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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백면투신 1권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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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810 회 작성일 24-02-19 02: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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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의 유언(遺言)


능천휘가 아내의 암습에 치명적인 부상을 주저앉은 직후,
『크하하! 꼴 좋구나 능가놈아!』
『호호! 네 마누라에게 칼침을 맞은 기분이 어떠냐?』
콰콰쾅! 퍼펑!
사방에서 요란한 폭음과 득의에 찬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방의 벽을 박살내
며 삼남일녀(三男一女)가 실내로 날아들었다.
칠색화모와 색혼야차, 그리고 흉신악살같은 인상의 두 명 사내가 그들이었다.
『사…대흉신(四大凶神)!』
삼남일녀를 본 능천휘의 안색이 분노와 절망으로 이지러졌다.

-사대흉신(四大凶神)!

그 자들이야말로 다정관음 뇌온려를 납치하여 뇌정천황 능천휘를 이곳 북망으
로 유인한 장본인들이었다.
『흐흐! 네놈이 감히 쥐꼬리만한 재주를 믿고 설친 댓가다 능천휘!』
『크크! 위대한 마교(魔敎)에 거스르는 자 모두 네놈 꼴이 될 것이다!』
『호호! 유감이로군요. 소첩은 능대협의 몸 아래에서 허리가 부러지게 요분질을
쳐보는 것이 꿈이었거늘…! 이제 독중지독(毒中之毒)에 한 줌 독수로 녹아 버리
실 운명이라니요!』
『크크! 네놈의 마누라는 어르신네께서 마음껏 즐겨줄 테니 마누라 걱정일랑 말
고 뒈져라!』
네 명의 악적들은 각기 한마디씩 내뱉으며 다가섰다.
능천휘가 이미 한 쪽 발을 저 세상에 들여놓은 신세라는 듯한 태도였다.
헌데 바로 그 자들이 득의할 때였다.
『뇌정…십방멸(雷霆十方滅)!』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이던 능천휘가 돌연 하늘이 무너져라 폭갈을 터뜨렸다.
버번쩍!
다음 순간 능천휘의 장검에서 강렬한 섬광(閃光)이 폭발하여 실내를 휩쓸었다.
『헉! 뇌정구식(雷霆九式)!』
『위…위험하다!』
『아…아직도 내공이 살아 있다니…!』
섬광의 폭발속에서 경악에 찬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어찌 된 것인가?)
초천강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장내를 들여다 보았다.
고오오! 콰아아아!
이윽고 장내를 휩쓸었던 섬광의 폭발이 잦아들고 실내의 상황이 드러났다.
장내에는 이미 사대흉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그 자들이 서 있던 곳
에는 흥건한 핏물만이 고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능천휘가 태산같이 우둑 서 있었다. 그는 격렬한 검기의 폭출
을 견디다 못해 두동강이 난 애검(愛劍)을 치켜든 채 두 눈을 나한(羅漢)이나
신장(神將)처럼 부릅뜨고 서 있었다.
(부인의 암습을 받고도 무사하셨단 말인가?)
초천강이 건재한 능천휘의 모습에 의아해 할 때,
『커억!』
콰당탕!
갑자기 능천휘는 한사발이나 됨직한 피분수를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크아아악!』
바닥에 고꾸라진 능천휘는 처절한 비명을 토하며 마구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러자 끔찍하게도 그의 가슴 피부는 마구 찢기고 녹아드는 것이 아닌가? 지독
한 독기가 그의 살갗을 녹여 버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능천휘는 자신의 부인이 휘두른 비수에 묻은 지독한 극독 때문에 이미 시
체나 다름없는 몸이었다.
그런 몸으로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하여 검식을 펼친 것이고 이에 놀란 사대흉
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크흐흑! 이대로…죽어서는 안 된다!』
능천휘는 처절하게 외치며 엉금엉금 아내에게로 기어갔다.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민망한 처림인 아내의 모습에서 그는 이미 그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차
리고 있었다.
(내가 이대로 죽으며 온려는 사대흉신에게 갖은 능욕을 당하다가 끝내는 처참
하게 죽게 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 손으로 저세상에 데려가야만 한
다!)
능천휘는 이를 악물고 장검을 쳐들어 아내를 내리찍으려 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안 됩니다 능대협!』
돌연 어디선가 다급한 소년의 외침이 들려왔다.
능천휘가 흠칫할 때,
두두둑!
갑자기 석실의 천정 한 모퉁이가 그대로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삽시에 천정 한모퉁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고,
화라락!
그틈으로 한 명 헌앙한 용모의 소년이 껑충 뛰어내렸다.
『자…자네는…!』
소년을 발견한 능천휘는 경악과 불신의 신음성을 토해 내었다.
소년은 물론 초천강이었다.
원래 초천강은 능천휘가 쓰러지자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석벽의 틈바귀를 움
켜쥐었었다.
그 순간 초천강은 놀라운 사실을 경험했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청강석(靑鋼石)이 두부처럼 으깨진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용정혈지(龍精血芝)의 효용 덕분이었다. 용정혈지는 그의 전신을
금강석같이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전보다 일천 배 강한 힘을 주었던 것이다.
초천강은 이에 양 손으로 석벽의 틈바귀를 뜯어 버리고 장내로 뛰어든 것이다.
그가 만일 장법을 알기라도 했으며 손바닥 한 번 후려치는 것으로 석실의 천정
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능대협! 힘을 내십시오. 소생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안 되네! 내몸을 만지지 말게!』
초천강이 부축하려하자 능천휘는 급히 만류했다.
『나는… 독중지독(毒中之毒)이라는, 해독약이 없는 극독에 중독되었네! 이제 대
라신선이 와도 나를 구하진 못하네!』
능천휘는 간신히 침상에 기대앉으며 처연하게 말했다.
말하는 사이에도 그의 가슴은 줄줄 녹아내려 허연 늑골(肋骨)이 드러나 보였다.
『대협…!』
초천강은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몇가지…부탁할 것이 있네. 들어주겠나?』
가슴이 통채로 녹아내리고 있음에도 능천휘는 침착한 표정으로 초천강을 바라
보았다.
『예! 소생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초천강은 비분에 찬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첫 번째 부탁은 오늘 이후로 자네가 저것들의 주인이 되어달라는 것
이네!』
능천휘는 힘겹게 한 쪽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능천휘의 반동강난 애검과
두툼한 가죽주머니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가죽주머니는 능천휘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그의 품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내게는… 아들이 없네! 벽운(碧雲)이란 이름의 딸아이가 하나 있기는 하지
만… 여자는 문호(門戶)를 이을 수 없는 것이 본문의 전통이라네. 그래서 자네
에게 우리 뇌정검호각(雷霆劍豪閣)의 후사(後事)를 부탁하는 것이네!』
『최…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마우이! 지금 이 순간부터 자네가 뇌정검호각의 제 십팔대 각주(閣主)이
네!』
능천휘는 비로소 안심했다는 표정이 되어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부탁은 안사람과 딸을 부탁한다는 것이네!』
『당…당연히 돌봐드려야지요!』
초천강은 혈도가 찍혀 쓰러진 다정관음 뇌온려를 흘낏 돌아보며 말했다.
혈도가 찍힌 뇌온려는 방자한 자태로 아무렇게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바
람에 한 겹의 매미날개같은 나삼자락이 벌어져 흐드러진 하체가 고스란히 드러
나 보였다.
뇌온려를 돌아보던 초천강은 본의 아니게 희디흰 그녀의 하체 중심부의 짙은
음영을 보게 되었고, 다음 순간 질겁하며 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런 초천강의 귓전으로 능천휘의 말이 이어졌다.
『단순히 보살펴 달라는 게 아니네. 내 딸아이는 그리 밉상이 아니니… 가능하
면 그 아이를 자네 여자로 만들어주게!』
『예?』
그 말에 초천강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놀라는 초천강을 보며 능천휘는 허허로
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허! 생면부지인 타인보다는 그래도 사위가 문호를 잇기를 바라는 게 내 마
지막 욕심이네만… 결정은 자네가 하게!』
『그…그게…!』
초천강은 일시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렸다.
혼인은 인륜지대사인지라 부모님의 의향도 모른 채 자기 멋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안 되겠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생명이 다 꺼져가는 능천휘에게 너
무나 잔인한 일이고…
초천강이 당혹해 할 때 능천휘는 눈을 감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집사람을 데리고 여길 떠나게나! 사대흉신은 나의 허장성세에 놀
라 달아났으나… 곧 의심을 품고 되돌아올 것이네!』
능천휘의 말소리는 급격히 잦아들었다.
주르르…!
그리고 그 직후 능천휘의 육신은 시커먼 독수(毒水)로 화해 급격히 녹아내렸다.
마치 눈이 봄볕에 녹아내리듯이…!
초천강은 이내 능천휘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편히 잠드시기를…!)
초천강은 해골로 화해가는 능천휘의 유체에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서둘러 능
천휘의 유품(遺品)들을 수습했다.
이어 기절한 뇌온려의 교구를 들쳐업었다. 걸치나 마나한 얇은 나삼만을 걸친
탓에 뇌온려의 탄력있는 육체의 감촉이 고스란히 초천강의 등에 전해졌다. 또한
두 손으로 끌어안은 흐드러진 허벅지의 감촉은 너무도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하지만 뇌정천황 능천휘의 처참한 최후를 목도한 초천강에게 그런 감흥을 느낄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석실을 한차례 둘러본 뒤 서둘러 밖으
로 달려나갔다.

