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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마면신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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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908 회 작성일 24-02-17 14: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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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악인성(惡人城)의 최후


"저 안에.....우리 십대악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조화독종이 하나의 철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길이 다섯 자, 폭 한 자 정도의 장방형 철함이었다.
"........!"
용사추는 힐끗 철함에 일별을 준 뒤 다시 시선을 십대악인에게로 돌렸다.
십대악인은 각자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어 누가 누군지 확연히 구분이 가
지 않았다. 그 십 인 중에서 용사추의 마음을 강하게 끄는 인물은 두 사람
있었다.
적수천패존(赤手天覇尊) 막륭과 옥마(玉魔) 옥수린이 그들이었다.
적수천패존은 흡사 하나의 산(山)이 웅크리고 있는 듯 거대한 체구의 거
한이었다. 호방해 보이는 기도에 담백한 눈빛이 인상적인 인물. 바로 그런
점이 용사추의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옥마 옥수린은 음마(淫魔)라고 지탄받는 인물이기는 했으나 뜻밖
에도 아주 수려한 외관에 맑고 지혜로운 눈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소문과 같은 악인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실상, 옥마 옥수린은 십대악인 중 가장 지혜로운 인물이었다.
용사추가 두 인물에게 관심이 팔려 있을 때, 조화독종의 음산한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일깨웠다.
"내일....담혜가 너를 한 곳 오지로 데려가 줄 것이다. 너는 그곳에서 저
철함 속에 든 우리들의 십악경(十惡經)을 연마하여야 한다. 여타의 안배
는.....담혜가 해줄 것이다."
그는 자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의 섬뜩한 자안은 용사추의 그의 뒤에
유령같이 서 있는 십전앙화 우담혜를 쓸어보고 있었다.
"이제 우리의 십 인은 개정대법으로 네 몸 안에 우리들이 평생 연마한 내
공지력을 옮겨줄 것이다."
".........!"
조화독종의 말에 용사추는 흠칫했다.
(그렇군. 백일수련을 하루에 마친다고 한 것이.....이런 방법이었군.)
그는 저으기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수라철면 안에서
그의 눈빛은 기이한 광채를 발하며 번뜩였다.
조화독종은 그런 용사추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이었다.
"이름하여.... 십극대혼대법(十極大混大法)이라는 개정대법(開頂大法)이
시전될 것이고 너는 우리들의 전 내공인 천년내공(千年內功)을 이어받게 될
것이다."
"천년.....내공.....!"
용사추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건조한 음성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하지만 그의 내심은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천년내공......그것이 어디 보통으로 들을 수 있
는 말이던가?
아니, 그것은 용사추가 감히 상상해 보지도 못했던 경지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경지를 얘기하는지 조차 그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천 년 간 면벽좌선해야 얻을 수 있는 가공의 수위.... 하지만 어찌
인간이 천 년을 살면서 수련을 쌓을 수 있단 말인가?
단언하건데, 역사상 그런 내공수위에 접근했던 자는 일찍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조화독종이 바로 그 천년내공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다.
내심 경악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용사추의 귓전으로 조화독종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우리들이 전수한 천년내공이 그대로 네 자신의 본신내공이 되
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하는 조화독종의 주름살투성이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한 줄기
미소가 스쳤다. 언뜻보면 그것은 조소같기도 했다.
"십극대혼돈법의 천년혼돈지력(天年混沌之力) 중에서....얼마만큼이나 네
것으로 할 수 있는지는 네 자신의 능력에 달린 것이다."
스___으.......
조화독종의 자주빛 눈동자가 용사추를 향해 가늠할 수 없는 기광을 담고
일렁거리고 있었다.
"천년혼돈지력 중에서 삼할 정도만 네것으로 한다고 해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할....!"
용사추는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의 눈빛이 수라철면 안에서 강한
의지와 기대로 빛나고 있었다.
천년내공의 삼할..... 그것만 해도 곧 삼백 년의 수위, 즉 오갑자에 해당
하는 공력이다.
그것은 용사추가 꿈도 못 꾸던 경지인 것이다.
환우무림을 통틀어 보아도 오갑자의 내공을 지닌 자는 열 손가락이나 채
울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인 것을.
오갑자의 내공.....그것만 해도 정말 엄청난 것이다.
하지만 용사추는 천년내공을 자신에게 순순히 넘겨줄 십대악인이 아니라
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일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 용사추의 귓전으로 십대악인들의 음성이 다투어 들려왔
다.
__크녠....우리들은 네놈을 환우무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너는.....이
렇게 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한 가지 일을 해주어야 한다.
__그것은 전황 북리황을 꺾고 저 정파의 돌대가리들의 우상인 철혈전막을
파멸시키는 일이다.
__크쿳. 잊지마라. 네가 해아 할 일을....너는 악마초인의 이름으로 저
철혈전막의 아성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하여 최후의 승자는 철혈전막과
전황 북리황이 아닌.....우리들 십대악인들임을 보여야 한다.
__이것이 네가 해야만 할 일이다. 악인성의 최우전사....악마초인으로
서.....!


