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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서갑숙 섹스고백 풀스토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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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263 회 작성일 24-02-13 15: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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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갑숙] 섹스고백 풀스토리 (요약)

“알려고 하지마. 다쳐.”

요즘 텔레비전 광고로 ‘뜬’유행어처럼 사람에겐 저마다 드러내기 꺼림칙한
‘비밀’이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상당수의 경우 그런 비밀 중 한켠을
차지하는 건 ‘성적 편력’에 대한 부분일 게다. 누구도 감히 물으려 하지
않고 또 선뜻 밝히려 하지도 않는.

탤런트 서갑숙은 최근 그런 ‘비밀의 묵약’을 스스로 산산조각 냈다. 자신의
성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놓은 자전 에세이집을 낸 것.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 M&B). 책 제목에 등장하는
‘포르노그라피’란 단어처럼 그녀가 털어논 성 이야기는 노골적이고 또
‘충격적’이기도 하다.

처녀 버리기, 강간, 러브 비디오, 9시간의 정사, 그리고 1대2 섹스…. 여느
유명인들의 사랑타령과는 궤를 달리한다. 시리도록 솔직하고 대담하다. 그녀의
글이 우리에게 뜨거운 논란거리로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MBC 베스트셀러극장(현 베스트극장)의 단골 연기자, 탤런트 N씨와의 결혼과
이별로 화제를 뿌렸던 여인. 요즘은 KBS 미니시리즈 <학교Ⅱ>에서 음악선생
역으로 열연중인 그녀가 이런 류의 책을 낸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대답은
그녀의 책 속에 담겨 있다. 자신이 겪은 사랑의 경험과 깨달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서갑숙은 부디 자신의 사랑얘기를 부드러운 눈으로
‘애무’해주길 빈다고 말하고 있다.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오를 때까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서갑숙)는 지금까지 모두 11명의 남자와 만났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사춘기 시절 가슴설레는 첫사랑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즈음 나를 휩싸고
있었던 것은 죽음의 기운이었다.

고3이 되던 해 4월 심장판막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당시엔 수술해도 산다는
보장이 없던 불치병. 술도 담배도 입에 대는 방황의 계절이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내가 연기자의 길을 택한 것은 죽기 전에 여러 인생을 경험하고
가자는 생각에서였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시절 한 대학원생과 데이트를 했다. 그때야 처음으로 첫
키스를 해봤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내가 한번도 키스를
안해본 여자라는 이유로 날 떠났다. 그는 죽기 전에 한번쯤 강렬하게 육체적인
접촉을 시도해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런 내 마음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수치심마저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책상 위에 쪽지 하나만
남겨 두고 집을 나섰다.

처녀버리기

이틀 간의 가출이 끝나고 며칠 뒤 학교 앞 선술집에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댔다. 같은 과 복학생이 은근히 나를 유혹하는 눈치였다. 그의 손에
이끌려 순순히 여관으로 갔다. 싫다고 돌아나올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목숨이라고
생각하니 처녀막이고 뭐고 다 파괴해 버리고 싶었다.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런 느낌이라면 욕지기가 나올 것만 같다.
더럽혀진 이불에는 내 것말고도 다른 처녀막 흔적들이 얼룩져 있었다. 깨질 듯
아픈 머리를 감싸쥐고 어두운 거리를 휘청거리며 걸었다. 나는 처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이다.

며칠 후 나는 마음 먹은 대로 학교를 중퇴했다. 그 해 초겨울 운 좋게도 MBC
탤런트 15기 공채시험에 합격했다. 내게 남은 것은 이제 연극 속의 인생을
살다가 죽는 일뿐이었다.


겁탈,강간 기억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주 기억하기 싫은 경험을 했다. 여름 날 저녁, 반바지를
입고 혼자 동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거기서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서 나를 불렀다. 나를 아는 사람인가 싶어 아무런 의심없이 계단에 가
앉았다.


“귀엽게 생겼구나. 몇 학년이니?”

그 남자가 내 귓볼을 만지작거렸다.

