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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마면신협(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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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972 회 작성일 24-02-17 23:4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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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방산(外方山).
칠흑같은 어둠에 잠긴 삼경 무렵이었다.
스슥!
문득 하나의 인영이 외방산의 서단을 향해 야풍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을 유성처럼 날아가고 있는 인영. 그는 바로 용사
추를 안은 독종독인 나요미였다.
나요미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용사추를 안고 마치 한줄기 전궁(電弓)처
럼 산야을 날아넘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했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날고있는 것
이다. 다만, 백치인 나요미였지만 조금이라도 불사마궁에서 멀리 달아나야
한다는 의식만큼은 또렷했다. 그래서 무작정 그녀는 멀리 달리고 있는 것이
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나요미는 급급히 신형을 멈춰 세웠다. 그녀의 봉목이 검은 뇌전을
번뜩이며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요미.....왜 멈추느냐?"
나요미의 품에 안겨 있던 용사추는 기이함을 느끼고 쥐어짜는 듯 고통스
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누.....누가 있어, 아빠! 아빠와 요미를 노려.....!"
비록 백치가 된 그녀인지라 말은 더듬고 있었지만 안색만큼은 심각했다.
".......!"
용사추는 그런 나요미의 모습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
고 있었다. 나요미가 백치가 되어 정신은 맑지 못하지만 대신 본능이 무섭
도록 발달했다는 것을. 따라서, 나요미는 위기를 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느낀다. 그런만큼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한 것이었다.
이때, 나요미의 몸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시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은 나타난 적이 대단히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요미.....! 나를 내려다오."
위기를 느낀 용사추. 그는 비틀거리며 나요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그의 모습은 실로 끔찍했다. 그의 등판은 처참하게 으스러져 있었다. 인간
이 이런 지경에 처하고도 살 수 있다니 실로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유령삼보 중 하나인 염왕갑으로 방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심각한
중상을 입다니....번뇌마야의 번뇌마강은 진정 가공무비할 초극무공임에 분
명했다.
".........!"
하지만 용사추는 몸의 상처 따위를 돌볼 경황이 없었다.
그는 마라천강도에 몸을 의지한 채 오연한 자세로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
다.
"어느 방면의 친구요?"
그는 허실을 보이지 않기 위해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려 외방산이 찌렁찌
렁 울릴 정도로 소리쳤다. 그 외침이 끝난 직후였다.
스윽___!
좌측에서 돌연 거대한 혈영 하나가 섬전처럼 솟구치더니 그대로 용사추를
향해 내리꽂히는 것이 아닌가?
"벽섬풍!"
용사추도 맹렬하게 외침을 터뜨리며 마라천강도로 군림도결의 제 일식인
벽섬풍을 펼쳐냈다.
콰르릉......펑!
굉렬한 폭음이 야음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웃!"
용사추는 둔중한 신음과 함께 쓰러질 듯 신형을 휘청거렸다. 마라천강도
를 쥔 그의 손에도 막대한 충격이 가해졌다.
(최소한 오백 년 수위의 내공이다. 대체.....누구이기에 이토록 가공하단
말인가?)
용사추는 경악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때, 용사추를 공격한 혈영도 신형을 휘청거리며 땅 위로 내려섰다.
"헉! 당신은....?"
그 혈영을 본 용사추는 눈을 부릅뜨며 경악성을 터뜨렸다.
혈영은 팔 척 거구의 혈의노인으로 지극히 음산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하
지만 용사추가 놀란 것은 그의 인상 때문이 아니었다. 그 혈의노인은 그가
너무도 잘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__공포인마(恐怖人魔)!

