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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포르노는 버스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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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129 회 작성일 24-02-18 05: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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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아니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보다는 무의미한


일상이 소리 없이 주저앉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마치 상


자 속에 갇혀 있는 동물 같은 생활을 하다가. 외출을, 그것도


신 새벽에 외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곰팡이가 낀 일상에 변


화를 주기 위해서였다.



새벽에 찬바람을 맞으며 무작정 길을 떠났다가 귀가한다고


해서 곰팡이 낀 일상에 윤기가 주르르 흐르는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 결과를 예측해


보는 것보다는,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일단 밥을 지어 보는 쪽


이 훨씬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아파트를 잠그고 밖으로 나왔


다.



거리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골목에 고여 있는 어둠을 한


줌, 한 줌 밟아내릴 때마다 긴 겨울밤을 추위에 떨고 있었던


보도블록이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새벽의 침묵을 깨트리고


있었다.



언제였더라!



어느 해 여름인가, 사랑하는 남자 규태와 이렇게 어둠이 내


려앉아 있는 새벽에 약수터를 간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정기


적으로 약수터에 다녔던 것은 아니다. 규태는 늘 그렇듯이 즉


흥적으로 약수터에 가자고 했다.



이렇게 어두운데?



창문밖에 어둠의 그림자가 길게 느리어져 있을 때였다. 규


태는 더 이상 말은 필요가 없다는 얼굴로 조깅복을 입었다.



"잠깐, 아무리 바빠도 팬티는 입어야 하잖아요."



규태가 팬티를 생략하고 조깅복을 껴입는 것을 보고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팬티를 입지마, 아니 브래지어도 안 했으면 좋겠어.


알몸에 조깅복만 입어. 난 그게 좋아."



규태의 눈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섹스를 하고 싶을


때, 쇳내음을 풍기면서 쳐다보는 그런 눈빛과 비슷했다.



그럼 밖에서…



규태가 신 새벽부터 갑자기 약수터에 가자는 이유가 이거


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묘한 흥분이 가슴속에 또아리를


트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약수를 떠올 물통도 필요없겠네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산다고 신 새벽부터 약수물을


뜨러 가겠니? 그냥 가, 난 약수물보다 너의 침 한 방울이 불


로 장생초로 짜낸 즙과 같아."



아! 규태는 연금술사였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몸


의 세포가 일제히 기립을 하고 열광하는 것 같았다. 규태의


보일 듯 말듯 한 미소 속에 흘러나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약수터에 가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생기고 말았다.



"여름이라도 새벽이면 춥지, 왜 그런지 알어."


"글쎄요."



규태의 말대로 중복(中伏)이 가까워지고 있는 여름이지만,


캄캄한 새벽에 종이짝 같은 조깅복만 걸치고 골목으로 나오


니까 추웠다.



"여름의 찌꺼기가 녹아들지 않았기 때문에 추운 거야."


"여름의 찌꺼기라면, 욕망의 찌꺼기를 말하는 건가요."



옷깃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바람이 만만치 않았다. 규태의


팔짱을 끼며 속삭이듯 물었다.



"그 비슷한 거지. 겨울에도 얼어 있는 것들이 여름에는 녹


지 않고 냄새를 풍기게 되는 거지. 그 이상은 나도 물라."



규태는 늘 그런 식이었다. 자신이 문제를 제시해 놓고, 그


문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지게 되면 슬그머니 주


저앉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 면을 볼 때 규태는 천성적으로


낙천주의 기질이 배어 있는지도 몰랐다.



"난 알 것 같아요. 겨울에는 얼어 있는 것들이 여름에도 녹


지 않는 것은 욕망밖에 없어요. 죽음에 대한 욕망 말이에요.


사람들은 그래서 겨울에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지도 몰라요.


죽고 싶은 욕망에 이성이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죠."



"골치가 아프군."



규태는 팬티를 입지 않았으면서 담배를 챙겨 오는데는 철


저했다. 여름치고는 더럽게 춥다는 생각으로 그의 바지 주머


니에 손을 집어넣었더니 일회용 라이터와 담배가 들어 있었


다.



"나도 한 가치 피워야겠군."



규태와 둘이 어둠 속에서 담배 연기를 날리며 걸었다. 거리


를 지나가는 차들은 무한 괘도를 달리는 우주선처럼 쏜살같


이 스쳐가거나, 뒤쪽으로 밀려갔다.