“운동 잘 하니 ? 어디 보자.”

그 남자는 내 널적다리를 꾹 눌렀다. 그 남자의 한쪽 팔이 내 몸을 감싸더니,
한쪽 손을 내 팬티 속으로 집어 넣었다. 기분이 이상해져 몸을 빼내려 했지만
그의 손은 더욱 나를 옥죄었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엄마”하고 크게
불렀다. 그 남자가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 숨도 못쉬고
뛰었다. 가슴이 쿵쿵 뛰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날 저녁의 일을 나는
부모님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나를 이상하고
더러운 동물로 볼지도 몰랐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저녁에 혼자 나가 노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옷을 허술하게 입는 일도 없어졌다.

또 한번의 기억은 재수를 하면서 실험극단 연수생으로 있던 시절의 얘기다.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연극에서 심순애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연습이 한창일

때 선배들이 찾아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포장마차 옆은 커다란 공터였는데 늦은 시간이라 주변이 온통 캄캄했다.
화장실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공터에서 볼일을 보고 막 바지를 입는 순간,
누군가 내 뒤에서 덮쳐 왔다. 그날 처음 본 선배들 중 하나였다.

선배가 내 옷을 강제로 벗기려 했다. 마침 내가 바지를 입고 있어서 쉽지가
않은지 끙끙댔다. 취한 와중에도 속으로 ‘이건 아니야’라고 외쳤다. 그
선배는 달려들고 나는 밀쳐내고 한참 동안이나 엎치락뒤치락했다. 선배는 결국
강간에 성공하지 못했다. 포기하고 쓰러져 있는 선배를 밀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사랑1"이라는 남자

전 남편은 물론 부모님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나의 치부, 그것은 한번의 낙태수술이다.

그 핏덩이의 아버지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던 남자다. 허무와
고독에 빠져 있는 내게 심장판막 수술을 받도록 해주고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MBC 공채 15기 연수시절 현대무용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는데 중앙대 무용과
교수의 무용 스튜디오에서 그와 처음 맞닥뜨렸다. 그는 아역 탤런트 출신으로
개인적으로 현대무용을 배우는 중이었다.

우리는 연습이 끝나면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성대 앞에 있던
‘모래틈’이란 카페에 자주 갔다. 그 안에서 처음 손을 잡고 키스를 했다.
그를 만난 지 한달쯤 되는 날 사랑고백을 했다. 우리는 신혼부부처럼 손을 꼭
잡고 금은방으로 달려갔다. 18K반지에 서로의 성 이니셜을 새겨서 나눠
끼었다. 양가 부모님들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그와 사랑을 나눌 때는 주로 모텔을 이용했다.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으므로
함께 자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섹스 자체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살을 맞대고 누워 있는 느낌이 좋았다.

그와 만나는 사이 심장판막 수술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일이 하나
생겼다. 덜컥 임신이 된 것이다. 담당의사는 아기를 낳기도 전에 산모가
임신중독증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했다. 고민 끝에 결국 임신 중절을 권하는
의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수술 뒤 헝겊 인형처럼 누덕누덕 기워진 내
가슴을 거울에 비춰 볼 때마다 우울해졌다. 누구에게도 내 벗은 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상대가 사랑하는 남자일 때는 더더욱 그랬다.

여름 내내 나를 간호해 준 그가 처음으로 내게 거짓말을 했다. 친구네 집에
며칠 가 있겠다고 해놓고 여자들과 어울려 물놀이를 간 것이었다. 나는 잔뜩
예민해져서 그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의 거짓말이 싫은 것이 아니라 흉터를
안은 채 배려를 받아야 하는 내 처지가 싫었다. ‘사랑 1’과의 만남은 그렇게
쓸쓸하게 끝났다.


