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왕-8
페이지 정보
본문
제12장
천불대종사(天佛大宗師)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하후미린은 그 불변의 진리도 영원치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우우웅!
돌연, 하후미린은 머리 속에서 무엇인가 회전하며 울리는 기이한 감응을 느껴야만 했다.
"으윽!"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하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맑은 성령음(聖靈音)이 그의 뇌리 속으로 퍼져가는 것이 아닌가?
--노납은 소림(少林)에 적(籍)을 두었던 천불(天佛)이라 하오.
"천불대종사(天佛大宗師)! 저 분이?"
하후미린은 기절할 듯이 놀라며 좌화해 있는 노승을 바라보았다.
온화하기 이를 데 없는, 그야말로 부처의 현신을 보는 듯한 인물이었다.
천불대종사!
능히, 사경을 헤매는 하늘의 용을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성불!
그것은 대륙에서 가장 성스러운 이름이기도 했다.
대륙불계의 지존!
<천불성련.>
대륙에 산재해 있는 일천불류가 모여 이룩된 대륙불문의 대성역!
그 잠재된 힘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다.
혹자는 말한다.
천불성련!
그 힘은 능히 대륙육합천패 중 하나와 비등하다고.
사실, 대륙엔 하늘이 하나 더 있는 셈이었다.
허나, 천불성련이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진 오직 한 명.
대륙제일성불이라는 천불대종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소림 출신이면서도 그는 천하일천불류(天下一千佛流)를 섭렵했고, 그 사갑자(四甲子)의 고행 속에 그 일천불류는 감화되어 하나로 합일된 것이었다.
소림승적을 버리고 대륙불도계의 대종사가 되었던 신화적인 대성불!
그런 그가 황야에 버려져 죽어가는 한 명 중생을 위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한 것이었으니…
뿐인가?
칠채성령천불기!
정화(正華)의 대정불(大正佛)을 비롯하여,
악불(惡佛), 마불(魔佛), 사불(邪佛), 요불(妖佛) 등…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정(佛精)을 합일하여 만들어 낸 아수라파멸극사대불력도(阿修羅破滅剋邪大佛力道)!
그것마저 남김없이 하후미린의 몸 안에 밀어 넣은 것이었다.
어찌 경외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신(殺身)으로 대정불도를 펼친 대성불에게…!
하후미린의 놀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욱 엄청난 사실이 그를 경악케 하고 있었다.
-노납은 사갑자의 고행으로 얻은 칠채성령천불기의 아수라파멸극사대불력도를 시주의 일신에 심어 놓았소이다.
"칠채성령천불기."
하후미린은 신음하듯 낮게 부르짖었다.
--그 큰 힘은 깊이 침잠하여 있다가, 극사(極邪)와 극마(極魔)에 부딪게 될 때에 일어날 것이외다.
단, 노납이 시주에게 모든 것을 건넴은 무림의 운명을 시주에게 맡기려 함이외다.
하후미린의 심정은 매우 경건하며 무겁게 가라앉았다.
"선사의 고심이 헛되지 않게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는 매우 엄숙하게 맹세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노납의 신물인 천불항마신주(天佛降魔神珠)를 천불성련에 돌려 주시기를 시주께 부탁드리오이다.
이것으로 노납과 시주의 연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라오이다.
천불대종사의 혜광심어(慧光心語)는 여기서 끝을 맺었다.
하후미린은 그 즉시 일어났다.
이어, 그는 천불대종사의 범체에 정중히 구 배를 올렸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예를 다하여…
다음으로, 그는 유체를 모실 생각을 잊지 않았다.
"이곳이 마침 절이니 우선 이곳에 모셔야겠군."
주위를 돌아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다비식을 하려면 나무가 필요한데."
그의 눈은 일순 다 낡아 부서진 불상을 모신 불단에 가 멎었다.
그것은 마침 튼튼한 침향목으로 되어 있었다.
"다비식의 화목(火木)으로 최상이다."
하후미린은 만족스런 시선으로 그것을 주시했다.
허나,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관음성니불상!
일단은 불상 앞으로 가 정중히 합장하며 아뢰었다.
"용서하소서. 불경함을 잠시 저지르게 되었사오이다."
이어, 그는 다가가 불단의 한 모서리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우두둑!
단번에 불단 전면의 침향목들이 부서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의 두 손에서 솟아난 태산이라도 부서뜨릴 듯한 엄청난 힘!
"헉!"
그는 스스로 놀란 듯 자신의 손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맞다! 천불대종사. 그 분이 주신 항마불력(降魔佛力)의 일부이리라.)
새삼스럽게 그는 경이감을 가지고 천불대종사의 유체를 다시 돌아다 보았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
부서진 불상이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불단의 전면이 부서지자 불단 전테가 기울어져 버린 때문이었다.
"엇!"
하후미린은 깜짝 놀라 급히 쓰러지려는 불상을 떠받쳐 뒤로 떠밀었다.
순간,
그르르릉…!
불상은 그가 떠민 힘 이상으로 뒤로 쭈욱 밀려났다.
동시에, 원래 불상이 있던 자리에는 음산한 통로가 나타났다.
"비밀통로가 있었다니?"
반면에 강렬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 안에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나의 마음을 끄는가?"
그는 거의 무엇에 이끌리듯 천천히 통로의 입구에 올라갔다.
"들어가 보자."
좁고 깊은 통로,
그것은 낡디낡은 계단이 쭈욱 이어져 있었다.
하후미린은 무심히 그 계단에 발을 내딛었다.
순간,
우지끈!
"어엇!"
계단은 그대로 부서지고 말았다.
동시에,
"아아앗!"
그는 어두컴컴한 암로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어,
쿠--웅!
대략 삼 장쯤 되는 높이인가?
그는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으음…"
놀란 충격에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허나, 그는 전혀 다치지 않았음을 곧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가 모르는 사실이나 천불대종사의 덕으로 그의 피부는 거의 금강지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툭… 툭…!
그는 먼지를 털고 일어나며 대충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
그의 두 눈은 경악으로 뒤범벅이 된 채 점점 크게 떠졌다.
놀랍게도 칠흑 같은 어둠이 차츰 밝아져 시야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칠채성령천불기!
천하에서 가장 성스러운 불령기!
그것은 결코 무공이 아니었다.
범인(凡人)이라도 지니고 있는 자연적인 힘!
그리고, 올빼미가 볼 수 있는 야시력(夜視力)!
어쩌면 동물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자연의 힘을 칠채성령천불기는 하후미린에게 준 것이었다.
무력은 아니나 하후미린의 손은 대호(大虎)와도 같이 억세져 있었고, 그의 눈은 올빼미의 그것 같은 밝은 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칠채성령천불기는 천 년의 대불천력도(大佛天力道)였다.