혈의노인은 바로 그였다. 십대악인의 둘째이며 환우에서 가장 무서운 살
수조직이라는 공포혈림(恐怖血林)의 전대림주. 믿을 수 없게도 죽은 죽로만
알았던 그가 용사추의 앞에 버젓이 살아서 나타난 것이었다.
".........!"
공포인마의 살기 어린 시선이 용사추를 꿰뚫을 듯이 주시했다. 이어 그는
다짜고짜 한 마디 말도 없이 용사추를 덮쳐들었다.
파파팍!
시뻘건 조강이 빗발치듯 용사추에게 작렬했다. 공포혈조! 그것은 공포인
마의 독문조공이며 한 자 두께의 철벽을 격하고도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는
죽음의 초극무학이었다.
용사추는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전보다 두 배는 강해졌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마라천강도를 마주 내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용사추의 뒤에 있던 나요미가 허공으로 신형을 떠올
리더니 공포인마에게 시커먼 독종지력을 폭사시켰다.
"녹아.....버렷!"
꽈릉......!
양 인은 휘청거리며 지면으로 내려섰다.
공포인마의 가슴 부분을 가리고 있던 의복은 주르르 녹아내리고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공포인마는 전혀 중독이 되지 않은 듯 멀쩡하지 않은가?
용사추는 아연실색하며 호목을 부릅떴다.
(이럴 수가....!)
나요미도 크게 놀란 듯 두 눈이 동그래졌다.
"왜.....안 녹은 거지?"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의 손에 맞은 것은 무엇이든 녹는다고 믿어왔다. 그
런데,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예외의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공포인마는 그
녀의 독수에 녹기는커녕 중독된 증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용사추는 그 광경에 의혹이 치밀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삼 년 만에 나타났는데 무공은 두 배로 강
해지고.....독종독인인 요미의 절대독강에도 중독되지 않다니....!)
그는 미간을 깊게 찌푸리다가 갑자기 안색이 대변했다. 한 가지 무서운
예감이 그의 뇌리를 때리고 지나간 것이었다.
"활강시.....설마 십대악인이 모조리 활강시로 변했단 말인가?"
그는 눈을 부릅뜨며 경악성을 터뜨렸다.
이 때였다.
"큭큭.....과연 머리 돌아가는 것은 빠르군, 악마의 초인!"
돌연 어둠속에서 사악한 흉소가 터졌다. 그와 함께 하나의 백영이 어둠을
등지고 유령처럼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지극히 사악한 눈빛을 지닌 청년.
그를 본 용사추는 쥐어짜는 듯한 신음을 토해냈다.
"유령......태자!"

__유령태자(幽靈太子) 구음학!

청년은 바로 그자였다. 유령귀종의 젊은 효웅인....!
"크녠! 악마초인! 지난번에는 내 팔을 잘도 잘랐겠다? 오늘은 그 빚을 받
으러 왔다!"
구음학의 말투로 보아 그는 이미 용사추가 낭야왕임을 알고 있는 듯 했
다. 아마도 번뇌마야가 가르쳐 주었으리라.
용사추는 심기를 가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번뇌마야가 보냈겠지?"
구음학은 용사추가 고통당할 장면이 눈 앞에 선하게 보이는지 음산하게
히죽 웃었다.
"녠! 마야의 손에서는 아무도 벗어나지 못한다!"
말과 함께 그는 번쩍 손을 쳐들었다.
"옛 친구들을 소개해 주지!"
스슷......휙!
그의 손짓에 따라 야음을 뚫고 아홉 명의 인영이 유령처럼 솟아올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풍답공의 경공술을 펼치는 초강자들이었다.
"십대악인....!"
용사추는 경악의 신음을 터뜨렸다. 과연 그들은 용사추의 염려대로 십대
악인이었던 것이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조화독종(造化毒宗)이 빠지고 다른 인물이 그 자
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하지만 그도 역시 용사추가 잘 아는 인
물이었다.