초천강이 사라진 지 얼마후,
『우라질! 속았다!』
『바득! 죽은 공명(孔明)에게 산 중달(仲達)이 속은 격이 아닌가?』
텅빈 석실로 질풍같이 날아들어 분통을 터뜨리는 사인(四人)이 있었다. 그들은
물론 사대흉신(四大凶神)이란 악적들이었다.
『뇌가 계집이 사라졌다!』
『아직 멀리는 못 갔을 것이다! 쫓아가자!』
화라락! 스스스!
실내를 한 바퀴 돌아본 사대흉신은 살기 가득한 노성을 터뜨리며 밖으로 뛰쳐
나갔다.
다시 적막을 찾은 실내에는 섬붉은 핏물 속에 아직 다 녹아내리지 못한 천하제
일검(天下第一劍)의 유골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쏴아아아!
북망산은 여전히 폭우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헉헉!』
쏟아지는 폭우 속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날 듯이 북망산을 뛰어내려가는 소년
이 있었다.
소년의 등에는 인사불성이 된 중년여인이 축 늘어진 채 업혀 있었다.
그들은 물론 초천강과 다정관음 뇌온려였다.
지금 업고 있는 사람이나 업힌 사람이나 비에 흠뻑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특히 얇은 나삼 하나만을 걸친 뇌온려는 나삼이 물에 젖어 투명해지고 살갗에
찰싹 달라붙어 차라리 입지 않은 것만 못한 꼴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초천강은 그같은 일에 쓸 신경이 없었다.
(가능한 멀리 달아나야만 해! 그 자들이 곧 쫓아올지 몰라!)
그는 금방이라도 누가 등뒤에서 목덜미를 낚아채는 듯한 기분이 들어 필사적으
로 산 아래를 향해 치달려 내려갔다.
초천강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한 번 도약할 때마다 이삼 장씩을 건너뛰고 있
었다. 작은 언덕이나 무덤은 한달음에 건너뛰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이미 십여 리 이상을 달렸음에도 전혀 지치지 않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몸무게가 나가는중년 여인을 들쳐업고 있는 상태임에도…!
그리고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나는 초천강이었다.
물론 그것은 공룡총에서 복용한 용정혈지(龍精血芝)의 약효 덕분이었다. 용정혈
지를 복용하여 탈태환골한 초천강은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물론 초천강 자신은 그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헌데 초천강이 북망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였다.
『멈추시오!』
화라락!
갑자기 허공에서 하나의 시커먼 그림자가 벼락같이 떨어져 내려 초천강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으악!』
갑작스런 그 그림자의 출현에 초천강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지레짐작으로 그 인물이 자신을 추적해온 사대흉신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죽었다!)
초천강은 사색이 되어 눈을 질끈 감았다. 만일 상대가 사대흉신 중의 한 명이라
면 백면(白面)의 서생인 자신의 힘으로는 독수를 피할 방도가 없었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미안하오. 졸자는 주인을 급히 찾고 있는 중이라 결례를
하게 되었소!』
초천강을 가로 막은 거대한 그림자의 주인이 웅웅 울리는 음성으로 말하며 다
가왔다.
(이 목소리는…!)
순간 공포에 질려 있던 초천강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상대의 목소리가 아주 귀
에 익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급히 눈을 뜬 초천강 앞으로 한 명 거구의 장한이 다가서고 있었다.
나이는 초천강 또래지만 체격은 그야말로 산(山)만한 거구의 청년이었다. 무려
구척(九尺)에 가까운 그의 몸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압도당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체격과는 달리 청년의 표정은 아주 순후해보였다.
『산패(山覇)! 십 년 감수했잖아!』
상대를 알아본 초천강은 안도하며 반갑게 외쳤다.
『어! 당신은 누군데 나를 알아보…!』
초천강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의아해 하던 거구의 청년은 다음 순간 퉁방울
같은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도련님! 도련님 아니십니까?』
거구의 청년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급히 초천강을 부축해 일으켰다.