만일, 범인이 그것을 받았다면 능히 대초인지경에 이를 수 있을 엄청난 대불정(大佛精)이었다.
허나,
만상전능신혈맥!
하늘마저 두려워하여 그 삶을 허용하지 않은 대초인신맥!
그것은 모든 영기(靈氣)를 제압하여 삶을 연장시켜 줄 뿐이었다.
대해(大海)에 강물이 흘러든 정도랄까?
단지 그뿐이었다.
(시력이 열 배는 좋아졌구나!)
그는 어둠 속에서 대충 자신의 전면으로 긴 통로가 뻗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통로로 그는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허나 곧,
툭!
그는 몇 발자국도 못 가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흠칫했다.
"시체!"
그의 발에 걸린 것은 다름아닌 사람의 죽은 시신이었던 것이다.
허연 해골만 남은 데다 걸친 회색의 가사는 다 삭아가는 승려였던 사람의 시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다음 순간,
그는 머리털이 뻣뻣이 곤두섰다.
(한 구가 아니다!)
어둠이 눈에 익자 그의 시야를 메우는 것들은 수조차 헤아릴 수 없는 시신의 무더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람이 극에 달하자 그는 오히려 차분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시신 사이를 누비며 통로를 걸었다.
즐비하게 나뒹구는 시신들,
그들 중 반은 여승이고 나머지 반은 속인들이었다.
(이들은 왜 이 지하 밀로에 죽어 있는 것인가?)
하후미린은 놀라움에 이어 의아함을 가지며 대략 그 시신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폭이 삼 장에 길이가 사백 장 정도인 통로를 지나는 동안 그가 헤아린 시신은 근 천여 명에 이르렀다.
(어지간히도 많군.)
하후미린은 쓴 입맛을 다시며 밀로의 끝까지 다다랐다.
육중한 석문,
그것은 마치 그를 기다리듯 밀로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석문을 대하는 순간 하후미린은 내심 짚이는 바가 있었다.
(기관이 있다. 만일 잘못 건드리면 이 석문과 내 몸이 동시에 날아갈지도 모른다.)
하후미린,
어쨋든 그는 천성이 학문을 사랑하는 이유로 만사에 능통할 수가 있었다.
기관지학과 기문둔갑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바짝 긴장한 채 석문에 다가섰다.
(대단히 정밀한 기관이다.)
조심스럽게 그의 손은 석문의 여기저기를 더듬어 나갔다.
그러던 한 순간,
끼기긱!
육중한 석문이 드디어 열렸다.
동시에,
"아---!"
하후미린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터뜨렸다.
석문의 건너편,
그곳에는 수백 개의 야광주로 대낮같이 밝혀진 환한 석실이었다.
너무도 휘황한 빛이 그의 시야에 확 끼얹어진 것이다.
허나, 그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예외가 아님을 과시하듯,
그 안에도 시신이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사십팔 구의 시신,
그 중 이십사 인은 모두 여승들이었다.
나머지 이십사 인은 그와 전혀 상관없는 속인들,
한데,
기이한 것은,
이십사 인의 니승과 속인들이 각기 일 대 일로 대치 상태로 죽어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하후미린은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두 눈을 빛냈다.
(각기 연대가 다른 시신들이다!)
그는 한눈에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먼저 속인들을 볼 것 같으면,
그들이 동일한 것은 한결같이 음독하고 잔악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허나,
맨 끝의 인물은 근 천 년 전에 입었다고 상상되는 소매가 땅에까지 끌리는 장포차림이요,
석문(石門)가의 인물은 삼백 년 전으로 추측되는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그 속인들 모두를 비교하다 보면 마치 역사를 두루 고찰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하후미린은 그에 대한 생각을 접으며 다른 방면으로 염두를 굴렸다.
(사십팔인(四十八人). 모두 금강지체를 이룰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취한 자세는.)
하후미린의 두 눈은 빠르게 회전했다.
과연, 승과 속 구별없이 사십팔 인은 모두 각기 틀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또한, 자세히 보면 그들은 모두가 서로의 자세에서 나온 공격에 의해 절명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대단하다! 하나같이 필살의 절기들이로군.)
하후미린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허나, 그 사이에 그는 자신의 뇌리에 그 자세를 새겨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그는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즉, 여승들의 초식은 매우 광명정대한 반면 속인들의 초식은 괴이신랄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는 그 초식들의 절륜무비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터였다.
(모두가 자죽천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절초들이다! 탁록삼미후에게 가르쳐 주면 좋아하겠군.)
그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담았다.
그러는 사이 그는 사십팔 인 사이를 지나 둥근 월동문(月洞門) 앞에 이르렀다.
(천 년 이전에 만들었겠군.)
그는 내심 중얼거림과 함께 성큼 월동문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윽!"
그는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 채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동시에,
그의 두 눈에 고통의 빛이 떠올랐다.
허나,
마치 무엇에 이끌린 듯 그는 몽롱한 시선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무엇이 있기에?
그의 전면 오 장 밖,
바로 그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상하 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벽화가 있을 뿐이었다.
한데,
그 벽화야말로 보통의 벽화가 아닌 듯했다.
마치 실물을 보듯 너무도 생생한 백팔번뇌도(백八煩惱圖)!
기쁨과 슬픔,
노함과 즐거움과 고통,
그러한 것들이 제각기 담겨진 백팔비구니(百八比丘尼)의 얼굴이었다.
즉, 백 팔 가지 번뇌를 상징하는 인간상이 그 그림에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그 벽화는 그야말로 엄청난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보는 이의 심혼을 빨아 들이는 강한 흡인력인가?
하후미린,
그는 자제력을 잃은 채 그 벽화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큰 착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이 마치 그 벽화의 일부인 듯한…
"크으! 심마지관(心魔之關)이다! 번뇌심혼파멸천도(煩惱心魂破滅天圖)!"
하후미린이 안색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은 벽화에 고정된 채 떼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들었는가?
<번뇌심혼파멸천도>
그림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저 범인의 눈에 그렇게 비칠 단순한 불화(佛畵)였다.
허나,
그 불화에 실린 백팔번뇌비구승들의 하나하나의 번뇌를 알 수 있는 자라면 그 미증유의 번뇌마력도에 이끌려 심령이 파멸되어 버린다.
문득,
--그래…
나 하후미린은 우자(禹者)일 뿐 어찌 하늘이랴?
만상은 곧 그 자리에 있음으로 우주의 진리일지니…
하늘의 도!
하후미린은 자연스레 그것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번뇌를 얻으려는 자는 번뇌가 있을 뿐이니…
무위자연이라면 그대로 공(空)이라.
--호호호호!
여인들…
하얀 백색의 가사가 너울거린다.
--흐으응! 절 가지세요…
교태롭게 알몸으르 드러내며 날아 달려드는 니승들…
--드릴게요. 마음껏 가져도 좋아요.
