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추억3권-13. 문틈의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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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문틈의 눈길
같은 과 친구인 다까와 찌넨에게 불량소녀를 소개받기로 한 것에 마사오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불량소녀가 자기에게 호감을 갖다니 우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은 묘우미의 왕성한 호기심을 생대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까와에게 조르지 않았고 다까와도 역시 그 일을 잊었는지 그 후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다까와가 준 그 소녀의 사진은 책상 서랍 안에서 미소를 띤 채 누워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잠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마사오는 자기 몸이 터질 듯 경직왜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평소 아침에도 그렇지만 그날 따라 좀 별나게 심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에는 묘우미와 한번도 관계를 갖지 못했었다. 마나기는 두어 번 했지만 영화를 보거나 어두운 공간에서 잠깐 애무만 했을 뿐이었다. 돈이 없어서 여관에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공원이나 광장 같은 곳의 어두운 구석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건 마사오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건 묘우미도 틀림없이 싫어할 것이었다.
어디 혼자 자취하는 여자애는 없을까? 그때 떠오른 것이 다까와가 건넨 사진 속의 불량소녀였다.
혹시 하고 생각을 해보다 몸을 뒤채며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들추고 터질 듯이 부푼 자신의 몸을 만지락거렸다.
‘지금, 돈만 있다면 묘우미를 만나는 건데.’
그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문이 조금 열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젯밤 술기운에 문 닫는 걸 깜빡했나 생각했다. 거기에 웬 사람이 서 있었다. 이 집 손녀딸 유끼꼬였다.
얼굴이 굳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마사오의 손장난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볼일이 있어 온 참이었을 것이다. 워낙 조심스러운 아이라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고, 마사오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상대가 순진한 아이이기 때문이었다.
‘보고 있는 걸 내가 눈치챈 것처럼 해서는 안 돼. 당황해서도 안 돼.’
마사오는 천천히 이불을 덮고 다른 쪽을 향해 눈을 감았다. 역시, 조금 있자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살짝 내려갔다가 다시 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소리를 질렀다.
“서류 왔어요.”
마사오는 짐짓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돌아다보니 활짝 열린 문으로 유끼꼬가 들어서며 흰 봉투를 마사오에게 내밀었다.
“으응, 마침 기다리고 있던 거야.”
집에서 생활비를 부쳐 온 것이었다. 유끼꼬는 방으로 쑥 들어서더니 마사오 앞에 단정히 앉았다. 유끼꼬의 얼굴엔 벌써 조금 전의 놀라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줍음이나 혐오의 빛도 없었다. 까맣고 맑은 눈동자였다.
‘이 애는 틀림없이 뭐가 뭔지 모를 거야. 신기한 것을 목격한 그냥 그런 심리일 테지. 돌아갔다가 다시 온 것은 아이 마음에도 모르는 척 하는 편이 나를 위한 친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몰라도 조금 비밀스러운 짓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지금, 몇 시지?”
“여덟 시요.”
“피아도 쳐도 돼요.”
사람들은 늦잠을 자는 일요일이니까 조금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응, 괜찮아. 소리가 아주 좋아. 곡도 좋고 또 네가 잘치니까.”
“거짓말! 전 잘 못 치는데요.”
금새 유끼꼬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 잘 치던데.”
마사오는 안심했다. 역시 소녀는 좀전에 본 광경에 대해서는 아무 느낌이 없었던 것이다. 유끼꼬는 몸매도 자기 엄마를 꼭 닮았다. 외동딸로 자라 그런지 다른 애들보다도 특히 어렷다. 성에 대해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마사오는 엎드려 어머니가 보낸 봉투를 뜯었다. 편지도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예요?”
발신인 난에는 아버지 이름이 었지만 그 필적은 어머니 글씨였다.
“아니, 어머니.”
“네에.”
편지 내용은 일상적인 말들이었다. 마사오가 편지를 읽어내려 가고 있을 때 유끼꼬가 말했다.
“오빠네, 감나무 있어요?”
“응, 세 그루. 감 보내 주신대. 도착하면 유끼꼬에게도 줄게. 맛있어. 이렇게 크다구.”
“밤도 있어요.”
“응. 근처 산에 아주 맣아. 작고 맛이 달아.”
“가 보고 싶어요. 저, 여행이라곤 가까운 강이나 섬밖에 못 가 봤어요.”
“겨울 방학 때 함께 갈까?”
“와! 그래요.”
“어머니가 허락하실까?”
“말씀드려 볼래요.”
“좋아. 나도 거들어 주지.”
