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추억3권-20. 어머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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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어머니와 딸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도 마사오의 머릿속은 열차 안에서의 일로 뒤죽박죽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의도적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찌에의 경우에는 의도적이냐 우연이었느냐 따라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날 저녁, 찌에보다 먼저 집에 돌아온 마사오는 자기 방에 들어가 꼼짝 않고 있었다. 왠지 찌에의 얼굴을 대하기가 꺼림칙하기도 했고 유끼꼬나 하쥬다 할머니와 마주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책상에 앉아 막 책을 펼쳐 들려고 할 때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하숙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라면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센까도 아닌 듯 싶었다. 하쥬다는 이층에 올라오는 일이 거의 없다.
“누구세요?”
문 밖에서는 대꾸가 없다. 마사오는 일어나 문 쪽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열어 밖에 있는 사람을 본 순간 움찔 놀라고 말았다.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끼였던 것이다. 전에 마사오가 하숙했던 긴다꾸 장의 딸 아끼가 찾아오다니 마사오로서는 반가움에 앞서 너무 뜻밖의 일이라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를 잊은 건 아니겠죠?”
“아끼! 네가 어떻게 여기를 …….”
“왜요, 저는 옛 애인을 찾으면 안 되는 여잔가요? 버림받은 여자의 애증이 얼마나 끈끈한지 마사오 씨에게 확인 시켜 주려고 왔어요”
아끼는 벌써 문을 막고 서 있는 마사오를 밀어내고 방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역시 아끼는 변한게 없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능숙한 말솜씨며 당돌한 태도가 여전했다. 문을 닫으며 마사오가 말했다.
“아무튼 반갑다. 그런데 누가 아래층에서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니?”
“아니요. 아래층에는 아무도 없던 걸요. 제가 제 발로 찾아 올라왔어요.”
“이 집 주인이 여간 까다로운 노파가 아니라서 만났더라면 꽤 골치 아픈 일이 생겼을 텐데.”
“왜요?”
“네가 여자니까.”
“그렇게 도도했던 마사오 씨가 이제야 나를 여자로 봐 주는군요 어쨌든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라서 고맙습니다.”
아끼는 허리를 깊숙이 꺾어 마사오에게 절까지 하며 능청을 부렸다.
“이렇게 뜻밖에 만나게 되니 괜히 서먹서먹해지는데? 긴다꾸 장 사람들은 다 잘 지내겠지?”
“첫 물음이 겨우 그거예요?”
뾰로퉁해진 아끼가 마사오 앞에 앉으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끼의 그런 모습에서 마사오는 전에 아끼의 방 옷장 안에서 나우었던 사랑의 순간들이 떠올렸다. 어린 소녀이긴 하지만 아끼에게는 남자의 마음을 뿌리째 흔드는 요염한 색기가 있었다. 그 그칠 줄 모르는 아끼의 유혹의 손길을 핑계삼아 마사오는 긴다꾸 장을 나와 하숙을 옮겼던 것이다.
“저녁 아직 안 먹었으면 우리 밖으로 나갈까? 내가 사지.”
“전 여기 있는 게 좋아요 우리 둘이서만 이렇게.”아끼가 다시 마사오의 품에 안겼다. 조금 전보다 더욱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아끼의 한 손이 슬그머니 마사오의아랫도리로 내려가려는 것을 마사오는 느꼈다. 얼른 손목을 잡았다.
“여기서는 안 돼.”
“그래서 나가자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러면 가만히 있어요. 저도 눈치가 있는 여자예요. 제가 이 방에 있으면 당신이 곤란해진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구요 역시 이 집에도 마사오의 상대 여자가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안 그래요?”
“…….”
아끼의 그 한마디에 마사오의 말문은 꽉 막혀 버린 셈이었다. 마사오가 주저하는 사이에 아끼의 손길은 어느 새 마사오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사오는 쑥스러운 기분을 떨텨 버리려고 아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입술을 포갰다. 그러나 아끼는 마사오의 입술을 받지 않았다. 재 빨리 뒤로 몸을 뺀 것이다.
“그것 봐요. 능청떠는 버릇은 여전하군요. 자기도 늘 여자를 원하면서 여자가 먼저 손을 대게 만드는 탁월한 수법! 그 수법에 이곳에서는 몇이나 되는 여자가 걸려들었나요?”
은근히 농담조로 빈정거리면서 아끼는 마사오 앞으로 한 걸음 다시 접근해 몸을 밀착시켰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두 손으로 마사오의 가운데를 꽉 움켜잡으며 말했다.
“앞으로 아무리 많은 여자가 이곳을 거쳐가도 선배는 나, 아끼에요. 안 그래요?. 자, 이젠 나가죠”
아끼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끼의 각본대로였다. 마사오는 갑자기 들이닥친 아끼의 술수에 엉겁결에 휘말려든 셈이었다.
두 사람이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사오는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움찔했다.
‘히쥬다 할머니가 아닐까? 일이 묘하게 꼬이겠군’
그렇다고 무작정 계단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뒤따라 내려오는 아끼는 마사오를 밀치고 앞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찌에와 유끼꼬였다. 모녀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모양이었다. 네 사람이 서로 마주쳤다. 마사오는 당황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몰랐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역시, 아끼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끼라고 해요”
마사오가 얼른 가로막고 나섰다.
“아주머니, 전에 제가 하숙집의 따님입니다. 동생처럼 저를 따랐지요”
“아, 그래요 반갑군요. 더 놀다 가지 그래요? 저희는 괜찮은데요.”
“아니에요. 열차 시간에 맞추려면 지금 곧 가야 합니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렀어요.”
찌에는 꽤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으나 유끼꼬는 계속해서 아끼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심상치 않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마사오가 말을 꺼냈다.
“자, 아끼, 가자. 시간 늦겠다.”
