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면신협(9)
페이지 정보
본문
제18장
유령삼보(幽靈三寶)
__ 철혈막부(鐵血幕府)!
철혈전막의 총본영인 철혈막부의 웅장한 성채가 여명 직전의 어둠 속에
파묻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철혈막부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봉.
"......!"
크르르르......!
일인(一人) 일수(一獸)가 산봉 위에 우뚝 서서 어둠의 장막에 덮인 철혈
막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단삼을 걸친 눈빛이 아주 청년과 흡사 거상 같은 거구를 지닌 붉은 갈기
의 사자였다. 바로 용사추와 호천적사였다.
용사추는 호천적사의 도움으로 막 적사천인애에 빠져 나오는 길이었다.
츠.....읏!
용사추는 형형한 눈빛으로 철혈막부의 한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곳은
용사추에게 참담한 좌절을 맛보게 한 전황 북리황 처소인 은황각(隱皇閣)이
있는 곳이었다.
"전황......!"
용사추는 침중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직은 귀하의 적수가 못 됨을 인정하겠소. 그러나......!"
그의 눈빛이 마치 천 개의 뇌전이 작렬하는 듯 강렬해졌다.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오. 그리고 그 때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
오! 전황......!"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철혈전막에서의 좌절은 용사추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적사천인애에서 만년용형혈지의 기연을 얻어 천년내공을 이루었으나, 여
전히 자신이 전황에게는 못 미침을 용사추는 알고 있었다.
그가 전황 북리황의 적수가 되려면 왕자지검(王者之劍)이나 천마대구식
(天魔大九式) 중 어느 하나를 완벽하게 완성해야 할 것이다.
"적제(赤帝)!"
용사추는 철혈막부를 내려다보며 문득 호천적사를 불렀다.
"이제 그만 적사천인애로 돌아가라. 혈봉황누님이 외로우실 테니......!"
그는 호천적사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크르르......!
호천적사는 나직하게 웅얼거리며 고개룰 끄덕였다. 이어 호천적사는 그
거창한 거구를 깃털같이 가볍게 돌려 산봉의 뒤쪽으로 뛰어내렸다. 곧 호천
적사의 거구는 여명 속으로 사라져 갔다.
"......!"
용사추는 사라지는 적사를 돌아다보지도 않고 철혈막부를 내려다 보았다.
"반드시...... 돌아온다! 철혈전막......!"
용사추는 낮게 중얼거리며 훗날을 기약했다.
이어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휘익!
용사추는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의 어깨가 흔들하는 순간
그의 신형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북천으로 날아 올라 까마득히 한 점
이 되어 사라져 갔다.
아직은 여명 직전이었다.
__낭야왕부(狼爺王府).
초하의 석양이 함양의 북방에 벌려 선 낭야왕부의 후원을 나른하게 비추
고 있었다.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낭야왕 주세업의 서재.
콰득!
돌연, 단목으로 만든 탁자가 용사추의 손아귀 아래에서 재로 부서졌다.
"경옥군주가...... 실종되었다고?"
뒤이어 용사추의 노성이 서재를 뒤흔들었다. 그는 무서운 눈빛으로 전면
을 노려보았다.
그의 앞에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부복해 있었다. 이십여 명의 비범한 신
위를 지닌 인물들.....! 그들은 바로 낭야십팔존과 옥마의 사천왕들이었다.
"......!"
"......!"
이십이 인은 참담하게 이지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십만대산에서 낭야왕부로 돌아온 용사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의 실종사건이었다.
그 중 하나는 다정관음 옥수교의 실종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바로 낭야왕
부의 안주인 경옥군주의 실종이었다.
다정관음 옥수교.
그녀는 분명 팔대흉사의 호위를 받으며 십만대산을 떠났었다. 그런데, 당
연히 낭야왕부에 있어야 할 그녀가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옥수교의 실종.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옥수교는 전황의 일기인 철혈일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실종은 바로
그 철혈일지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용사추의 마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졌다.
그런데, 엎친데 겹친 격으로 낭야왕부의 안주인인 경옥군주마저 실종되었
다. 용사추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경옥군주는 그녀의 처소에서 신비롭게 실종되었다.
낭야십팔존이 누군가?
십팔 인이 모여 있으면 전황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황실의 최강자들이었
다. 그런데, 그들의 철통 같은 방호망 속에서 경옥군주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녀의 처소에서는 실오라기만한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낭야십팔존과
옥마사천왕이 사력을 다해 탐색했으나 얻은 것이라고는 절망감과 참담한 치
욕뿐이었다.
경옥군주가 실종된 것은 이미 열흘 전이었다. 그 사건은 이미 황제의 귀
에까지 들어갔으며 대노한 황제이 일단의 황실 고수자들을 함양으로 밀파했
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열흘 전이라면 내가 철혈일지를 습득한 직후다.)
