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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천왕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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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154 회 작성일 24-02-13 10: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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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장
천라오겁혈비국(天羅五劫血秘國),
이천 년 전의 요괴(妖怪)들

휘이이잉!
사풍(沙風)은 뿌연 모래 가루를 허공 일천 장 높이로 올려보내며 사위를 온통 황색으로 물들인다.

합립포탑극사(哈립布塔剋沙)!

일명(一名) 불귀절혼지(不歸絶魂地)라 불리는 공포의 사막지대로 끊임없는 대사풍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고 불시에 흐리는 유사하는 그대로 죽음의 황천길이었다.
단 한 번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대오지로 날아드는 한 줄기 백영이 있었다.

"합랍포탑극사...! 이곳인가?"
사풍(沙風)을 가르며 내려선 백영은 전면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눈이 부실 듯한 금라백의를 걸
치고 단정히 긴 장발을 뒤로 가지런히 묶어내린 이십 세쯤의 미청년이었는데 허리춤에는 검은 윤
기가 감도는 한 자루 묵도가 칼집도 없이 메어져 있었다. 그는 물론 완벽한 용왕천인으로 화한
이 시대의 초인인 화우성이었다.
문득, 화우성은 시선을 허공으로 올렸다.
"뇌후 화 누님을 새북연맹으로 보냈다! 한 달 후 해왕세가와 도왕세가, 독왕세가가 뭉칠 것이다!"
휘르르르!
화우성의 백의가 찢어질 듯 펄럭였다.
태극 이전 일원혼암계에서 나온 화우성은 망각의 늪에서 헤어나왔다.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이유로 인한 세월의 망각이었다.
뇌(雷)!
화우성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 뿐이었고 천의(天意)는 일시적으로 화우성의 뇌(雷) 이후의 기억을
지워 버렸던 것이다.
결국, 화우성은 용왕천인이 될 수 있었고 그것으로 그의 모든 기억은 전과 다름없이 살아있었다.
실로 절묘한 하늘의 안배였다.
"혈왕마가! 암흑마련의 악마의 숨통을 끊으리라! 영원히..."
스윽!
화우성은 신형을 떠올리며 전면을 주시했다.
"팔극선기옹께서 말씀하셨던 천라오겁혈비국, 범황삼패천의 몰락을 가져왔던 그들의 시조가 이곳
에 있다!"
이 무슨 말인가?

천라오겁혈비국(天羅五劫血秘國)!

흑해(黑海)!
축융마염봉(祝融魔炎峯)!
북천빙설국(北天氷雪國)!
암흑유혼계(暗黑幽魂界)!
청동용골족(靑銅龍骨族)!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요괴들...
쐐액!
화우성의 신형이 사풍을 쪼개며 앞으로 나아갔다.
"삼 일 후면 팔극선기옹이 펼쳤던 환무혈연천살대진(幻霧血煙天殺大陣)이 깨진다. 그 전에 그들을
굴복시켜 지옥을 깨는 데 선봉을 세우리라!"


백리의 대사풍을 뚫고 일천 개의 죽음의 유사지대를 지나면 엄청난 대혈지가 나온다.
지난 이천 년 간 공포의 살막을 펼쳐온 대혈무! 그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진식임을 알때
하늘조차 경악할 것이다.

환무혈연천살대진(幻霧血煙天殺大陣)!