혼빙간음 남자 "상처1"

사랑 1과 헤어진 뒤 나는 연기에만 전념했다. 헝겊처럼 기운 듯한 가슴의 흉터
때문에 남자에 대한 관심은 아예 접고 살았다. 4년여의 시간 동안 남자들을
만나더라도 친구 관계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언니가 남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첼리스트였다. 그는 ‘젠틀맨’ 그 자체였다. 밥 먹을 때 차를 탈 때 길을
걸을 때 세심한 부분까지 여자를 배려해 주었다.

그와 데이트를 할 때 항상 그의 여동생이 따라 나왔다. 어느 날 그의 여동생이
우리 부모님을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반지를 내밀었다. 청혼 반지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반지를 받았다. 이미 부모님도 그와의 결혼을 허락한 상태였다.
그와 결혼해서 사는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유명한 음악가이고 돈도 적잖게
벌고 있으니 우선 경제적으로 풍족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아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아한 첼리스트의 아내가 되려던 내
꿈은 얼마 안 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다. 미국에 아내가 있었다. 국제전화까지
걸어 보고서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는 지금 이혼수속중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다. 이번 경우만은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서울 반포에 월세로 아파트를 마련했다. 레슨을 하는 학생들이 없는
시간에 우리는 그 아파트에서 사랑을 나눴다. 그는 전희라든가 애무라든가
하는 것은 다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섹스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가슴의
흉터가 너무 신경이 쓰여서 차라리 내 온몸을 애무하지 않는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나는 또 다른 거짓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그의 레슨 방에서 긴 머리카락 몇 올을 발견했다. 더블 데이트. 그는 나를
만나면서 동시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내가 그와 데이트하는 시간에
여동생이 그 여자와 시간을 보냈고 그가 그 여자와 만나는 시간에는 내가
여동생과 시간을 보냈던 것이었다. 그 여자는 집이 아주 잘 사는 성악가라고
했다.

그를 한강 시민공원으로 불러냈다. 그리곤 “그렇게 살면 안 돼요!”라는 말만
남긴 채 반지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씩씩한 수컷과의 만남

87년 11월1일. 극단 ‘사조’의 연출자 유승봉씨가 해럴드 핀터의 연극
<티타임의 정사>를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티타임의 정사>는 권태기에
접어든 중년 부부의 사랑을 다룬 연극이다.

상대역은 당시 KBS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나오는 탤런트 N씨였다. 연출자와
함께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고개를 6시10분 방향으로 기울인 모습이
독특했다. 무릎을 탕탕 튕기면서 걷는 걸음걸이와 딱 벌어진 어깨에 균형잡힌
몸매가 한 마리 수컷의 당당함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공연 연습을 하며 우린 데이트를 즐겼다. 성숙하면서도 매우 야성적인
입맞춤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린 모텔로 향했다. 그날부터 9일동안
우리는 남한산성 주변으로 둘만의 ‘연습’을 하러 다녔다. 둘 다 마음을
열어놓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의 샘물이 마를래야 마를 수가 없었다.

그를 만난 지 9일째 되는 날 나는 전격적으로 그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연극
1차 공연이 끝난 그해 12월 무대 위에서 약혼식을 올렸고 이듬해 1월에 결혼을
했다.

우리 부부에게 따로 신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밀고 당기는 과정없이 곧 바로
생활 속으로 빠져 버린데다 대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 신혼 기분을 낼 형편이
못 되었다. 그는 7남매 중 장남이었다.

집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하지만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우리 부부만의 사랑을 나눌 공간과 시간이 늘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남편과의
섹스는 한마디로 ‘몰래, 얼른 하기’였다. 우리 부부가 사랑을 나누느라
어쩌다 방문을 잠그기라도 하면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기 일쑤였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싫지는 않았지만 나는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데 무지했다. 엉덩이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돌려야 하는
것인지, 팔은 어떻게 두어야 하는 것인지 애무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이 이끄는 대로 가만히 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을 뿐이다.

가끔식 남편은 나를 데리고 외박을 했다. 온 식구가 방문을 열어 놓고
북적대는 집을 떠나 서울 근교의 모텔에서 잠시나마 호젓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까지 해 준 남편의 배려가 눈물겹도록 고마운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 부부의 ‘얼른, 몰래 하기’와 둘만의 외박은 그렇게 10년 동안 계속됐다.