둘은 밖으로 나왔다. 대충 엄어가 준 것 같아 마사오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공연히 오해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역 앞까지 온 두사람은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긴다꾸 장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에서의 태도로 보아 아끼는 그냥 내버려둘 것 같지 않았으나, 막상 집을 나선 후부터는 당돌한 낌새를 비치지 않았고 줄곧 긴다꾸 장의 이야기를 입에서 올릴 뿐 마사오에겐 별다른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아끼가 술값을 내려고 했다. 잠시 실랑이 끝에 마사오가 값을 지불하고 술집을 나왔다. 둘이 열차 시간에 맞추어 개찰구 쪽으로 향하려는데 개찰구 바로 앞에 누가 서 있었다. 유끼꼬였다.
‘조금 전에 어머니하고 같이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왔잖아? 어쩐 일일까?’
마사오는 유끼꼬 앞으로 다가섰다.
“유끼꼬? 여기는 어쩐 일이냐? 누굴 기다리는 중이니?”
“친구.”
“음, 약속이 있는 모양이구나”
“예”
아끼가 표를 사 가지고 왔다.
“어머, 이 애는 아까 하숙집에서 본 애잖아?”
“그 집 딸이야.”
“아유 귀엽기도 하지.”
마사오는 유끼꼬에게 아끼를 소개했다. 유끼꼬는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도 아끼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는 않았다. 마사오는 아끼를 재촉했다.
“자, 어서 서둘러야지.”
“알았어요. 아가씨! 이 사람을 잘 감시하세요. 다른 여자를 방에 들이지 않도록 말이에요”
그렇게 내뱉은 뒤 아끼는 개찰구를 향해 걸어갔다. 마사오는 그 뒤를 따라갔다. 아끼는 개찰구 앞에서 멈추더니 마사오를 향해 돌아서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글피 꼭이야!”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끼는 개찰구를 나가고 마사오는 유끼꼬에게로 돌아왔다.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어. 친구를 기다린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야.”
“아끼와 이 근처에서 한잔했어. 자 이제 가자.”
유끼꼬는 약간 사이를 두고 마사오와 아끼의 뒤를 쫓아온 게 틀림없었다. 마사오는 유끼꼬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마사오는 걸으며 생각했다.
‘이 손이 아끼의 화원을 만졌던 손이야.’
상가를 지나자 길이 몹시 어두웠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엄마한테는 뭐라고 하고 나왔니?”
“친구 집에 잠깐 갔다오겠다고 했어요.”
“그럼, 같이 들어가면 이상하겠구나.”
유끼꼬는 마사오의 손을 꼬옥 쥐었다. 손은 자그마하지만 야무지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
“그런데, 좀전에 그 여자와는 친한 사이에요?”
“응? 으응 약간.”
“오빠를 좋아하는 모양이지?”
좀전에 아끼가 유끼꼬에게 한 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원래 말투가 그래서 그렇지. 지금 남자 친구 일로 고민인가 봐. 그래서 자문을 구하러 왔던 거야.”
“애인이 있다구요?”
“응, 성질이 좋지 않은 남잔가 봐.”
“친한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오빠한테 그런 걸 상담할까?”
“원래 제멋대로인 애니까. 남자 관계도 그렇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잘못 걸린 것 같아 유끼꼬는 이 다음에 남자를 선택할 때는 잘 관찰해 보고해야 될 거야.”
“그 여자, 반드시 또 찾아올 거예요.”
“그럼 어떡하지?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은 여잔데.”
“하지만 예쁘잖아요”
“유끼꼬는 이 다음에 더 예뻐질 텐데. 그 애에게는 내적인 아름다움이 없어.”
마사오는 유끼꼬의 손을 놓고, 그 작은 어깨를 안았다. 왜 역까지 나와서 마사오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마사오는 죄의식을 느꼈다. 어린애의 팔을 비튼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마사오는 지금 유끼꼬의 팔보다도 귀중한 그 마음을 농락하고 있다는 죄의식이 느껴졌다.
역에서 멀어짐에 따라 담질이 많아지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가로등 사이의 가로수에서 잎이 떨어져 거리를 덮고 있었다. 유끼꼬는 멈춰 서서 마사오를 올려다봤다. 마사오는 주위를 둘러본 뒤 양팔로 유끼꼬의 어깨를 않았다. 등을 구부려 얼굴을 갖다댔다. 입술을 천천히 포갰다. 유끼꼬는 마사오에게 몸을 맡겼다. 입술을 부드럽게 포개고 등을 어루만지면서 얼굴을 끌어당겼다.
“술 냄새! 정말이었구나, 술 마셨다는 거.”
안심한 듯한 목소리였다. 마사오가 아끼와 어디로 갔었는지 의심했던 모양이다.
“정말이고 말고 그러니까 저녁 식사도 안 해도 되겠어.”
“나는 아직 식사 전인데.”
“그럼 집에서 기다리시겠군. 빨리 들어가야지. 먼저 들어갈래?”
“예.”
마사오는 유끼꼬의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그대로 서 있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유끼꼬와는 더 이상 불장난을 해서는 안 됀다.’
현관문은 빼꼼히 열려 있었다. 유끼꼬가 일부러 그렇게 해놓은 듯했다. 마사오는 활짝 열고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다녀왔습니다.”
유끼꼬가 신고 있던 빨간 끈의 나막신이 밖을 향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문을 잠그고 있는데 히쥬다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저녁식사하고 한잔하느라고 늦었습니다.”
“전에 있던 하숙집 딸이 왔었다면서요?”
“예, 아주머니도 들으셨군요.”
“앞으로 계속 부를 건가요?”
간섭하는 듯한 말투다. 하지만 싫은 내색을 해서는 안 된다.
“아니오 이제 오지 않을 겁니다.”
마사오가 웃으며 덧붙였다.
“성격이 활탈한 애지요”
“마사오 씨가 들어오란 말도 하진 않았는데 마음대로 계단을 올라가 방엘 들어갔다지요?”