여동생이 없는 마사오는 유끼꼬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기분이 흐믓했다. 물론 어머니도 몹시 반기실 것이다. 도쿄에 있다가 고향에 내려가는 남학생들은 더러 며느릿감을 선뵈러 여자 친구와 동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끼코 같은 꼬마 친구의 손목을 잡고 가는 사람은 없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흐뭇하시겠는다. 아들이 도시에 나가 공부만 착실히 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일 테니까.
유끼꼬가 천진스러운 얼굴로 내려가고 나서 얼마쯤 지났을 때 집 앞에 짐수레가 하나 도착했다. 수레에는 이삿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두 남자가 끌고 있었다. 마사오의 건너편 방에 젊은 신혼부부가 이사온 것이다. 다른 한 남자는 남편 친구인 모양이었다. 노파 하쥬다가 젊은 부부를 마사오에게 소개했다.
하시자끼 구시에와 그 아내인 센까였다. 하시자끼는 동북 사투리를 쓰는 매우 솔직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농촌 출신으로 거무튀튀한 부피에 작은 듯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스물 다섯의 젊은 사내였다.
아내인 센까는 스물세 살로, 피부가 희고 좀 뚱뚱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둥글고 통통한 뺨에 광대뼈가 조금 나온 듯하고 납작한 코, 말하자면 못생긴 얼굴이었다. 말씨는 관동 북부 사투리였다.
하마자끼는 힌쇄소에 다니고 센까는 집안에서 봉투 붙이는 부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엄격한 하쥬다가 방을 빌려 준 만큼, 성실성 하나만은 믿어도 될 사람들일 것이었다. 다만, 부엌을 같이 쓰게 된 불편은 있었다.
그들 하시자끼 부부를 따라온 청년은 사투리도 없는 유창한 말씨로 몸짓이나 표정이 어쩐지 몹시 호색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사온 사람이 그 청년이 아니라는 것이 마사오는 다행스러웠다. 한참 부산스럽게 짐을 옮기더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지 셋은 밖으로 나갔다. 마사오가 덮어두었던 책을 다시 펴 들고 누었을 때 유끼꼬가 또 왔다.
“할머니께서요, 차나 한 잔 같이 하시재요.”
유끼꼬를 따라 내려간 아래층 객실에는 유끼꼬의 어머니인 찌에도 있었다. 찌에는 차와 과자를 마사오에게 권하며 조용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시끄러울 텐데, 참아 주세요.”
“예, 좋은 사람들인 것 같던데요. 잘 지낼 수 있을 겁니다.”
하쥬다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건넌방은 학생이니까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고 했어요. 만약 무슨 불편한 점이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곧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리고 서류를 뒤적거리면서 이사온 부부의 나이나 직업 등을 이야기했다.
“신혼 석 달째고 지금까지는 친척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대요. 아이는 당분간 낳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한참을 그들에 대해 아는 대로 전해 주더니 하쥬다가 불쑥 어투를 고쳐 말했다.
“유끼꼬가 이상한 말을 하는데 뭔지 말해 주겠어요.”
순간 마사오는 가슴이 철렁했다. 고개를 숙인 채 책을 들여다보던 유끼꼬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오빠 시골에 가고 싶어요.”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유끼꼬가 말했다.
“예. 겨울방학 때 데리고 갔다오면 안 되겠습니까?”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사오가 말했다. 하쮸다는 엷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학생, 정말 그러고 싶습니까?”
“예. 진심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이들을 좋아하십니다. 분명 기뻐하실거예요. 왕복 시간이 좀 문제이긴 한데 세 시간 정도 가다 보면 자리도 날 겁니다. 유끼꼬는 말랐으니까 사람들 사이에 앉혀도 되구요.”
“그러나 이 애는 엄마 곁을 떠난 적이 없어요. 분명히 도중에 돌아온다고 떼를 쓸 겁니다.”
“아니에요. 전 울지 않아요. 오빠와 함께 가는 걸요.”
“정말 울지 않아?”
찌에가 부드러운 얼굴로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예. 울지 않아요.”
하쥬다가 말했다.
“갑자기 들어닥치면 어머니께서도 당황하실 겁니다. 힘드실 테니까요. 그런 폐를 끼치면 좀…….”
“그 점은 안심하십시오. 유끼꼬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자랑스럽게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어머니도 굉장히 좋아하실 거구요.”
“저, 가고 싶어요.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보내라는 말도 있잖아요.”
유끼꼬는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미야자끼 씨 어머니 허락도 받아야되니까.”
“그러면 저는, 생활비 보내신 것에도 감사드릴 겸 집에 편지를 써야겠군요. 틀림없이 허락하실 겁니다.”