__유령천마(幽靈天魔) 구유백.

바로 그였다.
구음학은 천인공노하게도 번뇌마야의 유혹에 빠져 죽은 자기의 아버지를
활강시로 만들어 조화독종을 대신한 것이었다.
스스슥.....!
십대악인들은 사방에서 서서히 용사추와 나요미를 향해 좁혀들었다. 그것
은 하나의 가공무쌍할 진세였다.
십방멸황지세(十方滅荒之勢)!
고금십대병진(古今十大兵陣)의 수위(首位)를 차지하고 있는 공포의 진세
가 그것이었다.
나요미는 사태가 몹시 불리해졌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물러갓!"
그녀는 교갈을 터뜨리며 선풍같이 휘돌아 십대악인을 향해 열 줄기의 절
대독강을 내쳤다. 하지만 허사였다. 십대악인은 믿을 수 없게도 단지 신형
을 한 번 휘청했을 뿐 끄덕도 하지 않았따.
"악!"
오히려 비명을 지르며 피를 왈칵 토해 낸 것은 나요미였다. 십방멸황지세
의 진세에서 일어난 반탄지력에 내부가 진동한 것이었다. 용사추는 절망적
인 심정에 사로잡혔다.
(요미마저 쓰러뜨리다니.....!)
그는 암담함을 느꼈다. 십대악인은 활강시로 화하여 이미 개개인이 도검
만독불침의 무적고수로 변해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활강시가 한 구도
아니고 열 구라니.....
활강시는 원래 전황 북리황을 노리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용사추는 성한
상태에서도 활강시 둘을 상대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죽음의 기로에선
위태로운 상태로 지금 그는 무려 열 명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용사추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어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마라천
강도를 서서히 치켜들었다. 그것을 본 구음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 웃었
다.
"카카캇! 그래야지. 대악마초인께서 그렇게 맥없이 당해서야 되겠는가?"
그는 음산한 괴소를 터뜨리며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징그러운
눈초리로 나요미를 주시하며 말했다.
"저 백치계집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죽이지 않고 본좌가 네놈 대신 듬
뿍 사랑해 줄 테니까!"
"닥쳐랏!"
용사추는 눈을 부릅뜨며 버럭 분노의 일갈을 터뜨렸다. 그와 함께 그는
구음학을 향해 마라천강도로 벽섬풍을 전개해 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이내 차단되었다.
파팟!
십대악인 중 옥마(玉魔) 옥수린이 유령처럼 몸을 날려 맨손으로 마라천강
도를 막아내는 것이 아닌가?
퍼억......카캉!
원래대로라면 틀림없이 옥마의 육장이 마라천강도에 박살이 났어야 했다.
하지만 옥마의 손에는 엷은 혈흔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타격을 받은쪽은
오히려 용사추였다. 그의 신형이 쓰러질 듯 휘청했다.
"빌어먹을....!"
그는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그런 그를 향해 적수천패종(赤手天覇宗), 십기천사(十欺天詐), 금모수황
(金毛獸皇)등이 한꺼번에 덮쳐들었다.
그것을 본 나요미는 찢어질 듯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 아빠를 다치게 하지 못해!"
쓰러졌던 그녀는 악을 쓰며 일어나더니 용사추를 몸으로 막아섰다. 위기
의 순간이었다.
"호호호홋!"
돌연 허공에서 요란한 교소가 터지며 십 리 일대가 무섭게 뒤흔들렸다.
그 교소에는 산을 허물고 바다를 가르는 절대마력이 서려 있었다.
"엇!"
구음학은 전신의 기력이 진탕되는 고통을 느끼며 몸을 휘청거렸다.
콰르릉.......펑!
동시에, 일천 장 밖에서 강기의 화살이 날아들며 용사추를 덮치던 세 구
의 강시들을 그대로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고오오.......!
서천으로부터 한 마리 거대한 피빛의 대붕조가 날아든 것은 그 직후였다.
대붕조의 등에는 한 명의 녹발미녀가 우뚝 서 있었다.
푸르스름한 녹발 탓인지 여인의 용모는 다소 요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는 가히 절세적이었다.
구음학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천년....마녀!"
그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공포의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그렇다. 혈붕을 타고 날아든 녹발미녀는 다름아닌 저 가공한 천년마녀였
다.
"호홋! 유령귀종의 쓰레기! 네놈을 죽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겠다!"
구우우!
천년혈붕은 주인의 위세를 등에 업고 거대한 혈익(血翼)을 휘저었다.
콰아아아......!
십대악인은 그 강풍에 휘말려 날아갈 듯이 몸을 허우적거렸다. 그 사이
로, 막강한 한 줄기 흡인력이 날아들어 용사추와 나요미의 몸을 빨아올렸
다. 그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천년혈붕의 거대한 몸뚱아리는 굉렬한 강풍을 끌며 삽시에 까마득하게 치
솟았다. 이미 장내에는 용사추와 나요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천년마녀를 실은 혈붕은 몇 번 혈익을 휘젓는가 싶자 벌써 남서로 사라져
버렸다.
"가서 번뇌마야에게 전하라! 곧 천마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호
호홋......!"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천년마녀의 날카로운 웃음소리만이 외방산을 뒤
흔들 뿐이었다.
"........!"
구음학은 넉이 나간 듯 멍하니 천년마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
다.

__전황이나 천년마녀가 나타나지 않는 한 악마십호가 살 가능성은 전무하
다!

번뇌마야의 예언은 불길하게도 그대로 적중된 것이다.


천년혈붕은 용사추와 천년마녀등을 태운 채 남으로 남으로 날아갔다.
다섯 개의 땅, 다섯 개의 대하, 그것들이 천년혈붕의 거대한 혈익 밑으로
아스라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문득, 하나의 거대한 산그림자가 천년혈붕이 지나는 전면으로 떠올랐다.
구름을 꿰뚫고 하늘마저 베어버리는 검같이 치솟아 있는 백색의 거산(巨
山).