“죄송합니다. 워낙 그런 애니 이해해 주십시오”
“설마 밤에 찾아오는 일은 없겠지죠?”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집에는 알다시피 어린애가 있으니 주의해 주기 바랍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마사오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아서 갑작스런 아끼의 출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허술한 태도에 대해 스스로 화가 치밀었다.
‘일 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었다는 것은 인연을 끊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다시 불쑥 나타나 멋대로 사람 마음을 휘저어 놓고 갔다. 내일모레 다시 만나자면서. 혹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른다. 성격적으로 나쁜 아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 다시 만나더라도 연관에는 가지 않을 거야.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아끼와의 일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마사오의 머릿속엔, 자신을 찾아다니다 역 개찰구 옆에 서 있던 사랑스런 유끼꼬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마사오가 학교에 가려고 역을 향해 길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앞에 찌에가 걸어가고 있었다. 마사오는 걸음을 재촉했다. 어제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을 찌에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오늘밤에는 좀 늦게 들어갈 거라는 얘기도 미리 해두기 위해서였다.
“이제 가십니까?”
마사오가 다가가 인사하지 찌에는 깜짝 놀라며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왼손으로 옮겨 들었다. 마사오가 오른쪽에 와 섰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찌에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학생이 그 아가씨와 함께 나간 뒤 그것이 걱정이 되는지 유끼꼬가 역으로 나갔었는데, 역에서 만났었죠?”
순간 마사오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찌에의 말이 단지 추측이라면 순순히 응할 필요는 없다.
“친구 집에 가지 않았던가요?”
오히려 반문을 해 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렷다.
“후후후.”
찌에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유끼꼬는 그렇게 말하지만 구실이죠 아직 어린애니까. 어제 그 아가씨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학생이 유혹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던 거겠죠. 급히 구실을 달고 나가더니 학생이 들어오기 바로 전에 들어왔어요”
“유끼꼬가 대학생인 저를 걱정해 준단 말입니까? 하하.”
“그래요 이제 그 아이도 사춘기니까 여러 가지로 민감할 때죠 하지만 난 어머님처럼 그런 식으로 엄하게 다스릴 생각은 없어요”
“어제 왔던 그 아가씨는 너무 오랜만이라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께서 학생한테 무슨 주의를 시키시는 것 같던데, 신경 쓰지 말아요 연세 드신 분이라 그러시는까. 앞으로 집에 데려오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얼마든지 데려오세요”
부드러운 성격 탓일까. 어젯밤 밖에서 유끼꼬를 만난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예, 그러찮아도 찾아올 여자 친구가 있는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인사를 하면서도 마사오는 찌에가 혹시 목욕탕에서 자기와 유끼꼬가 했던 짓까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스러웠다.
찌에는 히쥬다와는 달라서 현재 하숙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안의 실권은 히쥬다 할머니에게 있었는데 찌에는 거스르지 않고 따르고는 있으나, 속으로는 다소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사오에게 그 표현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열차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었다. 같은 열차를 타는 것은 어제 아침에 이어 오늘이 두 번째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어제처럼 초만원을 이루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기다릴 새도 없이 열차는 금방 도착했다. 평상시 아침과 다름없이 차내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타는 사람에 비해 내리는 사람은 적었다.
마사오는 예의상 찌에를 먼저 타게 했다. 사람들끼리 어깨나 팔이 부딪칠 정도로 만원이었다. 문이 닫혔다.
‘이제 사람들의 귀가 있으니 어젯밤 역에서 유끼꼬를 만났던 일에 대해서는 다시 묻지 않겠지. 그 일에 대해 별로 걱정을 하지도 않아도 되겠지.’
마사오는 생각했다.
문이 닫히자 승객들은 각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찌에는 마사오 쪽으로 어깨를 돌렸다. 마사오는 왼손으로 가방을 먼저 들고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찌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술을 마시게 되면 용돈이 궁해질 텐데.”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 듯했다.
“예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 적절히 알아서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가 만나자 해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편이 좋을 거예요”
“불가피한 경우도 때론 있습니다. 사실은 오늘도 친구 집에 가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약간 비스듬히 비껴선 채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럼 늦게 들어오나요?”
“아니요 그렇게 늦지는 않을 겁니다.”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마사오에게는 아직도 선명했다. 찌에도 분명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가 모르는 척하는 것은, 그러는 것이 서로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차가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 마사오는 자기 허벅지에 무언가 닿아 있는 걸 느꼈다. 열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찌에의 가방이 닿은 것이다. 소매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했다.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않도록 하세요”
“예, 주의하겠습니다.”
마사오에게는 어제 아침과 같은 일이 재현되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또 두려워하는 마음이 함께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도 있었다.
다시 찌에의 가방이 마사오의 허벅지에 와 닿았다. 이번에는 허벅지를 누른 채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난 그저 이대로 서 있을 뿐이었으니까. 움직인 건 찌에의 가방이야.’
열차가 커브 길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중심이 한쪽으로 쏠렸다. 찌에의 왼손이 마사오의 오른팔을 잡았다.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한 자연스런 행동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마사오는 또다시 찌에의 손등이 허벅지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열차 안은 점점 더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번 아침과 비슷하게 되었다. 찌에의 왼손은 마사오의 팔을 잡고 있었고 오른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차가 흔들릴 때마다 그 손등이 마사오의 허벅지를 눌렀다. 마사오의 팔을 잡고 있던 찌에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선로가 곧아지면서 사람들도 중심을 제대로 잡게 되자 찌에는 마사오의 팔을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나 허벅지에 느껴지는 손등의 감촉만은 그대로였다. 찌에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떼려고만 생각하면 금방 쉽게 뗄 수 있는데 찌에가 그대로 있는 이유는 무얼까.
‘혹시 지난 번가 같은 경우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
마사오는 새삼스레, 찌에가 미망인이라는 걸 또 의식했다. 마사오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윤기 있는 머리카락은 어쩐지 그녀의 연약함을 강조하는 듯했다.