그러자 유끼꼬가 갑자기 말했다.
“다에꼬 씨도 만나게 해줄 거예요.”
“요것이!”
찌에가 유끼꼬를 가볍게 나무라고는 자리를 떴다.
마사오는 슬쩍 웃어 보였다.
“물론. 만나게 해줄게.”
항상 편지가 오니까 이 집 식구들이 다에꼬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목욕물 데워 놨어요. 저, 어머니, 오늘은 미야자끼 씨도 들어가라고 할까요?”
잠시 자리를 비웠던 찌에가 들어와 않더니 말했다. 이 사람으로선 보기 드물게 적극적인 말이었다. 히쥬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들어가세요. 할아버지께서 나오신 다음이 좋을 겁니다. 할아버지는 탕 속에 들어가지 않으시니까요.”
“제가 할아버지 목욕을 도와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요. 많이 나아지셨으니까 우리들이 할 수 있습니다. 참 그리고, 하시자끼 씨 부부는 아직 목욕탕을 쓰도록 하지 않았으니까, 미야지끼 씨는 처음부터 그러기로 하고 이사왔다고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혹시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죠.”
그때 어른들의 대화를 얌전히 듣고 있던 유끼꼬가 불쑥 말했다.
“저, 오늘은 오빠와 같이 목욕할래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얼굴이었다. 반사적으로 마사오에게는 아침 일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정말 안심이 되었다. 역시 아침 일은 이 소녀와는 무관한 일이었던 것이다.
“오빠 힘들다.”
히쥬다가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마사오는 가뿐해진 마음으로 혼쾌히 대답했다.
자기 방에 돌아온 마사오는 책을 펴 들고 않아 아래층에서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사오는 벌떡 일어나 속옷 차림으로 수건과 비누를 대야에 담아 계단을 내려갔다.
“유끼꼬는 먼저 들어갔어요. 그 애는 이제 혼자 씻을 수 있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히쥬다 노파가 일러 준 말이었다. 먼저 들어가 있다니! 정말 순진한 어린애였다. 오빠가 없는 유끼꼬로서는 아마 진작부터 자신을 친 오빠처럼 가까이 대하고 싶었던 거라고 마사오는 해석했다. 마사오는 탈의장으로 들어갔다. 유끼꼬의 속옷이 등나무 바구니 속에 단정히 개어져 있었다.
마사오는 알몸으로 유리문을 열기 전에 수건으로 앞을 가릴까 말까 생각했다. 연인 이외에는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몸을 가리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아이인 경우에는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마사오는 몸을 가리지 않고, 그러나 잘 보이지 않도록 수건을 들고 유리문을 열었다. 목욕탕은 서쪽을 향해 창이 두 짝 나 있었다. 창으로 들이치는 오후의 햇살로 목욕탕 안은 훤하게 밝았다.
유끼꼬는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는 탕 속에서 고개만 내민 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뜨거운 것을 참느라고 꼭 다문 입술에 큰 눈이 발그레해진 뺨과 어울려 무척 귀여워 보였다.
마사오는 유끼꼬의 시선에 신경쓰면서 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유끼꼬는 알몸으로 다가오는 마사오의 몸을 훑어보지도 않았지만 눈길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사오의 눈을 동그란 눈으로 바랄볼 뿐이었다.
탕 앞에 쪼그리고 앉아 몸에 물을 끼얹고 나서 마사오는 탕 속으로 들어가려고 일어섰다. 역시 앞이 유끼꼬에게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였다. 당연히 유끼꼬의 알몸이 마사오의 피부에 밀착되어 왔다. 그러나 상대는 아이였다. 자극은 느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건강하셨을 때는 자주 함께 목욕했겠구나.”
“예. 국민하교 때까지는요.”
“그러면 벌써 이 년 동안이나 누워 계신 거구나.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힘드시겠네.”
“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몇 분을 보내자 마사오는 숨이 막혔다. 원래 탕 속에 오래 있지 못하는 성미였다.
“유끼꼬, 안 나갈래?”
“조금만 더요.”
“굉장하구나. 오빠는 벌써 답답해서 못 참겠는데. 난 나가서 닦아야겠어.”
마사오는 탕에서 나와 받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도 씻을래요.”
유끼꼬가 탕 속에서 일어섰다. 하얀 몸이 드러났다. 상상하던 대로 작은 가슴이었다. 분홍빛의 두 유두 주위가 조금 도톰할 뿐이었다. 그러나 마사오는 유끼꼬의 몸을 똑바로 보지는 않았다.