투실투실한 유방을 두 손으로 받쳐든 채 주무른다.
--하아… 깊이! 더…!
새하얀 승포자락이 좌우로 갈라진다.
그 사이로 희멀건 허벅지가 벌어진 채 우거진 밀림지대를 문지르며 신음하는 니승들…
이 전율적인 유혹의 물결!
그것은 폭풍처럼 치솟아 하후미린이 내부를 뇌전처럼 작렬해 뒤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허나,
"…!"
뚜벅!
걸음을 옮기는 하후미린의 모습은 흡사 백치를 보듯 멍청하지 않은가?
아무런 욕망도 없이…
배만 부르면 고삐 풀린 편주가 대해를 따라 떠돌며 소요하듯 하는 우자의 얼굴!
그는 손을 뻗어 불화를 더듬고 있었다.
흡사,
아기가 신기한 것을 보며 더듬듯이…
싸늘한 벽면의 촉감이 그의 손 끝으로 감지되었다.
그 순간,
그르르르릉…!
갑자기 불화가 그려진 벽이 둘로 쪼개지며 허나의 석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후우!"
석실로 들어서자마자 하후미린은 바닥에 단좌하며 식은땀을 닦았다.
"단순한 번뇌도 하나에 천 년의 파멸마령혼(破滅魔靈魂)이 서려 있다니."
한숨마저 흘리고 있는 하후미린,
백팔번뇌비구승도(百八煩惱比丘僧圖)!
그 번뇌마령역도에는 천 년의 힘이 서려 있었던 것이었다.
아울러, 그것을 깰 수 있는 자는 곧 천년내력을 지녀야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후미린!
그는 정신력에서 환우최강이 될 만한 자였다.
"우자천주최강(愚者千秋最强)이라?"
하후미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재주있는 자는 고민이 많고 반면에 우자는 번뇌조차 없는 법. 결국 바보만이 이곳을 들 수 있는가?"
우자만이 들 수 있는 관문.
과연 이곳엔 무엇이 있기에…?
하후미린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전면을 응시했다.
문득,
"여기에도 시체가?"
그는 흠칫하며 이채를 발했다.
과연, 석실안에는 이 인(二人)의 시신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좌화해 있는 혈포노인과 백색가사를 걸친 노비구니였다.
서로 등을 기대고 서있는 혈포노인과 노니(老尼)!
한데,
스스스…!
휘류류륙…!
느껴지고 있었다.
그들의 죽은 시신 주위로는 가공할 잠력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라도 녹여 버릴 극사혈기류!
그에 반하여,
노니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서기는 훈훈한 봄바람 같은 성령불기류였다.
(예사 인물들이 아니었군! 능히 뇌정마벽종 이상이었던 인물들이다!)
하후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는 두 구의 시신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음에도 강렬한 기도를 폭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앞에서는 감히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의…
그리고, 그 기운은 하후미린과 대면이 있었던 뇌정마벽종 뇌강 이상의 가공스러운 기도를 그들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떤 신분을 지닌 인물들이기에?)
하후미린은 의혹 어린 시선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혈포노인의 앞으로 다가가던 하후미린은 백미를 꿈틀거렸다.
(지독한 사기로군!)
그랬다.
스스스…!
혈포노인의 주위로 서려있는 가공할 혈사기!
만일,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기운을 쬐는 순간 그 자리에서 심장이 파열되어 즉사하고 말리라!
한데,
혈포노인의 부릅떠진 동공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검은자위가 있어야 할 곳에 혈동공이 자리해 있는 괴인,
그의 자세는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양 팔을 들어 아래위로 엇갈려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현기(玄氣)가 있다!)
하후미린은 두 눈을 빛내며 그런 그 자의 자세를 유심히 관찰했다.
과연, 혈포노인의 자세는 보면 볼수록 기이했다.
또한,
스스스…!
그의 양 손 끝으로부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끝없는 변화!
그것은 하후미린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음!"
하후미린은 낮은 신음을 발하며 자신도 모르게 그 자세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어,
스슥…!
어느 틈엔가 그의 손길이 혈포노인의 자세를 따라 취해지고 있었다.
스스스…!
내력이 실리지 않은 손길,
하후미린의 손 끝이 어지러히 흔들리는 순간,
수만 개의 수영이 일어나 석실 안을 가득 메웠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쩌엉!
흡사,
유리가 깨어져 박살나는 듯한 금속성이 울리고…
츠츠츠…!
하후미린의 우수!
더 정확히 보면 그의 중지에 끼어있는 유리환에서 섬뜩한 사기류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유리천사환!
바로 그것이 움직인 것이었다.
유령사모 야화련이 정표로 끼워 주고 간 천사일맥의 지존신물!
그것이 하후미린이 혈포노인의 자세를 흉내내자 울음을 토하니…
우우우웅…!
잔잔한 호수같이 맑았던 유리천사환!
허나,
그것은 어느새 핏물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적혈환으로 화해 끔찍한 혈사기류를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어엇!"
하후미린은 흠칫하며 정신을 추스렸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푸스스스…!
혈포노인의 시신이 그대로 먼지처럼 흩날리며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후미린,
그는 삽시간에 시신의 부서진 먼지더미에 휩싸이고 말았다.
순간,
우우우우웅!
유리천사환이 미친 듯이 울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저 사이로운 사념(邪念).
--왔는가?
천사지존이여…
하후미린의 뇌리로 스며드는 극렬한 사음.
"…!"
하후미린은 경악실색하며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중에도 사념은 그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본좌는 유령천사종이노라!
"유령천사종! 저 사계를 열었다는 사도의 대사조!"
하후미린은 침음성을 삼키며 놀라와 했다.
유령천사종!
사도무림계의 신화!
삼천 년 전, 대륙의 원세불도계를 파멸시켰던 저주이 대사황이 바로 그였다.
그가 일으킨 유령대법란!
그에 의해 피어오르던 대륙천불광휘는 천 년을 잠들어야 했고 무림천하는 악마의 숨결에 짓눌려야만 했다.
사도천하를 목전에 두었다가 대륙무림 원세불계의 대성니인 보타성니가 이끈 백팔보타성니군과 공멸(共滅)했다 알려진 그 전설 속의 대사황!
한데, 그 유령천사종이 하후미린의 뇌리에 사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었다.
--마야 나후천!
그 악마의 자식에게 이용당해 보타성니와 공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보타암으로 오기 전 딸애에게 유리천사환을 맡기니 죽음에 이르러서야 한 가지 오의를 깨달아 남기노라!
유리천사환이 올 것이고. 후세의 천사지존에게 환우최극강의 절대사공을 남기노라.
"천사지존수(天邪至尊手)!"
하후미린은 뇌리로 떠오르는 구결을 읽으며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천사지존수!
유리천사환을 지닌 자에게서만 펼쳐질 수 있는 극사천수공(極邪天手功)이었다.