찌에의 손등도 약간 의식적으로 마사오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는 것같았다. 조금만 엎으로 움직이면 마사오의 그곳에 닿게 된다. 하지만 손등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사오는 문득, 괜히 자기 혼자만 괜한 상상을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찌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을지 모른다. 사실 마사오는 찌에에 대해서 유끼꼬를 대할 때와 같은 야심은 없었다. 그저 사소한 유희일 뿐이었다. 그때가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열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승객들이 중심을 잃고 움찔했던 사이에 찌에의 손등이 마사오의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녀의 몸도 마사오와 부딪칠 정도로 정면을 향해 서게 되었다.
순간 마사오의 몸은 찌에의 딱딱한 손등을 느꼈다. 마사오는 아직은 부드러웠다. 그 의미는 찌에도 알 것이다.
그러나 찌에의 손은 빠져나가기는켜녕 오히려 더욱 밀착해 왔다. 이 움직임은 분명히 주위의 동요의 의한 것이 아니다. 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마사오의 팔을 놓고 내리고 있던 손으로 가방을 든 것이라고 마사오는 추측했다. 마주선 두 사람 사이에 찌에의 오른손이 더해지면서 뭔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마사오에게 밀착되어 있던 찌에의 손 등 범위가 넓어졌다. 열차의 움직임과는 문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어린 유끼꼬의 손이 아니라 그 어머니의 손이야.’
너무도 부도덕한 일이었다.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부도덕함이 오히려 매력적인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몸과 찌에의 손에서 온도차를 느꼈다. 찌에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좀 덥군요”
찌에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은 지금의 행동이 분명 의식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마사오의 몸은 급속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사오의 성기는 오히려 고개를 쳐들고 찌에의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이제껏 얌전히 있었는데, 갑작스런 변화였다.
찌에의 상체가 마사오에게로 기울여졌다. 팔이 가슴에 부딪혔다. 그러더니 천천히 찌에의 손바닥이 뒤집혔다. 손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마사오를 잡는다기보다는 감싸는 형태를 취했다. 바지를 통해서 마사오는 찌에의 손가락을 느꼈다.
‘큰일이야!’
당연히 찌에도 그녀 자신의 의도적인 행동을 마사오가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감히 그런 행동을 했다.
마사오는 신선한 충격 속에서 자신이 아직 찌에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대답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었다.
“곧 장마철이 될 것 같은데요”
마사오는 될 수 있는 대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찌에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차분한 움직임이었다. 이미 마사오의 몸은 당당한 마음으로 찌에의 손에 맥박을 전하기 시작했다. 찌에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찌에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마사오의 성기를 꽉 쥐었다. 찌에의 움직임에는 애무의 율동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꽉 조여올 뿐이었다. 소녀인 유끼꼬보다 손놀림이 딱딱했다. 그에 비해 마사오의 몸은 강한 맥박으로 뛰고 있었다.
열차의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차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종점에 가까워진 것이었다. 찌에의 손은 그대로였다. 얼굴은 거의 마사오의 어깨에 파묻다시피 되어 있었다.
“곧 종점입니다.”
찌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더 세게 잡았다.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처음 보이는 애무였다.
마사오는 찌에의 귀에 입을 댄 채 작은 소리로 감각을 알렸다.
“아아.”
찌에의 손이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손바닥을 천체로 만졌던 곳을 밑으로 비스듬히 밀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한 번 흥분한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리는 없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승객들은 문을 향해 서기 시작했다. 마사오도 방향을 바꿨다. 찌에는 마사오의 팔에 팔짱을 꼈다. 친해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건지 모른다. 마사오는 팔을 조여서 찌에의 팔에 신호를 보냈다.
‘만약 이 사람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그 사실을 유끼꼬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보다 히쥬다 할머니가 알까 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 진전이 될지 어떨지 모르는 일이었다.
찌에가 만약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나로서는 그것을 거부할 만한 윤리 의식은 없다. 찌에에게는 지금까지 다른 여자에게서 느껴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매력까지 느끼고 있다.
열차가 굉음을 지르며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문에 가까이 선 사람들부터 차례로 내렸다. 둘이 차례로 내렸다. 차에 내렸을 때 찌에는 마사오의 팔을 풀면서 재빨리 속삭였다.
“벤치에서 잠깐 쉬어 가요”
“예.”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며 찌에가 옆으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오늘밤 너무 늦지 말아요”
“예”
벤치는 비어 있었다. 사실은 쉬어 가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찌에의 생각을 존중해서 마사오는 멈춰 섰다. 그런데 찌에는 중얼거리며 그대로 걸어가 버린다.
“나중에 봐요”
‘왜 저러지? 부끄러워서일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 버리다니.’
마사오는 혼자 벤ㅊ.에 걸터앉았다.
‘아무튼 좀 앉자. 개찰구도 붐비고, 좀 늦게 나가는 편이 편하다.’
사람들이 플랫품을 다 빠져나가자, 마사오는 혼자 남겨졌다. 가방을 무릎에 놓은채 앞에 펼쳐진 복잡한 선로를 보고 있는데 누가 다가왔다.
찌에였다.
“미안해요”
상냥함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색기마저 풍겼다.
“아닙니다.”
“내가 싫어졌죠?”
중요한 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마사오는 의식했다.
“그 반대입니다.”
“정말?”
“예.”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돼요.”
“물론이죠”
“차분히 여러 가지 얘기하고 싶은데요”
“예. 저는 언제든지 좋습니다.”
“하지만 전 걱정이에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질문의 뜻은 알 만했다. 분명, 마사오에게 아직 여자가 없다고 찌에는 믿고 있는 것이었다.