용사추의 운빛이 삼엄해졌다.
(그렇다면.... 경옥군주의 실종이 철혈일지를 노리고 자행된 것일까?)
뚜벅...... 뚜벅!
용사추는 낭야십팔존 등의 앞을 무거운 발길로 배회하며 염두를 굴렸다.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주세업의 출세를 위해 짓밟힌 뒤 버려진 불행한 여인...... 그 가엾은
경옥군주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는 내가 용서치 않는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
서라도.)
그는 결연한 어조로 다짐했다. 그런 용사추의 눈이 살기로 새파래졌다.
그는 늘 경옥군주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찌되었든
낭야왕 주세업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런 주세업을 용사추는 목적을 위해
제거한 것이었다.
그것이 용사추에게는 보상해 줄 수 없는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다. 그
런 심리는 경옥군주에 대한 연민으로 작용했다.
(반드시...... 구해 낸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는 경옥군주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불사할 생각이었다. 우뚝 몸을
세우는 용사추의 몸에서는 폭풍 같은 살기가 일어났다.
"......!"
"......!"
그 살기에 접한 낭야십팔존과 옥마사천왕은 부지불식간에 몸을 떨었다.
그만큼 용사추가 일으키는 살기와 분노는 무서운 것이었다.
(자...... 어디서부터 추적한다?)
용사추는 염두를 굴리며 검미를 모았다.
바로 이 때였다.
피____이잉!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하나의 하얀 물체가 창문을 꿰뚫고 용사추의 정
수리로 쏘아왔다.
"엇! 총사(總師)!"
중인들의 입에서 다급한 경호성이 일었다.
파팟!
하지만 그 순간 용사추의 손은 이미 그 물체를 잡아채고 있었다.
"......!"
그 물체를 받는 순간 용사추의 손에 화끈한 통증이 작렬했다. 날아든 물
체에는 천년공력을 지닌 용사추를 놀라게 할만큼 강력한 내력이 실려 있었
던 것이다.
"감히 암습을 하다니!"
"누구 ?"
휘___익! 슥....!
낭야팔존과 옥마사천왕이 동시에 대갈일성하며 급급히 떠올라 창밖으로
폭사되어 나갔다.
하지만 용사추가 무거운 어조로 그들을 저지했다.
"그만 두시오!"
그 예리한 청력은 한 즐기 파공성이 무서운 속도로 낭야왕부에서 멀어지
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암습자의 경공술은 용사추가 이제껏 본 어떤 경공의 대가보다 빠른 것이
었다. 용사추 자신이라고 해도 전력을 경주해야 그 자를 추종할 수 있을 것
이다.
중인들은 용사추의 저지에 움찔하며 추격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의 명
을 거역할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용사추는 침중한 안색으로 자신을 암격한 물체를 펴보았다.
(종이......!)
그것을 본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천년내공을 지닌 용사추에게 통증을 느끼게 만든 암기는 놀랍게도 한 장
의 지편이었다. 지편에는 쓴 지 얼마되지 않은 듯한 글이 적혀 있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낭야왕! 친전(親前)___!
십만대산(十萬大山)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경하한다.
영부인은 본좌가 융숭하게 모시고 있는 바, 살아 있는 그녀를 다시 보기
를 원한다면 철혈일지를 소지하고 낭산(狼山) 시황곡(始皇谷)으로 오라.
만에 하나 그대에 의해 불유쾌한 일이 시도된다면 귀하신 그대의 안사람
을 매음굴에 팔아 넘겨 세상 사내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__ 귀(鬼)>
"귀(鬼)?"
용사추의 눈에 새파란 섬광이 일었다.
그 지편의 끝에는 귀(鬼)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귀(鬼).....! 설마 경옥군주를 납치해간 것이 환우십좌 중 신비오인에
드는 암호명이 귀인 자란 말인가?)
용사추는 소리없이 침음했다.
용(龍), 호(虎), 귀(鬼), 화(花), 그리고 랑(狼)의 암호만으로 통하는 환
우십좌의 오인! 그 신비오인 중 귀(鬼)의 암호명이 용사추 앞에 나타난 것
이다.
용사추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귀(鬼).....!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대담하게 황실의 천금인 경옥군주를
노리는 것일까?)
그의 입술 끝이 씰룩였다. 그와 함께 지편이 그의 손 안에서 한 줌의 재
로 바스러졌다.
파스스.....!
"네놈이...... 누구이든지 상관없다. 감히 경옥군주를 건드리다니, 용서
치 못한다!"
용사추의 두 손이 불끈 움켜쥐어졌다. 그의 두 눈은 무서운 살기로 이글
거렸다.
