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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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매---
2권 2장 3
이병아 부인3
서문경이 수춘이의 안내를 받아 내실로 들어서니 이벼아는 속살이 다 내비치는 듯한 엷은 분홍색의 잠옷 바람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가만히 일어선다.
"부인, 이 밤중에 방문에 해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빙그레 웃으면서 서문경은 농담조로 인사말을 던진다.
이병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좀 수줍기도 한 듯 미소를 띤 시선을 살짝 내리깔았다가 들며,
"큰 실례지요."
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서 있는 수춘이에게 말한다.
"수춘아, 너는 이제 가서 자도록 해라."
"예"
수춘이는 얼른 돌아서서 자기 방 쪽으로 사라진다.
"아, 향기가 좋군요. 이게 무슨 향기죠?"
서문경이 이병아 쪽으로 다가서며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무슨 향긴지 알아맞혀 보시라구요."
"글쎄요. 무슨 향길까...."
서문경은 방안을 두리번거린다.
"오, 국화 향기로군요."
장 한쪽 창변에 온통 국화분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던 것이다.
"부인, 정말 국화를 무척 좋아하는군요."
"꽃 중에서 제일 좋지 뭐예요."
"이 정도면 좋아한다기보다도 사랑한다고 하는 편이 옳겠는데요."
"맞아요. 저는 국화를 사랑해요."
이병아는 국화분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 창변 쪽으로 다가서며 말한다. 서문경도 그녀를 따르듯 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수십 개나 되는 국화분이 방 한쪽 창변을 온통 다 차지하고 있어서 마치 내실의 한편이 화단이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향기가 실내에 그윽하게 풍기고 있다.
국화분 가까운 곳에도 탁자가 놓여 있다 꽃과 잘 조화를 이루는 듯한 우아한 문양이 새겨진 귀물스러운 육모형의 탁자다.
"취미가 역시 고상하군요."
서문경은 그 탁자의 문양을 손으로 어루만져 보며 의자에 앉는다.
"간단히 한 잔 하셔야죠?"
"좋지요."
"제 손으로 빚은 술을 내올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이병아는 주방 쪽 문을 열고 사라진다.
곧 그녀는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와 탁자 위에 차린다. 안주도 정갈하고 술병과 술잔도 귀물스럽다.
"자, 제가 빚은 술이에요. 받으세요."
그녀는 술병을 들고, 서문경은 잔을 든다. 유난히 노오란 술이 잔에 가득 찬다. 그녀의 잔에다가도 서문경이 술을 가득 따라 준다.
국화꽃이 만발한 호젓한 내실에서 한밤중에 단둘이 말없이 술잔을 들어 동시에 입으로 가져간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초야의 합환주인 셈이다.
"너무 취하시면.... 괜찮나요?"
그 말의 의미를 대뜸 알아차린 서문경은
"한 잔만 더하죠. 너무 취하면 곤한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무 지장이 없다구요. 오히려 힘이 더 나죠. 술맛이 일등이라서 아마 기운이 훨씬 더 날 거예요. 허허허....."
약간 음탕한 그런 웃음을 나직이 점잖게 웃는다. 이병아는 조금 부끄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다소곳이 술을 따른다.
서문경은 그 넉 잔째를 벌컥벌컥 단숨에 비워 버린다. 그리고 안주를 한 젓가락 크게 집어서 입에 넣고 불룩불룩 씹어 넘긴 다음 이제 행동 개시라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 부인. 이리 와요."
국화주의 기운이 어려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병아를 새삼스레 그윽하게 바라보며 서문경은 두 팔을 활짝 벌린다. 시선이 마주치자 이병아는 살짝 얼굴을 물들이며 가만히 일어선다. 그리고 활짝 열려 있는 서문경의 가슴으로 다가가 무너지듯 안겨 버린다.
두 사람은 서서 꿈틀거리며 잠시 감미로운 입맞춤을 나눈다. 국화 향기가 온통 두 사람을 휘감는다.
서문경이 입술을 떼고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여보, 당신은 국화 같은 여자구려. 맵시도 국화처럼 우아하고 산뜻한데, 입에서도 국화 향기가 나니 말이야."
"어머, 그래요? 국화주를 마셔러 그런 모야이죠."