인간이 지상에 탄생되고 진이 생성되고 난 후 최고최강의 진식(陣式)이 그것이었다.
화우성은 가볍게 지면에 날아내렸다.
"많이 엷어졌군!"
혈무를 주시하던 화우성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로 묘한 미소가 어렸다.
"후훗! 은린부어녀(銀鱗浮魚女)란 요물은 이천 년 이상 묵은 영물이니 내단(內丹)도 생겼지 않았
을까? 고것의 내단을 훔쳐 먹어 불사신이 되어 볼까?"
몹시 흐뭇하게 웃으며 화우성은 천천히 혈무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호호호! 이제 삼 일만 지나면 자유가 된다!"
촤아악!
호수 위로 짤랑짤랑한 교소(嬌笑)가 울려퍼졌다.
흑호(黑湖)! 놀랍게도 하나의 거대한 호수가 흡사 먹물을 담근 듯 시커먼 흑수로 채워져 있었다.
헌데, 직슴 그 흑호 안에는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이상한 여인(?)이 한 명 있었다.
하체는 물속에 잠겨 그 모습을 알 수 없으나 여인의 상체는 은하(銀河)의 물결에 뒤덮여 있었다.
은린(銀鱗)! 전신의 피부 위로 은빛이 감도는 비늘이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흡사 인어인 양 물속을 자유로히 유영하는 여인의 옥용엔 하얀 비늘이 돋아 있었으나 그것은 또
다른 미(美)의 경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호호호! 이제 사흘후면 팔극천기옹인지 하는 늙은이가 약조한 이천년이 지난다! 아울러..."
은린여인의 눈이 멀리 사위를 휘감고 있는 혈무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저주의 혈진이 벗겨지면 본 흑해(黑海)의 아이들을 모조리 풀어 사해오호를 뒤엎으리라! 사흘 내
로 나를 제압할 인간이 오지 않으면..."
파츳!
은린여인의 눈가로 악독한 살광이 스쳤다.
바로 그 때였다.
"핫하! 이천년 묵은 인어의 맛은 뭔가 달라도 다르겠지?"
한소리 청아한 울림이 흑호의 물살을 떨어올렸다.
촤아아아!
그와 동시에 은린여인의 주위로 금빛 광망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악! 놔! 놔라!"
그녀는 고래고래 교갈을 내지르며 발악했으나 그럴수록 은린여인의 교구는 찬연한 금광에 더욱
옭아매지고 있었다.
그녀를 덮어씌운 금광은 하나의 그물(網)이었다.
그물에 잡힌 은린여인은 그대로 끌려나와 푹신한 모래사장 위에 내려졌다.
"핫하! 이제보니 전설의 은린부어녀(銀鱗浮魚女)로군! 오늘은 운이 좋은데....!"
화우성은 빙긋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내저었다.
천라제왕신망(天羅帝王神網)!
팔극선기옹이 남긴 이 절대천망은 은린부어녀의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모든 공력을 분해시키면
서 그녀를 완전히 옭아매 버린 것이었다.
"이천 년 동안 기다렸는데...겨우 삼 일을 남기고 잡히다니...!"
천라제왕신망에 갇힌 은린부어녀의 봉목으로 회한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체념의 빛
을 발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천 년 안에 소녀를 제압할 수 있다면 그의 말을 듣기로 했지요. 한데 천라제왕신망이 출현하
다니..."
"하하! 약속을 잊지 않았다니 풀어주지!"
휘르륵!
화우성은 웃으며 천라제왕신망을 회수했다.
천라제왕신망에서 벗어난 은린부어녀는 즉시 교구를 일으켜 세웠다. 비록 온 몸이 은린에 덮여
있으나 은린부어녀의 육체는 가히 폭발적인 염태를 뿜어내고 있었다. 출렁이는 육봉과 은린에 가
려 보일 듯 말 듯한 신비로운 비소의 형체는 환상의 유혹이었다.
"삼가 흑해용녀(黑海龍女)가 지존을 배알하옵니다!"
은린부어녀 흑해용녀는 곧 화우성에게 공손히 대례를 올렸다.
순간 화우성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찬연하게 빛나는
은하의 물결 속에 꿈틀거리는 신비로운 은린부어녀의 여체!
당연히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그녀의 특이한 육체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방향과 유혹
이 넘쳐흘렀다.
눈을 감은 채 필사적으로 본능의 유혹에 싸우는 그런 화우성을 보며 흑해용녀는 배시시 미소를
베어물었다.
(맞았어! 아직 승부는 끝난 게 아니지!)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으며 무릎 걸음으로 화우성에게 다가갔다.
(여자에게는 아무리 막강무비한 사내라도 단번에 죽여 버리는 무기가 있는 거야!)
그녀는 고혹한 옥용에 발그레 홍조를 떠올리며 눈을 감은 화우성의 하의를 벗겨내렸다.
"무....무슨 짓을....!"
아랫도리가 썰렁해지는 느낌을 받고 화우성은 질겁하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흑해
용녀의 미끈한 두 팔이 그의 다리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아무 말도 마시옵소서! 주인님께 바치는 저의 첫 봉사이오니....!"
흑해용녀는 고혹한 웃음을 떠올리며 이어 얼굴을 화우성의 중심부에 묻었다.
(으헉!)
다음 순간 화우성의 온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뻣뻣해졌다. 자신의 가장 예민한 일부가 어딘
가 따스하고 촉촉한 곳으로 흡입된 것이다.
흑해용녀의 기교는 화우성이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마치 몸의 일부가 눈처럼
녹아드는 듯한 엄청난 희열에 몸부림쳤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린 화우성은 그대로 무너져내렸고 그런 그를 흑해용녀의 미끈덩한 알몸
이 덮쳐왔다.
마치 뼈없는 연체동물같은 흑해용녀의 신비한 육체...! 그녀의 미끈덩하고 보드라운 지체에 휘감겨
화우성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의 손과 혀가 온몸을 어루만지고 핥고 지나감에 따라 화우성은
몇 번이나 아득한 나락을 경험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화우성은 확실히 죽고 말았다. 그것은 자신의 하체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걸터
앉은 흑해용녀가 끊어질 듯 충혈된 불덩이 위로 내려앉는 것을 본 직후의 일이었다.
흑해용녀의 섬섬옥수에 의해 은빛 비늘 속에서 너무도 생경하고 원색적인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
었고, 그 전율스러운 곳으로 자신의 욕망의 상징이 함몰되어가는 것을 보며 그는 정말로 죽음같
은 열락을 경험한 것이다.
마치 바닥이 없는 늪지같은 그곳은 엄청난 흡입력으로 화우성의 모든 진을 빨아들였다. 화우성은
자신의 몸이 흑해용녀의 원색적인 동굴로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듯한 희열에 아득히 정신을 잃어
갔다. 그런 그의 몸 위에서 흑해용녀가 득의의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용왕천인 화우성이 너무도 어이없이 초주검이 되고 있는 이곳은 천라오겁비관 중 제일관 흑해사
관이었다.