"낭산...... 시황곡이라고 했으렸다!"
그는 살기 어린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은 낭야왕부의 북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낭야왕부의 북방......
그곳에는 진시황의 진짜 능묘가 감추어져 있다는 전설을 지닌 하나의 험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낭산(狼山)이었다.
낭산(狼山).
그것은 함양의 북방 오십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옛날, 그곳에는 수많은 늑대떼가 번식하여 피해가 아주 컸다고 한다.
그래서 낭산이라고 이름붙여진 곳이었다.
함양에서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늑대가 극성을 부릴 정도로 낭산의 숲
은 깊고 험하다.
어둠이 칠흑같이 깔린 삼경 무렵.
스슥!
하나의 우람한 인영이 낭산의 야천을 천마(天馬)같이 가르며 날아갔다.
그 인영은 한 번 도약할 때마다 무려 백여 장씩 날아건너 하나의 절곡으로
날아들었다.
그곳은 흡사 호리병같이 생긴 절곡이었다. 곡구는 십여 장 정도였으나,
곡의 내부는 몇 리에 이르는 드넓은 분지였다.
그 분지에는 수 많은 봉분들이 들어차 있었다. 오랜 풍상에 허물어지고
퇴락한 고묘들......
그 고묘들은 바로 저 진(秦) 제국 시대의 귀족들의 무덤이었다.
<시황곡(始皇谷)>
이 절곡의 이름이 바로 시황곡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저 진시황의 진짜 능묘는 함양 교외에 있는 시황능이 아니
고 이곳 시황곡의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다고 한다.
음울한 전설을 감춘 망자의 땅...... 시황곡!
스으...... 스으!
음산한 밤안개가 시황곡의 허물어진 고묘 사이로 자욱하게 흐르고 있었
다.
그 음울한 안개속에 문득 하나의 인영이 날아내렸다. 예의 우람한 인영이
었다.
한 자루 고검(古劍)을 짊어진 건장한 청년, 그는 바로 낭야왕 주세업으로
환신한 용사추였다.
"......!"
용사추는 빠르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나..... 주세업이 왔다. 모습을 보여라!"
그의 입에서 무서운 일갈이 터졌다.
우르르르릉!
그의 일갈은 막강한 내공진력이 실려 있어 시황곡의 지면을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이 들썩이게 만들었다.
용사추의 폭갈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음산한 음성이 일어 용사추의
귓전을 울렸다.
"쿡쿡! 그렇게 악쓸 필요없다. 낭야왕! 이미 알고 있으니.....!"
흡사 구층 지옥에서 울려나오는 듯 섬뜩한 귀기가 서린 음성이었다.
(지하(地下)다.)
용사추의 안색이 일변했다. 순간적으로 그 음성이 땅 속에서 들려오는 것
임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용사추는 경계심을 높이며 땅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크크녠! 시황곡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낭야왕! 조촐한 환영식을 준비했으
니...... 부디 사양하지 말기를 바란다!"
예의 귀기 서린 음성이 다시 용사추의 귓전에 이어졌다.
콰드드득......!
쩌____ 저적!
갑자기 용사추 주위의 지면들이 폭발하듯 갈라지면서 그 갈라진 지면으로
부터 십여 줄기의 그림자들이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캬____아아!
카카캇!
그 십여 줄기의 그림자들은 괴성을 지르며 용사추에게 덮쳐들었다.
"욱......!"
그런데, 그 십여 줄기의 괴영들이 덮쳐들자 갑자기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왔다. 그 악취는 정신마저 아찔하게 만들 정도로 지독하여 용사추는 일
순 신형을 휘청거렸다.
위.....이잉!
그러나 용사추는 악취와 음풍에 휘청이면서도 벼락같이 발검했다.
쩌____저적!
그의 거궐검이 횡으로 작렬하며 삼엄하기 이를 데 없는 무적검력이 빛살
같이 폭출되었다. 그것은 바로 왕자검기라 불리는 것이며 베지 못하는 것이
없는 전능지검(全能之劍)이었다.
카카칵!
퍼.....퍼퍽!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용사추를 덮친들던 십여 개의 괴영들이 거
궐검의 의 검기에 부딪쳐 스무 토막으로 갈라진 것은! 그런데 용사추는 또
한 번 흠칫 굳어졌다.
(시신......!)
잘려진 그 괴물체들을 본 그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가 베어 넘긴 괴영들
은 놀랍게도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시신들이 아닌가?
그것도 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시신들...... 끔찍하게도 그 시신들이 용
사추를 공격해 온 것이다.
(강시다! 적은 강시술을 익힌 자다!)
용사추의 눈빛이 흔들렸다. 암중의 적은 강시술을 구사하며 용사추를 공
격했던 것이다.