-산패(山覇)!

이것이 그 거구청년의 이름이었다. 그는 바로 초천강이 북망산 유람에 대동했다
가 갑작스런 폭우로 헤어졌던 시종(侍從)이었다.
천생신력(天生神力)을 타고난 산패는 초천강의 좋은 친구이고 충직한 충복이었
다.
『이게 어찌 되신 일입니까요? 갑자기 키가 한 뼘 이상이나 자라셔서 몰라뵈었
습니다요!』
초천강을 일으켜 세운 산패는 안도 반 놀라움 반으로 그의아래 위를 연신 훑어
보았다.
초천강은 용정혈지를 복용하여 탈태환골하는 바람에 키가 거의 한 뼘 가까이나
자라 완연히 성인 티가 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시종인 산패조차도 일시에 초천강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자…자세한 얘기는 산을 내려가서 하자구! 지금은 여길 빨리 떠나야만 해!』
초천강은 초조와 불안으로 떨며 달려내려온 북망산의 능선을 돌아보았다.
산패도 곧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듯 더 이상 묻지 않고 다정관음 뇌온
려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날 듯이 뛰어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초천강은 비로소 자신의 시종인 산패도 사대흉신들처럼 무공을 쓸 줄 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산패는 백면서생인 초천강과 달리 이미 오래전부터 상승의 무공을 배워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산패가 무공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보다는 사대흉신의 마
수에서 벗어나는게 급선무였다.
초천강도 날 듯이 뛰어 산패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면서 초천강은 몇 번이고 폭우에 감싸인 북망산의 귀기스런 모습을 돌아보
았다.
북망산은 자신을 어린 소년에서 어엿한 성인으로 만들어준 사연이 깃든 곳이다.
초천강은 결코 이 망자의 귀역 북망산에서 보낸 일야를 잊지 못할 것이다.


어느날 엄청난 충격파가 전 무림을 휩쓸었다.

<뇌정검호각(雷霆劍豪閣)이 멸망(滅亡)했다!>

그같은 소문이 강호를 온통 벌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뇌정검호각!
그들이 누구인가? 명실상부한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이며 동시에 만검(萬劍)의
지존(至尊)으로 알려진 검문의 성지(聖地)가 아니었던가?
지난 오백여 년 간 중원무림을 지탱해온 거대한 기둥이 바로 뇌정검호각인 것
이다.
그 뇌정검호각의 역사는 머나먼 천축국으로부터 건너온 한 명 고승(高僧)으로부
터 시작되었었다.

-신승(神僧) 바사라(婆沙羅)!

저 천축 불문의 성역 대뇌음사(大雷音寺)의 마지막 후예인 바사라! 그의 이름인
바사라는 천축어로 천지간에서 가장 강대한 파괴력인 벼락(雷霆)을 의미한다.
만사만악(萬邪萬惡)을 쳐부수는 제석천(帝釋天)의 파사(破邪)의 무기이기도 한
벼락, 바사라를 법명으로 지닌 천축 고승!
중원인들은 그 신승 바사라를 달리 뇌정대법존(雷霆大法尊)이라 부르며 존경했
다.
사실 그는 그 옛날 보리달마(菩提達摩)가 천축에서 중원으로 갖고 들어온 대뇌
음사의 보물 한 가지를 회수하려고 중원에 들어왔었다.
그러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역만리 중원에서 입적하였는 바, 입적하기 전 한
명 기재를 거두어 자신의 항마절기 일편(一片)을 전수해준다.