화염지옥(火焰地獄)-!
사위는 온통 불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축융마화(祝融魔火)! 그 불꽃은 한 번 붙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이었다.

"쩝쩝! 이제 사흘이면 지겨운 축융마화정을 먹지 않아도 된다!"
머리, 다리, 팔 온 전신에서 시뻘건 불꽃을 뿜고 있는 괴인은 연신 화정을 입으로 빨아들이고 있
었다.
"쩝쩝! 나간다면 축융마염봉으로가 초열화정을 포식한 후 천하를 불의 제국으로 만들리라! 팔극선
기옹이 말한 놈이 온다해도 한줌의 잿가루로 만들 엉?"
연신 화정을 흡취하며 중얼거리던 화인은 일순 두 눈이 크게 치떠졌다.
콰우우우우웅!
수천, 수만 줄기의 벽력군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엄청난 폭멸음이 터짐과 동시에 터지며 영
원히 꺼지지 않으리라던 축융마화가 일시에 새파란 뇌화(雷火)에 흡수되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초열지옥(焦熱地獄)!
"아앗! 뜨, 뜨거!"
화인은 불속에서 마구 날뛰었다.
"후후! 불이란 더 큰 불에 흡수되어야 제격이지!"
화우성은 싱그러운 미소를 띄며 태연히 불의 폭풍 속을 걸어오고 있었다.
"대화종(大火宗)이시여...!"
축융화인은 그 자리에서 오체투지하고 말았다.
제이관(第二關) 지옥화관(地獄火關)이었다.


제삼관(第三關) 빙천설관(氷天雪關)!