콰르르릉____!
굉렬한 폭음이 악인별부 전체를 무섭게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한 자 두
께의 철문이 마치 종잇장같이 찢겨져 나갔다. 철문은 바로 십악전을 방호하
고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만년한철로 주조되어 만근화약으로도 깰 수 없는 견고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만년한철의 철문이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종잇
장같이 찢겨져 나간 것이다.
저벅.....저벅......
이어 산산이 찢겨진 철문으로 한 명의 인물이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흡사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육중한 걸음걸이의 인물. 나이는 오십 전후 정도 되
었을까?
육척의 훤칠한 장신에 무쇠로 빚은 듯한 장중한 체격.....그는 눈썹이 아
주 힘차고 짙게 뻗어 있었으며 깊이 침잠한 호목(虎目)을 지닌 중후한 인상
의 중년장한이었다.
그의 일신에는 검붉은 전포(戰袍)를 걸쳐져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 입었는
지 낡고 빛이 바래 있었다. 언뜻 보면 그다지 뛰어난 점이 없어 보이는 과
묵하고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
그러나 진정한 고수자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별다른 특출한 점이 없
어 보이는 그 인물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보이지 않는 막강한 신위와 위엄
을....
그것을 흡사 그물망같이 장내를 뒤덮어 버리는 압도적인 것이었고, 여타
의 어떤 막강함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절대의 힘을 지닌 것이었다.
뚜벅.....!
적포중년인은 걸음을 멈추며 십악전의 내부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십악전의 내부에는 열명의 괴인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마치 물빠
진 솜같이 탈진하여 쓰러져 있는 십 인의 남녀.
그들이 누구인지 적포중년인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십대악인.....그들이었다. 천하만악의 조종들.
그들이 탈진하여 마치 구겨진 휴지같이 나뒹굴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태산같은 기도로 우뚝 서있는 적포중년인의 귓전에 탈진하여 지친
듯한 괴악한 음성이 들려왔다.
"후훗.....늦었다......황(皇)......!"
적포중년인은 천천히 음성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의 끝
에 한 사람이 걸려들었다.
얼굴 전체가 수많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는 노인이었는데 그의 두 눈은 섬
뜩한 자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괴악한 용모를 지닌 그 노인은 벽에 기대
어 힘겹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 노인은 조화독종이었다. 조화독종은 몹시 지친 듯 두 눈이 움푹 꺼져
들어 있었고 안색은 핼쓱하다 못해 파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무엇인가 흡족한 기대감에 넘쳐있는 표정인 것이다.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득의에 찬 눈빛으로 적포인을 바라보았다.
"크녠. 악마초인은 이미 탄생되었다. 클클.....황(皇)....이번 승부에서
는 네가....진 것이다....!"
그는 호흡이 거칠어져 헐떡이고 있었으나 자신에 찬 음성으로 단언했다.
하지만 적포인의 중후한 얼굴에는 별다른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묵중한 기도에 흔들림없는 표정으로 조화독종을 바라보았다.
조화독종과 적포인. 그들은 첫 대면이 아닌 듯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로
보였다.
"삼십 년 전에는.....노부가 졌었다. 사람을 잘못 본 탓에 노부의 꿈이던
마교 부활의 염원은 목전에서 좌절당하고 말았었지....쿡쿡....."
조화독종은 마른 먼지를 날리 듯 툴툴 메마른 웃음을 날렸다. 그 웃음속
에는 오랜 숙원과 한(恨)이 엉켜있다가 가볍게 먼지로 비산하는 듯한 느낌
을 풍겼다.
지금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육신의 탈진은 오히려 그에게 정신
적인 자유로움을 부여해 주었다.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더 강하고 음험하
게 번뜩이고 있었다.
마교의 부활.....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설마 조화독종이 마교와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번에는....노부가 이겼다. 가장 큰 변수가 던져진 이상....네
가 최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조화독종은 자신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말을 마치며 그는 자신이
기대어 있던 벽의 일부를 눌렀다.
우르릉_____!
그러자 갑자기 둔중한 굉음과 함께 십악전 전체가 지진을 만난 듯이 뒤흔
들렸다. 벽이 무섭게 쩍쩍 갈라지고 십악전을 떠받치고 있던 석주들이 무서
운 굉음을 내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
집채같은 석괴들이 폭음과 함께 한순간에 함몰해 버렸다. 하지만 적포인
의 표정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흡사 금강나한
을 보는 듯 했다.
그의 침잠한 눈빛은 무너지는 십악전 저편의 조화독종을 바라보고 있었
다.
조화독종은 무너져 내리는 석괴들 사이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히죽 웃
었다.
"후훗..... 너는 영원히 노부를 이길 수 없다, 황(皇)! 네가 비록 전황
(戰皇)이라 불기기에 손색이 없을만큼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아! 그랬던가?
전황 북리황.....적포인이 바로 그였단 말인가?
천하제일인이라는 권좌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그는 지상최강의 조직인
철혈전막의 지존이었다.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신화(神話), 적포인은 바로 그렇게 불리
는 인물이었다.

우르르......!
십악전은 이내 천장 전체가 무너져 내렸고, 거북등같이 쩍쩍 갈라진 사면
의 벽들마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녠...너는 결코 노부를 이기지 못한다....황(皇)....절대로!"
무너지는 십악전을 바라보며 굉음속에서 조화독종은 괴악한 득의의 웃음
을 터뜨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위험합니다, 막주(幕主)! 물러나십시오."
전황 북리황의 뒤쪽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북리황은 그것을 듣지 못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주
위로 떨어지는 바윗덩어리들은 그의 몸 주위 일 장 사방에서 먼지로 부서져
버렸다.
그것은 그의 몸 주위에 무서운 호신강막이 흐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었다.
"막주! 제발.....!"
또 한 차례 예의 음성이 다급하게 울려왔다.
그제서야 북리황은 천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아직은....승부가 난 것이 아니오, 마야(魔爺).....!"
그는 천천히 십악전을 벗어나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마야(魔爺). 그것은 조화독종을 지칭하는 것일까?
"승부는....이제부터라오, 마야....!"
뚜벅....뚜벅....
북리황은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서두르지 않는 걸음걸이로 십악전
에서 멀어져 갔다.
그런 그의 뒤로 굉렬한 굉음을 내며 십악전이 완전히 함몰되고 있었다.