-서천검성(西天劍聖) 능무외(凌無畏)!

바로 이 인물이다.
오백 년 내 중원제일검성(中原第一劍聖)으로 불리는 일대검호이며 뇌정검호각의
창시자가 바로 그였다.
서천검성이 세운 뇌정검호각은 그후 오백 년 동안 중원무림의 안정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칠백 년 전 천지팔황(天地八皇)의 실종으로 야기되었던 무림의 대혼란을 바로잡
은 것이 바로 그들 뇌정검호각 능씨(凌氏)일족이었다.
당금의 뇌정검호각 각주는 뇌정천황(雷霆天皇) 능천휘(凌天輝)란 인물이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며 동시에 당금 무림의 십대고
수(十大高手)들인 우내십천(宇內十天)의 첫째이기도 한 일대호협이었다.
능천휘와 그의 아내 다정관음(多情觀音) 뇌온려는 무림인들이 부러워하는 한 쌍
의 원앙이기도 했다.
헌데 그 유서깊은 명가 중의 명가 뇌정검호각이 일주야만에 무참한 초토(焦土)
로 화했으니…!
과연 당금 무림에서 누가 저 태산북두같은 뇌정검호각을 하루밤낮 사이에 주춧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멸망시킬 수 있었단 말인가?
강호무림은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자신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가공할 마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감지한 때문이다.
그들이 무림의 보루인 뇌정검호각을 붕괴시켰다면 다음의 행보(行步)는 불을 보
듯 뻔하지 않겠는가?
머지않아 무림은 수백년래의 다시없을 대겁풍(大劫風)에 휩싸이게 되리라!
자타가 공인한 천하제일인 뇌정천황 능천휘가 사라진 지금 누가 있어 이 전율
스러운 겁난을 해소할 수 있겠는가?
과연…!

-수월암(水月庵)!

낙양 남서쪽에 자리한 용문(龍門)의 절경에 자리한 암자다.
용문은 물길이 거칠고 험하다. 오죽했으면 그곳을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는 용이
된다는 등룡문(登龍門)의 전설이 생겨났겠는가?
그 험한 용문의 물줄기는 도처에 절경을 빚어놓았다. 수월암은 그 절경 중에서
도 가장 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수월암은 이름이 암자일 뿐, 대웅전과 조사당, 그리고 도처에 열 몇 군데 암자
와 서굴을 지닌 방대한 규모였다.
암주는 수월사태(水月師太)라는 불덕 깊은 노니다.
그리고 그녀는 소년 서생 초천강에게는 친척 고모뻘 되는 여인이었다. 이곳 수
월암도 초천강의 부친이 거금을 희사하여 지은 도량인 것이다.

가을!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제법 바람이 싸늘한 추상지절(秋霜之節)이 되었다.
『차앗! 뇌정출운(雷霆出雲)! 뇌정사일(雷霆射日)!』
아직 해가 솟지 않은 이른 새벽, 수월암의 산문 앞에서 검무(劍舞)를 추는 청년
이 한 명 있었다.
벌거벗은 상체가 구리로 빚은 듯 탄탄해 보이는 이 청년은 바로 초천강이었다.
초천강이 뇌정천황 능천휘의 부인인 다정관음 뇌온려와 함께 수월암으로 온 지
도 어언 반 년이 흘렀다.
낙양 주위에 사대흉신의 이목이 깔려 있을 것 같아 감히 멀리는 움직이지 못하
고 북망산에서 멀지 않은 이곳 수월암에 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뇌온려는 북망산에서의 그 사건 이후로 완전히 백치가 되어 살
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색혼야차가 시술한 색혼제령대법(索魂制靈大法)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자
신이 남편을 독살하는 데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충격으로 백치가 되었
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현재 뇌온려는 수월암의 여러 하원(下院) 중 한 곳에 칩거하며 요양하고 있었
다.
초천강은 간간히 뇌온려의 처소에 들려 그녀의 상세를 살피는 외에 뇌정천존
능천휘가 남겨준 뇌정검호각의 비전절기를 연마하는 중이었다.

<뇌정복마진경(雷霆伏魔眞經)>

이것이 뇌정천황 능천휘가 초천강에게 남긴 가죽주머니 속에 들었던 비급이다.
뇌정복마진경은 바로 천축신승 바사라, 즉 뇌정대법존(雷霆大法尊)이 속가의 제
자인 서천검성(西天劍聖) 능무외(凌無畏)에게 남긴 진전이었다.
그안에는 한 가지 내공심법(內功心法)과 구초(九招)의 검결(劍訣)이 수록되어 있
었다.

-뇌정복마심결(雷霆伏魔心訣)!
-복마대구식(伏魔大九式)!