작년 가을 마사오는 센까에게 심하게 당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센까에게 빈 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후 센까도 더 이상 유혹하려 들지 않았다. 냉정하게 대하니까 화가 난 건지도 모랐다. 아니면 벌써 잊어 버렸거나.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하던 상대와 일이 생기다니. 혹시라도 유끼꼬가 자신과 있었던 일을 자기 어머니에게 고해 바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되면서도 딸인 유끼꼬에게 잡혔다는 사실이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도 마사오의 머릿속은 열차 안에서의 일로 뒤죽박죽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의도적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찌에의 경우에는 의도적이냐 우연이었느냐 따라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날 저녁, 찌에보다 먼저 집에 돌아온 마사오는 자기 방에 들어가 꼼짝 않고 있었다. 왠지 찌에의 얼굴을 대하기가 꺼림칙하기도 했고 유끼꼬나 하쥬다 할머니와 마주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책상에 앉아 막 책을 펼쳐 들려고 할 때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하숙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라면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센까도 아닌 듯 싶었다. 하쥬다는 이층에 올라오는 일이 거의 없다.
“누구세요?”
문 밖에서는 대꾸가 없다. 마사오는 일어나 문 쪽으로 갔다. 그리고 문을 열어 밖에 있는 사람을 본 순간 움찔 놀라고 말았다.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끼였던 것이다. 전에 마사오가 하숙했던 긴다꾸 장의 딸 아끼가 찾아오다니 마사오로서는 반가움에 앞서 너무 뜻밖의 일이라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저를 잊은 건 아니겠죠?”
“아끼! 네가 어떻게 여기를 …….”
“왜요, 저는 옛 애인을 찾으면 안 되는 여잔가요? 버림받은 여자의 애증이 얼마나 끈끈한지 마사오 씨에게 확인 시켜 주려고 왔어요”
아끼는 벌써 문을 막고 서 있는 마사오를 밀어내고 방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역시 아끼는 변한게 없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능숙한 말솜씨며 당돌한 태도가 여전했다. 문을 닫으며 마사오가 말했다.
“아무튼 반갑다. 그런데 누가 아래층에서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니?”
“아니요. 아래층에는 아무도 없던 걸요. 제가 제 발로 찾아 올라왔어요.”
“이 집 주인이 여간 까다로운 노파가 아니라서 만났더라면 꽤 골치 아픈 일이 생겼을 텐데.”
“왜요?”
“네가 여자니까.”
“그렇게 도도했던 마사오 씨가 이제야 나를 여자로 봐 주는군요 어쨌든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라서 고맙습니다.”
아끼는 허리를 깊숙이 꺾어 마사오에게 절까지 하며 능청을 부렸다.
“이렇게 뜻밖에 만나게 되니 괜히 서먹서먹해지는데? 긴다꾸 장 사람들은 다 잘 지내겠지?”
“첫 물음이 겨우 그거예요?”
뾰로퉁해진 아끼가 마사오 앞에 앉으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끼의 그런 모습에서 마사오는 전에 아끼의 방 옷장 안에서 나우었던 사랑의 순간들이 떠올렸다. 어린 소녀이긴 하지만 아끼에게는 남자의 마음을 뿌리째 흔드는 요염한 색기가 있었다. 그 그칠 줄 모르는 아끼의 유혹의 손길을 핑계삼아 마사오는 긴다꾸 장을 나와 하숙을 옮겼던 것이다.
“저녁 아직 안 먹었으면 우리 밖으로 나갈까? 내가 사지.”
“전 여기 있는 게 좋아요 우리 둘이서만 이렇게.”아끼가 다시 마사오의 품에 안겼다. 조금 전보다 더욱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아끼의 한 손이 슬그머니 마사오의아랫도리로 내려가려는 것을 마사오는 느꼈다. 얼른 손목을 잡았다.
“여기서는 안 돼.”
“그래서 나가자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러면 가만히 있어요. 저도 눈치가 있는 여자예요. 제가 이 방에 있으면 당신이 곤란해진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구요 역시 이 집에도 마사오의 상대 여자가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안 그래요?”
“…….”
아끼의 그 한마디에 마사오의 말문은 꽉 막혀 버린 셈이었다. 마사오가 주저하는 사이에 아끼의 손길은 어느 새 마사오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사오는 쑥스러운 기분을 떨텨 버리려고 아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입술을 포갰다. 그러나 아끼는 마사오의 입술을 받지 않았다. 재 빨리 뒤로 몸을 뺀 것이다.
“그것 봐요. 능청떠는 버릇은 여전하군요. 자기도 늘 여자를 원하면서 여자가 먼저 손을 대게 만드는 탁월한 수법! 그 수법에 이곳에서는 몇이나 되는 여자가 걸려들었나요?”
은근히 농담조로 빈정거리면서 아끼는 마사오 앞으로 한 걸음 다시 접근해 몸을 밀착시켰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두 손으로 마사오의 가운데를 꽉 움켜잡으며 말했다.
“앞으로 아무리 많은 여자가 이곳을 거쳐가도 선배는 나, 아끼에요. 안 그래요?. 자, 이젠 나가죠”
아끼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끼의 각본대로였다. 마사오는 갑자기 들이닥친 아끼의 술수에 엉겁결에 휘말려든 셈이었다.
두 사람이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사오는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움찔했다.
‘히쥬다 할머니가 아닐까? 일이 묘하게 꼬이겠군’
그렇다고 무작정 계단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뒤따라 내려오는 아끼는 마사오를 밀치고 앞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찌에와 유끼꼬였다. 모녀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모양이었다. 네 사람이 서로 마주쳤다. 마사오는 당황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몰랐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역시, 아끼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끼라고 해요”
마사오가 얼른 가로막고 나섰다.
“아주머니, 전에 제가 하숙집의 따님입니다. 동생처럼 저를 따랐지요”
“아, 그래요 반갑군요. 더 놀다 가지 그래요? 저희는 괜찮은데요.”
“아니에요. 열차 시간에 맞추려면 지금 곧 가야 합니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렀어요.”
찌에는 꽤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으나 유끼꼬는 계속해서 아끼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심상치 않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마사오가 말을 꺼냈다.
“자, 아끼, 가자. 시간 늦겠다.”