극성에 다다른다면 일천 장 이내를 저주혈사기류(詛呪血邪氣流)가 뒤덮는다.
엄청난 혈수가 대기를 뭉그러뜨릴지니 천사지존(處邪至尊)의 출현을 알리는 천사지존수가 출현하리라!
사라졌던 천사의 신화!
그것이 하후미린의 손에서 재현되는 것이었다.
천사지존의 탄생!
그 위대한 신화의 막은 그렇게 오른 것이었다.
--깨라!
천사지존이여.
천사지존수로서 지옥천마일맥의 오행지옥천마수(五行지지玉天魔手)를!
그리고, 본 유령천사일맥의 딸을 사랑해 주길 바라노라!
스스스…!
하후미린의 전신을 뒤덮던 유령천사종의 시신가루가 차츰 가라앉으며 그의 뇌리를 울리던 사념도 사라져갔다.
우우우웅!
미친 듯 떨어울던 유리천사환!
그것은 울음을 멈추며 차츰 본래의 유리와도 같이 맑게 가라앉고 있었다.
"으음…!"
하후미린은 긴 잠에서 깬 듯 침음성을 흘렸다.
"유령천사일맥이 보타암과 사라진 것이 마야 나후천의 충동질 때문이었다니…"
놀라운 사실,
원세무도계의 신비 허나가 벗겨진 것이었다.
마야 나후천!
저 우주오대초인의 신화지막을 올렸던 악마의 화신체!
그의 이름이 삼천 년의 시공을 격하고 새롭게 떠오른 것이었다.
"이분이 보타성니시겠군!"
하후미린은 주름진 얼굴이나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죽어 있는 니승을 보며 중얼거렸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파스스스…!
보타성니의 시신이 기다렸다는 듯 부서지며 역시 하후미린의 전신을 뒤덮었다.
"…!"
하후미린은 놀람의 기색도 없이 지그시 눈을 내리감았다.
(무슨 법음(法音)을 남기셨으리라!)
그의 생각을 밀어내며 뇌리로 침식해 드는 부드러운 성음이 있었다.
--유령천사종의 유령혈사기에 이성을 잃지 않았음은 대불성령기가 그대에게 있음이라. 빈니는 보타성니라 부름을 받노라.
(역시 보타성니였군!)
하후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유령천사종의 유령혈사기에 흔들리지 않았음은 천불대종사가 부여한 칠채성령천불기 때문이었음을…
그는 다시 한 번 철불대종사에게 감사해야 했다.
--본시, 악과 선은 마음에 있는 것.
그대가 천사지존수를 얻었다 하나 올바로 쓴다면 부처의 성수가 될 것이로다.
믿고 연자(緣者)에게 빈니의 힘을 주리로다.
"관음천불수(觀音千佛手). 관음성니불의 일천성불수가 누리를 성불(聖佛)로 다스리도다."
하후미린은 뇌리로 떠오른 불념을 되뇌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츠츠츠…
그의 좌수가 휘황한 황금색으로 변모되는 것이 아닌가?
허나,
그것은 이내 솜으로 물이 빠져들 듯 사라졌다.
"후후! 천사지존수와 관음천불수를 동시에 펼칠 수 있다면 무적이 될 수 있겠군!"
하후미린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뇌에 찬 쓴웃음이었다.
(과연 이것을 펼칠 때가 오기나 하려는지.)
하후미린은 느끼고 있었다.
천사지존사령이나…
관음성니불령이나…
모두 대해로 스며드는 냇물과도 같이 흔적도 없이 녹아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태에선 그것을 찾아 사용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임도…
허나, 후일 알게 될 것이다.
천사지존수!
관음천불수!
극단을 치달리는 천사와 성불수!
그 양극불사수공(兩極佛邪手功)이 작렬할 때 천하가 경동할 것이다.
다비식의 거행,
즉, 천불대종사의 유해를 모시는 일은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 동안 하후미린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비식을 행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 그는 책에 몰두하였다.
공령천신 궁사령에게서 얻은 금강혈가경!
천불대종사가 남긴 천불무해(天佛武解)!
우선 하후미린은 천불무해부터 펼쳤다.
"천하의 일천불무류중 최강의 무공 일천 가지가 있다니?"
하후미린은 감탄하고 말았다.
그렇다.
<천불무해.>
그것은 천부대종사가 섭렵한 일천 종의 대불류 중 최강의 불무 일천 종을 엄선해 수록해 놓은 것이었다.
단 하루의 시각이 흐르고…
탁!
하후미린은 천불무해를 덮어 품으로 갈무리했다.
"이것은 천불성련에 돌려 주어야겠군!"
이미, 대륙일천불류의 모든 것은 하후미린의 뇌리에 각인된 후였다.
이어, 그는 금강혈가경을 펼쳤다.
<금강혈가경.>.
그것은 알려지지 않았던 천축밀불교 중 두 개의 신비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공룡혈뇌찰!
천축밀불교의 일파(一派)였다.
허나,
그들이 믿는 것은 부처의 자비가 아니었다.
오직 힘(力)!
패불(覇佛).
공룡과도 같이 오직 엄청난 패력으로 중생을 다스려야 천하가 안정될 수 있다는 실로 기가 막힐 정도로 괴악스런 사찰!
전설은 이미 그들이 지상에서 사라졌음을 전하고 있었다.
<금강혈가경은 공룡혈뇌찰의 절대보물이다.
같은 불류이면서도 세존이 거부하시는 패도를 걸어 오백의 나한혈가금강군단을 보내 계도하였도다!
공령파폭참은 우주에서 가장 극강의 힘일지니…
만일, 공룡혈뇌찰에 그것을 펼칠 자가 있었다면 천하가 파멸했으리라!
이를 본람에서 수거하니 목숨으로 지켜야 한다.
잃는다면 팔대혈가금강신으로 하여금 반드시 회수해야 하노라.
혈가대법존(血迦大法尊).>
서문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대충 훑어 보았으나 하후미린은 그 내용마저 보지는 않았었다.
시간이 무료하여 읽은 금강혈가경!
그 내용은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으니…
"공룡파폭참(恐龍破爆斬)이라?"
문득, 하후미린은 자신의 손톱을 내려다 보았다.
붉고 강인한 혈조(血爪)!
--공룡혈각!
바로 그것이었다.
공룡제왕 치우가 남겼다는 황제가 취득한 전리품!
그것을 내려보며 하후미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공룡이라?"
하후미린은 알지 못했다.
그가 힘을 얻는 날!
그 전율적인 공룡의 금강패력이 천지를 갈가리 찢어발길지니…
허나, 하후미린은 금강혈가경을 갈무리하며 타오르는 천불대종사의 다비식을 지켜보았다.