바로 이것들이었다.
뇌정복마심결(雷霆伏魔心訣)은 불가의 무공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고
도 파괴적인 내공심법이다.
이를 운용하면 몸안에서 음양이기(陰陽二氣)가 충돌하여 무엇이든 바스러뜨리는
뇌정강살(雷霆剛煞)을 발생시킨다.
그 뇌정강살을 몸 밖으로 토해내면 격렬한 섬광(閃光)과 뇌전(雷電)이 작렬하며
부딪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만일 이를 검으로 시전하면 어떤 호신강기라도 끊어 버리는 검강, 즉 뇌전검강
(雷電劍剛)이 된다.
뇌정검호각의 검법이 무서운 것은 바로 그 뇌정복마심결 때문이라고 할 수 있
다. 그들의 평범한 일검에도 금석을 흙 베듯 하는 가공할 검강이 서려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지난 오백 년 내 제일검사라는 서천검성(西天劍聖)을 포함해서 뇌정복마
심결을 십성(十成) 수준까지 연성해 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천검성의 팔성(八成) 화후(化厚)가 최고였고, 생시의 뇌정천황 능천휘도 겨우
오성(五成)의 경지였다.
헌데 초천강은 뇌정복마심결을 연마한 지 반 년 만에 이미 삼성(三成)의 화후에
이르러 있었다.
그것은 초천강의 오성(悟性)이 그만큼 뛰어나고, 거기다가 공룡총에서 얻은 용
정혈지(龍精血芝)의 기연으로 전신의 경맥이 막힘없이 뚫렸기 때문이다.
남들이 내공을 익히며 부딪히는 진기가 막히는 등의 어려움을 초천강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복마구식(伏魔九式)>

뇌정복마진경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구초(九招)의 검결(劍訣)이다.
그러나 그 구초의 검결에 검학의 시작과 끝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복마구식은 그만큼 심오하며 또한 위력적이었다.
이는 전육식(前六式)과 후삼식(後三式)의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뇌정출운(雷霆出雲)!
-뇌정사일(雷霆射日)!
-뇌정참마(雷霆斬魔)!
-뇌정자해(雷霆刺海)!
-뇌정파천(雷霆破天)!
-뇌정십방멸(雷霆十方滅)!

치밀하고도 기오막측한 변화를 담고 있는 육식의 검결.
이를 능가할 만한 검법은 고금을 통틀어도 천지팔황(天地八皇)중 검법으로 최강
이었던 자부천존(紫府天尊)의 자전검결(紫電劍訣) 정도 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위력적인 복마전육식도 후삼식(後三式)에 비하면 빛이 바래고 만
다. 전육식이 반딧불이라면 후삼식의 위력은 바로 보름달인 것이다.

-뇌정멸겁파(雷霆滅劫波)!
-천승비폭류(千乘飛瀑流)!
-뇌정만겁파천무(雷霆萬劫破天舞)!

천축 대뇌음사 복마절학의 최절정!
과연 이 후삼식의 위력이 어느 정도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서천검성을 제외하고는 후삼식 중 단 한 초식이라도 익혀낸 사람이 없
다는 점이고,
둘째는 서천검성이 시전한 그 후삼식을 받아내고도 살아난 자가 전무하다는 사
실 때문이다.

『휴우! 역시 어렵구나! 아직 전육식도 자유자재로 펼치지 못하면서 언제 후삼
식의 연마에 들어간단 말인가?』
초천강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검무를 멈추었다.
그는 반 년의 고심으로도 복마구식을 자유자재로 시전하지 못함을 탓하고 있었
다. 만일 다른 무림인이 그의 불만을 들었다면 너무 놀라 까무라쳤을 것이다.
서천검성 이래의 최고기재라는 뇌정천황 능무외조차도 복마검결의 전육식을 달
통하는 데 무려 삼십 년의 세월이 걸렸음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벌써 반 년…! 복마육식(伏魔六式)을 완성하면 사모(師母)님을 모시고 북경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래서는 기약이 없구나!)
초천강은 고개를 설래 저었다.
그는 다정관음 뇌온려를 사모(師母)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정식으로 사제지간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불가피한 상황으로 뇌정검호각
의 대통을 이은 이상 뇌정천황 능천휘는 자신의 사부나 다름없다. 당연히 능천
휘의 아내인 다정관음 뇌온려는 그에게 사모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련의 진도가 느린 것은 모두 사념이 집중력을 방해하는 탓이다!)
초천강의 얼굴에 언뜻 홍조가 스쳤다. 그의 뇌리로 북망산에서 겪었던 야릇한
경험이 스친 때문이다.
칠색화모(七色花母)!
능천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교(魔敎)의 사대흉신 중 한 명인 그녀에게 강제
로 당한 야릇한 경험은 마치 영원히 깨지 않을 몽환처럼 그의 뇌리에 남아 있
었다.
칠색화모의 도발적인 자태를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야릇한 열기가 온몸에 스
멀거리는 초천강이었다.
(망령된 사념을 없이하지 않고서는 뇌정복마심결을 결코 대성할 수 없을 것이
다.!)
초천강은 쓴웃음을 지으며 칠색화모의 영상을 뇌리에서 몰아내려 고개를 설래
흔들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파라라랑!
돌연 초천강의 시야로 한무리의 나비떼가 들어왔다.
(이 계절에 웬 나비떼가…!)
초천강은 움찔 놀라 나비들을 바라보았다.
때는 바야흐로 서리가 내리는 만추(晩秋), 나비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만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파라락! 휘르르르!
나비들은 초천강의 머리 위에서 무엇인가 호소하듯이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것
이 아닌가?
그러다가 그것들은 한 줄로 열을 이루어 좌측의 숲으로 날아들어갔다.
(설마 도움을 청하는 것인가? 한갖 나비 따위가…?)
초천강은 어이없어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가 쫓아오지 않자 숲으로 날아가던 나비들은 다시 되날아와 초천강의 주위로
어지러이 군무(群舞)를 추었다.
『하하! 좋다! 너희들이 왜 이러는지 가보기나 하자! 너희들의 주인이 꽃의 여
왕이라도 되는지 보자!』
초천강은 웃으며 나비들을 따라 몸을 날렸다.
곧 그의 모습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용문하가 한 굽이 크게 휘도는 곳에 하나의 은밀한 동굴이 퇴락한 덩굴에 덮여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깊지 않은 그 동굴에서 지금 기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흐흐! 본좌가 풍류를 좋아하여 숱한 계집을 맛보았으나 지금껏 너 만한 우물
(尤物)은 보지 못했다.』
사내, 깡마른 체구에 눈두덩이가 시퍼런 것이 아주 음침한 인상을 지닌 사내가
한 명 여인을 바닥에 누인 채 희롱하고 있었다.
그 자에게 희롱당하고 있는 여인!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인데 풍만한 몸에는 눈같이 흰 옷을 걸치고 있고 아무
장식도 없는 머리카락은 여인의 키보다도 더 길었다.
화용월태(花容月態)라고나 할까? 여인의 용모는 사내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
다.
하지만 여인에게서 가장 중요한 매력은… 향기(香氣)였다. 기이하게도 여인의
몸에서는 그윽한 꽃내음이 나는 것이다. 단지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
라 실제로 느껴지는 꽃내음…! 달콤하고 향긋한 그 꽃내음은 세상 모든 숫컷들
을 미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여인은 그대로 살아 있는 한떨기 인간꽃인 것이다. 그것은 여인이 한 가지 상고
기공(上古奇功)을 연마한 결과였다.
『흐흐! 좋도다! 절대독천존(絶代毒天尊)이 자기 마누라 호접독모(胡蝶毒母)에게
가르쳐 주었던 화정독강(花精毒剛)을 직접 견식하는 영광을 본좌가 누리게 될
줄은 몰랐도다!』
눈두덩이가 푸른 사내는 킁킁대며 여인의 몸에서 향기를 맡았다.
『…!』
여인은 치욕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미동도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지금 혈도가 찍혀 전혀 내공을 운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인은 당금 강호에서 가장 강한 십인(十人)의 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같은 치욕을 격고 있는 것은 그녀가 운기조식중에 암습을 당한
때문이다.
물론 운기조식 중에 그녀는 동굴 주위에 몇가지 독진(毒陣)등의 안배를 해 놓았
었다. 헌데 이 눈두덩이가 푸른 사내는 그녀의 안배를 손쉽게 깨트려 버리고 침
입한 것이다.
『본좌가 원하는 것은 네년이 얻은 독모심결(毒母心訣)이다!』
사내는 여인의 불룩한 젖가슴을 슬슬 쓰다듬으며 히죽거렸다.
그 자의 말에 여인의 몸에 경련이 일었다.