악인별부의 밖.
"빌어먹을....막주는 기어코 이 늙은이들이 말라죽는 꼴을 볼 작정이오?"
두 명의 범상치 않은 기도를 지닌 인물들이 악인별부의 입구에 초조하게
서 있다가 천천히 걸어나오는 북리황을 보고 퉁명스럽게 입술을 실룩거렸
다.
그들은 거구를 지닌 중과 낡은 마의를 걸친 노인이었다. 승려차림을 한
자는 도저히 중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먼저 그자는 굉장한 거구였
다. 얼마나 큰지 거인이라 불려 손색이 없는 전황 북리황보다 머리 하나 정
도는 더 컸다.
거기에다가 그의 생김생김은 도저히 자애로운 불자의 모습으로 보아 줄
수가 없었다. 흉신악살같이 생긴 흉악무비한 면상, 부릅뜬 두 눈은 흉흉한
살기로 희번뜩이고 있었고 얼굴의 절반은 온통 핏빛의 구레나룻로 덮여 있
었다.
일신에 걸친 승포도 피에 담갔다가 꺼낸 듯이 시뻘건 피빛이었으며, 무기
라고 들고있는 것이 어른 허벅지 굵기에 길이 일 장 반이나 되는 무지막지
한 금강봉(金剛棒)이었으니 그 흉흉한 기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혈불(血佛) 패륵.
이것이 흉승의 이름이다.
십대전신의 일 인이며 환우제일의 역사(力士)로 불리는 그는 본래 서역
혈가람(血加藍)의 제일고수였다. 성격이 불같은 것이 흠이지만 그는 악인은
아니었다.
삼십여 년 전, 갓 출도한 전황 북리황에 일천 초 만에 패한 뒤 북리황의
우비위가 된 인물이었다.
도치(刀痴) 막여(莫如).
혈불과 함께 있는 보잘것 없는 마의노인이 그였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두 눈이 게슴츠레하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듯이 보이
는 녹슨 장도(長刀)를 들고 있는 인물. 그러나 사실은 그가 혈불보다 더 무
서운 인물이었다.
그 역시 십대전신의 일 인이며 사실상 십대전신 중의 최강자로 꼽히는 자
였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신상의 모든 것이 온통
비밀에 싸여 있어 나이는 물론, 그의 출신조차 알려진 것이 없었다.
신비에 가려져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어쨋든 그는 십대전신중 최강자로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그것도 단 일 도(一刀)로 그 실력을 인정받았으니 그
의 무서움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일갑자 전, 도치 막여는 어떤 일로 인해 벽력대제와 충돌하게 되었고 일
도(一刀) 일식(一式)만에 벽력대제의 장포에 열 개의 도흔(刀痕)을 그어 버
렸다고 한다.
천하의 벽력대제가 미처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도치 막여의 일도
에 그런 치욕을 당했던 것이다. 그것은 천하인들조차 예기치 못했던 뜻밖의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어쨋든, 그 일로 인해 도치는 십대전신의 일인자로 당당하게 군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도치 막여이건만 그 역시 전황 북리황의 한 팔이 되는 인물이라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오."
북리황은 악인별부에서 벗어나며 혈불과 도치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콰콰____쾅!
그 직후 악인별부 전체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지하로 함몰해 버렸다. 실
로 위기일발의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북리황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악인별부 주위를 돌아보았다.
웅장하던 성은 그의 눈앞에서 거대한 불길에 휩쓸려 서서히 스러져 가고
있었다.
악인성(惡人城)___!
공포의 신화는 이제 괴멸되고 있었다. 만악(萬惡)의 근원지 악인성이 북
리황의 앞에서 흡사 피를 토하며 거꾸러지는 마신(魔神)같이 허물어져 내리
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악인성의 최후를 수만 쌍의 눈들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
다. 그들은 바로 철혈전막 막하의 철혈전사들과 정파의 명문의 인물들이었
다.
하지만 왜일까?
그것은 진정 그들이 바라던 일로 기뻐해도 좋으련만 악인성의 최후를 지
켜보는 수많은 인물들의 시선이 회한으로 물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일각 전에 한 마리 혈붕(血鵬)이 떠올라 북천(北天)으로 날아갔다고 하
더이다."
도치 막여는 힐끗 북리황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하지만 북리황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뒷짐을 진 채 말없이 불길속에
타들어가는 악인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옥룡궁주(玉龍宮主) 옥룡지존(玉龍至尊)이란 아해를 시켜 추적케
했소만....후원군을 보내야 할지....!"
도치 막여는 말을 계속했으나 북리황은 여전히 듣지 못한 듯 침묵을 지키
고 있었다.
도치는 어색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혈불을 돌아다 보았다.
하지만 혈불 패륵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 인의 시선은 북리황의 완강한 등에 집중된 채 침묵이 끝나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북리황은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을 느끼며 묵묵히 악인성의 최후를 지켜보
고 있었다.
화르르륵_____!
불길은 잦아들 줄도 모르고 거센 화마(火魔)속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기세는 천하를 집어삼킬 듯 했다. 최후의 발악을 하듯 시뻘건 불길속에 몸
부림치며 악인성은 그렇게 괴멸되어 가고 있었다.
덧없는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북해(北海)___!
끝이 없을 듯이 펼쳐진 빙하(氷河)의 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차가
운 얼음과 빙하 뿐, 살아움직이는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황혼 무렵.
새하얀 얼음바다(氷海)에 낙조가 떨어지고 있었다. 북해의 황혼은 유난히
붉다.
고___오오!
문득 한소리 날카로운 붕음(鵬音)이 북해의 차가운 하늘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남천 일각에서 하나의 붉은 점이 나타나더니 급격히 커지기 시작
했다.
북해의 하늘을 가르는 붉은 물체,
그것은 한 마리 핏빛 깃(血羽)을 지닌 거대한 붕조였다. 양 날개를 활짝
편 길이가 무려 십여 장이나 되는 거대한 혈붕.
퍼드득____고오......
혈붕은 수레바퀴같은 핏빛 날개를 힘차게 저으며 북으로 북으로 날아갔
다.
천년혈붕(千年血鵬).
이것이 그 혈붕의 이름이었다. 천 년 이상을 살아온 만금(萬禽)의 제왕
(帝王).
그것은 십대악인 중 금모수황 원세악의 호신 영물이었다.

천년혈붕의 등.
마치 피빛 융단이 깔린 듯한 천년혈붕의 넓은 등 위에는 이 인이 앉아 있
었다. 물론 그들은 용사추와 십전앙화 우담혜였다.
"........!"
십전앙화 우담혜는 다섯 자가 넘는 삼단같은 수발을 바람에 흩날리며 마
치 조각같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창백했고 공허해 보였다.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생각도 읽을 수가 없는 눈빛.
그런데, 지금 그런 그녀의 가슴에는 용사추가 괴롭게 숨을 헐떡이며 안겨
있었다.
"으음....!"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하며 눈을 감고있었다.
기이하게도 그의 얼굴은 마치 불에 달군 쇳덩이같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시시각각 열 가지 색으로 돌아가며 물들고 있었다.
적(赤), 청(靑), 자(紫), 백(白), 황(黃), 녹(綠)......
수시로 변하는 용사추의 안색.
그것은 십대악인이 그의 몸에 불어 넣은 천년내공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이었다.
십대악인의 천년내공, 그것은 사실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거창한
것이었다.
용사추가 비록 불사혈정을 통과하여 불사지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시
에 그 막강한 역도(力道)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용사추의 안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위험.....하다.)
우담혜는 고통을 참고 있는 용사추를 내려다보며 문득 눈빛이 흔들렸다.
용사추의 수라철면은 일찌감치 그녀가 벗겨버린 상태였다. 그로인해 수려
하고 준미한 용사추의 본래 얼굴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 있었다.
우담혜는 용사추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가 왜 수라철면 속에 본래의
신분과 얼굴까지 숨기고 있어야 했는지를 모를 뿐이었다.
(빨리....북해마궁(北海魔宮)에 닿아 이 사람이 천년혼돈강력을 수습하도
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이 사람은 천년혼돈강력의 폭발을 견디지
못하고 폭사하고 말 것이다.)
우담혜는 암울한 눈빛으로 용사추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빛은 복잡한 상념으로 얽혀들었다.
문득, 생각에 잠겨 있던 우담혜의 고운 아미가 살짝 모아졌다. 그녀는 고
통에 떨고 있는 용사추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람은 분명 철사표국의 일개 표사였는
데....어쩌다가 악마초인과 뒤바뀌었을까?)
그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사람의 본래 신분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
은....이 사람이 나 우담혜와 악마십로군벌(惡魔十路軍閥)의 주인이 될 악
마초인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복잡한 상념들을 하나로 귀결시켜 버렸다. 그것으로 그녀의 마음
은 더 이상의 의혹도 갈등도 남김없이 지워버렸다. 백짓장같이 창백한 우담
혜의 옥용에는 살풋 홍조까지 떠올랐다.
용사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가슴 한쪽으로 야릇한 설레임같은
감정이 실핏줄처럼 미세하게 퍼져나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악마십로군벌이란 십대악인들이 구축해 놓은 세력들을 총칭하는 것이었
다. 그들은 철혈전막과 정파에 대한 대반격의 날을 기다리며 천하 십지(十
地)에 도사리고 있는 상태였다.
용사추는 십대악인들에게서 그 악마십로군벌에 대한 통수권을 위임받고
있었다.
그 때였다.
구워억!
문득 천년혈붕이 날카롭게 한소리 경호성을 토했다. 그놈이 날아가는 전
면으로 하나의 거대한 빙벽이 마치 장벽인 듯 확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높이 일천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 그것은 황혼을 받아 흡사 피로 칠
한 듯이 붉게 물들어 있는 거대한 얼음의 벽(氷壁)이었다.
"빙하....천벽(氷河天壁)!"
우담혜의 입에서는 부지불식간에 나직한 탄성이 토해졌다.
북해 제일의 오지.
수십, 수백만 년 동안 쌓인 만년빙(萬年氷)이 단층작용을 받아 갈라지면
서 생긴 북해제일의 오지가 바로 빙하천벽이었다.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는 천 장의 빙벽, 그 빙하천벽 너머에는 천여 년 전
에 멸망한 하나의 초강파의 유적이 자리하고 있었다.