빙녀! 뼈까지 보일 정도로 투명한 빙녀였다.
"크으... 추, 추워!"
빙녀는 연신 교구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쩌쩌쩡!
도저히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대빙원의 얼음이 갈라지고 있었다!
얼음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나갈 대빙한풍은 순식간에 대빙원을 파열시키고 있었다.
"아악! 제발 살려줘요! 얼어 죽겠어요!"
빙녀는 급기야 찢어질 듯한 교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 금라백의를 걸친 미장부가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다가들었다. 그는 빙녀의
유리(琉璃)처럼 투명한 교구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뇌는 만상의 으뜸이지. 그 안엔 천빙(天氷)의 이치도 있어... 빙요정!"
화우성은 빙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천빙대황이시여. 소녀의 영혼도 육신도 모두 황야의 것이옵니다!"
빙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우성에게 안겨들었다. 그녀의 온 몸에서 내뿜어지는 차가운 한기는 그
러나 뇌(雷)의 기운을 몸 안 가득히 머금고 있는 화우성에게는 아주 기분좋은 청량감으로 느껴지
고 있었다.
(항상 주체 못하던 내 신열(身熱)을 식히기에는 더할 수 없이 적합한 여자로군!)
화우성은 자신의 품안에 안겨있는 살아있는 죽부인(竹婦人)을 끌어안은 채 음험한 미소를 머금었
다.
빙녀 역시 자신의 아랫배를 찌르는 무언가 뜨겁고 꿈틀대는 돌기를 느끼고 투명한 뺨에 살풋 홍
조를 띄워올렸다.


암흑...
한 줌의 빛도 일말의 소성도 들리지 않는 대암흑동!
스르르르!
유령인가? 인간형상의 안개는 흐느적거리며 벽, 기둥, 땅 속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흐흐! 나 유령환매(幽靈幻魅)가 환우에 나간다면 모조리 유령천하(幽靈天下)를 이루리라!"
유령환매는 으스스한 유령소(幽靈笑)를 발하며 너울거렸다.
그런데 유령환매의 그림자 뒤로 무엇인가 하얀 백무가 일렁이며 음산한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
닌가?
"헉! 웬 놈!"
스르르!
유령환매는 대경하며 신형을 틀었다.
허나 없었다.
"흐흐흐... 나는 유령타혼자(幽靈打魂子)다!"
여전히 유령환매의 등뒤로 음산한 웃음이 들렸다.
타악!
"악! 이 찢어 죽일..."
유령환매는 눈에서 불똥이 튀자 분노하며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탁! 타다다닥! 탁!
허나 무엇인가를 신나게 두드리는 격타음은 끊이지 않았다.
"크흑! 암흑유령신이시여 제발 용서를..."
급기야 격타음이 일천팔백육십 회가 울리고서야 유령환매는 애걸복걸했다.
"흐흐! 태극이전의 일원혼암계는 무(無)요 유(有)다."
제사관(第四關) 유령암흑관(幽靈暗黑關)은 뚫렸다.


"카캇! 요 방울만한 놈이 뭐가 어째?"
일천 개의 거종이 한꺼번에 울리는 듯한 광소가 대지를 쩌렁 울렸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거대한 괴인은 삼 장 하고도 오 척은 능히 넘는 청동거인은 접시만한 눈망울
을 디룩디룩 굴리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우성의 키도 작은 편이 결코 아니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실로 난장이보다 더욱 작게 보
였다.
"크크! 그러니까 네놈과 내가 서로 한 대씩 치고 받자는 그런 얘기냐?"
"후후! 그렇다! 미련한 돼지야!"
"우욱! 돼지! 이 밤톨만한 놈! 죽어랏..."
청동거인은 돼지라는 말에 몹시 분노하며 주먹을 내리쳤다.
저 거대한 쇠망치와도 같은 주먹이 무자비하게 화우성의 머리를 강타했다.
쾅!
"으악! 내 손! 내 손!"
헌데 이 무슨 괴변인가? 화우성은 미소를 머금은 채 팔짱을 끼고 있거늘 청동거인은 팔목을 움켜
쥔 채 눈물이 눈앞을 가리도록 끙끙 앓고 있었다.
"후후! 미련한 돼지! 이제 본좌가 한 대 칠 차례일세!"
스윽!
화우성은 조용히 한 손으로 청동거인의 무릎을 내질렀다.
퍼억!
가벼운 격타음이 경쾌하게 울려퍼지고, 청동거인의 거구가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오십 장을 날
라가 땅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깨끗했다. 청동거인은 그대로 큰대자로 쭉 뻗어 버렸던 것이다.
청동거인은 하루가 지난 뒤 깨어났다.
"대철인이시여!"
쿠웅!
그리고 그의 머리가 땅바닥을 찧을 때마다 대지가 비명을 내지르며 진동했다.