둘은 밖으로 나왔다. 대충 엄어가 준 것 같아 마사오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공연히 오해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역 앞까지 온 두사람은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긴다꾸 장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에서의 태도로 보아 아끼는 그냥 내버려둘 것 같지 않았으나, 막상 집을 나선 후부터는 당돌한 낌새를 비치지 않았고 줄곧 긴다꾸 장의 이야기를 입에서 올릴 뿐 마사오에겐 별다른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아끼가 술값을 내려고 했다. 잠시 실랑이 끝에 마사오가 값을 지불하고 술집을 나왔다. 둘이 열차 시간에 맞추어 개찰구 쪽으로 향하려는데 개찰구 바로 앞에 누가 서 있었다. 유끼꼬였다.
‘조금 전에 어머니하고 같이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왔잖아? 어쩐 일일까?’
마사오는 유끼꼬 앞으로 다가섰다.
“유끼꼬? 여기는 어쩐 일이냐? 누굴 기다리는 중이니?”
“친구.”
“음, 약속이 있는 모양이구나”
“예”
아끼가 표를 사 가지고 왔다.
“어머, 이 애는 아까 하숙집에서 본 애잖아?”
“그 집 딸이야.”
“아유 귀엽기도 하지.”
마사오는 유끼꼬에게 아끼를 소개했다. 유끼꼬는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도 아끼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는 않았다. 마사오는 아끼를 재촉했다.
“자, 어서 서둘러야지.”
“알았어요. 아가씨! 이 사람을 잘 감시하세요. 다른 여자를 방에 들이지 않도록 말이에요”
그렇게 내뱉은 뒤 아끼는 개찰구를 향해 걸어갔다. 마사오는 그 뒤를 따라갔다. 아끼는 개찰구 앞에서 멈추더니 마사오를 향해 돌아서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글피 꼭이야!”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끼는 개찰구를 나가고 마사오는 유끼꼬에게로 돌아왔다.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어. 친구를 기다린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야.”
“아끼와 이 근처에서 한잔했어. 자 이제 가자.”
유끼꼬는 약간 사이를 두고 마사오와 아끼의 뒤를 쫓아온 게 틀림없었다. 마사오는 유끼꼬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마사오는 걸으며 생각했다.
‘이 손이 아끼의 화원을 만졌던 손이야.’
상가를 지나자 길이 몹시 어두웠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엄마한테는 뭐라고 하고 나왔니?”
“친구 집에 잠깐 갔다오겠다고 했어요.”
“그럼, 같이 들어가면 이상하겠구나.”
유끼꼬는 마사오의 손을 꼬옥 쥐었다. 손은 자그마하지만 야무지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
“그런데, 좀전에 그 여자와는 친한 사이에요?”
“응? 으응 약간.”
“오빠를 좋아하는 모양이지?”
좀전에 아끼가 유끼꼬에게 한 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원래 말투가 그래서 그렇지. 지금 남자 친구 일로 고민인가 봐. 그래서 자문을 구하러 왔던 거야.”
“애인이 있다구요?”
“응, 성질이 좋지 않은 남잔가 봐.”
“친한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오빠한테 그런 걸 상담할까?”
“원래 제멋대로인 애니까. 남자 관계도 그렇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잘못 걸린 것 같아 유끼꼬는 이 다음에 남자를 선택할 때는 잘 관찰해 보고해야 될 거야.”
“그 여자, 반드시 또 찾아올 거예요.”
“그럼 어떡하지?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은 여잔데.”
“하지만 예쁘잖아요”
“유끼꼬는 이 다음에 더 예뻐질 텐데. 그 애에게는 내적인 아름다움이 없어.”
마사오는 유끼꼬의 손을 놓고, 그 작은 어깨를 안았다. 왜 역까지 나와서 마사오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마사오는 죄의식을 느꼈다. 어린애의 팔을 비튼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마사오는 지금 유끼꼬의 팔보다도 귀중한 그 마음을 농락하고 있다는 죄의식이 느껴졌다.
역에서 멀어짐에 따라 담질이 많아지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가로등 사이의 가로수에서 잎이 떨어져 거리를 덮고 있었다. 유끼꼬는 멈춰 서서 마사오를 올려다봤다. 마사오는 주위를 둘러본 뒤 양팔로 유끼꼬의 어깨를 않았다. 등을 구부려 얼굴을 갖다댔다. 입술을 천천히 포갰다. 유끼꼬는 마사오에게 몸을 맡겼다. 입술을 부드럽게 포개고 등을 어루만지면서 얼굴을 끌어당겼다.
“술 냄새! 정말이었구나, 술 마셨다는 거.”
안심한 듯한 목소리였다. 마사오가 아끼와 어디로 갔었는지 의심했던 모양이다.
“정말이고 말고 그러니까 저녁 식사도 안 해도 되겠어.”
“나는 아직 식사 전인데.”
“그럼 집에서 기다리시겠군. 빨리 들어가야지. 먼저 들어갈래?”
“예.”
마사오는 유끼꼬의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그대로 서 있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유끼꼬와는 더 이상 불장난을 해서는 안 됀다.’
현관문은 빼꼼히 열려 있었다. 유끼꼬가 일부러 그렇게 해놓은 듯했다. 마사오는 활짝 열고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다녀왔습니다.”
유끼꼬가 신고 있던 빨간 끈의 나막신이 밖을 향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문을 잠그고 있는데 히쥬다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저녁식사하고 한잔하느라고 늦었습니다.”
“전에 있던 하숙집 딸이 왔었다면서요?”
“예, 아주머니도 들으셨군요.”
“앞으로 계속 부를 건가요?”
간섭하는 듯한 말투다. 하지만 싫은 내색을 해서는 안 된다.
“아니오 이제 오지 않을 겁니다.”
마사오가 웃으며 덧붙였다.
“성격이 활탈한 애지요”
“마사오 씨가 들어오란 말도 하진 않았는데 마음대로 계단을 올라가 방엘 들어갔다지요?”
“죄송합니다. 워낙 그런 애니 이해해 주십시오”
“설마 밤에 찾아오는 일은 없겠지죠?”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집에는 알다시피 어린애가 있으니 주의해 주기 바랍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마사오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아서 갑작스런 아끼의 출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허술한 태도에 대해 스스로 화가 치밀었다.