북해마궁(北海魔宮).

이것이 바로 그 전설 속의 초강파의 이름이다.
북해마궁은 북해제일의 강파였다. 그들이 번성하던 천여년 전, 북해마궁
의 성세는 과거 마교의 그것에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다.
한때 그들의 세력은 서(西)로 천산(天山) 근역, 동(東)으로는 발해, 그리
고 남으로는 막북(漠北), 막남(漠南) 일대까지 뻗혀 있었다. 그러나 천여
년 전 북해마궁은 중원무림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준비하던 도중에 의문
의 멸망을 당했다.
그들이 왜 돌연히 멸망당한 것일까?
그것은 천여 년 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다왔다. 저 빙하천벽만 넘으면.....북해마궁의 유적이 있다."
우담혜는 눈앞으로 확 다가서는 빙하천벽의 거대한 위용을 바라보며 비로
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쏴____아아!
그 사이 천년혈붕은 급격히 상승하여 천장의 빙하천벽을 날아넘기 시작했
다. 그 기세는 날렵하고 비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천년혈붕이 막 빙하천벽을 날아넘을 때였다.
한소리 굉렬한 장소성이 빙하천벽을 우르르! 뒤흔들었다.
"우하핫! 십전앙화, 악마초인! 이제 오느냐?"
"헉!"
우담혜의 입에서 일순 숨넘어갈 듯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그녀의 안색
은 순식간에 밀납같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아연한 표정으로 빙하천벽
의 정상을 내려다 보았다.
그런 우담혜의 시선 끝에 일인일수가 빙하천벽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쏘아져 들어왔다.
타는 듯이 붉은 갈기를 지닌 한 마리 신마(神馬)가 빙하천벽 위에 마치
환상처럼 서 있었다. 새하얀 얼음벽과 대조를 이루어 신마의 붉은 갈기는
핏빛으로 더욱 선연해 보였다.
그리고 그 적마의 등 위에 한명의 준수한 청년이 앉아 있다. 그는 그림같
은 자세로 앉아 빙하천벽을 날아 넘은 천년혈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관옥같은 수려한 용모에 운치있는 자포를 걸친 청년은 첫눈에도 사람의
시선을 확 끌어당길 정도로 영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나치게 영준한 그
의 용모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감퇴시킨다고나 할까?
그 자포청년을 발견한 우담혜의 눈빛이 크게 동요하며 경악의 외침이 터
져나왔다.
"옥....룡지존!""
옥룡지존(玉龍至尊).
이것이 자포청년의 이름이었다.
그는 십대악인 중 옥마 옥수린과 함께 천하쌍준(天下雙俊)으로 불리는 미
남자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십대의 청년으로 보이지만 실상 그는 마흔이
넘는 중년의 나이였다.
옥룡신궁(玉龍神宮)이라는 천외문파의 지존이며 동시에 십대전신의 일인
이기도 한 인물이다.
그가 타고 있는 붉은 갈기의 신마는 적사총이라는 영물로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지상에서 가장 빠른 준마였다. 옥룡지존은 그 적사총을 타고 악인
성에서부터 천년혈붕을 추격해 왔던 것이다.

"위험하다! 피해라, 혈붕!"
우담혜는 위기를 느끼며 다급한 교갈을 내질렀다.
빙하천벽 위에서 옥룡지존이 한 자루 강궁(强弓)을 들어올리는 것을 본
것이었다.
콰아아.....!
천년혈붕도 위기를 느꼈는지 한 소리 괴성을 토하며 급급히 허공으로 상
승해 올라갔다.
그러나, 피이잉! 하는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옥룡지존이 들어올린 강궁
의 시위가 놓여지며 하나의 붉은 화살이 천년혈붕에게 폭사되어 왔다.
쐐____애앵!
비단폭이 찢기는 듯한 소성이 일며 화살은 섬전같이 다가섰다.
"안 돼.....!"
우담혜의 입에서 참담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 직후,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천년혈붕의 목으로 파고들며 고통
스런 천년혈붕의 울음소리가 북해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선연한 피무지개가 확 일며 천년혈붕의 피빛 깃털이 분분이 허공에 비산
했다. 그와 함께 옥룡지존이 쏜 화살에 격중된 천년혈붕의 거구는 커다랗게
포물선을 그으며 빙하천벽 아래로 추락해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이었다.
우담혜는 그 돌발적인 사태에 미처 대처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악!"
그녀는 그대로 천년혈붕의 등에서 퉁겨져 나갔다. 아찔한 현기증이 그녀
를 혼절 직전까지 몰아 넣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우담혜는 빙하천벽의
거대한 빙벽이 크게 확산되며 눈앞으로 다가서는 것을 느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아야 한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행위였다. 그녀
는 이를 악물고 급격히 허공에서 몸을 틀어 그대로 빙하천벽 위로 몸을 던
졌다.
쿠____웅!
"악!"
간일발의 차이로 우담혜의 교구는 빙하천벽 위에 내던져졌다. 그 격렬한
충격으로 인해 우담혜는 빙하천벽 위에 모질게 나뒹굴어야 했다.
하지만 어쨋든 그녀는 살아났다. 삶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그녀를 살려
낸 것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쐐____애액!
우담혜만을 떨어뜨린 천년혈붕은 구슬픈 비명과 함께 아득한 빙하천벽 아
래로 추락하여 갔다.
물론 그 위에는 용사추가 타고 있었다.
천년혈붕의 거구는 순간적으로 까마득한 하나의 점으로 변해 빙하천벽 아
래로 사라져갔다.
"안 돼! 아아....안 돼!"
우담혜는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빙하천벽 끝으로 기어갔다. 무심하고
공허롭기만 하던 그녀의 얼굴은 지금 처절한 비애와 절망감으로 물들어 있
었다. 그녀의 전신은 날카로운 얼음에 베이고 찢겨 삽시에 피투성이로 변해
갔다.
"아아......사추! 안 돼요......안 돼.....!"
하지만 그런것에는 아랑곳없이 그녀는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빙하천벽의
끝을 향해 기어갔다.
그러나 힘겹게 빙하천벽의 끝에 이른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천년혈붕
과 용사추를 단번에 삼켜버린 후 그래도 부족한 듯 시커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단애뿐이었다.
마치 지옥의 입구같은 시커먼 단애.....
고오오......
그곳에서는 뼈를 에이는 듯한 지독한 빙풍이 마치 지옥의 유부에서나 흘
러나옴직한 귀곡성을 내며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흐윽....사추. 당신을 혼자 보내지는 않겠어요. 소녀는....당신을 지켜
야 할 악마초인의 그림자니까....!"
우담혜는 슬픔과 절망으로 복받치는 오열을 참지 못했다. 언제나 감정을
절제한 듯 무심했고 한 올의 표정조차 찾기 힘들었던 공허한 그녀의 모습과
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악인성의 여제갈이라 불리는 우담혜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그녀건만 용
사추가 참변을 당하자 그녀를 제어하고 있던 감정의 뚝이 갑자기 봇물 터지
듯 터져버린 듯 했다.
그녀는 피투성이의 몸으로 엉금엉금 기어 빙하천벽의 가장자리로 다가갔
다. 어떤 일에도 흔들림이 없을 것 같던 그녀의 이성은 이미 상실된 지 오
래였다. 지금 그녀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감정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용사추를 잃은 것에 대한 절박한 상실감. 그로 인한 지극한 슬픔만이 그
녀의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의 전부였다. 용사추를 따라 빙하천벽에 몸
을 던질 작정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빙하천벽으로 몸을 던질 수가 없었다.
"흐윽...."
한 줄기 예리한 역도가 날아들어 갑자기 그녀의 혼혈을 짚어버렸기 때문
이다.
스스슥......
혼절하여 축 늘어진 우담혜의 등 뒤로 옥룡지존의 모습이 유령같이 다가
섰다. 그는 묘한 눈빛으로 우담혜를 쓸어보았다.
"십전....앙화! 이 계집이 마도일염(魔道一艶)이라 불리는 계집인가?"
그는 구석구석 핥듯이 우담혜의 흐트러진 모습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눈으로 탐욕의 빛이 흘렀다.
찢겨진 치마자락, 그 사이로 드러난 우담혜의 희고 풍만한 허벅지를 바라
보던 옥룡지존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그는 조심스럽게 혼절한 우담혜를 안아들었다.
"후후.....악마초인을 제거하고 덤으로 마도제일의 미녀라.....북해까지
온 보람이 있었군."
옥룡지존은 득의의 표정으로 히죽 웃으며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우담혜를 안은 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각....따각.....
기다리고 있던 적사총이 옥룡지존을 향해 다가왔다.
고오오.......!
돌아서 걷는 옥룡지존의 등 뒤로 빙하천벽 아래에서 치솟는 장풍이 음산
한 귀곡성을 내며 솟구쳐 올라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북해..... 죽음의 벽, 빙하천벽이었다.