천라오겁혈비국!

인간이되 인간이 될 수 없는 요괴인간(妖怪人間)들이 인간을 저주하며, 시기하며 인간멸살을 회책
하던 요괴들은 한 인간 화우성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대설산(大雪山),
휘리리!
대폭설과 대강풍이 미친 듯 강타하고 있는 대설산의 정상 발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은백세계를
바라보는 인영이 있었다.
바로 화우성이었다.
대설원을 바라보는 화우성의 눈에는 새하얀 물결이 출렁거리는 것이 무한한 감회에 젖어 있는 듯
했다.
이십여년전, 그는 이곳 대설산에서 열명의 흉적들에게 능욕당한 뒤 죽어가던 한 여인의 품에 안
겨 있다가 천축무림의 절대자인 금령천불(禁靈天佛)에게 발견되었었다.
(그 여인은 누구일까?)
화우성은 핏덩이인 자신을 지키다 죽어간 이름모를 여인을 떠올리며 우수에 잠겼다.
(금령 사부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분은 태음지신(太陰之身)을 지녀 이곳 대설산의 전설적인 문파
유리빙궁(琉璃氷宮)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화우성의 붕안이 천천히 하늘로 이동했다.
천공은 온통 새하얀 구름으로 덮여 있고, 천지사방에는 새하얀 눈송이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분
분했다. 눈이 아리도록 넓디넓은 천공은 모조리 두 눈에 담겠다는 듯이 동공은 텅 비어 있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채챙! 쿠르르르르!
갑자기 화우성의 상념에 깨부수는 굉음이 동쪽 멀리서 들려왔다.
화우성의 상념을 깨뜨린 것은 비단 굉음뿐이 아니었다.
우르르릉!
화우성이 발을 딛고 선 산정도 격렬하게 진동했다.
일 순간 화우성의 눈에 기광이 어렸다.
(누군가 싸우고 있는 듯한데 대체 어느 정도의 고수들이기에 이처럼 격렬하단 말인가...)
스읏!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화우성의 신형은 공중으로 떠올랐고, 떠올랐다 싶은 순간 신형은 이미 동
쪽을 향해 빛살처럼 폭사하고 있었다.

"흐흐흣! 계집이 제법인데? 허나 자고로 계집은 앙탈하는 맛이 있어야 잡아먹는 맛도 더 한 법이
지!"
"닥쳐랏! 개 보다도 못한 놈!"
슈욱!
"크녠! 글쎄 안 된다니까!"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대지가 두 남녀의 싸움 때문에 갈기갈기 찢어졌다.
남자는 적발(赤髮)에 적염(赤髥), 홍안(紅顔)과는 대조적으로 금광이 번뜩이는 눈을 가진 괴로(怪
老)였다.
천마대불종!
그자는 바로 천하제일색마인 천마대불종이 아닌가?
그리고 천마대불종과 싸우고 있는 여인은 삼십대 후반의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가히 경국지색이라할 만한 미모인데 특이하게도 그녀는 이 대설산의 혹한이 무색하게도 일신에는
얇은 나삼을 하나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헌데 그녀가 누군가? 비록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여인은 분명 국화미인(菊花美人) 추수월(秋水月)
이 아닌가?
핏덩이인 화우성을 안고 대설산을 넘다가 혈각(血閣)이 보낸 추적자들인 십혈랑(十血狼)의 합공을
받아 죽어갔던 여인이며, 화우성의 신세내력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여인...
또한 태음지신을 타고 태어난 덕분에 유리빙궁의 여종사 설산빙모(雪山氷母)에 의해 거두어졌던
비운의 여인!
헌데 그녀가 어찌 이곳에서 천마대불종과 싸우고 있단 말인가?