"그럼 내 입에서도 국화 향기가 나겠군"
"어디 봐요."
이병아는 능동적으로 서문경의 입술을 애무한다. 그녀가 사르르 눈을 감은 채 부드러우면서도 뜨겁게 입술을 짓이기고 있을 때 서문경의 한 손은 그녀의 등에서 허리, 그리고 엉덩이로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가 엷은 잠옷자락을 말아올리가 시작했다. 허벅지까지 맨살이 드러나자 슬슬 어루만지다가, 이번에는 슬금슬금 더듬어서 아랫도리의 속옷 밑으로 기어들어가려 한다.
"어머나."
"가만 있으라구."
"싫어요. 이러지 마세요."
"왜 그래?"
"부끄럽단 말이에요. 여기서 이러시면 ...... 침실로 가요."
"그럴까."
서문경은 손을 거두고서 그만 그녀를 불끈 들어올려 옆으로 안아 버린다.
"침실이 어디지?"
"저쪽이에요."
서문경의 두 팔에 옆으로 안긴 채 이병아는 고개로 한쪽 문을 가리킨다.
침실로 들어선 서문겨은 이병아를 침사에다가 반듯이 눕혔다. 그리고 자기는 침상에 다가선 채 그녀의 몸에서 엷은 분홍 빛깔의 잠옷을 벗겨내려 했다. 그러자 이병아는
"제가 벗을게요. 부끄러워요."
하면서 가만히 일어나 앉아 서문경에게 살짝 등을 돌리고서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런 점도 역시 여느 여자들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서문경은 문득 든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들을 겪어 봤지만 침상에서 옷을 벗기는데 부끄럽다고 마다한 여자는 처음인 것이다. 더러 쑥스러워서 몸을 약간 사리는 여자는 있었지만, 결국 다소곳이 내맡기기 일쑤였는데 말이다.
서문경은 그녀가 하는 데로 내맡겨두고 멀뚱히 서서 지켜보고 있다. 혹시 별로 성적 매력이 없는 그런 싱거운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여자가 너무 얌전하면 화끈하게 달라붙는 짜릿한 맛이 덜한 법이니까. 그럴 경우에는 처조카인 게저에게 했던 것처럼 사정없이 가학성을 발휘해서 정신이 얼얼해지도록 마구 짓이겨 주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엷은 허물 같은 잠옷이 스르르 벗겨져 나가고, 그녀의 하연 맨살이 드러난다. 목덜미의 살결이 유난히 회고, 알맞게 살이 오른 등이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어 보인다. 어깨로부터 겨드랑이로 흘러내린 미끈한 선은 러리께에서 약간 잘쑥하게 휘어졌다가 엉덩이로 동그스름하게 미끄러진다.
그 하얗고 방방한 엉덩이를 꿈틀거리며 그녀는 엷은 잠옷을 다리 아래로 밀어내려 깨끗이 벗겨낸다. 온통 아랫도리도 하얗게 드러난다.
"으음--"
서문경은 자기도 모르게 나직이 신음소리를 토하면서 그만 그녀에게 달려들어 뒤에서 불끈 안아 버린다. 두 손에 그녀의 풍만한 앞가슴이 물큰하게 잡힌다. 그 두 봉우리를 한 손에 한 개씩 거머쥐고 뿌듯하게 힘을 주면서 서문경은 입을 그녀의 목덜미로 가져간다. 유난히 회고 여려 보이는 그 살결을 앞니로 자그시 한 번 문다.
"아야야, 어머나 히히히...."
그녀의 입에서 키들키들 야릇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녀도 자기의 유방을 불끈 거머쥐고 있는 서문경의 한쪽 손등으로 얼른 입을 가져가 자그시 물어 준다. 남자의 욕정에 대한 여자의 화답인 셈이다.
서문경은 속으로 호호, 이것봐라... 싶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결코 맛이 싱거운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대뜸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매우 성적 매력을 풍기는 그런 첫 반응이 아닌가 말이다.