"흔적1"이라는 남자

남편과 별거하는 동안 오피스텔에서 머물 때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내게 노골적인 관심을 보였다. 정열적이고
다혈질이어서 모든 생각과 행동이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끊임없이 걸려 오는 그의 전화에 지쳐 결국은 만나게 되었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 말고 밖에 나간 그가 한참 만에 돌아왔다.

“먼저 가 있을 테니, 오고 안 오고는 자유야.”

그가 내민 것은 호텔 방 열쇠였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 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오늘이 지나면 이혼 결심에 마침표를 찍는 거야.’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해 남편에 대해 미안한 마음, 다른 가족들에게
죄스러운 마음 때문에 결심이 흔들리고 있는 시기였다. 뭔가 일을 저지르고
나면 돌이킬 여지가 없을지도 몰랐다.

폭풍처럼 휘몰아쳐서 섹스를 끝내고 나니 내 마음은 더욱 공허했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엄밀한 의미에서 나 역시 별거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유부녀인
것이다. 죄책감에 얼굴을 가리고 호텔 문을 빠져 나왔다.

그는 한 번의 섹스 이후 내게 병적으로 집착했다. 허무하게만 느껴지던 섹스가
그를 만나면서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그가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왔다.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담아 두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체위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또
사랑을 나누었다.

그해 무더운 여름의 끝에서 나는 이혼 도장을 찍었고 35일간의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그는 내가 혼자서 오랫동안 멀리 가버린다는 것에 대한 질투와
집착으로 거의 이성을 잃었다.

그는 공항까지 따라오며 울부짖었다. 이대로 자기를 버리고 가는 거냐고. 나는
차갑게 잘 있으라는 인사만 남기고 출국 문을 통과했다. 그와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람이 좋아지면
애욕이 생기고 소유하고 싶고 집착하게 된다. 그의 사랑은 나에 대한
집착이요, 소유욕에 불과했다.


"밀린 숙제" 하기

유럽 여행 뒤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다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 K를
만났다. K는 나의 옛날 남자 친구 얘기를 꺼냈다. 그 남자 친구와 나는 입맞춤

한번 하지 않았지만 학교 내에서 공인된 커플이었다. 그런 그가 K에게 전화를
하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곤 같이 섹스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금시초문인 얘기였다.

K의 제안으로 둘이 함께 옛 남자친구를 만났다. 왜 그런지 그는 마치 K를 잘
모르는 듯한 태도로 나만 쳐다보고 얘기했다. 오피스텔에서 술을 마시고 셋이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K가 일부러 밖으로 나가자
그가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는 기고만장해 있었다. 노동을 하듯 땀을 흘리며 열심히 섹스를 했다.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그의 숨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물었다.

“K하고는 어땠어? K하고 할 때도 좋았어?”

순간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피식 하고 그의 숨고리가 새어나갔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멍하니 초점이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힘을 내기 시작했다. 힘없이 늘어진 그를 일으켜 세우고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아주 통쾌했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저 차가운 섹스일 뿐이었다. 그가 K를 모르는 척 기만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차가운 마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K가 오피스텔로 들어 왔다.

“어땠어?”

“그저 그랬어. 밀린 숙제를 한 기분이야.”

그날 이후로 그의 별명은 ‘밀린 숙제’가 되었다.


내 몸 살 사람

집도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 내게 남은 것은 빚 독촉뿐이었다. 아버지
병원비로 빌린 사채와 <어린 왕자> 공연으로 빌린 은행 빚에 이자가 불고
있었다. 방송 일도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점점 생활이 힘들어졌다.

무엇보다도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두려웠다. 1억4천만원. 부자들에겐 그저 집
한 채 값이겠지만 내겐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 거기다 내 은행 빚 보증을 서준
사람에게 은행 차압 통지가 들어갔다.