"크녠! 본좌가 오늘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횡재를 했군! 앙탈하는 것이 감칠 맛이 있거든! 게다
가 얼음보다로 차가운 것이 일단 불이 붙으면 으흐흐..."
천하에 색(色)을 밝히는 것으로는 당할 자가 없다는 천마대불종은 생각만 해도 사타구니가 뜨끈
뜨끈해지는지 연신 음소를 터뜨렸다.
"미친 자식! 늙어 죽지도 못한 것이 꼴에 남자라고...! 죽어랏!"
추수월이 날카로운 교갈을 터뜨리며 쌍수를 날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살을 에이는 한풍이 노도같
이 몰려나왔다. 그녀의 무공은 이십여 년 전에 비해 수십 배 급증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천마대불종이 누구인가? 이백 년 전에 천축무림에서 적수가 없었던 전설적인 거마가 아닌
가?
"크녠! 그래 바가지를 긁고 싶단 말이지? 자고로 남자는 여자가 바가지를 긁으면 긁을수록 좋아
하는 법이거늘!"
그는 음탕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손을 저어 추수월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쿠쾅!
천마대불종과 추수월의 강기가 거대한 폭음을 내며 충돌하자 땅이 쩍쩍 갈라지고 눈발이 하늘로
날려 올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눈발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속에서 추수월의 앙칼진 목소리가 대지를 찢었다.
"죽어랏! 빙백설천강(氷魄雪天剛)!"
"크녠! 좋아, 좋아! 천붕비폭멸(天崩飛爆滅)!"
번쩍!
쿠르르르!
새하얀 설무 속에서 눈을 찌를 듯한 홍광과 청광이 번뜩이더니,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조각
조각 부서진 홍광(紅光)과 청광(靑光)이 비산했다.
그와 동시에, 강기의 격동을 이기지 못한 눈발들이 허공에서 그대로 증발해 버리자, 장내의 광경
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흐으윽!"
신음을 터뜨리고 있는 추수월은 십 장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아무리 추수월이 기연을 얻어 절정
고수가 되었다고 해도 천마대불종의 상대는 아직 못 되는 것이다.
바람 맞은 촛불처럼 격심하게 떨리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주르르 핏물이 흘렀다.
가슴깨가 찢어진 웃옷 사이로는 우유빛 수밀도가 비집고 나올 듯 풍만하고 치마는 길게 찢어져
한 쪽의 옥주가 그 뽀얀 미태를 찬연하게 드러냈다.
"크크녠! 설원 위의 나녀라? 본좌가 오늘 또 다른 맛을 보게 되겠군. 쩝!"
추수월의 황홀한 자태를 본 천마대불종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다가들었다.
이때, 추수월의 급히 옷을 추스리며 강기를 올렸다.
"어쩔 수 없는 인간말종이로군! 은하천빙폭(銀河天氷爆)으로 죽여준다!"
쓰으으으!
폭갈이 터짐과 동시에, 추수월의 쌍장이 푸른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백색에 가깝게 빛나고, 느릿
느릿 앞으로 나아가자 대기마저 새파랗게 얼러 버린다.
쩌쩌쩡!
추수월이 혼신의 내력을 모조리 투입한 듯 백색으로 달아로는 쌍장과 대기는 지극히 서서히 나아
갔다.
"유리빙궁(琉璃氷宮)의 계집이었느냐?"
천마대불종이 비로소 가볍게 놀라더니 안색을 굳혔다.
"적당히 주물러 주려 했더니 이 계집은 그냥 둘 수 없군! 마극혈공천(魔極血空穿)!"
피웃!
천마대불종의 손가락에서 열 가닥의 새파란 지강(指剛)이 폭사되더니, 추수월의 빙강과 부딪치자
가벼운 진동음을 냈다.
파지지직!
뭔가 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천마대불종의 지강이 그대로 추수월의 몸을 감산 빙강(氷剛)에 구
멍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앗!"
추수월의 커다란 봉목이 찢어질 듯 커졌다.
"크크녠! 구멍(?)이란 이렇게 뚫는 거다! 알겠나?"
천마대불종은 음흉한 괴소를 터뜨렸다.
드드드!