__대설산(大雪山)!

그것은 바로 대설산이었다. 중원과 천축을 가르는 험산. 바로 그곳으로
천년혈붕은 날아가고 있었다.
고오오.......!
천년혈붕은 깎아지른 듯한 만년빙의 협곡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놈은 한
번 이곳에 와 본 듯이 지시가 없는데도 자신있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천년혈붕의 등.
".........!"
녹색의 모발을 흩날리며 천년마녀가 우뚝 서있었다. 그녀는 우울한 눈빛
으로 전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
용사추가 나요미에게 안긴 채 누워 있었다. 그런 그의 안색은 밀납같이
새하얗다.
"어디로.....가는 것이오?"
문득 용사추가 등을 보이고 있는 천년마녀를 향해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
었다. 그것은 용사추가 천년마녀에게 구조된 이후 최초로 한 말이었다.
"........!"
천년마녀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용사추의 예리한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천년마녀.....저 마교 영광의 시대부터 살아온 천년마후성의 여종사! 그
녀는 지금 무엇 때문인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본녀만이 알고 있는 비지(秘地)로 가고 있다. 그곳을...천년의
전장(戰場)이라고 한다."
천년마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용사추는 그 말에 안색이 일변했다.
"천년의 전장! 설마....!"
그의 눈이 경이로 번득였다.
"설마....그 옛날 천마와 사대천왕이 겨룬 그 최후의 격전지를 말하는 것
이오?"
용사추는 침음하며 물었다.
천년마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천마 최후의 전장이 바로 이곳 대설산에 있다."
그녀는 전면을 노려보며 말했다. 말을 하는 그녀의 눈가로 짙은 감회의
빛이 스쳤다.
천년전장(千年戰場).
그곳은 사상최강의 대마종 천마의 흔적이 최후로 남은 곳이었다.
일천 오백여 년 전,
저 마교의 절대자 천마(天魔)는 사대천왕(四大天王)의 도전을 받아 모처
로 떠났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부재시에 철혈마가와 번뇌마가의 총 공세가 진행되었고 마침내 천마
본가는 영원히 지상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서 천년마녀의 천년마후성도 공격을 받아 괴멸하였으며, 천년마
녀 자신은 죽음의 동토 북해로 피신하다가 빙하의 틈으로 빠져 버렸던 것이
다.
결국 천마의 실종은 마교의 멸망을 초래하고야 말았다. 물론 사대천왕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 천마와 사대천왕의 돌아오지 못한 최후의 결전장,
그곳을 일컬어 천 년의 전장, 혹은 천마대총(天魔大塚)이라고 불렀던 것
이다.
구우욱.......!
이때 문득 천년혈붕이 머리를 번쩍 들며 웅혼한 붕음을 토해 냈다.
용사추는 흠칫하며 전면을 주시했다.
수십 리에 이어졌던 빙하의 계곡이 갑자기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앞으로
하나의 거대한 빙벽이 나타났다.
높이 천여장에 달하는 거대한 빙벽, 그것은 저 북해의 빙하천벽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콰아아......!
용사추와 천년마녀를 태운 천년혈붕은 곧장 그 빙벽으로 날아갔다.
"이곳이 천년전장이다!"
천년마녀는 급격히 다가서는 빙벽을 응시하며 감회서린 어조로 말했다.
전면의 빙벽을 바라보는 그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세차게 깨물고 있었다.
"이곳에....다시는 오지 않으려 했다. 너....어린 아이 때문이 아니라면
이곳은 나 천년마녀의 뇌리 속에서만 영원히 잠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장탄식을 터뜨리며 말했다.
휘르르르......!
찢어질 듯 옷깃을 펄럭이며 서 있는 그녀의 두 어깨가 웬지 이 순간만큼
은 따뜻하게 감싸안아 주고 싶을만큼 작고 고독해 보였다.
천년최강의 대마녀. 그녀도 고독을 느끼는 것일까?
구우우.....!
이때, 천년혈붕은 다시 길게 울음을 터뜨리며 한 곳으로 접근했다. 그곳
에는 높이 칠팔십 장에 이르는 하나의 드넓은 균열이 자리하고 있었다.