유끼꼬는 아이다운 행동으로 욕조에서 나와 섰다. 받침대에 앉아 있는 마사오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위에서 아래까지 그야말로 눈처럼 하얀 피부였다. 당현히 마사오의 눈길은 그 양다리의 뿌리로 쏠렸다. 작은 언덕도 하얗다. 세로로 선이 달리고 있었다. 그것뿐이었다. 몸을 씻으면서 마사오는 슬쩍 곁눈질을 했다. 유끼꼬는 발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귀여운 모습이었다. 작은 손으로 보드라운 목을 닦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누구와 했니?”
“할머니랑 엄마랑요.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대중탕에는 친구랑 갈 때가 많구요.”
나란히 앉아 각자의 몸을 닦으면서 사이좋게 이야기를 했다. 가냘픈 어깨였다. 전체적으로 살이 없었다. 소녀는 뚱뚱한 체격이 조금 조숙해 보이는데 그걸 생각하면 유끼꼬는 평균보다도 일년 정도 늦을지도 모른다. 학교 성적은 우수한 편이라고 듣고 있었다. 공부 잘 하는 만큼 다른 쪽으로의 관심은 적을지 모른다. 마사오는 유끼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쓰다듬었다.
“살이 좀 쪄야겠구나.”
“난 잘 먹지 않아요. 경쟁 상대가 없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뼈대에서 도시 아이들의 가냘픔이 느껴졌다. 꽉 잡으면 부러질 것 같았다.
“우리 반에 굉장히 뚱뚱한 애가 있어요. 그 앤 뚱뚱해서 괴롭대요. 그애 살을 반만 얻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유끼꼬는 자기 반 아이들에 관해서 한참을 재잘거렸다. 남자인 마사오와 함께 목욕한다는 것을 전혀 별달리 생각지 않는다는 증거였다.마사오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는 유끼꼬의 천진함이 귀여워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 나갈까?”
“벌써요?”
“그래. 오빠는 목욕을 오랫동안 하지 못해. 유끼꼬는 좀 더 해도 되겠지.”
마사오는 일어섰다. 마사오의 앞이 드디어 유끼꼬의 눈앞에 드러나게 되었다. 거뭇한 음모 가운데 머리를 숙이고 나와 있는 그것은 유끼꼬의 눈 높이와 똑같았다. 유끼꼬의 눈이 그것에 꽂히는 걸 마사오는 느꼈다. 수줍음도 없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어린애다운 행동이었다. 마사오는 이제 자신도 아침에 있었던 수치스러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욕을 마치고 마사오는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윈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마침 유끼꼬도 현관을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둘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어디 가니?”
“친구 집에요. 이것을 돌려주러 가요.”
손에 든 책을 유끼꼬는 보여주었다. 아동 소설책이었다.
“이걸 주고 다른 것을 빌리려구요. 그 친구는 책이 많거든요.”
책 든 손을 휘휘 둘러대며 유끼꼬는 그 친구가 얼마나 책이 많은지에 대해 한참을 재잘거렸다. 그러더니 불쑥 말했다.
“나, 오빠한테 물어 볼 게 있어요.”
“응? 뭔데?”
목욕을 같이해서인지 둘은 퍽 친밀해졌다. 마사오는 이 천진하고 솔직한 소녀가 사랑스러웠다. 유끼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저었다.
“좀 부끄러워요.”
장난기 어린 웃음이 가지런한 얼굴에 번졌다.
“부끄러워? 뭔데?”
“아이, 오늘은 그만두는 게 낫겠어요. 지금 찾아가는 친구가 만물 박사예요. 그 애에게 물어볼래요.”
“그것보다 내에게 묻는 게 더 나을 텐데.”
마사오는 등을 구부려 유끼꼬 입가로 귀를 갖다대었다.
“자, 말해 봐.”
“…….”
“이런! 의문이 생기면 물어야지!”
“그래도 부끄러운 일인 걸요.”
마사오는 순간 유끼꼬의 목소리에 비로소 요염한 색깔이 묻어 있음을 느꼈다. 마사오는 갑자기 흥미가 일었다.
“부끄러울 것 없어. 날 선생님이라고 생각해 봐. 어떤 일이라도 정직하고 확실하게 대답해 주겠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구요?”
“물론. 자, 말해 봐.”
마사오는 귀를 더욱 바싹 갖다대었다. 유끼꼬의 따뜻한 숨결이 귀를 간지럽혔다.
“저……, 아이 역시 친구가 낫겠어요. 오빠 그럼 이따 봐요.”