-독모심결(毒母心訣)!

그것은 무림에 전설로 내려오는 한 가지 해독비결(解毒秘訣)이었다.
이 기이한 무공의 창시자는 절대독천존(絶代毒天尊)이란 인물이었다.
절대독천존이란 이 엄청난 이름을 지닌 인물은 바로 저 고금최강의 고수들이라
는 천지팔황(天地八皇)중 한 명이었다.

-자부천존(紫府天尊)!
-만겁마종(萬劫魔宗)!
-십절전모(十絶戰母)!
-철사대제(鐵獅大帝)!
-역천사황(逆天邪皇)!
-옥면화왕(玉面花王)!
-요색관음(妖色觀音)!

이들 칠 인이 바로 절대독천존과 함께 천지팔황으로 불리는 일세고수들이다.
천지팔황은 비단 일신에 지닌 가공할 무공뿐만 아니라 각기 도(道), 마(魔), 투
(鬪), 불(佛), 사(邪), 독(毒), 색(色), 요(妖) 등, 이른바 천지팔로무맥(天地八路武
脈)으로 불리는 여덟 무류(武流)의 지존(至尊)들이기도 했다.
수천 년의 강호무림사가 배출해 낸 최고의 천재들이라는 천지팔황!
그들같은 기재들이 한 시대에 나타났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등장보다도 더욱 극적이고 신비하게 세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또
유명하다.
칠백 년 전의 어느날, 천지팔황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날 한 시에 이 세
상에서 모습을 감춰 버린 것이다.
과연 그들 팔 인의 절대고수들이 어떤 이유로 동시에 실종되어 버렸는지는 칠
백 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는 무림사 최대의 의안이기도 하다.

절대독천존-!
독문(毒門) 사상 최강자인 이 독의 제왕에게는 한 명의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
다.
그녀에게는 늘 나비가 모여들어 무림인들은 그녀를 호접독모(胡蝶毒母)라고 불
렀다.
절대독천존은 한눈에 그녀에게 반해 아내로 삼았다.
하지만 그들이 부부생활을 하는 데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절대독천존은 전신이 독으로 뭉쳐진 독인(毒人)! 숨결만으로도 능히 백 장 밖의
철벽을 부식시킬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내를 사랑해 주는 것은 고사하고 백 장 안에 두 눈 것조차 불가능했
다.
이에 절대독천존은 아내에게 한 가지 해독신공(解毒神功)을 전수하여 그 난관을
해소했다.

-흡독조화심법(吸毒造化心法)!

달리 독모심결로 불리는 지고한 해독신공이 그것이었다.
흡독조화심법만 연성하면 세상의 어떤 극독이라도 해독시킬 수가 있다.
하지만 칠백 년 전의 어느날 절대독천존이 천지팔황의 다른 칠 인과 함께 신비
롭게 실종되면서 그의 아내였던 호접독모도 세상에서 사라졌으며, 자연히 독모
심결도 잊혀졌다.
헌데 칠백 년이 지난 지금 그 독모심결이 이 궁벽한 동굴 안에서 거론되고 있
는 것이다.