그자가 뻗쳐낸 지강은 어느새 추수월의 가슴에서 한 자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왔다. 그녀의 몸을
방호하는 빙강이 마구 흔들리며 추수월의 교구도 폭풍을 맞은 꽃송이처럼 진동을 일으켰다.
"흐윽!"
추수월은 천마대불종의 지강에 실린 막강한 진파에 내장이 뒤틀려 울컥 피를 토했다.
"크크크! 드디어 오늘 빙녀의 맛을 보게 되는군! 쩝쩝!"
천마대불종은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를 덮칠 때의 장면을 연상하며 흐뭇해했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쯧쯧! 불쌍하군! 본좌가 연성한 뇌정삼예의 최초의 희생자가 될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까불
다니! 천마대불종... 나이 값이나 좀 하게!"
느닷없이 천마대불종의 뒤에서 머리통을 부수는 듯 웅혼한 외침이 터져왔다.
"웬놈이냐?"
천마대불종은 애석하게도 막 추수월을 생포할 수 있는 찰나에 몸을 돌렸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추수월은 피를 왈칵 토하며 눈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녀의 안색
은 백짓장같이 새하얘졌다. 비록 몸이 궤뚫리는 것은 모면했지만 천마대불종의 강대한 내공의 진
파에 오장육부가 자리를 바꿔 버린 것이다.
화르르!
언제였을까? 천마대불종의 뒤쪽 삼 장 밖에는 한 명의 헌앙한 미청년이 뒷짐을 짚고 서서 혀를
차고 있었다.
"허억! 너...너는!!"
그 미청년을 본 천마대불종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미청년은 이
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미청년은 물론 화우성이었다.
"죽....죽어라 이놈!"
화우성을 발견하고 간이 떨어질 정도로 경악하던 천마대불종은 다음 순간 혼신의 내공을 발휘하
여 쌍장을 날렸다.
꽈르르릉!
태산이라도 단번에 깔아뭉개 버릴 듯한 어마어마한 장력이 화우성을 향해 쏟아져나갔다.
(내가 쓸데없이 지나치게 공력을 허비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내력을 발출한 상태에서 천마대불종은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
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화우성이 그것을 받아내지 못할까 봐 기특한 배려까지 했다.
"천뢰벽력참(天雷霹靂斬)!"
허나 화우성의 입에서 천지를 진동시키는 폭갈이 터지고, 뇌정천도가 엄청난 뇌강을 동반하고 천
마대불종을 강타했다.
쿠르르르!
"이, 이럴 수가! 캐액!"
뇌강을 대동한 화우성의 뇌정천도가 그대로 천마대불종을 두 조각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후훗! 예전의 나였으면 이토록 쉽게 끝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은 일성 내공도 쓰지 않았다네, 천
마대불종!"
화우성은 이미 두 덩이 고깃덩어리가 되어 널브러진 천마대불종을 보며 중얼거렸다.
"새도 죽으면 짹 소리를 낸다고 제법 내 가슴의 옷자락을 찢었군!"
화우성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찢어진 가슴을 여몄다. 찢긴 옷자락 사이로 마치 불꽃같은 보광이
언뜻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그....그것은!"
눈밭 위에 주저앉아 있던 추수월은 화우성의 가슴에서 번뜩이다 사라진 보광을 발견하고는 갑자
기 기절할 듯 놀라 화우성을 향해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혹....혹시 우성... 화우성 도련님이 아니신지요?"
그녀의 말에 화우성도 흠칫했다.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웬지 낮설지 않은 감정이 느껴지는 때문
이다.
"그렇소만... 부인께서 어떻게 소생의 이름을....!"
"아아! 정말 도련님이시군요! 하늘도 무심치 않으셨군요!"
화우성의 대답에 추수월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화우성에게 절을 했다.