(귀왕 음백의 그것에 못지 않는 사술을 쓰는 자다. 주의하지 않으면 사법
에 걸리는 수도 있다.)
용사추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찬바람을 들이켰다.
이때 다시 용사추의 귓전으로 예의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후훗! 낭야왕!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주겠다. 전면을 보아라!"
"......!"
용사추는 자신도 모르게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뽀얀 밤안개로 덮여
있어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었다.
용사추가 앞 쪽을 향해 발 걸음을 옮겨 놓는 순간이었다.
돌연 밤안개가 엷어지며 그곳에 한 폭의 끔찍한 장면이 환상같이 드러났
다.
그곳에는 하나의 기둥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에는 한 명의
여인이 전라(全裸)로 묶여있었다.
전라의 여인은 두 손이 기둥에 묶인 채 마치 짐승의 암컷같이 두 팔과 두
다리로 엎드려 있었으며, 그런 그녀의 등 위로 한 마리 거대한 맹견(猛犬)
이 앞발을 걸치고 올라타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그 맹견의 뒷다리 사이에는 시뻘건 살덩이가 빠져나와 건들
거리고 있었다.
맹견에게 짓눌린 채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여인! 그 여인의 얼
굴은 용사추가 너무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바로 다름아닌 경옥공주
였다.
"군주!"
용사추의 안면이 참담하게 이지러졌다. 무서운 분노가 폭발하듯 그의 전
신을 휩쓸었다.
쐐......액!
그와 함께 그의 몸이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떠올랐다. 그는 맹견과 경옥
군주가 뒤엉켜 있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한 걸음에 용사추는 경옥군주
가 묶여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런데, 용사추가 그 기둥에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팍!
돌연, 그 모든 장면이 연기같이 꺼져버렸다. 용사추는 갑자기 발 아래가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차! 함정이다!)
용사추의 안색이 홱 변했다. 경옥공주가 능욕당하는 장면은 사이한 술법
에 의해 일어난 환상이었던 것이다.
용사추는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고, 그가 경각했을 때는 이미 그의 발 아
래에 끝이 보이지 않는 함정이 시커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우.....웃!"
화드드득......!
용사추는 폭갈을 지르며 함정으로 추락해가던 신형을 맹렬히 허공으로 휘
말아 올렸다.
바로 이 때였다.
"후훗! 낭야왕! 내려가라!"
콰드드득......!
음침한 일갈이 용사추의 윗쪽에서 일어나며 한 줄기 무서운 역도가 용사
추의 몸을 내리눌러왔다. 그것은 흡사 태산이 내리 누르는 듯 막강한 것이
었다.
콰____ 쾅!
"크으......!"
굉음과 함께 용사추의 신형이 그대로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용사추
의 모습은 삽시에 칡흑같이 어두운 함정의 저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후훗! 지존마맹의 백마(百魔)도 별개 아니었군!"
스스슥!
용사추가 어두운 함정속으로 빠져 들어간 직후, 어디선가 나직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한 명의 청년이 함정의 옆으로 유령같이 날아내렸
다.
청년의 용모는 실로 기이했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또한 두 눈은 푸르스름한 빛으
로 번뜩거리고 있어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괴상한 용모를 지닌
청년이었다.
그는 음산한 눈빛으로 뒷짐을 지고 용사추가 떨어진 함정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지존마맹의 마종들이 겨우 저 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지존마맹 따위
는 나 유령태자(幽靈太子) 구음학(九陰學)의 손만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으
리라!"
청년은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음산하게 웃었다.
__ 유령태자(幽靈太子) 구음학(九陰學)!
이것이 괴상한 용모를 지닌 청년의 이름이다. 그는 용사추를 삼킨 함정을
내려다보며 비릿한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흐흣, 이제 아버님께서 천마십예 중 가장 무서운 유령환허강살(幽靈幻虛
煞)만 완성하시면 된다. 아버님의 대공만 완성되면 지존마맹따위는 일거에
박살낼 수 있다!"
스읏......
그 자의 섬뜩한 푸른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것은 오싹 소름이 끼칠
정도로 괴기스러웠다.
"크녠! 결국...... 천하는 우리 유령귀종(幽靈鬼宗)이 진정한 마교의 적
통임을 알게 되리라. 단 하나의 적은 전황 북리황이지만 그는 철혈일지에
의해 제거될 것이니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유령태자 구음학은 음산하게 중얼거리며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자
의 웃음소리는 시황곡의 구석구석으로 음산한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 갔다.
<유령귀종(幽靈鬼宗)>
그들은 바로 저 마교십가(魔敎十家) 중 일가에 드는 일족이었다.
그들의 특기는 사술(邪術)로 이른 바 유령귀술(幽靈鬼術)이라 불리는 그
들의 사술은 가히 공포적인 것이었다.