천불대종사(天佛大宗師)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하후미린은 그 불변의 진리도 영원치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우우웅!
돌연, 하후미린은 머리 속에서 무엇인가 회전하며 울리는 기이한 감응을 느껴야만 했다.
"으윽!"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하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맑은 성령음(聖靈音)이 그의 뇌리 속으로 퍼져가는 것이 아닌가?
--노납은 소림(少林)에 적(籍)을 두었던 천불(天佛)이라 하오.
"천불대종사(天佛大宗師)! 저 분이?"
하후미린은 기절할 듯이 놀라며 좌화해 있는 노승을 바라보았다.
온화하기 이를 데 없는, 그야말로 부처의 현신을 보는 듯한 인물이었다.
천불대종사!
능히, 사경을 헤매는 하늘의 용을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성불!
그것은 대륙에서 가장 성스러운 이름이기도 했다.
대륙불계의 지존!
<천불성련.>
대륙에 산재해 있는 일천불류가 모여 이룩된 대륙불문의 대성역!
그 잠재된 힘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다.
혹자는 말한다.
천불성련!
그 힘은 능히 대륙육합천패 중 하나와 비등하다고.
사실, 대륙엔 하늘이 하나 더 있는 셈이었다.
허나, 천불성련이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진 오직 한 명.
대륙제일성불이라는 천불대종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소림 출신이면서도 그는 천하일천불류(天下一千佛流)를 섭렵했고, 그 사갑자(四甲子)의 고행 속에 그 일천불류는 감화되어 하나로 합일된 것이었다.
소림승적을 버리고 대륙불도계의 대종사가 되었던 신화적인 대성불!
그런 그가 황야에 버려져 죽어가는 한 명 중생을 위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한 것이었으니…
뿐인가?
칠채성령천불기!
정화(正華)의 대정불(大正佛)을 비롯하여,
악불(惡佛), 마불(魔佛), 사불(邪佛), 요불(妖佛) 등…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정(佛精)을 합일하여 만들어 낸 아수라파멸극사대불력도(阿修羅破滅剋邪大佛力道)!
그것마저 남김없이 하후미린의 몸 안에 밀어 넣은 것이었다.
어찌 경외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신(殺身)으로 대정불도를 펼친 대성불에게…!
하후미린의 놀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더욱 엄청난 사실이 그를 경악케 하고 있었다.
-노납은 사갑자의 고행으로 얻은 칠채성령천불기의 아수라파멸극사대불력도를 시주의 일신에 심어 놓았소이다.
"칠채성령천불기."
하후미린은 신음하듯 낮게 부르짖었다.
--그 큰 힘은 깊이 침잠하여 있다가, 극사(極邪)와 극마(極魔)에 부딪게 될 때에 일어날 것이외다.
단, 노납이 시주에게 모든 것을 건넴은 무림의 운명을 시주에게 맡기려 함이외다.
하후미린의 심정은 매우 경건하며 무겁게 가라앉았다.
"선사의 고심이 헛되지 않게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는 매우 엄숙하게 맹세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노납의 신물인 천불항마신주(天佛降魔神珠)를 천불성련에 돌려 주시기를 시주께 부탁드리오이다.
이것으로 노납과 시주의 연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라오이다.
천불대종사의 혜광심어(慧光心語)는 여기서 끝을 맺었다.
하후미린은 그 즉시 일어났다.
이어, 그는 천불대종사의 범체에 정중히 구 배를 올렸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예를 다하여…
다음으로, 그는 유체를 모실 생각을 잊지 않았다.
"이곳이 마침 절이니 우선 이곳에 모셔야겠군."
주위를 돌아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다비식을 하려면 나무가 필요한데."
그의 눈은 일순 다 낡아 부서진 불상을 모신 불단에 가 멎었다.
그것은 마침 튼튼한 침향목으로 되어 있었다.
"다비식의 화목(火木)으로 최상이다."
하후미린은 만족스런 시선으로 그것을 주시했다.
허나,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관음성니불상!
일단은 불상 앞으로 가 정중히 합장하며 아뢰었다.
"용서하소서. 불경함을 잠시 저지르게 되었사오이다."
이어, 그는 다가가 불단의 한 모서리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우두둑!
단번에 불단 전면의 침향목들이 부서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의 두 손에서 솟아난 태산이라도 부서뜨릴 듯한 엄청난 힘!
"헉!"
그는 스스로 놀란 듯 자신의 손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맞다! 천불대종사. 그 분이 주신 항마불력(降魔佛力)의 일부이리라.)
새삼스럽게 그는 경이감을 가지고 천불대종사의 유체를 다시 돌아다 보았다.
한데,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
부서진 불상이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불단의 전면이 부서지자 불단 전테가 기울어져 버린 때문이었다.
"엇!"
하후미린은 깜짝 놀라 급히 쓰러지려는 불상을 떠받쳐 뒤로 떠밀었다.
순간,
그르르릉…!
불상은 그가 떠민 힘 이상으로 뒤로 쭈욱 밀려났다.
동시에, 원래 불상이 있던 자리에는 음산한 통로가 나타났다.
"비밀통로가 있었다니?"
반면에 강렬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 안에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나의 마음을 끄는가?"
그는 거의 무엇에 이끌리듯 천천히 통로의 입구에 올라갔다.
"들어가 보자."
좁고 깊은 통로,
그것은 낡디낡은 계단이 쭈욱 이어져 있었다.
하후미린은 무심히 그 계단에 발을 내딛었다.
순간,
우지끈!
"어엇!"
계단은 그대로 부서지고 말았다.
동시에,
"아아앗!"
그는 어두컴컴한 암로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어,
쿠--웅!
대략 삼 장쯤 되는 높이인가?
그는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으음…"
놀란 충격에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허나, 그는 전혀 다치지 않았음을 곧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가 모르는 사실이나 천불대종사의 덕으로 그의 피부는 거의 금강지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툭… 툭…!
그는 먼지를 털고 일어나며 대충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
그의 두 눈은 경악으로 뒤범벅이 된 채 점점 크게 떠졌다.
놀랍게도 칠흑 같은 어둠이 차츰 밝아져 시야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칠채성령천불기!
천하에서 가장 성스러운 불령기!
그것은 결코 무공이 아니었다.
범인(凡人)이라도 지니고 있는 자연적인 힘!
그리고, 올빼미가 볼 수 있는 야시력(夜視力)!
어쩌면 동물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자연의 힘을 칠채성령천불기는 하후미린에게 준 것이었다.
무력은 아니나 하후미린의 손은 대호(大虎)와도 같이 억세져 있었고, 그의 눈은 올빼미의 그것 같은 밝은 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칠채성령천불기는 천 년의 대불천력도(大佛天力道)였다.
만일, 범인이 그것을 받았다면 능히 대초인지경에 이를 수 있을 엄청난 대불정(大佛精)이었다.