"부인! 왜 이러십니까?"
생면부지인, 게다가 어머니뻘인 여인이 갑자기 절을 하자 화우성은 당혹하여 급히 그녀를 부축하
려 했다.
"아아! 이렇게 다시 도련님을 뵈었으니 신첩 추수월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우욱!"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추수월은 다음 순간 또 다시 한 모금의 선혈을 울컥 토해내었다.
"부인!"
화우성은 급히 외치며 그녀의 맥을 짚어보았다. 그런 그의 안색은 이내 침중해졌다. 추수월의 기
맥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아주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천마대불종의 내공에 진탕되어 오장육부가 자리를 바꾼데다가 실로 이십여 년 만에 어린
주인과 조우한 기쁨에 심기가 흔들려 내상이 위중해진 것이다.
"저를 어찌 아십니까 부인?"
화우성은 급히 추수월의 혈도를 찍어 내상이 도지지 않도록 처치해주고 물었다.
"이...이 천한 것은 추수월이라 하옵니다. 지금은 유리빙궁(琉璃氷宮)에 몸을 담고 있으나.... 본래
는 도련님 어머님의 시녀....!"
추수월의 음성이 급격히 낮아졌다. 하지만 그녀의 그 말로도 화우성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유....유리빙궁!"
그의 뇌리에 뇌정마찰을 떠날 때 사부 금령천불이 남겼던 서찰의 내용이 스쳐갔다.
(나를 데리고 대설산을 넘던 여인은 유리빙궁에 의해 거두어졌으니 찾아가 보라 하셨는데...! 그렇
다면 이 분이 바로....!)
"부....부인께서는 핏덩이인 나를 안고 대설산을 넘다가 변을 당하셨던 바로 그...?"
화우성이 덜덜 떨며 묻자 추수월은 눈물에 범벅이 된 얼굴로 미약하게 대답했다.
"알....알고 계시는군요, 도련님! 신첩은.... 행여나 도련님을 만날 수 있을까하여 매년 이곳에 들
러... 흐윽!"
추수월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눈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런 그녀의 숨결은 금방이라도 끊길
듯이 아주 미약해져 있었다.
"부인!"
화우성은 급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흐윽... 추....추워요!"
화우성의 품에 안긴 추수월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그리고 찢긴 그녀의 나삼 속에서 들어난
피부는 새파랗게 물들고 있었다.
(주화입마(走禍入魔)! 빙혈(氷血)이 역류하여 오히려 몸을 얼리고 있다!)
화우성의 안색이 다급하게 변했다.
추수월은 유리빙궁의 전대궁주인 설산빙모에게 거두어져서 빙백신공(氷魄神功)이란 전설적인 극
음빙공을 연마했다. 그 빙기는 가히 천하에 적수가 없을 정도로 극음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무공
이었다.
헌데 추수월은 천마대불종에게 당한 내상에다가 이십여 년 만에 어린 주인을 만난 흥분과 격동으
로 기혈이 역류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그녀가 이십여 년 간 익혀온 빙백신공이 폭주하여 오히려
그녀 자신의 몸을 얼리고 있는 것이다.
(빙기의 폭주를 저지하지 않으면 이 분은 일각 내로 한 덩이 얼음으로 변해 버린다!)
화우성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추수월이 누군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은인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의 신세를 알고 있는 유
일한 인물이었다.
(살려야 한다! 아니 기필코 살려드려야만 한다!)
결심을 굳힌 그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떠는 추수월의 교구를 꼬옥 끌어안았다.
휘잉!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은 눈보라를 일으키며 멀리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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