유령귀종의 연원은 배교보다 오히려 더 깊은 것이 된다. 귀모(鬼母)에 의
해 이어진 배교의 사술과 비교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좌도빙문사술절기는 유
령귀종의 사이한 술법 외에는 달리 없다.
놀랍게도, 용사추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린 유령태자라는 자는 그 유령
귀종의 후예를 자처하지 않는가?
그그긍......!
이윽고, 육중한 굉음과 함께 하나의 거대한 석괴가 움직여 용사추가 추락
한 함정을 가려버렸다.
"내일 아침 쯤이면 낭야왕도 뱀의 먹이가 되어있겠지! 철혈일지는 그때
회수하면 된다!"
유령태자 구음학은 음침한 눈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자는 몸을
돌렸다.
문득 돌아서는 그 자의 눈가로 사악한 음소가 스쳤다. 그의 뇌리로 한 명
의 초췌하고 기품있는 미인의 옥용이 떠올랐다. 그 미녀는 바로 경옥군주였
다.
"후훗! 낭야왕을 제압했으니 이제 그 계집은 달리 쓸 데가 없다. 며칠 데
리고 잔 뒤에 사창가에나 팔아 넘겨야겠다."
유령태자의 표정이 음탕하게 변했다.
"하하! 황제의 여동생이 창녀로 전락하다니..... 꽤나 재미있는 일이 되
겠는데......!"
스스슥......!
잔혹한 웃음소리와 함께 유령태자 구음학의 모습은 흐릿한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시황곡에는 다시 음울한 적막이 찾아왔다. 깊고 암울한 음모가 그 적막속
에 무르익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함정.......
함정은 무척이나 깊어 무려 칠팔십 장이나 되었다.
그런데, 문득 지하 함정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 소리 침중한 신음성
이 일었다.
"음....... 그따위 치졸한 눈속임에 현혹되다니......"
진한 자책감이 실린 신음성. 바로 용사추의 목소리였다.
용사추는 한순간의 실수로 함정에 빠진 것에 대해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
다. 그는 지금 오십여 장 쯤 아래로 떨어진 함정의 벽에 붙어 서 있었다.
신검 거궐이 함정의 석벽에 꽂혀 있었으며, 용사추는 바로 그 신검 거궐
의 검신을 밟고 어둠 속에 우뚝 서 있었다.
이삼십 장 저 아래.
쉬익..... 쉬익......!
기분 나쁜 소성과 함께 수많은 녹광들이 용사추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섬뜩한 삼각형의 녹광들이 어둠 속에서 괴기롭게 번뜩이며 녹색 빛을 발
하고 있었다. 그것은 뱀의 눈이었다. 함정의 바닥 부분은 온통 헤아릴 수도
없는 뱀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놈들은 잔뜩 몸을 곧추세우고는 높직한 곳에
걸려 있는 먹이를 노려 보고 있었다.
그런 뱀떼들 사이로 수많은 해골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천 년 이전에 죽은 시신들의 해골이었다.
원래 이 함정은 진제국시대 어느 유력자의 묘지 중 일부였다. 묘지가 완
성된후, 묘지를 만든 장인들은 무참히 도륙되어 이 뱀굴에 던져졌던 것이
다.
해골은 그 당시 도륙되었던 바로 그 장인들의 유해였다.
"곤란하게 되었군!"
용사추는 난감한 표정으로 검미를 모았다.
함정의 입구는 이미 단단하게 봉쇄된 후였다. 게다가 발 아래에는 수천
수만 마리의 굶주린 뱀들이 어서 내려오라고 안달을 하고 있었다. 뱀이 무
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많은 뱀떼와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령태자 구음학이라고 했으렸다!"
츠.....읏!
용사추는 문득 살기 어린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어둠 속에서 새파란 살광
을 토했다.
"이 빚은...... 꼭 갚아주겠다. 경옥군주를 위해한 것으로도 부족해 감히
나마저 암습하다니......!"
그는 분노의 표정으로 입술을 실룩였다. 그는 당장이라고 함정을 뛰쳐 나
가 유령태자라는 자를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지금 그의 상태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을.
얼마나 지났을까?
"응....?"
번쩍!
돌연 용사추의 두 눈에서 섬광이 일었다.
그는 형형한 시선을 맞은편 벽으로 던졌다. 맞은편 벽까지는 대략 십여
장 정도 되었다.
그런데, 그 맞은편 벽에 하나의 길쭉한 물체가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
이었다.
길이는 세 자 정도였으며, 전체가 짙은 녹으로 뒤덮여 있어 그것이 무엇
인지 언뜻 식별할 수가 없었다. 함정 속이 너무 어두워 용사추는 그것을 이
제서야 발견한 것이었다.