"저 봐 저 노랑 수은등이 아름답지."



규태가 담배를 든 손으로 가로등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 나는 담배 연기가 노랑 수은등 불빛에 흐느적


거리는 영혼으로 빨려 들어갔다.



"약수터에는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하게 될 거예요."



규태는 담배가 꽁초가 될 때까지 끈질기게 피웠고, 그녀는


중간까지 피우다 꺼버렸다. 규태는 피우다 만 꽁초를 손가락


으로 퉁겨 버렸고, 그녀는 새벽 이슬에 번들거리는 보도블록


위에 던지고 운동화 뒤축을 돌려서 꺼 버렸다.



약수터로 올라가는 야산에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


았다. 그러나 산꼭대기에서는 야호! 소리가 들렸다. 간밤을 산


꼭대기에서 지냈을 리는 없고, 그녀는 또 다른 입구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길은 가파르지 않았다. 길옆에는 인조 목으로 울타리가 쳐


져 있었고, 가끔 나뭇가지가 서늘한 감촉으로 얼굴을 스쳐 갔


다.



"지난밤에 꿈을 꿨어."


"어떤 꿈을 꿨나요? 당신 곁에 나도 있었나요?"



사랑하는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가슴설레이는


것은 없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꿈 이야기만큼 흥미진진


한 소설도 없다. 규태가 지난밤에 꿈을 꾸었다는 말을 듣고


그의 조깅복 바지 주머니에 생각 없이 손을 집어넣었다. 그와


보폭을 같이 하기 위해서였다.



"너도 내 옆에 있었지. 아니 넌 주연이었어."


"어쩜!"



사랑하는 사람의 꿈속에서 주연이 되었다는 것은 무조건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조깅복 바지 주머니 속으


로 덜렁거리는 감촉으로 와 닿는 그의 남성을 느끼면서 감탄


사를 터트렸다.



"어떠한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우린 아프리카 케냐에 있었


어. 킬리만자로가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진 평원이었지. 드문


드문 야생 동물 보호 구역이란 팻말이 붙어 있는 초원이었어.


초원은 아라비아 사막처럼 끝이 없었지. 마치 푸른 풀잎이 출


렁거리는 수평선 같았어…"



"멋져요."



규태가 잠깐 말을 끊었을 때, 마치 한 편의 산문시를 낭송


받는 기분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규태는 입과


남성이 따로 놀고 있었다. 그의 입은 아프리카 케냐의 초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조깅복 속에서 덜렁거리는 그의 남성을 섹


스를 갈구하며 용트림을 하고 있었다.



이상도 하지.



규태는 보면 볼수록 이해 할 수 없는 남자라고 생각하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초원 속에 표범 몇 마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어. 앉


거나 서 있는 자세로, 혹은 나뭇가지에 허리를 걸친 체 우리


가 누워 있는 곳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지."



"그럼 우리가 누워 있었나요?"

그녀는 그의 꿈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남성을 슬며시 움


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남성을 움켜쥐고 있노라니 슬며


시 웃음이 나왔다. 그의 남성이 있던 자리에 붙어 있는 손목


윤곽 때문이었다.



"우리는 알몸으로 초원에 누워 있었어. 표범들은 우리를 지


켜보고 있는 가운데 너는 내 심벌을 애무하고 있었지. 내가


말했어. 저길 봐, 표범들이 우릴 보고 있어. 그러자 네가 나에


게 말하더군. 괜찮아요. 표범들이 아무리 굶주렸다 하더라도


우리가 섹스를 하고 있으면 덤벼들지 않을 거예요, 내가 물었


지.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고 말야. 그러자 너는 내 심벌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어. 표범들이 당신의 아름다운 몸


매를 봤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당신의 아름다운 에펠탑을 탐


닉하고 있는 나를 봤기 때문이죠. 라고 말야."



규태는 입을 다물고 남성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지그시


누르다 멈추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녀의 손은 그의 남성을 움


켜 쥔 채 그의 힘에 따라 조금씩 앞뒤로 움직였다.



"그게 꿈의 전부인가요?"



그녀는 약수터의 오르막을 걸으면서 그의 남성이 손안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에 온 신경을 곤


두세우고 있었다. 시나브로 그러는 사이에 그녀의 꽃잎이 축


축이 젖어 가고 있었다.