"........!"
용사추의 몸이 문득 얼어붙듯이 굳어졌다. 그는 지금 하나의 투명한 얼음
의 벽 앞에 서있었다. 그곳은 천년빙멱이 잘라진 틈바구니의 끝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투명한 빙벽속에는 육 인의 시신이 얼어붙어 있지 않은가?
하나 하나 산같고 바다같은 기도를 지닌 고대인(古代人)들. 그들은 오인
이 일 인을 포위한 형상으로 굳어져 있었다.
용사추의 시선은 그 중 중앙에 포위되어 있는 한 명의 인물에게 고정되어
움직일줄 몰랐다.
그 인물의 나이는 사십대 정도로 보였다.
팔 척의 당당한 체구에 청색 전포를 걸치고 있는 그는 단지 마주 선 것만
으로도 숨을 죽이게 만드는 무서운 패천마력이 느껴지는 호방한 인상의 인
물이었다.
"으음.....!"
용사추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
다. 그는 또 한번 인간의 모습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황 북리황에게서 느꼈던 그 아득한 절망감과 일치되는 것이었
다.
청포를 걸친 거인, 그의 이름은 십방천마 철옥기였다.

__십방천마(十方天魔)!

달리 천마라고 불리는 고금제일마종! 그 잊혀질 수 없는 거인의 유체가
놀랍게도 얼음속에서 천 년을 살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
용사추의 눈가로 숱한 감회가 서렸다. 그는 가슴 가득한 격동과 함께 절
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천마 철옥기를 포위하고 있는 오 인의 인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 다섯명이란 말인가? 분명 천마와 싸운 것은 사대천왕이라는 정파
의 가장 강한 네 명 기인이었는데.....?)
용사추는 의의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검미를 모으며 오 인의
고대인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이내 그는 그들의 복장에서 신분을 추측해 낼 수 있었다.

-봉황여제(鳳凰女帝).

저 혼세사패천 중 봉황대정천의 전설적인 여전사. 그녀는 은빛의 갑옷과
은빛의 방패, 그리고 역시 은빛의 찬란한 검을 든 전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
다.
훤칠한 장신에 용모 또한 빼어나기 이를 데 없는 아름다운 여전사. 그녀
는 적사천인애에서 조우한 혈봉황과 아주 흡사한 인상을 지녔다.

-용존냉린(龍尊冷鱗).

그는 얼음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었다. 흡사 얼음의 벽에 융해되어 있는
듯 차갑고 냉혹한 인상의 백의중년인.
그는 천마의 좌측에서 천마에게 육박하는 자세로 얼어붙어 있었다.

-북천낭왕(北天狼王).

한 마리 회색 늑대(灰狼)을 연상시키는 회의의 거인. 그가 천산 낭황부
(狼皇府)의 조사이며 마교의 천하군림 때 있었던 변황의 절대자였다.

-화정(花精) 군염(君艶).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궁장미부. 그녀는 마치 꽃의 정령(精靈)같은 여
인이었다. 황실의 여인결사인 화벌(花閥)의 절대자인 그녀에게서는 일천오
백여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그윽한 꽃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봉황여제, 천년마녀 등과 함께 당시 환우삼미( 宇三美)로 불리던 꽃 중의
꽃(花中花)이었다.

이들이 바로 사대천왕이었다. 정파무림사상 최강의 고수자들.
그런데, 그들 외에 한 명의 인물이 더 그 얼음의 장막속에 갇혀 있었다.
그 인물은 놀랍게도 사대천왕의 그 누구보다도 강한 기도를 흘리고 있었다.
그 인물의 기도는 천마에 절대 뒤지지 않는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한 명의 서역 승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불영천존(佛影天尊), 바로 대뢰음사 사상최강의 땡중이 바
로 저자다!"
용사추의 호기심을 눈치챘는지 천년마녀가 문득 그의 옆으로 내려서며 말
했다.
"불영....천존!"
용사추는 경악의 신음을 발했다.
그는 일천 오백 년 전에 이역만리 천축에 있었던 절대의 신승이었다. 그
는 대뢰음사 사상 최강의 인물로 꼽히는 고승이었다.
천년 전, 북해의 빙하에서 북해마종 사사천에 의해 깨어났던 천년마녀를
다시 천 년 동안 잠들게 만든 저 뇌음천존. 그도 겨우 불영천존의 반푼 진
전을 얻은 정도였다고 한다.
불영천존은 그렇게 강했던 인물이었다.
천년마녀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얼음벽을 바라보았다.
"저 땡중이 아니었다면.....대종사께서 일거에 사대천왕을 바스러뜨렸을
것이다!"
그녀는 회한의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탄식했다.
십방천마 철옥기.....천 오백 년 전에 존재했던 천년마녀의 연인. 그는
사대천왕과 불영천존의 합격에 맞서 싸우다가 빙벽이 무너져 갇히게 된 것
이었다.
"이것을.....받아라!"
문득 천년마녀는 용사추에게 여섯 권의 비급을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천
마와 사대천왕, 그리고 불영천존이 남긴 절대무경들이었다.
천년마녀는 벽력뇌강궁에서 용사추를 만난 뒤 곧장 이곳으로 와서 그것들
을 수습한 상태였다.
용사추는 복잡한 시선으로 천년마녀의 손에 들린 여섯 권의 비급을 바라
보았다.