유끼꼬는 치마를 팔랑거리며 뛰어갔다.
같은 과 친구인 다까와 찌넨에게 불량소녀를 소개받기로 한 것에 마사오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불량소녀가 자기에게 호감을 갖다니 우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은 묘우미의 왕성한 호기심을 생대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까와에게 조르지 않았고 다까와도 역시 그 일을 잊었는지 그 후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다까와가 준 그 소녀의 사진은 책상 서랍 안에서 미소를 띤 채 누워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잠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마사오는 자기 몸이 터질 듯 경직왜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평소 아침에도 그렇지만 그날 따라 좀 별나게 심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에는 묘우미와 한번도 관계를 갖지 못했었다. 마나기는 두어 번 했지만 영화를 보거나 어두운 공간에서 잠깐 애무만 했을 뿐이었다. 돈이 없어서 여관에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공원이나 광장 같은 곳의 어두운 구석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건 마사오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건 묘우미도 틀림없이 싫어할 것이었다.
어디 혼자 자취하는 여자애는 없을까? 그때 떠오른 것이 다까와가 건넨 사진 속의 불량소녀였다.
혹시 하고 생각을 해보다 몸을 뒤채며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들추고 터질 듯이 부푼 자신의 몸을 만지락거렸다.
‘지금, 돈만 있다면 묘우미를 만나는 건데.’
그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문이 조금 열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젯밤 술기운에 문 닫는 걸 깜빡했나 생각했다. 거기에 웬 사람이 서 있었다. 이 집 손녀딸 유끼꼬였다.
얼굴이 굳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마사오의 손장난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볼일이 있어 온 참이었을 것이다. 워낙 조심스러운 아이라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고, 마사오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상대가 순진한 아이이기 때문이었다.
‘보고 있는 걸 내가 눈치챈 것처럼 해서는 안 돼. 당황해서도 안 돼.’
마사오는 천천히 이불을 덮고 다른 쪽을 향해 눈을 감았다. 역시, 조금 있자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살짝 내려갔다가 다시 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소리를 질렀다.
“서류 왔어요.”
마사오는 짐짓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돌아다보니 활짝 열린 문으로 유끼꼬가 들어서며 흰 봉투를 마사오에게 내밀었다.
“으응, 마침 기다리고 있던 거야.”
집에서 생활비를 부쳐 온 것이었다. 유끼꼬는 방으로 쑥 들어서더니 마사오 앞에 단정히 앉았다. 유끼꼬의 얼굴엔 벌써 조금 전의 놀라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줍음이나 혐오의 빛도 없었다. 까맣고 맑은 눈동자였다.
‘이 애는 틀림없이 뭐가 뭔지 모를 거야. 신기한 것을 목격한 그냥 그런 심리일 테지. 돌아갔다가 다시 온 것은 아이 마음에도 모르는 척 하는 편이 나를 위한 친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몰라도 조금 비밀스러운 짓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지금, 몇 시지?”
“여덟 시요.”
“피아도 쳐도 돼요.”
사람들은 늦잠을 자는 일요일이니까 조금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응, 괜찮아. 소리가 아주 좋아. 곡도 좋고 또 네가 잘치니까.”
“거짓말! 전 잘 못 치는데요.”
금새 유끼꼬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 잘 치던데.”
마사오는 안심했다. 역시 소녀는 좀전에 본 광경에 대해서는 아무 느낌이 없었던 것이다. 유끼꼬는 몸매도 자기 엄마를 꼭 닮았다. 외동딸로 자라 그런지 다른 애들보다도 특히 어렷다. 성에 대해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마사오는 엎드려 어머니가 보낸 봉투를 뜯었다. 편지도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예요?”
발신인 난에는 아버지 이름이 었지만 그 필적은 어머니 글씨였다.
“아니, 어머니.”
“네에.”
편지 내용은 일상적인 말들이었다. 마사오가 편지를 읽어내려 가고 있을 때 유끼꼬가 말했다.
“오빠네, 감나무 있어요?”
“응, 세 그루. 감 보내 주신대. 도착하면 유끼꼬에게도 줄게. 맛있어. 이렇게 크다구.”
“밤도 있어요.”
“응. 근처 산에 아주 맣아. 작고 맛이 달아.”
“가 보고 싶어요. 저, 여행이라곤 가까운 강이나 섬밖에 못 가 봤어요.”
“겨울 방학 때 함께 갈까?”
“와! 그래요.”
“어머니가 허락하실까?”
“말씀드려 볼래요.”
“좋아. 나도 거들어 주지.”