제5장
금마지문(禁魔之門), 천 년 전의 마녀(魔女)


빙하천벽의 바닥.
그곳은 대체 얼마나 깊은지 알 수가 없었다. 햇빛 한 올조차 들어오지 못
하는 암울하고도 음산한 암흑이 죽음처럼 무겁게 흐르고 있었다.
칼날같이 날카롭게 치솟은 채 난립한 얼음의 기둥들.
고오오......
그 얼음의 기둥들 사이로 살을 에이는 듯한 빙강풍(氷强風)이 마치 지옥
의 유부를 헤매는 산발한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 빙강풍은 얼마나 지독한 냉기를 품고 있는지 화산이라도 얼려버릴 정
도였다. 엄청난 극한음기를 독기처럼 서리서리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그 빙강풍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그가 아무리 절정의 내공을
지녔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 얼어붙고 말 것이다.
으시시한 죽음의 협곡.
그러나.....예외는 항상 있는 법이었다.

칼날같이 난립한 얼음기둥들 사이.
구우우.....
핏빛 깃(血羽)을 지닌 한 마리 거대한 붕조가 얼음기둥 사이에 쓰러진 채
죽어가며 신음하고 잇었다.
아, 그놈은 바로 천년혈붕이었다. 옥룡지존에게 요격당해 추락했던.
천년혈붕이 쓰러져 있는 주위에는 얼음기둥들이 그놈의 거구와 충돌하여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천년혈붕은 그 극심한 충격으로 한쪽 날개와 가슴이
처참하게 으스러진 채 죽어가는 상태였다. 상처에서는 연신 꾸역꾸역 선혈
이 흘러나와 수십 장 방원을 피로 흠씬 물들이고 있었다.
참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크으.....!"
문득 괴로운 신음소리와 함께 죽어가는 천년혈붕의 날개 밑에서 한 명의
혈인이 기어나왔다. 전신이 피로 흠뻑 젖은 피투성이 청년은 바로 용사추였
다.
그는 기적과도 같이 살아난 것이다.
천년혈붕은 뛰어난 영물이었다. 그놈의 거대한 동체가 용사추를 극심했던
추락의 충격에서 방호해 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결코 그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크으....물.....물을.....!"
용사추는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며 타는 듯한 목마름에 몸부림치고 있었
다. 그는 혀끝이 말라 하얗게 갈라지는 듯한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
다.
그의 전신은 흡사 불에 달군 쇳덩이같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다.
천년내공, 그의 몸 안에 고여 있는 십대악인의 천년내공이 마침내 폭발
직전에 이른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는 반 각이 채 아니되어 천년내공의 폭
발로 폭사해 버릴 것이다.
"크으....!"
파파팍!
용사추는 죽음보다 더 지독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얼음바닥을 벅
벅 긁어대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지독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점점 아득히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가물거리는 의식의 한 자락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 죽으면....여설에게 볼 낯이 없다.....)
용사추는 문득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위해 꽃잎처럼 죽어간 궁여설의
모습을 떠올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얼굴, 꽃다운 그녀의 모습을.....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이내 꽃잎처럼 흩어지고 그의 의식은 아
득한 혼돈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여설.....미안.....하오......!"
용사추는 아득히 정신을 잃어가며 서글픈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때였다.

__일어나요! 당신은.....죽지 않아요!

의식을 잃어가는 용사추의 귓전에 문득 신비롭고 요요한 여인의 음성이
마치 환청같이 용사추의 귓전을 울렸다.
".......!"
막 깊은 혼돈의 수렁으로 빠져들던 용사추는 문득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한 줄기 거센 경련이 그의 몸을 스쳐가며 그는 다시 거미줄처럼 위태롭게
걸려 있던 의식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여.....여설?"
용사추는 신음처럼 부르짖으며 번쩍 두 눈을 떴다. 놀랍게도 그의 두 눈
은 열 가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몸 속에 충만해 있는 십대
악인의 천년공력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열 가지 색을 동시에 띠고있는 용사추의 눈빛. 그것은 형언할 수 없이 신
비로우면서도 섬뜩한 공포를 자아냈다.
"여....여설! 어디있소?"
용사추는 힘겹게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귓전에 들려온 부름은
그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아름다운 한 여인의 환상으로 다가
왔다. 전궁비연 궁여설, 바로 그녀의 음성으로 들려오는 것이다.
용사추는 어느새 그립고 낯익은 궁여설의 음성을 쫓고 있었다.