"아냐. 난 푸른 표범의 눈을 봤어. 커다란 비단구렁이를 쳐


다보고 있는 푸른 표범의 눈을 봤어. 그리고 그 표범의 눈동


자 속에 너의 상반신이 숨어 있는 것을 보았지. 너는 계속 내


걸 탐닉하고 있었고, 종내는 내 손을 끌어다 네 꽃잎을 만지


게 했지. 너무 뜨거워서 쉽게 접근할 수 없었어. 애액이 넘쳐


흐르더군. 나는 푸른 표범의 눈동자 안에 들어 있는 너를 보


면서 너의 애액을 빨아먹었지. 목마른 새끼 하이에나 마냥…


그러다 꿈에서 깨어났어."



규태의 남성은 더 이상 자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불어


나 있었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남성은 언덕을 올라가는 기


관차처럼 거센 폐활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신의 꿈이 너무 황홀해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겠군요."



규태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이것이었으리라는 생각에 숲


을 가로막고 있는 울타리에 걸터앉았다. 순간 축축하게 젖어


있는 음모와 맞닿은 조깅 복위로 문종이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애액으로 젖어 가는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나는 너를 원해. 꿈속에서도 너를 원해."



규태는 주저하지 않았다. 조깅복에 지퍼가 달렸을 리는 없


었다. 그는 조깅복 바지를 까내리고 남성을 불쑥 내 밀었다.


정말 탐스러운 남성이었다. 규태의 남성이 눈앞에서 그 당당


한 위용을 자랑하는 것을 보는 순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해가 뜨고 있어요. 사람들이 올지 몰라요."



새벽의 바람은 예민하다. 그 말을 확인이나 하려는 듯이 저


밑에서 웅얼거리며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긴 아직 해가 뜨지 않았어."



규태는 사람들이 와도 상관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성


을 입 앞으로 가까이 갔다 댔다.



"산에서는 나는 소리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어…"



규태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는 얼굴로 남성을 그녀의


입술 언저리에 밀어 붙였다. 그녀의 입술이 번들거렸다. 번들


거리는 입술을 동그랗게 벌리느라 말꼬리를 흐리며 그의 당


당한 독일산 소시지를 덥석 물었다.



아!



좋아요. 당신이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상관


없다, 이 말이겠죠.



정신없이 그의 남성을 탐하기 시작했다. 아름답기도 해라.


어쩌면 이렇데 멋있는 분이 허구 한날 음지 속에 갇혀 지내


야 하는 걸까.



규태가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해서 머리카락을 움켜쥐


었다. 약수터에 오르는 동안 끊임없는 마찰로 인해 화가 잔뜩


나 있는 남성이 헐떡거리는 모습으로 입안으로 들어왔다가,


허전한 모습으로 밀려가곤 하는 동안 흥분이 최고조로 달하


고 있었다. 긴장을 하고 있을 때 오르가즘은 쉽게 오는 법이


다. 그의 남성은 아직 지칠 줄 모르는데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너무 간절하게 하고 싶어서 그의 남성을 붙잡


고 울고 싶었다.



그녀는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거리의 윤곽이 제


모습을 드러내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차도로 나갔다. 얼굴을 스쳐 가는 바람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데, 사랑하는 규태 생각에 가득 차 있는 마음을 슬프게 휘젓


고 있는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너무 뜨거웠다.



규태는 바람처럼 떠났다. 그가 떠난 후에 그녀는 말을 잃어


버리고 살았다. 돌아와 달라고 기도를 하고 싶었으면서 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그가 돌아올 것만 같아서 잠을 자다가고


벌떡 일어나 샤워를 했다. 그는 무작정 삽입을 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와 줘요!


얼마나 오랫동안 그 말을 하고 싶었던가. 목까지 차 오르는


그 말을 하고 싶었으면서 행여, 그 말을 하면 규태가 영영 돌


아오지 않을까 봐, 속이 타도록 남겨 두었던 말이 저절로 입


밖에 까지 새어나올 것 같아 입술을 악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목적지를 정해 두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버


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서울이란 거대한 기계 속의 먼지


만한 존재로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먼지가 날아갈 테지.



좌석 버스 한 대가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달려와서 멈췄다.