여동생이 없는 마사오는 유끼꼬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기분이 흐믓했다. 물론 어머니도 몹시 반기실 것이다. 도쿄에 있다가 고향에 내려가는 남학생들은 더러 며느릿감을 선뵈러 여자 친구와 동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끼코 같은 꼬마 친구의 손목을 잡고 가는 사람은 없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흐뭇하시겠는다. 아들이 도시에 나가 공부만 착실히 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일 테니까.
유끼꼬가 천진스러운 얼굴로 내려가고 나서 얼마쯤 지났을 때 집 앞에 짐수레가 하나 도착했다. 수레에는 이삿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두 남자가 끌고 있었다. 마사오의 건너편 방에 젊은 신혼부부가 이사온 것이다. 다른 한 남자는 남편 친구인 모양이었다. 노파 하쥬다가 젊은 부부를 마사오에게 소개했다.
하시자끼 구시에와 그 아내인 센까였다. 하시자끼는 동북 사투리를 쓰는 매우 솔직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농촌 출신으로 거무튀튀한 부피에 작은 듯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스물 다섯의 젊은 사내였다.
아내인 센까는 스물세 살로, 피부가 희고 좀 뚱뚱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둥글고 통통한 뺨에 광대뼈가 조금 나온 듯하고 납작한 코, 말하자면 못생긴 얼굴이었다. 말씨는 관동 북부 사투리였다.
하마자끼는 힌쇄소에 다니고 센까는 집안에서 봉투 붙이는 부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엄격한 하쥬다가 방을 빌려 준 만큼, 성실성 하나만은 믿어도 될 사람들일 것이었다. 다만, 부엌을 같이 쓰게 된 불편은 있었다.
그들 하시자끼 부부를 따라온 청년은 사투리도 없는 유창한 말씨로 몸짓이나 표정이 어쩐지 몹시 호색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사온 사람이 그 청년이 아니라는 것이 마사오는 다행스러웠다. 한참 부산스럽게 짐을 옮기더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지 셋은 밖으로 나갔다. 마사오가 덮어두었던 책을 다시 펴 들고 누었을 때 유끼꼬가 또 왔다.
“할머니께서요, 차나 한 잔 같이 하시재요.”
유끼꼬를 따라 내려간 아래층 객실에는 유끼꼬의 어머니인 찌에도 있었다. 찌에는 차와 과자를 마사오에게 권하며 조용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좀 시끄러울 텐데, 참아 주세요.”
“예, 좋은 사람들인 것 같던데요. 잘 지낼 수 있을 겁니다.”
하쥬다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건넌방은 학생이니까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고 했어요. 만약 무슨 불편한 점이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곧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리고 서류를 뒤적거리면서 이사온 부부의 나이나 직업 등을 이야기했다.
“신혼 석 달째고 지금까지는 친척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대요. 아이는 당분간 낳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한참을 그들에 대해 아는 대로 전해 주더니 하쥬다가 불쑥 어투를 고쳐 말했다.
“유끼꼬가 이상한 말을 하는데 뭔지 말해 주겠어요.”
순간 마사오는 가슴이 철렁했다. 고개를 숙인 채 책을 들여다보던 유끼꼬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오빠 시골에 가고 싶어요.”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유끼꼬가 말했다.
“예. 겨울방학 때 데리고 갔다오면 안 되겠습니까?”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사오가 말했다. 하쮸다는 엷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학생, 정말 그러고 싶습니까?”
“예. 진심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이들을 좋아하십니다. 분명 기뻐하실거예요. 왕복 시간이 좀 문제이긴 한데 세 시간 정도 가다 보면 자리도 날 겁니다. 유끼꼬는 말랐으니까 사람들 사이에 앉혀도 되구요.”
“그러나 이 애는 엄마 곁을 떠난 적이 없어요. 분명히 도중에 돌아온다고 떼를 쓸 겁니다.”
“아니에요. 전 울지 않아요. 오빠와 함께 가는 걸요.”
“정말 울지 않아?”
찌에가 부드러운 얼굴로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예. 울지 않아요.”
하쥬다가 말했다.
“갑자기 들어닥치면 어머니께서도 당황하실 겁니다. 힘드실 테니까요. 그런 폐를 끼치면 좀…….”
“그 점은 안심하십시오. 유끼꼬는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자랑스럽게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어머니도 굉장히 좋아하실 거구요.”
“저, 가고 싶어요.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보내라는 말도 있잖아요.”
유끼꼬는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미야자끼 씨 어머니 허락도 받아야되니까.”
“그러면 저는, 생활비 보내신 것에도 감사드릴 겸 집에 편지를 써야겠군요. 틀림없이 허락하실 겁니다.”