당신은 죽지 않아요. 제가 구해드리겠어요. 신첩에게 오세요..!

요요하고 신비로운 여인의 음성은 다시 용사추를 부르고 있었다. 그 음성
은 수도 없이 난립한 얼음기둥 저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용사추는 마치 오랜 갈증에서 샘물을 만난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그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물론 가겠소. 여설....기다리시오."
그는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믿을 수 없게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죽어가는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오세요......어서.....오세요.....!

예의 신비로운 환청은 달콤하게 속삭이듯이 용사추의 귓전에 파문을 일으
켰다. 그것은 용사추에게 있어 구원의 손짓과도 같았다.
"여설....."
용사추는 홀린 듯 몽롱한 눈빛으로 여인의 음성이 이끄는대로 걸음을 옮
겼다.

빙벽(氷壁), 그곳은 거울같이 매끈하고 투명한, 까마득한 얼음의 벽 아래
였다. 용사추는 어느새 환청이 이끄는대로 그 얼음벽 아래까지 와 있었다.
얼음벽의 한쪽에는 높이 십여 장의 커다란 빙동(氷洞)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들리는가?

오세요.....신첩에게.....어서.....

예의 요요로운 환청은 바로 그 빙동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용사추는 몽롱한 표정으로 이끌리듯 빙동 안으로 들어섰다. 빙동은 곧장
수백 장의 길이로 뚫려 있었다. 그리고, 삼백여 장 저편에 하나의 철문이
얼음에 덮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천 년 그 이전에 만들어진 듯이 보이는 거대하고 육중한 철문, 그곳에는
어른 머리만한 크기의 대전체(大篆體)의 글이 적혀 있었다.

<금....마....지....문(禁魔之門)>

글의 내용은 이것으로 철문의 중앙에는 한 자루 륜(輪)이 반쯤 박혀 있었
다. 직경 반 자 정도 크기의 륜은 전체가 찬연한 빛을 발하는 황금으로 만
들어져 있었으며 여덟 개의 예리한 날이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한눈에 보아 그것은 불문에서 의식용으로 사용하는 법륜임을 알 수 있었
다. 그리고, 법륜이 꽂혀 있는 옆에는 또 다른 글이 한 줄 적혀 있었다.

<제석천(帝釋天)의 이름과 뇌음법륜(雷音法輪)의 항마법력(降魔法力)을
빌어.....노납 뇌음천존(雷音天尊)이 천년마녀(千年魔女)를 이에 금(禁)하
노라!>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금마지문에 박혀 있는 법륜의 이름이 바로 뇌음법륜인 모양이었다.
"으.....!"
용사추는 몸을 비틀거리며 철문앞에 이르렀다. 그는 폭발 직전의 상태까
지 이르러 있었다. 그의 내부에서는 십대악인의 천년내공이 폭발을 기다리
는 용암같이 마구 들끓고 있었다. 그것을 어딘가에 배출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용사추의 몸은 재로 스러지고 말 것이다.
용사추의 얼굴은 고통으로 절로 일그러졌다. 그런 그의 귓전에 다시 예의
구원같은 환청이 들려온다.

그 륜을.... 뽑아버리세요. 신첩은 바로 당신 옆에 있어요!

신비롭고 요요로운 환청은 바로 금마지문 안에서 울려나왔다.
"으.....으.....!"
용사추는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며 금마지문을 노려보았다. 지금 그의
머리속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온 몸이 불구덩이에 던져진
듯한 고통과 지독한 갈증을 해소하고픈 욕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을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비로운 환청뿐이었다. 용사추는 그
렇게 믿고 있었다.
그는 환청이 시키는대로 떨리는 손으로 뇌음법륜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힘주어 그것을 잡아 뽑았다.
우우둑.....쩌____엉!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얼음이 깨어지며 뇌음법륜이 금마지문에서 쑥 뽑혀
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금마지문이라는 철문이 마치 거북등같이 쩍쩍 균열을 일으키더니 한순간
굉음을 내며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무엇인가 거대한 힘이 금마지문
을 안에서 허물어뜨려 버린 것이다.
그것은 천 년 간 뇌음법륜이 항마지력에 제압당해 있었던 막강한 역도였
다. 그러던 것이 뇌음법륜이 제거되자 마침내 폭발하여 금마지문을 바스러
뜨린 것이었다.
파스스......
무섭게 흩날리던 얼음가루가 잠시 후 가라앉았다. 그러자 금마지문의 안
쪽 광경이 용사추의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그곳은 방원 삼십여 장에 달하는 한 칸의 빙실(氷室)이었다.
그런데, 그 빙실에는 뜻밖에도 십여 구의 시신들이 있었다. 남녀노소가
섞인 십여 구의 시신들은 제각기 다른 형색으로 빙실의 십방(十方)을 점한
채 하얗게 얼음에 덮여 있었다.
그 시신들은 천 년 전에 유행했던 고대복장을 걸쳤으며 첫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도를 지닌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그들은 하
나같이 분노의 표정을 띄운 채 빙실의 중앙을 노려보고 있었다.
용사추는 비록 시신들임에도 서슬이 퍼렇게 느껴지는 그 눈빛들의 방향을
자신도 모르게 쫓게 되었다. 그러던 그의 두 눈이 한껏 부릅떠졌다.
"여....여설?"
그의 입에서 숨넘어 가는 듯한 격한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눈빛은 심
한 파문을 일으키며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격렬한 환희로 물들었다.
빙실의 중앙에는 하나의 얼음침상이 놓여 있었다. 만년빙옥이라는 얼음의
정수를 깎아 만든 뽀얀 우유빛의 침상.
그 위에는 한 명의 여인이 그림같이 누워 있었다. 나이는 이십 세 정도
되었을까? 흡사 얼음의 요정을 보는 듯 완벽한 미모를 지닌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모발은 기이하게도 눈부신 은발이었고 엄청나게 길고
풍성하여 만년빙옥의 침상 주위가 온통 그녀의 은발로 뒤덮여 있었다.
너무 희어서 손을 대면 묻어날 듯 보이는 반투명하게 느껴지는 피부, 풍
염하면서도 늘씬한 동체, 그 뇌살적인 동체는 한 자락 검은 빛이 감도는 고
대전포로 휘감겨 있었다. 그 검은 전포에 대비되어 그녀의 하얀 피부는 차
라리 눈이 시릴 정도였다.
"여.....여설.....!"
용사추는 꿈을 꾸듯 몽롱한 눈빛으로 침상 위의 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
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인의 용모는 어찌보면 전궁비연 궁여설과 흡사했다. 아니, 의식 자체가
몽롱한 용사추의 눈에는 여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전궁비연 궁여설로 보이
는 것이다.
"여설....보고 싶었소!"
용사추는 만년빙옥의 침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여인을 내려다 보았다.
그런 그의 입가로 문득 어린 아이같이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죽
음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리운 여인을 만난 기쁨의 미소였다.
그의 가슴은 뿌듯한 행복감으로 차올랐다. 그는 깨어지기라도 할 듯 조심
조심 손을 내밀어 여인의 조각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똑 솟은 코, 살풋 감겨진 긴 속눈썹, 살짝 벌어진 붉디붉은 입술은 금
방이라도 달콤한 열락의 한숨을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런 용사추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일까?