목적지를 확인하지 않고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단 한 명의


승객만 타고 있을 뿐이었다. 새벽 등산을 가는 모양인지, 등


산 파카를 입고 있는 육십대 노인이 끄덕끄덕 졸고 있는 버


스 안에는 그래도 좌석 버스라고 훈훈한 열기가 가득 차 있


었다.



승객이 없어 썰렁한 버스 안이지만 뒷좌석이란 아늑함 때


문인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버스는 정류장을 무시하고 정부의 남편에게 들켜 도망을


가는 사내처럼 쉬지 않고 어둠 속을 달렸다. 그러는 사이에


슬며시 잠이 들었다. 이상한 노릇이었다. 침대가 있고 네 활


개를 펴고 잘 수 있는 집에서는 불면증 환자처럼 꼬박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나 달리는 차안에서는 졸음이 코끼리


같은 몸짓으로 다가와서 눈꺼풀을 짓누르고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아니 버스는 얼마나 달렸을까. 눈을 끄고


싶었다. 그러나 혼곤하게 밀려오는 잠이 화들짝 놀라 도망을


갈 것 같아서 눈을 뜨고 싶지가 않았다. 버스는 여전히 달리


고 있었고, 해소병 걸린 노인처럼 가끔 크르릉 거리는 기침


소리를 토해 내며 또 정신없이 달렸다.



꿈속에서 규태의 얼굴이 보였다. 꿈속에서 규태를 보다니,


꿈인 줄 알면서도 너무 반가웠다.



그 동안 어디 있었어요. 제가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 아시


죠?



의식은 달리는 차안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그렇


기 때문에 규태를 만나는 게 현실이 아니고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반가움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졸고 있으면서 눈물을 흘리다니.



누군가 버스 뒷좌석에 앉아서 졸고 있는 자신을 보고 그렇


게 비아냥거릴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설령 정


신 병원을 탈출한 여자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꿈


속에서 규태를 봤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규태 씨 제발 가지 말아 줘요…



자나깨나 그리워한다고 했던가. 규태를 꿈속에서도 그리워


했기 때문에, 비록 꿈이라도 깨어나지 않길 빌면서 조금씩 멀


어져 가고 있는 규태를 애타게 불렀다.

규태의 모습이 젖빛 안개에 가려져 실루엣으로 서있을 때


그 안타까움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규태!



누군가 허벅지를 안쪽을 그것도 꽃잎 바로 앞부분을 슬슬


문지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꿈이겠지. 실루엣일망정 규태


의 모습이 사라질까 봐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뜨지 않


았다. 허벅지 안쪽을 문지르는 손이 조금씩 위로 올라오고 있


었다. 규태라면 이러지 않았다. 그는 섹스를 하고 싶어 할 때


무드를 싫어하는 남자였다. 하고 싶으면 불쑥 팬티 속으로 손


을 집어넣어 당황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싫


었다. 하지만 그의 손맛에 길들여지고 나서는 그 당황한 감촉


이 일초도 안 가서 온몸을 불태우는 불씨라는 것을 알았다.



이 남자도 그런 남자일까?



바지 위로 꽃잎을 슬슬 문지르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기 전


에, 규태에 대한 하늘같은 갈망에 목말라 하며 그렇게 생각했


다.



그래 조금은 비슷하구나.



바지를 문지르고 있던 손이 몹시 뜨겁다고 느끼는 순간, 천


천히 지퍼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긴 버스 안이야. 승객들이 있어.



의식은 그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그러나 규태 생각에 불면


속에 보낸 몇 일 간의 피곤이 억누르고 있는 몸은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꿈이라서 이런 것일까.



지퍼를 열고 있는 손이 조금씩 대담해 지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끼고 있으면서 거절할 수 가 없었다. 아니 좀더


엄밀한 의미로 말하자면 상대가 누구든, 마음대로 하라고 내


버려두고 싶었다. 그만큼 눈꺼풀이 무거웠고, 그만큼 규태에


대한 갈망의 크기는 북한산만큼이나 무거웠다.



아!



지퍼를 연 손은 거침없이 팬티 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그


손은 꼼지락거리며 조금씩 팬티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


했다.



마치 거기 거대한 흡인력을 지닌 여신이 손짓을 하고 있듯


이 팬티 속으로 조금씩 빨려 들어간 손이 꽃잎을 덮치는 순


간, 단단한 근육질을 소유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손


은 마디가 굵었고 짧았다. 굵고 짧은 손가락은 무성한 음모를


헤집고 V자를 그리며 꽃잎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헉!