그 방면에 이공이 난 서문경은 침상에서의 여자의 첫 반응만 보아도 대번에 그 몸뚱어리의 맛을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이병아는 짐작했던 대로 화끈한 매력이 풍기는 여자였다. 어딘지 모르게 정숙한 데가 있고, 부끄럼을 잘 타기도 하는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적극적이고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녀를 뒤로부터 불끈 안았던 팔을 풀고서 서문경도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지고 전라의 벌건 알몸이 되어 그녀의 하얀 알몸을 본격적으로 애무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몸을 다소곳이 내맡기면서도 가만히 누워 있질 않고 자기도 남자의 몸뚱어리를 어떻게든지 기분좋게 건드리려고 애를 써댔다.
서문경의 뜨거운 입술이 앞가슴의 두 봉우리를 짓이겨댈 때는 바짝 고개를 쳐들고소 그의 한쪽 귀를 입에 넣고 자근자근 씹었고, 그의 입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자 두 손으로 그의 머리끄덩이를 불끈불끈 거머쥐기도 했으며, 잠시 후에는 야릇한 신음소리와 함께 상체를 약간 일으키고 고개를 곧장 뒤로 젖히면서 그의 머리 속을 북북 마구 긁어대기고 했다.
교대로 그녀가 서문경을 입술로 애무할 때 역시 여간 적극적이 아니었다. 입술과 함께 두 손도 잠시도 가만히 두질 않고 온몸을 더듬어 구석구석을 건드렸다.
전희가 끝나고, 서문경의 몸뚱어리가 정자세로 덮여 와서 서서히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는 그녀도 화답을 하듯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고, 그의 물결이 거세어지자 그녀 역시 파고를 높이며 거침없이 감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러운 듯한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 신음소리도 여느 여자와는 좀 다른 데가 있었다. 비음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숨이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코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일부러 그러는지, 이를 악무느라 그러는지 입은 약간 삐닥해지도록 꾹 다물고 있었다.
춘매는 울었고, 계저는 웃었었다. 그런데 이병아는 야릇한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심한 축농증을 앓고 있는 사람 같았다. 평소에는 전혀 그런 음성이 아닌데도 말이다. 서문경은 속으로 가지가지군, 싶으며 헐떡이면서도 히죽히죽 웃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물결이 절정을 향해 마구 치닫고 있을 때는 서문경의 허리를 안은 손의 열 개의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가지고 그것으로 그의 살을 사정없이 콱콱 찍어 눌렀다.
서문경은 마침내 무너지는 듯한 신음소리를 토했는데, 그것이 절정에 이른 쾌감과 허리의 살점에 박혀든 손톱의 통증이 묘하게 뒤섞여 나온 소리여서 한결 야릇하게 침실에 울렸다.
침실 바깥 골마루에 웅크리고 서서 아까부터 창 틈으로 두 사람의 정사를 엿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수춘이였다.
자기 방으로 가서 잠자리에 들었으나, 수춘이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님과 서문 대관인이 둘이서 그 짓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엿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지만 수춘이는 나이가 열다섯이라 알 것은 거의 다 알고 있었다.
바깥주인이 집에 안 들어오는 밤에 서문 대관인을 담을 넘어오도록 한 것은 둘이서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뻔했다. 그러나 남편이 있는 마님이 외간남자와 정말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인지, 그래도 되늰 건지 놀랍기만 했고, 그 광경을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던 것이다.
수춘이는 아직 남자와 여자가 그 짓을 어떻게 하는지 본 일도 없고, 겪은 일도 없는 터이라 한층 호기심이 더했다. 주인 내외가 동침하는것은 감히 엿볼 생각을 못하던 수춘이가 마님이 외간남자와 그 짓을 하게 되자, 이상하게도 바짝 호기심이 고개을 쳐든 것은 말하자면 불륜의 관계에 대한 반발심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침상에서 내려와 가만히 방문을 열고 나간 수춘이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 마님의 침실 창가로 가서 그림자처럼 붙어섰던 것이다.
"여보, 나 어때요?"
"아주 그만이야. 정말 좋다구."
"그래요? 호호호 .... 당신도 정말 남자 중의 남자라구요. 놀랬지 뭐예요. 당신 같은 멋있는 남자 처음이에요."
"그래? 화자허가 시원찮은 모양이지?"
"그이도 상당하지만 당신한테 비하면 어림도 없다구요."
"본래 남자들이란 자기 마누라한테는 별로 열을 안 올리는 법이니까."
"어머, 그래요? 그럼 당신도 부인들한테는 별론가요?"