나를.....안아요. 신첩의 몸은.....당신 거예요.....

문득 달콤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음성이 용사추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여
인의 입술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예의 요요로운 환청이 다시 용사추의
귓전을 자극한 것이었다. 그 음성은 심령을 제압하는 무서운 마력을 담고
있었다.
"여....여설....!"
용사추의 얼굴이 문득 붉게 달아올랐다. 여인의 속삭임이 너무 달콤해서
였을까? 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궁여설과 한 번 몸을 섞은 적이 있
기는 하지만 아직 그는 남녀 관계에 있어 순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당....당신을 갖고싶소.....!"
그는 본능이 시키는대로 말을 했다. 그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궁여설,
아니 그녀로 보이는 침상 위의 여인을 내려다 보았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들끓는 십대악인의 천년공력은 급격히 야릇한 본능의 불길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윽고, 용사추는 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여
인의 검은 전포의 치맛자락을 위로 걷어올렸다. 검은 치맛자락이 천천히 위
로 말려 올라갔다.
"으음....!"
그에 따라 용사추의 호흡은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졌다.
매끈한 종아리와 둥그스름하고 귀여운 무릎.... 그리고 묻어날 듯이 뽀얀
허벅지가 치맛자락이 걷혀 올라감에 따라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흐....윽!"
용사추의 전신에 한순간 격렬한 경련이 스쳐 지나갔다.
놀랍게도 여인은 치마 안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터질 듯이 팽팽하면서도 매끈한 허벅지의 속살.... 그 허벅지가 모이는
곳에 여인의 비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던 것이다.
비록 궁여설과 몸을 섞기는 했으나 용사추는 생전 처음으로 여인의 비소
를 직접 보았기에 혼미한 의식중에도 그 충격은 화인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으음!"
그는 심장이 터질 듯한 충격을 받았다.
살짝 벌린 허벅지 사이....뜻밖에도 여인의 그곳은 궁여설과는 달리 한
올의 방초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묘한 여인의 비궁이 더욱 적나라
하게 드러나 보였다.
귀엽고 뽀얀 백옥같은 둔덕, 그 아래....아아,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여
인의 비지가 분홍빛 안개를 토하며 자리하고 있었다.
"으.....!"
용사추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일부는 터질 듯이
굴강하고 강대해져 있어 격렬한 통증마저 느껴졌다.
이내 그는 태어날 때 그대로의 모습이 되었으며 여인의 허벅지는 그의 하
체에 의해 넓게 개방되었다.
"여....설....!"
용사추는 여체 위로 올라가며 숨가쁜 음성으로 궁여설을 불렀다. 여인은
대답이 없었다. 그의 맨살에 여인의 보드라운 허벅지 살이 싸늘한 감촉으로
닿아왔다.
"으음....!"
용사추는 몽롱한 눈으로 자신의 실체를 여체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여
체가 부서지기라도 할 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강력하게 여인에게 몰입해 갔
다.
벼락을 맞은 듯한 전율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쾌감
이었다.
기이하게도 여인의 몸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일어 불덩이같은 용사추의 몸
을 휘감았다. 그것은 팽창할대로 팽창하여 폭발 직전에 이른 십대악인의 천
년내공을 진정시켜주는 시원한 청량제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여....설....."
용사추는 여인의 하체로부터 격렬하게 죄어드는 긴축감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여인의 위에서 미친 듯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폭발은 삽시에 다가왔다.
콰르르.....
용사추의 내부에서 미친 듯이 날뛰던 십대악인의 천년내공은 돌출구를 찾
자 무서운 기세로 여인의 몸으로 폭출해 들어갔다.
"허억....!"
한순간 격렬한 환희가 폭죽이 터지듯 연이어 용사추의 전신을 휩쓸었다.
그는 반 광란 상태에 빠졌다. 여체는 으스러질 듯 그의 팔 안에 안겼으며
그는 폭풍같은 기세로 여체를 압박해갔다.
그의 허리가 일렁일 때마다 여체는 마치 작살에 맞은 물고기처럼 퍼득였
다. 용사추와 여인의 몸이 결합된 부분은 이미 선연한 앵혈로 물들여져 있
었다.

반짝!
문득, 감겨져 있던 여인의 속눈썹이 치떠졌다.
스으.....으.....
여인의 눈이 떠지자 그녀의 봉목에서 뇌전같은 마광이 작렬하여 빙실을
물들였다. 기이하게도 여인의 눈빛은 짙은 녹색이었다.
".........!"
여인은 가공할 마기가 흐르는 녹색의 눈으로 자신의 위에서 거칠게 헐떡
이고 있는 용사추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 그녀의 녹색눈에 섬뜩한 살기가
흘렀다. 그것은 뼈골까지 얼려버릴 듯한 무서운 살기였다.
"으음....!"
그러나 이내 그녀의 입에서는 앓는 듯한 희열의 신음이 새어나오며 이내
그녀의 눈은 다시 원래대로 감겨졌다. 그와 함께 그녀의 검은 전포에 싸인
교수가 서서히 들려지며 자신의 위에서 율동하고 있는 용사추의 상체를 휘
감았다.
"하아....하아....!"
여인의 입에서는 숨넘어 갈 듯한 단내가 흘렀고 그녀의 옥용은 용사추가
움직일 때마다 묘하게 찡그려졌다.
때아닌 열풍이 숨가쁘게 몰아쳤다.
빙실 안은 두 남녀의 폭풍같은 정사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폭풍일과(暴風一過).
격렬하던 열풍이 스쳐간 빙실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용사추는 마치 포식한 어린아이같이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위기는 지나
간 것이다. 그의 내부는 저녁 호수같이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녹색 눈을 지닌 신비여인.
용사추는 그 여인의 내부에 십대악인의 천년공력의 태반을 폭출시킴으로
써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
녹색의 신비한 눈은 그런 용사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비여인의 녹색
눈은 온통 당혹함과 의혹, 그리고 강렬한 살기로 물든 채 자신의 무릎을 베
고 잠들어 있는 용사추를 내려다 보았다.
"기이하구나....!"
여인은 천천히 말했다. 오랫동안 혀를 쓰지 않은 탓인지 그녀의 음성은
불분명하게 들렸다. 그녀는 버들가지같은 아미를 살짝 모으며 이해할 수 없
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흡정대천마법(吸精大天魔法)에 당하고도.....죽지 않다니.....원래대로
라면....이 자는 정수(精髓)를.....나 천년마녀(千年魔女)의 천 년 만의 잠
을 깨우는데 소모하고.....뼈만 남은 시체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여인, 천년마녀의 녹색 눈이 강렬
한 살기로 번뜩였다. 하지만 시선이 하군성의 하체에 이른 천년마녀는 이내
두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이 자는 어떤 자란 말인가? 흡정대천마법을 아랑곳 않고.....
삼일 밤낮을 나 천년마녀의 몸을 즐기다니.....이해할 수 없는 자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도화빛으로 물든 그녀의 옥용은 너무도 아
름다왔다.
십전(十全)의 미모, 거기에 더해진 사악한 요기가 그녀의 미모를 차라리
처절할 정도로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더러운.....사내 놈.....!"
문득 천년마녀의 입에서 저주에 찬 중얼거림이 흘러나오며 그녀의 녹색
눈이 수치의 빛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천 년 전에 자신을 묶어 놓은 한 가
지 금제를 제거하기 위해 용사추를 십대마법(十大魔法)으로 유인하여 자신
을 범하게 했던 것이다.