허나,
만상전능신혈맥!
하늘마저 두려워하여 그 삶을 허용하지 않은 대초인신맥!
그것은 모든 영기(靈氣)를 제압하여 삶을 연장시켜 줄 뿐이었다.
대해(大海)에 강물이 흘러든 정도랄까?
단지 그뿐이었다.
(시력이 열 배는 좋아졌구나!)
그는 어둠 속에서 대충 자신의 전면으로 긴 통로가 뻗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통로로 그는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허나 곧,
툭!
그는 몇 발자국도 못 가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흠칫했다.
"시체!"
그의 발에 걸린 것은 다름아닌 사람의 죽은 시신이었던 것이다.
허연 해골만 남은 데다 걸친 회색의 가사는 다 삭아가는 승려였던 사람의 시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나, 다음 순간,
그는 머리털이 뻣뻣이 곤두섰다.
(한 구가 아니다!)
어둠이 눈에 익자 그의 시야를 메우는 것들은 수조차 헤아릴 수 없는 시신의 무더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람이 극에 달하자 그는 오히려 차분해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시신 사이를 누비며 통로를 걸었다.
즐비하게 나뒹구는 시신들,
그들 중 반은 여승이고 나머지 반은 속인들이었다.
(이들은 왜 이 지하 밀로에 죽어 있는 것인가?)
하후미린은 놀라움에 이어 의아함을 가지며 대략 그 시신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폭이 삼 장에 길이가 사백 장 정도인 통로를 지나는 동안 그가 헤아린 시신은 근 천여 명에 이르렀다.
(어지간히도 많군.)
하후미린은 쓴 입맛을 다시며 밀로의 끝까지 다다랐다.
육중한 석문,
그것은 마치 그를 기다리듯 밀로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석문을 대하는 순간 하후미린은 내심 짚이는 바가 있었다.
(기관이 있다. 만일 잘못 건드리면 이 석문과 내 몸이 동시에 날아갈지도 모른다.)
하후미린,
어쨋든 그는 천성이 학문을 사랑하는 이유로 만사에 능통할 수가 있었다.
기관지학과 기문둔갑 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바짝 긴장한 채 석문에 다가섰다.
(대단히 정밀한 기관이다.)
조심스럽게 그의 손은 석문의 여기저기를 더듬어 나갔다.
그러던 한 순간,
끼기긱!
육중한 석문이 드디어 열렸다.
동시에,
"아---!"
하후미린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터뜨렸다.
석문의 건너편,
그곳에는 수백 개의 야광주로 대낮같이 밝혀진 환한 석실이었다.
너무도 휘황한 빛이 그의 시야에 확 끼얹어진 것이다.
허나, 그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예외가 아님을 과시하듯,
그 안에도 시신이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사십팔 구의 시신,
그 중 이십사 인은 모두 여승들이었다.
나머지 이십사 인은 그와 전혀 상관없는 속인들,
한데,
기이한 것은,
이십사 인의 니승과 속인들이 각기 일 대 일로 대치 상태로 죽어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하후미린은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두 눈을 빛냈다.
(각기 연대가 다른 시신들이다!)
그는 한눈에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먼저 속인들을 볼 것 같으면,
그들이 동일한 것은 한결같이 음독하고 잔악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허나,
맨 끝의 인물은 근 천 년 전에 입었다고 상상되는 소매가 땅에까지 끌리는 장포차림이요,
석문(石門)가의 인물은 삼백 년 전으로 추측되는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그 속인들 모두를 비교하다 보면 마치 역사를 두루 고찰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하후미린은 그에 대한 생각을 접으며 다른 방면으로 염두를 굴렸다.
(사십팔인(四十八人). 모두 금강지체를 이룰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취한 자세는.)
하후미린의 두 눈은 빠르게 회전했다.
과연, 승과 속 구별없이 사십팔 인은 모두 각기 틀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또한, 자세히 보면 그들은 모두가 서로의 자세에서 나온 공격에 의해 절명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대단하다! 하나같이 필살의 절기들이로군.)
하후미린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허나, 그 사이에 그는 자신의 뇌리에 그 자세를 새겨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그는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즉, 여승들의 초식은 매우 광명정대한 반면 속인들의 초식은 괴이신랄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는 그 초식들의 절륜무비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터였다.
(모두가 자죽천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절초들이다! 탁록삼미후에게 가르쳐 주면 좋아하겠군.)
그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담았다.
그러는 사이 그는 사십팔 인 사이를 지나 둥근 월동문(月洞門) 앞에 이르렀다.
(천 년 이전에 만들었겠군.)
그는 내심 중얼거림과 함께 성큼 월동문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윽!"
그는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 채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동시에,
그의 두 눈에 고통의 빛이 떠올랐다.
허나,
마치 무엇에 이끌린 듯 그는 몽롱한 시선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무엇이 있기에?
그의 전면 오 장 밖,
바로 그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상하 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벽화가 있을 뿐이었다.
한데,
그 벽화야말로 보통의 벽화가 아닌 듯했다.
마치 실물을 보듯 너무도 생생한 백팔번뇌도(백八煩惱圖)!
기쁨과 슬픔,
노함과 즐거움과 고통,
그러한 것들이 제각기 담겨진 백팔비구니(百八比丘尼)의 얼굴이었다.
즉, 백 팔 가지 번뇌를 상징하는 인간상이 그 그림에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그 벽화는 그야말로 엄청난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보는 이의 심혼을 빨아 들이는 강한 흡인력인가?
하후미린,
그는 자제력을 잃은 채 그 벽화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큰 착각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이 마치 그 벽화의 일부인 듯한…
"크으! 심마지관(心魔之關)이다! 번뇌심혼파멸천도(煩惱心魂破滅天圖)!"
하후미린이 안색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은 벽화에 고정된 채 떼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들었는가?
<번뇌심혼파멸천도>
그림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저 범인의 눈에 그렇게 비칠 단순한 불화(佛畵)였다.
허나,
그 불화에 실린 백팔번뇌비구승들의 하나하나의 번뇌를 알 수 있는 자라면 그 미증유의 번뇌마력도에 이끌려 심령이 파멸되어 버린다.
문득,
--그래…
나 하후미린은 우자(禹者)일 뿐 어찌 하늘이랴?
만상은 곧 그 자리에 있음으로 우주의 진리일지니…
하늘의 도!
하후미린은 자연스레 그것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번뇌를 얻으려는 자는 번뇌가 있을 뿐이니…
무위자연이라면 그대로 공(空)이라.
--호호호호!
여인들…
하얀 백색의 가사가 너울거린다.
--흐으응! 절 가지세요…
교태롭게 알몸으르 드러내며 날아 달려드는 니승들…
--드릴게요. 마음껏 가져도 좋아요.
투실투실한 유방을 두 손으로 받쳐든 채 주무른다.