‘내 영혼을 팔아서 이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나는 내 몸이라도 팔아서 빚을 갚고 싶었다. 그때 한 남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수 있는 돈 1천만원을 주었다.

남자들은 바람을 피울 때 대개 아내를 폄하한다. 아내에게 불만이 있어서
이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괴롭다고 한다.

나에게 돈을 빌려준 그도 유부남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기적인 남자들과는
달랐다. 그의 말 속에는 항상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어느 날 우리 두 사람은 자연스레 호텔로 들어갔다. 함께 자러 가고 싶은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었다. 그의 유난히 긴 속눈썹이 내 얼굴을 간질였다.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내 몸짓은 연기였다.
감미로운 느낌을 받은 체하는 연기였다. 이상하게도 몸이 차가웠다.

그의 입에서도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발기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서
조용히 떨어져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의 팔을 베고 그의 체취를 맡으며 나는
잠이 들었다. 그는 나의 차가운 몸에서 내 마음을 읽었고 동시에 집에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발기하지 못했으리라.

그후로 우리는 만나서 식사만 하고 헤어지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 대신 우정이
싹터 올랐다.

그뒤로 나는 일에 몰두했다. 방송국에서 일이 들어오면 작은 역할이라도
최선을 다했다. 내가 열심히 하니까 방송국도 나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일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이혼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일이 없다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잠시나마 내 몸을 담보로 내놨던 그 일이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멀티 오르가즘

지난해 한 모임에서 M을 만났다. 다음날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카페에서
나와 마주앉은 그는 나보다 더 심한 직설법으로 내게 물어왔다.

“오르가슴을 느껴 본 적이 있으세요? 그렇다면 멀티 오르가슴은?”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 단어에 호기심이 생겼다.

“맥시 오르가슴이라고도 하는데요. 오르가슴이 한 번 오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되면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던 것이다. 그는 지금껏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몇 번의 만남 뒤 우리는
호텔 룸으로 들어갔다.

시종 같은 왕, 왕비 같은 시녀가 되어 우리는 서로의 몸을 씻겨 주었다. 그가
침대 위로 나를 눕혔다. 그리고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정성스럽고도 긴 애무를

했다.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세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 순간 내 손발이 차가워졌다. 으슬으슬 오한이 나며 몸이 이상해졌다.
발가락에 쥐가 났던 것.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내 발가락을 주물러주었다.

“마음을 편히 가져야 돼요. 마음이 긴장되어 있으니까 근육이 놀란 거예요.
그리고 다음에는 소리를 내도록 해 봐요.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소리를
억지로 참지 말고 내지르도록 해요. 대체 마음 속에 무슨 억압이 그렇게
많아요?”

그의 말마따나 내 속에 있는 많은 상처들이 아직도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서로를 어루만져 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와
나눈 첫번째 섹스의 끝은 달콤한 잠이었다.


다시 사랑을

외출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옷을 벗었다. ‘너 자신을 한 번 봐라’. 거울
속에서 속옷 차림으로 서 있는 내가 말했다. 양 볼의 근육이 처지기 시작하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피부는 윤기없이 푸석했고 눈가와 입가도 예사롭지
않았다. 젖가슴은 처지고 탄력이 없었고 아랫배는 부풀어 밑으로 불룩했다.

나는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 몸에 붙은 군살과 주름살들은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방치해 둔 결과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동안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고통을 한탄하며 자기를 학대하고 비하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노화는
세월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노화에서 온 것이 틀림없다.

그와의 섹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오르가슴의 절정을 향해 오르던 순간
손발이 차가워지며 다리에 쥐가 난 것은 운동부족 때문이었다. 거기다 멋진
섹스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쇼크를 받은 것이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섹스에 무지했던 것일까.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사랑과

섹스에 대한 책들을 찾아 보았다. 나는 그와의 멋진 사랑을 나누기 위해
스스로 뭔가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건강과 미용이다. 집에 있을 때에는 브래지어를 벗고 심호흡을 하는
습관을 들였다. 잠자기 전에는 스트레칭과 복식호흡을 했다. 온몸의 군살을
빼는 동작도 연습했다. 서서히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몸에 자신감이 생기니
모든 일에 활력이 솟았다. 그를 만날 때마다 예뻐지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예뻐지기 시작했다.