용사추는 의혹의 눈빛을 지었다.
(저것이 무엇일까? 왜 저기에 박혀 있는 것일까?)
그는 잔뜩 검미를 모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눈에 언뜻 이채가 떠올랐다.
"어쩌면 저것이 이 함정을 빠져 나갈 수 있는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용사추는 눈을 빛내며 낮게 중얼거렸다. 독백을 하면서 그의 마음은 이미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있었다.
파____ 앗!
그의 몸이 문득 빙글빙글 휘도는가 싶더니 벽에 박혀 있던 거궐검이 순간
적으로 빠져나갔다.
"우웃!"
화드득......!
그와 함께 용사추는 벽면을 박차며 맞은편 벽으로 날아갔다. 벽이 그의
눈앞으로 확 다가섰다.
용사추는 눈앞으로 다가서는 벽을 향해 힘차게 거궐검을 찔러내었다.
카카캉!
거궐검에 부딪친 벽에서는 요란한 금속성과 함께 새파란 불꽃이 작렬했
다.
"철벽(鐵壁)?"
용사추의 안색이 일변했다.
뜻밖에도 그 벽은 무쇠로 만든 벽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보통의 무쇠가
아닌 만년한 로 만들어진 벽이었다.
파파팍!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신검 거궐의 두터운 검신이 만년한철
의 벽으로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보통의 병기였다면 만년한철의 벽과 충돌
하는 순간 부러지거나 휘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거궐검은 달랐다.
그것은 쇠를 흙베듯이 하는 신검이었다.
"휴우! 위험했다!"
용사추는 비로소 안도의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힐끗 아래를 내려다 보았
다.
쉬! 쉬쉬식!
이십여 장 저 아래에서 수천 마리의 뱀떼들이 아쉬움에 발광하고 있었다.
만약 그곳에 떨어졌다면 용사추는 어찌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
는 순간적으로 뼈만 남고 뱀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용사추는 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후훗! 미안하군. 네놈들의 식사거리가 되어 주지를 못해서...!"
이어, 그는 신검 거궐의 검신 위로 올라서서 벽면에 박힌 예의 물체를 살
펴보았다.
"칼(刀)이 아닌가?"
용사추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벽면에 박힌 길쭉한 물체는 한 자루 장도(長刀)였던 것이다. 전체가 시뻘
건 녹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그것은 확실히 한 자루의 칼이었다.
따.....당!
용사추는 손끝으로 그 장도의 검신을 퉁겨 보았다.
위____ 이이잉!
장도를 튕기는 순간, 돌연 장도의 검신에서 용(龍)이 울부짖는 듯한 진동
이 일면서 새파란 광휘가 함정 가득히 폭사되었다.
"웃......!"
용사추는 눈을 가리며 신형을 휘청했다. 장도의 도신(刀身)에서 일어난
도광(刀光)이 흡사 칼날같이 그의 눈을 찔러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함정의 아랫쪽에 모여 있던 뱀떼들이 비명을 지르며 해골더
미 사이로 숨어들어 일대 소란을 소란을 일으켰다.
쉬..... 쉬쉭......!
갑자기 눈부시게 일어난 새파란 도기가 그 극성스런 뱀떼들을 질겁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 만큼 장도의 도신에서 일어난 도광은 범상한 것이 아니
었다.
"신...... 도(神刀)다!"
용사추는 흥분하여 부르짖었다.
이어 그는 두 눈을 가늘게도 뜨고 장도를 바라보았다. 장도에서 일어나는
청색광망은 천년내공을 지닌 용사추에게조차 동공이 파열하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장도의 길이는 다섯 자, 도신의 폭은 한 치 가량 되었다. 그것은 도라기
보다 차라리 검(劍)에 가까울 정도로 도신의 폭이 좁았다.
게다가, 그 도신은 종이같이 얇은 데다가 기이하게도 반투명하였다.
기형(奇形)의 보도(寶刀)!
그것의 종이같이 얇은 도신에는 깨알 같은 글과 몇 개의 도형의 새겨져
있었다.
용사추는 도신에서 일어나는 청망을 빌어 그 글을 읽어 보았다. 글은 대
전체(大篆體)로 기록되어 있었다.
__마라천강(魔羅天剛) 만병제왕(萬兵帝王)!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마라...... 천강도(魔羅天剛刀)! 이것이......?"
용사추는 도신에 새겨진 글을 보자 안색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기형장
도는 용사추가 상상한 것 보다 열 배 무서운 신병이었다.
마라천강도(魔羅天剛刀)___!
그것은 환우에서 가장 무섭다는 환우칠중병(還宇七重兵)의 하나였던 것이
다. 이 마라천강도의 주인은 고금을 통해 가장 강했었던 인물이다.