--하아… 깊이! 더…!
새하얀 승포자락이 좌우로 갈라진다.
그 사이로 희멀건 허벅지가 벌어진 채 우거진 밀림지대를 문지르며 신음하는 니승들…
이 전율적인 유혹의 물결!
그것은 폭풍처럼 치솟아 하후미린이 내부를 뇌전처럼 작렬해 뒤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허나,
"…!"
뚜벅!
걸음을 옮기는 하후미린의 모습은 흡사 백치를 보듯 멍청하지 않은가?
아무런 욕망도 없이…
배만 부르면 고삐 풀린 편주가 대해를 따라 떠돌며 소요하듯 하는 우자의 얼굴!
그는 손을 뻗어 불화를 더듬고 있었다.
흡사,
아기가 신기한 것을 보며 더듬듯이…
싸늘한 벽면의 촉감이 그의 손 끝으로 감지되었다.
그 순간,
그르르르릉…!
갑자기 불화가 그려진 벽이 둘로 쪼개지며 허나의 석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후우!"
석실로 들어서자마자 하후미린은 바닥에 단좌하며 식은땀을 닦았다.
"단순한 번뇌도 하나에 천 년의 파멸마령혼(破滅魔靈魂)이 서려 있다니."
한숨마저 흘리고 있는 하후미린,
백팔번뇌비구승도(百八煩惱比丘僧圖)!
그 번뇌마령역도에는 천 년의 힘이 서려 있었던 것이었다.
아울러, 그것을 깰 수 있는 자는 곧 천년내력을 지녀야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후미린!
그는 정신력에서 환우최강이 될 만한 자였다.
"우자천주최강(愚者千秋最强)이라?"
하후미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씁쓸한 고소를 머금었다.
"재주있는 자는 고민이 많고 반면에 우자는 번뇌조차 없는 법. 결국 바보만이 이곳을 들 수 있는가?"
우자만이 들 수 있는 관문.
과연 이곳엔 무엇이 있기에…?
하후미린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전면을 응시했다.
문득,
"여기에도 시체가?"
그는 흠칫하며 이채를 발했다.
과연, 석실안에는 이 인(二人)의 시신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좌화해 있는 혈포노인과 백색가사를 걸친 노비구니였다.
서로 등을 기대고 서있는 혈포노인과 노니(老尼)!
한데,
스스스…!
휘류류륙…!
느껴지고 있었다.
그들의 죽은 시신 주위로는 가공할 잠력이 안개처럼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라도 녹여 버릴 극사혈기류!
그에 반하여,
노니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서기는 훈훈한 봄바람 같은 성령불기류였다.
(예사 인물들이 아니었군! 능히 뇌정마벽종 이상이었던 인물들이다!)
하후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는 두 구의 시신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음에도 강렬한 기도를 폭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앞에서는 감히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의…
그리고, 그 기운은 하후미린과 대면이 있었던 뇌정마벽종 뇌강 이상의 가공스러운 기도를 그들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떤 신분을 지닌 인물들이기에?)
하후미린은 의혹 어린 시선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혈포노인의 앞으로 다가가던 하후미린은 백미를 꿈틀거렸다.
(지독한 사기로군!)
그랬다.
스스스…!
혈포노인의 주위로 서려있는 가공할 혈사기!
만일,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기운을 쬐는 순간 그 자리에서 심장이 파열되어 즉사하고 말리라!
한데,
혈포노인의 부릅떠진 동공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검은자위가 있어야 할 곳에 혈동공이 자리해 있는 괴인,
그의 자세는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양 팔을 들어 아래위로 엇갈려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현기(玄氣)가 있다!)
하후미린은 두 눈을 빛내며 그런 그 자의 자세를 유심히 관찰했다.
과연, 혈포노인의 자세는 보면 볼수록 기이했다.
또한,
스스스…!
그의 양 손 끝으로부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끝없는 변화!
그것은 하후미린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음!"
하후미린은 낮은 신음을 발하며 자신도 모르게 그 자세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어,
스슥…!
어느 틈엔가 그의 손길이 혈포노인의 자세를 따라 취해지고 있었다.
스스스…!
내력이 실리지 않은 손길,
하후미린의 손 끝이 어지러히 흔들리는 순간,
수만 개의 수영이 일어나 석실 안을 가득 메웠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쩌엉!
흡사,
유리가 깨어져 박살나는 듯한 금속성이 울리고…
츠츠츠…!
하후미린의 우수!
더 정확히 보면 그의 중지에 끼어있는 유리환에서 섬뜩한 사기류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유리천사환!
바로 그것이 움직인 것이었다.
유령사모 야화련이 정표로 끼워 주고 간 천사일맥의 지존신물!
그것이 하후미린이 혈포노인의 자세를 흉내내자 울음을 토하니…
우우우웅…!
잔잔한 호수같이 맑았던 유리천사환!
허나,
그것은 어느새 핏물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적혈환으로 화해 끔찍한 혈사기류를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어엇!"
하후미린은 흠칫하며 정신을 추스렸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푸스스스…!
혈포노인의 시신이 그대로 먼지처럼 흩날리며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후미린,
그는 삽시간에 시신의 부서진 먼지더미에 휩싸이고 말았다.
순간,
우우우우웅!
유리천사환이 미친 듯이 울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저 사이로운 사념(邪念).
--왔는가?
천사지존이여…
하후미린의 뇌리로 스며드는 극렬한 사음.
"…!"
하후미린은 경악실색하며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중에도 사념은 그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본좌는 유령천사종이노라!
"유령천사종! 저 사계를 열었다는 사도의 대사조!"
하후미린은 침음성을 삼키며 놀라와 했다.
유령천사종!
사도무림계의 신화!
삼천 년 전, 대륙의 원세불도계를 파멸시켰던 저주이 대사황이 바로 그였다.
그가 일으킨 유령대법란!
그에 의해 피어오르던 대륙천불광휘는 천 년을 잠들어야 했고 무림천하는 악마의 숨결에 짓눌려야만 했다.
사도천하를 목전에 두었다가 대륙무림 원세불계의 대성니인 보타성니가 이끈 백팔보타성니군과 공멸(共滅)했다 알려진 그 전설 속의 대사황!
한데, 그 유령천사종이 하후미린의 뇌리에 사념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었다.
--마야 나후천!
그 악마의 자식에게 이용당해 보타성니와 공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보타암으로 오기 전 딸애에게 유리천사환을 맡기니 죽음에 이르러서야 한 가지 오의를 깨달아 남기노라!
유리천사환이 올 것이고. 후세의 천사지존에게 환우최극강의 절대사공을 남기노라.
"천사지존수(天邪至尊手)!"
하후미린은 뇌리로 떠오르는 구결을 읽으며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천사지존수!
유리천사환을 지닌 자에게서만 펼쳐질 수 있는 극사천수공(極邪天手功)이었다.