명기 만들기

소포가 배달되어 왔다. 수신자인 내 이름과 주소만 적혀 있을 뿐 보낸 사람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포장을 뜯어보니 책과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조그만 상자 안에 푸른 돌이 들어 있었다. 달걀같이 생긴 모양에 메추리알보다
약간 큰 크기였다. 용도는 모르지만 그(M)가 보낸 선물임에는 틀림없었다.

책을 펴서 목차를 훑어보았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구조, 멀티 오르가슴을 얻은

신체 훈련법, 돌알 훈련…. 문제의 돌은 바로 ‘훈련용’이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멀티 오르가슴을 얻으려면 몇 가지 신체 훈련을 해야 한다.
비디오테이프와 책을 참고해 훈련을 하기로 했다.

호흡법과 근육운동을 익힐수록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손이나 기구, 다른
물건이 몸에 닿지 않는 상태에서 오로지 호흡과 PC근육운동만으로 오르가슴이
느껴졌다. 남자들이 흔히 얘기하는 ‘긴자코’는 명기를 이르는 말이다.
선천적으로 명기를 타고나는 여성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단히 연습을 하면 명기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용불용설이라는
법칙이 있듯이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자꾸 사용하면 발전하게 된다. 멀티
오르가슴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든 명기를 가질 수
있다.


아홉시간의 정사

M과 나, 둘이 간 곳은 방문과 현관문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방음이 잘 되는

곳이었다. 먼저 두 시간 동안의 긴 목욕이 시작됐다.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와인을 조금씩 마셔 가며 둘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단어 연상 게임도 했다.

그가 욕조 밖으로 나가더니 수건을 말아 쥐고 내 몸의 때를 밀어 주었다. 나는
느긋하게 공주가 된 기분으로 그의 손길과 와인의 맛을 음미했다.

이번에는 그가 큰 타월을 펴고 나를 눕힌 후 오일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목욕시키고 마사지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 그의 서늘한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그 땀을 혀로 핥아보았다.

그가 나를 돌려 뉘고 애무를 했다. 등과 어깨, 목덜미에 그의 숨결이 닿을 때
참을 수 없는 전율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모두 현재의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어느 곳에 가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요구르트를
입에 머금어 내게 먹여 주었다. 나도 그에게 똑같이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굉장히 좋은 맛이었다.

우리는 꼬박 9시간의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도 전혀 피곤한 줄 몰랐다.
오히려 온몸에 차 오르는 충만한 에너지로 힘이 넘쳐 흘렀다.


1:2 섹스

그와 소유와 집착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유와 집착 때문에 사랑을 망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면서 사랑의 공유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됐다. 일종의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의 허락을 얻어 나와 그, 그리고
나의 친한 친구 세 사람이 함께 조용한 장소로 갔다.

누가 먼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긴장 때문에 배가 아파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참 뒤 화장실에서 나오니 방안에는 희미한 전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침대 위에선 그가 친구의 젖가슴을 애무하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용히 침대 곁 의자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명치 끝이 찌릿하는 통증과 함께 슬픔이 밀려왔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쓸쓸했다. 나는 다가가 그의 등에 입맞추고 내 친구에게도 입맞춰

주었다. 감사와 우정을 담은 입맞춤이었다.

그런 우리의 몸짓을 그가 바라보고 또 친구는 내가 그와 나누는 사랑을
지켜보면서 밤이 깊어갔다. 우리가 나눈 행위는 블루스 리듬에 맞춰 추는 춤
같은 것이었다.

다음날 세 사람이 헤어진 뒤 며칠동안 나는 심하게 앓았다. 그도, 내 친구도
똑같이 앓았다. 그날 밤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랑을 세 사람이 지속적으로
공유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끝]
[출처] 진보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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