-천마(天魔)!
지상최강의 조직이라던 저 전설 속의 마교(魔敎)의 절대자......마라천강
도는 바로 그 마교지존인 천마(天魔)의 호신마병이었던 것이다.
그것의 날카로움은 천년제일이었다. 그러나, 그 날카로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도신에 기록되어 있는 삼초(三招)의 도결(刀訣)이었다.
<군림마라도결(君臨魔羅刀訣).>
이것이 그 도결의 이름이었다.
천마대구식에 못지 않은 천마의 무적도식.......
그것은 모두 삼초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단 한 번도 제이식이 펼쳐진 적
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군림마라도결의 일초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__벽섬풍(霹閃風)!
__천붕멸(天崩滅)!
__탄허파멸참(彈虛破滅斬)!
악마의 삼도(三刀)......!
그 옛날 마교지존 천마(天魔)는 불행하게도 인세에서 군림마라도결의 제
이식 천붕멸의 도법을 펼칠 상대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가히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 하여 손색이 없는 도중제왕(刀中帝王)인 마
라천강도가 너무도 의외의 장소에서 용사추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용사추는 너무나 뜻밖의 기연에 흥분과 격동을 금치못했다.
"마라천강도가...... 이런 곳에 있다니, 역시 이곳은 보통의 묘지가 아니
다!"
그는 신광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조심스럽게 마라천강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잡아 뽑았다.
쩌.....정!
마라천강도는 수월하게 철벽에서 용사추의 손에서 서서히 뽑혀졌다. 그런
데 이 때였다.
그그긍......!
돌연 둔중한 굉음이 일며 철벽전체가 서서히 안으로 열려지는 것이 아닌
가?
"......!"
용사추는 그 광경에 흠칫했다. 그러나, 그는 거궐검의 검신 위에 우뚝 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사태의 추이를 관망했다.
철벽은 바로 이장 높이의 철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서서히 안으로 열려졌다. 아마도 마라천강도가 뽑혀지면서 철문을
움직이는 기관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철문의 안쪽은 음습한 어둠이 깔린 밀로였다.
"......"
슥!
용사추는 철문에서 뛰어내려 밀로의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밀로는 좁
고 건조했으며 끝이 어딘지 보이지를 않았다.
용사추는 다시 주의 깊게 밀실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그러다 문득 용사
추의 눈빛이 번뜩 빛을 발했다.
(시체......?)
그는 기광을 빛내며 밀로의 전면을 주시했다. 십여 장 저편의 밀로에 두
구의 시신이 놓여있는 것이 용사추의 눈에 들어왔다.
용사추는 어깨를 흔들하였고, 다름 순간 이미 그는 두 구의 시신 옆에 이
르러 있었다.
두 구의 시신은 일견하여 천 년 그 이전에 죽은 시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신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신의 주인들을 일남일녀였다.
사내쪽은 육 척이 넘는 장신의 인물이었다. 그 인물의 몸에는 한 벌의 기
이한 갑주(甲胄)가 걸쳐져 있었다. 손바닥만한 비늘을 엮어 만든 기형의 보
갑으로 그것에서는 서기로운 자광(慈光)이 노을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그 기형보갑은 범상한 것이 아니었다.
보갑을 걸친 사내는 벌렁 누운 자세로 죽어 있었는데 그자의 사인은 이마
에 박힌 하나의 손톱(爪)이었다.
은은히 핏빛이 도는 반투명한 손톱(血爪).
그 손톱의 길이는 네 치 정도로 전체적으로 섬뜩한 살기가 느껴지는 암기
였다.
용사추는 검미를 모으며 번뜩 기광을 발산했다.
"이것들은...... 혹시 유령삼보 중 두 가지가 아닐까?"
그의 뇌리에 다정관음 옥수교에서 들은 고사가 떠올랐다.
<유령삼보(幽靈三寶)>
그것은 바로 저 마교십가 중 유령귀종의 삼대중보(三大重寶)였다.
__염왕갑(閻王甲)!
__유령흡혈각(幽靈吸血角)!
__귀종혈경(鬼宗血經)!
이것들이 유령삼보였다.
유령귀종은 바로 이 세 가지 보물 덕에 마교의 십대주력 중에 들게 되었
는데 이것들은 유령귀종, 그 자체라고 할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유령삼보는 천여 년 전 유령쌍려(幽靈雙呂)라는 당시 유령귀종의
두 명 종사와 함께 신비하게 인세에서 사라졌었다.
"이들이...... 유령쌍려란 말인가?"
용사추는 눈을 빛내며 다른 한 구의 시신을 살펴 보았다.
그 시신은 여인이었는데 맞은편 석벽에 몸이 반쯤 박힌 채 죽어 있었다.