『지존(至尊)께서는 독모심결을 얻지 못하면 네년을 죽여없애 후한을 없이하라
고 하셨다. 하지만 본좌는 그리 모진 사람이 아니다. 특히 계집에게는…!』
이죽거리는 사내의 손길은 쉴새없이 여체를 주물렀다.
『순순히 독모심결을 실토한다면 살려줄 뿐만이 아니라 지극한 쾌락을 맛보여
주마!』
그 자가 어르고 회유하려 했으나 여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사내의 눈길도 점점 음험해져갔다.
『흐흐! 좋다! 끝내 화를 자초하겠다는 것이냐?』
찌익!
사내의 거친 손길에 여인의 저고리가 그대로 뜯겨나갔다. 그러자 새하얀 저고리
가 찢기며 그보다도 더 흰 속살이 드러났다.
눈같이 흰 피부, 무르익은 수밀도(水蜜桃)같은 탐스런 젖가슴…! 그 위에 그윽한
향기마저 풍기니 금상첨화였다.
『흐흐! 사실 독모심결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풀어놓은 독을 네년이
독모심결로 해독시켜 버릴까 꺼려질 뿐이지!』
사내는 이번에는 여인의 치맛자락에 손을 가져갔다.
『흐흐! 네년만 사라지면 독모심결도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럼 만사형통
인 것이다!』
찌지직!
사내가 괴악하게 웃으며 손을 움직이자 치맛자락도 함께 찢겨나갔다.
『흐흐흐, 저세상에 보내기 전에 이세상에서 가장 향기롭다는 네년의 속살을 마
음껏 즐겨주마!』
사내는 헐떡이며 여인의 몸에 남은 마지막 천조각을 제거했다.
눈부신 한 쌍의 옥주(玉柱)! 그 사이에 자리한 도독한 둔덕에는 가뭇가뭇한 방
초들이 소담스럽게 덮혀 있었다.
사내는 욕정으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여체의 중심부를 노려보며 여인의 예쁜 무
릎을 쥐어 좌우로 벌렸다.
백옥기둥같은 한 쌍 허벅지가 팔자로 벌어지며 조물주가 창조한 여체의 가장
오묘한 부분이 모습을 들어냈다.
사내는 여인의 두 다리를 한껏 벌려 세워 부끄러운 자세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발정난 숫컷처럼 헐떡이며 얼굴을 그 사이로 가져갔다.
『…!』
여인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남에게 보이지 않은 비역에 사내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전율했다.
처녀의 신비지가 드디어 음적의 야욕에 유린당하려는 순간이었다.
위기의 순간,
쉬쉭!
돌연 사내의 등판을 향해 벼락같이 들이닥치는 칼바람이 있었다.
(헉!)
여체의 향기에 취해 있던 사내는 질겁하여 몸을 옆으로 뒹굴렸다.
『죽어랏! 색혼야차(色魂夜叉)!』
쩌저정!
몸을 뒹굴려 간발의 차이로 피한 사내의 시야로 득달같이 덮쳐오는 소년의 모
습이 보였다.
『천…천뢰신검(天雷神劍)! 네놈이 어떻게 뇌정천존 능천휘의 보검을…!』
소년이 휘두르는 보검을 본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여인을 겁탈하려던 음적(淫敵)! 그 자는 바로 뇌정천황 능천휘를 암살한 사인의
악적 중 한 명인 색혼야차(色魂夜叉)였다.
그리고 그를 급습하여 여인을 구한 소년은 물론 초천강이었다.
『뇌정출운! 뇌정사일!』
초천강은 질풍같이 복마구식의 검결을 시전하여 색혼야차를 휩쓸어갔다.
『크흑! 복마구식까지…!』
퍼퍽! 후두둑!
졸지에 당한 기습에 색혼야차는 미처 피하질 못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
다.
『무사하십니까 부인?』
초천강은 색혼야차를 쓰러뜨린 뒤 급히 여인을 돌아보았다.
다음 순간 초천강은 얼굴이 벌개지고 말았다. 발가벗겨진 채 두 다리를 활짝 벌
리고 있는 여인의 부끄러운 자태 때문이었다.
지척의 거리인지라 초천강은 여인의 신비한 비역을 그대로 직시하고 말았다. 초
천강으로서는 그것이 두 번째 보는 여인의 신비였다.
하지만 여인의 그곳은 초천강이 전에 본 칠색화모와는 너무도 달랐다.
한 번도 사내를 경험해보지 못한 처녀의 비역인 그곳은 형태와 색조에서 숱한
경험을 한 칠색화모와는 전적으로 틀렸던 것이다.
수줍고 앳되 보이기까지 한 그곳, 초천강은 자신도 모르게 경이에 찬 눈길로 바
라보았다.
『…!』
초천강의 그 집요한 눈길에 여인의 봉목이 수치와 분노로 이지러졌다.
헌데 다음 순간,
『조심해라!』
여인의 입에서 다급한 경호성이 터졌다.
그와함께 초천강도 등뒤로 들이닥치는 칼날같은 음풍(陰風)을 느낄 수가 있었
다.
퍼펑!
『바득! 뒈져라 애송이놈!』
이를 가는 독갈과 함께 태산같은 장경이 초천강의 등판에 작렬했다. 색혼야차가
한숨을 돌려 초천강을 급습해온 것이다.
『큭!』
쿵쿵!
초천강은 등판이 박살나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비틀 물러섰다.
『캇캇! 감히 본좌의 즐거움을… 헉!』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던 색혼야차는 불신과 회의의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회심의 일장을 맞은 초천강이 죽기는커녕 몇 발자국 휘
청이다가 몸을 세운 때문이다.
그 자는 알 리가 없었다. 초천강의 전신이 용정혈지 덕분에 무쇠같이 단단해졌
다는 사실을…!
『오냐! 네놈이 금강지체라도 되는지 보자!』
색혼야차는 이를 갈며 초천강에게 재차 덮쳐들려 했다.
헌데 바로 그 순간,
번쩍!
『케에엑!』
한줄기 연분홍빛 섬광이 허공을 가르며 색혼야차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
다. 휘청이며 바닥에 내려서는 그 자의 어깨에 나비장식이 달린 비녀 하나가 깊
숙이 박혀 있었다.
놀란 눈으로 돌아보는 초천강의 시야로 발가벗겨져 누워 있던 여인이 암기를
던져낸 자세로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벌…벌써 혈도(穴道)를 풀다니…!』
피핑!
색혼야차는 여인이 일어나 앉는 것을 보자 전갈에게라도 물린 듯이 펄쩍 뛰어
올랐다가 동굴 밖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서랏 악적!』
초천강은 이를 갈며 그뒤를 쫓으려 했다.
바로 그 때,
『그만두고 이리 와서 나를 좀 도와다오!』
여인의 부르는 소리에 초천강은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여인은 두 팔로 상체를 버팅긴 자세에서 더 이상은 못 일어나고 있었다. 어찌어
찌하여 상체의 혈도는 풀었으나 하체는 아직도 마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자가… 눈치채고 돌아오기 전에 어서 나의 혈도를 풀어다오!』
눈 둘 바를 몰라하는 초천강에게 여인이 다급히 재촉했다.
『어…어느 혈도를 찍히셨습니까?』
초천강은 고개를 돌린 채 더듬더듬 물었다. 그러자,
『회… 회음혈(會陰穴)을 찍혔다!』
여인이 얼굴을 도화빛으로 물들이며 말했고 동시에 초천강의 얼굴도 시뻘개졌
다. 회음혈이란 여인의 은밀한 비역 바로 아래에 자리한 요혈이었기 때문이다.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니다! 어서 그곳을 눌러다오!』
당황하는 초천강에게 여인이 다급히 재촉했다.
『그…그럼 실례를…!』
초천강은 더듬거리며 어림짐작으로 손을 뻗었다.
다음 순간,
『…!』
『…!』
두 사람은 동시에 펄쩍 뛸 듯이 놀랐다. 초천강의 손이 아주 보드랍고 야들야들
한 살점들 사이로 쓱 들어가 버린 때문이다.
물기에 젖은 따뜻한 살점의 감촉에 초천강은 화들짝 놀라 손가락을 빼냈다.
『짖…짖궂은 아이…!』
여인은 부끄러움이 실린 규성을 흘리며 움츠리려는 초천강의 손목을 잡았다. 여
인의 손은 너무도 부드러워 마치 뼈가 없는 듯이 느껴졌다.
『내…내가 인도할 테니 너는 내공력만 불어넣어다오!』
여인은 초천강의 손가락을 정확히 회음혈에 갖다대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야릇한 감촉을 느끼며 초천강은 살풋 내공을 발휘했다.
다음 순간,
『되었다!』
여인은 한차례 바르르 몸을 떤 뒤에 매몰차게 초천강의 손을 자신의 몸에서 떼
어 내었다.
『나가 있어라. 옷을 입어야 하니…!』
『…!』
싸늘한 여인의 말에 초천강은 급히 동굴 밖으로 뛰쳐 나왔다. 손끝에 느껴졌던
그 야릇한 느낌이 불에 덴 듯이 느껴졌다.