극성에 다다른다면 일천 장 이내를 저주혈사기류(詛呪血邪氣流)가 뒤덮는다.
엄청난 혈수가 대기를 뭉그러뜨릴지니 천사지존(處邪至尊)의 출현을 알리는 천사지존수가 출현하리라!
사라졌던 천사의 신화!
그것이 하후미린의 손에서 재현되는 것이었다.
천사지존의 탄생!
그 위대한 신화의 막은 그렇게 오른 것이었다.
--깨라!
천사지존이여.
천사지존수로서 지옥천마일맥의 오행지옥천마수(五行지지玉天魔手)를!
그리고, 본 유령천사일맥의 딸을 사랑해 주길 바라노라!
스스스…!
하후미린의 전신을 뒤덮던 유령천사종의 시신가루가 차츰 가라앉으며 그의 뇌리를 울리던 사념도 사라져갔다.
우우우웅!
미친 듯 떨어울던 유리천사환!
그것은 울음을 멈추며 차츰 본래의 유리와도 같이 맑게 가라앉고 있었다.
"으음…!"
하후미린은 긴 잠에서 깬 듯 침음성을 흘렸다.
"유령천사일맥이 보타암과 사라진 것이 마야 나후천의 충동질 때문이었다니…"
놀라운 사실,
원세무도계의 신비 허나가 벗겨진 것이었다.
마야 나후천!
저 우주오대초인의 신화지막을 올렸던 악마의 화신체!
그의 이름이 삼천 년의 시공을 격하고 새롭게 떠오른 것이었다.
"이분이 보타성니시겠군!"
하후미린은 주름진 얼굴이나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죽어 있는 니승을 보며 중얼거렸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파스스스…!
보타성니의 시신이 기다렸다는 듯 부서지며 역시 하후미린의 전신을 뒤덮었다.
"…!"
하후미린은 놀람의 기색도 없이 지그시 눈을 내리감았다.
(무슨 법음(法音)을 남기셨으리라!)
그의 생각을 밀어내며 뇌리로 침식해 드는 부드러운 성음이 있었다.
--유령천사종의 유령혈사기에 이성을 잃지 않았음은 대불성령기가 그대에게 있음이라. 빈니는 보타성니라 부름을 받노라.
(역시 보타성니였군!)
하후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유령천사종의 유령혈사기에 흔들리지 않았음은 천불대종사가 부여한 칠채성령천불기 때문이었음을…
그는 다시 한 번 철불대종사에게 감사해야 했다.
--본시, 악과 선은 마음에 있는 것.
그대가 천사지존수를 얻었다 하나 올바로 쓴다면 부처의 성수가 될 것이로다.
믿고 연자(緣者)에게 빈니의 힘을 주리로다.
"관음천불수(觀音千佛手). 관음성니불의 일천성불수가 누리를 성불(聖佛)로 다스리도다."
하후미린은 뇌리로 떠오른 불념을 되뇌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츠츠츠…
그의 좌수가 휘황한 황금색으로 변모되는 것이 아닌가?
허나,
그것은 이내 솜으로 물이 빠져들 듯 사라졌다.
"후후! 천사지존수와 관음천불수를 동시에 펼칠 수 있다면 무적이 될 수 있겠군!"
하후미린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뇌에 찬 쓴웃음이었다.
(과연 이것을 펼칠 때가 오기나 하려는지.)
하후미린은 느끼고 있었다.
천사지존사령이나…
관음성니불령이나…
모두 대해로 스며드는 냇물과도 같이 흔적도 없이 녹아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태에선 그것을 찾아 사용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임도…
허나, 후일 알게 될 것이다.
천사지존수!
관음천불수!
극단을 치달리는 천사와 성불수!
그 양극불사수공(兩極佛邪手功)이 작렬할 때 천하가 경동할 것이다.
다비식의 거행,
즉, 천불대종사의 유해를 모시는 일은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 동안 하후미린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비식을 행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 그는 책에 몰두하였다.
공령천신 궁사령에게서 얻은 금강혈가경!
천불대종사가 남긴 천불무해(天佛武解)!
우선 하후미린은 천불무해부터 펼쳤다.
"천하의 일천불무류중 최강의 무공 일천 가지가 있다니?"
하후미린은 감탄하고 말았다.
그렇다.
<천불무해.>
그것은 천부대종사가 섭렵한 일천 종의 대불류 중 최강의 불무 일천 종을 엄선해 수록해 놓은 것이었다.
단 하루의 시각이 흐르고…
탁!
하후미린은 천불무해를 덮어 품으로 갈무리했다.
"이것은 천불성련에 돌려 주어야겠군!"
이미, 대륙일천불류의 모든 것은 하후미린의 뇌리에 각인된 후였다.
이어, 그는 금강혈가경을 펼쳤다.
<금강혈가경.>.
그것은 알려지지 않았던 천축밀불교 중 두 개의 신비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공룡혈뇌찰!
천축밀불교의 일파(一派)였다.
허나,
그들이 믿는 것은 부처의 자비가 아니었다.
오직 힘(力)!
패불(覇佛).
공룡과도 같이 오직 엄청난 패력으로 중생을 다스려야 천하가 안정될 수 있다는 실로 기가 막힐 정도로 괴악스런 사찰!
전설은 이미 그들이 지상에서 사라졌음을 전하고 있었다.
<금강혈가경은 공룡혈뇌찰의 절대보물이다.
같은 불류이면서도 세존이 거부하시는 패도를 걸어 오백의 나한혈가금강군단을 보내 계도하였도다!
공령파폭참은 우주에서 가장 극강의 힘일지니…
만일, 공룡혈뇌찰에 그것을 펼칠 자가 있었다면 천하가 파멸했으리라!
이를 본람에서 수거하니 목숨으로 지켜야 한다.
잃는다면 팔대혈가금강신으로 하여금 반드시 회수해야 하노라.
혈가대법존(血迦大法尊).>
서문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대충 훑어 보았으나 하후미린은 그 내용마저 보지는 않았었다.
시간이 무료하여 읽은 금강혈가경!
그 내용은 가히 폭발적인 것이었으니…
"공룡파폭참(恐龍破爆斬)이라?"
문득, 하후미린은 자신의 손톱을 내려다 보았다.
붉고 강인한 혈조(血爪)!
--공룡혈각!
바로 그것이었다.
공룡제왕 치우가 남겼다는 황제가 취득한 전리품!
그것을 내려보며 하후미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공룡이라?"
하후미린은 알지 못했다.
그가 힘을 얻는 날!
그 전율적인 공룡의 금강패력이 천지를 갈가리 찢어발길지니…
허나, 하후미린은 금강혈가경을 갈무리하며 타오르는 천불대종사의 다비식을 지켜보았다.
추천48 비추천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