"글쎄... 허허허.. 좌우간 남의 것이 좋으니까."
"남자들이란 순 도둑놈이지 뭐예요."
"맞아, 순 도둑놈이라구."
"호호호...."
"허허허...."
두 사람의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수춘이는 바짝 더 귀를 창문 틈에다가 갖다댄다.
"여보."
"응?"
"난 이제 당신 없인 못살 것 같애요. 어쩌죠?"
"나도 당신없인 못살 것 같애."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이라니까."
"어머나, 좋아.. 여보, 나 못 견디겠어."
두 사람이 다시 뒤엉기는 기척이 나자 수춘이는 침을 한 덩어리 삼키고는 귀 대신 눈을 창틈으로 가져간다.
서문경과 이병아는 틈틈이 국화주로 목을 축여가며 밤을 새워 실컷 즐겼다. 그리고 새벽녘이 되자 서문경은 서둘러 담을 넘어서 돌아갔고, 이병아는 담 밑에서 배웅을 하고는 사다리를 치워 버렸다.
그 뒤로 화저허가 집을 비우는 날 밤엔 으레 이병아는 수춘이로 하여금 호두나무에 등불을 달도록 했고, 그 등불을 보고 서문경은 담을 넘어 이병아를 찾아가곤 했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눈치챈 것은 반금련이었다. 다른 네 부인들은 서문경이 밤으로 으레 반금련의 방에서 저려니하고 남편의 거취레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으나. 반금련은 거의 매일 밤 자기 방에 와서 자던 남편이 요즘은 곧잘 거를 뿐 아니라, 자러 오더라도 으레 삼경이 되어 북소리가 울리고 난 뒤 한참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은 왜 전과 달리 매일 밤 북소리가 울린 뒤에 주무시러 오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서문경은 아내란 모름지기 남편이 하는 대로 따르면 되는 것이지 무슨 그런 잔소리를 하려 드느냐고 역정을 내벼 말을 받아 주지 않았다. 서문경의 성깔을 잘 아는 금련은 속으로는 몹시 못마땅했으나, 다소곳이 참는 도리밖에 없었다.
어느날 밤 북소리가 울린 뒤 한참 기다려도 서문경이 나타나지않자 금련은 가만히 방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도대체 이 양반이 다른 마누라한테 저러 갔는지, 아니면 혼자서 잠들어 버렸는지 궁금해서 였다.
하품을 하면서 서문경의 거처 쪽으로 회랑을 가만가만 걸어가던 금련은
"아니, 저게 뭐야?"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담 너머 화저허네 집 호두나무에 웬 등불이 하나 걸려 있었던 것이다. 금련은 혹시 그 집에 초상이라도 났는지 싶었다. 그러나 초상 때 내거는 등불과는 달랐다.
등이 다를 뿐 아니라, 초상이라면 대문간에다가 걸지, 저렇게 정원의 나뭇가지에 걸 턱이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대체 한밤중에 무슨 등불인가 싶어 바라보고 있는데, 웬 검은 그림자가 나뭇가지를 잡고 담벼락을 재빨리 기어오르질 않는가.
"어머나,"
하마터면 금련의 입에서 놀라는 소리가 크게 터져나올 뻔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입안으로 잦아들었다. 무서움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두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담 위에 오른 검은 그림자를 보니 뜻밖에도 서문경의 모습 같아서,
"아니...."
이번에는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만다. 달은 없었다. 그러나 별이 총총해서 어렴풋이나마 형태를 헤라려 볼 수가 있었다. 담 너머에 사다리라도 놓여 있는 듯 천천히 내려가는 모습 역시 틀림없는 서문경인 듯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금련은 입이 딱 벌어진 채 좀처럼 닫혀지지가 않는다.
그녀는 잰걸음을 쳐서 서문경의 방으로 가 보았다. 불이 꺼져 있었다. 혹시 자고 있는지도 몰라서 조심스레 방문을 당겨 보니 사르르 열렸다. 방문이 안으로 결려 있지 않은 걸 보니 서문경이 방안에 없는 게 틀림없었다.
서문경의 거처는 세 개의 방으로 되어 있었다. 거실과 침실, 그리고 응접실이 딸려 있었다. 금련은 마음놓고 거실고 들어서서 불을 켠 다음 침실과 응접실까지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서문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흠, 무슨 일인지 알았다구. 드디어 이 양반이 이병아까지...."