‘일 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었다는 것은 인연을 끊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다시 불쑥 나타나 멋대로 사람 마음을 휘저어 놓고 갔다. 내일모레 다시 만나자면서. 혹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른다. 성격적으로 나쁜 아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 다시 만나더라도 연관에는 가지 않을 거야.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아끼와의 일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마사오의 머릿속엔, 자신을 찾아다니다 역 개찰구 옆에 서 있던 사랑스런 유끼꼬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마사오가 학교에 가려고 역을 향해 길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앞에 찌에가 걸어가고 있었다. 마사오는 걸음을 재촉했다. 어제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을 찌에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오늘밤에는 좀 늦게 들어갈 거라는 얘기도 미리 해두기 위해서였다.
“이제 가십니까?”
마사오가 다가가 인사하지 찌에는 깜짝 놀라며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왼손으로 옮겨 들었다. 마사오가 오른쪽에 와 섰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찌에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학생이 그 아가씨와 함께 나간 뒤 그것이 걱정이 되는지 유끼꼬가 역으로 나갔었는데, 역에서 만났었죠?”
순간 마사오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찌에의 말이 단지 추측이라면 순순히 응할 필요는 없다.
“친구 집에 가지 않았던가요?”
오히려 반문을 해 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렷다.
“후후후.”
찌에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유끼꼬는 그렇게 말하지만 구실이죠 아직 어린애니까. 어제 그 아가씨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학생이 유혹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던 거겠죠. 급히 구실을 달고 나가더니 학생이 들어오기 바로 전에 들어왔어요”
“유끼꼬가 대학생인 저를 걱정해 준단 말입니까? 하하.”
“그래요 이제 그 아이도 사춘기니까 여러 가지로 민감할 때죠 하지만 난 어머님처럼 그런 식으로 엄하게 다스릴 생각은 없어요”
“어제 왔던 그 아가씨는 너무 오랜만이라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께서 학생한테 무슨 주의를 시키시는 것 같던데, 신경 쓰지 말아요 연세 드신 분이라 그러시는까. 앞으로 집에 데려오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얼마든지 데려오세요”
부드러운 성격 탓일까. 어젯밤 밖에서 유끼꼬를 만난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예, 그러찮아도 찾아올 여자 친구가 있는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인사를 하면서도 마사오는 찌에가 혹시 목욕탕에서 자기와 유끼꼬가 했던 짓까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스러웠다.
찌에는 히쥬다와는 달라서 현재 하숙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집안의 실권은 히쥬다 할머니에게 있었는데 찌에는 거스르지 않고 따르고는 있으나, 속으로는 다소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사오에게 그 표현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열차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었다. 같은 열차를 타는 것은 어제 아침에 이어 오늘이 두 번째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어제처럼 초만원을 이루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기다릴 새도 없이 열차는 금방 도착했다. 평상시 아침과 다름없이 차내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타는 사람에 비해 내리는 사람은 적었다.
마사오는 예의상 찌에를 먼저 타게 했다. 사람들끼리 어깨나 팔이 부딪칠 정도로 만원이었다. 문이 닫혔다.
‘이제 사람들의 귀가 있으니 어젯밤 역에서 유끼꼬를 만났던 일에 대해서는 다시 묻지 않겠지. 그 일에 대해 별로 걱정을 하지도 않아도 되겠지.’
마사오는 생각했다.
문이 닫히자 승객들은 각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찌에는 마사오 쪽으로 어깨를 돌렸다. 마사오는 왼손으로 가방을 먼저 들고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찌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술을 마시게 되면 용돈이 궁해질 텐데.”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 듯했다.
“예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 적절히 알아서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가 만나자 해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편이 좋을 거예요”
“불가피한 경우도 때론 있습니다. 사실은 오늘도 친구 집에 가게 될지도 모르거든요”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약간 비스듬히 비껴선 채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럼 늦게 들어오나요?”
“아니요 그렇게 늦지는 않을 겁니다.”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마사오에게는 아직도 선명했다. 찌에도 분명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로가 모르는 척하는 것은, 그러는 것이 서로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차가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 마사오는 자기 허벅지에 무언가 닿아 있는 걸 느꼈다. 열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찌에의 가방이 닿은 것이다. 소매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했다.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않도록 하세요”
“예, 주의하겠습니다.”
마사오에게는 어제 아침과 같은 일이 재현되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또 두려워하는 마음이 함께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도 있었다.
다시 찌에의 가방이 마사오의 허벅지에 와 닿았다. 이번에는 허벅지를 누른 채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난 그저 이대로 서 있을 뿐이었으니까. 움직인 건 찌에의 가방이야.’
열차가 커브 길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중심이 한쪽으로 쏠렸다. 찌에의 왼손이 마사오의 오른팔을 잡았다.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한 자연스런 행동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마사오는 또다시 찌에의 손등이 허벅지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열차 안은 점점 더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번 아침과 비슷하게 되었다. 찌에의 왼손은 마사오의 팔을 잡고 있었고 오른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차가 흔들릴 때마다 그 손등이 마사오의 허벅지를 눌렀다. 마사오의 팔을 잡고 있던 찌에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선로가 곧아지면서 사람들도 중심을 제대로 잡게 되자 찌에는 마사오의 팔을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나 허벅지에 느껴지는 손등의 감촉만은 그대로였다. 찌에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떼려고만 생각하면 금방 쉽게 뗄 수 있는데 찌에가 그대로 있는 이유는 무얼까.
‘혹시 지난 번가 같은 경우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
마사오는 새삼스레, 찌에가 미망인이라는 걸 또 의식했다. 마사오는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윤기 있는 머리카락은 어쩐지 그녀의 연약함을 강조하는 듯했다.