그녀는 눈을 뜨지 못하고 신음 소리가 터져나올 것 같아


앞좌석에 팔을 괴고 머리를 묻었다. 또 다른 하나의 손이 거


침없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손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젖꼭지를 함부로 유린하며, 고무공을 주무르듯이 젖가슴을 주


물렀다.



어디선가 사과 향이 풍기는 것 같았다.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사내의 손을 잡고 꽃잎을 지그시 눌렀다. 사과 향이


아니고 휘발유가 타는 냄새라고 느끼는 순간, 사내는 이제 망


설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손가락을 꽃잎 속으로 집어넣었다.



사내의 손가락 마디가 너무 굵어 통증이 왔다. 그런데다 막


노동이라도 하고 있는지, 손가락 마디마다 링을 감아 놓은 듯


이 주름살이 있어서 통증은 더 심했다.



이러면 안돼! 이럴 수는 없어!



통증을 참기 위해 가랑이를 벌렸다. 한결 통증이 사라졌다


는 것을 느끼는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쾌감이 밀려 왔다.


이러다가는 팬티를 축축하게 적시는 애액에 사내의 손마디가


부르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제발 놔줘요.



또 다시 눈물이 나왔다.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쾌감의 눈물인가 하면, 배신의 눈물이기도


했고, 굴종의 눈물이기도 했다.



규태가 떠난 이후로 이처럼 온몸을 태우는 절정 속에 사로


잡힌 적이 없었다는 것이 쾌감의 눈물이라면, 이처럼 뜨거운


여자를 두고 지금쯤 외로운 섬에서 시를 쓰고 있을 지 모르


는 규태에 대한 배신의 눈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처럼 무기


력하게 얼굴도 모르는 사내의 손길에 어이없이 백기를 들어


야 하는 외로움에 지친 자아에 대한 굴종의 눈물이었다.



우리 내릴까?



꽃잎 속을 헤집고 다니는 사내의 손 임자는 아무런 말을


안 하고 있는데 마치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그의 남성이 있음직한 곳으로 손을 옮겼다.



헉!



그녀의 손이 사내가 우뚝 선 남성을 덥석 쥐는 순간 사내


는, 황소 울음 소리를 토해 내며 서둘러 지퍼를 내렸다. 그녀


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내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괴성을 지를 것 같은 압박감 때문이었


다.



흑!



사내의 남성은, 그의 손마디가 그런 것처럼 엄청나게 컸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사내의 남성은 사래 들린 사람처럼 껄떡


거리면서 그녀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는데도 힘차게


분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스가 정차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사내의 손이 황


급히 팬티 속에서 빠져나갔다. 군화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다급한 군화 발자국 소리를 내며 서둘러 버스에서 내려 버렸


다.



바람이 불어왔다. 냉방이 잘 된 버스 안에 겨울 바람이 옆


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얼굴도


모르는 사내의 굵은 손마디로 체험했던 오르가즘이 지나가


버린 정류장에서 사내와 함께 하차를 한 후였다.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참담한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올 정도로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게 아니었어. 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뿐야. 난 버


스 안에서 섹스를 원하지 않았어. 난 얼굴도 모르는 사내의


손가락질에 뜨거워지는 여자는 아냐.



아! 하지만 지퍼가 열렸지 않은가, 내 손가락을 이용하지


않은 채 지퍼가 열렸지 않은가, 바람이 달려와서 지퍼를 열었


을 리는 없어.



누군가에 위해 열려진 지퍼를 스스로 올려야 하는 참담함


은 그런 대로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 참을 수 없는 것


은 아직까지 젖가슴에 뜨겁게 남아 있는 얼굴 모르는 손자국


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슬며시 지퍼를 끌어


올렸다.



여기가 어디지?



버스는 서울을 빠져 나와 통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벽제쯤


일 거라고 생각하며 아이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다시


는 이렇게 허물어지지 않으리라 입술을 깨물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산야는 빗살로 내려 갈기는 첫눈


속에 주저앉아 있었다.



저 곳에 가고 싶어.



그녀는 마치 옆자리에 규태가 앉아 있기나 한 것처럼 중얼


거리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종점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 듬성듬성 박혀 있는 앞자리의 승객들 뒷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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