금련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새삼스럽게 놀랐다는 듯이 두 눈을 휘둥그래가지고 혀를 살래살래 내두른다.
거실의 불을 끄고, 가만히 밖으로 나간 금련은 서문경이 넘어간 담 저쪽에 시커멓게 솟구쳐 있는 호두나무를 살펴본다. 아니나들까, 조금 전까지 걸려 있던 등불이 보이지가 않는다.
"그렇구나, 어머나-- 그것이 신호였구나.."
금련은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어 입이 딱 벌어진다.
이튿날 밤, 잠자리에서 서문경과 일회전을 기분좋게 끝내고 금련은 남편의 가슴패기를 슬슬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여보."
"응?"
"나 뭐 한가지 당신한테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죠? 화내지 말아요. 응?"
"응, 뭔데? 물어보라구."
"저... 당신 어젯밤에 어디 갔었어요?"
"어디 가다니..."
"시치미 떼지 마시고 말해 봐요. 다 알고 있으니까요."
사지를 내던지듯이 하고 반듯이 늘어져 누워 있던 서문경은 그 말에 금련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표정을 가만히 눈여겨 본다. 정말 눈치를 챈 게 아닌가 싶어 슬그머니 긴장이 된다. 다른 여자를 건드렸다면 눈치를 채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은 일인데, 친구인 화자허의 아내와 내통을 했으니 아무리 반금련이지만 알아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게 좋을 지 조금 망설이다가 서문경은 역시 서문경답게 예사로 능청스럽게 되묻는다.
"다 알다니 물 안다는 거야? 어디 말해 보라구."
그런 질문을 꺼낸 금련이 오히려 좀 망설여진다. 그러자 그녀도 기왕에 말을 꺼냈는데 그냥 어물어물 넘길 수도 없어서도 되도록 그의 바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써 웃음을 섞여가며 말한다.
"당신 어젯밤에 담을 넘어가는데 보니까 아주 몸이 가볍던데요. 난 처음에 도둑인 줄 알았지 뭐예요."
"봤군."
"언제 그렇게 담 넘어가는 재주를 배웠어요?"
"허허허."
그만 서문경은 웃음을 터뜨린다. 금련은 서문경이 웃자 이제 마음을 놓고 지껄인다. 그러나 역시 그의 비위를 심히 건드리지는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호두나무에 등불이 걸려 있더군요. 그게 신호지요?"
"......"
"왜 대답이 없어요. 맞죠?"
"대답이 없을 때는 그렇다는 뜻이라는 걸 모르나?"
"호호호...."
"당신 입 다물어야 돼. 알겠지?"
"흥, 기분 나빠서 어떻게 입을 다물어요. 그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예요."
"뭐라구?"
"임자가 있는 년이 남의 남편을 넘보고서 기어이 내통을 하다니....... 난 벌써부터 그년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구요. 무송이 귀양을 간 다음날 축하연 때 옥잠화하고 산초떡을 당신한테 선물 보낸 것을 보고서 짐작했어요. 그러더니 기어이 당신을 유혹해서 담을 넘도록 만들었지 뭐예요. 그런 사실을 알고서 가만히 있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금련은 일부러 화살을 이병아 쪽으로만 돌린다. 서문경의 비위를 의식해서 말이다.
"그럼,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화자허한테 일러바치죠. 뭐."
"아니, 지금 진짜로 지껄이고 있는 거야?"
"호호호... 켕기는 모양이죠? 염려마세요. 이 반금련이가 그렇게 미련한 여잔 줄 아세요? 화자허한테 일러바치면 당신을 뭐가 되겠어요. 이병아 그년 혼자만 망신을 한다면 일어바치고 말고요. 하지만 그 불똥이 당신한테까지 튀어올 게 뻔한데 그럴 수가 있나요. 분하지만 참는 수밖에 없죠. 뭐."
"그러면 그렇지. 허허허.... 역시 당신은 현명한 내 마누라라구."
이베 기분이 개운해지고 금련이 새삼 사랑스럽기만 한 듯 서문경은 다시 그녀의 알몸을 지그시 끌어안는다.
"한 번 더 즐겁게 해줘요."
"암, 그래 주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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