__흡정대천마법.
이것이 그 금제를 푸는 대법이었다. 이는 일천 수백 년 전 멸망한 마교에
비전되어 오던 절정마법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용사추는 자신의 모든 정기를 천년마녀의 몸에 쏟아부은 뒤
탈진하여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용사추는 죽지 않았다. 비단 그는 죽지 않
았을 뿐더러 오히려 천년마녀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천년마녀, 그녀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용사추가 아무리 퍼써도 메마르
지 않을 천년내공을 지니고 있음을.....
그는 단 한 번의 교합으로 천년마녀의 몸에 오갑자 정도의 내공을 토출한
상태였다.
오갑자.....그것이라면 천년마녀가 고심하여 연마하려던 한 가지 고금최
강의 마공을 완성시켜 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다.
머지않아 천년마녀는 그것을 깨닫고 당혹함을 금치못할 것이다. 그녀는
용사추를 만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기연까지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까마득히 알지 못하는 천년마녀는 분노와 살기가 짙어
졌다.
"감히....천마(天魔)의 여인으로 내정된 나 천년마녀를 쾌락의 도구로 삼
았으니....너는 죽어야 한다!"
스윽!
천년마녀는 얼음가루같은 냉기를 풀풀 날리며 번쩍 손을 들어올렸다.
천마의 여인.....설마 그녀 역시 마교와 관련이 있는 여인이란 말인가?
문득, 천년마녀의 섬섬옥수가 백열되더니 이내 뼈까지 드러날 정도로 투
명하게 변했다. 실핏줄까지 드러나 보이는 투명한 교수.
그것은 섬뜩한 공포를 자아냈다.

__투명명옥강살(透明冥玉 煞).
마교 최강의 마예인 천마십예(天魔十藝)중 서열 삼위에 드는 절대마공이
펼쳐지는 현상이었다. 투명명옥강살은 설사 불사지체라도 여지없이 바스러
뜨리고 만다.

츠____읏!
천년마녀의 손이 서서히 용사추의 천령개를 내리쳐 갔다.
그러다 문득, 천년마녀는 나직한 신음과 함께 멈칫 손을 멈추었다.
"으음....?"
살기 어린 그녀의 녹안(綠眼)은 만년빙옥의 침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침상 위에는 그녀와 용사추의 결합의 흔적인 선연한 혈화(血花)가 피어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천년마녀의 시선이 일순 흔들림을 보였다.
"휴.....!"
그러다 그녀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손 끝에
모은 투명명옥강살을 흐트려 버렸다. 마음이 변한 것이다.
그녀는 투명명옥강살을 풀어버린 그 손으로 아직도 벌거벗은 채 잠들어
있는 용사추의 하체에 조심스럽게 의복을 입혀주었다.
여인의 마음이란 실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방금전까지 섬뜩한 살기
를 뿌려대던 천년마녀의 녹색 눈은 야릇한 감정의 파장으로 동요되고 있었
다.
용사추의 늠름한 실체를 바라보던 천년마녀의 옥용에는 발그레 홍조가 떠
올랐다. 그녀는 고금최강의 마녀였으나 방금 전까지는 사내를 모르던 처녀
였던 것이다. 용사추는 바로 그녀의 첫 남자였고 마지막 남자가 될 것이다.
"너를.....살려주겠다. 이번만은.....!"
천년마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녀 자신 조차 모르게 시작
된 야릇한 마음의 동요가 그녀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세상에 다시없는 강자요, 살인을 위해 소생한 마녀라 할지라
도 어쩔 수 없이 여자인 것이다.
그리고, 용사추는 그의 첫남자인 것이다.
천년마녀는 용사추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서 내려 놓았다.
"으음.....여설....."
이때 문득 용사추가 잠꼬대를 하며 천년마녀의 교수를 더듬었다.
(여설.....?)
천년마녀의 옥용이 야릇하게 이지러졌다. 용사추가 자신을 궁여설이라는
다른 여인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당혹감은 이내 강한 불쾌감과 배신감을 유발시켰다.
그것이 바로 질투의 감정이라는 것을....천년마녀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여설....이라고? 바득!"
천년마녀는 독기어린 눈으로 용사추를 내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다음에 만나면....내 손으로 죽여주겠다. 나쁜 사내자식!"
그녀는 새파란 살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용사추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의 손에서 교수를 빼냈다.
잠시 그녀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잠든 용사추의 잠든 모습을 내려다 보았
다. 마치 그의 모습을 잊지않고 가슴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그러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녹색 눈은 다시 새파란 마공
을 일렁이는 마녀의 눈으로 돌아왔다.
"뇌음천존.....감히 나 천년마녀를 천 년 동안이나 얼음에 가두어 놓았겠
다!"
천년마녀는 무서운 분노와 살기를 폭사하며 사나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호홋! 그 대가를 치루어 주지. 천하에 중이란 중놈은 씨를 말려주는 것
으로.....!"
그녀는 섬뜩한 교소를 터뜨리며 몸을 띄웠다.
"호호호. 너 뇌음천존으로 인해 중놈의 씨가 마르리라. 그리고....배신자
철혈마가(鐵血魔家)와 번뇌마가(煩惱魔家) 놈들도..!"
천년마녀는 날카로운 교소와 함께 빙실을 날아나갔다. 오 장이나 되는 치
렁치렁한 은발이 물결치듯 흩날리며 환상처럼 사라져갔다.
삽시에, 그녀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리고 멀리서 그녀의 소름이 오싹 끼
치는 교갈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철혈....번뇌!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감히 대마교에 반기를 들었던
것을....!"
철혈.....번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들 역시 사신마전이나 불사마궁과 함께 마교십가에 드는 마가(魔家)들
인가?
과연.....!

천년마녀가 사라진 일각 후,
"으음....늦었구나.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아미타불......!"
어디선가 창노한 탄식성이 들려왔다. 이어 금마지문 앞으로 하나의 회영
이 유령같이 나타났다. 회영은 나이를 알 수 없는 노승이었다. 일신에는 다
낡은 회색가사를 걸쳤으며 얼굴 전체가 온통 수많은 주름으로 뒤덮여 있었
다. 그러나 노승의 허연 눈썹 아래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흡사 벼락이 치는
듯이 강렬했다.
"아미타불.....마기(魔氣)가 북천(北天)에서 충천하여.....만 리 길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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