그녀의 사인은 가슴에 가해진 내가중수법이었다. 여인의 가슴 부분은 막
강한 수법에 의해 무참하게 바스러져 있었다.
그런 여인의 좌수에는 미쳐 발출하지 못한 네 개의 유령흡혈각이 끼워져
있었다. 아마도 염왕갑을 입은 사내가 내가중수로 여인의 가슴을 바스러뜨
리는 순간, 여인의 유령흡혈각이 사내의 이마를 꿰뚫어 버린 듯했다.
순간, 용사추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이들이 바로 유령귀종의 최후전인들이전 유령쌍려인 것은 확실한
데...... 부부였던 두 사람이 왜 서로 상잔한 것일까?"
용사추는 검미를 모았다.
"유령대제(幽靈大帝)! 그럼 저 시신은 흡혈마모(吸血魔母)이겠군!"
용사추는 두 시신의 이름을 낮게 중얼거렸다.
그들은 바로 유령쌍려라고 불리던 유령귀종의 초강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부부가 무엇 때문인지 이런 고묘 속에서 상잔한 시신으로 발
견된 것이다.
"혹시...... 이것 때문에?"
용사추는 마라천강도를 손에 쥐고 있던 마라천강도를 들어보였다.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럴지도 모르겠군! 마라천강도를 얻으면 제이(第二)의 천마(天魔)가 될
수 있으니...... 이것 때문에 상잔했을 수도 있겠군!"
용사추는 침음했다. 그의 추측이 정확히 그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았
다.
천 년 그 이전......
유령쌍려는 마교의 멸망시에 유실된 천마의 애병 마라천강도의 행방을 찾
아 천하를 주유하다가 이곳 시황곡의 고묘 속에서 마라천강도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마라천강도를 일견한 순간 두 사람의 마음에는 동시에 욕념이 일
었다.
마라천강도____!
그것을 독점할 수만 있다면 곧 제이의 천마가 되어 마교십가를 발아래 복
종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이 두사람은 무서운 유혹에 빠져 이성을 잃었으며, 원앙같던 두 부
부는 원수로 돌변하여 거의 동시에 서로에게 살수를 전개했던 것이다.
이들의 비극은 이렇게 일어났고 한 순간의 욕념이 이들을 이곳 시황곡에
서 영원히 잠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휴......! 패권에의 유혹이 그렇게도 강한 것일까? 부부가 원수로 돌변
할 정도로......?"
용사추는 권력의 막강함을 이들 부부의 종말을 보며 내심 탄식을 했다.
용사추는 바로 유령쌍려의 시신에서 염왕갑과 유령흡혈각을 회수했다.
염왕갑(閻王甲)-!
북해마궁의 비보인 사라보갑을 능가하는 호신보갑이었다. 그것에는 가해
진 충격을 두 배로 중폭하여 내치는 묘용이 있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공격하면 두 배로 반진되어 온 반탄지력에 치명적인 상해를 당하고 만다.
염왕이라는 이름은 그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유령흡혈각(幽靈吸血角)____!
최강의 암기로서 어떤 강력한 호신강벽이라도 종이같이 꿰뚫어 버린다.
유령흡혈각이 뚫지 못하는 것은 오직 하나 염왕갑 외에는 없다.
용사추는 뜻밖에도 이곳 시황곡에서 유령이보를 얻게 된 것이다.
용사추는 다시 두 시신이 있는 둘레를 살펴 보았다. 유령삼보 중 가장 귀
중한 귀종혈경(鬼宗血經)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귀종혈경은 보이지가 않았다. 아마도 유령쌍
려는 귀종혈경을 다른 곳에서 유실한 모양이었다.
"유령이보를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겠군!"
용사추는 귀종혈경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곧 그는 밀로의 석벽을 무너뜨려 유령쌍려의 시신을 함께 매장해 주었다.
비록 서로가 서로를 죽였으나 그들은 어쨌든 한 평생 같이 살기로 약속했던
부부사이였지 않았던가?
"부족하지만...... 이것으로 유령이보를 가져가는데 대한 작은 보상은 되
겠지......!"
용사추는 유령쌍려의 돌무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헌데 용사추가 돌무덤을 뒷전으로 돌아 나갈 때였다.
"아____ 아악!"
어디선가 한 줄기 처절한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
부르르......!
용사추의 전신에 격렬한 파문이 스쳤다.
돌연 터진 여인의 비명! 그것은 너무 짧게 일어났다가 사라져서 그것이
경옥군주의 비명이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찌 들으면 그것
은 경옥군주의 비명 같기도 했다.
(삼 마장 정도 떨어진 곳이다!)
용사추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무섭게 작렬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신형이 꺼지듯이 밀로에서 사라졌다.
스____팟!
추천48 비추천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