그러자 유끼꼬가 갑자기 말했다.
“다에꼬 씨도 만나게 해줄 거예요.”
“요것이!”
찌에가 유끼꼬를 가볍게 나무라고는 자리를 떴다.
마사오는 슬쩍 웃어 보였다.
“물론. 만나게 해줄게.”
항상 편지가 오니까 이 집 식구들이 다에꼬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목욕물 데워 놨어요. 저, 어머니, 오늘은 미야자끼 씨도 들어가라고 할까요?”
잠시 자리를 비웠던 찌에가 들어와 않더니 말했다. 이 사람으로선 보기 드물게 적극적인 말이었다. 히쥬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들어가세요. 할아버지께서 나오신 다음이 좋을 겁니다. 할아버지는 탕 속에 들어가지 않으시니까요.”
“제가 할아버지 목욕을 도와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요. 많이 나아지셨으니까 우리들이 할 수 있습니다. 참 그리고, 하시자끼 씨 부부는 아직 목욕탕을 쓰도록 하지 않았으니까, 미야지끼 씨는 처음부터 그러기로 하고 이사왔다고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혹시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죠.”
그때 어른들의 대화를 얌전히 듣고 있던 유끼꼬가 불쑥 말했다.
“저, 오늘은 오빠와 같이 목욕할래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얼굴이었다. 반사적으로 마사오에게는 아침 일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정말 안심이 되었다. 역시 아침 일은 이 소녀와는 무관한 일이었던 것이다.
“오빠 힘들다.”
히쥬다가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마사오는 가뿐해진 마음으로 혼쾌히 대답했다.
자기 방에 돌아온 마사오는 책을 펴 들고 않아 아래층에서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사오는 벌떡 일어나 속옷 차림으로 수건과 비누를 대야에 담아 계단을 내려갔다.
“유끼꼬는 먼저 들어갔어요. 그 애는 이제 혼자 씻을 수 있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히쥬다 노파가 일러 준 말이었다. 먼저 들어가 있다니! 정말 순진한 어린애였다. 오빠가 없는 유끼꼬로서는 아마 진작부터 자신을 친 오빠처럼 가까이 대하고 싶었던 거라고 마사오는 해석했다. 마사오는 탈의장으로 들어갔다. 유끼꼬의 속옷이 등나무 바구니 속에 단정히 개어져 있었다.
마사오는 알몸으로 유리문을 열기 전에 수건으로 앞을 가릴까 말까 생각했다. 연인 이외에는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몸을 가리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아이인 경우에는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마사오는 몸을 가리지 않고, 그러나 잘 보이지 않도록 수건을 들고 유리문을 열었다. 목욕탕은 서쪽을 향해 창이 두 짝 나 있었다. 창으로 들이치는 오후의 햇살로 목욕탕 안은 훤하게 밝았다.
유끼꼬는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는 탕 속에서 고개만 내민 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뜨거운 것을 참느라고 꼭 다문 입술에 큰 눈이 발그레해진 뺨과 어울려 무척 귀여워 보였다.
마사오는 유끼꼬의 시선에 신경쓰면서 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유끼꼬는 알몸으로 다가오는 마사오의 몸을 훑어보지도 않았지만 눈길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사오의 눈을 동그란 눈으로 바랄볼 뿐이었다.
탕 앞에 쪼그리고 앉아 몸에 물을 끼얹고 나서 마사오는 탕 속으로 들어가려고 일어섰다. 역시 앞이 유끼꼬에게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였다. 당연히 유끼꼬의 알몸이 마사오의 피부에 밀착되어 왔다. 그러나 상대는 아이였다. 자극은 느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건강하셨을 때는 자주 함께 목욕했겠구나.”
“예. 국민하교 때까지는요.”
“그러면 벌써 이 년 동안이나 누워 계신 거구나.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힘드시겠네.”
“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몇 분을 보내자 마사오는 숨이 막혔다. 원래 탕 속에 오래 있지 못하는 성미였다.
“유끼꼬, 안 나갈래?”
“조금만 더요.”
“굉장하구나. 오빠는 벌써 답답해서 못 참겠는데. 난 나가서 닦아야겠어.”
마사오는 탕에서 나와 받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도 씻을래요.”
유끼꼬가 탕 속에서 일어섰다. 하얀 몸이 드러났다. 상상하던 대로 작은 가슴이었다. 분홍빛의 두 유두 주위가 조금 도톰할 뿐이었다. 그러나 마사오는 유끼꼬의 몸을 똑바로 보지는 않았다.