잠시후, 여인은 찢긴 의복을 간신히 여미고 동굴을 걸어나왔다.
휘르르르!
여인이 밖으로 나오자 주위를 맴돌던 나비들의 떼가 반가이 너울거리며 여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여인의 몸에서 나는 그윽한 꽃향기들이 나비들을 불러모으
는 듯했다.
『…!』
초천강은 차마 여인의 얼굴을 마주 볼 엄두가 안나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런 초천강의 순진한 모습에 여인의 옥용에 미소가 떠올랐다.
(귀여운 아이다!)
그녀는 내심 얄궂은 운명을 느꼈다.
남녀간의 법도가 지엄한 세상이 아닌가? 은밀한 비역이 아니라 그저 감추어졌
던 속살만 보여도 그 상대에게 시집을 가야 하던 시대다.
하물며 이 어린 소년에게 은밀한 곳을 만지게까지 하였으니…! 도리대로라면 그
녀는 이 소년에게 출가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너무 났다. 만일 그녀가 일찍 출가했다면 초천강
만한 아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도련님의 이름은…?』
『초…초천강이라고 합니다!』
여인의 물음에 초천강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천개의 강이라…! 특이한 이름이로구나. 이 누나의 이름은 사희영(師姬瓔)이라
고 한다. 남들은 내게 서시독후(西施毒后)라는 과분한 이름을 붙여주었지.』
여인, 서시독후 사희영은 말하며 머리에 꽂았던 나비장식의 옥비녀를 하나 뽑아
초천강에게 건네주었다.
『오늘의 은혜는 잊지 않으마 귀여운 도련님!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
화라라락!
서시독후 사희영은 초천강에게 호접옥차(胡蝶玉叉)를 가만히 쥐어준 채 몸을 날
렸다. 그녀가 날아오르자 그 때까지 허공에 머물러 있던 나비떼가 구름같이 그
뒤를 따랐다.
한줄기 그윽한 향기만을 남긴 채 서시독후 사희영의 모습은 아득히 허공으로
사라져갔다. 마치 현실의 일이 아니고 환몽(幻夢)이었던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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