찌에의 손등도 약간 의식적으로 마사오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는 것같았다. 조금만 엎으로 움직이면 마사오의 그곳에 닿게 된다. 하지만 손등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사오는 문득, 괜히 자기 혼자만 괜한 상상을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찌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을지 모른다. 사실 마사오는 찌에에 대해서 유끼꼬를 대할 때와 같은 야심은 없었다. 그저 사소한 유희일 뿐이었다. 그때가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열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승객들이 중심을 잃고 움찔했던 사이에 찌에의 손등이 마사오의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녀의 몸도 마사오와 부딪칠 정도로 정면을 향해 서게 되었다.
순간 마사오의 몸은 찌에의 딱딱한 손등을 느꼈다. 마사오는 아직은 부드러웠다. 그 의미는 찌에도 알 것이다.
그러나 찌에의 손은 빠져나가기는켜녕 오히려 더욱 밀착해 왔다. 이 움직임은 분명히 주위의 동요의 의한 것이 아니다. 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마사오의 팔을 놓고 내리고 있던 손으로 가방을 든 것이라고 마사오는 추측했다. 마주선 두 사람 사이에 찌에의 오른손이 더해지면서 뭔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마사오에게 밀착되어 있던 찌에의 손 등 범위가 넓어졌다. 열차의 움직임과는 문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어린 유끼꼬의 손이 아니라 그 어머니의 손이야.’
너무도 부도덕한 일이었다.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부도덕함이 오히려 매력적인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몸과 찌에의 손에서 온도차를 느꼈다. 찌에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좀 덥군요”
찌에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은 지금의 행동이 분명 의식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마사오의 몸은 급속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사오의 성기는 오히려 고개를 쳐들고 찌에의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이제껏 얌전히 있었는데, 갑작스런 변화였다.
찌에의 상체가 마사오에게로 기울여졌다. 팔이 가슴에 부딪혔다. 그러더니 천천히 찌에의 손바닥이 뒤집혔다. 손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마사오를 잡는다기보다는 감싸는 형태를 취했다. 바지를 통해서 마사오는 찌에의 손가락을 느꼈다.
‘큰일이야!’
당연히 찌에도 그녀 자신의 의도적인 행동을 마사오가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감히 그런 행동을 했다.
마사오는 신선한 충격 속에서 자신이 아직 찌에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대답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었다.
“곧 장마철이 될 것 같은데요”
마사오는 될 수 있는 대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찌에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차분한 움직임이었다. 이미 마사오의 몸은 당당한 마음으로 찌에의 손에 맥박을 전하기 시작했다. 찌에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찌에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마사오의 성기를 꽉 쥐었다. 찌에의 움직임에는 애무의 율동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꽉 조여올 뿐이었다. 소녀인 유끼꼬보다 손놀림이 딱딱했다. 그에 비해 마사오의 몸은 강한 맥박으로 뛰고 있었다.
열차의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차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종점에 가까워진 것이었다. 찌에의 손은 그대로였다. 얼굴은 거의 마사오의 어깨에 파묻다시피 되어 있었다.
“곧 종점입니다.”
찌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더 세게 잡았다.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처음 보이는 애무였다.
마사오는 찌에의 귀에 입을 댄 채 작은 소리로 감각을 알렸다.
“아아.”
찌에의 손이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손바닥을 천체로 만졌던 곳을 밑으로 비스듬히 밀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한 번 흥분한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리는 없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승객들은 문을 향해 서기 시작했다. 마사오도 방향을 바꿨다. 찌에는 마사오의 팔에 팔짱을 꼈다. 친해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건지 모른다. 마사오는 팔을 조여서 찌에의 팔에 신호를 보냈다.
‘만약 이 사람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그 사실을 유끼꼬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보다 히쥬다 할머니가 알까 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 진전이 될지 어떨지 모르는 일이었다.
찌에가 만약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나로서는 그것을 거부할 만한 윤리 의식은 없다. 찌에에게는 지금까지 다른 여자에게서 느껴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매력까지 느끼고 있다.
열차가 굉음을 지르며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문에 가까이 선 사람들부터 차례로 내렸다. 둘이 차례로 내렸다. 차에 내렸을 때 찌에는 마사오의 팔을 풀면서 재빨리 속삭였다.
“벤치에서 잠깐 쉬어 가요”
“예.”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며 찌에가 옆으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오늘밤 너무 늦지 말아요”
“예”
벤치는 비어 있었다. 사실은 쉬어 가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찌에의 생각을 존중해서 마사오는 멈춰 섰다. 그런데 찌에는 중얼거리며 그대로 걸어가 버린다.
“나중에 봐요”
‘왜 저러지? 부끄러워서일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 버리다니.’
마사오는 혼자 벤ㅊ.에 걸터앉았다.
‘아무튼 좀 앉자. 개찰구도 붐비고, 좀 늦게 나가는 편이 편하다.’
사람들이 플랫품을 다 빠져나가자, 마사오는 혼자 남겨졌다. 가방을 무릎에 놓은채 앞에 펼쳐진 복잡한 선로를 보고 있는데 누가 다가왔다.
찌에였다.
“미안해요”
상냥함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색기마저 풍겼다.
“아닙니다.”
“내가 싫어졌죠?”
중요한 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마사오는 의식했다.
“그 반대입니다.”
“정말?”
“예.”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돼요.”
“물론이죠”
“차분히 여러 가지 얘기하고 싶은데요”
“예. 저는 언제든지 좋습니다.”
“하지만 전 걱정이에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질문의 뜻은 알 만했다. 분명, 마사오에게 아직 여자가 없다고 찌에는 믿고 있는 것이었다.
작년 가을 마사오는 센까에게 심하게 당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센까에게 빈 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후 센까도 더 이상 유혹하려 들지 않았다. 냉정하게 대하니까 화가 난 건지도 모랐다. 아니면 벌써 잊어 버렸거나.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하던 상대와 일이 생기다니. 혹시라도 유끼꼬가 자신과 있었던 일을 자기 어머니에게 고해 바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되면서도 딸인 유끼꼬에게 잡혔다는 사실이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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