__봉황대정경(鳳凰大正經).
__용결(龍訣).
__낭황혈경(狼皇血經).
__화극심결(花極心訣).
__뇌음대법력(雷音大法力).
__천마지존천강결(天魔至尊天剛訣).

잊혀진 천년절기들. 그것들은 그 중 하나만으로도 능히 천하를 제패할 수
있는 막중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특히, 그 중 중요한 것은 뇌음대법력경과 천마지존천강결이었다. 그것들
은 저 불사마후 궁자연이 완성한 불사천존혈강과 함께 천년삼절공(千年三絶
功)으로 불리는 것들이었다.
용사추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제게 이렇게 잘 해주시는 것입니까?"
그는 천년마녀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느끼며 침중하게 물
었다.
천년마녀의 옥용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네게 잘해주는 것이 아니다. 너는.....마교지존의 운명을 타고난 아이
다."
그녀는 얼음속의 십방천마와 용사추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얼음속에 갇혀 있는 마교의 절대자. 그와 용사추는 흡사한 점이 많이 있
었다.
천년마녀는 언제부터인가 용사추에게서 떠오르는 천마의 환상에 괴로워하
고 있었다. 용사추 앞에 서 있으면 그녀는 흡사 천마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던 것이다.
그녀가 늘 용사추와 나란히 서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를 마주 보았다
가는 언제 그의 품에 몸을 던지게 될지 그녀는 겁이 났던 것이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부담이 된다면.....한 가지 부탁을 들어다오!"
천년마녀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빙벽 속의 옛애인을 바라보았다. 옛애
인의 시신을 지켜보는 그녀의 마음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회들이
뒤엉키고 있었다.
뽀얗게 물기가 차오르는 눈.....하지만 끝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가
슴으로 눈물을 삼키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 분을 대신하여.....제 이의 천마가 되어 주는 것이다. 나를 위해
서.....!"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힘겹게 말했다.
제 이의 천마. 그것은 천년마녀에게 있어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진 말이
었다. 그녀는 천마의 여인으로 예정되었던 운명이었다.
그 옛날, 그녀는 십방천마의 아내로 내정되어 있었다. 철혈마가와 번뇌마
가의 배신으로 인해 마교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십방천마 철옥기의
부인이 되어 평범한 여인으로 한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 이전의 문제였다. 최소한 그녀에게 있어서만은 천마의 아내
가 되는 것은 운명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천마후가
되어 다시 마교를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신을 받아줄 제이의 천마. 천년마녀는 바로 제이의 천마가 필요했
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은 용사추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었
다.
더구나, 용사추는 이미 자신의 처녀를 소유한 장본인이기도 하지 않은가?
천년마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아니, 신첩은 영원히 천마의 여인이에요. 천년 그 이전에 그러
했듯이 천년 이후인 지금에도.....!"
말을 하는 그녀의 두 볼 위로 사르르 홍조가 감돌았다.
천마의 여인.....그것은 누구에게 한 말인지 언뜻 구분이 가지 않았다.
빙벽 속의 십방천마에게.....? 아니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실질적인 자
신의 소유자인 용사추에게 한 말인가?
하지만 그런 것은 어차피 별 의미가 없었다. 용사추이든 철옥기이든, 두
사람 모두가 천마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용사추는 천 년의 시공을 격하고 부활한 철옥기일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그리하여, 윤회의 겁륜은 천년을 돌아 불행한 대마후 천년마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천년마후성의 성주인 여종사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평범한 여인으로서 살
아갈 기회를......
".........!"
"........!"
용사추와 천년마후는 석상인 듯이 굳어진 채 말없이 빙벽 속의 십방천마
철옥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 사람에게 미소를 짓는 듯 했다.
어느 사이엔가 용사추의 손은 천년마녀의 손을 꼬옥 쥐고 있었다. 천년마
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큼직한 손에 자신의 여린 손을 맡기고 있었다. 그녀
의 그 손은 이미 여종사의 손이 아니었다.
그 손은.....부드럽고 따스한 여인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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