어 머리 위로 손목을 모아 잡았다. 여인이 이번에는 무릎으로 그의 등을 찍으려고 했다. 성진이 두 다리로 그녀의 무릎을 눌렀다.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여인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미 욕정에 눈이먼 성진에게는 그 눈물의 의미 따위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저 한 마리의 발정 난 짐승에게 그녀는 유린당할 뿐이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짙은 사향의 냄새는 성진을 더욱 흥분시켰다. 그녀의 몸에 발려 있는 향유 때문에 살갗이 매끌매끌하게 부딪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그녀의 몸은 차가웠다. 성진만 뜨겁게 달아올라 격전을 치를 뿐, 맹렬한 정사에도 그녀의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성진은 매끈거리는 그녀의 차가운 몸에 자신의 살을 비비면서 상쾌한 기분마저 느꼈다.
방사의 절정에서 용틀임을 한 성진은 여인의 몸 위에서 내려와 널브러졌다. 그녀는 여전히 눈물만 흘리며 죽은 듯이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한참 후에야 성진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먼저 덤빈 것이라고는 해도 최후의 순간에는 분명히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벌거벗은 두 남녀가 누워 있는 침상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입을 먼저 연 쪽은 여인이었다. 여전히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그게 무슨…?"
"하! 그걸 나에게 묻는 거예요? 정말 낯이 두껍군요. 이제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만 돌아가 주세요. 그 전에 다음은 누구 차례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만 좀 얘기해줘요."  
"아가씨, 난 그냥 지나가는 과객일 뿐이오. 무슨 목적이 있단 말씀이오?"  
쑥스러운 마음에 옷을 집어 입으며 성진이 물었다. 여인이 성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후닥닥 일어나 옷을 챙겼다. 그래 봐야 잠자리날개 같은 속옷뿐이었다.  
"그럼, 소전 스님과 동패가 아니란 말인가요?"  
"물론이오. 난 소전 스님이 누군지도 모르오."  
소전이 거론되자 내심 당황했지만 이왕 유생으로 변복한 터라 뚝 시치미를 뗐다. 혹시 소전이 또 무슨 불한당 같은 흉계를 꾸민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벌꺽 들었다. 하지만 여인의 언동으로 봐서는 그녀 자신이 소전의 희생물인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소전은 또 누구요?"  
여인은 대답없이 망연자실하여 넋나간 표정만 지었다.  
"정말이란 말이죠. 정말 소전의 땡초 패거리가 아니란 말이죠."  
다시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성진은 사연을 더 묻기도 민망했다. 구체적인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소전의 간계에 빠진 그녀를 색정에 미친 여자로 오인하여 범한 것만은 분명했다.
"저…, 내 본의는 아니었…."  
"아무 말도 마세요."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서릿발같은 감정이 묻은 말이었다. 성진이 미안한 마음에 속이 타서 탁자로 가 물병을 집어들었다.  
"우당탕탕!"  
갑자기 문이 부서지며 한 사내가 방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머리가 봉두난발로 엉클어진 사내의 손에는 부엌칼이 들려 있었다. 침상에 속옷바람으로 앉아 있는 여인을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울음인지 비명인지 분간이 안가는 소리를 질러댔다.  
"으으! 기어코! 우어!"
사내가 탁자 곁의 성진을 향해 다짜고짜 달려들며 칼을 휘둘렀다.
무예를 아는 사람의 동작은 아니었다. 사내는 그저 미친 듯이 식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를 뿐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광기어린 몸짓이었다. 원한과 분노의 기운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사람이 돌아버리면 상상도 할 수 없던 괴력을 발휘한다. 선 수련의 일환으로 기공과 무예도 제법 익힌 성진이지만, 광기어린 사내의 기습에는 쩔쩔매며 피할 도리밖에 없었다.  
탁자 위와 창문틀을 밟으며 이리저리 몸을 날리던 성진이 마침내 찰나의 기회를 잡았다. 칼로 탁자를 찍고 주춤하는 사내의 턱을 공중에 뜬 상태로 차버렸다. 사내는 혼절한 채 일어나지를 못했다. 성진이 쓰러진 사내를 찬찬히 보니 양 볼이 쏙 들어가고 깡마른 게 평소에는 힘도 제대로 못 쓸 사람 같았다.  
여인이 달려와 사내의 머리를 부여안고 흐느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제 막 자신이 범한 여인이 아닌가. 그녀의 연인으로 보이는 사내를 쓰러뜨려 놓고 지켜보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그녀가 성진을 올려다보았다.  
"물 좀 갖다 주세요."  
탁자 위의 물병을 갖다주자 입에 머금더니 사내의 입 속으로 흘려보냈다. 흘러 넘친 물에 여인의 속옷이 젖어 가슴과 뱃살에 찰싹 달라붙었다. 살색이 완연히 드러날 정도였다. 그래도 사내는 깨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성진이 다가가 경락을 만져주었다. 여인이 비키지 않는 바람에 성진의 팔꿈치가 여인의 젖가슴에 슬쩍슬쩍 닿았다.  
한참 후에야 사내가 깨어났다. 성진을 보더니 또 칼을 찾는다. 여인이 사내의 어깨를 꼭 안았다.  
"시현, 그만해요. 저 분은 소전 패거리가 아니에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미령이 왜 속옷바람으로 여기 있어?"  
"그건…, 나도 그런 줄 알고 들어왔는데 아니더라고요."  
"거짓말 마! 여기 들어온 지 한참 됐잖아? 미령 얼굴에 그 눈물자국은 뭐야!"  
하긴 여인의 얼굴은 온통 시퍼렇게 얼룩져 있었다. 그녀의 짙은 화장이 눈물에 뭉개진 탓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화장은 그저 짙은 정도가 아니라 붉고 푸른색으로 아주 요란했다. 아무래도 여염집 여인의 화장은 아니었다.
"아니에요. 저 선비님이 사연을 물어서 대답하다 보니 그만 서러워서…, 흑흑."  
여인은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둘러댔다. 대단한 연기력이었다. 성진으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럼, 내가 엉뚱한 분을…."  
사내가 미안해했다. 성진이 손을 저으며 사연이나 마저 들어보자고 말했다. 여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중단된 듯이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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