유끼꼬는 아이다운 행동으로 욕조에서 나와 섰다. 받침대에 앉아 있는 마사오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위에서 아래까지 그야말로 눈처럼 하얀 피부였다. 당현히 마사오의 눈길은 그 양다리의 뿌리로 쏠렸다. 작은 언덕도 하얗다. 세로로 선이 달리고 있었다. 그것뿐이었다. 몸을 씻으면서 마사오는 슬쩍 곁눈질을 했다. 유끼꼬는 발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귀여운 모습이었다. 작은 손으로 보드라운 목을 닦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누구와 했니?”
“할머니랑 엄마랑요.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대중탕에는 친구랑 갈 때가 많구요.”
나란히 앉아 각자의 몸을 닦으면서 사이좋게 이야기를 했다. 가냘픈 어깨였다. 전체적으로 살이 없었다. 소녀는 뚱뚱한 체격이 조금 조숙해 보이는데 그걸 생각하면 유끼꼬는 평균보다도 일년 정도 늦을지도 모른다. 학교 성적은 우수한 편이라고 듣고 있었다. 공부 잘 하는 만큼 다른 쪽으로의 관심은 적을지 모른다. 마사오는 유끼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쓰다듬었다.
“살이 좀 쪄야겠구나.”
“난 잘 먹지 않아요. 경쟁 상대가 없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뼈대에서 도시 아이들의 가냘픔이 느껴졌다. 꽉 잡으면 부러질 것 같았다.
“우리 반에 굉장히 뚱뚱한 애가 있어요. 그 앤 뚱뚱해서 괴롭대요. 그애 살을 반만 얻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유끼꼬는 자기 반 아이들에 관해서 한참을 재잘거렸다. 남자인 마사오와 함께 목욕한다는 것을 전혀 별달리 생각지 않는다는 증거였다.마사오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는 유끼꼬의 천진함이 귀여워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 나갈까?”
“벌써요?”
“그래. 오빠는 목욕을 오랫동안 하지 못해. 유끼꼬는 좀 더 해도 되겠지.”
마사오는 일어섰다. 마사오의 앞이 드디어 유끼꼬의 눈앞에 드러나게 되었다. 거뭇한 음모 가운데 머리를 숙이고 나와 있는 그것은 유끼꼬의 눈 높이와 똑같았다. 유끼꼬의 눈이 그것에 꽂히는 걸 마사오는 느꼈다. 수줍음도 없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어린애다운 행동이었다. 마사오는 이제 자신도 아침에 있었던 수치스러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욕을 마치고 마사오는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윈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마침 유끼꼬도 현관을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둘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어디 가니?”
“친구 집에요. 이것을 돌려주러 가요.”
손에 든 책을 유끼꼬는 보여주었다. 아동 소설책이었다.
“이걸 주고 다른 것을 빌리려구요. 그 친구는 책이 많거든요.”
책 든 손을 휘휘 둘러대며 유끼꼬는 그 친구가 얼마나 책이 많은지에 대해 한참을 재잘거렸다. 그러더니 불쑥 말했다.
“나, 오빠한테 물어 볼 게 있어요.”
“응? 뭔데?”
목욕을 같이해서인지 둘은 퍽 친밀해졌다. 마사오는 이 천진하고 솔직한 소녀가 사랑스러웠다. 유끼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저었다.
“좀 부끄러워요.”
장난기 어린 웃음이 가지런한 얼굴에 번졌다.
“부끄러워? 뭔데?”
“아이, 오늘은 그만두는 게 낫겠어요. 지금 찾아가는 친구가 만물 박사예요. 그 애에게 물어볼래요.”
“그것보다 내에게 묻는 게 더 나을 텐데.”
마사오는 등을 구부려 유끼꼬 입가로 귀를 갖다대었다.
“자, 말해 봐.”
“…….”
“이런! 의문이 생기면 물어야지!”
“그래도 부끄러운 일인 걸요.”
마사오는 순간 유끼꼬의 목소리에 비로소 요염한 색깔이 묻어 있음을 느꼈다. 마사오는 갑자기 흥미가 일었다.
“부끄러울 것 없어. 날 선생님이라고 생각해 봐. 어떤 일이라도 정직하고 확실하게 대답해 주겠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구요?”
“물론. 자, 말해 봐.”
마사오는 귀를 더욱 바싹 갖다대었다. 유끼꼬의 따뜻한 숨결이 귀를 간지럽혔다.
“저……, 아이 역시 친구가 낫겠어요. 오빠 그럼 이따 봐요.”
유끼꼬는 치마를 팔랑거리며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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